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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업문화 예찬
타일러 코웬 지음, 임재서.이은주 옮김 / 나누리 / 2003년 9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아내의 서가에 있는 책이었다. 대부분 내가 읽을 수 없는 책들이지만 이 책은 제목이 나와 어느 정도 관계가 있어보여 심심풀이로 한 두장 읽다가 흠뻑 빠져들게 되었고 덕분에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지루하고 답답한 시간을 행복하게 보낼 수 있었다.

이 책의 중심주제는 문화비관주의 비판이다. 문화비관주의란 시장경제 또는 자본주의가 문화를 타락시킨다는 생각이다. 시장경제에서 문화생산 역시 이윤추구라는 절대명제에 종속될 수밖에 없고 이윤추구가 갖는 독성이 생산되는 문화의 질을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저자는 시장경제가 비문화상품의 생산에 탁월한 성과를 가져왔던 것과 마찬가지로 문화상품의 생산 역시 그러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논리적인 비판과 함께 풍부한 역사적 사례를 제시한다. 문학시장과 미술시장 그리고 음악시장으로 나누어 보는데 문화의 생산유통구조가 비시장적인 구조에서 시장적인 구조로 바뀜에 따라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 나는 미술에 대해서는 문외한이고 재미를 못느끼기 때문에 문학과 음악에 대한 장만 읽어보았다.

문학의 경우 인쇄문화의 성장이 얼마나 문학을 풍성하게 했는지를 설득력있게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걸리버 여행기를 쓴 스위프트의 비관주의적 독설도 흥미롭게 읽었다. 그런데 저자의 문학영역에서의 낙관주의 옹호는 약간 궁색해 보인다. 20세기에도 문학은 풍요로왔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가 예로 드는 작품들은 20세기 초반에 집중되어 있다. 유감스럽게도 20세기 후반에는 문학의 풍요로움을 대표할만한 것들이 많지 않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저자의 논리에는 이에 대한 설명도 포함되어 있다. 어떤 장르이든지 생성, 발전, 성숙, 정체의 생애(life cycle)가 있다는 설명이 그것이다. 19세기-20세기 초반 시장경제의 발전은 문학의 발전과 함께 했다. 이 점에서 시장경제가 문학의 발전을 가로막은 것은 아니다. 20세기 후반 서구에서의 문학의 정체는 시장경제의 누적된 독성이 문학에 침윤되어 나타난 결과가 아니라 문학 그중에서도 소설이라는 장르의 잠재적 능력이 소진되었기 때문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장르의 생애를 잘 보여주는 것이 음악이다. 나는 과거의 작품들을 반복하여 연주만 하는 오늘날의 '고전' 음악은 과연 어떤 의미를 갖는가라는 의문을 가져왔다. 또한 '현대음악은 왜 시장을 장악하지 못하는가?'(이것은 소절의 제목이기도 하다)라는 의문을 함께 가지고 있었다. 저자는 이에 대해 장르의 생애에서 보면 자연스럽다고 설명한다. 나아가 음악매체의 발전에 의해 고전음악이 창조성의 측면에서 불임이 되었지만 소비의 측면에서는 과거 어느때보다 활발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리고 저자는 20세기를 록음악과 랩, 테크노, 힙합과 같은 새로운 음악의 시대로 설명하고 비록 '고전'음악의 창조는 쇠퇴했지만 새로운 장르의 음악이 만개하고 발전했음을 역설하고 있다.

