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다큐 시리즈 'The Rehearsal'의 세부 항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4편 The Fielder Method


가짜 연기와 진짜 현실의 사이에서


  오리건의 집에서 안젤라와의 양육 리허설이 진행되는 동안, 네이선은 LA에 자신의 연기 강좌를 개설한다. 리허설 프로그램에 출연할 배우들을 채용하기 위해서였다. 네이선이 창안한 이른바 '필더 메소드'는 이러하다. 모방하려는 대상(primary)이 있고, 수강생은 그 대상의 일거수 일투족을 관찰하며 자신의 것으로 체화시킨다. 수강생들은 정육점, 주스 전문점, 카센터, 건물 안내 요원과 같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현실 연기를 습득한다. '그건 스토킹(stalking)같은 건가요?' 처음에 수강생들은 네이선의 낯선 연기 방식에 당황하지만, 수업을 거듭할수록 '필더 메소드'의 핵심에 다가선다. 

  네이선은 자신이 직접 필더 메소드를 시연한다. 수업에서 무언가 불편해 보이는 수강생 '토마스'의 삶을 단편적으로나마 재현해보기로 한 것이다. 그것을 위해 네이선은 토마스로 분장하고, 자신과 수강생들의 대역을 뽑아 연기 강좌 리허설을 진행한다. 그러니까 이 에피소드에서 네이선의 진짜 현실 강의와, 네이선이 토마스가 되어 참여하는 수업 리허설이 병치된다. 네이선이 토마스를 선택한 이유는 아주 간명하다. 네이선은 토마스의 모호한 표정이 마음에 걸렸다. 그는 토마스가 필더 메소드 수업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너무나도 궁금했다.   

  정작 수강생 토마스의 입장이 되고보니, 연기 수업의 모든 것은 당혹스럽기 짝이 없었다. 부담스러운 방송국 촬영팀의 카메라, 복잡한 양식의 촬영 동의서, 도대체 무얼 해야할지 모르는 이상한 연기 수업... 네이선의 '토마스 되어보기'는 수업을 리허설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토마스를 하숙집에 머물게 하고, 자신은 토마스의 방에서 지낸다. 마치 인공 지능 컴퓨터가 데이터를 수집하듯 네이선은 토마스가 입는 옷, 먹는 음식, 좋아하는 취미, 그 모든 것을 체험하고 머릿속에 담는다. 그는 점차 모방과 조작의 달인이 되어간다.

  그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네이선은 자신의 한계에 부딪힌다. 모방 대상에 대한 치밀한 관찰만으로 진짜 토마스의 행동과 감정을 예측할 수 있을까? 그는 자신이 재현하려는 토마스가 단지 '추측(guess)'의 결과물에 불과하다는 점을 깨닫는다. 과연 우리는 타인의 입장에서 상황을 바라보고 이해할 수 있는가? 네이선의 필더 메소드는 어쩌면 존재의 외양을 그대로 복사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분명 그가 고안해낸 리허설의 세계는 매우 놀랍고 창의적이다. 하지만 거기에는 가짜 연기와 진짜 현실의 명백한 간극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 점은 안젤라와의 양육 리허설에서 잘 드러난다. 네이선은 안젤라와 아담이 있는 오리건의 집으로 돌아온다. 그 사이 아담은 15살이 되어 있었다. 아버지와 아들은 어색한 인사를 나눈다. 네이선에게도 이 상황은 낯설다. 이 리허설에서 그는 어린 아들이 십 대 청소년이 될 때까지 부재한 상태였다. 부자(父子) 사이의 유대감을 회복하기 위해 네이선은 아담과 대화를 나눈다. 아담을 연기하는 배우의 진짜 이름과 리허설의 아빠 네이선에 대한 솔직한 감정을 묻는다. 배우는 네이선이 자식을 외면한 무책임한 아빠이며, 그래서 자신은 증오심을 느낀다고 대답한다. 그 장면은 연기와 현실의 거리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거기에서 네이선은 양육 리허설을 수정한다. 그는 아담 역의 배우에게 실제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라고 주문한다.

  그러자 아담은 폭주하는 십 대 약물 중독자가 되어버린다. 네이선은 마약 과다 복용으로 방안에서 쓰러진 아담을 발견하고 절규한다(물론 이건 다 설정이다). 네이선은 안젤라에게 아담을 다시 6살 아이로 되돌리고 싶다고 말한다. 그렇게 해서 15살의 아담은 리허설에서 퇴장하고 다시 어린 아담이 네이선의 곁으로 돌아온다. 이 에피소드에서 관객이 만나게 되는 것은 리허설의 설계자 네이선의 진정성이다. 그에게는 사람의 마음을 알고자 하는 열렬한 호기심이 있다. 네이선은 리허설 세계에 자신을 밀어넣고 가짜로서 진짜에 도전하는 그 이상의 것을 성취하고자 한다. 아마도 어떤 관객에게 이 흉내내기의 세계는 그저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 거짓부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 속단은 이르다. 결코 웃어버릴 수 없는 이 기막힌 리허설은 아직 2편이 더 남았다.   


