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노래한다
김연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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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의 작품을 눈여겨보지 않았기에 <밤은 노래한다>를 처음으로 김연수의 작품 세계로 들어왔다. 왜 사람들이 김연수의 <밤은 노래한다>를 극찬하는 것이었는지, 왜 이 책을 읽어야만 했었는지, 이제는 알 것 같다. 

1930년대의 민생단 사건을 다룬다는 무거운 주제에 바짝 긴장하고 읽었다. 사실 나는 역사에 그리 해박하지 못하고 특히나 1930년대의 상황에 대해 어렴풋이 알고 있을뿐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읽었던 조정래의 <아리랑> 박경리의 <토지>를 통해서 보았던 그 시대의 그 풍경들과 내가 알고 있지 않은 낯선 이야기를 읽고 있었지만 조금도 낯설었다거나 무거운 주제에 짓눌렸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건 아마도 작가가 가지고 있는 구성과 문체의 힘이 아니었나 싶다. 

처음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생각났던 건 얼마전에 모방송사에서 재미있게 보았던 '경성스캔들'이라는 드라마가 생각났다. 거기에 나왔던 한량의 모습을 하고 있는 주인공 김해연의 모습과 겹쳤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랑하는 여자에 의해 항일투쟁에 나서게 된다는 설정 또한 비슷하게 여겨졌기 떄문이다. 하지만 드라마는 그 시대의 투쟁도 그리 어둡거나 두렵게 만들진 않았다. 조선인과 일본인의 싸움이 아닌 조선인들의 싸움을 다룬 이 책을 읽어가며 나는 더욱 깊이 빠져들었다. 

1930년, 조선인들의 만주에서의 모습. 조선이라는 나라를 벗어나서 조선이라는 나라를 찾아야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던 그 많은 사람들은 민족을 위해서 죽기도 하고 당을 위해서 죽기도 한다. 하지만 정작 그들의 적인 토벌대, 일본군들에 의해 죽어가고 해체되어 간 것이 아니라 조선인이 조선인을 죽였다는 것은 충격 그 자체이다. 

고등교육을 마치고 만철이라는 최고의 회사에서 일을 하게 된 김해연, 조선을 떠나 용정으로 발령을 받아 일을 하면서 일본인 중위와 친분을 나눌 정도로 오로지 자신에게 몰두해있던 한 인간이 이정희라는 여자를 만나면서 인생이 바뀌게 된다. 조선공산당원인 이정희가 마지막 자살하며 보낸 편지를 받으며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이정희의 죽음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잃게 되지만 다시 조선으로 돌아가지 않고 만주에 남아 이정희의 죽음을 캐내는 한 남자의 집요함이 낭만을 꿈꾸는 휴머니스트의 삶을 버리고 유격대원의 삶을 살게 만들고 이정희에 대한 복수를 하기에 이른다. 물론 최도식의 집앞에서 최도식을 기다리던 아이들을 보고 최도식을 살려주는 인간적인 모습은 여전히 갖고 있기에 이 소설이 갖는 미덕은 남아 있다고 보았다. 

 

<밤은 노래한다>를 읽으면서 내내 들었던 생각은 젊은 문인의 당찬 기운을 느꼈다는 것, 그와 동시에 김연수의 팬이 되었다는 것, 그래서 다른 작품들도 찾아서 읽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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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9-01-16 0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부의 대립과 적에 의해 무너져 가는것 역사 어느 귀통이를 봐도 나오는 모습이지요. 힘있는 자들은 늘 자신이 감당해야 할 적의를 약자들끼리 싸우게 하기 위해 온갖 술수를 다 부리니까요? 지금 팔레스타인에서도 그건 마찬가지랍니다. 은밀하게 이스라엘과 손을 잡고 있는 자치정부와 그래도 팔레스타인을 지키려는 하마스의 싸움. 아마도 하마스는 살아남지 못할 것 같습니다.

꿈꾸는섬 2009-01-16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대적 모순이라고 해야하는 건가요? 전쟁없는 세상이 오긴 올까요?
 
