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을 전공한 핀란드 여학생 로라는 러시아 국경 지대 무르만스크의 고대 암각화(petroglyphs)를 볼 계획이다. 무르만스크행 기차 6번 칸. 그곳에는 험한 얼굴에 빡빡머리를 한 젊은 남자가 자리를 잡고 있다. 보드카를 연신 들이키는 이 남자는 탁자 위에 안주거리를 지저분하게 늘어놓았다. 무언가 불쾌한 여정이 될 것 같다는 로라의 예감은 처음부터 맞아떨어진다. 로라의 행선지를 물어본 남자는 무르만스크에 매춘이라도 하러가냐며 이죽거린다. 남자의 거칠고 상스러운 언사에 놀란 로라는 식당차와 열차 복도를 헤매며 시간을 보낸다. 다른 객실로 바꾸려고 승무원에게 뇌물을 제의하며 부탁하지만 어림도 없다. 로라는 무르만스크의 암각화를 꼭 보고 싶다. 그러러면 저 6번 칸의 남자를 견뎌야 한다.

  핀란드의 감독 Juho Kuosmanen 'Compartment No. 6(2021)'에서 소련 붕괴 직후의 1990년대로 관객을 안내한다. 로라는 불편한 동행 요하를 인내하기 위해 소형 캠코더에 의지한다. 거기에는 모스크바에서 보낸 짧은 유학 기간 동안의 추억이 담겨있다. 캠코더의 영상을 보며 로라는 연인 이리나를 그리워한다. 원래 이 여행도 이리나와 함께 하기로 되어있었다. 하지만 이리나는 갑자기 여행을 포기한다. 영화의 도입부, 이리나의 집에서 열린 파티에서 이리나는 지인들 앞에서 로라를 짖궃게 놀린다. 로라는 그들과 잘 어울리지도 못하고 방에 혼자 앉아있다. 기차가 쉬는 중간 중간 이리나에게 전화를 하지만 이리나의 목소리는 시큰둥하다. 이리나 때문에 가뜩이나 심란한데, 6번 칸의 남자는 자신을 피하려는 로라에게 집요한 관심을 보인다.

  위험해 보이는 남자와의 동행. 처음엔 공포 영화의 분위기를 풍기던 로라의 여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분위기가 누그러진다. 빡빡머리의 이 남자는 기차가 쉬는 중간 기착지에서 뜻밖의 제안을 한다. 엄마 보다 더 가까운 사이의 아줌마 집에 함께 가보자는 말에 로라도 따라나선다. 낯선 도시에서 마주한 따뜻한 환대. 로라는 요하가 겉보기와는 달리 위험한 사람이 아님을 알게 된다. 둘 사이에 놓였던 무지와 편견의 빙벽은 서서히 녹아내리기 시작한다.

  로라와 요하가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은 일반적인 로맨스의 공식을 따라가지 않는다. 요하는 로라의 연인 이름이 이리나라는 것을 알고 있다. 동성애자 외국인 여학생과 하층 계급 광산 노동자 요하가 맺는 이 기묘한 인간 관계는 우정, 또는 사랑으로 쉽게 규정할 수 없다. 마침내 도착한 무르만스크. 그곳 사람들로부터 겨울에는 암각화가 있는 곳에 갈 방법이 없다는 말을 들은 로라는 상심한다. 요하는 그런 로라를 이끌고 힘겹게 암각화 구경에 나선다. 이 저돌적이고 우직한 남자는 그렇게 로라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내비친다. 돌아오는 길에 로라와 요하는 거센 눈보라가 치는 들판에서 신나게 뒹굴며 눈싸움을 한다. 사랑이라기에는 무언가 이상하고, 우정이라기에는 더 특별한 것이 둘 사이에는 존재한다.

  이 험한 세상에서 전적으로 낯선 누군가를 믿고 의지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영화 '6번 칸'은 우리 내면에 자리한 타자에 대한 두려움을 직시하게 만든다. 그 두려움 대신에 관대함과 인내심을 보여줄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만이 새로운 관계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로라의 무르만스크행 6번 칸에는 그러한 만남의 경이로움이 있다. 마음을 열고 함께 한다는 것, 그 충만한 소통의 희열을 관객은 로라와 요하를 통해 공유한다.

