1863년 1월 1일, 링컨은 노예 해방 선언(The Emancipation Proclamation)을 공포한다. 링컨의 선언문은 선포 당시 실질적 효력을 갖지는 못했다. 1865년에 수정 헌법 13조가 비준되고 나서야 흑인 노예들은 진정한 자유민이 될 수 있었다. 그 선언문은 남부 연맹에 대한 일종의 심리전술적 측면을 갖고 있었다. 한편으로 이 선언문이 절실히 필요한 쪽은 링컨과 북부 연합이었다. 북부의 초기 전황은 불리했다. 가용할 수 있는 인적 자원을 최대한으로 뽑아내야만 했다. 흑인 군대에 대한 아이디어가 그렇게 나왔다. 1월의 선언문 발표에 이어 3월에 흑인 병사로 구성된 연대가 조직되었다. 에드워즈 즈윅 감독의 1989년작 'Glory'는 매사추세츠 54 지원병 연대(54th Massachusetts Infantry Regiment)의 이야기를 담는다.

  영화가 시작되면 관객은 소심하고, 무언가 전투와는 어울리지 않은 젊은 장교를 보게 된다. 로버트 쇼(매튜 브로데릭 분)는 전투에서 가벼운 부상을 입고 병가를 받는다. 그런 그에게 매사추세츠 54 연대를 지휘하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미군 역사상 흑인 병사들로만 이루어진 최초의 부대였다. 영화는 역사적 사실을 다루지만, 등장하는 흑인 병사 캐릭터들과 그 이야기는 거의 허구에 가깝다. 언제부터인가 이런 류의 전쟁 영화를 만나면 무언가 좀 삐딱한 시선으로 보게 된다. 영화가 실제와는 또 얼마나 다르게 조미료를 치고 가공했는지, 그걸 다 찾아보고 나면 허망해질 때가 많다. '영광의 깃발'도 그런 면에서 결코 자유롭지는 않다.

  오합지졸과 같은 초짜 흑인 병사들은 혹독한 훈련을 받으면서 점차 진짜 군인이 되어간다. 다양한 출신 배경을 지닌 병사들의 이야기가 거기에 곁들여진다. 주요 등장인물들은 이러하다. 쇼의 어린 시절 친구로 기꺼이 부대원이 되는 토마스, 노예 출신으로 거칠고 반항적인 트립(덴젤 워싱턴 분), 부대원 가운데 연장자로 온화한 성품을 지닌 롤린스 상사(모건 프리먼 분), 쇼의 친구로 함께 부대를 이끄는 부하 장교 포브스가 있다. 군복과 군화 같은 보급품을 제대로 받지 못해 어려움에 시달리는 연대의 모습, 흑인들을 향해 내뱉는 백인 병사들의 인종차별적인 언사, 무차별적인 방화와 약탈을 지시하는 폭압적 지휘관... 영화는 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부조리와 모순을 조각조각 이어붙인다. 거기에 극적인 장면도 있다.

  트립은 탈영을 시도했다가 형벌로 공개 채찍질을 받게 된다. 트립의 벗겨진 등에는 그의 노예 시절을 암시하는 험한 흉터 자국이 보인다. 영화는 트립에게 가해지는 형벌을 통해 흑인 노예들의 비참한 처지를 부각시킨다. 그런데 당시 군대에서의 채찍질은 금지되어 있었으므로 그것은 사실과 거리가 멀다. 그렇다면 흑인 병사들이 정해진 급여 13달러(백인 병사에게만 해당)가 아닌 10달러의 차별적 급여에 반발하며 파업하는 사건은? 영화는 쇼가 부대원들의 파업에 동참해 자신의 급여 통지서를 찢어버리는 감동적인 장면을 보여준다. 실제로 로버트 쇼가 그걸 찢어버렸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가 부대원들의 급여 파업을 적극적으로 독려한 것은 사실이다. 그의 부모는 열렬한 노예제 폐지론자로 그 자신도 인본주의적 신념을 가진 사람이었다.

  영화는 허구와 사실을 섞어 괜찮은 그림으로 직조해 나간다. 에드워드 즈윅은 드라마적 요소에 더해 박진감 넘치는 전투 장면을 효율적으로 배치한다. 이 영화가 갖는 미덕은 이렇다. 역사적 사실을 다룬 영화로서 적당한 선을 지킨다는 것. 그리고 가공의 인물들을 통해 관객을 미시사적 진실에 접근하도록 만든다. 모건 프리먼이 연기한 롤린스 상사는 행군 도중에 마을의 흑인 아이들을 만난다. 그는 아이들에게 다가가 다정하게 인사한다. 그 장면은 그가 속한 흑인 연대의 존재 이유를 보여준다.

  매사추세츠 54연대의 그 누구도 죽음의 위협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남부 연맹은 흑인 병사는 물론이고 백인 지휘관까지 처형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엄포를 놓았다. 실제로 남군에 포로로 잡힌 흑인 병사들은 대부분 죽임을 당했다. 그러므로 흑인 병사들은 입대할 때부터 목숨을 내놓고 전장에 나가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그들이 자원 입대해서 싸운 이유는 어떤 면에서 그들 자신 보다는 다음 세대에게 있었다. 자신들은 비록 죽을지라도 어린 세대들은 노예가 아닌 미합중국의 당당한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드는 것. 롤린스가 어린 꼬마들에게 건네는 인사에는 그런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마침내 영화는 부대원들이 비극적으로 전사하는 Fort Wagner 전투에 이른다. 난공불락의, 패배가 예견된 이 무모한 전투에서 쇼를 비롯해 대부분의 부대원들이 스러진다. 영화는 포연이 남아있는 새벽의 풍경 속에 끝난다. 영화가 보여주지 않은 이후의 일은 이러하다. 관례대로라면 장교인 로버트 쇼의 시신은 북군에게 인도되어야만 했다. 하지만 남군은 그 요청을 거부했다. 결국 쇼는 부대원들과 함께 묻혔다. 장렬하게 전사한 매사추세츠 54연대의 지휘관과 부대원들의 이야기는 당시 북부인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다. 로버트 쇼와 흑인 연대의 존재는 남북 전쟁에서 북부인들이 왜 싸우는가를 새롭게 각인시켰다. 

