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대학살 - 프랑스 문화사 속의 다른 이야기들 현대의 지성 94
로버트 단턴 지음, 조한욱 옮김 / 문학과지성사 / 1996년 10월
구판절판


신참자는 교화되고 있다. 그는 결코 동료를 배신하지 말고 임금 기준을 유지할지어다. 한 노동자가 제시된 임금을 받아들이지 못해 인쇄소를 떠난다면 인쇄소내의 어느 누구라도 그것보다 낮은 임금으로 그 일을 맡지 말지어다. 이것이 노동자들 사이의 법이다. 신뢰와 성실을 명심하라. '마롱'이라고 불리는 금서 품목이 인쇄되고 있을 때 다른 사람들을 배신하는 노동자는 인쇄소에서 불명예스럽게 축출될 것이다. 그런 노동자는 파리와 지방의 모든 인쇄소에 사발통문이 돌려져 감시 인물 명부에 오르게 될 것이다. [중략] 그외에는 모든 것이 허용된다. 과음은 미덕이요 염사와 난봉은 젊은 날의 공적이요 부채는 기지의 표시요 무신앙은 성실성으로 간주될 것이다. 이곳은 모든 것이 허용되는 자유롭고 공화주의적인 영역이다. 원하는 대로 살라. 그렇지만 정직한 인간이 되고 위선은 금물이라. -1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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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란 사회 갈등의 사익적 요소들을 억압하지 않고 정당을 통해 복수의 공익적 대안으로 발전시켜 경쟁을 통해 합의를 만들어 내는 결정구조를 의미한다. 민주주의에서 정치는 여러 갈등의 이슈를 공동체가 지향할 공익적 차원의 대안으로 발전시켜 통합하는 기능을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갈등의 축과 동맹의 축을 명료하게 만드는 정당의 역할이 존재해야 하고 이들 정당은 서로 다른 집단과 이해에 기반을 둔 경쟁적 대안을 발전시켜야 한다.(최장집, 2002,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1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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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델의 물질문명과 자본주의를 읽고 있다. 총 여섯권의 방대한 분량이다. 서평을 쓰기 위해서는 한참 동안의 시간이 필요할 듯 하다. 다른 책을 못 읽는 것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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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강대국 흥망사 1500-1990
찰스 P. 킨들버거 지음, 주경철 옮김 / 까치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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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와 국가의 스타일에 관하여 마지막으로 언급할 사실이 있다. 프랑스인이 모험심이 강한 이주민이 아니라는 점이다. 1848년에 알제리로 이주했던 사람들은 주로 알자스와 로렌 출신으로서 이들은 프랑스인이기는 하지만, 독일인의 피가 섞인 사람들이다. 이와 반대로 포르투갈인들은 악명높은 유랑민이다(브라질의 사회학자인 질베르토 프레이레는 포르투갈을 '율리시즈의 국가'라고 표현했다). 이들은 인종적인 편견없이 해외에 나가서 어느 정도 항구적으로 거주하면서 현지인이나 심지어 노예 여인들과도 교제한다. 그 중간적인 성격인 제3의 패턴을 보이는 사람들은 이탈리아인들이다. 이들은 오랜기간 일하기 위해서 외국으로 나가지만, 결혼하기 위해서 한 번, 그리고 죽기 위해서 최종적으로 조국에 귀국한다. -46쪽

