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3 - 콜럼버스가 문을 연 호모제노센 세상
찰스 만 지음, 최희숙 옮김 / 황소자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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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찰스 만은 자신의 텃밭에 토마토 씨앗을 심으며 토마토가 어디서 왔는지를 생각하면서 이 방대한 책을 시작한다. 원래는 아메리카에만 살고 있던 토마토가 유럽으로 건너가서 아시아를 거쳐 다시 미국에 있는 자신의 손에 들어오기까지 토마토의 여정을 생각하면서 콜럼버스 대전환이라는 역사의 중요한 지점을 탐구하게 된다.

얼마 전에 나도 대추방울토마토 모종 2그루를 사와서 심었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토마토는 막연하게 유럽 지중해 지역에서 많이 먹으니까 그쪽에서 온 작물이려니 하고 그냥 별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토마토는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아메리카에만 있던 작물이었다고 한다. 토마토소스에 진심인 것처럼 보이는 이탈리아, 스페인 등의 나라에서 토마토를 먹기 시작한 역사가 생각만큼 길지 않았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게다가 안데스 일대에서 발원한 식용할 수 없던 토마토를 식용 가능한 토마토 종자로 만들어낸 곳은 멕시코 지역이었다는 사실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

그렇게 토마토는 콜럼버스의 항해 후 유럽으로 갔다가 돌고 돌아 우리 집 텃밭에 까지 올 수 있었다.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토마토 모종 하나로 이렇게 까지 큰 역사를 생각해보지 못 했을 텐데 역시 사람은 책을 읽어야 하는구나 싶었다.

 

 

제목 “1493”은 콜럼버스가 14921차 항해로 히스파니올라섬에 도착하고 나서 스페인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2차 항해로 히스파니올라섬에 도착한 해를 말한다. 1차 항해로 유럽에서 아메리카로 유럽의 인간과 동식물을 옮겨 놓고 다시 스페인으로 돌아가 아메리카의 동식물을 유럽으로 옮기고 돌아온 그 해. 두 대륙 간 생물이 교환되기 시작한 시점을 1493년이라고 저자는 본 것 같다.

콜럼버스의 항해 이후 생태적으로 뚜렷하게 구분되었던 장소들이 점점 유사해 져서 균질화, 동질화 되었다고 해서 호모제모센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1493년 이후 유럽, 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가 연결이 되면서 인간과 생태계, 문화, 경제가 어떻게 상호작용을 했는지 이 책은 말하고 있다. 인간과 동식물이 대륙 간 이동하고 섞이면서 세계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게 된 과정의 큰 그림을 이 책을 읽으며 그려볼 수 있었다. 그러니까 콜럼버스의 항해 이후 세계가 점점 비슷해져서 오히려 좁아지는 세계를 생생하게 볼 수 있었다고나 할까?

 


콜럼버스가 죽은 후 유럽과 아메리카가 서로 연결되어 있던 시점에서 스페인은 멕시코에서 태평양을 건너 드디어 중국과 연결되게 된다.

스페인은 아메리카에 식민지를 만들고 은 광산을 발견한 후 엄청난 은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 은으로 태평양을 건너 마닐라에서 그토록 염원하던 중국 상선과 무역을 시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게 스페인뿐만 아니라 중국에까지도 은이 마구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한다. 이것은 두 나라의 부를 일구기도 했지만 썩 좋지 않은 결과를 낳기도 한다. 먼저 스페인은 은 광산의 부로 여기저기 전쟁을 일으켰고 들어오는 은 이상으로 지출을 하게 된다. 하지만 마르지 않는 은 광산을 믿고 마음 놓고 은행에 빚을 내는 바람에 결국 파산하게 된다. 그 틈으로 당시에는 상대적으로 못 살았던 영국이 치고 올라오는 결과를 낳는다. 중국도 쏟아져 들어오는 은으로 인플레이션이 생겨서 결국 명에서 청으로 왕조가 바뀌는 일에 일조하게 되었다고.