*사진 출처: list23.com



**Nathan Fielder의 HBO TV series 'The Rehearsal' 1, 2, 3편 리뷰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2/08/the-rehearsal-hbo-tv-series-season-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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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진 그 이후, 살아남은 자들의 슬픔
 
두 개의 별(After the Rain, 2021)
판 지엔(Fan Jian), 104분



  그날은 비가 내렸다. 아이는 학교에 가기 싫다며 떼를 썼다. 할머니는 그런 아이를 달래어 억지로 학교에 보냈다. 그런데 그날, 천지를 뒤흔드는 엄청난 대지진이 발생했다. 학교 건물은 무너져 내렸고, 학교의 모든 아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네 언니가 죽은 그날, 나도 죽은 거나 마찬가지란다." 할머니는 Ranran에게 그렇게 말한다. 란란은 죽은 손녀딸의 여동생이다. 중국 정부의 엄격한 한 자녀 정책 때문에 Ying과 Ping부부는 둘째딸 란란을 시골로 보냈다. 언니의 비극적인 죽음 이후에 란란은 다시 부모 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란란은 자신의 존재가 언니의 대체품으로 여겨지는 것 같아 괴롭다.

  Sheng과 Mei 부부도 대지진으로 딸을 잃었다. 중국 정부는 자식을 잃은 부모들의 시험관 아기 시술(IVF)을 적극적으로 장려했다. 부부는 시술로 아기를 갖는 것은 실패했으나 곧 자연 임신으로 아이를 얻었다. 아들이었다. 태어날 아기가 딸이기를 열망했던 부부는 크게 실망한다. 아빠인 Sheng의 좌절감은 아들 Chuan에 대한 미움으로 이어진다. Mei 또한 아들에게 마음을 붙이기가 쉽지 않다. 추안은 어릴 적부터 자신이 죽은 누나 덕분에 태어났다는 말을 듣고 자란다. 이 가정에는 냉기와 무관심이 일상처럼 자리잡는다.  

  판 지엔은 '두 개의 별(After the Rain, 2021)'에서 2008년 쓰촨성 대지진으로 어린 자식을 잃은 두 가족의 삶을 따라간다. 무려 10년이란 시간 동안 그의 카메라는 결코 치유될 수 없는 재해의 트라우마를 기록한다. 죽은 자식에 대한 애도의 감정은 시간이 지나도 쉽게 옅어지지 않는다. Sheng은 딸을 구해내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몸부림친다. 그는 마음의 고통을 술로 달랜다. 아들에게 냉랭하기 짝이 없는 Sheng은 아빠 노릇 좀 하라는 아내의 말에 역정을 낸다. 정작 아내 Mei는 Chuan이 아기 때에 여자 아이 옷을 입혀 키우기도 했다. Mei는 아들의 포동포동한 손이 죽은 딸과 똑같다고 말한다. 아빠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아들이 안쓰럽지만 엄마는 그걸 해결할 방법이 없다.

  죽은 아이들은 부모의 가슴 속에서 생생히 살아있다. 다른 자식을 키운다고 해서 커다란 상처로 뚫린 마음이 메꿔지지는 않는다. 더 상황이 나빠진 경우도 있다. 어렵게 다시 얻은 아이가 장애아인 부부도 있었다. 원하는 딸이 아니라 아들이라서 괴로운 Sheng과 Mei 부부, 부모에 대한 원망으로 서먹해진 둘째딸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애쓰는 Ying과 Ping 부부. 잊을 수 없는 죽음의 그림자는 아이들의 마음에도 드리워진다. 트라우마는 그렇게 세대 사이에 심리적으로 전이된다. 추안은 아버지에게 좀처럼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란란도 매우 내성적인 아이로 성장한다. 그럼에도 이 소녀는 죽은 언니의 부재를 나름대로 메꾸기 위해 노력한다. 란란은 그렇게 부모를 향해 조금씩 마음을 열어간다. 

