왑샷 가문 연대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92
존 치버 지음, 김승욱 옮김 / 민음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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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같은 에피소드의 나열 속에 괴팍하고 독특한 인물들이 펼치는 희극적인 모험이 재밌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 유머러스하고 발랄한 소동극 이면엔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 하고 사랑받지 못 하는 인물들의 깊은 슬픔과 고독이 웅크리고 있다 산만하고 시끄러운데 이상하게 슬퍼서 재밌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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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4-02-22 11: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존 치버다!!!!!!! (근데 이건 아직 안 읽음 ㅋㅋㅋㅋㅋㅋㅋ)

망고 2024-02-22 11:21   좋아요 0 | URL
존 치버 좋아하시나요? 저는 존 치버 이 책으로 처음 만났어요 잠자냥님도 얼른 요거 읽어보셔요

잠자냥 2024-02-22 11:35   좋아요 2 | URL
네 존 치버에게 보내는 편지로 100만원 받은 적 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
이거 읽어야지;;

망고 2024-02-22 11:40   좋아요 1 | URL
네? 존 치버에게 편지 보내서 백만원을 받으셨다고요? 대박! 저도 주소 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4-02-22 11:49   좋아요 3 | URL
ㅋㅋㅋㅋㅋㅋㅋ 문학동네에서는 해마다 연말 결산 리뷰대회 같은 거 했는데요, 1등 상금이 100만원이었습니다. 글은 이거.... 존 치버를 더 깊게 만나게 되시길~!!

https://blog.aladin.co.kr/socker/9796068

망고 2024-02-22 12:02   좋아요 3 | URL
잠자냥님 편지를 읽고 울었읍니다 엉엉엉
 
알려진 세계 - 2004년 퓰리처상 수상작
에드워드 P. 존스 지음, 이승학 옮김 / 섬과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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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남북전쟁이 일어나기 전 노예제도가 서슬 퍼런 기세를 뻗치고 있었던 1850년대 버지니아 주 안에 작가가 만든 가상의 지역 맨체스터 카운티가 배경이다. 배경만 들어보면 무슨 이야기를 할지 딱 감이 오지 않는가? 인종차별, 백인이 흑인 노예에게 잔인하게 행하는 폭력, 흑인 노예의 비참한 삶 등등.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어두운 역사를 이 소설은 아프게 다시 한 번 보여 줄 거라고 나는 예상했다. 하지만 막상 책을 펼쳐보니 이 소설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내 예상보다 더 큰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33명의 흑인 노예를 소유하고 큰 농장을 가지고 있던 31세의 헨리 타운센드가 죽는 것으로 이 소설은 시작한다. 헨리의 아내 캘도니아는 남편이 죽자 노예들과 농장 관리를 맡게 되었고 캘도니아의 어머니 모드 뉴먼은 마음 약한 캘도니아가 유산이자 재산인 노예들을 엄격하게 관리하지 못 할 까봐 걱정을 한다. 캘도니아의 시부모이자 헨리의 부모인 오거스터스와 밀드레드는 흑인 노예를 거느리던 아들을 못마땅하게 여겨 아들 부부가 살던 좋은 집을 놔두고 흑인 노예 거주지에서 잠을 잔다.

지금까지 언급한 이들 모두는 다 흑인이다. 그러니까 흑인 부모가 낳은 흑인인 헨리는 흑인인 캘도니아와 결혼했고 33명의 흑인 노예를 소유하고 있다가 죽었다는 것이다.

이게 가능하다고? 흑인이 흑인 노예를 소유하는 일이?

나는 초반 이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이런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조금 혼란스러웠다. 이 소설을 흑인 작가가 쓰지 않았다면 많은 논란에 휩싸였을 거 같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니까 백인의 잘못을 덜기 위해서 흑인도 흑인 노예를 소유 했던 적이 있었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거 아니냐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책을 읽어 갈수록 나의 혼란은 점점 가라앉고 작가가 이런 세계를 다루고 있는 이유에 대해 납득하기 시작했다. 흑인이 흑인 노예를 소유했다는 당시의 기록이 실제로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작가가 만들어낸 가상의 세계에서 이게 역사적인 사실인지 아닌지는 그렇게 중요하진 않아 보였다는 거다. 중요한 점은 노예제도라는 시스템이 굴러가는 세계에서 사회 계급의 맨 끄트머리를 흑인 노예가 담당하는 사회란 어떤 사회인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을 얼마나 비인간적으로 만드는지를 이 소설은 다루고 있었다. 인종 문제를 포함해서 더 넓게는 사회 계급과 인간의 문제까지 이 소설을 읽고 나서 생각해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인간이 인간을 소유 할 수 있다고 법으로 정해진 사회에서는 남편이 부인을 소유할 수 있고 아들을 사올 수도 있다. 오거스터스 타운센드는 자기 자신을 백인 노예주에게 돈을 지불하고 사서 해방 노예가 되었다. 아직 부인 밀드레드와 아들 헨리는 노예인 상태라 오거스터스는 돈을 벌어서 일단 부인만 주인에게서 사와서 자신의 노예로 서류에 올린다. 그리고 열심히 돈을 벌어 몇 년 후 아들 헨리도 사와서 드디어 자신의 노예로 서류에 올릴 수 있게 된다. 그러니까 한 가족이 서류상으로는 가족이 아니라 오거스터스와 그의 재산인 노예들로 기입되어 있다는 말이다. 참으로 기가 찰 세상이지 않은가? 이후 헨리는 쭉 자신의 아버지 재산으로 서류에 올라있게 되는데, 이는 노예가 해방되면 자신이 노예로 있던 지역을 떠나야 한다는 법 때문이었다. 헨리를 해방하면 헨리는 가족이 있는 맨체스터 카운티에서 살 수가 없었던 것이다.

