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한 소득분배는 경제성장을 저해하는가


2003. 11. 10

Version 0.9 


쿠즈네츠는 경제성장과 소득분배의 실증적 관계를 분석하여 소득수준이 매우 낮은 상태에서 소득수준이 증가할수록 소득분배가 악화되며 소득수준이 일정수준 이상이 될 경우에는 소득수준이 증가할수록 소득분배가 개선된다는 가설을 제시한 바 있다. 이것을 쿠즈네츠의 역U자 가설(Inverted U Hypothesis)이라고 부른다.

쿠즈네츠의 가설을 실증적으로 살펴보기 위해 Dollar and Kraay(2002)의 논문에서 사용된 소득불평등 자료를 Penn World Table(이하 PWT)의 자료를 결합하여 분석할 것이다.1)  쿠즈네츠의 가설은 한 나라가 경제성장이 진행됨에 따라 소득불평등의 정도가 변화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쿠즈네츠의 가설이 옳은지 그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긴 기간 동안의 한 나라의 연도별 소득자료와 불평등자료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자료를 갖춘 나라들은 많지 않다.

한국은 1960년 저소득국에서 빠른 성장을 통해 2000년 중위소득국으로 발돋움하였으므로 쿠즈네츠의 가설의 성립 여부를 살펴보는데 좋은 예가 될 수 있는 나라이다. <그림 1>의 KOR은 한국의 연도별 소득불평등도2)를 보여준다. 1980년 전후를 전환점으로 하여 그 이전에는 소득불평등이 심화되다가 그 이후에는 소득불평등이 완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결과는 쿠즈네츠의 가설과 대체로 일치한다.

<그림 1>

하지만 한국과 함께 아시아의 용의 하나로 불리는 대만(TWN)의 경우 불평등도는 1964년부터 1997년 사이 거의 변화가 없었다. <그림 1>에서 보듯이 변화량은 작지만 1980년 이전에는 불평등이 감소하고 이후에는 불평등도가 증가하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대만의 경험은 쿠즈네츠의 가설과 상반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과 같은 선진국의 경우는 산업화가 이미 19세기부터 시작되고 있으므로 장기적인 자료가 필요하다. Williamson and Lindert(1980)의 연구에 따르면 1820년부터 1860년에 이르는 기간 사이에 미국의 불평등은 빠르게 증가하였으며 1860년대부터 증가속도가 떨어지고 1929년부터 제2차 세계대전까지 평등화가 진행되었다. Dollar and Kraay(2002)의 자료로 전후 미국의 소득불평등을 보면 1970년대 중반까지는 불평등도가 안정적이지만 그 이후 그 이후는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있다. <그림 2>에서 보듯이 지니계수는 1980년대 이후 뚜렷하게 증가하고 있고 소득수준이 20% 이하인 사람들의 소득점유율인 Q1을 보면 80년대 이후 뚜렷이 감소하고 있다. 이러한 불평등의 심화 현상은 1980년대 영국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소득불평등의 심화가 선진국에서 일반적인 현상은 아니었다. 유럽 대륙의 선진국과 일본에서는 1980년대 이후 불평등의 심화현상은 나타나지 않는다.


<그림 2>

최근 빠르게 경제성장이 이루어지는 대표적인 나라는 중국이다. 1980년 개혁개방 이후 중국은 빠른 속도로 소득수준이 상승하고 있다. 그런데 중국의 소득불평등은 경제성장과 함께 빠르게 심화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쿠즈네츠의 역U자 가설과 일치한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 비교적 빠른 성장을 한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의 아세안 국가들은 소득불평등에서 큰 변화가 없었다.


