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그 사건의 진실을 알지 못했다."
  (No one really knew the truth of the matter.)
  Jean Le Coq, Parisian lawyer, 14세기


  미국의 중세 문학 연구자인 Eric Jager는 14세기 프랑스의 연대기 작가인 Jean Froissart의 책에 매혹되었다. 1386년, 프랑스 파리에서 있었던 중세 시대의 마지막 결투를 기록한 책이었다. 에릭 재거는 연대기 작가가 펼쳐놓은 이야기를 따라 자신만의 학구적 여정을 시작했다. 무려 10년에 걸쳐 그는 두 명의 남자와 한 여자,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시대에 대해 탐구했다. 그런 후에 낸 책이 'The Last Duel: A True Story of Crime, Scandal, and Trial by Combat in Medieval France(2004)'였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마지막 결투: 중세 프랑스에서 있었던 범죄와 스캔들, 그로 인한 싸움이 촉발한 재판의 실제 이야기'가 되겠다. 팔순을 넘긴 리들리 스콧 감독은 그 책을 영화로 만들었다. 영화 'The Last Duel(2021)'은 연대기적 구성에 의해 기술된 책과는 다른 방식을 취했다. 결투 사건의 중요한 세 인물, 장 드 카루주, 자크 르 그리, 마그리트의 시점에서 사건이 각각 펼쳐진다.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구로사와 아키라의 '라쇼몽(羅生門, Rashomon, 1950)'을 떠올리게 된다.


  'The Last Duel'의 뼈대를 이루는 사건은 이러하다. 14세기 프랑스, 장 드 카루주와 자크 르 그리는 피에르 백작을 주군으로 섬기는 가신들이다. 둘은 친한 친구 사이였으나 주군의 총애가 르 그리에게 치우치면서 멀어졌다. 그런 상황에서 카루주는 아내 마그리트로부터 르 그리에게 강간당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분노한 카루주는 행동에 나선다. 당시 봉건제 치하에서 지역 사법 재판의 관할권은 영주에게 있었다. 르 그리를 총애하는 피에르 백작은 카루주가 제기한 소송을 가볍게 기각한다.

  생의 대부분을 전장에서 보낸 50대 전사는 그대로 물러앉지 않았다. 파리로 가서 국왕을 알현하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사건의 진실을 알아내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결정적 증거의 유무였다. 국왕의 명에 따라 열린 재판에서 마그리트는 분명하고 일관되게 자신이 입은 피해를 증언했다. 그에 대해 자크 르 그리는 알리바이를 대며 그 모든 것은 자신을 시기한 카루주와 그 아내의 모함이라고 맞섰다.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책의 저자 에릭 재거는 마그리트에 대한 신뢰가 책을 쓰게 쓰게 만들었다고 밝혔다. 그리고 리들리 스콧 감독도 마그리트의 증언에 마음이 기운듯 하다. 영화 속 마그리트의 이야기에 해당하는 세 번째 장에 'The Truth'라는 소제목을 붙인 것을 보면 그렇다.

  카루주가 보기에 자크 르 그리는 주군에게 아첨하는 소인배이며, 아내 마그리트를 강간한 천인공로할 범죄자이다. 자크 르 그리의 입장에서는 카루주와의 애정없는 결혼 생활에 지친 마그리트와 사랑에 빠져 합의된 관계를 맺은 것 뿐이다. 르 그리의 속마음을 그려낸 영화의 그 부분은 에릭 재거의 책과는 다르게 각색되었다. 재거의 책은 장 프와사르가 기록한 연대기를 바탕으로 하는데, 거기에는 르 그리의 변호인이었던 Jean Le Coq의 상세한 기록이 나와있다. 르 그리는 일관되게 자신의 범죄 혐의를 부인했다. 그러므로 르 콕은 자신의 의뢰인을 의심하면서도 확신은 하지 못했다. '아무도 그 사건의 진실을 알지 못했다'고 쓴 데에는 그런 이유가 있었다.   

  한 명은 아내가 당한 범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고, 한 명은 그것이 강간이 아닌 사랑이라고 주장하고, 사건의 당사자인 여성은 명백한 강간이라고 말한다. 영화 'The Last Duel'은 관객들로 하여금 안개 속에 있는 진실의 실체를 탐색하도록 만든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분할된 이야기 구성이 그다지 효용성이 없다는 데에 있다. 리들리 스콧은 그것이 뭔가 대단하고 의미있는 시도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 누구도 하지 못했던 일을 처음으로 해본 이는 선구자('라쇼몽'의 구로사와 아키라)가 되지만, 그걸 그대로 따라하면 어설픈 짝퉁이 된다. 스콧의 영화에는 먼저 시도한 이와의 독창적인 차별점이 없다.

  영화 'The Last Duel'은 맥아리 없이 변주되는 이야기와 그저그런 볼거리로 채워진 기사 무용담이 뒤섞여 있다. 이 무너져 내리는 서사의 문제점은 어디에서부터 기인하는 것일까? 가장 근본적인 이유를 찾는다면 시나리오이다. 벤 애플렉과 맷 데이먼은 남자의 관점에서 두 챕터의 시나리오를 썼고, 여성 시나리오 작가인 Nicole Holofcener는 마그리트 부분을 담당했다. 일부러 사건을 더 모호하게 만들기 위해 책에는 없는 부분이 덧대어 지면서 영화는 산으로 간다. 예를 들면 르 그리와 마그리트가 연회장에서 대화를 나눈 장면, 르 그리가 시장에서 마그리트를 우연히 보게 되는 장면, 마그리트가 가슴이 깊게 파인 드레스 때문에 남편에게 질책을 당하는 장면, 마그리트가 르 그리를 미남이라고 말했다는 마그리트 친구의 증언 같은 것들. 실제 연대기의 기록에는 마그리트와 르 그리는 공식적으로 단 한 번 만났을 뿐이며, 영화 속 마그리트의 친구가 한 증언 같은 것은 없다.