 


헨리 타운센드는 이러한 세계에서 성공을 꿈꾼다. 이 세계에서 성공이란 부를 얻고 노예를 거느리는 삶이다. 어릴 때부터 헨리를 귀여워했던 백인 주인 윌리엄 로빈스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아 땅을 사고 흑인 노예 모지스를 사들인다. 노예의 노동력은 헨리를 점점 부유하게 했고 더 넓은 땅과 더 많은 노예를 사들일 수 있게 했다.

그러면 헨리는 정말로 이 노예 제도가 지탱하는 세계에서 성공한 사람이었을까?

흑인 노예를 거느리고 넓은 땅의 주인이었지만 헨리는 여전히 흑인이라는 정체성에서 자유롭지 못 하다. 그 당시 시스템 안에서 흑인이라는 정체성은 노예를 뜻했다. 실제로 헨리는 서류상으로 자신의 아버지의 노예이기도 했고, 현실의 세계에서는 자신의 전 백인 주인 윌리엄의 비호아래에 놓여있었다. 결코 부를 가졌다고 해서 완벽한 자유인이 아니었던 것이다. 만약 윌리엄이 죽기라도 해서 세상에 없다면 헨리는 길을 가다가 밉보인 백인에 의해 납치되어 노예로 팔려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세상에 살고 있던 것이다.

오랫동안 자유인으로 살고 있던 헨리의 아버지 오거스터스가 언젠가 평소 그를 질투했던 순찰 대원에게 잡혀서 노예로 팔려갔듯이 말이다.

이 소설 속에는 헨리 같이 흑인이면서도 흑인 노예를 소유 하고 있는 부유한 흑인들이 여럿 등장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백인과 동등한 지위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는 것 또한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노예제도에서 벗어나거나 반항하려 하지 않고 그것을 적극 이용해서 결국 제도를 더욱 단단하게 하는데 이바지 하는 흑인 계층이 만들어 졌지만 결정적인 사건이 터지면 백인들은 그들의 편을 들어주지 않는다. 오거스터스의 실종 신고가 조용히 묻히게 되듯이.

 

 

흑인 노예주의 삶도 까딱하면 불안해 질 수 있는데 흑인 노예의 삶이란 어떻겠는가?

이 소설은 헨리가 소유하고 있던 흑인 노예들의 삶을 감정을 최대한 배제하고 건조하게 벌어진 사건들만 나열하는 방식으로 이야기 하고 있다. 대부분이 가족과 뿔뿔이 흩어져 여기저기 팔려 다니다가 헨리의 농장까지 온 사연들이다. 몸이 축나는지도 모르고 일만 하다가 밭에서 죽는 고아 소년의 사연도 나오고 도망치다가 잡혀서 귀가 잘리는 노예의 사연도 나오고 노새에게 걷어 차여서 머리를 다쳐 미쳐버린 노예의 사연, 사랑하는 여자와 함께 팔리길 원했지만 결국 찢어져서 팔리고 오열하는 노예의 사연도 있다.

노예는 주인의 소유물이고 재산이라 그들에게도 헤어질 수 없는 가족이 있다는 사실은 사고 팔리는 과정에서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그저 물건을 떼다 팔 듯 튼튼한지, 오래 사용할 수 있는지, 이정도면 가성비가 괜찮은지를 따질 뿐이다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이렇게 글로 읽으니 인간에게 값이 매겨진다는 사실이 얼마나 끔찍하고 잔인하던지......

 

 

인간이 인간을 사고 팔 수 있게 법으로 보호 받고 있는 사회에서는 인간을 같은 인간으로 보지 않는 왜곡된 인식이 사회의 바탕을 이루고 있을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노예뿐만 아니라 그것에 동조하는 인간들 까지도 모두 제대로 인간적인 삶을 살 수 없다. 인간을 일상적으로 주종의 관계로 나누는 사회에서 진정한 관계가 형성될 수 없기 때문이다.

맨체스터 카운티의 최고 부호이자 노예를 100명이상 소유하고 있는 윌리엄 로빈스는 자신의 노예를 부인보다 더 사랑해서 거의 부부처럼 지내면서 자식도 낳았다. 물론 자식들은 흑인이다. 윌리엄은 노예를 사랑한다고 하지만 노예의 입장에서 윌리엄은 달아나고 싶은 존재였다. 아무리 몇십 년간을 부부같이 지냈다고 해도 그 둘의 관계는 결코 평등하지 않았다.