  영화 속 소형 캠코더와 카세트 테이프는 지금의 디지털 시대에는 없는 아날로그 시대의 상징이다. 감독 유호 쿠오스마넨은 아날로그적 감수성과 1990년대 불안정한 러시아 사회를 절묘하게 결합시킨다. 로라와 요하의 인간적인 소통은 구시대에 대한 그리움의 정서와도 맞닿아 있다. 이제는 정말 보기 힘든 Kodak의 35mm 필름으로 촬영된 이 아름다운 영화에 나는 아낌없이 별 5개의 만점을 준다.   


*사진 출처: themoviedb.org






**Compartment No. 6(2021)는 2021년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다. 이란의 Asghar Farhadi 감독의 'A Hero(2021)'는 공동 수상으로 영예를 나누어 가졌다.

영화 A Hero(2021) 리뷰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2/07/all-winners-all-losers2018-hero202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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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꿔다 놓은 보릿자루. 그 말의 반대말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는 뭐가 있을까? 'party starter'는 어떨까? 영화 'Cha Cha Real Smooth(2022)'의 주인공 앤드류는 대학을 졸업한 22살의 청년이다. 앤드류는 동생을 데리고 우연히 가게된 mitzvah party(유대교의 성인식 파티, 13살이 되는 해에 치룸)에서 분위기 메이커 노릇을 잘 해낸다. 그 재능을 알아본 학부모들은 앞다투어 앤드류를 'party starter'로 고용한다. 파티 참석자들의 흥을 돋우고 진행자 역할을 하는 그 일은 어느새 앤드류의 부업이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앤드류는 파티에서 자폐증 여학생 롤라와 그 엄마 도미노를 알게 된다.

  앤드류에게 정해진 건 아무것도 없다. 대학은 졸업했지만 아직 무엇을 할지 결정하지 못했다. 우선은 돈을 벌기 위해 패스트푸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여자 친구는 스페인으로 유학을 떠났다. 앤드류는 돈이 좀 모이는대로 여자 친구가 있는 바르셀로나로 떠날 생각이다. 그런데 그런 앤드류에게 자신보다 열 살이나 더 많은 싱글맘 도미노가 눈에 들어온다. 짝사랑은 아니다. 도미노도 딸 롤라를 따뜻하게 대하는 앤드류에게 호감 이상의 감정을 느낀다. 22살 백수 앤드류, 32살 싱글맘 도미노, 이 둘의 사랑이 쉽지 않을 거라는 사실은 자명하다.

  앤드류는 마치 안개 속을 걷는 사람과도 같다. 22살이란 나이에 무언가 확실한 것이 있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그렇다면 32살의 도미노는 어떤가? 도미노의 삶도 불안하게 흔들리기는 마찬가지. 이른 나이에 엄마가 되었고, 아이 아빠는 자신을 떠났다. 그런 도미노가 가장 갈구하는 것은 '안정'이다. 약혼자 조셉과 함께 한다면 붕 떠있는 삶이 비로소 땅에 닿은 것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고 여자는 생각한다. 감정적으로는 앤드류에게 끌리는 것도 사실이다. 약속된 미래와 불확실한 모험, 도미노는 두 개의 선택지를 두고 갈등한다.

  앤드류가 도미노에게 느낀 사랑의 감정은 어떤 면에서 '보살핌'과 '관계 맺기'의 욕구와도 관련이 있다. 앤드류의 모친은 조울증을 앓고 있고, 앤드류는 12살 동생을 엄마를 대신해서 챙긴다. 아마도 앤드류에게 자폐증을 앓는 롤라와 싱글맘 도미노 또한 보살펴야할 대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앤드류의 배려와 보살핌은 도미노와 롤라에게 위로가 된다. 그 지점에서 도미노는 앤드류를 밀어내기로 마음먹는다. 도미노는 자신과 롤라를 보살피느라 앤드류가 인생에서 많은 것들을 놓치게 될 수 있다고 걱정한다. 22살의 앤드류에게는 경험해야할 청춘의 많은 날들이 있고, 32살의 도미노에게는 안정된 삶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사랑'은 인생의 많은 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때로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은 자신의 한계와 나아갈 방향을 분명하게 보여주기도 한다. 앤드류와 도미노의 사랑도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도미노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돌아온 앤드류는 차 안에서 조용히 흐느낀다. 22살의 청춘에게는 일과 사랑을 찾기 위한 수업의 여정이 기다리고 있다. 파티 참석자들을 무대 위로 불러내기 위해 애를 쓰지만, 자신은 결코 파티의 주인공이 될 수 없는 파티 스타터. 앤드류는 이제 가족과 고향을 떠나 인생이라는 무대 위에서 홀로 서기를 하려는 참이다.