  감독 에드워드 즈윅에게 이 영화는 2번째 작품이었다. 그는 드라마와 액션을 적절하게 조합하는 자신의 능력을 입증한다. 1994년에 내놓은 '가을의 전설'에서 즈윅은 'Glory'의 음악을 담당했던 제임스 호너와 또 한 번 같이 작업하면서 멋진 작품을 만들어 냈다. 흥행 면에서 높은 성적을 낸 '가을의 전설'과는 달리 'Glory'는 제작비를 겨우 상회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 영화가 훨씬 더 좋다고 생각한다. 실제 역사적 사실과 몇몇 부분이 다르기는 하지만, '영광의 깃발'은 영화가 관객에게 줄 수 있는 최선의 것을 선물한다.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그리고 경험하지 않은 과거의 역사에 대해 좀 더 깊이있게 성찰하고 바라볼 수 있게 만드는 일. 영화 'Glory'는 비참한 노예의 신분에 있던 흑인들이 인간, 그리고 시민의 권리를 얻기 위해 치루어야 했던 희생을 진정성 있게 그려낸다.     


*사진 출처: themoviedb.org



**남북 전쟁을 다룬 이안 감독의 영화 'Ride with the Devil(1999)' 리뷰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2/04/ride-with-devil1999.html
 

***역사학자 Kevin M. Levin은 Smithsonian Magazine에 영화 'Glory'가 실제 역사와 어떤 부분이 다른지 자세히 설명하는 글을 썼다.
https://www.smithsonianmag.com/history/why-glory-still-resonates-more-three-decades-later-180975794/



****사진 출처: en.wikipedia.org
매사추세츠 54연대를 이끌었던 Robert Gould Shaw. 그는 25살의 나이에 전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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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돈의 색깔(The Colour of Money)
2부  치명적 영향(Fatal Impact)
3부  야만의 유산(A Savage Legacy)

러닝타임 2시간 56분



1. 노예제, 인종주의의 시작

  2007년, BBC는 노예제를 다룬 3부작 다큐를 내놓았다. 노예 무역 금지법(Slave Trade Act). 200년 전에 영국 의회에서 통과된 이 법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영국은 1807년에 노예 무역을 폐지했다. 미국의 남북 전쟁(The Civil War)을 촉발한 노예제의 기원에는 제국주의와 함께 시작된 인종주의(racism)가 자리하고 있다. 인간이 다른 인간을 도구화하고 착취의 대상으로 삼는 것. 과연 노예제(Slavery)는 언제,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BBC의 3부작 다큐는 서구 식민주의의 추악한 맨얼굴과 그 어두운 유산을 냉철하고도 처절하게 응시한다.

  1부 '돈의 색깔'에서는 노예제의 근원적 동력이 경제적 논리였음을 밝힌다. 영국은 노예 무역의 선두주자였다. 1640년대부터 영국은 카리브해 식민지 농장에서 일할 노동력을 필요로 했다. 일꾼들을 조달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식민지 시에라리온(Sierra Leone)에서 노예 사냥꾼들은 닥치는 대로 원주민을 잡아들였다. 잡힌 흑인들은 목에 낙인이 찍혔고, 노예선에 발 디딜 틈도 없이 빽빽하게 짐짝처럼 실려서 영국의 사탕수수 플랜테이션 농장으로 보내졌다. 그것은 엄청난 이윤을 남기는 장사였다. 노예 무역으로 산출된 이득은 영국의 금융업을 살찌웠다.

  물론 영국이 본격적인 노예 무역에 나서기 이전에 남미의 스페인 식민지에서 원주민 학대와 착취가 선행되었다. 원주민 문제를 두고 1550년에 열린 바야돌리드 회의, 가톨릭 주교인 Bartolomé de Las Casas는 원주민의 인권을 옹호한다. 어떤 면에서 그것은 노예제를 두고 이후 서양에서 벌어질 첨예한 논쟁의 시작이기도 했다. 서양은 어떻게 노예제를 합리화하고 정당화했을까? 거기에 기독교가 큰 역할을 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구약성서 창세기 9장 25절에는 노아의 저주를 받은 함의 아들이 형제들의 '노예'가 될 것이라고 적혀 있다. 그것은 노예제의 영속성을 옹호하는 증거로 여겨졌다.

  계몽주의자들은 보다 더 적극적인 방식으로 노예제를 합리화하고 정당성을 확보하려고 했다. 흑인들은 짐승에 가까운, 열등한(inferior) 존재이므로 그들에 대한 차별은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19세기에 이르면 이러한 인종주의를 뒷받침하는 주요한 학문이 등장한다. 다윈의 사촌이었던 Francis Galton의 골상학(Phrenology)은 허버트 스펜서와 같은 사회적 진화론자(Social Darwinism)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그것은 우생학(eugenics)의 시대를 예견하는 불길한 징조였다. 이제 다큐의 2부 '치명적 영향'에서는 인종적 차이를 우열로 분류하는 우생학이 제국주의와 결합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를 보여준다.