<그림 3>

 

19세기에 이미 자본주의가 시작된 나라들의 경우 경제성장과정에서 초기에 불평등의 심화현상이 나타나다가 이후 불평등이 완화되는 경우가 있었다. 2차대전 후 한국의 경우 고도성장을 한 6-70년대에 불평등이 심화되었고, 80년대 이후 고도성장을 한 중국에서도 불평등의 심화가 수반되었다. 하지만 대만이나 아세안 국가들에서는 뚜렷한 불평등 심화를 발견하기 어려웠다. 쿠즈네츠의 가설은 개발도상국의 경우 개별국가의 추적조사를 통해서 확증되기는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자료의 부족으로 인해 개별국가의 추적조사가 어렵다. 이를 보완하는 방법은 동일한 시점에서 여러 나라의 소득자료와 불평등도 자료를 모아서 비교하는 것이다.  고소득국이 저소득국의 미래의 모습이라는 가정 하에서 쿠즈네츠의 가설이 맞다면 동일한 시점에서의 여러 나라의 소득과 불평등을 이용해 그림을 그리면 역U자 모양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동일시점의 여러 나라의 자료를 분석하는 것을 횡단면분석이라고 부르는데 횡단면분석의 결과는 쿠즈네츠의 가설과 상당부분 일치하는 결과를 보여준다.

Dollar and Kraary(2002)의 자료에 있는 나라는 PWT의 나라보다 작다. 이는 소득분배의 자료는 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가능한 한 많은 나라를 포함시켜도 대상국가는 38개국밖에 되지 않았다. 1960년의 미국에 대비한 상대소득과 지니계수의 관계는 <그림 4>와 같다.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최저소득국의 경우 상대소득이 높을수록 소득불평등이 증가한다. 이에 비해 상대소득 20% 이상의 구간에서는 상대소득이 높을수록 소득불평등이 감소한다. 놀라울 정도로 쿠즈네츠의 가설과 일치된 그림을 얻을 수 있다.

<그림 4>

이러한 현상은 2000년에도 나타난다. <그림 5>는 동일한 38개국의 소득수준과 소득불평등의 관계를 보여주는데 20% 이하에서는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소득불평등이 증가하지만 20% 이상의 영역에서는 소득불평등이 대폭 떨어진다. 상대소득 20% 이상의 영역에서 1960년에는 평균 40 정도의 지니계수를 보이던 것이 2000년에는 평균 35 정도로 하락했음을 볼 수 있다. 또 다른 변화는 2000년의 경우에는 상대소득 60% 이상의 나라들에서 상대소득이 높을수록 소득불평등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1960년의 경우 상대소득이 높을수록 소득불평등이 감소하는 것과 상반되는 결과이다.

<그림 5>

38개국은 40년 사이에 상대소득의 변화와 소득불평등의 변화를 동시에 겪어왔다. 상대소득 변화와 소득불평등 변화 사이의 관계를 좀더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서 이행확률표 상에서 소득불평등 변화를 검토해보았다. <표 1>은 그것을 보여준다. <표 1>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 <그림 6>이다.


<표 1> 상대소득 변화와 지니계수의 변동값

 

 

2000년 상대소득수준

 

 

최저소득국

7.5% 이하

저소득국

7.5-20%

중위소득국

20-50%

고소득국

50-75%

최고소득국

75% 이상

1960년 상대소득수준

최저소득국

7.5% 이하

0.387

0.794

0

0

0

저소득국

7.5-20%

-4.573

-3.666

3.499

0

0

중위소득국

20-50%

0

-7.0164

0.745

-3.336

0

고소득국

50-75%

0

0

0

-16.133

-5.044

최고소득국

75% 이상

0

0

0

1.085

3.471


예를 들어 1960년 7.5-20%와 2000년 20-50%에 해당하는 3.499가 의미하는 바는 1960년에 7.5-20% 구간에 있다가 경제성장이 빠르게 진행되어 2000년 20-50%에 이른 나라들은 지니계수가 평균적으로 3.499만큼 증가했다는 것을 말한다. 1960년 50-75%와 2000년 75% 이상에 해당하는 -5.044가 의미하는 바는 1960년에 50-75% 구간에 있다가 경제성장이 빠르게 진행되어 2000년 75% 이상에 이른 나라들은 지니계수가 평균적으로 -5.044만큼 감소했다는 것을 말한다. 최저소득국인 7.5% 이하의 나라들은 지니계수의 변화가 거의 없었다. 이에 비해 1960년에 저소득국인 7.5-20% 구간의 나라들은 상대소득수준이 현수준을 유지하거나 현수준보다 떨어질 경우에는 소득분배가 개선되었지만 그 이상으로 올라갈 때는 소득분배가 악화되었다. 1960년에 중위소득국 20-50% 구간의 나라들은 경제쇠퇴를 겪을 경우 소득분배가 개선되고 경제성장을 겪을 때도 소득분배가 개선되지만 현수준을 유지할 경우 소득분배의 변화가 거의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60년에 고소득국인 50-75%였던 나라들은 현수준을 유지할 때 큰 폭의 소득불평등 완화가 있었고 현수준보다 나아질 때도 소득분배가 개선되었다. 1960년 상대소득 75% 이상의 최고소득국은 소득불평등의 악화가 있었다.

