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북아일랜드의 작은 타운(small town)에 살고 있는 마젤라 오닐이라는 빅 걸(big girl)의 일주일간을 이야기하는 소설이다. 일단 정말 즐겁게 읽었다. 마젤라가 너무 귀엽고 안쓰럽고 공감이 가는 매력적인 인물이라는게 가장 크게 읽는 재미를 주었다.

 


마젤라는 좋고 싫음이 분명한 사람이다. 소설의 첫 장부터 마젤라가 작성한 싫어하는 것들의 목록을 접할 수 있다. 세부항목까지 정리하면 97가지나 확장된다고 한다. 그 목록들은 크게 보면 주로 다른 사람을 만나서 하는 사회적인 친밀감 표현들이거나 패션에 관련된 것들 그리고 위생적이지 않은 것들로 정리가 된다.

좋아하는 목록은 싫어하는 것에 비해 간결하다. 먹는거, 미국드라마 달라스, 아빠, 할머니, 청소, 섹스, 헤어드라이어 등등...

이 소설은 이렇게 마젤라가 싫어하는 것들과 좋아하는 것들을 시간과 함께 소제목으로 분류해서 마젤라의 일상을 따라간다. “월요일 밤 10, 싫어하는 목록8의 아이템4 - 농담들, 반복되는 농담들이런식으로

 


마젤라는 27살이고 타운의 유일한 피쉬앤칩스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한다. 사실 다른 가게도 있지만 거긴 신교도가 운영하는 곳이라 마젤라가 속한 구교도 동네에서는 없는거나 마찬가지다. 마젤라는 그 신교도가 하는 가게엔 일생 한번도 가보지 않았다고 한다. 소설의 배경은 2000년 중반이라 북아일랜드에서의 평화협정이 이루어지고도 몇 년이나 지난 시점이지만 여전히 소설 곳곳에서는 구교도와 신교도는 갈등중이다. 예전같이 서로간 테러를 하는 큰 갈등은 사라졌지만 일상의 곳곳에서는 늘 나뉘어지고 적대감을 내보이는 북아일랜드의 현실이 마젤라의 생활에서도 심심찮게 묻어난다.


 

마젤라는 알콜중독에 우울증인 문제투성이 엄마와 단 둘이 살고 있다.

엄마는 술에 취해 늘 거실 소파에 누워 있고 주변엔 술병과 잡동사니들이 굴러다닌다.

마젤라의 아빠는 15년전에 실종되었다

마젤라의 삼촌은 IRA에 속해있었는데 테러를 위해 폭탄을 설치하다가 그게 너무 일찍 터지는 바람에 죽었다. 마젤라의 아빠는 형제의 죽음이후 달라졌다. 당시 욕실 타일을 새로 깔고 집안 이곳저곳을 고치려고 자재들을 잔뜩 가져다 놓았지만 그 죽음 이후 모든 것을 멈췄다. 그리고 어느날 실종되었다. 마젤라의 욕실은 아빠가 깔다가 만 타일 그대로인 상태로 15년이 흘렀다.

그러니까 마젤라의 집은 아빠의 실종이후 모든 것이 멈췄다고 볼 수 있다.

마젤라는 이런 것을 어떻게 견딜까? 집에만 들어오면 정체된 집안 꼴에 우울해 미쳐버릴거 같을 텐데도 마젤라는 전혀 그런 기미가 없다. 늘 무표정하게 집과 일터만 규칙적으로 왔다 갔다 하고 엄마의 식사를 챙기고 자신의 방에 들어와 문을 잠그고 잔다.


 

마젤라 집안의 불행은 현재도 계속 진행중이다

얼마 전 교외에서 혼자 살고 있던 마젤라의 할머니가 괴한의 습격으로 사망한 것이다

마젤라 가족은 현재 할머니 사건과 15년 전 IRA와 관련된 삼촌의 죽음과 아빠의 실종이 또다시 조명되면서 뉴스를 장식한다.


마젤라는 이 모든 것들을 내색하지 않는다. 이것들이 대화의 주제로 떠오르는 것도 싫어한다. 가게에 오는 손님들이 마젤라에게 안부를 물으면 무표정하게 준비된 말만 할 뿐이다.