이 책을 더욱 흥미롭게 만드는 것은 문화비관주의 대 문화낙관주의가 갖는 정치적 함의에 대한 설명이다. 저자는 미국 지성계에서 맹위를 떨치는 스트라우스 등의 신보수주의를 언급하여 이들이 경제적 관점에서 시장경제를 흔쾌히 받아들이지만 문화의 측면에서는 시장경제의 폐해를 지적하는 이중성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저자인 코웬 교수는 경제든 문화든 시장경제가 좋다는 일관된 견해를 주장하고 있는데 이런 점에서 신보수주의와 구별된다. 이 책을 통해 신보수주의를 둘러싼 미국 내 지적 논쟁 중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측면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은 또하나의 즐거움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137쪽에는 명성(fame)을 중심으로한 문화 생산의 인센티브 가설을 평가, 제시하고 있는데 이 부분이 참 흥미로왔다. 그런데 코웬의 홈페이지를 검색해보니 이 가설을 둘러싼 논쟁과 자신의 대안적 설명에 대한 한권의 책(What price fame, 2000)을 이미 썼음을 알게 되었다. 책을 읽으면서 매끄러운 번역에 칭찬을 금할 수 없었는데 번역자분들이 이 새로운 책도 번역해 내놓았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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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크 - 리스크 관리의 놀라운 이야기
피터 L.번스타인 지음, 안진환 외 옮김 / 한국경제신문 / 1999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의 제목은 참으로 흥미롭다. '리스크', '리스크 관리의 놀라운 이야기', '신을 거역한 사람들'. 하지만 책의 제목에 걸맞는 내용을 갖고 있지는 않다는 점에서 실망스럽다.

이 책은 크게 두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전반부는 확률론 또는 통계학의 역사에 대한 것이다. 후반부는 금융시장에서의 투자와 관련된 얘기다. 시기적으로 크게 보면 1900년까지가 통계학이 형성되었다면 1901년부터는 통계학이 리스크 관리에 실제적인 지침과 통찰을 제공했다는 식의 구성으로 짜여져 있다.

이 책의 최대 장점은 흥미로운 사례들과 일화가 무진장 들어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가우스에 대한 설명을 보면 그가 얼마나 뒤틀린 심사의 속물적인 은둔자였는지에 대해 알게 된다. 또한 골턴이 일생을 연구에 전념할 수 있었던 이유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막대한 재산 덕택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 인구통계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에 대한 설명도 무척 흥미롭다.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누가 읽으면 좋을지에 대해서는 참 설명하기 난감하다. 일단 통계학이라면 손을 내저을 사람들은 이 글을 읽는데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아무리 재미있는 일화가 들어있다고 해도 이 책의 내용은 통계학에 관한 것이니까 말이다. 통계학에 흥미를 가진 이에게는 통계학을 만든 거장들의 사생활과 내면적 풍경을 익살스럽게 묘사하고 있는 전반부를 권할만 하다.

리스크 관리에 관심을 갖는 사람에게 이 책은 과연 도움이 될까? 사실 나는 그게 뭘까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마지막 몇십페이지를 남겨두고 있지만 아직도 잘 모르겠다. 후반부의 금융시장 투자에 관한 얘기는 금융경제학의 지적 흐름에 대해 쓰고 있을 뿐 실제적인 리스크 관리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고 있지 않다.

만약 나라면 이 책을 어떻게 쓸까하고 생각해 보았다. 나라면 보험에 관한 얘기를 많이 집어넣을 것이다. 민간보험과 공적 보험 모두 포함해서 말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리스크 관리에 대한 얘기라면서 보험에 관한 얘기는 전혀 없다. '전혀'라는 말이 가혹할지 모르지만 최소한 서너개의 장을 할애해야 한다는 생각에 비추어보면 드물게 등장하는 보험 얘기 정도는 전혀 없다는 평가를 받을만 하다.

저자의 이력이 금융투자자이기 때문에 금융투자에 집중하였겠지만 금융투자자만이 리스크를 관리함으로써 돈을 버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리스크 관리로 돈을 버는 다양한 사업의 역사를 정리하고 이것이 통계학의 역사와 어떤 관계를 갖는지를 설명해 주었다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많이든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읽은 것은 유감스럽게 서문이다. 아래의 서문의 마음으로 쓰여진 책을 읽고 싶다.

'이 책은 탁월한 통찰력으로 현재 시점에서 미래를 다루는 방법을 밝혀낸 여러 사상가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리스크를 이해하는 방법과 그것을 측정하는 방법, 그리고 그 결과를 가늠하는 방법을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줌으로써 그들은 리스크 감수를 현재 서구사회를 이끌어가는 기폭제 가운데 하나로 전환시켰다. 그들은 프로메테우스와 마찬가지로 신에 대항해 미래를 어둠 속에서 끌어내어 적대의 대상에서 기회의 대상으로 전환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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