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집에 책이 넘쳐난다. 아내가 특별한 사정으로 책을 사모으기 시작했는데 그 중에는 내가 읽을만한 책들이 쏠쏠하게 있다. 내 버릇 중의 하나가 화장실에 책가지고 가기인데 신호(?)가 오면 우선 서가에서 읽을만한 책을 찾는다. 며칠전 경황중에 꺼내든 것이 이 책이다.

레비-스트로스의 "슬픈 열대", 많이 들어본 책인데 원본을 읽어본 적은 없다. 대학교 1학년 때이던가 아님 2학년 때이던가 인류학개론을 열심히 들었던 기억이 나고 이 책도 아마 개론 수업 중에 나왔으리라. 레비-스트로스가 많이 얘기된 것은 무엇보다도 알튀세 때문이었던 것 같다. 구조주의의 한 지류로서의 알튀세가 언급되고 상류에 레비-스트로스가 있다는 얘기에 구조주의와 관련된 개설서에서 여러 대목 읽었던 것 같은데 개설서가 항상 그렇듯이 확고한 문제의식이 없으면 다들 잊혀져 버린다. 슬픈 열대 또한 그런 책이었다.

몇장 들춰보기 시작했고 요즘은 출퇴근 버스 안에서 읽고 있다. 사실 진도는 잘 안나가고 도입부는 참 지루하다. 인류학은 대학 때 들은 인류학개론이 전부인데다 문학적인 서술과 철학적 고민 그리고 이해하기 힘든 역사적 상황이 뒤범벅된 도입부는 나를 당혹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페이지가 엄청난 책인데 과연 끝까지 읽을 수 있을지 걱정이다.

이 책에서 내가 얻고자 하는 것은 단순하다. 구조주의의 원류에서 구조주의의 원형을 확인하고 싶다는 것이다. 내가 아는 구조주의는 겨우 알튀세의 "For Marx"가 전부다. 물론 그의 글은 무척 흥미롭고 자극적이었지만 라캉, 푸코 등으로 이어지는 구조주의의 변주를 이해하기에는 그의 책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특히 나의 시선을 끈 것은 레비-스트로스 자신이 구조주의자가 아니라는 언급이다. 알튀세나 푸코 식의 구조주의가 진정한 구조주의라면 나는 그런 의미에서 구조주의자가 아니라는 그의 얘기는 텍스트와 해석 사이의 긴장을 여지없이 드러내 준다. 그리고 레비-스트로스 자신의 책은 아마도 가장 유력하면서 명증한 해석을 담은 텍스트일 것이다.

혹시라도 구조주의의 뼈대에 대해 한 소식 하게 되면 다른 페이퍼로 말하고 싶다. 그 동안 나의 독서노트는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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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원제는 The Individaul and The Political Order - An Introduction to Social and Political Philosophy이며 저자는 미국의 정치철학자 Simon and Bowie이다. 

1977년에 제 1판을 발간하였고 우리나라에는 1986년에 번역되어 소개되었다. 서광사에서 "정치철학입문"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으나 다음해 사회정치철학-개인과 정치적 질서라는 제목으로 다시 출간되었다.

1998년 이 책은 제3판이 나왔다. 정치철학의 개론서로서 손꼽히는 책이며 고등학생이나 대학 초년생들이 많이 읽는다고 한다. 내가 이 책을 읽은 것이 대학교 3학년 마치고 휴학했을 때이다. 당시 민주주의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던 터였는데 이 책은 신선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강산이 한번 반은 바뀐 2004년 다시 이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이 책에서 다루는 주제들이 너무나 현재적이다. 이라크 파병, 양심적 병역거부, 고교등급제 등등 우리 사회를 뒤흔드는 주제들의 저변에 있는 철학적 기반에 대해 이 책은 담담하고 논리정연하게 분석하고 있다. 혼란스러운 논쟁으로 신문을 읽기 두려운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이 책이 주는 나만의 매력은 이 책에서 철저하게 해부하고 논박하고 어떨 때는 논박당하기도 하는 공리주의에 나 자신 오랫동안 젖어서 살아왔다는 것을 깨닫게 한 것이다. 경제학을 전공한 이들, 특히 대학원을 들어가서 경제학의 비기에 세례를 받은 이들은 그동안 놓치고 있던 것들을 이 책에서 많이 배울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 페이퍼는 일종의 내 독서 메모장이 될 것이다. 사실 한번 통독을 마쳤다. 그리고 다시 읽기 시작했다. 메모라도 해두면 더 좋겠다는 생각에 메모를 시작한다. 독서카드가 모두 그러하듯이 인용문이 많을 것이다. 오늘 독서 카드는 이런 인용문으로 맺는다.