사람들과 눈을 맞추는 법도 없다. 대화를 할때는 동료 마티에게 배운, 이런 대화에선 이렇게 해야 한다는 그런 전형적인 제스처를 흉내낸다. 농담이나 친밀한 대화 속에서 마젤라의 대답을 구하는 사람들에겐 역시 배워서 저장해 놓은 전형적인 문구들을, 이 질문엔 이런 대답을 저 질문엔 저런 대답을 하는 식으로 기계적으로 응대해준다.

감정을 나누는 대화란 마젤라에게 있을 수 없다!

 


하지만 무표정하다고 마젤라가 진짜 감정이 없을 리가. 마젤라도 나름 다 생각이 있다. 알고보면 착하고 따뜻한 사람이다.

무표정하게 가게 카운터 뒤에서 오고가는 사람들을 관찰하면서도 그 사람들의 이런저런 사정들을 생각한다. 마젤라의 시선은 따스하다. 매일 보는 지긋지긋한 손님이라도 며칠 보이지 않으면 걱정이 된다.

 

 

할머니의 장례식 후 마젤라의 일주일을 보여주는 이 소설은 기본적으론 그녀의 일상을 집요하게 쫓는다.

오후에 일어나 차를 끓이고 토스트를 구워 먹고 방에서 뒹굴뒹굴 하며 드라마 달라스를 좀 보다가 가게로 출근한다. 거기서는 늘 마주치는 마을 사람들과 단골들의 주문을 받고 음식을 튀기고 휴식시간엔 담배를 피운다. 새벽에 가게 문을 닫고 집에 걸어가서 샤워하고 싸가지고 온 음식을 먹고 잠든다. 이것이 대충의 마젤라가 반복하는 일상이다.

이런 반복 속에서 작은 변화가 오면 마젤라는 큰 결심을 해야 한다. 이를테면 이불을 사러 나가는 일 같은 거.

어릴 때부터 사용하던 마젤라의 이불은 지금은 너무 작다. 그동안은 불편을 감수하고 살았지만 이젠 정말 이불을 새로 장만해야 할 때가 왔다고 마젤라는 생각한다

버건디색 깃털 이불을 큰맘 먹고 사온다. 그리고 얼마나 행복해 하던지...... 마젤라의 잔잔한 일상을 같이 따라가다 보면 이런 작은 변화가 그녀에겐 엄청나게 큰 행복감을 준다는 걸 이해하게 된다.

 


책의 마지막장을 덮을 때 까지 범인이 정확하게 밝혀진다거나 마젤라의 주변 상황이 극적으로 변한다거나 하는 사건은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같은 듯 다른 매일매일의 일상 속에서 미묘하게 변화가 싹트는 걸 감지할 수 있다. 마젤라는 하루하루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엄마처럼 자포자기하거나 생활을 놓아버린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이젠 엉망인 집안을 청소하고 아빠의 실종이후 한 번도 열린 적 없는 창고 문을 따고 들어가 아빠의 연장을 사용해서 고장난 문을 고친다.

마젤라의 일상은 어쩌면 치유의 과정이었는지도 모른다. 슬픔은 깊숙하게 감추어 두었지만 하루하루 꾸준히 반복하는 삶 속에서 마젤라는 스스로를 달래며 앞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그렇게 사는 거다.

 

 

마젤라의 상황만 놓고 보면 소설은 매우 암울할 거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소설의 분위기는 명랑하고 유머러스하다

그리고 아주 생생하다. 일상적으로 나누는 대화체 속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들을 생동감있게 묘사해 놓았다. 물론 생소한 아일랜드 단어들과 발음대로 써놓은 대화들이 가끔 외계어같이 느껴져서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이것도 계속 반복해서 나오다보니 어느 순간 적응이 되더라.

그리고 마젤라의 일주일은 그녀의 pms기간에 맞춰져 있기도 하다. 그래서 그 기간에 겪게 되는 감정의 폭발(엄마랑 싸운다)이나 신체적 짜증스러움 같은 것들이 녹아있다. 마젤라에게 더욱 깊이 공감하게 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기도 하다. 같은 여자라는 거.