<그림 6>

이상의 결과를 거칠게 정리하면 20-50%의 소득구간이 일종의 전환점 역할을 하고 있어서 이보다 더 낮은 소득수준에서는 경제성장이 진행되면 소득불평등이 악화되고 이보다 더 높은 소득수준에서는 경제성장이 소득불평등의 개선을 낳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결과는 쿠즈네츠의 역U자 가설이 지난 40년 사이 대체로 관철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만 역U자 가설과 배치되는 것은 최고소득수준의 나라에서 소득불평등이 악화된다는 현상이다.

또하나 흥미로운 점은 초기의 소득불평등 정도가 경제성장의 성과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성장이 매우 성공적으로 진행된 나라들은 일본, 한국, 인도네시아, 태국 등으로 개발 초기에 소득불평등이 낮은 나라였고 경제성장이 실패한 나라들은 볼리비아, 엘살바도르, 베네주엘라 등으로 개발 초기에 소득불평등이 높은 나라들이었다는 것이다.


<표 2> 초기 소득불평등과 경제성장의 성공과 실패

 

 

40% 이상 성장률 감소

-40-40% 성장률

40% 이상 성장률 증가

1960년 상대소득수준별 1960년대 지니계수

1960년대 상대소득수준

7.5% 이하

46.5

32.6

33.0

36.2

7.5-20%

48.9

48.3

36.4

47.0

20-50%

51.5

47.5

35.6

47.9

50-75%

 

41.3

 

41.3

75% 이상

 

32.7

 

32.7

성장률별 1960년대 지니계수

 

49.6

41.5

35.3

43.2


1960년과 2000년 사이에 미국과의 상대소득이 40% 이상 증가한 나라와 40% 이상 감소한 나라로 구별하였다. 그리고 이들 나라의 경제성장 초기시점 1960년의 소득불평등 정도를 측정하여 비교해 보았다. 그 결과는 <표 2>에 요약되어 있다. 경제성장에 성공한 나라들은 대체로 소득불평등이 낮은 나라들로서 지니계수가 35.3에 불과했다. 하지만 경제성장에 크게 실패하여 쇠퇴한 나라들은 초기 소득불평등이 상대적으로 높아서 평균 49.6에 이른다. 상대소득 변화율이 -40%에서 40% 사이에 있는 나라들은 성공국에 비해서는 초기 불평등이 높고 실패국에 비해서는 초기 불평등이 낮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 Dollar and Kraay(2002), Growth Is Good for the Poor, Journal of Economic Growth

2) 소득불평등도는 지니계수를 측정하였다. 지니계수는 0에서 1 사이의 값을 가지고 0에 가까울수록 평등하고 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이 심하다. 이 글에서는 100을 곱하여 0에서 100사이의 값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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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수렴하는가, 양극화하는가

 

 

 

2003. 11. 8

Version 0.9 

 

 

오늘날 세계는 하루 100달러 이상을 벌어들이는 사람과 하루 1달러도 벌지못하는 사람들이 공존하고 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2002년 현재 룩셈부르크는 일인당 GNI가 38000달러가 넘는데 비해 콩고 공화국은 80달러밖에 되지 않는다. 물론 나라간의 소득격차는 오늘의 문제만은 아니다. 과거에도 잘사는 나라와 못하는 나라의 격차는 늘 있어왔다. 우리가 이 글에서 주로 관심을 갖는 문제는 나라간 소득불평등이 점차 완화되고 있는 추세인지 아니면 점점 심화되고 있는지이다.