2. 인종주의의 전지구적 확장 

  영국은 1833년에 식민지에서의 노예제를 폐지한다. 식민지인들에게 그것은 해방이 아니라 고된 기독교 농부로의 전환에 지나지 않았다. 제국주의자들은 식민지인들에 대한 대대적인 개종의 비전을 들고 나왔다. 그러나 그것은 곧 실패에 이른다. 태즈매니아 섬의 경우, 격렬히 저항했던 원주민들은 정착민들의 잔혹한 폭력과 질병에 노출되어 결국 절멸에 이르렀다. 질병으로 죽어가는 원주민들의 모습은 사회적 진화론자들에게 인종적 열등함에 대한 증거로 인식되었다. 다른 대륙에서도 대규모의 원주민 학살이 있었다. 나미비아의 사막에 위치한 독일의 집단 수용소 'Shark Island'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그 지역의 Herero 원주민들은 독일 정착민들과 극심한 마찰을 빚었다. 결국 독일은 원주민들을 체포해 집단 수용소로 이주시켰다. 1905년에서 1907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수감된 원주민들은 노동력 착취, 기아, 강간을 비롯한 잔인한 폭력 행위에 노출되었다. 나치의 우생학자로 널리 알려진 Eugen Fischer는 이 죽음의 수용소에서 원주민을 대상으로 한 생체 실험을 수행했다. 이것은 이후 일어날 나치의 6백만 유대인 학살을 예고하는 핏빛 서곡이었다. 이제 제국주의의 유산인 인종주의는 전지구적으로 확대된다. 3부 '야만의 유산'은 그 무시무시한 파급의 실체를 보여준다.

  1885년, 벨기에 국왕 레오폴드 2세는 콩고를 개인 식민지로 삼고 무자비한 수탈을 감행해 나간다. 그는 탐욕스러운 제국주의자이며 살인마였다. 천연 고무의 채취를 위해 동원된 원주민들은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손발이 무참하게 잘렸다. 고무를 비롯해 상아와 카카오도 수탈의 대상이었다. 벨기에 초콜릿의 명성에는 그런 피비린내 나는 역사가 들어있다. 콩고에서 나온 수익은 왕 개인의 사치와 화려한 건축물을 짓는 데에 쓰였다. 그 시기에 죽어나간 콩고인들의 숫자는 적게는 100만 명, 많게는 150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에서는 링컨의 노예 해방으로 흑인들이 자유를 찾았지만, 백인과 동등한 권리를 얻은 것은 아니었다. 남북 전쟁 이후 남부는 독자적인 주 입법을 통해 흑인에 대한 제도적 차별을 주도해 나갔다. KKK단의 발흥과 함께 1882년에서 1927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린치로 죽은 흑인은 3500명에 이른다. 노예제를 연구하는 미국의 교수는 당시 남부에서 판매된 엽서들을 보여주며 린치의 의미를 설명한다. 엽서에 인쇄된 사진들에는 린치당한 흑인들이 찍혀있다. 25센트 정도 하는 그런 값싼 엽서들은 남부인들의 일상에서 린치가 희화화된 오락이었음을 입증한다.


3. 새로운 시대의 인종주의

  1950년대 흑인 민권 운동이 힘겹게 인종주의의 철폐를 위해 싸우는 동안,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는 국가가 인종차별을 제도화하고 있었다. 아파르트헤이트에 반대하며 1976년에 흑인들은 소웨토 봉기를 일으켰다. 한편 영국은 식민지에서 이주해온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이 사회문제로 부각한다. 1981년의 인종 폭동, 1993년에는 스티븐 로렌스라는 흑인 청년이 5명의 백인들에 의해 살해당하는 사건이 있었다. 경찰은 은폐했고, 2012년이 되어서야 두 명의 범인들을 재판에 세울 수 있었다. 그 사건은 제국주의가 남긴 길고 어두운 인종주의의 폐해를 드러낸다.

  다큐는 지리상의 발견과 함께 시작된 제국주의가 인종주의라는 괴물을 탄생시켰음을 주지시킨다. 무려 500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그 추악한 유산은 지구 곳곳으로 퍼져나가며 번성했다. 과연 인류는 인종주의가 남긴 잔재와 악습을 끊어낼 수 있을까? 미국의 대안주의 언론 'vox.com'이 최근 실은 기사는 새로운 형태의 인종주의를 언급한다.


  노스캐롤라이나주에는 미국 최대 규모의 돼지고기 육가공업체들이 밀집해 있다. 공장이 위치한 장소는 주에서 매우 낙후된, 하층민 주거지역이다. 그곳에서 내뿜는 분진과 오폐물은 오랫동안 심각한 환경오염을 야기해왔다. 그리고 이는 인근 주민들의 건강에 심각한 위해 요소로 작용한다. 문제는 주민들 대부분은 그곳에서 조상대대로 살아온 흑인들이며, 그들에게는 업체에 주거환경 개선을 요구할 그 어떤 법적인 수단이 없다는 점이다. 대기업들은 강력한 의회 로비를 통해 법적 규제 수단을 약화시켰다

  기사는 이를 '환경 인종주의(environmental racism)'로 규정한다. 그곳에서 가공된 베이컨 제품들은 아시아 여러 국가(한국도 포함)로 수출된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의 소비자가 미국산 베이컨을 구매할 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인종주의의 질기고도 오랜 유산을 마주하는 셈이다. 이렇게 미세화되고 일상화된 인종주의가 우리 곁에 자리잡는 것을 막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까? 그 시작점은 인종주의의 기원과 역사를 기억하고 잊지않는 일에서부터일 것이다.        