 

 

스페인과 중국의 교류에서는 은, 실크, 도자기만 왔다 갔다 한 게 아니라 아메리카 대륙에 있던 작물까지 대륙 간 이동을 하게 되는데, 그게 바로 옥수수, 감자, 고구마다.

쌀농사를 짓던 중국에 메마르고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이런 작물들은 중국 인구 증가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인구 증가로 개간하지 않았던 산꼭대기나 숲이 있던 지역에까지 사람이 가서 살게 되었고 또 그런 곳에서도 옥수수와 고구마는 잘 자랐기에 나무를 싹 베고 밭을 만들었는데, 그 결과 산사태와 엄청난 홍수에 시달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건 지금까지도 문제라고.

 

유럽에도 아메리카에 있던 작물들이 보급되면서 일대 농업혁명이 일어나는데, 그동안 굶주림이 일상이던 유럽의 대다수 사람들도 감자 농사를 지으면서 비로소 덜 굶주릴 수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유럽은 대규모 감자 농사를 짓기 시작하지만 문제는 아메리카에서 유럽으로 작물만 갔던 게 아니라 감자에 치명적인 바이러스도 함께 이동하였기에 그 악명 높은 아일랜드 감자 기근이 발생하게 된다.

 


감자를 풍성하게 키우기 위해서 유기질 비료를 발견하고 감자 해충을 죽이기 위해서 농약을 개발하는 과정도 서술되어 있다.

감자를 기르던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배를 타고 구아노 섬에 가서 흙을 퍼 와서 감자밭에 뿌리곤 했다. 이를 지켜보던 유럽인들은 원주민을 따라 구아노 섬에 가보는데 그곳은 높이 40미터정도의 새똥으로 뒤덮인 새똥섬이었다. 그러니까 원주민들은 바삭하게 마른 새똥을 퍼 와서 감자밭에 비료로 줬던 건데, 그것을 본 유럽인들은 그 새똥을 자루에 담아서 본국의 농부들에게 팔았다. 구아노 섬의 새똥 비료는 어마어마하게 인기가 좋았고, 그것으로 인해 농작물에는 질소가 포함된 유기질이 좋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들은 이제 실험실에서 비료를 만들어내게 되었다고 한다.

내가 텃밭에 주는 화원에서 사온 유기질비료가 이런 역사로 만들어지게 되었다니. 비료에도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 이후라는 역사가 있고 그걸 알게 되어서 조금 기뻤다고나 할까^^


또한 소규모로 감자 농사를 짓던 아메리카 원주민들과는 다르게 한 가지 작물을 대규모로 심어서 감자 해충에 더욱 취약해진 유럽과 미국의 농장들로 인해 개발해낸 게 DDT였단다.

그러니까 비료와 농약이 다 아메리카 대륙에 있던 작물이 세계로 전파되면서 만들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아메리카에서 나온 작물로 세계는 굶주림에서 벗어나게 되었지만 또 그에 따른 반작용도 있었다는 사실, 또 그것들이 현재의 세계를 만들었다는 사실로 연결되자 역사가 참 흥미진진하게 느껴졌다.



근데 구아노 섬의 새똥 비료의 역사를 읽다가 가슴 아픈 부분도 있었는데, 바로 구아노 섬에서 일했던 사람들 이야기였다. 40미터나 켜켜이 쌓인 새똥은 악취가 말도 못하게 풍겼을 거고 거기에서 나오는 성분들이 사람 몸에 좋을 리도 없었다. 그래서 아무리 돈을 많이 줘도 그곳에서 일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없었다고 한다. 이미 아메리카의 농장에서 일을 하고 있는 아프리카 노예들은 농장일로도 일손이 달리는데 그곳에서 까지 일을 할 수도 없었고... 그래서 마닐라에 있던 중국인들을 배에 실어서 그곳까지 데리고 왔다고 한다. 주로 금광에서 일할 거라 속이고 데리고 와서는 이 새똥섬에 노예로 팔아버렸단다. 이 섬에서 일하다 못 견디고 자살하는 중국인들도 많았다고 하니 얼마나 비참한 환경이었을지... 게다가 중국에서 그 먼 땅까지 와서는... 같은 아시아 사람이라 그런지 이 부분을 읽는데 마음이 너무 안 좋았다.