  영화에서 주인공 앤드류 역을 연기한 Cooper Raiff는 시나리오를 직접 쓰고 연출도 했다. 이 25살의 젊은 영화인은 연기와 연출, 거기에 제작이라는 세 개의 공을 실수없이 저글링해낸다. 시나리오가 꽤 좋은 편이다. 청춘의 방황을 로맨스와 유기적으로 결합시키는 솜씨가 돋보인다. 진부한 삼각 관계로 흐를 수도 있는 이야기를 쿠퍼 레이프는 '성장'이라는 주제에 잘 녹여낸다. 다소 투박하기는 해도 'Cha Cha Real Smooth'는 쿠퍼 레이프의 영화에 대한 재능과 그가 가진 포부를 가늠하게 만든다.


*사진 출처: themoviedb.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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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미소는 이제 막 출산을 했다. 태반을 뒤집어쓰고 태어난 새끼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힘으로 일어선다. 새끼는 본능적으로 어미의 젖을 찾아서 고개를 들이댄다. 이야기만 듣는다면 뭔가 가슴 뭉클한 동물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 같다. 하지만 이 어미소가 있는 곳은 기업형 낙농 목장이다. 어미소가 새끼와 함께 하는 시간은 출산 후 단 몇 시간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은 어미소가 원래 있던 축사로 돌아가기를 재촉한다. 어미소는 배설물로 질척거리는 시멘트 바닥을 터벅터벅 걸어간다. 그렇게 자신의 축사로 돌아온 소는 불안한듯 이리저리 몸을 움직인다. 그리고 카메라를 향해 여러 번 울음 소리를 낸다. 소의 얼굴을 보여주는 이 극단적인 클로즈업 쇼트는 좀 무섭다. 나는 태블릿 PC의 전체 화면 대신에 일부러 작은 화면으로 보았다.

  Andrea Arnold는 영국 Kent주에 위치한 목장에서 'Cow(2021)'를 찍었다. 다큐는 'Luma'라는 이름의 젖소의 일생을 담아낸다. 농장에서 루마는 이름이 아닌 인식번호 1139로 구분된다. 루마가 낳은 새끼는 태어나자마자 귀에 인식표가 부착된다. 새끼의 번호는 04481. 어미소와 분리된 새끼는 비슷한 또래의 새끼들과 같이 지낸다. 새끼들에게 주어지는 우유는 급유통을 통해 배분된다. 새끼들이 있는 축사는 건초더미가 있고 나름 공간의 여유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젖소들이 있는 축사는 비좁고 바닥에는 늘상 오물이 흐르고 있다. 농장의 인부들은 정해진 시간이 되면 원형으로 배치된 자동 축유 시스템으로 소들을 몰아 넣는다.

  이 농장에서 소는 하나의 상품으로 관리된다. 그것은 루마의 새끼 04481이 제각(除角)하는 장면에서 잘 드러난다. 젖소도 뿔이 난다. 그런데 그 뿔을 제때 제거해주지 않으면 소들끼리 부딪히면서 상처가 날 수 있다. 농장의 인부는 뿔이 나려는 자리를 가늠해보고 인두로 지진다. 어린 송아지가 고통으로 소리를 지르는 모습은 차마 눈뜨고 보기 어렵다. 그렇게 04481은 뿔을 잃는다. 수의사는 암소들이 수태하기에 알맞은지 수시로 점검한다. 날짜가 정해지면 숫소와 함께 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준다. 루마는 또 새끼를 갖고 출산을 한다.

