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데없는 이야기책이 집 안에 들어오면 정치경제학은 위험에 빠진다. 세상은 새롭게 보이기 시작하고, 공상하고 느끼는 비경제적인 활동이 기승을 부릴 것이며, 더 나쁘게는 그것이 실제로 발현되기까지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드그라인드 씨는 옳다. 분명 문학과 문학적 상상력은 전복적이다. 이제 우리는 문학을 선택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데 익숙하다. 즉, 문학은 위대하고 소중하고 흥미롭고 훌륭하지만, 대학의 학과 중 하나로 정치, 경제, 법적 사유와는 동떨어진 분야로 생각하거나, 또 그것들과 동등한 것이라기보다는 부수적인 것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근대 학문이 분화의 길을 걷고 문학의 가치에 대한 편협한 쾌락주의적 이론이 자리 잡으면서 우리는 그래드그라인드 씨가 굳건히 붙들고 있었던 통찰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가 주목한 점은 다음과 같았다. 즉 소설(지금부터는 소설 작품들에 주목할 것이기에)은 고유한 형태와 스타일, 그리고 독자와의 소통 방식을 통해 삶의 규범적 의미를 표현함으로써 도덕적 문제를 제기하는 형식을 띤다. 그리고 독자들에게 참과 거짓을 분별할 수 있게 해주며, 한 방식이 아닌 다른 특정한 방식으로 행동하도록 만든다. 또한 독자들을 특정한 정신과 마음 자세를 갖도록 이끈다. 그리고 그래드그라인드 씨가 아주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었듯이, 좁은 의미의 경제적 합리성- 그의 견해에서는 이것이 공적 사유와 사적 사유 모두의 규범이 된다 -의 관점에서 볼 때 이러한 마음가짐들은 잘못된 것이며 매우 위험한 태도에 해당한다. 

 하지만 그래드그라인드식 경제학의 시각에서 볼 때, 만약 문학이 위험하고 통제되어야 마땅한 것이라면, 이는 또한 문학이 더 이상 단순한 장식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는 것, 그래서 우리의 공적인 삶에 두드러진 기여를 할 잠재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만약 누군가 그래드그라인드 씨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책들에 대해 - 그것이 인류의 비전이나 사회적 삶에 대한 온전한 의미를 나타내는 데 적합한지를 따져서 - 의문을 품어본다면, 그래드그라인드 씨가 강력히 거부하면서도 쓸데없는 이야기책들의 의미를 설명하기 위해 이를 집으로 가져오는 이유를 알 수 있다. 만약 이야기책들이 갖는 의미를 변호하는 데 성공한다면, 우리는 책들이 집에 머물러도 되는 강력한 이유를 가지게 될 것이다. 즉, 아이들의 지각을 형성하는 집과 학교뿐만 아니라, 공공정책과 사회발전을 연구하는 대학에서도, 정부와 법정에서도, 심지어 로스쿨에서도 - 공적 상상력public imagination이 형성되고 길러지는 곳 어디에서든 - 이야기책은 공적 합리성 교육에 필수적인 부분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27-28)










  식혜를 마시면서 문장 옮기기, 읽고 싶은 책들이 있다고 해서 마냥 사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식재료도 사야 하고 옷도 사야 하고 귀금속도 사야 하고 아이의 학원비와 아이의 옷과 신발과 아이의 책도 사야 한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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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뇌과학 - 당신의 뇌를 재설계하는 책 읽기의 힘 쓸모 많은 뇌과학 5
가와시마 류타 지음, 황미숙 옮김 / 현대지성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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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독, 종이사전, 손으로 연필 쥐고 종이 위에 글씨 쓰기, 음력 새해를 맞이해서 조금 새로운 습관을 붙여보기로. 저자의 표현대로라면 너도나도 미친듯 운동해서 좋은 몸, 좋은 삶 살아보겠노라 하는데 거기에서 뇌는 왜 빼놓니, 뇌도 필요해, 좋은 운동 전신 운동! 해서 오 하고 메모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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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를 읽다, 마음을 읽다 - 뇌과학과 정신의학으로 치유하는 고장 난 마음의 문제들 서가명강 시리즈 21
권준수 지음 / 21세기북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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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독, 인간의 뇌는 휴식을 취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빵!하고 터져버린다. 스스로를 놓아버린다는 뜻. 쉬는 동안 잘 쓰담쓰담해주면 금세 활기를 찾아 가동성 있게 움직이고. 1만 시간의 법칙과 휴식의 중요성, 예술가의 뇌는 일반인의 뇌와 다르다는 점. 우울증의 무게차는 딱 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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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5-01-28 09: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재독까지 하셨다니 이 책이 달리 보이네요. 저의 뇌는 휴식을 너무 야무지게 잘 취한답니다. 그래서 조금 달려줘야 하는데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일단 오늘 말고. 내일은 설날이니까 패쓰. 목요일엔 어디 가야해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수이 2025-01-28 09:25   좋아요 1 | URL
단발님은 언제나 달리시기 때문에 좀 쉬셔야 합니다. 달리기 하면서 쉬세요, 그래야 뇌가 좋아합니다 ㅋㅋㅋㅋㅋ
 
