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 싱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 - 서영은 산티아고 순례기
서영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전 신문에서 서영은 선생님의 신간이 나왔다는 광고를 보았었다. 이 책을 사야겠다 생각하고 있는 참에 이 책이 신간평가단 도서로 우리집으로 날아왔다. 어찌나 반갑고 좋던지 입이 귀에 걸렸다. 사실 서영은 선생님의 작품을 두루두루 섭렵하고 있지는 못했지만, <사다리가 놓인 창> 만큼은 정말 좋아하는 작품이다. 다른 작품들도 차근차근 찾아봐야지 했는데 여태 내가 갖고 있는 책은 이 한권 뿐이라 부끄럽다. 선생님의 펜이라고 자청하기는 쑥쓰러운 지경이다. 그래도 단 한권의 소설책일지도 참 좋아라하고 아꼈던 책임엔 틀림없다. 지지부진했던 나의 스무살 초반의 모습과 닮은 정애는 또다른 나였다. 

사람들은 유명인의 사생활에 호기심이 많다. 물론 나도 그렇다. 서영은 선생님의 작품이 좋았는데 선생님의 남편이 김동리 선생님이었다는 것, 김동리 선생님은 이미 두번의 결혼 경력이 있었다는 것, 그러니 더 많은 호기심의 관심들이 들끓었을 것 같다. 나도 그중 하나였을 것 같다. 

삶에 염증을 느끼는 순간이 찾아왔을때 나도 노란 화살표가 가르키는 방향으로 걸어가보고 싶단 생각을 했다. 순례자들이 걸었을 그 길을 짐을 덜기 위해 필요할 수도 있는 짐을 버리면서 걸어보고 싶다. 아니 어떠한 짐이라도 달게 지고 걸어갈 수 있게 될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도록 걸어본다면 더 좋을 것도 같다. 

   
    이제까지 그 고마움을 알면서도 스쳐버린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나? 서울을 떠나던 날에도 고마운 사람을 만났다. 지갑을 떨어뜨린 줄 모르고 택시를 탔는데 그것을 주워서 오토바이로 뒤쫓아와 지갑을 돌려준 슈퍼마켓 배달원. 감사하다는 표시도 제대로 못하고 얼굴만 스친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었나.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평소에 내가 만난 노란 화살표들이었다.(109쪽)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누구의 도움없이 잘 살아왔다는 착각을 가끔 하곤 했다. 하지만 이 글을 읽으며 참 많이 반성하고 오만했던 것 같단 생각을 했다. 내게도 끊임없이 도움을 준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고 그들도 내게 하나의 노란 화살표가 되어 주었을 것이다.

   
  '죽으란 법은 없다'는 말은, 상황의 변화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은 그대로이나 그 상황에 적응하는 사람 마음의 변화를 뜻하는 것이다.(137쪽)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낯선 곳에서 지낸다는 상상만으로도 벌써 외로움에 사무치는 것 같다. 하지만 그 외로움의 깊이 만큼 우리는 또 그만큼 성숙해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퍼붓는 비 때문에 시야가 흐려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멈춰서서 두리번거리는데, 어느 순간 '이곳이 어디인지 정말 알 수 없구나' 하는 새카만 공포가 엄습했다. 지금까지 살면서 그토록 자기가 있는 자리가 두려웠던 떄는 없었다. 의지가지없이 혼자라는 것 자체가 공포였다.(149쪽)  
   

 이 글을 읽으면서 가장 부러웠던 건 하나님을 향한 신실한 믿음이었다. 내게도 이런 하나님이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로 종교를 갖는 일도 나쁘지 않겠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다음 주일부터는 나도 교회를 가볼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제 너는 동행에 의지하지 말고 혼자 걸어라.' 

  크게 생각해보면, 나는 길을 잃고 헤맨 것이 아니었다. 노란 화살표를 찾지 못해, 순례자의 길을 벗어났을 뿐이었다. 어떤 점에서 폭풍 뒤에 찾아온 그 꺠달음은 나 자신이 화살표가 되어 산티아고로 찾아가라는 메시지인 것이다. 또한 세계 어디에 있든, 하나님께로 이르는 그 길에서는, 단 하나의 화살표로 변한 자기 자신의 결단이면 족했다.(151쪽)

 
   