카운티의 보안관 존 스키핑턴은 개인적으로는 노예제를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보안관으로서 노예제를 공고히 지키기 위해 일해야 하는 입장에 있다. 그에게는 사촌이 결혼 선물로 준 미너바라는 어린 소녀 노예가 있었다. 스키핑턴 부부는 미너바를 딸처럼 키웠다. 그러나 정작 미너바는 기회가 오자 스키핑턴 가족으로부터 도망친다. 미너바의 입장에서는 주인 부부가 자신을 딸처럼 여긴다고 했지만 그들이 사용하는 일상적인 말투, 의식하지 않고 쓰는 그 단어들에서 그녀를 노예 취급하는 의식이 묻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결코 부모처럼 생각하지 않는다.

이토록 노예제도가 버티고 있는 비인간적인 사회에서는 사랑도 선의도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고 이 소설은 다양한 사회 계층의 사람들의 사정을 들여다보며 보여주고 있다.

 



사실 이 소설은 쉽게 읽히지 않았다. 한 인물에 대해 현재를 묘사하고 있으면 갑자기 과거와 미래의 서술이 끼어든다. 한 문단 안에 과거 현재 미래가 한꺼번에 쏟아지기도 한다. 그래서 이러한 서술 방식에 적응이 좀 필요했다. 빨리 읽어 나갈 수 없어서 조금 답답한 마음도 들었지만 다 읽고 나서는 좋은 경험을 했다고 느꼈다.

노예제도가 있는 사회란 어떤 사회인지, 지금도 인종 차별이 심하지만 노예 제도와 인종 차별이 세트로 묶여 있는 사회에서 흑인으로 살아가는 삶이란 어떠했을지 아프게 느끼기도 했다

이 소설은 인간의 감정을 세세하게 다루고 있지는 않는다. 당시에 그랬을 거 같은 사실 같은 상황과 사건을 나열하는 데에 집중하고 있고 그것을 어떻게 느끼는가는 독자의 몫이었다. 감정을 강요하지 않고 있었던 상황만 봐라 하는 식. 이런 스타일이 오히려 더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이 소설로 작가 에드워드 P. 존스는 퓰리처상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다음 장편 소설 소식은 20년째 없다고... 다른 작품도 읽어보고 싶은데 아쉬운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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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4-02-15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딱 감이 오지 않는가... 네 오지 않습니다.
망고 님 영특하시네요.

망고 2024-02-15 13:37   좋아요 1 | URL
내 영특함의 불편함😉
 
문 뒤에서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
조르조 바사니 지음, 김운찬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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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다. 사춘기 소년들의 우정 경쟁 질투 배신 그리고 마지막에 남은 상처를 이렇게 아름답게 써내다니! 책을 다 읽고 나라면 문 뒤에서 어떻게 행동했을까 생각해 봤다 나는 당장 박차고 나가서 머리채를 잡았을거 같은데...이 아름다운 소설을 읽고 고작 이런 생각이라니 죄를 짓는 기분이었다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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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4-02-05 15: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크흑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근데 머리채에서 빵터짐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망고 2024-02-05 15:48   좋아요 1 | URL
너무 아름다운 소설 푹 빠져서 단숨에 읽었어요 감사합니당😄

망고 2024-02-05 15:57   좋아요 2 | URL
근데 잠자냥님은 소설 속 상황이라면 어떻게 행동하실 거 같으세요?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진짜 당장 나가서 폭력을 저질렀을거 같거든요ㅋㅋㅋㅋㅋ쿠ㅜ

잠자냥 2024-02-05 16:21   좋아요 2 | URL
저도 머리채 잡을 거 같습니다~!!

(는 뻥이고 ㅋㅋㅋ 읽은 지 오래라 기억이 잘 안 나네요;;ㅋㅋㅋㅋ 집에 가서 다시 펼쳐볼게욬ㅋㅋㅋ)

잠자냥 2024-02-06 17:18   좋아요 1 | URL
어제는 제가 미쳐 확인을 못했고 오늘 다시 도전….

망고 2024-02-06 17:29   좋아요 1 | URL
아니 어떻게 문 뒤에서 참고 있는지 저라면 그냥 확! 확 그냥!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4-02-06 23:31   좋아요 1 | URL
아 저는 박차고 나가서 돌 던지렵니다!! ㅋㅋㅋㅋㅋㅋ

망고 2024-02-07 00:22   좋아요 0 | URL
삑~~~~~연장 사용 반칙! 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4-02-07 07:21   좋아요 1 | URL
헐 그럼 멱살ㅋㅋㅋㅋㅋㅋㅋ

자목련 2024-02-06 09: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벌써 만나셨어요!
저도 빠른 시일 내에 키필코~~

망고 2024-02-06 12:11   좋아요 1 | URL
한번 잡으면 후루룩 읽을 수 있을 정도로 몰입감 재미가 있어요 문장도 정말 아름답고요. 자목련님 얼른 만나 보세요

북깨비 2024-02-06 16: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머리채를 잡을 것인가 말 것인가 결정하려면 당장 책을 사서 읽어봐야겠네요. ㅋㅋㅋㅋ