"벤담의 공리주의는 2가지 요소를 고려하지 않은 과오를 범했다. 그는 행복의 분배 문제를 등한시했고, 국가가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판단할 때 고려되어야 하는 다른 가치들을 등한시했다. 위의 첫번째 예에서는 평등의 가치가 등한시되었다. 우리의 관점에서 볼 때, 벤담의 공리주의에서 등한시된 가장 중요한 가치 중의 하나는 개인의 권리라는 가치이다. 사실상 개인의 권리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 현대 공리주의에 대한 주요한 비판의 하나이다. (중략) 공리주의 하에서는 노예제사회가 최선의 사회라고 말하더라도 모순될 것이 없다. 노예제 사회의 행복이 비노예제 사회의 행복보다 많다는 것을 보여주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우리들 대부분은 노예제 사회가 더욱 행복할지라도 그것이 더 낫다고 하지는 않는다. 권리에 대해 공리주의가 관심을 쓰지 않는다는 사실은 확고하게 정립된 우리의 도덕적 통찰 중 일부를 훼손시킨다."(pp 5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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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행정수도 건설과 관련하여 최근 조선일보는 한양대 이태식 교수의 연구보고서를 인용하여 최대 120조가 들 수 있고 이것은 신행정수도건설추진단에서 밝힌 45조6천억원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고 보도하였다. 아래는 조선일보 인터넷 판의 기사의 일부이다.


정부 추산비용 따져보니…45조

[조선일보 2004-06-16 18:24]

[조선일보 박종세 기자]


신행정수도 이전은 천문학적인 비용이 드는 사업이다.


정부의 계산에 따르면, 신행정수도 건설에는 정부 재정지출 11조2000억원을 포함해 2030년까지 모두 45조6000억원이 들어간다. 인구 50만명이 들어서는 2300만평 규모의 중소도시를 조성하기 위한 비용이다. 이는 당초 민주당이 대선 기간 중 계산했던 건설비(4조~6조원)보다 10배 가량 늘어난 것이다. 하지만 실제 비용은 이보다 더 늘어날 것이란 주장이 우세하다.


한양대 이태식 교수는 향후 공사비·인건비 상승 등을 감안하면 건설비용이 95조~120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이전비용을 45조원으로 잡을 경우 어린아이를 포함해 전 국민이 1인당 93만7500원씩, 100조원으로 잡는다면 1인당 208만원씩 부담해야 한다. 또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이 721조원인 것을 고려하면 이전비용은 한 해 GDP의 13.9%에 이르는 규모다.

(이하 생략)


이 기사는 현재가격와 명목가격/경상가격을 구별하지 못한 오류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간단히 다음과 같은 예를 생각해보자.


정부가 예술의전당2를 신축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하자. 2004년 올해 만들면 공사기간 6개월에 100억이 든다고 하자. 그런데 정부는 신축시점을 2024년으로 잡고 있다고 하자. 이 경우  얼마가 들까? 인플레이션 상승률이 매년 3%이고 건설공사비도 3%로 증가한다면 20년 후 비용은 현재보다 80.6% 늘어난 180억 6천만원이 든다. 이때 예술의전당2를 신축하는데 드는 비용은 100억인가, 180억인가?


경제학의 원리에 따르면 두 시점의 가격의 대소를 비교할 때는 반드시 시점을 같게 만들어 비교해야한다. 오늘의 100만원과 20년 후의 150만원 중 어느 것이 더 큰가? 단순한 숫자의 대소관계로 비교하면 150만원이 더 크지만 오늘의 100만원을 금리 3%의 정기예금에 넣어 두면 10년 후에 180만원이 되므로 오늘의 100만원이 20년 후의 150만원보다 더 큰 가치를 갖는다. 상이한 시점의 명목가격을 비교하는 것은 엄청난 손실을 안겨다준다. 또 다른 예를 생각해보자. 지금 집을 사는데 1억이 들고 20년 동안 물가가 연평균 3%가 올라 10년 후에 집을 사는데 1억8천만원이 든다고 할 때 “20년 후의 집값이 오늘의 집값보다 8천만원이 더 비싸다”고 얘기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예술의전당2의 건설비용은 오늘의 관점에서 볼 때 100억이 들며 20년 후의 시점에서는 그때 화폐가치로 181억이 들 뿐이다.