 내게도 언젠가 이 길을 걷게 될 날이 있을까? 이 길을 걸으며 수없이 많은 하나님의 메세지를 받고 가슴 저릿저릿한 충만함으로 감사할 수 있을까? 동행에 의지하지 않고 나만의 길을 혼자서 걸을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들로 즐겁게 선생님이 걸어가신 길을 걸어갈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혼자 감동에 벅차하고 있는 오후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많이 생각났던 사람이있다. 얼굴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알라딘 서재에서 알게 된 바람돌이님이다. 그 언젠가 스페인에 가고 싶어 적금을 넣겠다고 산티아고 길을 걸어보고 싶단 얘기를 하셨던 생각이 났었다. 요새 알라딘 서재에서 만날 수 없어서 더 많이 그리운 건지도 모르겠다. 바람돌이님에게 이 책을 선물한다면 참 좋겠단 생각도 함께 했다. 바람돌이님 잘 지내고 계시죠? 그리워요.^^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녀고양이 2010-05-12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티아고 길.... 저번에 다큐에서 한번 봤는데, 어떨까 싶더라구요.
제주 올레 길도 어떨까 싶고.
그리고 동해안 관통하는 길 있잖아요... 북에서 남으로... 그 길도 어떨까 하는
공상을 가끔 합니다.

꿈꾸는섬 2010-05-12 20:39   좋아요 0 | URL
산티아고, 제주 올레, 동해안 길, 모두 가보고 싶은 곳이네요.ㅎㅎ

비로그인 2010-05-13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평소에 내가 만난 노란 화살표들이었다...
감동인데요.
어쩌면, 삶의 지침이 되는 그런 노란 화살표들도 결국 내가 만드는 건 아닐까 싶어서요.
궁금한 책입니다^^

꿈꾸는섬 2010-05-13 13:15   좋아요 0 | URL
마기님 반가워요.ㅎㅎ
마기님에게도 노란 화살표였던 그들이 있었겠죠.^^

같은하늘 2010-05-15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보고 싶었는데... 전 리뷰 쓸 능력이 안되서 문학평가단은 절대 못하지만 올라오는 책들이 탐나요.ㅎㅎㅎ

꿈꾸는섬 2010-05-16 21:07   좋아요 0 | URL
같은하늘님 리뷰도 정말 좋은걸요.^^
좀 더 시간을 쪼개보셔요.ㅎㅎ
 
들키고 싶은 비밀 신나는 책읽기 5
황선미 지음, 김유대 그림 / 창비 / 200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을 진작에 읽었다면 좋았겠단 생각을 한다. 3월부터 시작한 현준이의 유치원 가기 싫은 병도 엄마가 진즉 아이 마음을 잘 읽고 들여다 보았다면 크게 문제없이 사라져버렸을테니까 말이다. 

매일 뭐가 그렇게 바빴는지 아이에 대한 관심보다는 나 사는 일에 대해 바빴던 것 같다. 내 책 읽기, 내 글쓰기, 모든게 내 중심대로였던 시간이었다. 현준이에게 뒤돌아 생각하니 너무도 미안한 시간을 보냈다. 

책 속 주인공 은결이는 외로웠다. 매일 바쁜 엄마, 아빠. 그리고 형. 가족이 있지만 서로가 서로를 보듬어줄 시간이 없었다. 태권도 시합에 나가는 형을 향해 엄마, 아빠가 거는 기대만큼 은결이에게도 관심과 사랑이 필요했다. 이건 순전히 아이의 관점이긴 하다. 그래도 그런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보듬어 주었다면 은결이가 엄마의 지갑에 손을 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엄마는 은결이가 갖고 싶어하는 롤러브레이드를 사주기 위해 낡은 지갑에 돈을 모으지만 은결이는 알턱이 없고, 늘 부족한 용돈을 해소하기 위해 엄마 몰래 지갑에서 돈을 꺼내 쓴다. 아들이 엄마의 지갑에서 돈을 훔친 사실을 알게 되었을때 엄마, 아빠의 기분은 어땠을까? 몹시 실망스럽고 속상했을 것이다.  

엄마의 마음을 알지 못한 은결이의 실수를 나라면 어떻게 대했을까? 만약 현준이가 그랬다면 어땠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지만 역시 너무 속상하고 가슴 아프고 그럴 것 같다. 물론 회초리도 들었을 것이다. 

그래도 이 책을 이미 읽었으니 은결이의 행동이 악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고, 혹 내게도 이런 일이 생긴다면 아이의 마음을 좀 더 세심하게 짚어줘야겠단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이의 마음을 다치게 하는 말을 하루에도 몇번씩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건 내가 자각해서가 아니라 나도 모르게 무심결에 했던 말들이 아이에게는 상처가 되는 것이다. 유치원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걱정에 대해 " 뭘 그렇게 걱정해. 걱정 그만해." 하고 그저 대수롭지 않게 하는 말조차도 아이는 상처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자기를 좀 더 들여다봐달라는 신호를 모르고 지나쳐버리는 무심한 엄마가 되었던 것이다. 