  농장에 끊임없이 울려퍼지는 시끄러운 팝송을 소들이 어떻게 느끼는지는 알 수 없다. 인부들이 좋아서 틀어놓은 노래를 들으며 소들은 정해진 일과에 맞추어 축유기에 몸을 맡긴다. 계속 자라는 발굽도 주기적으로 다듬고 잘라주어야 한다. 좋은 품질의 우유를 생산하기 위해 젖소들은 정해진 매뉴얼에 맞추어 관리된다. 이 농장의 시스템이 특별히 비인간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근처에 목초지가 있어서 소들은 비록 짧은 시간이기는 하지만 그곳에서 지낼 수 있다. 감독 안드레아 아놀드는 소들을 우리와 같은 감정을 가진 생명체로 바라보도록 만든다. 소들이 밤하늘의 별을 보고 울 때,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가는 새들을 볼 때, 관객은 무언가 이 소들에게 미안함을 느낀다. 그 크고 순한 눈망울을 지닌 동물이 고통도 슬픔도 모른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그곳 농장의 소들은 오직 인간을 위해서 온전히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준다. 전통적 낙농업에서 키우는 사람과 가축 사이에 존재했던 유대감은 오늘날의 기업형 낙농업에서는 존재할 수 없다. 소는 상품이며 거기에서 최대한의 이윤을 뽑아낼 수 있도록 잘 관리되어야만 한다. 우리가 먹는 우유와 고기, 유제품은 바로 그러한 과정을 통해 생산된다. 이 다큐가 채식주의를 고양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안드레아 아놀드는 상품 생산을 위해 사육되는 가축이 아니라, 우리와 이 지구상에 함께 살아가는 생명체로서의 '소'를 바라보도록 요구한다.

  다큐의 마지막, 한적한 축사에 홀로 있는 루마에게 한 그릇의 사료가 주어진다. 잠시 후 들리는 짧고 날카로운 총성. 농장의 1139번, 루마는 그렇게 농장에서의 삶을 끝마쳤다. 모든 사람들이 채식주의자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육식의 미래는 인류를 위해서도, 지구를 위해서도 지속가능하지 않다. 과학자들이 인공육을 비롯해 다양한 방식의 대안을 모색하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이다. 소들은 비좁은 축사에서 끊임없이 오물 바닥을 오가며 새끼를 낳고, 우유를 짜내며, 인간의 손에 의해 죽는다. 'Cow'는 축산업과 육가공업의 근원적 토대에 대한 묵직한 물음을 던진다.


*사진 출처: themoviedb.org



**동물을 다룬 다큐 리뷰

농장의 돼지 Gunda의 삶, Gunda(2020)
터키 길거리 떠돌이 개의 삶, Stray(2020)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1/11/aquarela2018-gunda2020-stray202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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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다니자키 준이치로(谷崎潤一郎, 1886-1965)는 일본의 침략전쟁이 정점으로 향해가던 1943년에 이 소설의 상권을 발표했다. 소설에는 1936년부터 1941년에 이르는 시간 동안 오사카 거상 마키오카가의 네 자매 이야기가 펼쳐진다. 하지만 당시 일본 정부는 소설의 내용이 전시(戰時)와는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후의 집필분에 대한 발표와 출간을 금지했다. 다니자키 준이치로는 종전 이후인 1948년에 소설을 완성했으나 이제는 연합군 총사령부(GHQ)의 검열이 문제였다. 전쟁을 미화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부분은 삭제할 것을 권고받았다. 마침내 1949년에 소설의 전권이 완간되었다(출처: ja.wikipedia.org).

  군국주의 정부 치하에서는 전시와 동떨어진 호사스러운 이야기로, 종전 이후 GHQ 통치 시절에는 전쟁 미화를 이유로 출판이 어려웠던 소설.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세설(細雪)'에는 그런 배경이 숨겨져 있다. '부드럽게 흩날리는 눈'이란 뜻의 제목 '細雪'에서는 원작자의 유미주의적 감성이 느껴진다. 마치 1차 대전 직전의 서구 유럽 세계를 '아름다운 시절(Belle Époque)'로 부르는 것처럼 작가는 오사카와 고베를 중심으로 한 도시의 세계를 그렇게 바라보았다. 그의 그런 관점은 마키오카 가문 네 자매의 이야기를 통해 명확하게 드러난다.