시점을 너무 거슬러올라가면 나라간 소득을 비교할 수 있는 자료가 부족하기 때문에 평가하기 힘들다. 기원전 1세기의 나라간 소득격차를 분석하는 것은 코끼리 장님 만지기에 가까울 것이다. 산업혁명이 시작된 후의 국민소득에 대한 자료는 경제사학자들의 연구에 의해 부분적으로 발굴, 개발된 바 있지만 이것도 현재의 주요 선진국들에 한정된다. 이 글에서는 비교적 통계자료가 잘 정비되어 있는 2차대전 이후로 한정하기로 한다.

2차대전 이후로 시기를 한정짓는 이유가 단순히 통계자료의 유무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2차대전 이전에는 상당수의 나라들이 선진국들의 식민지였고 전근대사회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2차대전을 계기로 독립한 후 식민지들은 독자적인 정부를 구성하고 근대화정책과 경제발전을 추구하였다. 2차대전 이후에 한정함으로써 식민지라는 핸디캡이 없는 나라들 간의 비교가 가능해진다.

대표적인 나라간 소득 자료는 펜실베니아 대학 연구소에서 만드는 Penn World Table이다. 이 자료를 이용해 2차대전 후 나라간 소득을 비교해보면 다음과 같은 특징들을 확인할 수 있다. 우선 나라간 소득격차를 표준편차로 계산해볼 경우 표준편차는 점점 증가하고 있다. 달러로 환산한 국민소득을 1960년과 2000년에 대해 비교해보았다. 1960년과 2000년 모두 자료가 존재하는 나라는 99개국이다. 1960년의 평균소득은 828달러였는데 2000년 평균소득은 9982달러였다. 40년 사이 빠른 속도로 국민소득이 증가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표준편차는 1960년 770달러에서 2000년 10517달러로 증가했다. 절대적인 수준에서 표준편차가 대폭 증가했다. 그런데 표준편차의 절대수준 증가는 소득격차를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표준편차를 평균으로 나눈 변이계수를 살펴보는 것이 타당하다. 변이계수를 비교해보아도 소득불평등은 심화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변이계수(=표준편차/평균)는 1960년 0.92에서 2000년 1.05로 상승하였다. 

소득분포의 누적확률분포를 보여주는 것이 <그림 1>이다. 가로축은 상대소득수준을, 세로축은 누적확률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가로축 60에 대응되는 높이는 0.8인데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미국 소득에 대비한 상대소득이 60% 이하인 나라는 전체 나라 중 80%라는 것이다.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미국에 대비한 상대소득이 10% 이하인 나라의 비중이 1960년에는 24%였는데 2000년에는 36%로 급상승하여 50% 증가했음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미국에 비해 상대소득이 50% 이상인 나라의 비중은 증가하여 1960년에 19%에서 2000년 24%로 늘어났다. 매우 가난한 나라는 더 늘어났고 중상위권 나라도 늘어나는 양극화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양극화 현상은 <그림 2>에서 더 명확히 볼 수 있다. <그림 2>는 <그림 1>의 누적분포함수에 대응한 소득분포의 밀도함수를 의미한다. 각 소득구간에 속한 나라의 비율을 보여주는 상대돗수분포표를 그래프로 그린 히스토그램으로 해석하면 된다. 미국에 대비한 상대소득 이 0-10% 구간의 나라가 크게 늘고, 상대소득 70-80% 구간의 나라도 늘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대신 중하위권(10%-50% 사이 구간)의 나라들의 비중이 줄어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림 1>                                           

 

 

