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영화 녹터널 애니멀스를 보고 내용상 약간 부족함을 느껴서 원작 소설을 보고자 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원서를 샀는데 바로 이게 실수였다. 몇 번을 집어 던졌는지 모른다!

너무너무 재미없었다. 원서를 읽을 때는 그저 첫째도 재미 둘째도 재미 셋째도 재미다. 재미라는게 흥미위주의 가벼운 재미도 물론 포함이지만 내가 감탄할 수 있는 문학적 성취나 지적인 흥미 같은 것도 당연 재미에 속하는 것이다. 아무리 원서에 단어가 어렵고 문장이 복잡해도 이런 재미들이 있으면 참고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은 도통 재미가 없었다!

스릴러인가 하고 읽었지만 전혀 스릴러가 아니고 그렇다고 문학적으로 가슴을 때리는 이야기를 하고 있냐하면 그것도 아니다소설 속 인물이 읽는 소설 이야기는 그것대로 긴장감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이건 순전히 소설 속 소설이라는 형식을 벗어나 독립적으로 나와 있을 때나 가능한 것이다. 소설 속에서도 이미 소설이라고 하면서 나오는 이야기를 대체 무슨 긴장감을 가지고 읽을 수가 있겠는가? 이건 그냥 소설일뿐이라는 한계가 정해져 있는데?

그리고 그 소설을 읽는 수잔의 이야기는 정말......공감도 안 되고 재미도 없고.

대체 왜 수잔은 에드워드의 소설을 읽으면서 양심에 찔려하는 건데? 그 이야기와 수잔의 첫 번째 결혼 생활과의 연관성을 대체 어디서 찾아야 하는 거지?

게다가 문장들이 너무너무 짜증난다. 길게 줄줄 늘어지거나 불완전한 문장들로 끝내버리는 이 작가의 문체는 정말이지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읽다가 이게 뭔소리지 하고 돌아가서 다시 읽기를 계속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이 책을 집어 던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가 그래도 한번 어떻게 끝내나 보자며 다시 가지고 와서 꾸역꾸역 읽다보면 도통 등장인물 그 누구에게도 정이 쌓이지 않고 오히려 화가 쌓이기 시작해서 급기야는 뛰어넘기 신공을 발휘하게 되는데 그러면서 나는 중얼거리기 시작한다. 다시는 이 작가의 책을 보지 않겠어 라고.

작가 이력을 보니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쳤던 교수님이었다. 어쩐지! 학생들 가르치며 소설을 분석하던 습관대로 소설을 쓰신것이로구만. 소설을 너무 머리로 썼다 했지.

아무튼 이 책은 책장 속 눈에 안 띄는 구석탱이에 처박아 둬야겠다. 책에 대한 나의 소심한 복수다.

 


ㅠㅠ 요즘 올해들어 산 책이 택배사에서 안 오고 있다. 교보랑 예스24에서 산 것들. 벌써 열흘이 넘었다.

새 책이 안와도 읽을 책은 많지만 그래도 안 오니 답답하고 뭐 그렇다. 이런 상황에서 이 책이 더욱더 곱게 보일리가 없었던걸까? ㅋㅋㅋㅋ 쓰다 보니 분노의 후기가 되었네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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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01-12 23: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교수님 자신이 창작한 주인공들을 분석 하듯이 ㅋㅋ
소설 작법(페이지 터너)는 리 차일드와 킹 작가가 교수님들보다 훠!얼씬!^^

새해 연휴 시작 되는 주 이전에 망고님 주문 도서들 안전하게 도착 해야 하는데...

