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보상을 받을 것을 기대해서, 혹은 처벌을 받지 않을 것을 기대해서, 이렇게 동기부여되어 나타나는 행동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의미에서도 이타적이라고 할 수 없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의미에서 이타적 행위란 행위의 동기에 초점을 맞춘 개념이지, 번식상의 적합도에 미치는 효과를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두 의미는 구별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의미에서 이타주의적인 행동들이 진화이론에서 사용되는 의미에서는 이타주의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지적 장애인들을 돕는 자원봉사자의 행동이 이성의 눈에 너무 매력적으로 보인 나머지 그의 적합도를 상승시킬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의 자원봉사 행동이 지적 장애인들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한 것일 뿐 이렇게 하면 이성의 관심을 끌 것이라는 기대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면, 적합도의 상승이라는 그의 행위가 가져올 결과와는 무관하게, 그의 행동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의미에서 이타주의적이라고 볼수 있다. 

즉 일상적인 의미에서 이타주의라는 개념은 행위자의 의식적인 동기와 기대에 비추어 이해된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진정으로 타인을 돕고자 하는 것인지 아니면 뭔가 꿍꿍.
이속이 있어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인지를 구별해내는 능력을 갖고 있다. 우리는 뭔가를 바라지 않고 이타적인 행동을 하는사람들을 찾아 보상해준다. 그 이유는 타인을 위해 자신의 이해를 희생하려는 태도를 사회적으로 진작시키고 싶어서이다. - P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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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 환경 : 일의 여건


나와 일 사이에 올바른 관계를 정립하는 것이 전적으로 나에게 달린 문제는 아니다. 생동적 참여가 곧장 이루어질 여건을 갖춘 업무들이 있는가 하면, 생동적 참여가 영 어려운 업무들도 있다. 1990년대 시장의 원리가 작동해 미국의 수많은 전문직(의학, 언론, 과학, 교육, 예술계)이 대거 판도 변화를 겪게 되자, 이들 분야에서 일하는 이들 사이에서는 끝없이 수익을 늘리라는 압박이 더러 일의 질과 삶의 질을 해친다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칙 - <조너선 하이트의 바른 행복>, 조너선 하이트 지음 / 왕수민 옮김 - 밀리의서재
https://millie.page.link/o3umDAGx7EJgXbST8

이는 결국 가치 정렬의 문제였다. 다시 말해 좋은 일을 하는 것과(타인에게 실제로 효용이 되는 것을 만드는 양질의 일을 하는 것) 일을 잘 하는 것(돈을 충분히 벌고 전문가로서 출세하는 것)이 잘 맞물릴 때, 그 분야는 건실해진다. - <조너선 하이트의 바른 행복>, 조너선 하이트 지음 / 왕수민 옮김 - 밀리의서재
https://millie.page.link/FYVya1cWN7T4DBe99

언론인들은 곤경에 빠져 있었다. 애초 그 분야에 발 들일 때만 해도 대부분이 언론인이 높은 이상(진리에 대한 존중,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간절한 열망, 자유 언론이야말로 민주주의의 든든한 초석이라는 굳건한 믿음)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1990년대에 들면서 가족 경영 방식의 신문사들이 퇴조하고 대기업형 미디어 제국이 위세를 떨치며 미국의 언론마저 또 하나의 수익 기관으로 전락하면서, 그저 잘 팔리고, 경쟁사들을 제칠 만한 것을 파는 데에만 혈안이 돼 버리지 않았던가? 좋은 언론이 사업 경영에는 더러 해롭기도 하다. 괴담, 과장, 조작된 갈등, 성 추문 등은 하나같이 사람들이 소화하기 좋게 파편으로 잘려 보도가 되었고, 곧잘 이런 뉴스들에서 더 많은 수익이 나곤 했다. 이런 미디어 제국에서 일하는 수많은 언론인은 자신이 등 떠밀려 뭔가를 팔면서 자신만의 도덕 기준을 어기는 것 같아 마음에 걸린다고 토로했다. 이들의 세상에서는 가치 정렬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고, 그래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시장을 더욱 많이 점유해야 한다는 더 크지만 고상하지는 않은 사명이 있음에도 도저히 거기에 생동적으로 참여할 수가 없었다. - <조너선 하이트의 바른 행복>, 조너선 하이트 지음 / 왕수민 옮김 - 밀리의서재
https://millie.page.link/pgNvkv5YM3hQh1Wc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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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의 효능



식물들은 특정한 조건을 갖춰 주면 쑥쑥 자라나는 만큼, 햇빛과 물을 어떻게 조절해 주어야 식물이 자랄 수 있는지 우리에게 알려 줄 수 있는 건 생물학자일 터다. 사람들도 특정 조건을 조성해 주면 쑥쑥 성장하는바, 사랑과 일을 어떤 식으로 해 나가면 삶이 행복하고 의미가 있다고 느낄지 우리에게 알려 줄 수 있는 것은 심리학자이다. - <조너선 하이트의 바른 행복>, 조너선 하이트 지음 / 왕수민 옮김 - 밀리의서재
https://millie.page.link/zjaCP6ybR92wQCyG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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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기술, 산업 시대가 발달하면서, 서양 세계는 점점 “탈신성화 되어 갔다.” 적어도 위대한 종교사가 미르체아 엘리아데Mircea Eliade의 논지에 의하면 그랬다. 《성과 속The Sacred and the Profane》에서22 엘리아데가 증명한 바에 의하면, 성스러움에 대한 인식은 인간이면 누구나 가지는 특징이다. - <조너선 하이트의 바른 행복>, 조너선 하이트 지음 / 왕수민 옮김 - 밀리의서재
https://millie.page.link/YAcPaVASQqyQ4iDm9

하지만 엘리아데의 논점 가운데서도 내가 가장 설복당했던 부분은, 성스러움에 대한 생각은 도저히 억눌러지지 않아서 현대의 속된 세상에서도 이른바 “내밀한 종교crypto-religious” 행위의 형태로 우리 삶을 번번이 파고든다는 것이었다. - <조너선 하이트의 바른 행복>, 조너선 하이트 지음 / 왕수민 옮김 - 밀리의서재
https://millie.page.link/wue3T5RgkgjQL1kV8

무신론자조차도, 특히 사랑에 빠지거나 자연을 접할 때, 내밀하게 성스러움을 느낀다는 이야기이다. 단지 그런 느낌을 신이 내게 일으킨다고 여기지만 않을 뿐. - <조너선 하이트의 바른 행복>, 조너선 하이트 지음 / 왕수민 옮김 - 밀리의서재
https://millie.page.link/xRmyupCbYptcHFaA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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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과정(혈족 이타주의와 대갚음 이타주의)을 이용하면 인간 외의 동물 사이의 이타주의가 거의 모두 설명될 뿐 아니라, 인간의 이타주의도 상당 부분 설명된다.

하지만 과학의 이 대답은 썩 만족스럽지 못한데, 우리 인간의 유전자는 어느 정도까지는 꼭두각시를 부리는 광대와도 같아서, 더러는 유전자 자신에게는 좋지만 우리에게는 나쁜 일들을(예를 들면, 혼외정사를 범하거나, 행복 대신 돈을 주고 위신을 사는 등) 우리가 원하게끔 만들기도 한다.

이런 면에서 보면 유전자의 사리 추구를 기준으로 삶을 바라봐서는 선한 삶이나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란 불가능하다. - <조너선 하이트의 바른 행복>, 조너선 하이트 지음 / 왕수민 옮김 - 밀리의서재
ㅂhttps://millie.page.link/K7QhpLFmXUdit86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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