<그림 2>  

<그림 2>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1960년에는 나라별 소득의 분포가 상대소득 10-20%에서 가장 많은 나라가 몰려있는 봉우리 하나의 분포의 모양(單峰分布)을 띠지만 2000년에는 0-10%에서 한번 봉우리가 솟고 70-80% 구간에서 다시 한번 봉우리가 솟는 분포의 모양(雙峰分布)을 갖는다. 지난 40년간 양극화가 진행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이 지속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것은 <표 1>과 같은 이행확률표를 통해 분석할 수 있다. 이행확률표는 1960년대에 어떤 상대소득 구간에 있는 나라가 40년이 지난 2000년에 어떤 상대소득 구간에 놓일지의 확률을 보여주는 표이다. 예를 들어 1960년에 미국에 대비하여 80% 이상의 상대소득을 갖는 나라가 2000년에 여전히 80% 이상의 상대소득을 가질 확률은 88.24%로 매우 높았다. 이에 비해 7.5% 이하로 떨어질 확률은 0%였다. 1960년에 미국과 대비하여 7.5-20%의 상대소득을 갖는 나라가 2000년에 한단계 상승하여 40-60%의 상대소득을 가질 확률은 2.63%에 불과했다. 이에 비해 7.5% 이하로 떨어질 확률은 44.74%에 이른다.

지난 40년간의 상태변화가 지속되면 세계 각국의 소득분포는 최종적으로 <그림 3>과 같은 모양을 갖게 된다. 즉, 가난한 나라들에 많은 나라가 집중되고 중간층의 나라는 거의 없고 부유한 나라에 상당수의 나라가 집중되는 양극화의 소득분포로 귀결된다.

       

<표 1> 각국 상대소득수준의 이행확률표

 

 

2000년

 

 

7.5% 이하

7.5-20%

20-40%

40-60%

60% 이상

1960년

7.5% 이하

82.35%

17.65%

0.00%

0.00%

0.00%

7.5-20%

44.74%

42.11%

7.89%

2.63%

2.63%

20-40%

4.55%

27.27%

40.91%

18.18%

9.09%

40-60%

0.00%

0.00%

20.00%

40.00%

40.00%

60% 이상

0.00%

0.00%

5.88%

5.88%

88.24%


          <그림 3>

최종적으로 세계 소득분포가 <그림 3>과 같이 수렴된다고 해서 한 나라가 계속 같은 수준으로 머무르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전체적으로 소득분포는 유지되지만 개별 나라는 일정 확률로 상대소득이 변화하여 상향이동할 수 있다. 하지만 올라가는 나라도 있는 반면 내려가는 나라도 있기 때문에 전체 소득분포는 변하지 않는다.

또하나 우리가 주목할 현상은 나라별 경제성장의 안정성이 초기 소득수준에 따라 다르다는 것이다. 초기 소득수준이 높은 나라의 경제성장률은 평균 2-3% 내외로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소득수준이 낮아지면 나라별로 경제성장률의 차이가 커지고 소득수준이 낮을 경우에는 마이너스 성장을 하는 나라도 있고 매우 높은 고도성장을 하는 나라도 있다는 것이다.

<그림 4>는 1960년 일인당 GDP와 40년간의 연평균 성장률을 도시한 것이다. 1960년에 소득 7000달러 이상인 나라들의 경제성장률은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1960년에 3000달러 이하의 나라들은 엄청난 경제성장률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것은 소득수준이 낮은 나라들의 경제성장은 매우 불안정하지만 소득수준이 높은 나라의 경제성장은 안정적임을 말해준다. 이것을 달리 해석하면 한 나라가 경제성장이 성공적으로 진행되어 상대소득 60%를 넘어서면 매우 안정적인 경제성장이 가능하지만 중간 이하의 소득수준에서는 불안정성이 높아서 성장하다가도 쇠퇴하고 쇠퇴하다가도 성장하는 부침을 겪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표 1>의 이행확률표에서도 확인된다. 1960년 상대소득 60% 이상의 나라들은 여전히 상대소득 60% 이상에서 머무를 확률이 88.24%로 매우 높지만 1960년대 20-40%의 나라들은 그 이하로 떨어질 확률이 30%, 이상으로 올라갈 확률이 30%로 매우 불안정하다.

<그림 4>에서 서유럽과 미국 그리고 일본만을 뽑아내어 그린 것이 <그림 5>이다. 그림에서 명확히 볼 수 있듯이 1960년에 소득수준이 높았던 나라들은 경제성장률이 낮고 소득수준이 높았던 나라들은 경제성장률이 높다. 서유럽, 미국, 일본 사이에서는 소득의 수렴현상이 돋보인다.

