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코헨, 학문의 제국주의 - 오리엔탈리즘과 중국사, 산해, 2003
Discovering History in China, Columbia University Press, 1984
코헨의 이 책은 1970년대 이전 미국의 중국 연구자들 - 특히 19세기부터 20세기 초엽의 중국에 대한 연구자들 - 이 가졌던 연구경향을 분석하여 비판하고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연구경향을 요약하고 있다.
코헨은 기존의 접근법을 세가지로 대별하고 있다. 그것은 충격-반응 접근법, 근대화 접근법, 제국주의 접근법이다. 충격-반응 접근법은 19세기 중국사를 서양의 충격에 따른 중국의 반응으로만 해석하는 방법이다. 근대화 접근법은 전통시대와 근대로 긴 중국의 역사를 간단히 구분하는 이분법적 방식이다. 제국주의 접근법은 근대화 접근법에 대한 비판적 접근법이다. 세가지 접근법 모두 서양의 영향을 과대평가하고 중국 내부의 발전이나 갈등구조를 등한시한다. 세가지 접근법은 모두 무엇이 중국의 근대사회로의 이행을 촉진·방해했느냐는 목적론적 접근법에 함몰되어 실제 무엇이 일어났느냐는 비목적론적 질문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다양한 시각과 연구성과를 볼 수 없게 되었다.
이 책에서 매우 드라마틱하게 읽히는 부분은 제3장 초반의 제임스 펙에 의한 기존 중국전문가 비판과 반비판, 이어진 반반비판 그리고 저자의 촌평이다. 베트남 전쟁으로 야기된 (미국)제국주의에 대한 반성 또는 증오가 중국학 학계를 어떻게 뒤흔들어 놓았는지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1980년대 남한 대학가를 휩쓴 지적 광풍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에드워드 사이드가 그의 주저 “오리엔탈리즘”을 통해 중동 지역 연구에 있어 서구의 편견을 잘 보여준 것처럼 폴 코헨은 오리엔탈리즘의 폐해가 중국 연구에 있어서 어떻게 나타났는지를 잘 보여주었다. 이 책은 인문학 관련 책으로 치부될 수 없는 사회과학자에게도 필독서라고 생각된다.
충격-반응 접근법
충격-반응 접근법이 야기한 세가지 중국 연구의 왜곡은 다음과 같다.
첫째, 서양에 관계가 없는 사건을 과소평가한다.
둘째, 서양과 관계된 사건을 과대평가한다.
셋째, 중국인의 자각적 반응을 중시하므로 사상적, 문화적, 심리적 차원에서 문제를 파악하는 반면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차원의 검토를 게을리 한다.
코헨이 충격-반응 접근법의 문제점을 극복하는 새로운 접근방법으로 제안한 것은 중국을 세 개의 영역으로 구분하는 것이다.
주변영역(outermost zone)
항구, 무기공장, 조선소, 왕타오. 총리아문, 해관, 기독교 개종자, 유학생, 외교관
중간영역(intermediate zone)
태평천국, 동치중흥, 자강운동, 관료기구, 조정에 있어서의 정치적 소요, 배외주의, 도시와 농촌 사이의 사회적, 정치적 긴장
중핵영역(innermost zone)
언어, 문자, 사상, 종교, 미의식을 표현하는 표현양식, 중국 농민들의 생활 스타일, 관습, 제도
주변영역은 충격에 대한 반응이 직접적이고 가장 중요한 곳이고 중핵영역은 충격에 의해 거의 영향을 받지 않는 곳이다. 19세기 중국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주변영역을 과대평가하는 것은 온당하지 못하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중간영역이다. 중간영역은 학자들이 많이 연구한 분야인데 충격-반응론자들은 이것을 마치 주변영역인 것처럼 취급하고 있다. 그런데 중간영역의 변화는 비록 서구의 충격과 관련은 있지만 실제로는 중국의 오랜 역사적 전통이나 깊은 사회적, 정치적 갈등관계를 통해 보았을 때 더 잘 이해되는 곳이라 할 수 있다. 코헨이 강조하는 새로운 연구들은 바로 이러한 중국 내부의 긴장관계 속에서 19세기 중반 이후의 변화를 설명하는 스타일의 것들이다.
근대화 접근법
19세기 서양인들의 중국에 대한 견해는 다음과 같다.