토니 모리슨의 말 -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의 생애 처음과 마지막 인터뷰 마음산책의 '말' 시리즈
토니 모리슨 지음, 이다희 옮김 / 마음산책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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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태도를 가늠해보기 딱 알맞은 때에 내게 온 책, 작가의 작품은 많이 읽지 못했으나 읽는 면면 영혼이 강풍에 휘날릴 적마다 어떤 확고한 태도를 지니라고, 그게 좋을 거라고 혼내지도 않고 강한 어조로 이야기하지 않고 넌지시 속삭임을 건네받았던 것도 같다. 오래도록 재독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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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5-01-28 0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정말 좋았어요. 무엇보다 이 분이 얼마나 강한 분이신지 느껴졌구요. 그렇게 단호하면서도 어쩜 이리 부드러우신지.
저도 재독 예약!

수이 2025-01-28 09:24   좋아요 1 | URL
단발님 닮았어요, 강한 부드러움, 부드러운 강함.

단발머리 2025-01-28 09:25   좋아요 1 | URL
진짜요? ㅋㅋㅋ🙂‍↔️🤩😘☺️😎

수이 2025-01-28 09:26   좋아요 1 | URL
네, 진심. 일단 우리는 뼈대가 굵고…… ㅋㅋㅋㅋㅋㅋ
 


















글쓰기를 가르치는 게 가능한가요? 라는 질문에 토니 언니 왈, 일부를 가르치는 건 가능하죠. 비전이나 재능은 불가해도, 허나 글쓰기를 '편안하게 느끼도록'. 여기에 밑줄 그었다. 고등학교 다닐 때, 베프가 글쓰기 부탁을 한 적이 있다. 단칼에 거절했다. 그건 네 이름으로 나가야 하는 글이고 네 시선으로 네 생각이 들어야 하는 글인데 그걸 내가 쓰고 네 이름으로 나간다? 그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야, 라고 화를 내지 않고 이야기했다. 글을 쓰지 못하는 것도 아닌데 왜 그걸 내게 부탁하느냐 했을 때 내가 3시간 걸려 할 일을 너는 30분 만에 끝낼 수 있잖아, 라고 했다. 그건 내 재능이다. 그러면 선생님께 가서 이야기해. 내가 써줄게, 대신 내 이름으로 내. 나는 네가 아니다. 내 글은 나만의 것이고. 물론 지나고보니 너무 차가웠던가 싶지만 한 시간 넘게 징징거리며 부탁하니 어느 순간 짜증이 확 일었고 있는 그대로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 일이 있고난 후 베프라고 여겼던 그 친구는 나를 칼같이 끊었다. 솔직히 그런 생각을 가진 이를 내 베프라고 여겼던 나 스스로가 한심해서 절연에 대한 슬픔이나 고통 같은 건 느낄 수도 없었다. 모범생이요, 착하고 다정해서 많은 아이들에게 인기가 있었던 친구였다. 하지만 그 친구와 절연한 순간 완벽한 인간이란 존재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친구를 이용하기도 하는구나 그게 바로 인간이구나 하고 깨닫기도 했다. 고등학교 시절에 만난 문학과 선생님들과 대학교 시절 내 은사들이 아니었다면 나는 쓰기를 편안하게 여기지 못했을 것이다. 그건 모조리 그들 덕분이었다. 네 혀는 네 열 손가락 끝에 달려 있구나, 라고 선생님은 코멘트를 달았다. 토니 모리슨을 읽다가 이 문장을 읽고 그렇지, 만일 선생님의 그 코멘트가 아니었더라면, 그 선생님들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그 수많은 내 선생들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아마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이게 내 한계라는 걸 물론 알고 있고. 공간은 널찍하고 난방기가 강하게 돌아가지 않아서 공기는 좀 썰렁한 편이다. 뜨거운 커피는 차가운 공기로 인해서 금방 식어버렸다. 글쓰기가 편안하게 느껴지면 좋은 생의 이점들은 무엇이 있을까. 뭐가 있으려나. 작년에 열심히 쓴 편지들을 읽어보았다. 완전 미친년이 따로 없었구나 알았다. 아침을 먹으면서 아이에게도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엄마는 그때 미쳤고 그게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았다고 했다. 다 삭제할까 하다가 아니다, 그때 미쳤던 나도 나였다 싶어서 정말 이건 못보겠다 싶은 것들만 삭제했다. 메모를 하고 정리를 하고 그 안으로 어떤 것들을 쏟아부을 수 있을까 글쎄, 그건 가봐야 알 일이겠지. 