망고 2022-01-12 23:48   좋아요 1 | URL
그니까요 교수님이 소설을 여러방면으로 생각해 보도록 썼는데 너무 가슴으로 안 와닿고 그냥 학생들한테 소설은 이렇게 구성하고 독자들은 이런식으로 생각하고 등등을 본보기로 보여주듯 쓴 느낌이에요ㅜㅜ 에잇 영화로 끝냈어야 할것을
 



루시 바턴과 윌리엄은 대학에서 만나 결혼했고 딸 둘을 두었다. 윌리엄은 결혼 생활 내내 여러명의 불륜 상대가 있었고 루시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게다가 윌리엄은 대학 시절부터 부부의 친구인 여자와도 바람을 피웠다. 윌리엄은 정말 최악의 남편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도 루시는 이 사실을 알았을 때 그를 떠나지 않았다. 오히려 남편이 불륜상대 때문에 자신을 버릴까봐 두려워서 서럽게 울며 남편을 붙잡고는 제발 나를 떠나지 말라고 사정하기 까지 했다.

젊은 시절 루시 바턴은 그랬다. 자신이 남편을 버려야 할 상황에서 오히려 버려질까봐 울며 매달리던 사람이었다.


루시에게는 너무너무 가난해서 춥고 배가 고팠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부모님은 아이들을 학대하다시피 훈육 했고 학교에서는 더럽고 냄새난다고 놀림의 대상이 되었던 성장기. 그것은 그녀에게 깊은 상처로 남아 있다.

이런 루시가 대학에 가서 사랑에 빠지게 된 윌리엄은 여유 있는 집안에서 사랑 받고 자란 외동아들로 루시와는 모든 면에서 다른 사람이었지만 루시를 편안하게 해 주던 사람이기도 했다. 너무 가난해서 집에 TV가 없었기 때문에 대중문화나 세상 돌아가는 얘기들을 하나도 몰랐던 루시에게 윌리엄은 다정한 안내자 역할도 해주었다. TV도 같이 봐주고 동화책도 읽어주고 비행기도 태워주고 어머니 집에 데리고 가주기도 하면서 윌리엄은 루시에게 세상을 보여주었다

윌리엄 전에 만났던 남자는 루시의 촌스러운 패션을 지적하거나 가난한 집에서 자란 것을 신기해하며 루시를 기분 나쁘게 하곤 했다. 하지만 윌리엄은 루시에게 차근차근 가르쳐주며 함께 손을 잡고 길잡이를 해주는 사람이었다.

루시는 윌리엄과의 관계를 헨젤과 그레텔에 빗대어 이야기한다. 윌리엄은 헨젤이고 루시는 그레텔이라고. 둘다 어린아이고 숲속에서 길을 잃어 빵조각을 찾으며 나아가야 하지만 그레텔은 헨젤이 있어서 안전하다고 느낀다고.

그래서 루시는 윌리엄에게 남들에게는 절대 하지 못 할 어린 시절의 깊숙한 이야기까지 다 털어놓을 수 있었고 그 누구에게도 보이지 못 하지만 윌리엄 앞에서는 어린아이같이 엉엉 울어버릴 수도 있었다. 윌리엄과 살던 집은 진정한 집이라고 느끼는 유일한 집이었다고 하고 나중에 재혼한 남편과 살던 집은 진정한 의미의 집이라 부르지 못 했다고도 한다.

 

이토록 루시 바턴에게 윌리엄이라는 존재는 참으로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루시는 윌리엄을 떠난다. 아이들이 다 대학을 가게 되고 결혼 생활도 20년쯤에 접어들었을 때였다. 루시가 떠날 수 있었던 건 자신이 소설가가 되면서 드디어 독립할 용기가 생겼기도 했고 그 당시 루시에게도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윌리엄과 이혼 후에도 루시는 계속 그와 친구로 지낸다.

루시의 현재 나이 64, 윌리엄은 71살이다. 그러니까 루시와 윌리엄은 40년 이상을 알고 지내온 셈이다. 부부로 20, 친구로 20년을 함께하는 관계란 어떤 걸까? 소설을 읽는 입장의 나로서는 이런 관계가 과연 현실에 있을 수 있을까 싶어서 좀 놀라웠는데, 가만 생각해 보니 루시라면 이런 관계를 지속할 수도 있었겠다 싶었다.