첫째, 중국은 야만이며 서양은 문명화되어 있다. 둘째, 중국은 정지되어 있고, 서양은 역동적이다. 셋째, 중국은 자생적으로 변혁을 일으킬 수 없으며 바깥으로부터의 힘에 의한 충격이 필요하다. 넷째, 바깥으로부터의 힘이 될 수 있는 것은 서양뿐이다. 다섯째, 서양 침략의 결과로서 중국의 전통사회는 서양식으로 치장한 새로운 근대 중국에게 길을 양보하게 된다.
코헨은 이를 세가지 명제로 다시 요약한다. 제1명제는 잠자고 있는 중국은 외부로부터 거대한 충격이 가해지지 않는 한 깨어나지 않는다이며 제2명제는 근대 서양만이 그와 같은 충격을 중국에 가할 수 있다이며 마지막으로 제3명제는 일단 충격이 가해져서 움직이게 되면 그 과정은 중국문화를 서양의 이미지에 맞아떨어지게 만들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1960년대 시작된 새로운 시각에 대해 다음과 같은 연구들의 예를 들 수 있다.
1. 중국혁명은 서양의 충격에 대한 반응일 뿐만 아니라 서양의 침략에 앞서 중국 내부에서 일어난 문제들에 대한 반응이기도 하다.
2. 도시의 급진적 지식인에 의한 혁명은 실패했지만 농촌의 가난한 농민과 함께한 혁명은 성공했다. 농민들이 공유한 전통적 혁명은 일찍이 존재했던 인간이 영위해야 할 삶의 방식을 다시금 회복하는 것이었다. 마오는 이를 잘 활용했다. 전통은 혁명의 장애이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혁명을 촉진하고 혁명에 활력을 부여하며 혁명을 정통화하기 위한 재료의 저장고이기도 했다.(프리드만 Freedman, Edward. Backward Toward Revolution : The Chinese Revolutionary Party(Berkeley : University of Califonia Press, 1974))
3. 중국은 일본에 비해 덜하긴 하지만 제3세계 전체로 보아서는 근대화에 성공했다. 성공을 가능케 했던 요인은 중국의 전통 내에서 찾아진다. 이상사회를 향한 유학자들의 고뇌는 서양의 대두에 의해 해방되었다. 중국의 혁명이란 중국 전통사회의 파멸이 아니라 전통사회의 목표를 실현시키는 것이었다.(멧거 Metzger, Thomas A. Escape from Predicament : Neo-Confucianism and China's Evolving Political Culture(New York : Columbia University Press, 1977))
4. 중국의 전통경제는 마지막 단계에서 멈춰버린 고도균형함정에 빠져 있었다. 서양의 공헌은 중국을 개방시킴으로써 고도균형상태를 완화하고 파괴하여 새로운 균형으로 나아가게 한 것이다.(엘빈 Elvin, Mark. The Pattern of Chinese Past : A Social and Economic Interpretation(Stanford, Calif. : Stanford University Press, 1973))
전통과 근대성의 대조가 야기한 세가지 편견이 있다.
1) 전통과 근대성은 양립불가능하다는 편견.
전통사회가 잠재적으로 근대성을 가질 수 있고 근대사회가 전통적 성격을 가질 수 있다.
2) 헥스터(J. H. Hexter)에 따르면 역사학자들에게는 역사 에너지 불변의 법칙의 편견이 있다. 헥스터는 16세기 영국에서 세속활동과 종교활동의 사례를 통해 16세기에 두 활동 모두 격렬해졌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를 근대성의 문제에 적용하면 근대화의 에너지가 커지면 전통의 에너지가 줄어든다는 편견이 나타난다.(Hexter, J. H. Reappraisals in History (New York : Harper and Row, 1963) )
팁스(Dean Tipps)는 부분적 선택적 근대화가 오히려 전통사회를 강화하는데 이용될 수 있음을 지적했고 프리드만과 멧거는 혁명적 변화의 실질적 증가는 전통적 가치와의 관련성이 강해지는 것과 나란히 진행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Tipps, Dean C. "Modernization Theory and Comparative Study of Societies : A Critical Perspective", Comparative Studies in Society and History, 15(March 1973), 199-226)
제국주의 접근법
제국주의론은 근대화론이 서양의 충격이 가져온 근대화가 축복이라는 이데올로기를 전파하고 있음을 비판한다. 제국주의는 중국의 발전을 방해했다는 점을 부각시킨다. 그런데 근대화론이나 제국주의론이나 서양 경제력의 중국 침투를 강조한다는 점에서는 서로 공통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