  영화를 보고 나서 나는 사건의 정확한 기록이 궁금해졌다. 그래서 원작인 에릭 재거의 책을 찾아 보았다. Random House의 영문본은 약 83페이지 분량이다(이 책은 번역본이 작년에 출간되었다). 의외로 글이 술술 읽히고 흡인력이 있다. 책은 영화 속 등장인물들의 면면과 시대 상황을 입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게 해준다. 영화에서 맷 데이먼이 연기한 기사 장 드 카루주는 그야말로 치열한 전장에서 구른 백전노장이다. 그는 매우 거칠고 직설적인 인물이었다. 아내의 지참금으로 받을 몫이었던 땅 '오누 르 포콩(Aunou-le-Faucon)'을 두고 주군 피에르 백작과 벌인 소송전은 그 단적인 예이다.

  그의 장인 Thibouville은 왕위 계승권자들의 다툼에서 샤를 5세의 반대편에 섰던 이였다. '배신자'라는 오명이 있는 그의 딸 마그리트를 카루주가 아내로 맞아들인 이유는 명확했다. 지참금으로 받을 재산이었다. 오누 르 포콩은 아내 몫으로 남겨졌지만, 피에르 백작은 그것을 탐냈다. 백작은 정당하게 값을 치루고 땅을 구입했다. 그리고 그것을 르 그리에게 선물로 주었다. 카루주의 르 그리에 대한 원한은 아마 거기에서부터였을 것이다. 사실 이전까지만 해도 카루주의 첫 부인에게 얻은 아들의 대부가 르 그리였을 정도로 두 사람은 친밀했다. 이후 첫 부인과 아이들이 불운하게 세상을 뜨면서 카루주는 심리적 타격을 받았다.

  티부빌의 딸 마그리트는 젊고 아름다웠으며, 무엇보다 카루주에게 땅과 돈을 가져다줄 수 있었다. 그런데 아내의 지참금이 될 노른자위 땅이 백작에게 넘어가자 카루주는 주군을 상대로 소송을 벌였다. 결과는 패소였다. 봉건제 사회에서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주군에게 반기를 드는 가신의 행태는 비우호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카루주는 땅을 억울하게 빼앗겼다고 생각했다. 거기에 더해 집안 대대로 내려온 벨렘 성의 대장직이 르 그리에게 넘어갔다. 피에르 백작은 카루주의 아버지가 죽은 후 그 직위를 카루주에게 주지 않았다. '기사'였던 자신보다 낮은 지위에 있었던 르 그리는 주군의 총애를 바탕으로 차츰 영향력을 키워갔다. 그런 상황에서 아내로부터 들은 이야기는 카루주를 격노하게 만들었다.

  르 그리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자신과 적대적 관계에 있었던 카루주의 아내를 범했는지는 알 수 없다. 영화에서처럼 그는 죽음의 순간까지도 자신의 혐의를 부인했다. 카루주는 불 같은 성미의 사람이었고, 르 그리에 대한 자신의 불편한 감정을 그대로 표출했을 것이다. 아마도 르 그리는 카루주에게 모멸감을 안겨주기 위해 마그리트에 대한 범죄를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영화 속 르 그리는 마그리트에게 그 일을 발설하면 남편이 당신을 죽일 거라며 협박한다. 마그리트도 자신의 남편이 거친 성품의 사람임을 알았다. 하지만 여자는 결코 입을 다물고 있을 수 없었다. 우리의 눈에 무지막지하게 보이는 중세 시대에도 강간은 중범죄였다. 그것을 고발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여성들은 한정되어 있었고, 마그리트는 그럴만한 위치에 있었다.

  하지만 소송을 하는 일은 평생을 따라다닐 낙인, 가문의 명예, 태어날 아기(마그리트는 그 사건 이후에 임신 사실을 알게 된다)의 미래, 그리고 부부의 목숨을 담보로 했다. 영화의 마지막 결투 장면에서 마그리트는 족쇄에 묶여 남편과 르 그리의 결투를 본다. 그 싸움에서 남편이 지면 마그리트는 무고죄로 화형을 당할 운명이었다. 당시 사람들에게 결투는 신의 뜻을 입증하는 결정적 증거였다. 그것이 즉각적으로 생명을 앗아갈 수 있다는 점에서 사법부는 함부로 결투를 결정할 수 없었다. 사건의 진상을 두고 양측의 진술이 엇갈리는 가운데 카루주는 최후의 수단으로 결투를 제청했다. 그즈음, 샤를 5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17살의 샤를 6세는 영국을 상대로 원정길에 나섰다. 사법부는 왕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하루빨리 재판을 마무리짓고 싶어했다. 결국 카루주의 청이 받아들여졌고, 그것은 중세 시대의 마지막 결투가 되었다(물론 그 이후에도 결투는 있었지만 공식적인 재판에 의한 것이 아니라, 지방 영주의 관할 지역에서 일어났다).

  영화는 연대기의 기록을 충실히 재현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당시 기사들의 투구가 얼굴 전면을 감싸도록(부상의 위험을 생각하면 당연하다)되어 있는 것과는 달리, 영화는 얼굴 반면이 노출되도록 찍었다. 주연 배우들의 얼굴이 드러나야 박진감이 넘치기 때문이다. 결투에서 누가 승자가 될지 가늠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카루주가 르 그리에 비해 전장터에서 보낸 시간이 많았지만, 기록은 르 그리가 카루주에 비해 더 큰 체격 조건을 가졌다고 되어있다. 결국 승리의 여신은 카루주에게 미소를 지었다. 결투를 보기 위해 프랑스 전역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심지어 샤를 6세는 원정을 포기하고 파리로 돌아왔다. 왕은 어린 왕세자를 병으로 잃은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였다.