요즘 들어 슬슬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알았다. 집중력을 도둑맞았던 거로구먼, 라는 걸. 그 집중력을 너무 다른 곳으로 쏟아부어서. 그렇다고 해서 그 리비도를 다른 식의 활동에 쏟아부을 생각을 하지 못했던 걸 보면 결이 다른 리비도가 아닌가 싶기도. 그 리비도와 이 리비도에 경계가 있고 그걸 뒤섞을 생각이 나는 없다, 여전히 그러하고. 존경도 없고 폄하도 없다. 정도껏의 애정과 정도껏의 무관심일뿐. 내 안에는 특유의 스토이시즘이 있는데 이 뷰포인트가 나를 제3자로 만들어주는구나 알았다. 잘 쓰고 잘 읽는 이들은 깔렸다. 단순히 그 행위를 잘 한다고 해서 호기심이 일지도 않고 애정이 지속되지도 않는다. 글 잘 쓰는 친구 하나가 있는데 더 이상 그 친구에게 일절 애정이 가지 않는 걸 보고 또 알았다. 잣대를 어디에 두었는지 알겠더라. 베셀 작가가 되면 좀 다시 애정이 생기려나 싶기는 한데 베셀 작가가 되어도 애정은 일어나지 않을듯 하다. 친구였을 때는 너와 나의 결이 같다,는 말이나 그 애인이 제일 닮았다는 소리를 들려줬을 때 아 뭔가 기쁘군 했으나 친구가 아니라고 여겨진 순간부터는 너와 나는 다른 결이다, 비슷한 관계를 가졌다 해서 같은 종족으로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라고 거리를 두는 나를 보고 또 알았고. 눈발이 날렸다가 멈췄다가 한다. 가치를 어디에 지니는지 알 거 같네. 깨끗하다고 여겨지는 면모와 더럽다고 여겨서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것들. 업보라는 게 있다면 그걸 주관할 이는 내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내 업보는 내가 알아서 한다. 그러니 제발 관심도 없는데 내 업보를 갖고 왈가왈부 하지 마. 한 녀석은 장자를 갖고 그렇게나 깨닫는 척을 하더니만 또 한 녀석은 붓다 말씀 연이어 계속. 아 머리 아파. 라는 소리가 나오기도 나왔다. 딸아이가 같이 커피를 마실 나이가 되었다는 게 신기하긴 신기하군. 낯선 말로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고스란히 쓰지 못할 때의 답답함과 갑갑증을 얼마나 느껴야 하나. 언니 시나리오 작품 엎어졌다. 세상이 날 억까해, 라면서 5키로 빠졌다고. 술 마시지 말고 담배 태우지 말고 억까 한두 번 당하나, 우리 나이에, 밥 챙겨 먹어, 잠 잘 자고. 했다. 세상이 날 억까해, 이럴 때는 스토아주의로 나가는 게 제일 마음 편함. 문장을 직조할 때, 그 직조 과정을 배우는 게 나는 좋은 거로구나 그것도 이번 기회에 새삼 알았다. 문장의 구조를 알고 낯선 말을 익숙한 말로 바꾸고 익숙한 말이 낯선 음향으로 같은 의미를 지닐 때. 눈이 하염없이 내리는 걸 창 밖으로 마주본다. 1년 전에는 눈도 좋았고 눈 설 그 글자도 좋아했다. 1년이 흘렀고 눈은 여전히 좋지만 눈 설 그 글자는 이제 싫어한다. 함께 사는 동안에는 스트레스를 매일 받아서 어쩔 줄 몰라 했는데 헤어지고난 후 완벽한 타인의 자리에서 서로를 마주할 때는 더할 나위 없이 친절하다. 인간 대 인간으로서. 이건 참 낯설면서도 신기한 경험이군. 거리감을 두고 서로를 완벽한 타인으로 대한다는 것. 인간이 실패를 두려워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 실패로 인해서 얼마나 고통을 겪어야 하는지 미리 헤아린다고 해서 딱 그 헤아린 만큼의 고통을 당하는 것도 아니기에. 하지만 확실한 건 실패를 한 인간은 한 번 더, 그러니까 실패를 다시 맛보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거다. 어느 정도 내가 모럴을 갖고 있는 인간이라고 칠 때, 내 모럴의 기준은 이거라는 걸 올해 1월 알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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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5-01-27 19: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 수이님의 글을 읽을 수 있게 해주신 그 선생님들께 저도 감사드리고 싶어요.
눈이 펄펄 내리더라구요. 온 세상이 눈천지ㅋㅋㅋㅋㅋㅋㅋㅋ☃️

수이 2025-01-27 19:54   좋아요 1 | URL
언니 오늘 겁나 춥죠? 간만에 한강 얼 거 같은 날씨.

단발머리 2025-01-27 19:57   좋아요 1 | URL
네, 많이 춥네요ㅋㅋㅋ 전 기모청바지에 기모티, 오리털 점퍼를 입어서 많이 춥지는 않았어요. 내일 춥다고 해요. 장갑도 끼자고요!🧤

수이 2025-01-27 20:13   좋아요 1 | URL
내복은? 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