*사진 출처: shadowandact.com



**'환경 인종주의'를 다룬 vox.com의 2022년 4월 1일자 기사
https://www.vox.com/future-perfect/23003487/north-carolina-hog-pork-bacon-farms-environmental-racism-black-residents-pollution-meat-industry


***그림 출처: en.wikipedia.org  보스턴 미술관 소장
영국 화가 William Turner(1775-1851)의 '노예선(The Slave Ship, 1840)': 태풍에 전복된 처참한 노예선 사고를 그림


 
****이 3부작 다큐는 유튜브, documentarymania.com에서 검색 가능하다. 영어 자막은 캡션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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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북 전쟁(The Civil War, 1861-1865)이 일어날 당시 남부의 인구는 9백만 명으로 추정된다. 그 가운데 흑인 노예 인구가 4백만 명이었다. 이는 면화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남부의 경제 구조에서 노예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링컨은 노예 제도를 철폐하려고 했다. 남부인들 입장에서 그것은 재산인 노예를 잃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이제까지 살아온 삶과 사회, 정체성 전부가 무너져 내리는 일이었다. 남부가 연방을 탈퇴하고 전쟁에 돌입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안 감독의 1999년작 'Ride with the Devil'은 남부인의 입장에서 전쟁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게릴라 전법을 구사하는 비정규 군사 조직인 'bushwhackers'는 노예제 철폐주의자들에 대한 잔혹한 공격을 감행한 일로 악명이 높았다. 그들은 전쟁이 일어나자 민병대의 역할을 떠맡으며 북군을 공격했다. 'Ride with the Devil'에서 제이크(토비 맥과이어 분)는 친구 잭을 따라 엉겁결에 'bushwhackers'가 된다. 곧 그들의 무리에 백인 주인과 함께 다니는 흑인 다니엘도 합류한다. 그들에게 북군은 남부인들을 죽이고 남부의 모든 것을 파괴하는 절대적 악이다. 그 북군과 대적하기 위해 부대원들은 점점 더 잔혹해진다. 그렇게 전투가 거듭되면서 온화했던 제이크의 심성도 거칠게 망가져 간다.

  집과 가족, 공동체를 지킨다는 대의명분은 시간이 지나갈수록 희미해진다. 오직 무차별적인 살육과 방화만이 반복된다. 영화는 제복 입은 정규 군대의 전투 바깥에서 일어나는 또 다른 전장을 바라보도록 만든다. 과연 누구를, 무엇을 위한 전쟁인가? 제이크는 회의감을 느낀다. 이제 그를 싸움에 나서게 만드는 동력은 동료애에서 나온다. 잭의 죽음, bushwhackers 내부의 불화와 분열을 보면서 제이크는 남부인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새롭게 자각한다.

  이안 감독의 이 영화는 아마도 남부인들에게는 매우 불편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이 무겁고 어두운 남북 전쟁의 서사에는 어떤 극적인 반전이나 감동이 배제되어 있다. 이안은 이야기의 무미건조한 톤을 끝까지 밀어붙인다. 어찌 보면 적당한 감동을 위한 영화적 타협을 거부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잭과 젊은 과부 수의 러브 스토리가 짧게 들어가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마치 이야기의 구색맞추기용 조각 같은 느낌을 준다. 그 때문이었을까? 영화는 처참한 흥행 실패를 기록했다. 솔직히 러닝타임 2시간 28분(감독판 기준)이 지루한 것도 사실이다. 나 또한 보는 내내 심드렁했었다.

  그렇게 영화는 끝나가고 있었다. 제이크는 잭의 아이를 낳은 수와 새로운 가정을 꾸린다. 그는 평범한 한 가장의 삶을 살아가려고 한다. 유일하게 남은 동료이자 친구, 흑인 다니엘도 자신의 길을 떠난다. 마침내 두 사람이 각자의 길을 걸어가기로 하고 인사를 나눌 때, 그들은 이제까지 불렀던 별명 대신 서로의 온전한 이름을 불러준다. 이 마지막 장면에 이르렀을 때, 나는 무언가 가슴에 묵직한 감정이 올라옴을 느꼈다. 

  제이크는 독일인 이민자의 후손이었고 다니엘은 흑인이었다. 그들은 미국 사회 내부의 비주류, 변방에 자리한 이들이었다. 전쟁이 일어났을 때 이 주변부의 사람들은 어느 쪽에 설 것인지 선택을 강요받았다. 제이크와 다니엘이 남부 게릴라군이 된 것은 정치적 신념이 아닌 인간적 의리 때문이었다. 이안은 껍데기로 남은 정치적 대의명분에 냉소를 보낸다. 'Ride with the Devil'에서 전쟁은 인간 내면의 감성적 영역에 자리한 우정, 연대 의식, 충성심과 긴밀한 접점을 가진다. 제이크와 다니엘의 작별 장면은 어떤 면에서 남북 전쟁에서 스러진 무수한 개인들에 대한 호명이다. 그것은 북부 연방이나 남부 연맹에 속하지 않는 불행한 주변인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렇게 이안은 자신의 실패한 영화에서 전쟁의 회색 지대에 자리한 사람들의 모습을 부각시킨다. 