잠자냥 2024-02-06 17:17   좋아요 2 | URL
헐 머리채로 이렇게 영업을 ㅋㅋㅋㅋㅋ

망고 2024-02-06 17:27   좋아요 2 | URL
역시 영업은 자극적이게 해야 통하네요ㅋㅋㅋㅋ북깨비님 이 책 정말 좋아요 꼭 읽어보시고 머리채 잡을지 말지 알려주세요ㅋㅋㅋㅋ
 
북과 남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29
엘리자베스 개스켈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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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빅토리아 시대 작가 엘리자베스 개스켈이 찰스 디킨스가 발행하는 문예지에 연재했던 소설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각 챕터마다 일정한 분량으로 이야기가 제법 속도감 있게 진행된다. 나는 몇 주 전에 이 책을 시작해 놓고 이런저런 일들로 계속 손 놓고 있었는데, 집중해서 읽어보자 마음먹은 후에는 무려 이틀 만에 7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을 빠르게 읽을 수 있었다. 물론 그만큼 재미도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속도였다.

 

 

열여덟 마거릿 헤일은 교육을 위해서 머물렀던 런던 귀족인 이모의 집에서 아버지가 국교회 목사로 있는 남부 헬스톤의 집으로 돌아온다. 가족과 함께 아름답고 평온한 전원의 삶을 살아가게 되어 기뻤던 마거릿은 아버지가 자신이 몸담고 있는 국교회에 회의를 품고 목사직을 사직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제 더 이상 사제관에서 살 수 없는 가족은 북부의 매연 가득한 산업도시 밀턴으로 이사를 가야 한다는 것이다.

푸른 숲과 들판, 좋은 공기가 있는 남부 농촌이 고향인 마거릿에게 뿌연 하늘과 매연을 뱉어내는 공장굴뚝이 있는 북부의 도시는 생소한 곳이었다. 그러나 북부로 이사 와서 더욱더 병세가 심해진 어머니와 마음 약한 아버지를 대신해 거의 가장 노릇을 해야하는 마거릿은 씩씩하게 북부의 생활에 적응하고자 노력한다. 그러던 중 마거릿은 거리에서 만난 소녀 베시와 우정을 나누게 된다. 베시는 어릴 때부터 면화 공장에서 일하다가 공장에서 날리는 솜털이 폐에 들어가서 폐질환에 걸려 죽음만 바라보고 있는 상태였다.

마거릿은 어떤 신분이라도 차별 없이 대하고 인간적인 연민으로 어려운 이웃에게 기꺼이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진정한 기독교 정신을 실행하는 여성으로 묘사되는데, 이런 마거릿이 북부 밀턴에서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은 다 죽어가는 여공 베시와 그녀의 아버지인 노동조합 위원장인 니콜라스 히긴스다.

밀턴에서의 생계는 마거릿의 아버지가 개인 교사를 하는 것으로 유지하고 있었고 그 학생들 중 면화공장 소유주인 존 손턴이란 사람도 있었다. 밀턴에서 성공한 공장 사장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손턴은 마거릿과 만난 자리에서 노동자들은 게으르고 사업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도 모르면서 불평만 해댄다며 철저히 고용자 입장의 의견을 낸다. 마거릿은 노동자계급인 베시 가족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경험을 바탕으로 손턴이 노동자들을 부당하게 처우하고 있다고 맞선다. 이 만남으로 손턴은 마거릿을 거만한 여자라고 생각하지만 마거릿의 당찬 모습에 반하기도 한다. 마거릿도 점점 손턴을 알아갈수록 그에겐 거칠고 냉정한 사업가의 모습만 있는게 아니라 14살 때부터 포목점 점원으로 일하며 열심히 빚을 갚고 사업을 일군 자수성가한 인물로서 인간적인 모습들도 있다는 것을 알아가게 된다.

 

이 소설은 남과 북의 도시의 대조적인 분위기와 그곳을 대표하고 있는 마거릿과 손턴이라는 인물의 대비 그리고 노동자와 고용자의 입장의 대비가 이야기를 끌고 가는 동력으로 작용하는데, 이 모든 대비는 인간적이고 용감하고 자존심이 센 마거릿 헤일이라는 여성 인물의 시선을 거쳐 전달된다.

마거릿은 처음 밀턴으로 이사 갔을 때 북부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 사업가들을 장사꾼이라 낮춰보고 산업 도시의 많은 사람들이 돈을 벌 생각만 하며 인간적인 가치들을 무시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점점 그 생각을 거두게 된다. 그것은 노동자인 히긴스 가족과 사업가인 손턴과 친분을 쌓으면서 생겨나게 되는 감정으로 마거릿은 그 두 계층의 중간지점에서 이들의 화해에 힘쓰는 인물로 자리잡는다.

급기야 노동자들의 파업이 일어났을 때 마거릿은 손턴에게는 노동자들과 대화하라고 파업의 한가운데로 나가게 등을 떠밀고 폭력적인 상황이 발생하려 하자 손턴을 구해내면서 손턴과 노동자들 두 계층을 다 돕는 결과를 내며 절정을 맞는다.

마거릿은 좀 더 가까이에서 지켜보니 누구 한 계층의 편을 들 수 가 없는 사정들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게다가 손턴이라는 인물은 그저 돈만 생각하는 악덕 사업가가 아니고 자신도 고생을 해 본 이상 어느 정도 말이 통하는 양심적인 인물이었기에 마거릿이 손턴에게 영향을 미칠수록 손턴은 노동자들과 대화하는 진보적인 인물로 성장하기 까지 한다.