  영화에 나오지 않은 르 그리의 최후는 이러하다. 흙바닥에 널부러진 르 그리의 시신은 말에 끌려가 'Montfaucon'의 교수대에 내걸려졌다. 몽포콩은 교수형된 시신이 내걸리는 곳이었다. 르 그리의 패배는 그가 저지른 범죄에 대한 신의 처벌로 받아들여졌다. 결투에서 승리한 카루주는 왕의 신임을 받고 왕실의 주요 일원이 된다. 이 불굴의 용사는 다시 한 번 주군 피에르 백작을 상대로 오누 르 포콩 땅에 대한 소송을 제기한다. 소송은 패배했다. 어떤 면에서 그가 가문의 명예와 목숨을 내걸고 결투까지 하게 된 것은 아내 마그리트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한 면보다는, 자신의 것(그 시대에 아내는 남성의 재산, 소유물로 간주되었다)을 건드린 데에 대한 보복의 집념이 더 커보인다.

  이후 이 사건은 여러 세대에 걸쳐 다르게 읽히고 변조되었다. 후대의 호사가들과 문인들에게 르 그리는 무고한 희생자로 여겨졌다. 카루주와 르 그리의 '마지막 결투'는 중세 시대의 무지와 악습을 부각시키는 대표적인 사건이 되었다. 마그리트는 남편을 부추겨 죄없는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게 만든 '간악한 여자'라는 오명을 뒤집어 썼다. 프랑스의 계몽주의자 디드로와 달랑베르가 편집한 '백과사전(Diderot and d'Alembert's Encyclopedie, 1707)'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것은 그대로 이어져 1992년에 중세  연구자 R. C. Famiglietti도 자신의 저서에서 마그리트를 간교한 베갯머리송사의 주인공으로 묘사했다. 에릭 재거의 책은 그와는 반대되는 지점에서 마그리트의 입장을 옹호한다.

  영화 'The Last Duel'은 흥행에서 참패했다. 이를 두고 리들리 스콧은 '스마트폰에 코를 박고 사는 요즘 애들(the box office failure is the fault of young people and their cellphones, he says: 출처 variety.com) 때문'이라고 탓했다. 밀레니얼 세대에 대한 노감독의 경멸이 느껴지는 대목이지만, 이런저런 이유를 다 떠나 그는 영화를 잘 만들지 못했다. '왜 내가 좋은 영화 만들었는데 알아주지 않는 거냐'고 볼멘 소리를 해도 별로 공감이 되지 않는다. 정말이지 원작이 된 책이 훨씬 재미있게 읽힌다면야 말 다한 거 아닌가.

  그럼에도 영화 'The Last Duel'은 잊혀져 있었던 중세 시대 여성 마그리트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마그리트는 자신의 모든 것을 내걸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리고 그것은 상대편의 변호인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우리는 다시 르 그리의 변호인 르 콕에게로 돌아간다. 그는 '아무도 그 사건의 진실을 알지 못했다'고 썼다. 하지만 그가 세세하게 남긴 기록에서 후대의 사람들은 한 여인의 용기있는 외침과 불의에 저항하는 의지를 읽는다. 이 여자를 둘러싼 상황은 절대적으로 불리했다. 배신자의 딸이라는 불리한 오명, 가문과 남편을 위기에 몰아넣었다는 비난, 태어날 아이가 평생 지고갈 삶의 무게, 그 모든 것을 알면서도 마그리트는 침묵하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여자는 '피해자(victim)'가 아닌 '생존자(survivor)'가 되었다. 그것은 기나긴 고통의 여정이었다. 영화를 보는 이들은 마그리트가 들려주는 진실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사진 출처: themoviedb.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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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과 정서, 나루세 미키오가 건네는 유년의 편린



  나루세 미키오 감독은 매우 과묵한 사람이었다. 그와 여려 편의 영화에 함께 한 여배우 타카미네 히데코는 후일 이 감독에 대해 회고하기를 '좀 무서웠다'고 했다. 주연 배우에게조차 그는 별다른 연출 지시를 하지 않아서, 타카미네 히데코는 자신의 감을 믿고 그냥 연기하는 수 밖에 없었다. 젊은 시절의 짧은 결혼 생활과 이혼, 그리고 꾸준히 영화 경력을 이어간 것 이외에 그의 사생활에 대해 알려진 것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런 그의 자전적 편린이 들어있는 영화가 '秋立ちぬ(Autumn Has Already Started, 1960)'이다. 제목을 우리말로 번역하면, '가을이 다가온다' 쯤이 될 것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12살 소년 히데오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뜨거운 한여름, 도쿄에 이제 막 도착한 엄마와 아이를 보게 된다. 히데오는 엄마의 손에 이끌려 삼촌집을 찾아 간다. 허름한 뒷골목에서 식료품 가게를 하고 있는 삼촌. 엄마는 히데오를 맡기고 근처 여관에 일자리를 얻는다. 가장이 세상을 뜬 후, 이 모자(母子)는 살던 나가노를 떠나 도쿄에 왔다. 팍팍한 숙모 아래에서 조금 눈칫밥을 먹기는 해도, 사촌들은 히데오에게 잘 대해 준다. 동네 애들은 히데오를 촌뜨기라며 무시하고 텃세를 부리지만 히데오는 의연하다. 우연히 알게 된 준코라는 여자 아이는 히데오에게 호감을 보인다. 알고 보니 엄마가 일하는 여관 여주인이 준코의 엄마다.