*사진 출처: themoviedb.org



**이 영화에서 주인공 제이크와 잭은 미주리주 출신이다. 당시 미주리주는 노예제 찬성주였다. 미주리주의 싸움꾼들(Border Ruffian)은 인접한 켄터키주로 넘어가 노예제 폐지론자들 공격하는 일이 많았다. Ken Burns의 다큐 'The West(1996)' 4편에 그 이야기가 자세히 나온다.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1/12/pbs-8-ken-burns-west1996-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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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린 영화들 특집 2편


  말 그대로, 영화를 보고 글을 쓰려다가 쓸 말이 별로 없어서 그냥 버려둔 영화들 특집이다. 


Annette(2021), 레오스 카락스
Undine(2020), 크리스티안 페촐트
The French Dispatch(2021), 웨스 앤더슨


1. Leos Carax가 만들어낸 따로 국밥 뮤지컬, Annette(2021)

  Leos Carax의 '나쁜 피(1986)'와 '퐁네프의 연인들(1991)'을 본 것이 벌써 20년도 더 되었다. 그동안 그의 이름을 통 들을 수가 없었는데, 뮤지컬 영화 '아네트(2021)'에서 그의 이름을 발견했다. 그가 만든 뮤지컬은 어떤가 궁금했다. 영화를 보고 난 내 짧은 감상평은 이렇다. 뮤지컬 영화를 보고나서도 기억나는 뮤지컬 넘버가 없다는 것, 그 사실만으로도 '아네트'는 실패작이다. 주연인 아담 드라이버의 연기는 나쁘지 않지만, 그의 가창 실력은 일반인과 다를 것이 없다. 게다가 상대역인 마리옹 코티야르는 자기 목소리가 아닌 더빙을 했다.

  스탠드업 코미디언인 헨리는 유명 소프라노 앤과 불같은 사랑에 빠져 결혼한다. 곧 둘 사이에 딸 아네트가 태어난다. 그러나 앤이 자신의 경력을 이어가며 승승장구하는 것과는 달리 헨리의 코미디는 대중의 외면을 받는다. 정신적으로 불안해진 헨리는 앤과 떠난 요트 여행에서 예기치 않게 앤을 물에 빠져 죽게 만든다. 경찰 조사에서 살인 혐의를 벗고 홀로 아네트를 키우는 헨리. 그는 딸에게 노래를 부르는 재능이 있음을 알아챈다. 인터넷에 올린 아네트의 영상이 폭발적 조회수를 올리면서 헨리는 아네트를 내세워 본격적인 돈벌이에 나서는데...

  조지 큐커의 '스타 탄생(A Star Is Born, 1954)'에서 영화 감독 남편은 잘 나가는 배우 아내를 보며 알콜 중독으로 망가진다. 아내의 성공에 대한 시기와 질투심이 자기파괴적인 방향으로 나아간 '스타 탄생'의 주인공과는 달리, '아네트'의 헨리는 그 화살이 아내에게 향한다. 결국 헨리의 비뚤어진 분노와 내면의 욕망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을 망가뜨리고, 자기 자신마저 파멸로 이끈다. 이 어둡고 개연성 없는 서사에는 무엇보다도 현실 감각이 결여되어 있다. 자크 드미가 '쉘부르의 우산(1964)'에서 보여준 프랑스 뮤지컬의 현실성과 아름다움은 헐리우드 뮤지컬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카락스는 자신의 뮤지컬을 그러한 전통의 연장선상에 두고 싶어하지 않는다. 초현실주의적인 이미지로 가공된 세트들에서 배우들이 펼치는 공연에는 인생의 진실이나 생기 같은 것이 없다.

  아마도 우리는 카락스의 이 실패한 영화와 대조되는 지점에 밥 포시의 'All That Jazz(1979)'가 있음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죽음을 앞둔 뮤지컬 기획자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펼치는 놀라운 퍼포먼스에는 인생과 예술에 대한 성찰이 들어있다. 노래도, 연기도, 메시지도 마치 따로 국밥처럼 노는 '아네트'는 카락스의 소진된 영화적 재능을 확인하게 만든다. 한가지 더, 아담 드라이버는 앞으로 노래하는 연기를 하지 않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2. 크리스티안 페촐트의 평범한 신화적 변주, Undine(2020)

  "날 떠나면, 너 죽을 수도 있어. 무슨 말인지 알아?"
  (If you leave, you have to die. Do you understand?)

  이런 말을 내뱉는 여자의 표정에서 진심으로 살기가 느껴진다. Christian Petzold의 2020년작 'Undine'는 르네상스 시대 연금술사 Paracelsus가 만들어낸 물의 정령 운디네를 현대 시대로 불러낸다. 이 이야기의 가장 잘 알려진 버전은 덴마크 작가 안데르센의 '인어공주'이다. 바닷속에 사는 인어 공주가 인간 왕자를 사랑했다 버림받고 공기 속으로 사라지는 이야기. 그렇다면 크리스티안 페촐트가 영화로 만들어낸 '운디네'는 어떤 이야기일까?