 

 

한편 이 소설의 중요한 중심축인 마거릿과 손턴의 로맨스는 계층 간의 갈등, 파업, 여러 인물들의 죽음이 펼쳐지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불씨를 꺼트리지 않으면서 페이지를 넘기는 힘으로 작용한다.

단단한 사랑으로 괴로워하는 손턴과 내가 손턴을 사랑할 리가 없는데 어쩌면 사랑하는 것도 같다며 갈등하는 마거릿의 내면 묘사는 로맨스 소설을 읽는 재미를 선사하기도 하는 것이다. 서로를 알아갈수록 나의 세계가 확장되고 인간적인 성장을 이루어 사랑의 결실을 맛본다는 아주 이상적인 결말로 이 이야기는 나아가고 있고 그것을 읽는 재미가 아주 쏠쏠하다.

 

  

빅토리아 시대 여성 캐릭터가 주인공인 소설이라면, 어쩌면 나의 편견일 수도 있지만, 무도회 장면이 항상 나오고 조건 맞는 짝을 찾다가 결국 사랑을 택한다는 결말이 예상되곤 하는데 이 소설은 로맨스가 가미되어 있지만 사회적인 주제가 전면에 나와 있다는 점이 예상밖의 인상적인 점이었다.

작가 엘리자베스 개스켈의 자전적인 요소가 많이 배어나오는 소설이기도 해서 이토록 사실적인 문제에 닿아있을 수 있는 것도 같다. 실제로 개스켈은 유니테리언 목사 남편과 함께 영국의 북부 산업도시 맨체스터에서 노동자들의 비참한 삶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봉사하는 삶을 살았다고 한다.

 

예쁜 드레스를 입고 무도회에 가는 여성이 아니라 산업혁명의 한 가운데 뿌연 매연의 회색 도시에서 노동자 파업의 현장을 누비고 비참하게 죽은 노동자의 시체에 손수건을 덮어주는 용감한 여성 캐릭터 마거릿 헤일을 만나서 아주 즐거웠던 독서였다.

엘리자베스 개스켈의 다른 소설들을 더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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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4-02-02 20: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명작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는 문학과지성사 책으로 상당한 울림을 갖고 읽었습니다. 이이의 다른 작품들은 이 책 만한 울림을 가지지 않은 것으로.... ㅎㅎㅎ 그렇더라고요.

망고 2024-02-02 20:40   좋아요 1 | URL
맞아요 정말 명작이었어요! 당시의 사회상을 날카롭게 잘 포착하는데 쉽게 읽히고 로맨스도 좋고요ㅎㅎㅎ다른 작품들도 읽어보셨군요 저도 얼른 만나보고 싶어요 근데 이 책 만한 명작은 없었나 보네요 저는 폴스타프님의 평을 신뢰하니까 기대는 좀 접고 읽어야 겠네요😄
 
도서관의 삶, 책들의 운명 걸작 논픽션 18
수전 올리언 지음, 박우정 옮김 / 글항아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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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전에 난초 도둑을 읽고 작가 수전 올리언이 쓴 책은 다 읽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난초 도둑은 난초에 대해 하나도 모르고 관심도 없던 내게 난초 수집이라는 신기한 취미의 세계와 그것에 몰두하는 다양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 재밌는 책이었다. 비록 나는 여전히 난초를 기를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난초에 대해 조금은 알게 되었다는 것도 큰 수확이었다. 덤으로 미국 플로리다 늪지대까지도 글로 생생하게 느낄 수 있어서 아직도 많이 기억에 남는 책이다.

그래서 수전 올리언의 이 책 도서관의 삶, 책들의 운명도 망설임 없이 읽게 되었다.

 

 

올리언은 어릴 때 엄마와 동네 도서관에 갔던 추억이 많다고 한다. 엄마와 도서관에 가서 각자의 취향에 맞는 책장을 거닐다가 책을 한 아름 대출해서 집에 가는 차안에서 빌린 책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일상적인 기억들, 만약 직업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면 사서가 되겠노라 말하곤 했다는 엄마에 대한 기억들. 이 모든 기억들로 올리언은 나를 키운 건 도서관이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학을 가고 나서 책을 집에다 사 모으게 되면서 한동안 도서관이라는 장소를 잊고 살았다. 그러다가 LA로 이사를 와서 초등학생 아들 과제를 위해 LA중앙도서관에 같이 갔다가 수십 년 전 엄마와 도서관을 다니던 그때 그 시간과 장소로 되돌아 간 듯, 그 시절의 기억이 다시 살아나는 경험을 한다.

도서관을 느긋하게 돌아다니며 책을 고르는 느낌, 연필심의 사각사각 소리, 사서들이 밀고 다니는 북 카트 소리 등등 모든 것이 예전에 엄마와 다니던 도서관에서 느꼈던 그대로를 현재, 어린 시절 동네와는 아주 멀리 떨어진 이곳의 도서관에서 느꼈다고 작가는 말한다.

