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디르 벤카테시의 "괴짜 사회학"을 읽었다.
인도태생에 미국에서 자란 사회학자인 저자가 자신의 연구 논문을 위해 시카고의 고층 공영주택단지 주민들을 거의 10년동안 만나고 인터뷰하면서 직접 경험한 기록들을 담아낸 책이다.
연구 논문 주제는 아마도 시카고의 흑인 빈민촌의 실상을 살펴보며 전반적인 빈민 대책에 대한 실제적인 논의를 이끌어내는 것이지 않을까 한다.
아무튼, 그런 원대한 목적을 품고 중산층 가정에서 자란 순진한 대학생 저자는 위험지역이라 악명높은 시카고 빈민촌에 맨몸으로 걸어들어 간다. 그리고 거기에서 그 지역을 기반으로 마약장사를 하는 조직의 중간보스 제이티를 만난다.
제이티의 비호아래 저자는 빈민촌의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나고 친분을 쌓아간다. 제이티 조직의 조직원들, 아이를 먹이기 위해 몸을 파는 여자들, 동네 주민 대표라는 권력을 쥐고 자잘한 일을 처리해주는 사람, 마약중독자들, 부랑자들에게 빈집을 내어주고 관리하는 사람 또 그 사람에게 세를 무는 조직원들 등등...
저자가 만나는 사람들만 봐도 시카고 흑인 빈민촌의 실상이 대충 그려지지 않는가...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나올법한 비참한 사람들인데 역시 현실은 픽션보다 더 하다는걸 다시한번 느꼈다.
사회에서 격리된 곳. 경찰을 불러도 오지 않고 구급차를 불러도 감감 무소식인 이 동네는 나름의 법과 질서로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마약장사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 조직원들은 보스들에게 폭력적인 말썽을 일으키지 말것을 늘 당부받고 보스들은 질서를 유지하기위해 노력한다. 주민들을 위험으로 부터 보호하는 역할도 조직이 해주고 있다. 그 댓가로 주민들이 수입의 얼마를 조직에게 상납해야 하는 것도 불문율이다.
여자를 때리는 남자들을 잡아다가 혼내주는 일이나 집이 고장이 났다거나 하는 일은 주민대표에게 가면 대충 해결을 해준다. 그러나 늘 그에대한 몇푼의 댓가는 지불해야 한다.
또한 주민들은 서로서로의 불편을 나눠서 해결하는 걸 당연히 여긴다. 한 집에 전기가 안 들어오면 전기가 들어오는 집에서 단체로 생활한다던가 하는 식으로.
사회가 그들을 격리시켰으니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삶을 꾸려나가야 했고, 빈곤과 폭력이 같이 공생하며 살아가는 불편을 받아들이며 살아갈 수 밖에 없는것이 그곳의 생활이었다.
저자는 제이티와 친분을 쌓으며 처음엔 조직이 이 동네를 장악하면 좋은 점들에 대해서만 제이티에게 듣고 보게 된다. 제이티는 늘 지역사회에 공헌하기 위해 마약사업을 한다는 궤변을 늘어놓는다. 조직이 조금은 지역사회를 위해 공헌하는 것처럼 보이긴 한다. 청소년 농구대회를 열어주기도 하고 매번 주민들을 위해 큰 파티를 열어 주기도 한다. 처음 저자가 제이티에게 매료되어서 조직의 단면만을 묘사할때는 나도 그래도 이런 조직이라도 있으니 다행이려나~라는 생각을 했는데 역시나... 폭력은 폭력이고 마약장사는 악순환만 초래할 뿐이다. 그 점을 저자도 점차 몸소 알아가게 된다. 조직들 때문에 안 당해도 될 피해를 당하는 주민들을 보면서 제이티의 지역사회 공헌이라는 허울이 얼마나 자기중심적인지 밝혀주기도 한다.
저자의 빈민 공영주택 사회학 연구는 시카고 시의 공영주택단지 철거로 끝을 내게 된다. 그 곳에 살고 있던 주민들은 뿔뿔이 흩어진다. 빈곤율과 범죄율이 높은 지역을 철거하면서 시에서는 책임을 다 한거라고 여기지만 과연 그럴까. 저자는 여전히 시카고의 흑인 빈민들의 생활은 나아지지 않고 있고 마약조직들은 당연히 소탕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시의 보여주기식 행정으로는 그 무엇도 해결해 주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뭘 어떻게 해야하는지 사회학자는 말해주지 않는다. 그저 현상을 있는대로 보여주기만 할 뿐이다.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부터가 해결의 시작일테니 아마도 저자의 연구는 빈민문제해결을 위한 논의에 어느정도 도움을 주었을지도 모르겠다. 실질적으로 어떤 해결책이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책을 다 읽고보니 애초에 이런 공영주택단지가 생기게 된 배경을 설명하던 부분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백인들은 자신들의 마을에 흑인이 사는걸 달가워 하지 않아서 도시 외곽에 흉물스러운 고층 공영주택을 짓고 흑인들을 와서 살게 했다. 이 공영주택단지의 탄생 배경이 인종차별적인 분리에서 온 것이란다... 씁쓸했다. 그 분리가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이구나 생각하니......
많이 씁쓸하고 안타까운 내용들이 주를 이루지만 어려운 환경 속에서 나름의 생존방식으로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볼 수 있었다는 점은 씁쓸한 가운데 책장을 넘기게 해주는 원동력이 된 것 같다. 간접경험이라는 욕구를 채워준다는 점에서 말이다.
인간에 대한 견문을 넓힌다는 목적으로 이 책을 소비해도 될까 조심스러운데, 왜냐하면 이건 영화나 드라마가 아닌 실제의 삶이라 이렇게 소비해도 되나 싶은 죄책감 비슷한 감정이 들어서,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삶을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무척 흥미로웠던것도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