김영하 여행자 도쿄 김영하 여행자 2
김영하 지음 / 아트북스 / 2008년 7월
절판


도쿄에선 모든 것이 정교하게 세팅되어 있고 주의 깊게 조절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있어야 할 것이 있어야 할 곳에 있고 모든 사물이 마치 행성들이 제 궤도를 따라 공전하듯 정확하게 움직이는 것 같다.-219쪽

인간과 인간의 거리만 튜닝된 것이 아니다. 인간과 사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카페나 식당에서는 가구와 손님 사이의 거리가 절묘하다. 차와 골목의 관계는 또 어떤가? 도쿄의 골목들은 대부분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만한 넓이로 되어 있고 불법 주차가 거의 없다. 길은 좁아도 주차된 차가 없어 보행자가 걷기에 쾌적하다. 도시 전체가 마치 잘 정리된 강박증 환자의 서랍 같다.
이 튜닝은 너무 완벽해서 처음에는 그것을 알아차리기 어려울 정도이다. 그냥 뭔가 편안하다고만 느끼게 된다. 거리를 걸을 때나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실 때, 지하철을 타고 이동할 때, 생각보다 신경이 덜 곤두서고 때로는 내가 여행자라는 사실마저 간혹 잊어버리게 된다. 도쿄에서는 소리와 인간의 관계에서도 '보이지 않는 손'의 존재를 느낄 수 있다.-223쪽

시부야를 보기 전까지의 도쿄가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그렇다. 예전의 나는 국립미술관이 있는 우에노와 전자상가가 있는 아키하바라, 술집과 호텔, 백화점 들이 즐비한 신주쿠 같은 곳을 도쿄라고 생각했다. 시부야를 발견하기 전까지 내가 참고한 가이드북은 [론리 플래닛]이었는데, 이 책은 기본적으로 영어를 사용하는 배낭여행자를 위한 책이다.
그러나 누군가 내게 도쿄에서 가장 도쿄다운 장소를 하나 고르라면 나는 주저 없이 시부야의 하치코 광장을 들 것이다. 지도상에서 보면 시부야는 여러 개의 지하철 노선이 통과하는 거대한 환승역이며 교통의 중심지이다. -226쪽

많은 도쿄의 여성들이 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시부야에 얼쩡거리지 않는다. 그들에게 시부야는 다이칸야마나 에비스나 시모키타자와 같은 곳으로 가기 위해 잠깐 스쳐지나가는 곳, 소란스런 환승역일 뿐이다. 나는 그녀에게 말해주었다. 시부야에는 정말 근사한 서점이 많이 있어요. 좋은 음반 가게와 가장 전위적인 영화를 틀어주는 작은 영화관들이 있지요. 그녀는 '그럴 리가'라는 얼굴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다. 시부야는 분명 소란스런 유흥가이지만 골목골목마다 상당히 근사한 서점들이 숨어 있다. 그리고 그 서점들은 도쿄의 다른 지역과 달리 철저히 유행에 민감한 젊은이들의 기호에 맞는 책과 잡지 들을 보유하고 있다. 츠타야나 리브로, 아오야마북센터 같은 서점들에선 세계적인 잡지와 일본의 수준 높은 사진 집 같은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밖에도 시부야 지역에는 할리데이비슨 전문점이나 특색 있는 청바지 가게, 일렉트로니카 음악을 전문으로 하는 클럽 같은 것들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
-234쪽

시부야는 말하자면 유행이 잠깐 머물다 가는 정거장 같은 곳이다. 가장 새로운 것이 덜 새로운 것을 밀어내고 잠깐 불안한 영화를 누린 뒤, 뒤에 도착한 새로운 것에 제 자리를 내주고 물러나는 곳이다. 그러니까 누구도 시부야를 잘 알 수가 없다. 어쩌면 나는 시부야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오히려 더 쉽게, 그리고 깊게 시부야라는 세계로 들어올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도시에 대한 무지, 그것이야말로 여행자가 가진 특권이다.-236쪽

말하자면 우리는 우리의 앎에 갇혀 있다. 특히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에 대해 무지하다.-233쪽

한 번의 여행에서 모든 것을 다 보아버리면 다음 여행이 가난해진다. 언젠가 그 도시에 다시 오고 싶다면 분수에 동전을 던질 게 아니라 볼 것을 남겨놓아야 한다.-237쪽

삿포로와 에비스 브랜드로 생산되고 있는 각종 맥주를 마치 와인이나 코냑처럼 근사한 홀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시음할 수 있다. 간단한 안주가 무료로 제공된다. 주머니가 가벼운 젊은이부터 금발의 서양인까지 다양한 인종과 연령의 맥주 숭배자들이 모여 여러 색깔의 맥주를 시음하며 즐거워한다.-241쪽

아시아를 벗어나 유럽이 되고자 했던 일본의 정신이 담긴 술, 그것이 바로 생맥주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일들은 독일과 영국의 전통 양조법을 철저하게 연구했을 뿐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담아 내놓아야 할까를 꾸준하게 고민했다. 그런 결과 이제 일본의 생맥주는 독일의 생맥주와 견주어도 결코 밀리지 않을 경지에 올랐다.-244쪽

1934년 일본의 대일본맥주 주식회사는 군수품으로 맥주를 공급하기 위해 한국에 조선맥주 주식회사를 설립했고, 기린맥주 주식회사 역시 소화기린맥주 주식회사를 세웠다. 조선맥주 주식회사가 바로 하이트맥주의 전신이고 소화기린맥주 주식회사는 동양맥주를 거쳐 OB맥주로 지금까지 이어진다.-248쪽