 

콜럼버스의 항해 이후 아메리카 대륙을 식민지로 만들어 플랜테이션을 경영하려 했던 유럽인들은 늘 말라리아에 시달려야 했다. 유럽과 아프리카에서 인간의 몸을 타고 아메리카까지 전파되었던 이 전염병은 초기 아메리카 식민지를 텅텅비게 할 정도로 유럽인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신대륙에 가면 다들 죽어나갔기 때문이다. 이는 아메리카 원주민들도 마찬가지라서 원주민들을 노예로 플랜테이션을 하고자 했던 유럽인들은 말라리아로 죽어나가는 원주민들 말고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려야 했다. 바로 아프리카였다. 아프리카에서 배로 노예를 실어 와야 하고 말도 통하지 않고 언제든지 반란을 일으킬 수 있는 사람들을 노예로 부리는 일은 비용적으로 결코 좋은 선택이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아프리카에서 노예를 데리고 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바로 말라리아 때문이었다고 이 책은 말한다. 서아프리카 사람들에게는 바로 말라리아에 내성이 있었던 것이다. 말라리아에도 죽지 않았기 때문에 아프리카 사람들은 노예로 가치가 있었다니...참담함도 그렇지만 이런 관점은 처음 접해 보는 거라 사실 좀 놀라웠다.

 

 

처음 접해보는 새로운 관점이라 또 생각났는데, 이 책에서 소개하는 소빙하기의 원인도 나에게는 엄청 새롭게 다가왔다.

소빙하기는 1550년경부터 1750년경까지 북반구에 혹한이 찾아온 시기를 말한다. 이때 혹한이 닥친 이유는 바로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더 이상 불을 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가설을 소개한다. 콜럼버스의 항해 이전까지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숲에 불을 내서 개활했다고 한다. 철기시대까지 가지 못 했던 당시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큰 나무를 베기 위해서 불을 내는 게 최선이었을 것이다. 그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온통 불을 내서 땅을 개활했기 때문에 그동안 지구의 대기 중에 이산화탄소가 그만큼 많아졌는데 콜럼버스 항해 이후 땅을 개활할 원주민들이 전염병으로 죽고 더 이상 대규모로 불을 내지 않자 나무가 다시 숲을 이루게 되고 대기 중 이산화탄소가 감소하게 되어서 지구에 소빙하기가 찾아왔다는 것이다.

하나의 가설일 뿐이지만 어쩐지 그럴듯하다. 새로운 방향이기도 하고. 어쨌든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엄청나게 불을 내서 땅을 일구었다는 사실은 정말 사실이라니까 그런 생활방식도 알게 된 점도 재밌었다.

 

 

 

700쪽의 벽돌책이지만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고 참 재밌게 읽었다. 주로 세계사를 배울 때 무슨무슨 왕조의 이름을 외우고 특히나 유럽의 역사에서는 복잡한 왕가와 전쟁으로 넓어졌다 줄어들었다 하는 나라의 크기, 거기에 교황과 왕권의 정치를 배우는 식이라 정작 그게 다 지금의 나랑 무슨 상관인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은 인간과 경제, 생태계 환경에 대해서 전 세계가 어떻게 연결되어 왔는지를 다루고 있어서 아주 재미있게 읽게 된다. 지금 내가 먹고 있는 감자, 고구마, 토마토, 옥수수 등의 원산지를 알게 되고 그 작물들이 세계를 어떻게 연결했는지,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는 세계의 무역과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두루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가깝게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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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5-27 21: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재밌을거 같네요. 좋은 책 추천 감사드려요.