근대 초기에 대부분 큰 국가의 국왕들은 관료들이 부족했기 때문에 조세수취를 개인 금융가에게 "청부"했다. 프랑스의 재정가(financier)와 관리(officier)는 국왕에게 먼저 자금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그들 자신이 조세를 거두어서, 성공적일 경우 원금에다가 이윤을 더한 자금을 회수했다. 영국에서 1688년 명예혁명 이후 정부의 조세수취와 국채로 전환한 것을 "재정혁명(financial revolution)"이라고 한다.
...중략....
재정가들은 국왕의 부채에 대해서 우선 특별세나 독점권, 왕실의 보석류들 혹은 런던 시키나 파리 시청과 같은 반사적인 기관의 중재 등의 보증을 미리 받지 못하면 국왕에게 새로운 빚을 줄 때에는 경계했다. 많은 경우 외국의 전주들은 영국의 공식 독점업자인 모험조합(Merchant Adventure)과 함께 양모를 수출할 독점권, 혹은 에스파냐에서는 은을 수출할 권리 같은 특권을 받았다.
..중략...
정부는 징세청부나 독점만이 아니라 관직, 작위, 훈장 등을 판매하거나 교회 및 귀족의 재산을 압수, 매각하면서 자금을 조달하기도 한다.
..중략...
20세기에는 정부의 재정적자와 차입이 산업투자에 필요한 저축을 흡수해 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1800년 이전에는 이런 문제가 거의 없었다. 공업에 투자되는 자본은 상업이나 농업과는 달리 대개 지방 수준에서 이루어졌으며 소규모 액수에 불과했다....은행은 주로 교역에 자금을 융통해 주기 위해서 대부를 했다. 전시에는 정부부채가 급증했으며, 국민소득 중에 정부부채가 차지하는 비중은 간혹 평화시에 흑자를 통해서 줄어드릭도 했지만, 대부분은 지불거절이나 인플레이션을 통해서 줄어들었다.-53쪽

영국에서는 귀족들도 다른 국민들과 마찬가지로 세금을 낸다. 그러나 프랑스에서는 (그리고 에스파냐에서도) 귀족들은 전쟁에서 그들이 목숨을 걸고 싸운다는 이유를 들면서 왕과 사회에 대한 조세의무를 면제받는다. 이 차이는 섬 국가의 해상전투와 비교해서 육상전투의 노동강도가 훨씬 크다는 점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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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찮게 뉴스를 통해 미국의 부호가 얼마를 기부했다는 얘길 듣는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니 하면서 미국의 기부문화를 칭송하는 얘기가 국내 신문과 포탈 사이트에 오르내린다. 그런데 유럽의 부호가 기부했다는 얘긴 별로 듣지 못했다. 이러한 느낌은 통계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전한 뉴스에 따르면 2003년 기준으로 1인당 모금액을 국제적으로 비교하면 미국, 캐나다, 싱가폴이 1, 2, 3위를 차지하고 홍콩이 6위 한국이 7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에 비해 유럽의 선진국은 순위권에서 한참 멀리 떨어져 있다.

 

이러한 현상은 미국과 유럽의 사회보장시스템의 차이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유럽과 달리 사회보장제도가 잘 발달해 있지 않다. 정부지출을 통해 사회보장이 이루어지므로 정부재정의 규모는 사회보장제도의 척도가 될 수 있다. 2002년 미국의 조세부담률은 17.7%이다. 이에 비해 EU 15개국 평균은 29.1%이다. 조세에 사회보장부담금을 더한 국민부담률은 미국이 24.8%인데 비해 EU 15개국은 40.5%이다.

 

유럽의 부호는 세금을 통해 충분히 기부를 하고 있지만 미국의 부호는 유럽 기준으로 볼 때 세금을 많이 내지 않는다. 유럽의 부호는 세금을 많이 내고 그 세금이 가난한 사람에게 돌아간다고 생각하니 굳이 더 기부를 할 마음이 없지만, 미국의 부호가 기부를 활발히 하는 것은 가난한 사람이 눈에 밟혀서 기부를 하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바로 이 지점에서 도덕의 잣대로 미국의 시스템을 높이 평가한다. 유럽의 시스템은 강제로 부자로부터 돈을 뺏어서 빈자에게 나눠주는 것이니 부자에게는 자신의 것을 빼앗겼다는 분노만 남기고 빈자는 정부로부터 일방적으로 제공받으므로 감사함을 모른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미국의 시스템은 도덕적이다. 부자는 자신의 양심의 결단으로 자선을 베풀고 빈자는 부자의 선의에 감동하며 감사함을 느낀다는 것이다. 유럽의 시스템은 사후적 형평이란 관점에서 결과가 좀더 도덕적일진 몰라도 내부적으로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비도덕적으로 만든다. 이에 비해 미국의 시스템은 부자의 기부를 통해 형평에 접근하면서 사람의 심성과 인간관계를 도덕적이게 한다는 것이다.

