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착취되는 제국주의

일반적으로 수익성이 좋은 국제 무기거래도 소련에는 남는 장사가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아프리카, 중동, 라틴 아메리카의 혁명 정부는 모스크바로부터 받은 산더미 같은 무기 구매에 지불할 대금을 사실상 경화로 낸 적이 없었다. 이념적 안경을 쓰고 세계를 바라보는 데 익숙한 소련 지도부는 자국의 손실을 “사회주의자 연대”를 위한 것으로 여겼지만 결과적으로 속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나중에 리시코프는 이렇게 말했다.

“‘우방’과의 무기거래가 무슨 의미인지 대가를 치르고 배웠다. 계속 늘어나는 빚이었다. 상환 일정을 변경해 달라고 요구하는 끝없는 협상은 결국 일체 상환할 수 없다는 협박으로 점철되었다. 그러고는 끈질기게 ‘동지애’에 호소했다.”150

1991: 공산주의 붕괴와 소련 해체의 결정적 순간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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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는) 제4공화국 기간으로 이 기간 동안 제3차와 제4차 경제개발5개년 계획이 추진되었다. 1960년대에 줄곧 고등교육 정원 증원을 억제해왔던 정부는 1970년대 들어 지속적인 산업화에 요구되는 고급인력 수요에 대응하기 위하여 전공 분야별로 선별적으로 고등교육 정원을 확대시켰다. 경제성장을 뒷받침할 수 있도록 산업 분야의 지역별 배치를 고려하여중화학 공업계와 경상계, 외국어 학과 등을 중점 중원하였으며, 국가 인력수급상 필요한 전공 분야 외의 학과는 1960년대에 이어 대학정원의 중원을 계속 억제하였다. - P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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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 이와 같이 강력한 통제 정원 정책으로 전환하게 된 정책 배경은 고급인력의 실업률 증가 및 경제발전 정책의 추진, 사립대학의 기업화 및 부실운영, 정치적 안정에의 필요 등으로 집약할 수 있겠다. 

무엇보다도 강하게당시의 고등교육 정원에 대한 문제의식이 제기되게 된 배경은 고급인력공급의 과잉 현상이다. 해방 이후 지속적으로 확대된 고등교육 인구는1960년대 들어 대량의 고등 실업자군을 양산하였다. 1962년 대학 정비를단행하기 이전의 고등교육기관 졸업자의 취업률은 40%를 넘지 못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으며(공보부, 1962: 158. 송광용, 1989: 17에서 재인용),

1963년에는 45.5%, 1965년에는 37.6%였고 이중 4년제 대학 졸업자의 취업률은 1963년에는 38.7%, 1965년에 34.7%에 불과하였다.

고등 실업은 국가적으로 볼 때나 개인적으로 볼 때나 모두 자원의 낭비를 초래하는한편, 좌절로 인한 사회 불안을 초래할 여지를 안고 있어 특히 정책 결정에 주요 고려사항이 되었다. ‘학교정비기준‘에서 전국 대학생 정원 총수를 책정할 때 ‘국가의 인력 수요를 첫 번째 기준으로 삼은 것은 당시고급 인력의 유민화가 얼마나 심각한 문제로 제기되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이와 관련하여 1960년대는 한국의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추진된 시기로서, 경제발전에 필요한 인력의 양성이 교육계의 중요한 과제로 던져졌던 출발점이다. 국가발전은 1960년대 이후 ‘학교정비기준령‘을 비롯하여 정원정책의 주된 이유 혹은 목적으로 일관성 있게 강조되었고, 여기에서 대학정원에 대한 국가 통제가 정당화되었다. - P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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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후반부터 4년제 대학은 정원 중원의 억제라는 대원칙 아래, 첨단 과학기술 분야만을 부분적으로 증원하는 정책이 전개되었다.
1980년대부터 대학 졸업생의 취업률이 하락하기 시작하여 졸업정원제가적용되기 시작한 1981년 입학생이 졸업하던 시기인 1985년에는 전년도의48.3%에서 무려 7.4%가 떨어진 40.9%를 기록하였다. 1970년대 말부터급격히 확대되어 온 대학 정원 때문에 공급 과잉 현상이 초래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대량의 고등 실업자가 산출되었고 대학 정원 증원의 억제는 불가피하였다. - P217

그러나 ‘풍요 속의 빈곤‘ 현상으로 대학 졸업자의 높은 실업률에도불구하고 첨단 산업 분야에서는 고급 인력의 부족을 호소하자, 정부는 이분야만을 한정적으로 확대할 것을 결정하였다. 비교적 우수 인력이 배출된다는 수도권 지역 8개 대학의 경우 1990년 현재 정원이 33,135명으로1979년에 비해 14,910명이 증가했는데, 전자, 기계 등 주요 산업 기술과학계 정원은 1990년 5,730명으로 같은 기간 동안 550명이 늘어났을 뿐이어서 전체 정원에 대한 이들 주요 학과 정원의 비율은 같은 기간에 26.9%에서 17.3%로 감소하였다.  - P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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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신규대졸자 실업문제

이와 같이 강력한 통제 정원 정책으로 전환하게 된 정책 배경은 고급인력의 실업률 증가 및 경제발전 정책의 추진, 사립대학의 기업화 및 부실운영, 정치적 안정에의 필요 등으로 집약할 수 있겠다. 무엇보다도 강하게당시의 고등교육 정원에 대한 문제의식이 제기되게 된 배경은 고급인력공급의 과잉 현상이다. 해방 이후 지속적으로 확대된 고등교육 인구는1960년대 들어 대량의 고등 실업자군을 양산하였다. 1962년 대학 정비를단행하기 이전의 고등교육기관 졸업자의 취업률은 40%를 넘지 못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으며(공보부, 1962: 158. 송광용, 1989: 17에서 재인용),
1963년에는 45.5%, 1965년에는 37.6%였고 이중 4년제 대학 졸업자의 취업률은 1963년에는 38.7%, 1965년에 34.7%에 불과하였다.18) 고등 실업은 국가적으로 볼 때나 개인적으로 볼 때나 모두 자원의 낭비를 초래하는한편, 좌절로 인한 사회 불안을 초래할 여지를 안고 있어 특히 정책 결정에 주요 고려사항이 되었다. ‘학교정비기준령‘에서 전국 대학생 정원 총수를 책정할 때 ‘국가의 인력 수요‘를 첫 번째 기준으로 삼은 것은 당시 고급 인력의 유민화가 얼마나 심각한 문제로 제기되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이와 관련하여 1960년대는 한국의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추진된 시기로서, 경제발전에 필요한 인력의 양성이 교육계의 중요한 과제로 던져ㅈ던 출발점이다. 국가발전은 1960년대 이후 ‘학교정비기준령‘을 비롯하ㅇ정원정책의 주된 이유 혹은 목적으로 일관성 있게 강조되었고, 여기에대학정원에 대한 국가 통제가 정당화되었다. - P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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