  러닝타임 79분. 이 소품 같은 흑백 영화는 아이들이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나루세 미키오는 이 영화를 제작하기 이전에 '내 마음의 휘파람(コタンの口笛, 1959)'에서 아이들과 작업한 적이 있다. 말수가 적었던 감독이 일일이 아이들에게 연출 지시를 하는 일은 익숙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듬해인 1960년에 '가을이 올 때'를 만든 것을 보면, 감독 본인이 꼭 만들고 싶었던 모양이다. 영화 속 아이들의 연기는 요즘 아역 배우들이 보여주는 자연스러움과는 거리가 좀 있다. 어색한 구석이 있기는 해도 히데오와 준코가 전달하는 정서의 깊이는 충분히 무리없이 전달된다.

  히데오에게는 모든 상황이 낯설기만 하다. 가까운 곳에 있다고는 하나 엄마와 떨어져 지내야 하고, 같은 방을 쓰는 사촌 형이 밤늦게까지 기타 치며 노래부르는 것도 참아야 한다. 밥값이라도 하려면 가게 배달일도 도와야 한다. 성질 나쁘고 재수없는 동네 녀석들은 시덥잖게 괴롭히려고 든다. 그나마 히데오에게 유일한 위로가 되는 건 고향에서 갖고 온 큰 하늘소이다. 녀석을 보면 마음이 편해진다. 그런데 어느 날, 작은 상자집에 있던 하늘소가 사라졌다. 히데오는 그새 친해진 준코의 학교 숙제를 위해 하늘소를 빌려주기로 약속했던 터였다. 사촌형은 쉬는 날 도쿄 근교 숲으로 가서 하늘소를 잡게 해주겠다고 약속한다.

  영화는 아이들의 눈으로 바라본 어른들의 세계를 펼쳐 보여준다. 히데오가 보기에 쥐꼬리만한 매상으로 겨우 먹고 살아가는 삼촌은 늘 허허실실, 팔다 남은 채소 반찬이 오르는 지겨운 식탁에서 맥주만 들이킨다. 깍쟁이 숙모는 히데오가 그대로 여기 눌러 살까 걱정이다. 사촌 형과 누나는 돈 안되는 가게 팔고 좀 번듯한 곳으로 이사가자고 삼촌에게 볼멘 소리를 하지만 별 소용이 없다. 부잣집 딸처럼 보이는 준코에게도 고민이 있다. 다른 도시에 사는 늙은 아빠는 가끔 오는데, 이번엔 나이든 언니 오빠를 데려와서는 형제라며 인사를 시킨다. 가만 보니까 아빠가 데려온 그 아이들은 자신을 무척 싫어하는 것 같다. 왜 아빠는 집이 두 군데에 있는지 엄마에게 물어보니 성질만 낸다.

  나루세 미키오는 아이들의 이야기 속에 1960년 도쿄의 풍경을 펼쳐 놓는다. 한국 전쟁으로 인한 특수 덕에 일본 경제는 고도 성장기에 진입한다. 히데오와 준코가 구경하는 번화한 백화점 안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하늘소를 잡으러 사촌형과 함께 나간 교외의 숲에는 젊은 남녀들이 시시덕거리며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 회색빛의 도시에는 고향의 하늘소 같은 건 없다. 백화점 옥상에서 아이들이 내려다본 도쿄 시내는 빽빽한 고층 건물의 숲이다. 히데오가 보고 싶은 푸른 바다는 보이지 않는다. 히데오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준코는 늘 타던 택시를 대절해 바닷가로 간다. 허허벌판 같은 바닷가 근처 공터에 곧 아파트 단지가 들어설 거라고 준코는 일러준다.

  도쿄에서 보내게 된 히데오의 유년 풍경은 어딘지 모르게 비어있다. 사라진 하늘소의 작은 상자집은 열려있고, 엄마는 여관 손님과 어디론가 떠나버렸다. 할머니가 보낸 사과 상자에서 발견한 하늘소를 준코에게 주려고 했더니, 여관 앞에는 이삿짐 차가 서있고 그 안은 텅 비어 있다. 아이는 외롭고 막막한 마음을 어찌할 줄 모른다. 전에 가봤던 백화점 옥상 난간에 하늘소를 올려놓고 도시를 바라볼 뿐이다.

  히데오가 느꼈을 그리움과 외로움은 스크린 너머로 바람처럼 스며든다. 나루세 미키오는 그렇게 자신의 영화적 역량을 입증한다. 그는 영화를 통해 정서를 전달하는 데에 탁월한 능력을 지닌 이였다. '나루세 미키오, 오즈 야스지로의 구식 영화 따위를 보는 건 시간 낭비다'라고 폄하하는 이들도 있다. 아마도 아직 너무 젊거나, 실패를 경험해본 적이 없는 이들일 것이다. 어떤 영화들은 그것을 온전히 이해하기까지 인생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 나는 영화 속 비어있는 풍경을 가득 채우고, 마침내 흘러 넘치는 정서에 가슴이 뻐근해졌다. 이 영화를 만나는 이들은 나루세 미키오가 겪었던 유년의 편린을 그와 공유하게 된다.


*사진 출처: http://kookaimorita.livedoor.blog





**나루세 미키오의 영화 리뷰

아내(妻, Wife, 1953)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1/07/wife-1953.html


산의 소리(山の音, The Thunder of the Mountain, 1954)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2/03/1954.html


만국(晩菊, Late Chrysanthemums, 1954)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1/08/late-chrysanthemums-1954.html


흐르다(流れる, Flowing, 1956)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1/07/flowing-1956.html


안즈코(杏っ子, Little Peach, 1958)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2/03/little-peach-1958.html


내 마음의 휘파람(コタンの口笛, 1959)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1/07/1959.html

여자의 자리(女の座, A Woman's Place, 1962)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1/07/womans-place-1962.html

여자의 역사(女の歴史, A Woman's Life, 1963)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1/07/womans-life-196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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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영화의 결말 부분이 들어 있습니다.