도쿄에서는 많은 것이 대를 이어 살아남지만 또 많은 것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린다.-252쪽

증권거래소 한가운데의 거대한 컴퓨터와 전광판을 보고 있노라면 나처럼 전통적인 인간은 신뢰보다 공포를 더 느낀다. 기업들이 소유한 저 거대한 토지와 건물과 자동차와 사람이 고작 맥주 양조장의 발효통만 한 컴퓨터를 통해 거래된다는 것인가? 그래서 증권거래소가 궁여지책으로 만든 것이 견학이라는 제도이다. 옛날 사진들을 복도에 걸어놓고 자신들의 본질이 변치 않았음을 애써 강변하고 있는 형상이다.
현대의 어떤 행위들은 그것의 궁극적 물질성을 스스로 입증해야 하는 유사한 곤란에 처해 있다. 웹아트를 하는 미술가가 자신이 실은 미켈란젤로나 로댕과 같은 예술가임을 입증해야 하는 문제, 휴대폰 소설을 쓰는 작가가 하이쿠 시인 바쇼와 자신이 같은 존재임을 증명해야 하는 문제가 남아 있는 것이다.-256쪽

여행자는 여간해서는 자신이 선택한 책 밖으로 나갈 수가 없다. 여기에서 우리는 '텍스트의 바깥은 없다'는 롤랑 바르트의 말을 다시 한번, 이상한 방식으로 떠올리게 된다.-2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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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머리 앤 인디고 아름다운 고전 시리즈 4
루시 M. 몽고메리 지음, 김양미 옮김, 김지혁 그림 / 인디고(글담)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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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며칠 나는 행복했다. 어린시절 늘 품어 왔던 나의 사랑 빨간 머리 앤을 다시 만났기 떄문이다. 사실 커오면서 잊고 살았는데 다시 그때의 그 아름다웠던 꿈들이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어릴때 누구나 한번쯤(특히 여자라면) 빨간 머리 앤에 대한 소중한 추억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올해가 빨간 머리 앤 탄생 100주년이라는 특별한 의미도 있었지만 이 책을 다시 읽게 된 건 순전히 조카 덕분이다. 이제 5학년에 올라가는 조카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를 하기 위해 준비해놓고 도저히 너무 예쁘기도 하고 다시 빨간 머리 앤을 만난 기쁨을 저버릴 수 없어 며칠을 두고 조금씩 아껴가며 읽었다. 그림이 너무 예쁜 건 두말 할 것도 없고 여전히 스며드는 감동은 나를 다시 소녀로 되돌려 놓는 망상에 사로잡히기도 했었다. 추억은 참 소중하다.

빨간 머리 앤을 처음 만났던 그때는 나보다도 더 어려운 처지의 주근깨 빼빼 마른 소녀의 아름다운 꿈을 향한 열정에 반했었던 것 같았다. 늘 꿈을 꾸고 상상을 하고 자연의 모든 것에 감사하고 열심히 공부하고 하지만 늘 천방지축 실수투성이, 도저히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던 앤이 전부였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엄마가 되고나니 사랑스러운 앤과 함께 마릴라와 매슈의 교육 방침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늘 앤의 편에 서서 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는 정신적 멘토 매슈 아저씨가 없었다면 앤은 어땠을까? 앤의 신중하지 못하고 불같았던 성격을 분별력 있는 여성으로 키워낸 마릴라 아줌마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도무지 상상이 가지 않는 일이다.

빨간 머리 앤에서 내가 가장 좋아했던 건 여전히 길모퉁이다.

이제 전 길모퉁이에 이르렀어요. 그 모퉁이에 뭐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가장 좋은 것이 있다고 믿을 거예요. 길모퉁이는 그 나름대로 매력이 있어요, 아주머니. 모퉁이를 돌면 무엇이 나올까 궁금하거든요. 어떤 초록빛 영광과 다채로운 빛과 어둠이 펄쳐질지. 어떤 새로운 풍경이 있을지, 어떤 낯선 아름다움과 맞닥뜨릴지, 저 멀리 어떤 굽이 길과 언덕과 계곡이 펼쳐질지 말이에요.

퀸스에서 돌아와 그 자리에 앉아 있던 밤 이후로 앤의 꿈은 작아졌다. 하지만 앤은 발 앞에 놓인 길이 아무리 좁다 해도 그 길을 따라 잔잔한 행복의 꽃이 피어나리라는 걸 알고 있엇다. 정직한 일과휼륭한 포부와 마음 맞는 친구가 있다는 기쁨은 온전히 앤의 것이었다. 그 무엇도 타고난 앤의 상상력과 꿈으로 가득한 이상세계를 뺏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길에는 언제나 모퉁이가 있었다!