  베를린의 역사에 대해 강의하는 운디네는 사귀던 남자로부터 이별 통보를 받는다. 운디네는 남자에게 그 일이 가져올 수 있는 비극에 대해 암시하지만 남자는 끝내 운디네를 떠난다. 잠수사 크리스토프와 뜻하지 않게 새로운 연애를 시작하게 된 운디네. 크리스토프와 함께 거리를 걷다가 운디네는 연인과 함께 있는 전 남친과 마주친다. 크리스토프는 운디네에게 전 애인에 대해 묻지만 운디네는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 그 일이 있은 후 운디네는 크리스토프의 사고 소식을 듣는다. 작업 중에 일어난 사고로 크리스토프는 식물 인간이 되어버렸다. 절망한 운디네는 그 모든 것을 자신의 탓이라 여기며 꼭 해야할 일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주인공 운디네가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설명하는 꽤나 긴 베를린시의 역사를 듣게 된다. 무슨 로맨스 영화에 '쓸데없는' 역사 강의가 저렇게나 길게 들어가는가, 하는 의문을 가질 법도 하다. 그럴 때는 좀 생각을 깊게 해볼 필요가 있다. 제작비는 한정되어 있고, 감독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어떻게든 효율적으로 영화 속에 집어넣고 싶어한다. '운디네'의 감독 크리스티안 페촐트는 왜 운디네의 입을 통해 베를린시의 유구한 역사 이야기를 들려주는가? 베를린은 늪지대를 메꾸어 만든 도시이다. 냉전 시대에 동서로 분단되기도 했던 이 도시에는 과거의 상처와 재건의 흔적이 공존한다. 운디네가 들려주는 베를린의 역사는 인간이 자연을 자신들의 방식으로 개발하고 변형시키면서 끊임없이 도시의 풍경을 만들어갔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베를린의 근원적 토대는 그것이 시작된 늪지대이다. 자연의 본질은 결코 변하거나 마멸되지 않는다. 주인공의 이름인 운디네는 물의 정령으로 자연의 일부분이다. 이 신화적인 존재는 절대적이고 완전한 사랑을 의미한다. 그런 운디네와 대비되는 인간의 사랑은 휘발적이며 가변적이다. 페촐트는 신화 속 운디네가 인간과 사랑할 때 일어날 수 있는 파국을 그려낸다. 영속적 존재가 꿈꾸는 지상에서의 완전한, 불변의 사랑. 영화 속 운디네는 그런 사랑을 고집한다. 이별을 통보하는 남자에게 죽음을 경고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별 후 운디네에게 크리스토프와의 새로운 사랑이 시작된다. 운디네는 사귀던 남자가 없었다는 거짓말까지 한다. 이미 운디네 자신이 티 한 점 없는 완전무결한 사랑의 기준에서 벗어나 버렸다. 크리스토프에게 닥친 재난을 운디네는 자신의 신실하지 못함에 대한 형벌로 받아들인다. 더이상 운디네는 이 지상의 도시에서 인간의 삶을 살아갈 수 없다. 운디네의 갑작스러운 사라짐은 실종이나 죽음이 아니라, 원래 속한 자연으로의 귀환이다. 본질적으로 다른 두 세계의 존재는 합일의 사랑에 도달하지 못한다.

  안데르센의 인어공주는 왕자의 사랑을 잃게 되자 인간의 형상을 유지하지 못하게 된다. 공주는 결국 공기의 요정이 되어 왕자의 새로운 사랑을 축복하며 지상을 떠난다. 영화 속 운디네는 크리스토프에게 생명과 사랑의 기억을 돌려준다. 영화의 끝부분에 크리스토프가 물속에서 건져낸 작은 잠수부 조각품은 운디네에게 그가 주었던, 둘 사이의 사랑의 징표이다.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추억은 남는다. 그렇게 페촐트는 운디네 설화를 현대 베를린이라는 시공간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변주한다. 신화에 대한 이러한 페촐트의 해석은 그리 심오하지도, 독창적이지도 않다. 그런 면에서 영화 '운디네'는 아쉬움을 남긴다.


3. 웨스 앤더슨의 과대포장 선물세트, The French Dispatch(2021)

  영화는 'The French Dispatch'라는 잡지사 편집장의 죽음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의 유언장에 따라 4편의 기사가 잡지에 실리고 잡지는 폐간의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바로 그 4편의 이야기가 영화의 뼈대를 이룬다. 1편은 잡지사가 있는 도시 Ennui-sur-Blasé의 변천사를 소개한다. 2편은 교도소에서 복역 중인 살인범 화가의 콘크리트 벽화 그림이 유명 미술관에 걸리게 된 유래를 설명한다. 3편은 아주 시시한 학생 시위의 주모자가 어떻게 혁명 정신의 상징이 되었는가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준다. 마지막 4편은 경찰청장 아들의 유괴 사건에 얽힌 외국인 요리사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웨스 앤더슨의 이 영화에는 등장 인물들도 많고, 유명 배우들도 꽤 나온다. 1편에서 자전거 타고 도시를 안내하는 이는 오웬 윌슨, 2편에서 죄수 화가를 연기한 사람은 베니시오 델 토로, 그리고 그 모델 역은 레아 세두가 연기한다. 3편에서 시위에 얽힌 뒷이야기를 들려주는 기자는 프랜시스 맥도먼드이다. 잡지사 편집장 역은 빌 머레이가 맡았다. 이 쟁쟁한 배우들을 섭외해서 영화를 찍는 웨스 앤더슨의 마당발 인맥이랄지, 친화력이 대단해 보이기는 한다. 그런데 그런 능력과는 별개로 영화 감독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영화를 '잘 찍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The French Dispatch'의 작품성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앤더슨은 특파원의 눈을 통해 낯선 나라에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한다. 1편에서 도시의 역사를 들려주는 오웬 윌슨은 마치 그곳 주민처럼 보인다. 외국인이지만 오랜 시간을 그곳에서 보내면서 그 땅과 사람들에게 애정을 갖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3편에 나오는 프랜시스 맥도먼드가 연기한 독신 여기자는 중년의 위기에서 오는 외로움과 직업 윤리를 지키는 것 사이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4편에서 경찰청장의 납치된 아들을 빼오기 위해 비밀 임무를 받고 투입된 요리사는 동양인이다. 그는 납치범들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독이 든 음식까지 함께 먹는다. 취재하는 특파원은 영웅적인 행동이라며 놀라워한다. 하지만 요리사는 외국인으로서 자신에 대한 주변의 기대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했다고 털어놓는다.