망고 2025-05-27 22:09   좋아요 1 | URL
두껍지만 재밌어서 빨리 읽을 수 있어요 꼭 읽어보셔요😄

페넬로페 2025-05-28 00: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492는 저절로 나오는 잘 아는 연도잖아요. 근데 1493이라~~
뭔가 흥미롭습니다^^

망고 2025-05-28 09:27   좋아요 1 | URL
제목이 저렇긴 하지만 굳이 1492나 1493이나 딱딱 구분할 필요는 없는거 같아요 그냥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발견 이후의 세계를 말하는거라😄 암튼 참 재밌는 책이니 읽어보셔도 좋을거 같습니다

단발머리 2025-06-01 08: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감자가 전해진 이야기는 한 번 들은 것도 같은데 토마토도 원산지가 아메리카였군요. 토마토 익혀서 올리브유 넣어 마시면서 이 글을 읽었어요. 멀리서도 왔구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요.
망고님이 술술 풀어주시는 이야기, 재미있게 잘 읽고 갑니다. 오늘 하루도 좋은 날 되세요, 망고님!

망고 2025-06-01 20:03   좋아요 1 | URL
토마토 원산지가 아메리카라는 생각을 한번도 해본적 없어서 이 책을 읽고 많이 놀랐어요. 앗 단발머리님이랑 찌찌뽕! 저도 오늘 익힌 토마토 먹었는데ㅋㅋㅋㅋㅋ
오늘 하루 마무리 잘 하시고, 신나는 6월을 보냅시다!
 
바움가트너
폴 오스터 지음, 정영목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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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세의 은퇴한 철학교수가 자신의 뿌리를 돌아보고 사랑하는 아내를 만나 살아온 삶을 회상하고 결국 앞으로 맞아하게 될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소설. 이 소설의 내용보다는 이 소설을 쓸 당시, 노년의 작가가 그려져서 조금 슬펐다. 이야기를 쓰는 사람으로 영원히 젊을 것 같던 그 폴 오스터가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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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자 2025-05-02 17: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때 폴 오스터의 마니아였어가지고 전작을 거의 다 가지고 있는데, 왜인지 뒤로 갈수록 시들시들해졌어요.ㅜㅜ 이 책, 오별이네요~

망고 2025-05-02 21:35   좋아요 0 | URL
저도 팬심으로 오별이긴한데 팬심을 빼면 사별 정도 되지 않을까 해요😭
 
정원의 기쁨과 슬픔 - 인간이 꿈꾼 가장 완벽한 낙원에 대하여
올리비아 랭 지음, 허진 옮김 / 어크로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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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비아 랭의 책은 처음이다. 검색해 보니 번역서가 여러 권 나와 있던데 내 흥미를 끌 정도는 아니었는지 읽은 건 없고 제목만 조금 낯이 익은 책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나온 이 책은 일단 제목에 마음이 쏠렸다. 나는 정원 가꾸기에 꽤 관심이 있는데 무려 정원의 기쁨과 슬픔에 관한 책이라니...반가운 마음에 드디어 올리비아 랭의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은 작가가 직접 정원을 가꾸게 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2020년 코로나 시기에 남편과 함께 마련한 집에 이사를 가면서 정원 생활을 하게 된다. 오랫동안 방치된 정원은 잡초가 우거지고 여기저기 덩굴이 자라나고 죽은 나무와 썩은 뿌리들이 뒤덮고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그러한 겉모습 속에서도 이 정원이 원래는 전문가의 계획적인 솜씨가 들어간 아름다운 공간이었다는 흔적이 남아있다. 이 집은 원래 유명한 정원사가 소유했던 집이었고 작가는 그가 디자인 하고 가꾸었던 정원의 모습을 복원하고자 한다. 그와 친했던 사람들을 찾아 나서고 예전의 정원 사진을 보면서 거기에 있던 꽃과 나무들의 목록을 작성해 정원에 다시 심기도 한다.

이렇게 작가는 정원을 복원해 나간다는 사적인 이야기를 기록하는 와중에 정원이라는 주제에서 파생되는 여러 가지 사유들을 끄집어낸다.