그렇다면 오늘의 명목가치이자 현재가치인 100억이라는 숫자가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만약 수영장을 짓는데 10억이 드는 것과 비교할 때 예술의전당2는 수영장 10개에 해당하는 비용이 드는 일이다. 우리는 예술의전당2를 지을 때 수영장 10개를 포기할만한 가치가 있는 일인지를 검토해야 한다. 조선일보의 질문은 예술의전당2의 건설비가 20년 후에 180억원이므로 예술의전당2를 신축함으로써 수영장 18개를 포기할만한 가치가 있는가라고 묻는 것에 다름아니다. 이건 잘못된 질문이다.  


이태식 교수의 연구보고서에서 추정한 신행정수도 건설비용의 현재가치는 55조(최소49조, 최대 65조)이다. 지금 당장 만든다면 55조가 든다는 얘기다. 이것을 2014년에 만든다면 얼마가 될까? 이태식 교수는 건설물가가 연평균 5% - 20%의 증가율로 상승할 것이라는 시나리오를 만들고 2014년의 명목건설비가 달라질 수 있음을 언급했다. 이를 이용해 간단히 계산해보면 5%일 경우 명목비용은 90조이고, 10%일 경우 143조이며 20%일 경우 340조가 든다.


이태식 교수의 연구보고서에는 95조, 120조와 같은 값이 없다. 이것은 기자가 직접 계산한 것이다. 기자가 어떤 근거로 이 값을 계산했는지는 알 길은 없다. 어쨌거나 이태식 교수와 정부의 추정비용은 현재가치로 45조에서 55조 사이인데 비해 기자의 값이 100조가 넘는 것은 그가 미래의 경상가격을 사용했음에 틀림없다. 이 기사는 경제원론 교과서에 반면교사로 실릴 만한 것이다. 경제학을 전공한 나로서는 그가 경제부 기자가 아니길 빌 뿐 다른 바램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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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4월 16일 조선일보 경제면의 한 기사의 제목은 "임금상승률이 생산성 증가율 앞질서"였다. 이게 무슨 말인가 싶어서 기사를 읽어보고 실소를 금할 수밖에 없었다.

제목을 작성한 이의 의도는 우리나라 임금상승률이 생산성 증가율보다 더 높아서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생각을 전파하려는데 있을 것임을 삼척동자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제품가격은 별로 오르지 않는데 생산성에 비해 임금이 너무 많이 오르면 기업의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단순히 임금이 오른다고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경제에 대해 문외한인 일반인들이 잘 모른다. 생산성은 실질변수이며 임금은 명목변수이다. 기업 경쟁력 악화의 맥락에서 생산성과 명목임금을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하며 생산성과 실질임금을 비교해야 한다.

이 기사는, 정확히 말하면 이 기사의 제목과 첫문장은, 이를 악용하여 제목을 비상식적으로 단 대표적인 사례이다.

기사의 원천이 되는 자료는 한국생산성본부의 보도자료인데 이에 따르면 2001년에는 단위노동비용이 9.6% 상승했고 2002년에는 1.3% 상승했는데 2003년에는 0.7% 상승에 그쳤음을 보여준다. 1999년에도, 2000년에도, 2001년, 2002년에도 명목임금 상승률이 생산성 증가율 앞질렀다. 2003년은 특이한 사례가 아니다.

그런데도 경제기사에서는 제목을 "임금 상승률이 생산성 증가율 앞질러"로 달고 첫문장을 "지난 한 해 우리나라 제조업체의 시간당 명목임금 상승률이 노동생산성 증가율을 앞질렀다"고 쓰고 있다. 명목임금상승이 생산성증가에 크게 못미치는 특이한 시기(97년, 98년)와 이례적으로 생산성 증가율이 높은 시기(86년)를 제외하고 시간당 명목임금 상승률이 노동생산성 증가율을 앞지르지 않는 일은 예외적인 일이다. 이런 사정을 기자가 모르거나 경제기사 편집인이 모르고 마치 놀라운 일인양 임금상승률이 생산성증가율을 앞질렀다고 보도하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다.