게다가 성장과정 속에서 인터넷이 아직 영향을 미치지 않았던 시절, 세상엔 비밀이 있고 그 비밀은 스스로 터득하곤 하던 시절에 자라온 여자아이의 이야기를 보는 것도 참 좋았다




그나저나 이 소설로 영상물이 나올거 같은 강한 예감이 드는데 드라마라면 더 좋을거 같고~

나는 사실 이거 읽으면서 영국배우들로 내 머리속에서 캐스팅을 이미 나름 다 끝내 놓은 상태다ㅋㅋㅋㅋ

얼른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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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먼저 드라마를 봤었는데 너무 재미없어서 보다가 말았다. 

드라마 분위기는 매우 심각해 보였으나 그 안에 내용이 너무나 별거 없었고 고등학생에서 대학생 시절 특유의 우울감이 듬뿍 들어가 있어서 내 손발이 자꾸 오그라드는거다. 그래서 초반 대충 보다가 접었던 드라마였다. 

소설에도 별로 관심 없었으나 집에 읽을 영어책이 없다는 이유로 책 주문할때 별생각 없이 끼워넣어서 주문해버렸다. 세일 하기도 했고ㅋㅋㅋ

역시나 소설도 내 취향이 아니었다. 읽으면서 몇번을 그냥 덮어 버리자 싶었으나 문장이 어렵지 않고 술술 읽히기 때문에 참고 읽었다.

일단 나는 이 소설의 캐릭터들에 전혀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얘네는 진지하고 심각하지만 읽는 나도 같이 심각해지지는 않았다는 말이다. 

고등학교때 만나서 인연이 대학까지 이어지고 누가봐도 연인사이지만 지들은 친구사이라 말하며 헤어지고 또 각자 연인이 있지만 서로간의 관심은 놓지않고 지내면서 언제든지 분위기만 맞으면 같이 잘 수 있는 사이지만 아닌척 하다가 또 다시 만나고 헤어지고......거기에 이 둘의 계급차이, 돈많은 집안 출신과 그렇지 않은 이라는 현실이 크게 작용하는 듯 보이지만 또 그 갈등은 각자 툭 털어놓고 이야기 나누다보면 털어지는 정도로 거기에 전적으로 집중하지는 않는것 같고...

폭력적인 집안에서 폭력에 무기력하게 자라나다보니 이상한 성적취향을 가지게 되었다는 개연성은 너무나 끼워맞춘듯한 느낌이고 결말에 가선 폭력을 직접 행사하지 않고 말로만 명령을 하면 거기에 따르는 것으로도 만족이 되어서 좀더 평범함에 가까워졌다고 말하는 여주인공에 나는 그저 짜증이날 뿐이고......

그냥 그렇다.

이 소설은 솔직을 가장하지만 알고 보면 엄청 꾸민 느낌이다. 뭔가 진짜같지가 않다.

차라리 진짜 말도 안된다 싶은 연애소설이나 볼걸 그건 재밌기라도 하지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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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로 된 강물처럼
윌리엄 켄트 크루거 지음, 한정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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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만끽하며 동네를 뛰어다니고 어른들 대화를 엿들으면서 세상에 대해 알아가는 아이들을 보는건 흐뭇했지만 결말은 와닿지 않았다 종교적인 교훈이 너무 작위적이었다 어떻게 그리 쉽게 용서가 되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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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예전에 조이스 캐럴 오츠의 소설을 두 권 읽은 적이 있다. “멀베이니 가족그들”.

두 권 다 읽고 나서 후유증이 상당했다. 깊고 진한 여운이 오랫동안 남아서 어쩔 때는 꿈자리가 뒤숭숭하기도 했었다

읽고 나서도 이런데 읽는 중에는 얼마나 몰입이 되었겠는가. 작가가 만들어낸 인물들 각자에 너무나 깊게 감정이입을 해서 책장을 넘기기가 힘들기까지 했었다. 마음아파서 다음을 어떻게 읽나 하면서도 궁금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읽어내려야 하는 그 고통!

 


그래서 이 소설 카시지를 읽기 전에도 마음 준비를 단단히 했다. 이번에는 얼마나 또 나를 책 속의 인물들에 푹 빠지게 할까 기대감을 가득 품고선......

