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마니아 정국의 요동과 상류층
미하이 국왕은 루마니아의 “미니 총통”이던 독재자 이온 안토네스쿠를 축출한 1944년 8월 23일의 쿠데타를 조직한 당사자이기도 했다. 이 호헨촐레른 가문의 왕족은 나치당이 지원하는 안토네스쿠 일파를 축출하기 위해 루마니아에서 가장 잘 조직된 저항조직인 공산당 지하세력에 의존해야 했다. 소련군이 저항 없이 루마니아에 입성하자 위스너는 소련의 점령을 우려하는 친서방 정치인들의 입지를 높여주려 했다.
1945 중에서
러시아인들을 두려워하는 루마니아 상류층은 미국인 후원자를 찾느라 분주했다. 이들은 거의 공짜나 다름없이, 그저 미국의 외교적 보호를 받는다는 뜻으로 성조기가 장식된 플래카드를 내거는 조건만으로도 미국인들에게 저택을 빌려줬다. 자가용이 러시아인의 손에 넘어가느니 차라리 미국 외교관에게 무기한 빌려주기도 했다.
1945 중에서
“도시의 모든 게 잠잠했다. 몇몇 루마니아 상류층과 이야기해보니 대부분 예상보다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들은 지금이 좌파 이념 쪽으로 서서히 바뀌는 시대이고, 새로운 시대에 큰 탈 없이 적응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28
이 상류층 사람들은 제1차 세계대전 이전과 이후의 의회민주주의 시대에도, 로맨스와 음모로 가득한, 수많은 불륜과 화려한 군복으로 유명한 카롤 2세의 왕정 독재 시대에도 잘 나갔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도 파시스트 철위대(1927년 루마니아에서 시작된 민족주의, 반공주의, 반유대주의 성격의 정치 운동과 정당을 가리키는 이름-옮긴이) 세력의 통치에 적응했고, 1944년 가을 소련군의 등장에도 적응했다. 이들은 또 다른 정부의 변화도 버텨낼 수 있다고 믿었다.
1945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