  중국 정부는 재해로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 아이를 갖게 하는 것을 최선의 대책으로 여겼을지도 모른다. 놀랍게도 '두 개의 별'은 또 다른 자녀의 존재가 재난의 상흔을 덮어버리지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다큐에서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지진으로 그토록 많은 아이들이 죽은 배경에는 학교의 부실 시공이라는 근본적인 문제도 있었다. 부모들이 느꼈던 엄청난 상실감과 애도의 감정은 제대로 치유되지 못했다. 무너진 학교는 다른 곳에 새롭게 지어졌다. 당국은 지진에 대한 기억을 차단하고 봉인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 때문에 몇몇 부모들은 성금을 모아 학교터에 추모비를 세우자는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추안과 란란이 살아가는 동안 자신의 성장 과정에 드리운 죽음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예기치 못한 대지진은 그 아이들의 삶의 궤도를 뒤틀리게 만들었다. 이 가슴아픈 다큐는 재해가 가져다준 상실의 고통에 대한 사회심리학적 통찰을 제공한다. 국가는 재난을 방지하고, 그것이 일어났을 때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피해를 최소화해야만 한다. 복구의 과정에는 물질적인 면 뿐만 아니라 피해 당사자들의 내면을 살피는 것도 포함된다. '두 개의 별'은 대지진이 남긴 트라우마의 긴 연대기를 통해 정부의 책임과 동시대 사회 구성원들의 관심을 촉구한다. 


*사진 출처: eidf.co.kr




**사진 출처: brattlefilm.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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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진 미래 속에 자리한 희망의 한 조각

광야에서 부르는 노래(Singing in the Wilderness, 2021)
천둥난(Chen Dongnan), 98분


  '작은 우물 마을'이라고 불리는 먀오족(苗族) 마을에는 교회와 성가대가 있다. 이 외진 곳의 소수 민족이 어떻게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지키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저 신을 찬미하고픈 소박한 마음에서 시작한 성가대의 노래는 지역 공산당 간부 장씨의 눈에 띈다. 그는 먀오족 성가대 홍보에 발벗고 나선다. 대부분 농사일에 종사하는 성가대원들은 TV 경연 프로그램에 나가면서 갑작스런 주목을 받는다. TV 출연도 하고, 합창 대회에서 나가서 상도 받는다. 과연 성가대원들은 그러한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Chen Dongnan의 다큐 '광야에서 부르는 노래'는 외견상으로는 먀오족 성가대의 이야기를 담는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오늘날 중국에서 벌어지는 소수 민족의 암울한 현실이 조심스럽게 포개어져 있다.

  바깥 세상을 접하기 시작하면서 성가대원들은 물질의 가치에 경도되기 시작한다. 신기하고 멋진 도시의 풍광, 다채로운 상품들은 마을을 떠나본 적이 없는 먀오족의 마음을 흔든다. 평상시에는 농부의 삶을 사는 성가대원들은 노래가 '돈'을 가져다 줄 수 있음을 깨닫는다. 그런데 경연 대회에서 우승한 상금은 성가대원들의 손에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그들의 매니저를 자처하는 당 간부 장씨는 성가대를 자기 치적 쌓는 도구로만 여길 뿐이다.  

  다큐는 특히 두 명의 성가대원의 개인사를 찬찬히 풀어놓는다. 신실한 신자인 Sheng은 성가대가 외부 활동을 하면서 세속의 노래들을 부르는 것이 못마땅하다. 그에게 노래란 신에 대한 믿음의 표현이다. 성가대의 상업적 변질은 Sheng에게 좌절감을 안겨준다. 돈을 주는 행사 때에만 성가대에 나오는 이들이 늘어난다. 그렇게 성가대가 세속에 물드는 동안 Sheng은 동네 아가씨와 결혼한다. 작은 땅을 일구면서 사는 고단한 농부의 삶. 그는 불운하게도 한족 사기꾼 개발업자에게 땅마저 잃는다. 전도사로 살아가고 싶은 Sheng의 소망은 여지없이 현실과 충돌한다.

  고운 목소리에 춤까지 잘 추는 Ping은 이웃 마을의 청년과 결혼한다. 가난하고 척박한 삶은 Ping을 노래로부터 멀어지게 만든다. 아기가 아장아장 걸어다닐 무렵, 마을에서 성가대 교육을 맡아달라는 요청이 들어온다. 거칠고 이해심 없는 남편은 Ping의 활동을 반대한다. 노래를 부르고 싶은 Ping의 열망에 남편은 폭력으로 대응한다. 아이를 들쳐업고 Ping은 친정으로 돌아온다. 집에서는 애 딸린 여자가 어떻게 남편 없이 사냐고 돌아갈 것을 종용한다.