하지만 이번엔 기대와 달랐다. 소설을 다 읽은 지 하루가 지났는데 그냥 덤덤하고 읽을 때도 덤덤했다. 사실 더 솔직히 말하면 다른 오츠의 소설들과는 달리 이 소설은 언제 끝나나 하면서 자꾸만 페이지수를 계산하며 읽기까지 했다.


 

책을 읽으면서 주제의식에 상황과 인물들을 끼워 맞춘 느낌이 들어서 부자연스럽다는 느낌이 내내 들었기 때문이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고 있는 이라크전 참전 군인을 내세워서 이야기 하는 전쟁의 참상과 잔인함, 가난한 젊은이들을 전쟁에 내모는 미국 사회의 부조리함, 사회주의 교수의 연구 작업에 참여하면서 들여다보게 되는 미국의 사형제도와 감옥 시스템과 범죄자들에 대한 인권문제 등등

그전에 읽었던 오츠의 소설들에선 인물과 인물이 처한 상황에 대한 정밀한 묘사와 그것을 뒷받침 해주는 서사가 한몸처럼 움직였다. 그래서 사회의 부조리한 문제들이 인물들을 덮쳐올 때 독자로 하여금 가슴 답답한 고통을 안겨주면서 자연스럽게 분노하게 했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는 작가의 목소리가 인물들 밖으로 툭 튀어나온 느낌이었다. 소설 속 인물이 하는 얘기가 아니라 작가가 하는 얘기인 듯이 말이다. 그러니 비극이 그저 덤덤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던거 같다.

 



겉으로 보기에는 행복해 보이던 가족이 흩어졌다가 다시 모이게 되는 이 소설의 큰 줄기도 감동이 덜 했다. 아니 사실 이것 또한 그저 덤덤했다.

예쁜 언니 밑에서 예쁘진 않지만 똑똑한 아이라고 알려졌던 동생 크레시다. 언니만큼 예쁨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어서 오히려 냉소적이고 못되게 행동하던 아이가 저지른 사건 때문에 한 사람은 감옥에 가고 가족은 고통 속에서 해체된다. 그리고 그 아이가 몇 년이 지난 후 돌아온다. 자신이 저지른 일을 참회하며 용서를 구하기 위해서.


결국 이 이야기는 인간을 자신의 좁고 유아적인 자아안에서 자의적으로 해석하며 사회와 교류할 줄 모르는 철없던 여자아이의 성장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가족과 떨어져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살며 자신을 돌봐주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곳곳의 사회 문제를 고발하는 교수의 연구작업에도 조수로 참여하면서......

부모의 울타리 밖에서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면 당연히 성장하기 마련이다. 어른이 되는 과정을 크레시다는 이토록 요란법석을 떨며 거쳐야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그녀의 새로운 삶에서의 성장이란게 그녀가 저지른 일에 비해 터무니없이 평온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크레시다의 참회가 와닿지 않았다.


또한 크레시다라는 인물에 더 집중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크레시다의 새로운 삶의 이야기에서는 그녀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사연이 더 흥미롭게 펼쳐지고 어느새 크레시다는 그 사람들의 관찰자가 되어버린거 같았다. 그래서 그녀의 참회가 좀 뜬금없다는 느낌도 들었다.

 


 

결국 나는 처음에 기대했던 강렬한 여운을 이 소설에서 느끼지 못 했다. 그렇다고 작가에 대한 믿음을 거뒀다는 얘기는 아니다

조이스 캐럴 오츠는 여전히 내가 존경하는 작가다인간과 사회를 바라보는 대가다운 통찰력이 책 곳곳에 포진해 있다는 건 부인하지 못 한다. 다만 이야기적인 즐거움과 감동이 덜 했다는 게 내가 실망한 이유다.

뭐 그럴 때도 있는 거지. 한 작가의 책이 몽땅 다 좋을 수는 없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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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알고 있다 - 꽃가루로 진실을 밝히는 여성 식물학자의 사건 일지
퍼트리샤 윌트셔 지음, 김아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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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생태학이라는 분야를 알게된 점이 가장 큰 수확이었고 저자가 살아온 이야기를 읽다보면 인생에 대한 통찰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문장을 읽는 맛은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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