루시는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로 마음 한 구석에 외로움과 우울함을 조용히 쌓아놓고 사는 사람이다. 그래서 꽤 자주 현실 속에서 남들에게 자신이 보이지 않는 것 같다는 느낌에 휩싸인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이 이런 자신을 보고서 비웃고 있다는 부끄러운 감정도 동시에 든다고 한다. 이 느낌을 정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루시는 그런 느낌이 두렵다. 이런 루시의 감정을 알고 있는 사람은 윌리엄이다. ‘루시 또다시 그런 느낌이 드는 거야?’ 하고 물어볼 수 있는 사람. 이 세상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내보일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전남편 윌리엄인 것이다. 이런 관계는 외로움이 마음속에서 두려움이 되곤 하는 루시에겐 참 소중했을 것이다. 그래서 윌리엄은 루시의 누구보다 가장 친밀한 사람으로 남을 수 있었을 것이다.

 

윌리엄에 대한 감정을 이야기 할 때 루시는 윌리엄한테는 권위가 있다고 말한다. 울타리 같은 든든함을 권위라고 표현하는 것이라고 느꼈는데, 앞서 말했던 그레텔의 손을 잡고 길을 찾아가는 헨젤과 같은 느낌을 루시는 내내 윌리엄에게 투영한다.

그래서 루시가 재혼한 남편이 병에 걸렸을 때, 그리고 그가 죽었을 때 전화한 사람은 윌리엄이었다. 루시의 전화를 받고 윌리엄은 해결책을 제시해 주고 여러 복잡한 문제들을 처리해 준다.

결혼 생활 중 시어머니 캐서린이 죽어갈 때도 윌리엄은 감정적이었던 루시와 달리 이성적으로 다가올 캐서린의 죽음 이후의 문제를 처리해 나갔다.

이러한 윌리엄의 모습들에 루시는 마음속에 그 권위에 대한 확신을 단단히 쌓아왔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 윌리엄에게 몇 가지 충격적인 일이 닥치면서 루시가 알고 있던 윌리엄이라는 이미지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아니 어쩌면 이미 그 균열은 그전부터 생겨오고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윌리엄이 점점 늙어 가는 게 보였을 무렵, 윌리엄의 등이 예전처럼 꼿꼿하게 서 있지 않다고 느꼈을 때 루시는 윌리엄을 보며 마음 아파한다. “오 윌리엄!”을 삼키며.

윌리엄이 겪은 가장 충격적인 일은 최근 자신에게 이부 누나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70살이 될 때 까지 까맣게 모르던 일이었다. 거기에 현재 윌리엄의 세 번째 결혼까지 파탄이 난 상태라 그의 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윌리엄에게도 루시는 가장 친한 친구이고 어머니 캐서린에 대해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루시의 존재가 위안이 된다. 그래서 윌리엄은 어머니에 대한 진실과 누나를 확인해 보기 위한 여행에 함께하자고 루시에게 부탁한다.

 

루시와 윌리엄은 죽이 맞아 웃기도 하고 투닥투닥 싸우기도 하면서 여행을 한다. 여행 하는 모습이 꼭 오래된 부부 같기도 했다. 이제는 배고픈 걸 참지 못 하는 노년의 루시 바턴을 볼 수 있다는 점도 재밌는 부분이기도 했고.

아무튼 여행에서 윌리엄은 누나가 아주 잘 살고 있으며 윌리엄과는 만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말을 전해 듣는다. 게다가 어머니가 자랐던 집도 가서 보게 되는데 그 집이 너무 작고 형편없어서 충격을 먹는다. 이건 루시도 마찬가지였다. 루시가 자랐던 집보다도 더 작고 가난해 보이던 집이었던 것이다.