  그러는 사이 성가대는 해외까지 활동 반경을 넓힌다. 미국 링컨 센터에서 공연을 하게 된 것이다. 마을에는 성가대를 보기 위해 외국인 관광객들도 온다. 당 간부 장씨는 관광객들에게 유들거리는 말투로 홍보에 여념이 없다. 성가대를 교묘히 착취하는 이 사람의 처세술은 역겨움을 불러일으킨다. 그가 먀오족을 바라보는 시각은 어떤 면에서 중국 당국의 소수 민족 정책과도 일맥상통한다. 이 열등한 부족민들에게는 교화와 개발이 필요하다는 것. 성가대의 인기와 명성은 높아가지만, 작은 우물 마을에는 그늘이 드리워진다. 한족 개발업자의 무분별한 개발과 땅투기가 마을을 옥죈다. 사실 그런 풍경은 중국내 소수 민족 자치주에서 벌어지는 흔한 일상일 뿐이다.

  농약을 들이마셨다가 겨우 목숨을 건진 Sheng, 고향에서 아이를 홀로 키우기로 결심한 Ping. 인생의 한고비를 넘긴 두 성가대원은 다시 노래를 부른다. 다큐는 Sheng과 Ping, 먀오족 성가대, 그리고 작은 우물 마을 사람들 앞에 놓인 미래가 장밋빛이 아님을 보여준다. 이제 더이상 전통 의상을 손으로 짜는 먀오족 여성은 없다. 새로운 세대의 먀오족들은 점점 더 많이 도시로 떠나고 있다. 그렇지만 오랫동안 춤과 노래를 사랑해온 먀오족의 전통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강건한 먀오족 여성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Ping의 춤사위에는 그 희망의 기운이 실려있다. 

  
*사진 출처: eidf.co.kr



**티베트 출신 감독 페마 체덴(Pema Tseden)의 영화 리뷰
 
老狗(Old Dog, 2011)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2/03/old-dog-2011.html

塔洛(Tharlo, 2015)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2/03/tharlo-201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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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 Orange Juice, No Pulp
2편 Scion
3편 Gold Digger



*이 글은 다큐 시리즈 'The Rehearsal'의 세부 항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1. 네이선 필더의 리허설 세계 입문: 1편 Orange Juice, No Pulp
 
  한 남자가 있다. 그는 동료들에게 자신이 박사 학위를 가진 사람이라고 말해왔다. 하지만 그의 최종 학위는 학사이다. 무려 12년 동안 동료들에게 거짓말을 해온 이 남자 스키트는 어느날 문득 거짓말의 무게를 느낀다. 그래, 진실을 이야기하자. 그렇게 결심을 했지만 말을 꺼내는 일은 쉽지 않다. 특히 자신과 가장 가까운 동료 트리샤가 보여줄 반응이 가장 걱정된다. 이때 그의 어려움을 조금 덜어주겠다는 사람이 등장한다. Nathan Fielder는 스키트가 트리샤와 대면할 순간을 위해 완벽한 리허설을 준비하겠다고 약속한다. 네이선은 스키트가 진실을 말할 장소인 동네 주점을 똑같이 세트로 만든다. 트리샤 역을 맡은 대역 배우도 뽑았다. 배우는 트리샤뿐만이 아니다. 주점의 바텐더를 비롯해 직원, 손님들도 모두 배우이다. 진짜 스키트는 가짜 건물, 가짜 손님들 사이에서 자신의 진실 고백 리허설을 시작한다.

  올해 7월에 HBO 채널을 통해 방영된 다큐 시리즈 'The Rehearsal'이 미국에서 화제다. 이 시리즈는 제목 그대로 의뢰자들에게 고민 해결을 위한 리허설 기회를 제공한다. 단지 상황극이라고만 생각하면 오산이다. 리허설 과정을 총괄하는 네이선 필더는 발생 가능한 모든 변수를 고려하고 그것을 통제하기 위해 애쓴다. 1편 'Orange Juice, No Pulp'에서 뜻밖의 변수는 스키트가 선택한 주점에서의 퀴즈 타임이었다. 스키트는 자신이 늘상 푸는 퀴즈의 정답을 맞추지 못하면 신경이 곤두설 것 같다고 네이선에게 말한다. 그것이 스키트의 진실 고백에 영향을 줄까 우려한 네이선은 미리 진짜 주점 관계자를 만나 퀴즈 문제를 건넨다. 그리고 스키트와 자신이 산책할 때 스키트가 그 퀴즈 정답을 알아낼 수 있는 상황극을 보도록 만들었다. 물론 스키트는 네이선의 이러한 물밑 작업을 모른다.