  '안개가 다가오고 있었다.'
  (The mist was coming)


  알프레드 히치콕의 '새(The Birds, 1963)'는 이전까지 사람에게 무해한 존재로 인식되던 '새'를 공포 영화의 주인공으로 둔갑시킨다. Frank Darabont의 2007년작 'The Mist'에서는 안개가 죽음을 몰고 온다. 정확히는 안개와 함께 온 괴생명체들이 한 마을을 지옥으로 만들어 버린다. 이 영화의 원작은 Stephen King이 1980년에 발표한 동명의 소설이다. 프랭크 다라본트 감독은 원작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수정해서 영화를 만들었다. 그렇다면 소설과 영화는 어떻게 다를까?

  메인주의 작은 마을, 화가 데이비드에게는 아내와 5살 아들 빌리가 있다. 심한 뇌우로 마을은 쑥대밭이 되고, 불안해진 마을 사람들은 식료품을 쟁여놓기 위해 동네 슈퍼마켓에 모여든다. 데이비드도 아들과 함께 마트에 들른다. 그런데 한 남자가 피를 흘리며 들어온다. 남자는 위험하다며 마트를 나가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밖은 순식간에 밀려든 안개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다소 괴팍하고 신경질적인 중년 부인 카모디는 이건 죽음의 징조라며 혼자 중얼거린다.

  영화 '미스트'에서 공포의 대상은 안개 그 자체가 아니라 안개 속의 괴생명체들이다. 거대한 촉수와 빨판이 달린 괴물은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고 죽인다. 마트 안의 사람들은 이 괴물들과 대적하는 동안 두 부류로 나뉜다. 데이비드를 비롯해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이들은 총과 빗자루, 화염방사기로 괴물과 사투를 벌인다. 반면 카모디 부인이 주축이 된 일군의 무리는 일그러진 종교적 신념에 휩쓸린다. 영화는 카모디 부인을 비뚤어진 광신도로 묘사한다. 하지만 원작 소설 속의 카모디는 기이한 골동품 가게를 운영하면서 일종의 주술사적 위치를 점하고 있는 영향력 있는 인물이다.

  '미스트'는 어떻게 공포가 사람의 내면을 망가뜨려가는지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묘사한다. 적대적인 타자는 괴생명체가 있는 마트 외부 뿐만 아니라 내부에도 존재한다. 눈에 보이는 물리적 존재로서 괴물이 사람들에게 생명의 위협을 가한다면, 카모디 부인은 자신의 잘못된 광신으로 사람들을 미혹시킨다. 난데없이 등장한 안개와 괴물들은 초자연적 현상처럼 보인다. 이해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상황에서 사람들은 공포에 휩쓸리고 인내심은 곧 바닥이 난다. 그 틈을 비집고 맹목적 신념이 들어선다.

  공포는 광기와 일탈 행위로 이어진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소설 속의 데이비드는 극한의 상황에서 눈이 맞은 아만다와 육체적 관계를 맺는다. 그러므로 영화의 결말부에서 카모디 부인이 아만다를 향해 '창녀(whore)'라는 모욕적 표현을 쓰는 데에는 나름의 근거가 있다. 데이비드가 성적 일탈을 보여준다면, 카모디는 사람들로 하여금 안개 속 괴물에게 인신 공양을 하도록 부추긴다. 마트 안의 사람들 누구도 도덕적이거나 합리적이지 않다. 안개가 몰고온 재난은 신체적 위협과 상해를 가할 뿐만 아니라 마을 사람들의 이성과 윤리를 마비시킨다.

  원작자 스티븐 킹은 카모디 부인의 죽음과 함께 데이비드 일행의 암울한 탈출 여정을 암시하는 것에서 소설을 끝낸다. 그와는 달리 프랭크 다라본트는 이 공포 수난극을 극한으로 밀어붙인다. 차를 몰고 마을을 떠나려는 데이비드는 엄청난 크기의 괴물을 목격하고 절망한다. 연료가 떨어진 차가 멈춘다. 괴물에게 잡아먹히는 것 외에는 다른 수가 없다고 생각한 그는 아들 빌리를 비롯해 일행을 죽인다. 그 순간, 안개가 걷히면서 마을에 진입하는 군부대가 보인다.

  아마도 그러한 결말은 이 영화에서 가장 충격적이고 논란이 되는 장면이다. 그렇다면 광기와 합리적 선택을 가르는 결정적인 요인은 과연 무엇일까? 기다림? 데이비드가 좀 더 기다렸다면 그는 아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결과론적인 가정일 뿐이다. 소설은 데이비드와 일행 앞에 놓인 미래가 어떤 것인지 알려주지 않는다. 스티븐 킹은 '희망(hope)'이라는 모호한 단어로 소설을 끝맺는다.

  소설 '미스트'는 초자연적 타자를 내세워 인간 내면의 연약함을 역설한다. 영화 속 끔찍한 괴물은 사람의 육신을 찢고 피를 튀기며 잡아먹는다. 마찬가지로 공포는 이성의 눈을 가리며 결국에는 통째로 삼켜버린다. 영화의 참혹한 결말은 호수에서 데이비드가 처음으로 안개를 목격했을 때부터 예견된 것인지도 모른다. 프랭크 다라본트는 스티븐 킹이 멈춰 버린 곳에서 자신만의 구부러진 길을 만든다. 그것이야말로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만이 보여줄 수 있는 창의적이고 놀라운 틈이다.  
      