  영화 '마키오카 자매들(The Makioka Sisters, 1983)'은 네 자매가 벚꽃놀이를 위해 모이는 회합 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 세 자매는 첫째 언니 츠루코가 오길 기다리면서 대화를 나눈다. 막내 타에코는 부모가 남겨준 재산에서 자기 몫의 혼인지참금을 달라고 둘째 언니를 조른다. 둘째 사치코는 큰언니 츠루코의 허락이 있어야한다고 말한다. 마침내 나타난 츠루코는 셋째 유키코가 결혼을 해야 타에코가 그 돈을 받을 수 있다며 그 요청을 거절한다. 이 집안의 가장 중대한 관심사는 셋째 유키코의 혼사이다. 매우 내성적인 성품의 유키코는 거듭되는 혼담에 지쳐있다. 츠루코는 마키오카 가문의 명망에 걸맞는 혼처 자리를 알아보려고 하지만 쉽지가 않다. 그 와중에 자유분방한 막내 타에코는 남자 문제로 언니들의 골머리를 썩인다.

  비록 가세가 기울기는 했지만, 마키오카 자매들은 오사카 명문 거상 집안 출신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가문의 실질적 수장은 장녀 츠루코로 츠루코는 동생들의 안위를 보살핀다. 그럼에도 대외적으로는 츠루코의 남편 타츠오가 '마키오카' 호적에 입적해서 가문을 대표하고 있다. 마키오카로 성씨를 바꾼 것은 둘째 사치코의 남편 테이노스케도 마찬가지. 이 집안의 남자들은 데릴사위로 마키오카 가문에 종속되어 있다. 네 자매 가운데  '마키오카'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를 가장 갑갑하게 느끼는 사람은 막내 타에코이다. 타에코는 불장난 같은 연애 사건으로 신문에 이름이 실린 적이 있다. 타에코는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기 위해 인형을 만들어 백화점에 납품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 하층민 집안 출신의 사진사 이타쿠라와 결혼하려고 한다.

  마키오카 자매들에게 가문의 명예를 지키는 일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츠루코가 서른이 된 유키코의 혼담을 계속 결렬시키는 이유는 혼처 자리가 마키오카 가문의 격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나중에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중년 남자의 재취(再娶) 혼담만 이어진다. 그럼에도 돈과 사회적 지위에 대한 속물적 판단을 거둘 수는 없다. 유키코는 자신의 결혼을 둘러싼 그런 압력에 완강히 저항한다. 계속 퇴짜를 놓으면서 진정으로 마음에 드는 상대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영화 '마키오카 자매들'에서 시대적 배경은 의도적으로 삭제된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당시 일본은 군국주의의 광기가 점차 고조되는 때였다. 영화 속 마키오카 자매들의 삶은 매우 안락하며 그 어떤 어려움도 느껴지지 않는다. 유키코가 선을 보는 호사스러운 음식점. 어디선가 들리는 비감한 노랫소리는 전선으로 떠나는 군인의 송별회가 열리고 있음을 알려준다. 전쟁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바람처럼 묘사된다. 유키코는 기차 안에서 자신을 훔쳐보던 앳된 얼굴의 군인이 부끄러움으로 고개를 수그리는 것을 본다. 술에 취한 타에코가 술집을 떠날 때, 거리를 뒹구는 신문에는 일본 관동군의 중국 침략 소식이 실려 있다.

  전쟁의 현실과 유리된 중산층의 삶. 마키오카 자매들이 살고 있는 오사카는 진공의 세계와도 같다. 그곳의 시간은 느리고 평온하게 흘러간다. 마침내 유키코는 마음에 드는 결혼 상대자와 만난다. 귀족 가문의 차남인 이 남자는 마키오카가에서 찾는 구혼자의 조건에 부합한다. 유키코가 결혼으로 상류층으로의 계층 이동에 성공하는 것과는 달리, 타에코의 위치는 급전직하한다. 애인 이타쿠라의 갑작스런 병사로 방황하던 타에코는 술집 바텐더와 살림을 차린다. 이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여성은 가문의 물질적 지원을 거절하고 재봉사로 자신의 삶을 꾸려가기로 한다.  

  영화 '마키오카 자매들'의 시대적 배경이 되는 1940년대 제국주의 일본, 그리고 영화가 제작된 1983년이라는 시점 사이에는 무려 40년에 가까운 시간적 간극이 존재한다. 과연 영화가 개봉된 당시의 관객들은 이 영화에서 전쟁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어려웠을 것이다. 영화는 벚꽃이 날리는 봄에서부터 세설이 내리는 초겨울까지, 마키오카 가문의 1년을 아름다운 화폭의 그림처럼 담아낸다. 그 풍광 속에는 비탄이나 눈물, 궁핍함은 물론이고 고통도 없다. 나라 안팎은 전쟁의 광풍이 몰아닥치고 있는데, 마키오카 자매들의 삶은 거기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존재한다. 츠루코는 유키코의 결혼을 앞두고 가보로 물려받은 값비싼 기모노를 온집안에 펼쳐놓는다. 촬영을 위해 특별히 대여한 수십억 원에 이르는 화려한 기모노를 보고 있노라면 이 영화에서 '전쟁'이라는 두 글자는 아스라이 사라져 버린다.