 

 

파라다이스라는 단어는 기원전 페르시아에서 쓰던 언어에서 유래한 단어인데 그것은 담으로 둘러싸인 정원을 뜻한단다. 그러니까 애초에 파라다이스는 정원을 이르는 단어였고 후에 파라다이스가 낙원이라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작가는 이 발견에 놀라워하며 어린 시절 정원과 낙원을 연결시켰던 기억을 떠올린다. 어릴 때 다니던 학교 정원이 작가에게는 낙원과 같았다고 추억한다. 하지만 당시에는 학교를 거의 추방당하다시피 떠나게 되었단다. 작가의 어머니가 동네에서 아웃팅 당하면서 이사를 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경험은 존 밀턴의 시 실낙원과 연결된다.

코로나 시기에 드디어 실낙원을 찬찬히 읽어 보게 된 작가는 밀턴이 묘사한 에덴에 흥미로운 점을 발견한다. 아담과 이브는 에덴에서 놀고먹은게 아니라 열심히 정원을 가꾸는 노동을 한다고 묘사되었다는 거다. 아담과 이브가 매일매일 나무의 가지를 치고 잡초를 뽑고 꽃을 가꾸는 등의 정원사로서의 행위는 현재 작가가 정원을 복원하기위해 하고 있는 일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는 것이다.

나는 밀턴의 실낙원을 읽어보지 않았는데 이 책을 읽으며 그 시가 어떤 내용인지 대충 파악하게 되었다. 정원에 관한 책인 줄 알았는데 실낙원까지 알게 되다니 너무 유익하지 않은가?

아무튼 올리비아 랭은 실낙원속 정원 가꾸기를 밀턴의 정치관과 연결 짓는다. 에덴을 인간의 노동력을 가지고 절제되고 온화한 방식으로 가꾸고 돌봐야 하는 정원으로 설정한 것은 밀턴이 생각하는 좋은 정부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뒤이어 정원에 대한 사유는 자연과 어우러지는 풍경, 즉 귀족들이 선호했던 정원을 만들기 위해 희생해야 했던 것들을 탐구한다. 풍경화 같은 정원을 위해 인공적으로 댐을 지어 호수를 만들고 나무를 베고 공유지를 사유화하고 소작인들을 내쫓던 행태들을.

인클로저 법으로 땅을 잃은 시인 존 클레어의 이야기를 읽을 때는 마음이 참 아팠다. 소작농의 아들로 가난하게 태어나 시인이 되고 그렇게 좋아하던 정원을 가꾸며 살게 되었지만 정신병원에 입원하여 생을 마감했던 비운의 시인. 병원에서 쓴 편지들에는 놀라울 정도로 세세하게 자신이 심었던 꽃을 기억해 내며 정원을 그리워했다고 한다. 온전치 못한 정신 속에서도 돌아가야 할 곳, 자신만의 낙원을 기억하는 그 집념이 너무 슬펐다.

노예무역을 통해 부를 축적한 가문이 세운 대저택의 정원도 소개된다. 카리브 해에서 노예무역으로 큰돈을 벌고 미국 남부에 정착해 노예노동으로 대농장을 일구어 더 큰 부를 쌓고 영국으로 돌아온 미들턴 가문의 역사를 추적하면서 호화로운 정원 그 이면엔 어떤 역사가 있고 누구의 희생이 있었는지를 상기시킨다.

 

 

이토록 이 책을 읽다 보면 작가가 자신의 정원에서 바쁘게 일을 하는 기록에서 부터 그 정원이 문학, 정치, 역사로 까지 뻗어나가 어느 순간 새롭게 확장 된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된다. 정원이라는 주제로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들을 끌어 올릴 수 있다는 점에 감탄했다. 덕분에 영국의 역사에 대해 조금 더 찾아보고 예전에 배웠던 것들을 기억해 보는 시간도 가질 수 있었다 일례로 존 밀턴의 "실낙원"에 대한 부분을 읽다가 그 시대의 역사와 정치가 궁금해져서 크롬웰부터 명예혁명까지 한번 쭉 훑어보기도 했다. 독서 하면서 얻는 이러한 지적 자극! 아주 좋았다.