루시가 보기에 늘 우아하고 사랑스럽고 상류층 사람처럼 보였던 시어머니 캐서린. 캐서린은 한번도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윌리엄도 루시도 캐서린이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캐서린이 자신의 친구들에게 루시를 소개할 때는 늘 이렇게 말했다. “Lucy comes from nothing”(루시는 출신이랄 것이 없어)

루시에게 캐서린의 취향대로 옷을 사주고 골프를 배우도록 종용하고 루시를 고급스러운 휴양지에 데리고 가주기도 했던 캐서린은 정말로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리고 윌리엄은 이제 어머니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모두가 혼란스러운 가운데 여행은 끝난다. 뉴욕으로 돌아오는 길에 윌리엄은 풀이 팍 죽어 있다. 급기야 그의 눈에서 한줄기 눈물까지 보게 된 루시는 다시 한번 오 윌리엄!”을 삼킨다.

그러니까 루시는 윌리엄의 길이가 맞지 않은 짧은 바지를 볼 때도, 매치되지 않는 색깔의 양말을 볼 때도, 커다랗고 황량한 아파트에 윌리엄 혼자 있는 모습을 볼 때도  윌리엄!을 삼켰다. 요즘 따라 윌리엄의 모습에 루시는 자꾸만 마음이 아프다.

그리고 여행에서 돌아와 한동안 뜸했다가 다시 만난 윌리엄은 루시에게 또 다르게 다가온다.

그의 얼굴에서 권위가 사라졌음을 보게 된 것이다. 루시를 안전하게 느끼게 해 주었던 그 헨젤의 모습이 윌리엄에게서 사라졌다.

단단하기만 할 것 같은 윌리엄이 슬퍼하는 모습을 봐서일까? 그도 한낱 늙어가는 외로운 인간이라는 연민이 자아낸 결과일까?

아니 어쩌면 캐서린이 살아 있을 때 루시도 윌리엄도 캐서린이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했던 것처럼 아마도 루시는 윌리엄을 알지 못 한 것일 수도 있다. 그의 아주 작은 일부만 알고 있었던 것일 수도 있다. 그러니까 어쩌면 변한 건 루시일지도 모른다. 한때는 헨젤에게서 안전함을 느꼈던 그레텔이 다 커버렸기 때문이다. 이제는 오히려 윌리엄이 루시의 존재로 인해 위로를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 윌리엄!”은 루시의 성장을 이야기 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 트라우마를 서서히 극복해 가는 과정, 윌리엄에게서 안전함을 느끼다가 이제는 윌리엄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는 과정을 통해서 말이다.

젊은 시절 윌리엄의 다리를 붙잡고 제발 나를 떠나지 말라고 울며 매달리던 루시와 현재의 안정적이고 여유로운 모습의 루시를 비교해 보면 그녀의 성장이 확 와 닿는다.

내 이름은 루시 바턴에서부터 봐온 루시가 이제는 덜 외롭고 덜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며 오 윌리엄!”을 덮는다. 이제 나는 루시 바턴을 두 딸과 함께 백화점에서 수다를 떨며 쇼핑하는 모습으로 상상할 수 있다. 행복해 하는 모습으로 노년의 루시 바턴을 그려볼 수 있어서 정말 안심이 된다.

 

 

짤막한 현재의 일화들에 의식의 흐름처럼 끼어드는 회상들이 이 소설을 구성하고 있는데, 시간과 시간 사이에 구멍이 숭숭 뚫려 여백이 많지만 부족하단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루시 바턴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그 진액만 쭉 짜 놓은 거 같은 느낌이다. 문장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이전 소설보다 더 간결하다. 하지만 그런 간결함에 정말 많은 감정을 담고 있어서 짧은 문장 하나하나가 감동으로 다가온다.

오 엘리자베스! 작가님 글이 너무 좋다!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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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12-22 14: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망고님에 따끈 따끈한 오! 윌리엄 리뷰!! 넘 ㅎ 좋습니다 !^^

망고 2021-12-22 14:54   좋아요 1 | URL
(_(
(„• ֊ •„)
O☕️O

감사합니당~ 커피드세요 스콧님ㅎㅎ

다락방 2021-12-22 15: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망고님은 이 책을 벌써 읽으셨군요. 저는 번역본 출간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윌리암이 그 윌리암이로군요. 루시 바턴의 연작이네요. 저도 얼른 읽고 싶어요.