*사진 출처: themoviedb.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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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 시대 미국인들의 초상, William Wellman 감독의 영화 두 편
 


Wild Boys of the Road(1933)
Heroes for Sale (1933)



1. 상처입고 방황하는 아이들, Wild Boys of the Road(1933)

  존 포드 감독의 '분노의 포도(The Grapes of Wrath, 1940)'는 가장 잘 알려진 대공황 시대의 초상일 것이다. 존 스타인벡(John Steinbeck)의 1939년작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이 영화는 대공황으로 길바닥에 나앉은 이주 노동자의 처절한 삶을 그려낸다. 사실주의적 시각에서 그려졌음에도 영화 '분노의 포도'는 소설에 비해서 다소 온건하고 현실타협적인 결말을 보여준다.


  오늘날의 관객들에게 1940년대 헐리우드 영화는 황금기의 것으로 보이지만, 실상 그 시기 영화 속 메시지들은 잘 절제되어 있다. 그렇게 만든 배경에는 '검열'이 있었다. 1934년, 미국 영화 산업계는 자율적인 검열 기준을 도입했다. 이른바 'Hays Code'로 불리는 영화 심의 기준이 헐리우드 영화의 내면을 지배했다. 검열은 특정 항목의 금지를 지시하는 데에만 그치지 않았다. 정부에 대한 비판을 비롯해 논란을 일으킬 수 있는 정치적 논제도 회피하게 만들었다. '분노의 포도'의 경우는 사회주의적 메시지를 최대한 걷어내는 데에 스튜디오의 입김이 작용했다.

  그런 면에서 1933년에 제작된 William Wellman 감독의 영화 두 편은 대공황에 대한 아주 사실적인 초상을 제공한다. 'Pre-Code Era(1929-1934)'에 제작된 'Wild Boys of the Road(1933)' 'Heroes for Sale(1933)'은 'Hays Code'가 표현의 자유를 옥죄기 이전의 다채로운 영화적 발언들을 내포한다. 두 영화가 개봉된 시기인 1933년에 미국민들은 대공황의 터널을 힘겹게 걸어가고 있었다. 윌리엄 웰먼 감독은 자신과 동시대인들이 통과하는 어려운 시기를 직설적인 방식으로 표현한다. 강인한 성품을 가진 이 감독은 영화사의 밑바닥에서부터 구르면서 영화를 배웠다. 감독 개인의 성격적 특성과 결합한 사회적 초상으로서 그의 대공황 시대 영화들에는 독특한 아우라가 있다.

  'Wild Boys of the Road'의 도입부에서 관객은 철부지 고등학생들을 만난다. 그저 놀기 좋아하고 또래 여학생에게 관심이 많은 에디와 토미. 토미는 어려워진 가정 형편에 고등학교를 그만두려고 한다. 에디의 아버지도 대공황으로 실직자가 되었다. 두 친구는 집안에 짐이 되지 않기 위해 무작정 기차를 타고 길을 떠난다. 부랑자, 떠돌이를 뜻하는 'hobo'는 대공황 시기를 대표하는 단어이다. 'hobo'가 된 에디와 토미는 기차에서 같은 처지의 또래를 만난다. 샐리는 남장을 하고 기차에 탔다.

  길바닥에 내던져진 아이들이 목도하게 되는 현실은 참담하다. 샐리가 찾아간 시카고의 이모는 아이들을 환대하지만, 집에는 곧 경찰이 들이닥친다. 그곳은 홍등가였다. 경찰을 피해 도망치는 와중에도 빵 한 조각을 필사적으로 그러쥐는 에디의 모습에서 혹독한 가난의 그림자를 본다. 또 다시 정처없는 방랑길에 나선 아이들에게 예기치 않은 곤경이 이어진다. 토미는 기차에 치어 다리가 절단되고, 샐리는 강간을 당한다. 샐리의 이모가 '매춘부'라는 명백한 암시, 신체 절단, 비록 설정 쇼트로 제시되기는 했으나 강간에 대한 묘사는 'Hays Code'에서는 모두 금지되는 사항들이었다. 

  웰먼은 대공황 시대의 고통스런 단면을 예리하게 담아낸다. 가난과 폭력의 현실에 내던져진 아이들은 생존을 위해 도둑질에 나선다. 'Wild Boys of the Road'가 보여주는 날것 그대로의 현실은 암울하기 짝이 없다. 그럼에도 영화는 한줄기 빛을 드리운다. 판사는 재판에 넘겨진 아이들이 재활할 수 있도록 선처를 베푼다. '희망'은 영화 속 아이들 뿐만 아니라, 그 당시에 영화를 본 관객들에게 무엇보다 가장 필요했다.


2. 시대의 악천후를 견디는 소시민 영웅, Heroes for Sale(1933)

  'Wild Boys of the Road'가 대공황을 통과하는 아이들의 여정기라면, 'Heroes for Sale'는 상이 군인의 눈을 통해 시대의 비참을 그려낸다. 영화는 1차 세계 대전이 한창인 유럽 전선의 참호에서부터 시작한다. 적군의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 토마스는 위험을 무릅쓰고 독일군을 생포한다. 그 과정에서 부상을 입은 그는 독일군에게 붙잡힌다. 우여곡절 끝에 치료를 받고 귀환한 토마스는 동료 로저가 자신의 공을 가로채 무공 훈장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거기에다 치료 과정에서 독일군 의사가 쓴 모르핀 때문에 토마스는 약물 중독의 늪에 빠지는데...

  영화는 마약 중독자가 된 토마스의 모습을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결국 재활원에서 회복이 되어 나왔지만, 그는 무일푼 신세이다. 토마스는 시카고에서 세탁 업체 직원으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간다. 지인이 발명한 세탁 기계의 특허 이익을 공장 노동자들과 공유하는 토마스. 하지만 공장의 자동화 과정에서 파업이 일어나고 그로 인해 토마스의 평온한 일상은 산산조각이 난다. 파업을 말리려던 토마스는 주동자로 체포된다. 아내 루스는 시위 현장에서 경찰의 곤봉에 맞아 사망한다.