매슈아저씨의 죽음은 가슴 아프고 슬픈 일이지만 초록색 지붕 집을 지켜가며 늙은 마릴라 아줌마와 함께 추억하며 살아갈 계획을 세운 앤에 대한 감동은 여전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다시 읽는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좋은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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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란의 악어이야기
조경란 지음, 준코 야마쿠사 그림 / 마음산책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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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로 간절리 원하는 건 조금 늦게 와도 좋다. 기다리는 동안의 환희에 가까운 고통, 그 애탐과 간절함. 때로는 그 힘이 내 삶의 가장 큰 구심점이 되기도 하니까.

  악어 제이크를 만난다는 것, 그건 기적이 아니다. 기적이란 우연이나 실수가 아니라 아는 것과의 만남이다. 그리하여 나는 이 글을 쓸 용기를 얻게 되었다. 이제 나는 제이ㅡ에 관해 알게 되었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그에 관해 알게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를 만났다는 목격담이 더 많이 들려오기를. 그후에 그들의 인생에 어떠한 변화가 일어나기를.

제이크를 발견한 순간은 어쩌면 일종의 터닝포인트 같은 게 아니었을까라고 말하는 작가의 말에 따라 나도 제이크를 만나보고 싶다는 기다림이 생겨났다. 인생이라는게 그냥 쭉 흘러가는게 아닌 것처럼 나의 인생도 제이크를 만나면서부터 많은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라는 작은 기대감과도 같은 것이다.

조경란이라는 작가를 잘 몰랐는데 이 책을 통해서 그녀에 대해 친근함을 느끼게 되었다. 어쩌면 나와 많이 닮은 부분이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사는 얘기를 따라 그녀에게도 한번쯤 제이크가 나타났던 건 아닐지......나도 제이크를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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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밥바라기별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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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다는건 여전히 미완이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살아내기위해 오늘도 노력한다. 하지만 우리가 어느 길로 걸어갈지 우리는 아직도 잘 모른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올바른 선택이었는지 아니면 지금부터 다른 길로 찾아가야하는건지 우리는 때로 아무것도 모른다. 그만큼 우리의 젊음은 아무것도 아닐 수도, 그 어떤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소비는 젊음의 미덕이라던 박완서선생님의 글이 생각났다. 실컷 젊음을 누려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준, 영길, 인호, 상진, 정수, 선이, 미아의 시선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한다. 그들의 젊음, 어느 것 하나 또렷한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은 그들이 가야할 길을 찾아갈 수 있을만큼만 소비하고 있다. 결코 그들의 길을 이탈하지 않는 것이다.

인호와 준의 무전여행은 내가 지나갔던 곳들과 맞물려 읽는동안 잠깐씩 즐겁기도 했다. 천안, 공주, 부여, 남원, 순창, 제주도, 부산......

"이 소설은 수십 년 전의 일이고 지금 세대의 아버지나 어머니들이 겪은 일이다. 그러나 젊음의 특성은 외면과 풍속은 변했지만, 내면의 본질은 지금도 별로 변하지 않았다"는 작가의 말에 공감한다. 그리고 남자인 준의 얘기가 주를 이루긴 하지만 여자인 나도 공감하는 부분이 많이 있었다.

십대후반에서 이십대초반까지 나도 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해왔었다. 나는 누구일까? 어디에서 왔을까? 어디로 가야하는가?(물론 삼십대인 지금 더 많은 고민을 하고 있지만) 무엇이 될까? 내 삶의 진정성은 무엇일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에 할일없이 고민하고 친구들과 밤늦도록 어울려지내기도 했었다. 세상의 온갖 근심을 짊어지고 어느 주점에 모여 앉아 술잔을 기울이던 때가 있었던 것이다. 그때 그 친구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지......지금 생각해보면 조금은 우습기도 하지만 그때가 참 좋았었단 생각을 하고 있다.

<장길산> <삼포가는 길> <객지> <무기여 잘 있거라> <심청>을 읽었었다. 작가가 주는 안정된 기대감은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작품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작은 발판이 되었다고 해야겠다.

개밥바라기별-샛별, "잘나갈 때는 샛별. 저렇게 우리처럼 쏠리고 물릴 때는 개밥바라기" 너무 멋진 표현을 만났다. "인생 뭐 있어?"라는 어느 개그맨의 한때의 유행어처럼 인생은 잘 나가기도 하고 쏠리기도 하고 하는, 그런게 아니겠는가.

젊다는 건 또 그런 것 같다. 실컷 혼란스러워하며 헤매다니다가 자신을 찾아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젊음에 대한 배려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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