  이치카와 콘은 영화에서 전쟁의 공포와 패전의 수치심을 말끔히 제거하고, 오직 마키오카 가문 아씨들의 미시적 삶에 집중한다. 흥미로운 이야기는 있지만 냉철한 시대 인식이 결여된 이 영화는 흥행에 성공했다. 감독 야마다 요지는 이와는 다른 관점에서 일본의 침략 전쟁을 비판한다. '어머니(母べえ, Kabei: Our Mother, 2008)''작은집(小さいおうち, The Little House, 2014)'에는 원로 감독의 날카로운 역사적 성찰이 들어있다. 그렇다면 이치카와 콘의 안일한 복고주의 감성을 보여주는 '마키오카 자매들'은 실패작인가? 세계의 경제 대국으로 부상한 일본은 더이상 전쟁을 암울하게 기억할 필요가 없었다. 어떤 면에서 '마키오카 자매들'은 그러한 인식의 변화를 나타내는 리트머스 시험지 같은 영화일지도 모른다.


*사진 출처: themoviedb.org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소설 원작, 도요타 시로 감독

고양이와 쇼조와 두 여자(猫と庄造と二人のをんな, 1956) 리뷰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1/05/1956.html



***전쟁을 배경으로 한 야마다 요지 감독의 영화 리뷰

어머니(母べえ, Kabei: Our Mother, 2008)
작은집(小さいおうち, The Little House, 2014)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2/02/yamada-yoji-voices.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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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도련님(ぼんち, Bonchi, 1960)'은 번영하는 일본의 모습을 몽타주 쇼트로 보여주면서 시작된다. 거대한 공장들과 그곳의 굴뚝들, 도시의 빌딩숲, 도로를 가득 메운 사람들... 바야흐로 일본은 패전의 상처를 딛고 고도 경제 성장 체제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쇼트는 크레인으로 촬영된 부감 쇼트이다. 늙은 남자는 후미진 골목의 낡은 목조 건물로 들어선다. 그는 조문을 하러 왔다. 거실에는 그 집의 주인 키쿠지와 두 아들이 있다. 머리가 허연 주인은 자신이 상인 집안의 후계자였다는 이야기로 말문을 연다. 그렇게 영화는 플래시백으로 철없는 도련님 키쿠지의 젊은 시절로 들어간다.

  영화의 제목 'ぼんち'는 오사카 거상(巨商)의 아들을 부르는 애칭이다. 전통적인 상업 도시였던 오사카에는 큰 부를 쌓은 상인 가문이 많았다. 영화의 주인공 키쿠지(이치카와 라이조 분)는 버선으로 일가를 이룬 상인 집안의 유일한 후계자이다. 그런데 이 집안의 분위기는 어째 좀 이상하다. 키쿠지를 쥐락펴락하는 이들은 외할머니와 어머니이다. 키쿠지의 부친은 그저 가게에서 묵묵히 일만 할 뿐이다. 그는 집안의 대소사에 별다른 발언권이 없는 사람처럼 보인다. 외할머니와 어머니는 키쿠지의 아내를 맘에 들지 않는다며 내쫒는다. 철없는 도련님 키쿠지는 그러거나 말거나 게이샤들을 끼고 사랑 놀음에 열중한다. 그는 자신의 뜻대로 절대 결혼할 수 없다. 이 집안의 권력은 외할머니에게 있다. 외할머니가 거상 집안의 주인이며 키쿠지의 아버지는 데릴사위로 아무런 힘도 없다.

  배우 이치카와 라이조는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 '금각사'를 영화화한 '불꽃(炎上, Conflagration, 1958)'으로 스타의 길에 들어선다. 감독 이치카와 콘에게도 그 영화는 특별했다. '불꽃'을 통해 이치카와 콘은 자신의 영화적 역량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배우와 감독은 다시 만나서 영화를 찍었다. 영화사 다이에이는 오사카 출신의 소설가 야마자키 토요코(山崎豊子)가 쓴 소설을 영화로 만들기로 결정했다. 이제 서른을 앞둔 젊은 배우는 희끗한 머리의 중년 남자를 능청스럽게 연기해낸다. 이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이치카와 라이조의 재능에 새삼 감탄하게 된다.