  

          <그림 4>                                    

 

 

  

     <그림 5>

 

이상에서 설명한 세계 소득분포의 현황과 전망은 매우 암울해 보인다.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것은 나라의 수를 중심으로 한 것인데 실제 빈곤의 어려움을 겪는 것은 사람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인구수를 기준으로 살펴보는 것도 중요하다. 모든 나라의 인구증가율이 동일하다면 나라 수로 따지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런데 인구증가율은 나라별로 차이가 있다. 문제는 저개발국일수록 인구증가율이 높다는 것이다. <그림 6>에서 보는 것처럼 1960년을 기준으로한 상대소득에 비추어볼 때 저소득국의 인구증가율이 고소득국에 비해 월등하게 높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저소득국이 더욱 더 가난하게 되는데 여기에 인구도 더 빠르게 늘어나고 있으므로 가난으로 고통받는 인류의 비중은 더 늘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희망적인 소식은 있다. 그것은 중국의 성장이다. 중국은 99개국 전체 인구 중 25%를 차지한다. 그런데 1960년에 미국 소득의 5%에 불과했던 중국이 최근 20년 사이 급성장하여 10%가 되었다. 현재의 고성장세를 유지한다면 중국은 빠르게 미국과의 상대소득 격차를 줄여갈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99개국 중 한 나라가 최빈국에서 탈출한다는 의미를 넘어서서 세계 인구의 25%가 가난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저성장으로 고통받는 나라가 하나 줄어드는 의미 이상으로 세계인구의 25%가 빈곤의 함정으로부터 탈출한다는 점은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그림 6>


지금까지 우리는 2차세계대전 이후 세계각국의 일인당 국민소득 자료를 이용하여 나라간 소득격차의 변화 추이를 살펴보았다. 이하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경제성장이론은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솔로우 성장모형 및 그것의 확장된 모형을 신뢰하는 이들은 나라간 소득분포의 변화를 이론적으로 나라별 균제상태 소득수준으로의 수렴으로 설명한다. 가장 단순한 솔로우 모형에 따르면 각 나라는 그 나라의 저축률과 인구성장률에 대응되는 균제상태 소득수준을 갖는다. 자본축적과 함께 각 나라는 균제상태 소득수준을 향하여 성장해가고 균제상태 소득수준에 도달하면 경제성장은 멈추게 된다.


<그림 7> 솔로우 성장모형에서의 절대적 소득 수렴


모든 나라의 저축률과 인구성장률이 동일할 경우 나라간 소득 차이는 자본축적이 어느 정도냐에 따라 결정되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모든 나라들이 동일한 균제상태 소득수준으로 수렴한다. 이러한 가설을 절대적 수렴가설이라고 부른다. <그림 7>은 절대적 수렴가설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세로축은 소득수준이며 수평선의 높이가 균제상태 소득수준을 보여준다. 가로축은 시간을 의미한다. 시작점에서 각 나라들은 소득수준에 차이가 있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동일한 균제상태 소득수준으로 수렴한다. 절대적 수렴가설은 2차대전 후에 전쟁의 상처를 딛고 일어선 독일, 프랑스 등 서유럽국가와 일본이 미국의 소득수준을 추격해간 사실을 설명하는데는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다. 앞서 살펴본 <그림 5>는 수렴현상을 잘 보여준다. 하지만 2차대전 후에 독립국가로 출발한 수많은 개발도상국과의 소득격차가 줄어들지 않는 현상은 이러한 절대적 수렴가설로는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솔로우 모형을 약간 수정하면 지속적인 나라간 소득격차를 설명할 수 있다. 저축률이 높은 근면한 나라의 균제상태 국민소득 수준은 저축률이 낮은 나태한 나라의 균제상태 국민소득 수준보다 높다. 근면한 나라들은 높은 소득수준으로 수렴하고 나태한 나라들은 낮은 소득수준으로 수렴한다. 이처럼 저축률, 인구성장률 등에 차이가 있는 나라들 사이에서는 처음에 나타나는 소득의 차이가 시간이 흘러도 줄어들지 않을 수 있다. 이것은 <그림 8>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림 8> 솔로우 성장모형과 소득 격차


각국은 자신들의 균제상태 소득수준으로 수렴한다는 것을 조건부 수렴가설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조건부 수렴가설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지속적인 소득격차를 설명할 수 있지만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소득격차가 커져가는 현상을 설명하는데 있어서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하다.