그동안 무심히 지나쳤던 것들, 무심히 했던 말들 모두 모두 미안하고, 이제는 좀 더 세심한 엄마가 되도록 노력해야겠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실 2010-05-06 2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마들도 이렇게 배우면서 가르치는거죠 뭐. 동화책 참 좋아요. 그쵸?

꿈꾸는섬 2010-05-07 20:36   좋아요 0 | URL
동화책 보면서 배우는 것 맞아요.^^ 동화책 읽는 거 정말 좋아요. 요즘 아이들 재미있는 책도 많아 좋겠어요.ㅎㅎ

하늘바람 2010-05-07 0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태은이도 어제 엄마는 너무 바빠 하더군요.
현준이는 아마 3월에 신입생이 많이 와서 상대적으로 현준이에게 신경을 덜 써주게 되니 속상해서 싫었던게 아닐까요

꿈꾸는섬 2010-05-07 20:38   좋아요 0 | URL
그랬을 수도 있겠어요. 요새는 태권도장 다니면서 많이 밝아지고 더 활달해지고 자신감이 넘쳐요. 어젠 현수가 아파서 아는 분께 부탁드렸는데 엄마 안간다고 뭐라 하지도 않더라구요. 오늘은 이제부터 혼자서 다니고 싶다네요.^^
 
오월에도 눈이 올까요? - 역사 이야기 - 1980년 오월 광주 맹&앵 동화책 5
김현태 지음, 김정운 그림 / 맹앤앵 / 2010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980년 5월, 광주, 나는 비록 어렸고 광주에서 태어나지 않았지만 80년 5월을 기억하는 사람들에 의해 그날을 배우고 기억한다. 어린시절 아니 내가 머리가 크기 전까지 나는 1980년 5월의 진실을 알지 못했다. '전라도 깽깽이', '전라도 빨갱이', '폭도', '괴수', '간첩'......온갖 나쁜 말을 그들에게 갖다 붙였다. 지금도 간혹 나이가 많으신 분들 중에는 잘못된 정보를 진실이라고 믿고 있다. 군인들에게 짓밟혀 자신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 뭉쳐서 싸웠던 시민군들을 모조리 싸잡아 빨갱이, 간첩, 폭도라는 이름으로 더럽히고 있는 것이다. 왜곡된 진실을 알려고 하지도 않기에 그것이 더 가슴아프고 속상하다. 

학교에서도 근현대사는 제대로 배워 본적이 없었기에 갓 스물살이 되기전까지도 나는 우리 현대사의 왜곡된 진실을 참된 진실인줄 알며 살았었다. 돌이켜 생각하면 우리 모두가 부끄러워해야할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1950년 남과 북의 전쟁의 상처로 인해 수많은 양민이 학살당했던 우리의 역사 위에 또다시 전라도라는 한 지역의 사람들이 무차별 공격을 받아 사망하고 외부와의 연락도 단절된채 연일 방송에서는 전라도 폭도, 간첩들이 말썽을 일으켜 진압을 한다는 거짓 방송을 일삼았다는 얘기를 듣고는 정말 어안이 벙벙했었다. 그게 우리의 역사였던 것이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다고 하늘이 가려지겠는가 말이다. 당시의 모든 병력과 언론을 통제하던 전두환, 노태우 신군부에 의해 자행된 폭력은 우리의 또다른 부끄러운 역사가 되었고 결국 그 진실이 밝혀진 것이다. 그나마 지금은 이런 상황을 마음껏 얘기라도 할 수 있는 세상이니 다행이다 싶은 마음도 든다. 

<맹앤앵> 출판사에서 참 장한 일을 했단 생각을 했다. 100쪽도 안되는 짧은 동화 속에 5월 광주의 그 뜨거운 금남로의 행렬이 눈에 훤히 보인다. 아이들이 읽기에 적당한 수위의 내용과 상황의 전개는 읽는 아이들에게 진실을 알리고 우리의 역사를 바로 볼 수 있게 도와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민수가 바라 본 5월 광주의 참담한 모습과 아버지의 죽음, 광주에 내려와 있는 군인 삼촌, 가해자와 피해자,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가 되는 사람들, 그들 모두를 아우르며 5월 광주의 이야기를 끌어간다. 민수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아이들은 80년 5월을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족하다. 더이상 왜곡된 진실앞에 거짓을 진실이라 믿으며 자라나지 않아도 되니까 말이다. 

5월에 눈이 내렸으면 좋겠다던 아빠, 눈이 오면 아픔도 상처도 눈물도 다 덮어준다는 아빠의 말을 떠올리는 민수, 비록 아빠가 곁에 없을지라도 오월이 되면 아빠를, 그 날을 꼭 기억하겠지. 