데릭 저먼이 투병하며 가꾸었다는 정원도 찾아보고 윌리엄 모리스의 디자인뿐만 아니라 그가 주장했던 사회혁명에 관한 이야기도 들여다보게 되었고, 이탈리아에서 2차 대전 때 파시즘 반대편에 서서 자신의 대저택 정원에 연합군을 숨겨주었던 아이리스 오리고 라는 인물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정원은 사적인 공간이고 그래서 그것에 대해 글을 쓴다면 개인의 하루하루의 일과나 정원 일을 하며 느끼는 감정 같은 것들이 주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이 책을 선택해서 읽을 때도 그런 글일 거라 예상했는데, 막상 읽어보니 개인의 일상을 넘어 사회적, 역사적으로 사유가 뻗어 나가서 한층 더 깊은 독서를 하게 되었다. 그렇게 주제를 엮는 작가의 지식과 통찰에 감탄했다. 게다가 문장도 아름다워서 읽는 맛도 좋았다. 

이 작가의 다른 책도 궁금해 졌다 조만간 읽어봐야겠다.




주말동안 나도 정원에서 조금 일을 했다. 나무들과 잔디밭을 경계 짓던 회양목을 파내서 한쪽으로 옮겨 심는 작업을 했던 것이다. 이 책을 읽은 여파로 회양목 뿌리를 파내면서 생각이란 걸 하게 되었다. 우리 집 정원으로 파생되는 역사가 무엇이 있을까 하고... 우리집이 있기 전 이곳은 그냥 작은 산이었을 텐데 여기에 무슨 역사가 있을까? 이 책과 같은 글을 쓰려면 얼마나 자료를 파헤치고 주변지식이 있어야 할까 싶었다.

그래, 나는 이런 글은 못 쓰겠구나 그냥 신변잡기 일기나 쓰자

"오늘 땅을 팠더니 온 몸에 알이 배었다. 아무래도 운동 부족인가 보다(나의 일기장에서 발췌)"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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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 2025-04-21 09: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것저것 찾아보느라고 여러번 읽게 되더라고요. 궁금한 거 찾아보다가 책들 또 사버리고 ㅋㅋ 저도 특히 좋았던 이야기들. 존 클레어, 데릭 저먼, war artist committee(?) 책 밖으로 안으로 들락날락한 기분이에요. 북플 들어왔다가 망고님 정원 얘기 없으면 서운한 게 저만 그런 건 아니겠죠. 근사한 리뷰 감사합니다.

망고 2025-04-21 12:54   좋아요 2 | URL
저도 한번 후루룩 읽고 나서 이것저것 찾아보면서 한번 더 읽었어요^^ 처음 읽을 때는 그저 가벼운 에세이 읽듯 방심하며 읽었는데, 두번째는 여러 역사적 배경과 언급된 인물들을 검색하면서 공부하는 마음으로 읽게 되더라고요. 시인 존 클레어 부분은 약간 눈물도 글썽ㅋㅋㅋ 데릭 저먼이 가꾼 정원은 척박한 땅과 기후 탓에 너무나 소박하여 사진 찾아보고 놀라기도 했고, 2차전쟁 중에 영국에서는 없어져버릴 지도 모르는 야생화를 삽화로 남겼다는 부분도 참 인상깊었습니다.
그리고 유수님 제 정원 얘기도, 이 리뷰도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잠자냥 2025-04-21 09: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 전 올리비아 랭 다른 에세이는 대부분 관심이 가고 그래서 몇 편은 재미나게 읽었는데(특히 <작가와 술> ㅋㅋㅋ) 이 책은 정원이 주제라서 관심 밖이었거든요. ㅋㅋㅋㅋ 망고님과 완전 반대 ㅋㅋㅋㅋㅋㅋㅋ

그래도 이 책은 나중에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알통 망고의 추천책...ㅋㅋㅋㅋㅋㅋㅋㅋ

망고 2025-04-21 13:02   좋아요 1 | URL
올리비아 랭 책 검색하다가 잠자냥님이 쓰신 <외로운 도시> 리뷰도 다시 읽었어요 고독했던 잠자냥님ㅠㅠ글썽글썽
이 책은 정원이야기이긴 한데 영국의 역사가 나오고 작가의 정치관이 읽히는 책이라 여러 유익한 정보가 많이 있습니다. 정원에 관심 없어도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삽질로 생긴 알통이야 말로 진정한 알통이죠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5-04-21 11: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이 책에 사진도 좀 실려있나요? 정원 사진이 좀 실려있다면 제가 이 책을 좀 보고싶은데 말입니다!!