망고 2021-12-22 16:26   좋아요 1 | URL
다락방님 번역본 나오기전에 충분히 읽으실 수 있을거 같은데요 정말 문장이 간단하고 분량이 짧은데 단어도 어렵지 않아요 도전해 보시길 추천해요

다락방 2021-12-22 16:41   좋아요 0 | URL
아아 제게 꿈과 희망과 용기를 주시는 망고님 🥺

망고 2021-12-22 16:49   좋아요 1 | URL
일단 시작해 보셔요 화이팅😄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이건 자전소설이구나 싶었다. 사실 2020년 부커상 수상작이라는 것만 알고 읽기 시작했기 때문에 책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었다. 그런데도 그냥 딱 알겠더라. 이건 작가의 실제 경험을 소설화 한 것이고 제목이자 소설 속 인물인 셔기 베인은 작가의 분신이구나 하고.

소설을 다 읽고 마지막 장의 작가의 감사의 글까지 읽어보니 작가는 실제로 알콜 중독 어머니가 있었고 헌신적인 형이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인터뷰도 잠깐 찾아서 읽어보았다.

작가 더글라스 스튜어트는 실제로 글래스고에서 알콜중독인 어머니 곁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는 없었다. 어릴 때부터 다른 남자아이들과 달랐던 그는 늘 놀림과 괴롭힘을 받고 살았다고 한다. 소설 속 셔기 베인이 호모라고 놀림받고 아이들 사이 폭력적인 상황에 내몰리듯이 말이다. 16살에 어머니는 결국 알콜중독으로 죽었고 고아가 된 그는 고등학교를 계속 다니기 위해 밤에 일하면서 어렵게 공부했다고 한다. 그러나 글래스고를 떠나 대학을 가게 된 후 그의 인생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는다. 뉴욕 여러 유명 패션회사에서 디자이너로 경력을 쌓게 되면서 성공한 디자이너가 된 것이다. 디자이너로 일하면서도 자투리 시간에 늘 글을 썼던 그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바탕으로 한 1980년대가 배경인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그는 이것을 32살 때부터 써서 42살에 완성했다고 한다. 처음 초안은 무려 A4용지로 900장이나 되는 엄청나게 긴 작품이었다. 그러다 주변인의 조언을 듣고 줄이고 줄여서 다시 쓴 것이 바로 이 소설 셔기 베인이다. 줄여도 한글판으로 거의 600장에 육박한다. 그는 이 소설로 소설가로 첫 데뷔를 했고 데뷔하자마자 2020년 부커상을 거머쥔다.

대단하지 않는가? 어린 시절부터 힘들게 열심히 살았던 것도 그렇고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 틈틈이 쓴 소설이 바로 최고의 상까지 탄 것도 그렇고. 정말 인간승리의 한 장면이 아닐수 없다.

 


소설은 1980년대 대처 시대의 영국 그것도 글래스고의 워킹클래스 가족의 이야기다. 굉장한 미인이었던 애그니스는 첫 번째 결혼과 두 번째 결혼 모두 실패한다. 남자들에게 걸었던 인생은 모두 그녀가 원하던 삶이 아니었다는 것이 드러나게 되고 거기에 좌절하면서 점점 술에 의지하고 만다. 아이들은 셋이나 있다. 어머니가 알콜 중독자로 망가져 가자 집안의 유일한 수입원이었던 첫째 딸은 일찍 결혼을 해서 가족에서 빠져나갔고 둘째 아들은 그림에 재능이 있어서 예술 대학 합격증까지 받았으면서도 어머니에게 합격사실을 말하지도 못 하고 집에 남는다. 이제 가족 내에서 돈을 벌 수 있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었고 돈없이 대학을 갈 수도  집을 나갈 수도 없기에. 막내 셔기는 8살 나이에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알콜 중독자 어머니 곁에서 제대로 된 돌봄도 받지 못하며 자란다. 또래 남자아이들과 많이 달랐던 게이 소년인 셔기는 밖에서는 늘 괴롭힘을 당했고 성적이고 폭력적인 욕설을 보통으로 듣고 자란다.