조건부 수렴가설을 통해 소득 격차의 확대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그림 9>이나 <그림 10>와 같은 상황이 가정되어야 한다. <그림 9>와 <그림 10> 모두 시작시점에 비해 자본축적이 진행된 이후 소득격차가 더 커져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림 3>은 2차대전 직후에 선진국들은 균제상태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개발도상국들은 균제상태에 이미 상당히 접근해 있었다는 가정을 전제한다. 개발도상국은 발전의 잠재력이 거의 소진된 상태이고 선진국들은 잠재력이 풍부한 상태라는 것이다. <그림 4>는 2차대전 직후에 선진국들은 균제상태에 아직 도달하지 못했지만 개발도상국들은 이미 균제상태보다 더 높은 소득수준을 누리고 있었다는 것을 전제한다. 위 두가지 가정 모두 상식과 부합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조건부 수렴가설은 소득격차의 “존재”는 설명하지만 소득격차의 “확대”는 설명하는데 난점을 안게 된다.


<그림 9> 조건부 수렴가설과 소득격차 확대 1

<그림 10> 조건부 수렴가설과 소득격차 확대 2


솔로우 성장모형과 수렴가설에 대해 비판적인 이들은 저개발국이 저성장함정(low development trap)에 빠져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들에 따르면 저개발국과 선진국이 궁극적으로 도달할 균제상태 소득수준은 비슷하다. 문제는 저개발국이 함정에 빠져있어서 더 이상의 성장이 막혀있는데 비해서 선진국은 균제상태로 향하는 성장을 계속하고 있다. 이에 따라 소득격차가 확대되고 있다. 만약 저개발국이 함정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면 저개발국은 선진국을 추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림 11>은 저성장함정 가설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림 11> 저성장함정과 소득격차의 확대


저개발국이 왜 저성장함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느냐에 대해 여러 가지 이론이 제시된 바 있다. 우선 대표적인 이론으로 종속이론을 들 수 있다. 종속이론은 라틴아메리카의 저성장을 설명하기 위해 라틴아메리카 학자들이 제안한 것이다. 종속이론의 기본골자는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의 종언과 함께 정치적인 의미에서의 제국주의-식민지관계는 사라졌지만 경제적인 의미에서의 식민지관계는 여전히 남아있으며 선진제국주의국가가 저개발국의 경제적 잉여를 착취하여 저개발국이 창출한 잉여 중에서 재투자될 부분이 부족하여 성장이 어렵다는 것이다. 종속이론은 저성장의 책임이 저개발국 자신이 아니라 선진제국주의국가에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종속이론은 1960-70년대 라틴아메리카에서 상당한 호응을 받았지만 오늘날에는 소수파의 주장으로 축소되었다. 

최근의 흐름은 저성장의 원인을 내부적인 측면에서 찾는 것으로 집중되고 있다. 아자리아데스는 저성장함정 가설을 제안한 선구적인 업적을 남겼다. 그는 경제성장에서는 인적자본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전제하고 인적자본량의 축적은 전세대의 인적자본량이 이월된 위에 현세대가 얼마의 인적자본투자를 하느냐에 따라 다음 세대의 인적자본량이 결정되는 구조를 갖는다고 상정했다. 경제성장의 문제는 인적자본투자가 지속될 수 있느냐로 집약되는데 아자리아데스는 전세대로부터 너무 낮은 인적자본을 물려받은 현세대는 인적자본에 투자하지 않게 되고 이에 따라 다음 세대에게도 낮은 수준의 인적자본을 그대로 물려주게 된다고 주장했다. 이럴 경우 경제성장은 이루어지지 않고 다음세대 역시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에 비해 전세대로부터 일정수준 이상의 인적자본을 물려받은 현세대의 경우에는 인적자본에 투자하고 이에 따라 다음 세대에게 전세대로 받은 것보다 더 큰 인적자본을 물려주게 되어 경제성장이 지속된다. 후진국은 전세대로부터 물려받은 인적자본량이 너무 작기 때문에 저성장함정에 빠져 있는 것이고 선진국은 전세대로부터 물려받은 인적자본량이 크기 때문에 지속적인 성장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왜 전세대로부터 물려받은 인적자본량이 작을 경우 현세대가 추가적인 인적자본투자를 하지 않는 것일까? 아자리아데스는 <그림 12>처럼 인적자본량 수준에 따라 생산량이 결정된다고 생각했다. 그림에서 중요한 포인트는 일정수준의 인적자본량을 넘어서면 생산량이 비약적으로 증가하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예로 설명해보자.