임철우 선생님이 쓰신 <봄날>(전5권), 황석영 선생님이 쓰신 <죽음을 넘어 시대의 아픔을 넘어>를 읽었던 감동 그대로가 느껴지는 책이었다. 아이들을 위해 이런 책을 만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맹앤앵> 출판사는 칭찬받아 마땅하다. 

5월, 어느새 벚꽃들도 제각각 흩날렸고 좀 더 있으면 시커멓게 익은 버찌들이 바닥을 물이들이겠지, 5월을 생각하면 버찌들이 물들인 시커먼 물들은 늘 핏빛이 검게 변한 듯 느껴지고 나만 혼자 소름돋아 버찌를 밟길 두려워했었다. 그것들을 짓밟아 바닥을 물들이는 것이 마치 누군가의 핏물을 밟고 지나가는 듯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오월에, 바람에 흩날리는 벚꽃이라도 있었으니 눈이 내리는 듯 눈은 즐거웠던게 사실이다. 그렇게 마음도 가뿐해졌던게 사실이다. 

5월, 그날을 잊지 않기 위해 글로 그림으로 사진으로 우리에게 진실을 알게 한다. 잊지 말고 꼭 기억하자, 그날의 아픔도 슬픔도. 그리고 잔인함도 말이다. 다시 되풀이 되지 않길 기억하잔 말이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후애(厚愛) 2010-05-04 0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표지가 너무 이뻐요~

꿈꾸는섬 2010-05-04 16:53   좋아요 0 | URL
표지도 글도 너무 예쁘고 감동적인 책이였어요.^^

2010-05-04 10: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꿈꾸는섬 2010-05-04 16:54   좋아요 0 | URL
맹앤앵 너무 장해요.^^ 칭찬받아 마땅하다고나 할까요.ㅎㅎ

같은하늘 2010-05-04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신청하면 받아 볼 수 있었는데... 너무 바빠서 서평 올릴 시간이 없어 신청 안했네요. 다시보니 아쉬움이 남아요.ㅜㅜ

꿈꾸는섬 2010-05-05 17:07   좋아요 0 | URL
정말 아쉽게 되었네요. 정말 좋은 책인데 말이죠.

비로그인 2010-05-05 0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게 어떤 시각이 되었든 영화 [꽃잎] 은 마음속 깊은 곳까지 울림을 전해준 영화였습니다... 광주비엔날레 가서 본 사진들과 많이 오버랩이 이뤄지더라고요...

꿈꾸는섬 2010-05-05 17:08   좋아요 0 | URL
<꽃잎>은 저에게도 상당히 충격적인 영화였었죠. 어린 이정현의 소름돋는 연기까지...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네요.
 
바리데기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7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할머니의 이야기 중에 장승이와 바리공주의 약속이 생각났다. 길값, 나무값, 물값으로 석삼년 아홉 해를 아들 낳아주고 살림 살아주어야 하는 세워. 

  나는 사람이 살아간다는 건 시간을 기다리고 견디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늘 기대보다는 못 미치지만 어쨌든 살아 있는 한 시간은 흐르고 모든 것은 지나간다.

 
   

황석영 작가의 소설을 좋아했던 게 언제였을까? 

단편 <삼포가는 길>을 읽고 나서였던 것 같다. 거침없이 써내려가는 듯한 문장 속에 사람들의 내밀한 심리와 섬세한 묘사, 그리고 무엇보다 좋았던 건 일상의 인물이었다. <삼포가는 길>의 백화는 여전히 내게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여자로 기억한다. 그녀를 다시 만난 건 <심청>에서였고, 지금 또 <바리데기>에서 그녀를 만났다. 

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의 구성이 좋았다.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바리공주를 모티프로 소설을 써내려가는 것도 좋았지만 공간적 구성 또한 좋다. 한 동포인데도 먼 나라 사람인 것처럼 느껴지는 북조선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는데 현장감이 느껴진다. 탈북이 비일비재한 현실이 되어버린 북한의 모습이 그려진다. 두만강을 건너 백두산 자락 어딘가에 숨어 살다 죽어간 영혼들도 있을 것이고, 그들을 인신매매한 일당들도 있을 것이며 바리와 샹이처럼 영국으로 팔려간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영국에서 만난 무슬림 사람들의 이야기, 미국의 911테러, 이라크 전쟁, 세상의 모든 소용돌이를 보여주는 이 책의 방대한 서사시에 놀랐다. 