물론 이 기사의 두번째 문장부터는 아무런 논평이나 가감없이 한국생산성본부의 보도자료를 베끼고 있고 따라서 별다른 문제가 없다. 문제가 없다는 것은 뒤집어보면 기사의 본문과 제목이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경제위기의 이데올로기 전파가 목적이 아닌 한 경제상식에 의거하면 기사제목은 "단위노동비용 거의 변하지 않아"가 적당하지 않을까?

<자료 : 기사 원문>

임금상승률이 생산성 증가율 앞질러

지난 한 해 우리나라 제조업체의 시간당 명목임금 상승률이 노동생산성 증가율을 앞질렀다.

산업자원부와 한국생산성본부는 16일 내놓은 ‘2003년 노동생산성 동향’ 자료에서 “산출량을 노동투입량으로 나눈 노동생산성지수는 119.2로 2002년 대비 8.1% 높아졌으나, 시간당 임금지수가 133.2를 기록하며 8.9% 늘어 노동생산성 증가율을 앞섰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 결과 시간당 임금지수를 생산성 지수로 나눈 제조업 단위노동비용지수는 111.8로 0.7% 증가에 그쳤다. 하지만 지난 2001년 1.4% 감소했던 노동생산성 지수는 2002년(11.7%)에 이어 2년 연속 증가한 것이다.

기업 규모로는 대기업의 노동생산성 증가율(11%)이 중소기업(5%)보다 두 배 이상 높았다. 산업별로는 경공업(1.6%)에 비해 중화학공업(8.5%)의 노동생산성 상승이 두드러졌다. 업종별로는 담배(35%), 영상·음향·통신장비(20%), 비금속광물제품(13%) 등의 상승폭이 컸으나 코크스·석유정제(-11%), 봉제의복·모피(-8%), 출판·인쇄·기록매체(-7%) 등은 노동생산성이 떨어졌다.

(송의달기자 edsong@chosun.com )

입력 : 2004.04.16 17:14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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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고향에 다녀왔다. 내 고향은 경남하고도 바닷가이므로 서울에서 내려가려면 무궁화열차 기준으로 5시간이 넘게 걸린다. 기차를 타고 고향에 갈 때면 대구에 이르면 엉덩이가 아프고 어깨가 뻐근하고 머리가 찌끈거린다. 3시간 넘게 기차를 타본 사람은 내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알 것이다. 그런데 4월 1일 고속철도가 개통되어 타게 되었는데 예전의 대구 정도의 시간에 고향을 갈 수 있게 되었다. 솔직히 너무 기뻤다. 다녀오면서 고속철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특히 호기심 많은 조카와 같이 내려간 덕택에 조카가 물어보는 질문에 대답하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따져보게 되었다. 고속철도 기술을 가진 나라는 일본, 프랑스, 독일이다. 놀랍게도 세계 최초로 고속철도를 만든 나라는 일본이다. 1964년에 만들었으니 대단한 나라임에 틀림없다. 이 글에서는 KTX가 갖는 산업적 의미를 기술문제와 관련하여 상상해 보고자 한다.


KTX의 가장 큰 문제점은 터널을 지날 때의 진동과 소음이다. 귀가 별로 좋지 않은 나로서는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진동과 소음이 클까를 생각해 보았는데 그 원인의 하나는 아마도 원천기술이 프랑스로부터 가져온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프랑스는 대체로 넓은 평야를 가진 곳이다. 그래서 터널을 만들어야할 필요가 없었고 이 때문에 터널에서의 소음과 진동 문제를 해결할 기술을 충분히 갖지 못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은 산악지형이고 고속으로 달릴 수 있기 위해서는 우회하는 곡선 노선보다 직진하는 노선이 필요하므로 터널이 필수불가결했을 것이다. 프랑스에 이에 대한 기술이 없기 때문에 현재와 같은 상태에 이르렀을 것이다.


그렇다면 터널의 진동과 소음을 방지하는 기술을 가진 나라는 어딜까? 아마도 일본일 것 같다. 그렇다면 왜 일본의 신칸센으로 정하지 않고 프랑스의 떼제베로 정했던 것일까?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프랑스를 선정한 이유 중 하나는 독일과 일본에 비해 프랑스가 기술이전에 적극적이었기 때문이다. 4월 1일 고속철도가 개통된 후 프랑스에서는 우리보다 더 요란하게 한국의 고속철도 개통을 언론에서 다루었다고 한다. 프랑스에서 얘기하는 것 중의 하나가 기술이전이 너무 많이 이루어져서 한국과 다른 나라 고속철도 사업과 관련해 입찰경쟁을 한다면 한국의 저가에 밀려서 프랑스가 수주에 실패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고속철도 제조사 로템에 따르면 고속철도의 국산화율은 95%라고 한다. 이런 점을 종합해 볼 때 10여년 넘게 끌어온 고속철도 사업을 통해 우리는 상당부분 고속철도의 기술을 확보했다는 생각이 든다.