  영화 'The French Dispatch'는 파리 거주 외국인 앤더슨의 프랑스 별곡 같다. 정교하게 구성된 영화의 세트는 앤더슨의 심미안을 입증하지만 거기에는 알맹이가 없다. 이 영화의 진정한 학습적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이들은 영화학도가 아니라, 미술을 공부하는 이들일 것이다. 그 어떤 정서적 울림도 없는, 예쁜 화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영화. 이것은 마치 안팔리는 과자들이 들어있는 멋진 포장의 종합 선물세트를 연상케 만든다. 웨스 앤더슨이 '내 스타일이라구', 하고 말한다면야 '아, 그렇군' 할 밖에. 앤더슨 영화의 팬이라면 반복되고 변주되는 그의 스타일을 이 영화에서 확인하고 좋아할 수도 있다.


*사진 출처: themoviedb.org







**버린 영화들 특집 1편

Leave No Trace(2018)외 4편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2/02/leave-no-trace2018-bait2019.html
 


*** 영화 '스타 탄생(A Star is Born, 1937/1954)' 리뷰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1/05/star-is-born-19371954.html

 


****그림 출처: artvee.com

George Frederic Watts(1817-1904), Und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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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elfast는 북아일랜드의 동쪽에 위치한 도시이다. 도시의 이름은 '강의 입구'라는 아일랜드어에서 유래했다. Kenneth Branagh는 북아일랜드 벨파스트 태생으로 프로테스탄트 가정에서 자라났고, 9살 무렵에 그의 가족은 영국으로 이주했다. 9살 소년 버디가 주인공인 영화 '벨파스트'에서 브래너는 자신의 유년 시절을 펼쳐놓는다. 영화는 현재의 벨파스트 발전상을 보여주는 컬러 화면에서 1969년 8월의 과거로 들어가면서 흑백으로 전환된다. 이러한 브래너의 선택은 매우 탁월하고 효과적이었다. 브래너는 흑백 화면이 실제의 현실과는 다르지만 훨씬 더 사실적으로 보이게 만들기 때문에 그렇게 촬영했다고 밝혔다(출처: ew.com과의 인터뷰). 그리고 그의 말대로 관객은 이 흑백 영화 속의 등장인물들이 놀랍도록 생생하고 핍진성있게 다가옴을 느낀다. 그렇다면 1969년 8월, 소년 버디와 가족들의 삶에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버디는 집앞에서 친구들과 신나게 놀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갑자기 시위대가 몰려들고 화염병과 돌덩이가 날아든다. 버디의 집을 비롯해 근처의 집들은 파괴되고 불탄다. 도대체 누가 왜, 이런 일을 벌인 것일까? 1969년 8월 12일부터 16일 사이에 북아일랜드에서는 가톨릭교도 주민들과 프로테스탄트 주민들 사이에 극렬한 폭동이 발생했다. 벨파스트는 그 중심 도시였다. 1922년, 아일랜드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했지만 북아일랜드는 영국령으로 남게 되었다. 이 지역에 영국의 프로테스탄트 주민들이 점차적으로 이주해 오면서 종교적, 정치적 갈등이 심화되기 시작했고, 그것은 1969년을 기점으로 폭발한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 버디의 가족은 프로테스탄트 교도이다. 폭동의 기간 동안 양측은 서로의 집과 건물을 테러의 대상으로 삼았다. 폭동은 영국군이 개입하고 나서야 겨우 진정될 수 있었다.

  영화는 버디의 눈으로 바라본 어른들의 세계와 시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9살 소년이 자신을 둘러싼 복잡한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쓰는 도구는 TV와 영화이다. 게리 쿠퍼가 나오는 'High Noon(1952)'과 같은 서부극 영화는 버디에게 선과 악으로 분명하게 나뉜 세계를 인지시킨다. 버디에게는 프로테스탄트인 자신의 가족들을 박해하는 가톨릭계 주민들은 서부극의 악당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물론 영화 속에서 그것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영화는 북아일랜드의 첨예한 정치적 사건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그것을 소년 버디의 시점에서 관조적으로 바라보게 한다. 좋게 말하면 관조적인 것이지만 비판적으로 본다면 논쟁을 비켜가는 영리한 수법이다.

  TV 서부극과 영화관에서 가족과 함께 보는 즐거운 모험 영화를 통해 세상을 알아가는 버디. 그러는 사이에 조금씩, 소년을 둘러싼 세계는 바뀌어 간다. 버디는 영국으로의 이주를 두고 벌이는 부모의 말다툼을 목격한다. 카메라는 그 장면에서 집안으로 들어가는 버디를 불안하게 흔들리는 핸드 헬드로 따라간다. 하나의 쇼트에 이야기를 나누는 어른들과 그것을 무심한 표정으로, 하지만 주의깊게 듣는 버디의 얼굴이 함께 담기기도 한다. 아이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렇게 어른들과 주변의 세계를 탐색하고 이해해 나간다.