백화가 술집을 도망쳐 고향으로 가는 영달의 일행을 만나는 것, 심청이 중국 대륙을 횡단해 일본으로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는 여정을 그려냈던 것과는 또 다른 삶의 여정이 이 책 속에 담겨 있었다. <바리데기>의 여정은 이제 고향, 한국의 공간이 아니다. 이승과 저승의 공간을 횡단하는 소녀를 담고 있는 것이다. 작가의 세계관이 좀 더 방대해졌다고 해야겠다. 고향으로 돌아오는 것, 돌아오지 않는 것,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닐 것이다. 이 세상의 시간은 원인과 결과의 여정으로 흐른다. 더이상 한 나라의 사건이 그나라의 사건으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세상 사람 모두가 걱정하고 사고하고 고쳐나가야한다고 작가는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불고 몇년전까지만해도 하나의 나라로 이루어져있던 북한에 대해 얼마큼 관심을 가졌던가? 사실 북한에 대한 관심은 정말 없었던 것 같다. 가까운 일본, 중국, 또 멀리 떨어져 있는 많은 다른 나라들에게는 알게 모르게 관심을 갖고 살았었는데 말이다.  

북조선에서 태어나 부모형제를 잃고 탈북을 한 바리, 그녀의 고단한 여정은 어느 나라 어느 여성에 국한한 이야기가 아니었단 생각을 하며 우리 모두가 마찬가지로 살아가고 있단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세상 어딘가의 모든 여성들은 시간을 견디며 삶을 살아가고 있단 생각을 한다. 그렇게 짓밟히고 상처받고 고통스러워하지만 결국 시간이 흐르듯 우리의 삶도 흘러 가고 그렇게 우리가 살아간다는 작가의 글이 가장 가슴에 와 닿는다. 사람이 살아간다는 건 결국 모두 다 마찬가지일 것이란 생각을 하며 책장을 덮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침묵의 시간 사계절 1318 문고 61
지크프리트 렌츠 지음, 박종대 옮김 / 사계절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사람들 누구나에게 이런 추억이 있을지 모르겠다. 누군가에게 얘기하는 순간 나의 진실했던 사랑이 퇴색되어버릴지도 모르는, 그런 사랑 이야기 말이다. 

사랑을 잘 모르는 어린시절의 나는 사랑이라는 걸 책을 통해 배웠다. 좀 더 커서는 영화를 통해서 배웠던 것 같다. 그때 읽었던 가슴 절절했던 사랑 이야기에 감동하고 모방하고 싶은 욕구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때는 또 그랬던 것 같다. 아무 것도 아닌 것도 의미를 담아 생각하고 그 의미들을 잊지 않기 위해 의미를 부여하고 또 그 의미를 기억하기 위해 가슴 깊이 새겨두는 일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들이 아무것도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부질없는 생각들을 하고는 한다. 그래도 나를 위해 그를 위해 그 시간을 기억하려고 하는 때도 있는 것 같다. 

사랑 이야기는 늘 행복한 것보다 뭔가 부족하고 상처투성이에 애절한 무언가가 담긴 것들이 매력적인 것 같다. 또 그런 것들이 가슴에 남기도 하고 말이다. 

 한편 사랑이라는 걸 잘 모르는 청소년들이 이 책을 읽으면 어떤 생각이 들까?  

선생님과 제자의 금지된 사랑이 결국 선생님의 죽음으로 마감되고 제자는 선생님과의 예쁘게 만들어놓은 추억만을 간직하며 살 수 있게 되었으니 가슴 아프지만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지만 그것은 현실속에서 지극히 일어나기 어려운 일일 수도 있고 혹은 그런 일이 누군가에게는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일 수도 있겠다. 아이들이 이런 낭만에 사로잡혀 잘못된 생각은 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조금 들었다. 애절한 사랑은 우리의 가슴을 후벼파고 아이들의 감수성을 충분히 건드릴 것 같다. 살면서 이런 사랑 한번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기도 하지만 그래도 내 아이가 이런 사랑을 한다면 너무 가슴 아플 것만 같다. 

나에게도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가 담겨 있지만 그걸 여기에 글로 남길 수는 없을 것 같다. 그 사랑 이야기를 여기에 쓰고나면 왠지 아무 것도 아닌 시시한 것들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가슴 속에 간직해야할 사랑 이야기는 침묵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그것이 추억이 되고 그 시절의 애절함이 사라져버리지 않을 것만 같다. 

 조용히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그 시절을 돌아본다. 한 사람을 만나서 사랑이라는 걸 배웠던 그때를 말이다. 하지만 끝까지 침묵해야겠다. 그렇게 <침묵의 시간>을 읽으며 침묵의 시간을 보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