  영화는 가모장(家母長)의 권위에 휘둘려서 자신의 삶을 온전히 살아내지 못하는 키쿠지의 삶을 연대기로 보여준다. 방탕하고 분별력이 없는 도련님 키쿠지의 인생은 군국주의 일본의 흥망성쇠와도 겹친다. 감독 이치카와 콘은 개인의 인생과 시대가 겹치는 접점을 삽화적으로 제시할 뿐, 거기에 큰 의미를 두지는 않는다. 일본의 침략 전쟁이 확대되는 동안 키쿠지의 사업은 점차 기운다. 영악한 게이샤 애인들은 이 어리석은 도련님을 철저히 이용해먹는다. 연합군의 공습 속에 마지막 남은 창고를 지켜내기는 하지만, 키쿠지는 사업 자금을 애인들에게 다 나누어 준다. 외할머니는 가문의 몰락을 예감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결국 거상 집안의 부는 키쿠지의 대에서 사라져 버린다. 돈과 사람으로 흥청거렸던 거상의 가옥은 이제 비좁고 추레한 장소가 되어버렸다. 이치카와 콘은 '집'이라는 공간을 통해 철부지 도련님 키쿠지의 인생을 압축적으로 그려낸다. 그는 냉담한 혈족과 시대의 풍파 속에서 길을 잃었다. 키쿠지는 좋았던 과거에 대한 기억을 잊지 못한다. 아들에게 결코 집을 팔지 않겠다고 말하는 키쿠지는 장사를 다시 시작할 거라는 희망도 갖는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늙은 하녀는 젊은 키쿠지가 당당하게 집을 나서는 모습을 회상한다.

  영화 '도련님'은 표면적으로는 허랑방탕한 젊은 상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하지만 이 영화를 곰곰히 뜯어보면 거기에는 제국주의 시절의 일본에 대한 기묘한 향수가 느껴진다. 가문의 부를 상속받은 키쿠지는 주색잡기에 아낌없이 돈을 쓴다. 도련님에게는 아무런 근심 걱정이 없었다. 분명히 키쿠지의 몰락은 그 자신의 무분별함과 어리석음에 대한 댓가이다. 그럼에도 상인 가문의 오랜 전통을 끝장나게 만든 가장 큰 이유는 '전쟁'에 있다. 외부의 적대적 세력은 좋았던 시절을 모조리 파괴해 버렸다. 거기에서 일본의 침략 전쟁에 대한 반성이나 성찰은 결여되어 있다.

  영화는 오사카의 오랜 전통과 번영이 끝나버렸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은밀하게 드러낸다. '도련님'에서 보여준 이치카와 콘의 이러한 역사 인식은 그의 영화 '마키오카 자매들(細雪, The Makioka Sisters, 1983)'에서 그대로 재현된다. 이 영화는 다니자키 준이치로(谷崎潤一郎, 1886-1965)의 소설을 영화화했다. 주인공들은 오사카 상인 집안의 자매들이다. 복고주의적 감성의 끝판왕인 이 영화에서 전쟁은 고통이 아닌 그리움으로 자리매김한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다루겠다.   


*사진 출처: kookaimorita.livedoor.blog



**이치카와 라이조 주연의 영화들

미스미 켄지 감독, 이치카와 라이조 주연
무숙자(無宿者, On the Road Forever, 1964)와 검(劍, Ken, 1964) 리뷰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2/09/on-road-forever-1964-ken-1964.html

마스무라 야스조 감독, 이치카와 라이조 주연
나카노 스파이 학교(Nakano Spy School, 1966) 리뷰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2/09/nakano-spy-school-1966.html

야마모토 사츠오 감독, 이치카와 라이조 주연
닌자(忍びの者, Shinobi no Mono, 1962) 리뷰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2/09/shinobi-no-mono-1962-8.html

続・忍びの者(Shinobi no Mono 2: Vengeance, 1963)
新・忍びの者(Shinobi no Mono 3: Resurrection, 1963)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2/09/2-shinobi-no-mono-2-vengeance-1963-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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