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예외주의
미국 같은 다인종, 다문화 사회가 하나의 국가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국민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통합적 가치가 필요하다. 그 가치가 특정 종교나 문화를 초월한 실질적 내용의 이념일 수도 있겠지만, 미국은 최소주의적 방식, 즉 ‘서로 침범하거나 간섭하지 말자’는 취지의 형식적 자유와 이를 보장하기 위한 ‘중립 국가’의 이념에 합의한 것이다. 존 할란John Harlan 대법관에 따르면 표현의 자유는 “다양하고 인구가 많은 미국 사회에서 강력한 치료제”였던 것이다.
이러한 합의의 배경에는 ‘공적 담론public discourse’에 대한 미국 사회의 강한 신뢰가 있다. 어떤 표현이든 공적 담론에서 자유롭게 논의된다면 최선의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믿음이다. 미국에서 표현의 자유가 논의될 때, 그 표현이 ‘공적인 것’인지가 유독 중시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소수자 집단을 모욕하는 발언이라고 해도 그것이 ‘공적 토론’의 맥락에서 이루어졌다면 면죄부를 주는 것이다
연방 차원의 혐오표현금지법이 없긴 하지만, 혐오표현에 관해 손을 놓고 있는 건 아니다.1 실제로 미국에서는 혐오표현을 제한하기 위한 다양한 사회적 기제들이 작동하고 있다. 예컨대 방송의 혐오표현을 규제하기도 하고,2 국가적 차원에서도 다양한 반차별 정책을 시행 중이다. 혐오표현 문제가 자율적으로 해결될 수 없는 영역, 예컨대 공공·교육기관 같은 곳에는 혐오표현에 대한 규제가 있다. 교수와 학생, 상급자와 하급자같이 권력 기제가 작동하는 곳에서도 일정한 규제가 있다. 실제 상당수의 미국 대학과 기업들은 ‘차별금지 정책’ 또는 ‘다양성 정책’을 수립하고 있으며, 혐오표현이 ‘괴롭힘harassment’에 해당하거나 실질적인 차별을 야기할 경우 징계하는 학칙이나 사규를 두고 있다.3 소송을 통해 천문학적 액수의 손해배상 책임을 물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인종차별금지 정책은 말할 것도 없고 친동성애 정책LGBT-friendly policies을 채택한 기업도 수두룩하다.
말이 칼이 될 때 중에서
말이 칼이 될 때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