 

과연 그러한가? 이와 관련하여 미국의 철학자 와써스트롬이 1960년대 초반의 미국 흑인의 민권운동에 대한 남부 백인들의 논변을 비판적으로 평가한 것을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당시 남부 백인들은 자신들이 흑인들의 복지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자주 주장했다. 마치 현재 미국의 부자들이 가난한 자들에게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고 이를 기부금의 형태로 표현하듯이 말이다. 와써스트롬은 이에 대해 “이런 방식의 사태 파악은 대부분 흑인으로 하여금 권리의 문제로서 자기 생각을 주장할 수 있는 기회를 부인한다. 이것은 그들에게 그들이 취급받는 방식에 대해 저항할 수 있게하는 신분을 부정한다. 만일 남부의 백인이 자신의 의무를 수행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단지 그와 그의 양심 사이의 문제이다"라고 지적했다.

 

의무에는 두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타인의 권리주장에서 유래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선심, 자비심, 높은 신분 등과 관련된 도덕적 의무이다. 남부 백인들은 도덕적 의무를 주장하는 전략을 통해 흑인의 권리를 부정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자신과 자신의 양심 사이의 문제인 도덕적 의무에는 지대한 관심을 갖지만 흑인의 권리에 대해서는 확답을 내놓지 않고 머뭇거리는 이유는 그리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부자들이 기부와 자선의 도덕적 의무를 주장하고 가난한 자의 권리를 부정하는 전략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도 이와 유사하다.

 

가난한 이가 권리를 갖는다는 것은 단지 가난한 이의 복리가 증진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공리주의적 의미만을 갖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풍부한 도덕적 의미를 갖고 있다. 권리 담지자로서의 자아 개념을 갖지 못하는 것은 인간 존엄성의 중요한 부분을 갖지 못하는 것이다. 인간을 권리의 소유자로 보는 것은 인격체를 목적으로 존중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인정하는 생각과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다. 미국의 철학자 파인버그는 "권리는 우리로 하여금 스스로의 발로 서게 해주고 타인에게 떳떳하게 대하고 어떤 근본적인 방식으로 모두의 평등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자신을 권리의 담지자라고 생각하는 것은 과도한 긍지가 아니라 적절한 긍지를 갖는 것이며, 타인의 사랑과 존중을 받을 만한 가치를 가지기 위하여 필요한 최소한의 자존감을 가지는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생각만큼 풍부한 도덕적 함의가 있을 수 있겠는가?

 

이상에서 미국의 기부문화와 유럽의 복지제도를 비교하면서 어떤 사회가 더 도덕적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이에 답해보고자 했다. 가난한 이의 문제가 부자의 양심의 문제로만 존재하는 사회보다 가난한 이가 권리의 담지자로서 긍지와 자존감을 갖는 사회가 더 도덕적일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했다. 우리나라는 1998년 기존의 생활보호법 대신에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제정하여 사회복지제도를 정비한 바 있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서 생활보장을 받는 이들을 수급권자라고 부르는데 비해 과거의 생활보호법에서는 이들을 생활보호대상자라고 불렀다. 두 호칭의 배후에 있는 철학적 견해의 차이가 이 글을 통해 널리, 특히 경제학자들에게, 인식될 수 있으면 좋겠다. 경제적 영역에서 권리라고는 소유권 이외에는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경제학자들은 기부와 사회보장, 양심과 가난한 이의 권리에 대해, 잠시 경제학의 효율성 대 평등이라는 논변을 잊고, 권리와 의무라는 정치철학적 시각을 통해 곰곰히 생각하는 기회를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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