  웰먼은 노동자들의 격렬한 파업과 그것을 무자비하게 진압하는 경찰의 모습을 실제처럼 재현한다. 이 장면에서 로레타 영이 연기한 루스가 참혹한 부상을 입고 쓰러지는 장면은 꽤 충격적이다. 1920년대 미국의 노동 운동은 매우 치열했다. 사회주의와 결합한 이러한 노동 운동은 미정부에 의해 반체제적이고 전복적인 것으로 규정되었다. 'Red Squad'라고 불리는 진압 경찰의 무차별적이고 폭력적인 행태는 1930년대까지 이어졌다. 'Heroes for Sale'에서 공권력의 횡포는 평범한 한 가정을 무너뜨린다. 주모자로 몰려 5년의 형기를 살고 나온 토마스는 대공황과 마주한다. 힘겹게 재생의 길을 걸으려는 그에게 경찰은 시카고를 떠날 것을 종용한다. 당시 대도시 시카고는 노동 운동의 중심지였다.

  영화는 기차를 타고 목적지 없이 떠나는 토마스의 눈을 통해 대공황 시기 노동자들의 현실을 드러낸다. 그들을 범죄자 취급하는 폭압적인 경찰들, 굶주림에 시달리며 삶의 극한으로 내몰리는 사람들. 'Heroes for Sale'은 웰먼이 만든 에칭 판화 같다. 가는 송곳으로 세밀하게 동판에 새긴 웰먼의 대공황 풍경은 매우 통렬하다. 성실하고 바르게 살고 싶은 주인공에게 세상은 결코 우호적이지 않다. 하지만 토마스가 지닌 따뜻한 인간성은 자신과 동시대의 가난한 이들에게 희망이 된다. 그는 자신이 받은 엄청난 특허 수익을 빈민 구호 식당에 전액 기부한다.

  이 영화에서 묘사된 마약 중독자의 모습과 경찰의 과도한 진압 장면은 'Pre-Code Era'였기에 가능했다. 우리는 대공황을 묘사한 웰먼의 두 작품에서 그 시대와 사람들의 삶을 목격한다. 등장인물들이 겪는 시련에는 거칠지만 진정성 있는 증언이 담겨있다. 분명 대공황은 시대적 재난이었으며, 특히 가난한 이들에게 더욱 고통스러웠다. 웰먼은 당시 보통의 미국인들이 어떻게 시대의 악천후와 싸우고 있는지를 냉철한 시각으로 포착한다. 'Heroes for Sale'에서 주인공 토마스가 보여주는 인본주의적 신념은 사뭇 감동적이다. 결국 고통과 재난의 시대를 견딜 수 있게 만드는 것은 사람의 온기와 이타심이다. 이례적인 전염병 시대를 지나는 오늘날의 관객에게도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시대를 뛰어넘어 전달된다.  


*사진 출처: themoviedb.org

 


**사진 출처: themoviedb.org



*** Pre-Code Era 영화
Millie(1931), What Price Hollywood?(1932) 리뷰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1/06/pre-code-era-what-price-hollywood193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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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지 루카스의 1973년작 영화 '청춘 낙서(American Graffiti)'는 루카스가 첫 영화를 보기좋게 말아먹은 후 찍은 작품이었다. 영화가 제작된 시점에서 정확히 10년 전의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는 그야말로 초대박을 쳤다. 흥행수익이 어느 정도였느냐 하면 제작비 대비 180배였다. 그렇다면 어떻게 'American Graffiti'는 흥행에 성공할 수 있었을까? 당시 미국인들은 정치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베트남전의 패배에 뒤이어 오일 쇼크의 긴 터널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루카스의 영화는 미국인들로 하여금 그들이 잘 나가고 좋았던 시절, 1960년대를 추억하게 만들었다.

  Paul Thomas Anderson의 'Licorice Pizza(2021)'도 영화 '청춘 낙서'처럼 과거로 돌아간다. 그것도 무려 50년 전인 1973년이다. 루카스의 영화가 당시 청장년층들에게 소구했다면, 폴 토마스 앤더슨의 2021년작 영화는 어떤 관객층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을까?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그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이 영화가 보여주는 시대적인 정서와 이야기가 무척 낯설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1970년대에 청춘이었던 이들의 나이는 이제 중년을 넘어 노년에 들어선다. 분명 그들을 대상으로 만든 영화는 아니다. 그래서 자료를 찾아보니 의외로 이 영화의 주 관객층은 20대와 30대 초반에 걸쳐 있었다. 지금 시대의 젊은 관객들은 이 영화를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새삼 궁금해졌다. 자, 그렇다면 '감초 피자'는 어떤 영화인지 여행을 떠나보기로 하자.

  1973년, 15살 게리(쿠퍼 호프만 분)는 학교 졸업 사진을 담당하는 보조 사진가 알라나(알라나 하임 분)에게 마음을 뺏긴다. 대뜸 사귀자고 말하는 게리. 알라나에게 그 상황은 웃기지도 않는다. 뭐야, 이제 15살 짜리가 25살인 나에게 수작을 걸다니. 일단 퇴짜는 놓았는데 알라나의 마음은 흔들린다. 10살 차이가 나는 커플, 그것도 한 쪽은 미성년자이다. 이 영화가 생뚱맞은 것은 그뿐만이 아니다. 게리는 물침대 세일즈맨으로 자신의 사업을 시작한다. 15살 짜리가 사업을 한다고? 저게 말이 되나 싶어서 실소가 터져 나온다.