복지수당으로 음식보다 술을 사는 게 더 중요했던 어머니는 돈이 떨어지면 술을 사기 위해 남자들까지 침대로 끌어들이기 일쑤였고 이러한 것들을 어린나이부터 일상적으로 보고 자란 셔기는 어머니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지만 어린아이가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그저 어머니가 망가지는 것을 지켜보는 수밖에. 하지만 둘째 형과 셔기는 가족 안에 있는 한은 어머니를 어떻게든 지키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술을 끊지 못하는 어머니 때문에 집안은 점점 더 막장으로 치닫는다. 그 과정이 읽기가 너무 괴롭고 힘들었다. 술을 도저히 끊을 수 없는 어머니와 그걸 지켜보는 자식들의 무기력함과 슬픔. 이것들이 소설 전반을 채우고 있다.

애그니스의 자식들은 참 착하다. 어머니를 원망할 법 한데도 셔기는 끝까지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놓지 못 한다. 둘째도 결국에 집을 나가지만 늘 집안일에 신경을 쓰고 있다. 가족이란게 다 이렇겠지. 괴롭고 힘들지만 외면할 수 없는 것. 이런 끈끈함이 이 책을 읽다보면 묻어난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숨이 콱 막힌 듯 답답했다. 어머니를 떠날 수 없는 아이들이 너무 불쌍해서.

제발 애그니스! 착한 아이들을 생각해서 정신 좀 차려! 하고 책 속에 들어가서 소리치고 싶었다. 설령 내가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애그니스는 콧방귀도 안 뀔 캐릭터이긴 하지만 말이다.

 

소설 속 상황이 답답하고 우울하긴 하지만 그래도 결론은 희망적이다. 혼자된 셔기 베인은 앞으로의 삶을 잘 꾸려 나갈 것이라는 암시로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성공한 패션 디자이너이자 이제는 성공한 작가가 된 이 책의 작가가 스스로의 삶을 반추했을 때 쓸 수 있었을 삶의 긍정이기 때문에 책을 덮고 나서 참 안심이 되었다. 결국 현실 속 셔기 베인은 삶을 잘 해쳐나갔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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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12-11 11: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작품 1980년대 영국 대처 시대의 영 글래스고의 워킹클래스 가족 이야기 군요
글래스고 출신 배우 제임스 맥어보이가 그 시절 글래스고 엄청 암울했다고 했는데 소설 속 아이들 모습이 불쌍 ㅜ.ㅜ

망고 2021-12-11 12:03   좋아요 1 | URL
네 정말 암울하더라고요ㅠㅠ그래서 읽느라 힘들었어요ㅜㅜ제임스 맥어보이가 글래스고 출신이었군요 오 또 새로운 정보습득^^
 

토지 2권 시작하자마자 마음 아픈 대목이ㅠㅠ
1권에서 월선이 데리고 떠날 용기도 없고 강청댁한테 미안한 기색도 없는 용이가 약간 비호감^^;;이었는데 2권 시작하자마자 나오는 어린시절 용이는 안쓰럽네ㅠㅠ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어린 시절, 대부분을 이 행랑 뜰에서 놀았던 일이 생각났다. 노상 치수에게 두드려 맞았었다.
‘옴마, 내가 심이 더 센데 와 밤낮 얻어맞아야 하노.‘
모친은 잠시 용이를 바라보았다.
‘심이 세니께, 억울할 것 없다.‘
‘나도 때릴란다.‘
‘도련님이 몸이 약하니께 니가 참아야지, 셈 찬 성이 참더라고 니는 심이 세니께..‘
‘그라믄 머 심만 세믄 밤낮 맞아야 하나?‘
"그러니께 니보다 심센 놈을 만나거든 그때는 지지 말고 때리주라모,‘
‘심센 놈이 그라믄 나겉이 맞아줄 기가?‘
‘어진 마음이믄.‘
- P14