  사실 퀴즈 정답 맞추기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대역 배우 트리샤의 리액션이 스키트의 현실 동료 트리샤와 비슷할 거라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다. 그래서 네이선은 그 부분에 대한 불확실성을 줄이려고 일종의 속임수를 기획한다. 가짜 트리샤를 진짜 트리샤와 만나도록 설정해서 거짓말에 대한 진짜 트리샤의 반응을 떠보는 것이다. 이 만남을 통해 대역 배우는 트리샤의 말투, 몸짓, 감정 표현 방식까지 알아내고 그것을 리허설에 써먹는다. 완벽한 리허설을 위한 네이선의 디테일에 대한 집착은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한다.

  스키트는 세트장에서 총 13번의 리허설을 거쳤다. 리허설에서 가짜 트리샤는 스키트에게 화를 내며 자리를 떴다. 마침내 다가온 스키트의 운명의 날. 실제 주점 곳곳에 설치된 카메라는 스키트의 진실 고백 타임을 생생하게 포착한다. 과연 진짜 트리샤는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그런데 이런, 시작부터 쉽지가 않다. 리허설에서 스키트가 앉았던 자리에는 이미 다른 손님이 앉아있다. 스키트는 거짓말로 양해를 구하고 자리를 확보한다. 트리샤가 주점 안으로 들어온다. 둘은 가벼운 대화를 나눈다. 스키트는 퀴즈 타임의 정답도 기분좋게 다 맞췄다(주도면밀한 네이선 덕분에). 리허설에서 미리 연습한 진실 고백 타이밍은 바로 그 즈음이었다. 하지만 스키트는 긴장과 압박으로 입을 떼지 못한다

  다행히 스키트는 용기를 쥐어짜낸다. 그리고 트리샤에게 자신에 대한 진실을 털어놓는다. 네이선은 홀가분한 심정으로 귀가하는 스키트와 대면한다. 이 리허설은 성공적으로 끝났다고 할 수 있을까? 네이선은 스키트에게 자신이 퀴즈 문제를 미리 조작했다는 사실을 털어놓지는 못했다. 네이선은 대역 배우 스키트와 그 부분을 리허설하면서 무척 안좋은 리액션을 받았다. 그래서 두려웠다. 그렇게 1편 'Orange Juice, No Pulp'가 끝난다. 그 제목은 의뢰자 스키트가 오렌지 주스를 주문할 때 하는 말에서 따왔다.

  이 흥미롭고 놀라운 다큐는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든다. 과연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잘 알고 있는가? 그렇다면 아주 오랫동안 알고 지낸 타인은 어떠한가? 거짓말은 반드시 배척해야만 하는 것인가? 만약 용인될 수 있다면 어떠한 목적에서, 어느 정도의 선이 적당한가? 네이선이 설계한 리허설의 세계는 의뢰자만 빼놓고 모든 것이 '가짜'이다. 리허설이 아무 문제없이 굴러가더라도 그것이 진짜 현실의 세계로 들어오면 달라진다. 그러므로 네이선은 발생 가능한 상황의 변수를 통제하기 위해 애를 쓴다. 1편에서 네이선의 시도는 성공적이었을까? 그는 진실을 말하게 될 스키트의 내적 감정과 압박감을 고려하지 않은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이제 이 완벽주의자 리허설 설계자는 2편의 의뢰자와 새로운 작업을 시작한다.   
 

2. 네이선, 리허설의 주인공이 되다: 2편 Scion, 3편 Gold Digger

  2편의 의뢰자는 44살의 안젤라이다. 안젤라는 더 나이가 들기 전에 아이를 낳을 생각이다. 하지만 양육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 때문에 주저하고 있다. 안젤라의 바람은 이러하다. 아기때부터 십 대 청소년에 이르기까지의 자녀 양육 과정을 단기간 내에 체험해 보는 것. 거기에는 안젤라가 원하는 양육 환경에 대한 세세한 요구 사항도 들어간다. 도시 근교에 텃밭을 일구면서 자연과 가까이 지내는 삶. 네이선은 안젤라의 리허설을 위해 오리건 근교의 주택을 빌린다. 실제 텃밭도 만들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 역할을 맡을 대역 배우들의 채용이었다. 오리건의 주법은 아동이 4시간 이상 상업적 작업 활동을 하는 것을 금지한다. 그러므로 네이선은 4시간마다 아기 배우들을 교체해야 했다. 밤에는 로봇 아기 인형으로 대체하고 그 인형에서 우는 소리가 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안젤라와 공동으로 양육을 하게 될 남자도 있어야 했다. 안젤라가 데이트 앱으로 만난 젊은 남자 로빈이 그렇게 리허설에 들어온다.