휴대전화 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되던 90년대에 나는 휴대전화 사업은 기본적으로 내수용 사업이므로 수출주도적인 우리 경제에 큰 도움이 안되는 사치재 생산사업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런데 오늘날 휴대전화 사업은 어떠한가? 교환기 제작-휴대전화 생산-통신서비스로 이어지는 사업 전체가 수출산업으로 한국경제를 이끌어가는 성장동력으로 활발하게 발전하고 있다. 내 생각이 무척이나 짧았던 것이다. 고속철도 사업을 단순히 국내 운송서비스 사업으로 보아서는 안된다. 고속철도 사업 역시 철로 건설사업-고속철도 차량 제조업-고속철도 운행 서비스업이 결합된 사업이고 각 사업영역이 수출가능한 것들이다.


고속철도의 수출이 예상되는 지역은 일견 중국으로 보인다. 중국은 광대한 국토 때문에 고속철도의 필요성이 한국에 비해 훨씬 크다. 물론 비용 대비 편익을 보아야 하므로 기존 철도를 개량하고 복선화하는 것이 더 나은 것 아닌가라는 의문도 가능하고 미국의 예에서 보는 것처럼 항공이 압도할 수도 있다. 만약 중국이 고속철도를 발주한다면 일본과 독일 그리고 프랑스는 우리의 경쟁상대가 될 것이다. 중국이 고속철도를 발주할 시점을 감안하여 대등한 입찰 경쟁자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고속철도 기술의 축적이 가장 중요하다. 원천기술을 가진 프랑스에 비해 우리가 갖는 장점은 첫째 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입찰할 수 있다는 것과 둘째, 산악지형을 포함한 악조건에 적응하는 철로 건설 및 차량 제작기술이다. 전자는 우리의 경제발전단계에서 당연한 것이지만 후자는 지금부터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기술발전은 실험실에서 이루어지는 것만은 아니다. 실험실에서 탄생한 기술이 실제로 응용되기 위해서는 실제로 만들어서 사용해 보아야 한다. 기술발전 과정에서 생산자와 사용자 사이의 상호작용은 매우 중요하다. 사용자는 단순히 만들어진 제품을 수동적으로 사용하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제품의 사용을 통해 제품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생산자에게 제언하는 존재이며 생산자는 사용자의 지적을 흡수하여 더 나은 제품을 내놓게 된다. 뛰어난 생산자 옆에는 뛰어난 사용자가 있다. 고속철도와 관련된 기술에서도 이 원리는 적용된다. 이런 점에서 모든 구간이 완공되지 않았더라도 고속철도를 실제로 운행하는 것은 필요하다. 우리는 최초의 혁신자가 아니라 추격을 해야 하는 후발자이다. 기술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완비하고 출발하기보다 서툴지만 실제 사용해 가면서 오류를 정정해 가는 약간은 위험한 방식이 기술축적에 더 도움이 될 수 있다. 고속철도를 운행하면서 철도서비스 관계자들은 기존 철로와 기관차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제안하며 고속철도 차량 제작자와 철로 건설회사들은 이런 제안을 어떻게 반영하여 기술을 발전시킬 것인지를 연구해야 한다. 특히 산악지형에 맞는 기술을 축적하는 것이 프랑스와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하나의 요인이 될 것이다. 한국의 독자적인 입찰이 어렵다면 프랑스와 공동으로 입찰에 참여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경우에 한국이 수주의 과실을 어느 정도 확보하려면 프랑스가 부족한 부분에서 기술력을 확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KTX 사업은 천문학적인 비용이 소요되었다. 사업을 시작하게 된 배경에 대한 국민의 의구심도 많았다. 하지만 어쨌거나 KTX는 만들어졌으니 이미 투입된 비용에 대해 골몰해서는 안된다. KTX로부터 우리가 끌어낼 수 있는 최대 잠재적 편익을 목표로 상정하고 이를 위해 어떤 일부터 시작할 것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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