 

시간이 도서관 안에서 멈춘 건 아니었다. 그저 시간이 도서관에 붙잡히고 수집된 것 같았다. 모든 도서관에 내 시간, 내 인생 뿐 아니라 모든 인간의 시간까지. 도서관에서는 시간이 둑으로 막혀 있었다. 그냥 정지된 게 아니라 저장되어 있었다. 도서관은 이야기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을 찾으러 오는 사람들이 고여 있는 연못이다. 불멸을 살짝 엿볼 수 있는 곳. 그곳에서 우리는 영원히 살 수 있다. (24)

 

LA중앙도서관에서 옛 추억에 젖어 있던 올리언은 이곳에 큰 불이 나서 책들이 홀랑 다 타버린 적이 있었고 아직도 어떤 책에서는 그때의 화재 냄새가 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렇게 큰 불이었다면 같은 미국인으로 모를 리가 없을 텐데 도통 기억 속에 그 불에 대한 것이 전혀 없어서 의아하게 생각하며 그때의 기록을 뒤지기 시작한다.

 

1986429. LA도서관에 화재가 난 날이다. 하지만 이날 주요 뉴스 매체들에서는 도서관 화재 소식보다는 체르노빌 원전 사고 소식이 뉴스를 덮고 있던 시기였다. 도서관 화재는 뉴스거리에서 뒷전으로 밀려났지만 어쩐지 모든 걸 황폐화 시키는 원전 사고와 책을 학살하는 도서관 화재가 하필 같은 날 발생 했다는 것은 우연이겠지만 의미심장해 보였다.

불은 낮 동안 7시간을 활활 타올라 도서관의 책 거의 100만권을 희생시켰다. 다행히 도서관 안의 사람들은 대피를 해서 아무도 다치지 않았지만.

 

이 책은 LA도서관 화재가 있었던 날 어떤 일이 있었는지, 왜 불이 났는지, 불을 끄고 나서 도서관은 어떻게 재건했는지를 관계된 사람들의 인터뷰와 기록된 자료들을 바탕으로 추적하는 내용이 주요한 한 축을 이룬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고 LA도서관이 세워지게 된 역사, 그곳의 사서들, 건축가, 도서관의 이상한 소장품들, 책을 불태웠던 역사들, 오늘날 도서관이라는 장소에 대한 고찰, 도서관이 앞으로 어떻게 공공의 장소로 시민들과 함께하게 될지 그 나아갈 방향까지 도서관에 대한 유용하고 흥미로운 주제들로 이야기를 뻗어 나간다.

 

 

일단 도서관에 왜 불이 났을까 궁금하지 않은가?

유명 건축가 버트럼 굿휴에 의해 설계된 LA중앙도서관은 1926년에 문을 연 건물이다. 1986년 화재 당시 이미 60년이나 된 낡고 늙은 건물이었다. 에어컨도 설치할 수 없어서 LA의 그 뜨거운 날씨를 선풍기로 식혀야 했고 옛날식 전기배선은 많은 전기량을 감당할 수 없어서 서고의 조명은 늘 어두컴컴했다. 사서들은 광부들이 쓰고 다니는 후레쉬를 장착하고 책을 찾으러 다녔다고 한다. 옛날에 지은 건물이라 서고는 화재에 대한 방비가 되어 있지 않기도 했다.

이런 상태의 건물에 작은 연기가 솟아올랐다. 불은 순식간에 책장을 덮었고 종이 책들은 그냥 불쏘시개가 되었다. 콘크리트로 단단하게 꽉 막힌 서고는 오븐의 역할을 해서 불이 1300도 넘게 올라가게 했다. 당시 소방관들은 도서관의 불이 빨갛지도 파랗지도 않은 무시무시한 투명한 불이었다고 증언한다. 이 불은 건물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경고를 받을 정도로 엄청난 양의 물을 붓고, 서고 여러 곳에 구멍을 뚫어 공기가 통할 수 있게 하면서 겨우 진압되었다. 무려 7시간을 활활 탄 후였다.

 


불의 시작은 누군가의 방화였다고 검사단은 발표한다. 하지만 심증은 있지만 증거가 없었다. 사서들이 수상한 인물이 있었다고 공통으로 증언한 인물이 특정되었지만 어디에도 증거가 없었기 때문에 이 화재는 여전히 지금까지 왜 일어났는지 모르는 상태라고 한다.

여기서 해리 피크라는 독특한 인물의 이야기가 나온다. 방화범이라고 지목되어서 구치소에 가두기도 했던 인물이다. 금발에 잘생긴 얼굴로 누구에게나 호감을 샀지만 엄청난 거짓말쟁이였다고 한다. 배우 지망생이기도 한 이 젊은 청년은 말하는 족족 거짓말이었지만 그래도 순수한 구석이 있었는지 작가가 그 당시 해리 피크를 알고 지낸 사람들을 인터뷰 할 때마다 하나같이 사랑스러운 인물이었고 동정을 살 만한 사람이었다는 말을 듣는다.

어쨌든 해리 피크는 처음에는 자신이 도서관에 불을 질렀다고 했다가 또 아니라고 했다가 알리바이를 이리저리 바꾸어 말하면서 검사관들을 혼란스럽게 했다. 하지만 그가 이토록 계속 거짓말을 하는데도 잡아넣을 수가 없었던 이유는 결정적인 증거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란다.

