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입 환경 : 일의 여건
나와 일 사이에 올바른 관계를 정립하는 것이 전적으로 나에게 달린 문제는 아니다. 생동적 참여가 곧장 이루어질 여건을 갖춘 업무들이 있는가 하면, 생동적 참여가 영 어려운 업무들도 있다. 1990년대 시장의 원리가 작동해 미국의 수많은 전문직(의학, 언론, 과학, 교육, 예술계)이 대거 판도 변화를 겪게 되자, 이들 분야에서 일하는 이들 사이에서는 끝없이 수익을 늘리라는 압박이 더러 일의 질과 삶의 질을 해친다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칙 - <조너선 하이트의 바른 행복>, 조너선 하이트 지음 / 왕수민 옮김 - 밀리의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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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결국 가치 정렬의 문제였다. 다시 말해 좋은 일을 하는 것과(타인에게 실제로 효용이 되는 것을 만드는 양질의 일을 하는 것) 일을 잘 하는 것(돈을 충분히 벌고 전문가로서 출세하는 것)이 잘 맞물릴 때, 그 분야는 건실해진다. - <조너선 하이트의 바른 행복>, 조너선 하이트 지음 / 왕수민 옮김 - 밀리의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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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인들은 곤경에 빠져 있었다. 애초 그 분야에 발 들일 때만 해도 대부분이 언론인이 높은 이상(진리에 대한 존중,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간절한 열망, 자유 언론이야말로 민주주의의 든든한 초석이라는 굳건한 믿음)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1990년대에 들면서 가족 경영 방식의 신문사들이 퇴조하고 대기업형 미디어 제국이 위세를 떨치며 미국의 언론마저 또 하나의 수익 기관으로 전락하면서, 그저 잘 팔리고, 경쟁사들을 제칠 만한 것을 파는 데에만 혈안이 돼 버리지 않았던가? 좋은 언론이 사업 경영에는 더러 해롭기도 하다. 괴담, 과장, 조작된 갈등, 성 추문 등은 하나같이 사람들이 소화하기 좋게 파편으로 잘려 보도가 되었고, 곧잘 이런 뉴스들에서 더 많은 수익이 나곤 했다. 이런 미디어 제국에서 일하는 수많은 언론인은 자신이 등 떠밀려 뭔가를 팔면서 자신만의 도덕 기준을 어기는 것 같아 마음에 걸린다고 토로했다. 이들의 세상에서는 가치 정렬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고, 그래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시장을 더욱 많이 점유해야 한다는 더 크지만 고상하지는 않은 사명이 있음에도 도저히 거기에 생동적으로 참여할 수가 없었다. - <조너선 하이트의 바른 행복>, 조너선 하이트 지음 / 왕수민 옮김 - 밀리의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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