  그런데 로빈은 리허설을 시작한지 몇 시간만에 그만 두고 가버린다. 그는 야간에 울도록 설정된 로봇 아기의 울음소리를 견디지 못했다. 양육자 없이 리허설을 계속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쩔 수 없이 네이선은 안젤라와 합의하에 자신이 아빠 역할을 맡기로 한다. 리허설 설계자는 그렇게 자신도 리허설의 세계 안으로 밀어넣는다. 그 역할은 네이선에게도 낯설다. 독신인 그는 아빠가 되어본 적이 한번도 없다. 자신과 다른 종교적 배경을 지닌 양육자 안젤라와도 협력해야 한다. 할로윈을 사탄을 찬미하는 행사로 여기는 안젤라를 인정하는 일은 그에게도 버겁다. 아이와 함께 모처럼 기획한 할로윈 행사는 안젤라의 반대로 썰렁하게 끝난다.

  그 와중에 아들 Adam역의 아역 배우들도 계속 바뀐다. 안젤라는 아기에서 훌쩍 자라버린 아담을 네이선에게 인사시키는데, 아담은 누군지 모르겠다며 어깨를 으쓱한다. 이 웃지못할 리허설은 네이선의 실제 현실과 겹쳐지며 이어진다. 그 집에서 네이선은 출퇴근을 하며 지낸다. 그리고 의뢰인 패트릭을 위한 새로운 리허설을 구상하고 진행시킨다. 3편 Gold Digger(남자의 돈을 보고 접근하는 여자를 의미함)편의 패트릭의 고민은 이렇다. 세상을 뜬 조부는 유산 집행인으로 패트릭의 형을 지정했다. 조부는 패트릭이 gold digger와 같은 여성과 결혼하면 유산을 줄 수 없다는 조건을 걸었다. 그런데 패트릭의 형은 패트릭이 사귀고 있는 여자 친구가 돈만 밝힌다며 유산을 주길 거부하고 있다. 패트릭은 형을 설득하고 싶어한다.

  네이선은 2편과 3편에서 자신이 리허설에서 간과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있음을 자각한다. 아무리 현실을 완벽하게 복제하려고 애를 써도 리허설이 쉽게 살려내지 못하는 것이 '감정(feeling)'이다. 과연 패트릭은 형 역할을 연기할 대역 배우 아이작을 진짜 형으로 느끼고 생각할 수 있을까? 그것은 네이선 자신에게도 해당된다. 안젤라와의 리허설에서 네이선은 아기 돌보기는 그럭저럭 해내지만 진짜 '아기 아빠'라는 느낌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서 네이선은 패트릭을 위한 또 다른 상황극을 구상해낸다. 아이작의 가짜 할아버지를 설정하고 패트릭이 그 가짜 할아버지 배우와 인간적 유대감을 쌓도록 하는 것이다. 물론 패트릭은 아이작과 그 조부의 관계가 가짜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패트릭은 아이작의 할아버지가 숨겨놓은 작은 금상자를 찾는 과정을 돕는다. 그리고 철저한 리허설 설계자 네이선은 가짜 조부의 죽음을 패트릭에게 통보한다.

  그런 와중에 실행된 패트릭의 리허설은 어떻게 끝났을까? 그는 한 번의 리허설을 끝으로 나타나지 않았다. 리허설 준비 초반에 네이선은 패트릭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형에게서 단지 할아버지의 유산을 받아내려는 것인지, 자신의 여자 친구를 형이 인정해주길 바라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가짜 형 아이작과의 단 한 번의 리허설을 통해 패트릭은 진심을 내보이며 형제간의 유대를 새롭게 한다. 어떤 이에게는 '리허설'과 같은 조작된 가공의 현실 체험이 매우 강력한 자기 성찰의 도구가 된다. 패트릭의 경우는 그 점을 입증한다. 네이선은 그런 패트릭의 모습을 놀라움과 부러움으로 바라본다.

  패트릭과는 달리 네이선은 안젤라와의 양육 리허설에서 도무지 느껴지지 않는 '아기 아빠'의 감정 딜레마에 빠져있다. 식탁에 앉아있던 네이선은 채소 손질을 하고 있는 안젤라를 바라본다. 안젤라가 텃밭에서 수확한 파프리카에는 가격표가 붙어있다. 그것은 촬영 스태프들이 마트에서 사온 채소들을 밤중에 미리 텃밭에다 묻어둔 것이다. 네이선은 얼른 일어나 파프리카의 가격표가 보이지 않도록 돌려놓는다. 네이선은 리허설 속 진짜와 가짜 사이의 힘겨운 줄타기에서 무엇을 발견할까? 남아있는 3편의 에피소드는 그에 대한 답을 줄지도 모른다.