그가 방화범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해리 피크라는 독특한 인물을 알게 된다. 작가의 취재로 그의 가족사와 교제했던 남자 친구들까지도 알고 나니 해리 피크라는 인물에 대해 얼추 그려볼 수 있게 된다. 비록 글로만 읽는 것이지만 이렇게 한 인간에 대해, 그것도 어디서도 만나볼 수 없는 독특한 인간에 대해 알게 된다는 것. 다양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읽는 건 언제나 흥미롭다.

 

 

그런 점에서 초기 LA도서관의 여성 시 사서들에 대한 이야기도 아주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LA도서관은 1880년대에 18살의 메리 포이라는 여성을 시 사서로 임명했다. 시대를 생각한다면 나이도 어리지만 여성이라는 점이 파격적인 행보였다. 메리 포이는 도서관을 아주 철저하게 잘 운영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갑자기 그만 두라는 통보를 받았는데 당찬 메리 포이는 순순히 그만 두지 않고 신문에 도서관위원회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글을 쓰고 나서 그만 두고 교사가 되어서 이후 여성 참정권 운동에 뛰어들었단다.

그 후 테사 켈소 라는 여성이 시 사서가 되었는데 그녀는 당시 있었던 도서관 회비를 없애고 더 많은 사람에게 도서관을 개방하는 것에 힘썼던 인물이라고 한다. 도서관 학교도 설립하는 등 도서관을 현대화 하려고 노력한 사서였다. 하지만 풍기 문란한 책을 도서관에 구입했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았는데, 테사 켈소는 이를 참지 않고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걸고 승소를 하기도 했지만 그 사건으로 도서관 시 사서 자리에서는 쫓겨나게 된다.

그리고 또다시 메리 존스라는 여성이 시 사서로 임명된다. 그녀는 도서관을 안정적으로 잘 발전시킨 인물이었다. 하지만 시 사서는 남성이 해야 한다는 도서관위원회의 급조된 방침에 따라 해고 통보를 받는다. 메리 존스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계속 출근을 했다고 한다. 이미 시 사서로 내정되어 있던 찰스 러미스라는 인물이 있는데도 굽히지 않고 계속 출근해서 여성이라는 이유 때문에 사서를 할 수 없다는 이유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선언문을 낭독했다. 이 소식을 듣고 메리 존스를 지지하는 여성들이 거리에 나와 시위를 벌이기도 했지만 역부족으로 메리 존스는 물러났다고 한다.

1880년대부터 1900년대 초반까지 LA도서관의 여성 시 사서들의 행보는 당시의 시대상을 생각하면 엄청나게 용감하고 당찬 행보였다고 볼 수 있다. 부당한 해고에 수그러들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저항 하는 모습들이 참 멋있었다. 그런 거 요즘에도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않는가...이토록 멋진 언니들이 LA도서관을 발전시켜왔구나!

 

 

이 책을 읽으며 LA도서관 사서들이 하는 독특한 업무에 대해서도 알게 되는데 그건 바로 인간 초록창 지식인 역할이었다. 인터넷이 없었을 때 사서들은 무엇이든 물어보면 대답해 주는 전화를 받는 업무를 했다고 한다. 물론 지금도 하고 있다고 한다. 사람들은 도서관 사서에게 전화해서 별에 별걸 다 물어본다고 한다. 기본적인 지식들은 물론이고 애 이름을 뭐로 지을지 장례식장 예절은 어떤 게 있는지 등등 시시콜콜한 생활의 궁금증들도 다 물어보는 전화를 하고 사서들은 성실히 대답을 해 준다고 한다. 그리고 그 전화는 지금 인터넷이 이렇게 활성화 되어있는 현재까지도 운영한다고 한다. 인터넷을 못 하는 사람들, 외로운 사람들이 주로 전화를 한다고.

작가가 실제로 도서관에 가서 사서들을 인터뷰하고 있으면 마주치는 이용객들이 사서가 인간 백과사전이라도 되는 듯 지식을 물어보는 사람들을 마주치기도 한다.

미국의 사서들 이미지는 그렇구나. 나는 이때까지 도서관을 이용하면서 사서들에게 책을 찾아달라는 것 외에 뭔가를 물어보려고 했던 적이 전혀 없었는데... 미국은 사서들이 인간 백과사전 취급을 받고 있었다! 이 책의 사서들은 그것에 대해 불편하다는 인식 보다는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어떻게든 책을 찾아서 대답을 잘 해 주고자 하는 모습들을 보인다.

이런 것도 이 책을 읽고 알게 된 생경하지만 재밌는 경험이었다.

 

 

다시 도서관 화재로 넘어가서, 그래서 도서관의 책들이 많은 피해를 입었는데 어떻게 이들을 복원 했을까? 그나마 불에 타지 않고 물에만 젖은 책들은 그 당시 냉동고로 보내졌다고 한다. 곰팡이가 피지 않게 하려는 선택이었다. 어마어마한 분량의 책들이 냉동 해산물들과 한 방에 들어가 한동안 있었단다. 그러고 나서는? 이 책을 읽어보면 어떻게 책들을 녹여서 복원 했는지, LA도서관은 그 후 어떻게 되었는지 등등을 알게 된다.