  'Licorice Pizza'에는 기상천외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에피소드들이 폭죽처럼 터진다. 게리는 살인범으로 몰려 갑자기 경찰에게 수갑이 채워져 끌려간다. 알라나는 배우 오디션을 보러 갔다가 유명 배우(숀 펜 분)와 자리를 함께 하는데, 술 취한 그가 오토바이 타고 객기 부리는 통에 뒤에 앉았던 알라나가 나자빠진다. 물침대 배달하는 길에서 미친 인간 하나 잘못 태웠다 곤욕을 치루기도 한다. 이 영화의 괴상한 유머 포인트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감독 폴 토마스 앤더슨 뿐이리라.

  이 영화는 결코 1970년대를 잘 아는 이들의 향수를 자극하기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다. 물론 영화는 철저한 시대 고증을 거쳤다. 영화 제목 'Licorice Pizza'는 1969년에 James Greenwood가 Long Beach에 문을 연 LA의 레코드 매장 체인에서 따왔다. 이 레코드 체인점은 1985년에 매각될 때까지 존속했다. 영화에서 게리가 사업 구상에 착수하는 우스꽝스러운 박람회는 실제로 1973년에 Hollywood Palladium에서 열렸던 '십 대 박람회(Teen-Age Fair)'였다. 게리와 알라나가 만나는 영화관은 El Portal 극장으로 1926년에 개관한 이곳은 아직도 영업 중이다. 게리의 엄마가 운영하는 사무실의 손님 제리는 일본식 레스토랑 'Mikado'를 여는데, 이 또한 실제 LA의 명소였다. 게리가 즐겨찾았던 'Tail O' Cock' 레스토랑도 1985년까지 영업하던 곳이었다.

  폴 토마스 앤더슨은 그렇게 1970년대 San Fernando Valley를 'Licorice Pizza'에 통째로 옮겨다 놓는다. 대체 왜 그랬을까? 그는 15살 게리와 25살 알라나의 사랑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해 그 시공간을 선택했다. 이 영화는 1970년대를 통과한 관객층에게 소구하는 것이 아니라,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청춘의 독특한 사랑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 젊은 관객들을 불러 모은다. 게리는 엉뚱한 유머 감각을 가진 괴짜 십 대 사업가이며, 알라나는 되는 일이라고는 하나 없는 불만족스러운 25살 아가씨이다. 이 둘이 사랑에 빠졌을 때 어떤 화학반응을 일으키는지. 그들은 서로에게서 무엇을 원하며 또 그 관계에서 어떻게 좌절하게 되는지. 연애하는 커플이라면 그러한 과정을 한 번쯤 겪는다. 'Licorice Pizza'는 청춘 로맨스를 낯선 시공간에 비틀린 방식으로 구겨서 집어 넣는다. 그것은 지금의 청춘 세대들에게는 호기심을 가지고 탐색을 하도록 만드는 대상이 된다.

  그렇다면 폴 토마스 앤더슨의 의도는 관객들에게 잘 전달되었을까? 결론적으로 말해 영화의 수익은 제작비에 훨씬 미치지 못했다. 대부분의 젊은 관객들은 궁금해서 집어든 '감초맛 피자'를 한 입 먹고 그냥 내던져 버린 모양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그랬다. 조지 루카스가 '청춘 낙서'에서 자신이 지나온 바로 직전의 시대를 보편적 감성으로 그려냈다면, 폴 토마스 앤더슨은 쉽게 공감하기 어려운 특이한 이야기를 독창적인 것이라며 우긴다. '1970년대 미국'이라는 시간적 배경을 걷어낸다 하더라도, 과연 영화 속 게리와 알라나의 사랑 이야기에 공감할 관객이 얼마나 될까?

  'Licorice Pizza'에는 현실 감각이 결여되어 있다. 게리와 알라나가 보게 되는 TV 화면 속 당시 대통령 닉슨의 모습, 오일 쇼크로 주유소에 사람이 몰리는 장면을 비롯해 잘 재현된 1970년대 세트들은 별 의미도 없는 배경일 뿐이다. 제멋대로인 10대 청소년과 이도 저도 안되어서 좌절할 뿐인 20대 아가씨의 만남과 사랑 이야기에는 감독이 지인에게서 주워들은 일화들이 짜깁기 되어 있다. 아마도 이 영화의 유일한 미덕이라면 그 모든 것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엮어낸 폴 토마스 앤더슨의 이야기 솜씨일 것이다. 

  나는 누군가에게 이 '감초맛 피자'를 맛보라고 권할 마음이 선뜻 나지 않는다. 분명 이 영화는 잘 만든, 좋은 영화라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폴 토마스 앤더슨이 요리해서 내놓은 'Licorice Pizza'에는 비주류적 감성의, 진짜 기이한 맛이 난다. 글쎄, 이걸 무슨 맛이라고 표현해야할까? '쇠의 맛', 독자 여러분은 '쇠맛'을 아는가? 커피맛에 극도로 예민한 이들은 스테인리스 보온병에 담는 것을 저어한다. 그 보온병에서는 '쇠맛'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깨질 수도 있는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유리 보온병에 담는 것을 선호한다. 대체 '쇠맛'이 어떤 것이냐고요, 라고 묻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아주 가끔은 나도 스테인리스 보온병에서 그 '쇠맛'을 느낄 때가 있다. 영화 'Licorice Pizza'에서는 쇠맛이 느껴진다. 그 맛이 궁금한 이라면 한 번 도전해 보아도 괜찮다.     

 
*사진 출처: themoviedb.org



**조지 루카스의 영화 '청춘 낙서(American Graffiti, 1973)' 리뷰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1/05/american-graffiti-197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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