*사진 출처: themoviedb.org



**사진 출처: vulture.com   리허설 3편의 네이선 필더(사진 가운데). 그는 노트북을 저렇게 엿장수처럼 들러메고 리허설 준비 과정의 모든 것을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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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조란학(O, Collecting Eggs Despite the Times, 2021)
핌 즈비어르(Pim Zwier), 84분

다크 레드 포레스트(Dark Red Forest, 2021)
진화칭(Jin Huaqing), 85분



1. 새알 연구자의 복원된 삶: 시간의 조란학(2021)

  조란학(oology)는 조류학에서 뻗어나온 학문이다. 새의 알과 둥지, 번식의 생태적 환경이 연구 주제가 된다. 지금은 새알 채취가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이 학문의 존재 근거는 다소 희미해졌다. Max Schönwetter(1874–1961)는 그 조란학의 개요서를 쓴 독일 학자이다. 다큐 '시간의 조란학'은 쉔베터가 쓴 편지를 바탕으로 그의 생애를 찬찬히 들여다본다. 거기에는 쉔베터가 지나온 나치 독일 시기와 전쟁의 기억도 포함된다. 당시 독일의 상황을 보여주는 다양한 아카이브 필름들이 함께 어우러지며 한 연구자의 지난했던 삶에 대한 이해를 더한다.

  나는 처음엔 이 다큐를 볼 생각이 별로 없었다. 시놉시스만 보았을 때에는 새알 연구자의 생애가 무어 그리 볼 게 있겠는가, 싶었다. 그런데 이 다큐는 놀라운 흡인력을 지니고 있다. 내레이션으로 나오는 쉔베터와 지인들의 편지글에는 학문 연구에 대한 열정이 넘쳐난다. 당시 새알을 연구하는 이들은 학자라기 보다는 수집가의 영역에 머물렀다. 쉔베터는 새에 대한 자신의 관심을 '새알'이라는 분야로 확장시켰다. 비교적 부유했던 그는 자주 여행을 다니면서 새알을 수집했고 그것을 꼼꼼히 기록해서 관리했다. 그의 새알 컬렉션이 쌓이는 동안 바깥 세상은 점차 소란스러워지고 있었다. 히틀러가 집권했고 독일은 전쟁의 광풍에 휩싸였다.

  이 순수하고 열정적인 새알 연구자는 전장터에 가서도 새알을 모으러 다녔다. 독일이 핀란드를 침공했을 때, 쉔베터도 그곳에 있었다. 그가 쓴 편지글에서는 핀란드의 숲속에서 진귀한 새알을 구하게 된 기쁨이 드러난다. 아니, 세상이 미쳐돌아가는 판국에도 새알을 수집하는 일 따위에 그토록 마음을 쓰는 것은 온당한가? 그런 의문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물론 전쟁의 여파는 쉔베터에게도 미쳤다. 자식이 죽었고, 폭격으로 집이 불탔다. 공습으로 죽을뻔한 위기도 겪었다. 그가 모아온 새알들은 모두 파괴되었다. 하지만 그는 새알 연구를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편지글을 통해서 알 수 있는 쉔베터의 새알에 대한 관심은 경외심마저 불러일으킨다. 그것은 돈과 명예를 바라고 하는 일이 아니었다. 그는 그저 좋아서 할 뿐인 새알 연구를 하나의 의미있는 체계로 만들고 싶어했다. 그래서 그는 조란학 개요서를 쓰기로 결심한다. 끊임없이 동료 연구자들과 교류하고 자문을 구하면서 쉔베터는 책을 써내려갔다. 그러는 사이 나치 독일은 패망했고, 그가 사는 곳은 동독이 되었다. 새알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했던 쉔베터는 노년의 곤궁함과 마주한다. 지인에게 돈을 부탁하는 글에서 쉔베터는 자신을 이렇게 표현한다. '저는 이제는 가난하고 늙은 노인일 뿐입니다.'

  격동의 독일 현대사 속에 펼쳐지는 어느 조란학자의 삶에는 기쁨과 눈물, 비탄이 들어있다. 아마도 누군가는 65년 동안 새알 연구에 매진한 그의 삶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를 물을지도 모른다. 쉔베터는 필생의 역작인 조란학 개요서를 펴냈다. 그가 남긴 2만 개의 새알 컬렉션은 Halle-Wittenberg 대학 박물관에 남았다. 나에게 인상적인 장면이 하나 있다. 그의 컬렉션에는 부서진 새알도 들어있었다. 전쟁의 와중에 수집품을 온전히 보존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부서지고 조각난 새알의 파편들을 차마 버리지 못했던 그의 심정을 조금은 알 것도 같다. 거기에는 새알에 매혹된 한 사람의 오래고 고단한 삶이 담겨있다. '시간의 조란학'은 잊혀진 새알 연구자의 삶을 역사의 색을 입혀 옴스라니 복원해낸다.          