‘안 어지믄 난 또 맞아야 하게?‘
‘나쁜 놈 되는 것보다 어진 사램이 돼야제."
‘그라믄, 그라믄, 그래도 옴마.‘
‘...‘
‘심이 세도 맞고 심이 없이도 맞고 맞고만 살라 카나?‘
말문이 막혔던지 모친은 말이 없었다. 한참 후 먼 산을 보면서.
‘상놈이 우찌 양반을 때릴 것고.‘
그 말을 듣고 용이는 울었다.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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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12-24 11: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전 토지 9권에서 멈춘지 수년 째
!
2021년 완독을 꿈꿨지만 ㅎㅎㅎ

망고님! 행복 가득 !
메리 크리스마스!!

🎄 ℳ𝒶𝓇𝓇𝓎 𝒞𝓇𝒾𝓈𝓉𝓂𝒶𝓈 🎅🏻
  ∩ ∩  / ̄`>O
  い_cノ (ニニニ)
 c/・・ っ (>∀<* )
 (˝●˝ )___とと )
  ヽ  ⌒、 |二二二|
  しし-し ┻━┻

망고 2021-12-24 11:57   좋아요 1 | URL
저 토지 진짜 천천히 읽고 있어요 완독을 언제 할 수 있을지...ㅎㅎㅎ
스콧님 맛있는거 많이 드시고 메리 크리스마스🎂🥂
 

(우리집 감나무에서 수확한 감과 책사진)



사실 작년에 나온 패니 플래그의 책을 읽어볼까 하다가 그 책이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의 속편이라고 해서 내려놓았었다. 아직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도 읽지 않은 상태였으니까.

그래서 이번에 읽게 되었다. 90년대에 나온 영화도 있어서 제목을 많이 들어봤는데 그동안 왜 읽을 생각은 안 했을까 몰라^^

책은 따뜻한 이야기였고 재미도 있었다. 근데 이 책을 읽고나니 굳이 그 속편까지 읽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아서 작년에 나왔다는 그 책은 읽지 않기로 했다. 

그냥 완벽하게 이 책으로 모든 이야기가 완성된 느낌이라 속편이 궁금하지가 않다. 


책을 읽었다는 기록은 인상적인 문장들을 옮겨 놓는것으로 하겠다. 




"있잖아요, 나는 사람을 죽일 수도 있어요. 만약 누가 루스를 해치려 한다면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당장 죽여 버릴 거예요."

"오, 이지, 말만 들어도 끔찍해"

"아뇨, 그렇지 않아요. 증오 때문에 사람을 죽이는 것보다는 사랑 때문에 죽이는 편이 낫지 않아요?"

(119쪽)



늘 가까이 있던 사람에게 점차 사랑을 느끼게 될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이 언제 시작되었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그러나 루스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이지가 환하게 웃으며 벌꿀이 든 병을 건네주려 했을 때, 그토록 억제하려 했던 감정들이 홍수처럼 밀려들었다. 이지를 마음속 깊이 사랑하고 있음을 안 것도 바로 그때였다. 그날 울음을 터뜨렸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이전에는 한 번도 그런 감정을 느껴 본 적이 없었으며 앞으로도 다시는 느낄 수 없을 터였다.