  캐네스 브래너는 '벨파스트'가 역사 영화가 아니라 가족의 이야기임을 강하게 주지시킨다. 버디는 생의 황혼기에도 서로를 아끼고 보듬는 조부모의 모습을 바라보며 미소짓는다. 버디의 부모는 가족의 미래를 두고 서로간의 이견이 있기는 하지만 사랑으로 긴밀히 결합되어 있다. 9살 소년은 풋풋한 사랑의 감정도 예쁜 여자친구 캐서린에게서 느낀다. '1969년의 벨파스트'라는 시대적 배경이 없다면 이 영화는 그저그런 가족 드라마가 되었을 것이다. '벨파스트'라는 지역의 역사성은 어린 버디에게 여자 친구와의 이별을 강제하게 만드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버디의 할머니가 영국으로 떠나는 아들 내외와 손주 버디를 따라가지 않고 그곳에 남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생의 동반자였던 남편이 세상을 뜨고 오롯이 홀로 살아내야 함에도 할머니는 자신의 고향땅을 떠날 수 없다. 그곳에 살아온 삶의 모든 것이 있기 때문이다. 왜 분쟁 지역의 사람들은 그곳을 쉽게 떠나지 못하는가? 아마도 주디 덴치가 연기한 버디 할머니의 선택이 그에 대한 답이 될 것이다.

  영화 '벨파스트'는 벨파스트라는 지명이 가진 역사성과 의미에 대해 그 어떤 것도 보여주지 못한다. 캐네스 브래너의 이 영화는 피로 얼룩진 북아일랜드의 현대사 한 부분에 설탕물을 입힌 안온한 가족, 성장 드라마처럼 보인다. 역사적 사실을 첨언하자면 이러하다. 1969년 8월의 폭동 기간 동안 압도적 피해를 입은 지역은 개신교 주거 지역에 둘러싸인 가톨릭 교도들의 주거지였다. 폭동의 여파로 벨파스트에서 이주한 이들은 가톨릭 교도들이 1505명, 프로테스탄트가 315명이었다. 가톨릭 교도들이 아예 아일랜드로 이민을 떠난 것에 비해 프로테스탄트들은 인근 도시로 이사했다(출처 en.wikipedia.org). 어린 아이의 관점에서 바라본 이야기에 무얼 그리 정확하고 대단한 역사성을 바라느냐, 는 질문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의도적으로 회피하고 뭉뚱그려서 투영하는 과거의 기억이 사실 그 자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결국 문제는 이런 것이다. 영화가 역사적 사실을 다룰 때, 아이의 관점을 채택했다 하더라도 성찰적 사유가 들어있는가에 관한 문제. '벨파스트'는 그러한 점에서 본다면 매우 실망스러운 작품이다. 카를로스 사우라가 '까마귀 기르기(Raise ravens, 1976)'에서 보여준 은유적이지만 명징한 현실 인식과 역사성을 보라. 8살 소녀 아나의 이야기를 통해 사우라는 독재자 프랑코의 폭압적 지배를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북아일랜드의 역사적 상흔으로 가득한 벨파스트의 과거와 현재를 보려는 이들은 캐네스 브래너의 이 영화가 아닌 'I Am Belfast(2015)'를 보는 것이 더 낫다. Mark Cousins가 만든 이 다큐는 도시를 노파로 의인화해서 그의 입을 통해 벨파스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린넨 제조 산업과 조선소로 흥했던 벨파스트의 과거, 1969년 이후 극심해진 갈등과 폭력, 오늘날에도 여전히 치유되지 않고 남아있는 분쟁의 상처에 이르기까지 다큐는 시적인 방식으로 벨파스트라는 도시를 조망한다.

  개인적으로는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 영화임에도 '벨파스트'에서 괜찮았던 점은 버디 역을 연기한 Jude Hill의 존재였다. 이 귀여운 꼬마 배우는 정말이지 영화를 스스로 살아 움직이게 만든다. 영화가 여기저기서 받은 상들을 어떻게 나눌 수 있다면, 그 절반은 이 친구의 몫으로 주어야 한다. 주드 힐은 역사적 성찰이 결여된, 안일하고 평범한 회고담을 한 소년의 아름다운 성장 드라마로 만들어 버린다. 캐네스 브래너가 이 놀라운 아역 배우를 만난 것은 큰 행운이었다.


*사진 출처: themoviedb.org



**사진 출처: en.wikipedia.org



***2022년 아카데미상 수상작 리뷰

감독상, The Power of the Dog(2021)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2/01/ashik-kerib1988-power-of-dog2021.html

국제 장편 영화상, Drive My Car(2021)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1/12/drive-my-car-2021.html
 

****아이의 눈으로 본 세상
 
The Long Day Closes(1992), 테렌스 데이비스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1/07/long-day-closes1992.html

가을이 올 때(秋立ちぬ, The Approach of Autumn, 1960), 나루세 미키오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2/03/approach-of-autumn-1960.html

감마선은 금잔화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The Effect of Gamma Rays on Man-in-the-Moon Marigolds, 1972), 폴 뉴먼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1/05/effect-of-gamma-rays-on-man-in-moon.html

남쪽(El Sur, 1983), 빅토르 에리세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1/09/el-sur-1983.html

이반의 어린 시절(Иваново детство, 1962),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1/05/196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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