2. 수행자로 살아간다는 것: 다크 레드 포레스트(Dark Red Forest, 2021)

  야칭스(Yarchen Gar)는 티베트 자치주의 해발 4000m 계곡에 자리한 수행자 공동체 마을이다. 티베트 불교의 전통에 따라 수행하는 비구니들이 한때는 1만명에 이르기도 했다. 다큐 '다크 레드 포레스트'는 그 야칭스 비구니들의 삶을 담아냈다. 내레이션이 배제된 이 다큐는 비구니들의 삶을 온전히 보여준다. 혹독한 겨울, 겨우 몸 하나 들어갈 비좁은 개인 움막을 짓고 비구니들은 치열하게 정진한다. 그들이 의지하는 것은 오직 불법(佛法)과 스승의 가르침 뿐이다. 내면의 부름을 따라서 야칭스에 온 이들은 수행자로 살다가 그곳에서 삶을 마감한다. 그렇게 죽은 수행자의 시신은 독수리들에게 내어주도록 되어 있다.

  먹고 자는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수행에 힘쓰는 비구니들. 스승은 수행자들의 정진을 끊임없이 격려한다. 다큐 속에서 목소리로만 들리는 지도자 스님은 엄격하면서도 자애로움을 잃지 않는다. 수행자도 인간이라 몸이 아픈 것은 당연하다. 전통 의술로 치료하는 의사에게 자신의 몸아픈 이야기를 하는 비구니들. 그들을 괴롭히는 온갖 질병은 수행이 육신의 편안함을 거스르는 것임을 보여준다. 복통을 호소하는 젊은 비구니는 무엇을 먹었느냐는 의사의 말에 명절 분위기에 휩쓸려 고기를 먹었다고 고백한다. 계율에 어긋나는 일이지만 그 모습은 인간적이다. 때로 속세의 가족은 떨칠 수 없는 걱정거리이기도 하다. 수행자들은 점을 칠 줄 아는 비구니를 찾아가 가족과 지인의 어려움을 해결할 방도를 찾기도 한다.

  '다크 레드 포레스트'를 보는 일은 관객에게도 일종의 명상적 체험처럼 느껴진다. 붉은 모자를 쓰고 두터운 붉은색 가사를 두른 수행자들은 세속의 우리와는 전혀 다른 것을 찾고 있다. 인간은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 자아는 무엇이며 깨닫는 주체는 누구인가? 비구니들은 그런 존재론적인 물음의 답을 탐구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그 여정에서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자신이 공부한 것을 명징한 목소리로 발표하는 어린 비구니도 공동체의 일원으로 존중받는다. 노년의 비구니는 스승 앞에서 수행의 부족함을 고백하며 더욱 정진할 것을 다짐한다.

  언제까지고 그렇게 평화롭게 이어질 것만 같았던 야칭스의 삶은 중국 당국의 정책에 의해 무너져 내린다. 2019년, 중국 정부는 야칭스의 비구니들에게 집으로 돌아갈 것을 명령했다. 야칭스가 티베트 독립 운동의 정신적 구심점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했다. 2017년부터 점진적으로 가해진 정부의 압력은 2019년에 이르러 야칭스 수행 공동체의 해체로 이어졌다. 다큐에는 그러한 상황에서 혼란과 어려움을 겪는 비구니들의 모습이 담겨있다. 그들은 과연 세속의 삶을 살아낼 수 있을까? 수행만이 전부였던 비구니들은 그렇게 야칭스를 떠나야만 했다. 

  다큐의 마지막, 야칭스의 겨울 고원에서 보았던 수행자의 움막집이 어느 계곡에 점점이 박혀있다.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지만, 야칭스를 떠난 수행자들이 더 험한 오지에 자신들의 공동체를 꾸린듯 하다. 깨달음을 향한 비구니들의 열망은 그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다. 혹독한 겨울에 계곡의 동물들이 굶어죽을까봐 먹을 것을 챙기는 수행자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세상을 위해 기도하는 수행자가 되고 싶어요." 아마도 우리가 사는 세상이 조금 더 나은 곳이 되어가고 있다면, 세상에 드러나지 않는 그런 수행자들의 기도 덕분일 것이다.

 
*사진 출처: eidf.co.kr




**사진 출처: en.wikipedia.org  2019년 중국 정부에 의해 해체되기 이전의 야칭스의 모습. 중국 당국은 그곳에 대규모 호텔과 숙박 업소를 지어 관광지로 개발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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