(121쪽)



슈퍼마켓에서 그처럼 심한 욕설을 들은 뒤, 에벌린 카우치는 능욕당했다는 느낌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말로 당한 강간이었다. 완전히 발가벗겨졌던 것이다. 우발적 사건으로 치부해 버리고 싶었으나 불쾌한 남자들과 마주치면 늘 겁이 났고, 욕설을 듣게 될까봐 두려웠다. 그녀는 목장 울타리를 넘어와 치마를 들추어 대는 유의 사람들 주변에서는 늘 몸을 사리고 조심했다. 작은 빌미만 주어지면 언제라도 그런 상스러운 욕설들이 날아올 태세를 갖추고 코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313쪽)



머리를 겨누고 내 삶을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총, 그 힘, 그 음험한 위협......욕먹는 것에 대한 그 공포는 무엇일까?

에벌린은 행실이 좋지 못한 여자라는 말을 들을까봐 순결을 지켰다. 노처녀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결혼을 했다. 불감증이라는 말을 듣지 않으려고 오르가슴을 연기했으며, 아이를 못 낳는 여자라는 말을 듣지 않으려고 아이들을 가졌다. 괴상하다거나 남성혐오자라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서 페미니스트가 되지 않았고, 못된 년이라는 소리를 들을까 봐 바가지를 긁지도 언성을 높이지도 않았다. 

그 모든 것들을 실행해 왔음에도 그 낯선 사람은 화가 난 남자가 여자에게 하는 욕설을 던짐으로써 그녀를 시궁창 속으로 밀어 넣었다.

(314쪽)



그러다가 에벌린은 멈칫했다. 이전에는 결코 느껴 보지 못했던 감정이기에 두려웠다. 그러니까 에벌린 카우치는 대부분의 여자들보다 20여 년 늦게 분노를 경험하는 중이었다.

에벌린은 두려워하는 자신의 모습에 화가 났다. 그처럼 뒤늦게 찾아온 분노는 낯설고도 특이한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에벌린은 난생처음으로 자신이 남자였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남자들이 그토록 중히 여기는 이런저런 특혜를 누리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절대로. 단지 남자가 가진 힘만을 갖고 싶었다. 그래서 슈퍼마켓에서 욕을 하던 그 못된 아이를 흠씬 두들겨 패 주었으면 싶었다. 물론, 그녀가 남자였더라면 애초에 욕설을 듣지도 않았을 것이다. 

(315쪽)



하지만 불알을 두고 호들갑을 떠는 남자들을 보노라면 마치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무엇이라도 되는 것처럼 보였다. 맙소사, 에드는 아들의 그것이 적당한 모양으로 발육하지 않자 걱정이 되어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의사 말로는 모양이 그렇더라도 아이를 갖는 데는 문제가 없다고 했지만 에드는 마치 무슨 비극이라도 생긴 것처럼 행동했고 아들을 정신과 의사에게 데려가고 싶어 했다. 그래서 아들이 스스로 남자도 아니라는 느낌을 갖지 않게 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에벌린은 당시에 했던 생각이 다시 떠올랐다. '어처구니가 없군......성장기때 내 가슴은 절벽이었지만 누구도 나를 어디론가 보내서 어떤 도움을 받게 해야 한다는 생각 따위는 하지 않았어'

(361쪽)



한때 에드는 바로 그 여직원을 칭찬했다. 그녀가 사장에게 과감히 맞서는 걸 두고 베짱이 두둑한 불알 달린 여장부 같다고 떠벌이던 게 기억났다.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그녀는 의아했다. 그 여자의 힘과 에드의 해부학은 무슨 관계가 있는 거지? 그는 이렇게 말하지 않았다. "이봐, 그 여자는 대단한 난소를 갖고 있어"라고. 그는 분명히 그 여자가 어떤 불알을 가졌는지 말했다. 난소에는 난자가 있다. 난자는 정자만큼 중요해서는 안 된단 말인가?

(3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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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11-30 00: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작품 영화가 인상깊었습니다 ^^

망고 2021-11-30 05:56   좋아요 2 | URL
아직 안 봤는데 조만간 꼭 보려고요^^ 근데 이지와 루스를 그냥 우정으로만 묘사했다고 해서 영화 보기도 전에 섭섭한 느낌이 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