화재라는 주제 외에도 재밌는 부분이 많다.

일테면 얼마나 다양한 개인의 소장품들이 도서관으로 기증되어서 역사의 기록물로 남겨지는지 궁금하다면 이 책을 읽어 보면 궁금증이 조금 풀릴 것이다.

 

 

  

나도 이 책을 읽으면서 도서관에 대한 추억들을 생각해 봤다내 기억 속에 등장하는 최초의 도서관은 초등학교 저학년 쯤 언니와 함께 갔던 도서관이다. 내가 책을 읽었는지 기억은 없지만 도서관 매점에서 빵을 사먹은 기억은 있다. 그리고 친구들이랑 가서 라면을 사먹은 기억도 있고. 아니 무슨 도서관에서 먹은 기억밖에 없는지.

조금 더 떠올려 보면 도서관에서 글짓기 수업도 했던 거 같고 피아노도 쳤던 거 같다. 도서관에서 하는 프로그램에서 소풍도 갔던 기억도 있고. 어릴때 도서관에서 책 대출 뿐만 아니라 다양한 활동을 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까지도 열심히 도서관을 다닌다. 비록 빌려온 책을 거의 읽지 못 하고 반납하기 일쑤지만.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도서관은 내 삶에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도서관 가는 발걸음은 늘 설렌다.

그래서 이 책의 작가 수잔 올리언이 도서관에서 엄마와의 추억을 떠올리는 장면에 많이 공감했다. 그리고 도서관에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저장되어 있다는 것에도.

애정을 가지고 도서관에 대한 자료를 모으고 여러 사람들을 직접 만나서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성실하게 책으로 엮어낸 이 도서관에 대한 이야기.

도서관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 책을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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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 2024-01-19 23: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줄에 보태 이 리뷰도 술술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해요!!

망고 2024-01-20 00:09   좋아요 0 | URL
재밌게 읽어주셔서 제가 감사하죠 유수님😄

은오 2024-01-20 05: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헐!!!!! 이제 망고님 글 피드에서 보여요!!!!! 문의 답변은 뭐라고 달렸나요? 해결해주겠다고 했나요? 😆😆😆
미국에선 사서들이 인간 지식인 역할을 맡았다는게-지금도 사람들이 전화해서 별걸 다 물어본다는게-재밌네요. 처음 알았어요!! ㅋㅋㅋ 정말 인터넷 사용에 어려움이 있는 분들께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전에 <읽는 직업>이라고 편집자분이 쓰신 에세이를 읽었는데요. 어르신들이 전화해서 책 추천해달라고 하신다고.... 읽으면서 오 출판사에 전화해서 물어보기도 하시는구나 싶었는데 이게 생각나네요. ㅋㅋㅋ

잠자냥 2024-01-20 07:48   좋아요 2 | URL
전화합니다. 어르신들은 전화로도 주문합니다.

은오 2024-01-20 08:10   좋아요 2 | URL
저도 실은 70대 남성이고 책을 주문하고 싶은데요... 번호를 좀....

잠자냥 2024-01-20 08:21   좋아요 2 | URL
02-…….

은오 2024-01-20 08:22   좋아요 2 | URL
어른 상대로 장난치면 못써요 어허

망고 2024-01-20 13:07   좋아요 2 | URL
은오님 이제 제가 피드에 보인다니 너무 기쁩니다ㅋㅋㅋㅋ 문의에 달린 답변으로는 일시적인 서버 문제였다고 하더라고요? 문의 이후 알라딘에서 뭔가 조치를 취하긴 했던가 봅니다.
사서들이 별별 전화를 다 받고 대답도 다 해준다는 것에 저도 읽으면서 놀랐어요. 1970년대 도서관 전화 서비스 슬로건이 ˝다투지 말고 내기에서 이기세요˝였대요ㅋㅋㅋㅋ 요즘도 여전히 사람들이 전화를 걸고 잡다한 것들을 물어보고 대답해 주는 풍경들이 뭔가 따뜻해 보이기도 했어요. 사서들이 참 대단하기도 한데 피곤할 거 같기도 하고... LA도서관에서는 노숙자를 돕는 프로그램도 하고 있어서 노숙자들에게도 활짝 열린 공간이라고도 하고요. 모든 시민을 위한 민주적인 공간이라는 개념을 확실히 실천하고 있는 곳이 바로 도서관이라고 사서들은 생각하더라고요.
아참 그리고 은오 어르신~ 잠자냥출판사 전화번호 따기 꼭 성공하시길 응원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은오 2024-01-20 13:20   좋아요 2 | URL
일시적이라니!!!! 내가 예전에 망고님한테 그거 첨 말씀드린게 작년 2월인가 그럴텐데....😮‍💨
아무튼 망고님의 글을 바로바로 볼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
다투지 말고 내기에서 이기세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넘 좋네요. 말씀대로 사서들은 좀 피곤할 것 같지만요ㅠㅎㅎ
제가 잠자냥님 번호는 꼭 따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