망고 2025-04-21 13:03   좋아요 0 | URL
아쉽게도 사진은 전혀 없습니다ㅋㅋㅋㅋㅋㅋ 저도 사진이 실렸다면 했는데 없어서 여기서 언급한 정원들을 검색해 보고 유튜브 찾아서 보고 했어요. 사진 없어도 이 책 봐주세요 재밌어요ㅎㅎㅎ

잠자냥 2025-04-21 13:04   좋아요 1 | URL
얼마나 또 키워 잡아먹을라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5-04-21 15:53   좋아요 1 | URL
토요일에 루꼴라 씨도 뿌렸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5-04-21 22: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뭐든지 집 안에만 들이면 죽이는 사람이지만(선인장 두 개 산 거 하나는 죽고/선인장 죽을 수 있나요?/하나도 힘들어 해서 엄마한테 입양보냄) 망고님의 정원 이야기, 꽃 이야기, 풀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망고님의 리뷰 읽다보니 정원에서 시작해 다양한 주제로 확장되는 그 순간, 그 과정이 기대됩니다. 다음에 한 번 꼭 찾아봐야겠어요.

망고 2025-04-22 12:40   좋아요 1 | URL
저도 선인장 많이 죽여봤는데요ㅋㅋㅋㅋㅋㅋㅋ선인장은 눈에 잘 안 띄어서 관심을 안 갖게 되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죽어 있어요ㅠㅠ
이 책은 정원 뿐만 아니라 정원에 관련된 역사나 정치, 문학 이런것들로 주제가 확장되어서 유익하게 읽었어요. 정원 복원 과정 읽는 것도 재밌고요. 꼭 읽어보셔요^^
 
대구 - 세계의 역사를 뒤바꾼 어느 물고기의 이야기
마크 쿨란스키 지음, 박중서 옮김, 최재천 감수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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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에 절인 대구로 인해 유럽의 대항해 시대가 열렸고 아메리카 식민지 개척, 노예 무역에 대구 라는 생선이 지대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된 점이 좋았다. 수백년간 대구의 남획으로 그 많던 대구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에는 씁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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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자 2025-03-24 17: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니, 대구에게 그런일이....... 안되요 대구 지켜!!!!

망고 2025-03-24 19:59   좋아요 0 | URL
이제는 예전에 흔했던 아주 커다란 대구는 안 잡힌다고 해요ㅠㅠ

그레이스 2025-03-24 21: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오래전 아이들 그림책으로 대구 이야기 읽고 너무 좋아서 감탄했던!
대구와 관련된 이런 역사를 너무나 잘 그려서!
이 책도 보자마자 샀지요!
한동안 대구탕 먹을때마다 생각났어요^^

망고 2025-03-24 23:35   좋아요 1 | URL
이 책 대구에 대한 역사를 흥미롭게 잘 썼더라고요 대구 요리법도 나오고요😁
대구가 사라지고 있다고 해서 저는 대구매운탕 먹으면서 살짝 죄책감이😅 그래도 맛있죠ㅋㅋㅋ

다락방 2025-03-25 08: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오 너무나 궁금한데요??

잠자냥 2025-03-25 09:51   좋아요 1 | URL
버섯에 이어 대구가 궁금한 다락방

망고 2025-03-25 10:21   좋아요 1 | URL
공통점 : 맛있다 😆

다락방 2025-03-25 12:05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고라니라니 - 손의 일기 라니 시리즈 1
이소연.주영태 지음 / 출판사 마저 / 2021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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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취향은 아니지만ㅠㅠ 따뜻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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