학생들이 공부시간을 처음에 조금씩 늘릴 때는 그 성과가 잘 나타나지 않지만 공부량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그 성과가 가시화되는 것을 볼 때가 간혹 있다. 많은 학생들이 처음에 성과가 잘 나타나지 않는다고 포기해버리는데 이 경우에는 결국 낮은 점수에 계속 머무르게 된다. 만약 성과가 나지 않더라도 꾹 참고 열심히 하다보면 어느 순간 그 전에 쌓았던 노력들이 일거에 보상되면서 성적이 대폭 상승할 수도 있다. 이러한 특성이 경제에서도 나타난다고 보는 것이 <그림 12>에 반영된 아자리아데스의 생각이다.

경제학적으로 설명한다면 전세대로부터 매우 낮은 수준의 인적자본을 물려받은 현세대는 인적자본에 투자한다고 해도 생산량 증가가 크지 않아서 현세대도 인적자본에 투자하지 않는다. 이에 따라 다음세대도 인적자본에 투자하지 않는다. 전세대로부터 높은 수준의 인적자본을 물려받은 현세대의 경우에는 자신이 인적자본을 조금 늘릴 때 생산량 증가가 매우 크고 따라서 인적자본에 투자할 유인이 충분하여 그 결과 다음세대는 더 높은 인적자본을 물려받고 그 역시 계속 인적자본에 투자하게 된다.

<그림 12> 인적자본수준과 생산량의 관계


저개발국이 저성장함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외부적인 충격이 필요하다. 만약 외부적인 충격에 의해 갑자기 저개발국의 인적자본 수준이 임계치 이상이 되면 인적자본수준이 높기 때문에 인적자본 투자로 인한 수익성이 높고 이에 따라 사람들은 인적자본 투자를 많이 하고 이에 따라 고성장이 계속될 수 있다. 사람들의 자발적인 결정에 맡겨두면 계속 인적자본투자를 하지 않을 것이므로 정부가 강제로 투자하도록 하거나 유인책을 제공하여 투자하도록 해야 한다. 일정기간 성과없는 투자를 계속하면 어느 순간 경제는 고성장의 고속도로에 올라서 있음을 발견한다.

이상의 설명은 인적자본의 생산기여도가 독특한 양상을 띤다는 가정에 입각해있다. 이러한 가정 없이 인적자본축적과 연구개발투자 사이의 상호보완관계를 이용하여 저성장함정을 설명할 수도 있다. 경제성장은 노동자의 인적자본의 수준에도 의존하지만 노동자를 이용하여 생산을 하고 이윤을 얻는 기업이 어떤 기술을 채택하느냐에도 의존한다. 그리고 노동자의 인적자본수준과 기업의 기술수준은 상호보완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이 경우 저성장함정이 나타날 수 있다.

예를 들어 노동자는 초등교육만을 받을 것인지 고등교육도 받을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다고 하자. 기업은 단순기술의 생산을 할 것인지 아니면 고도기술의 생산을 할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다고 하자. 고등교육의 비용과 고도기술의 채택비용이 초등교육과 단순기술의 채택비용보다 높다. 노동자가 고등교육을 받고 기업이 고도기술을 채택하면 가장 높은 수준의 생산이 이루어진다. 노동자가 초등교육을 받고 기업이 단순기술을 채택하면 낮은 수준의 생산이 이루어진다.

그런데 노동자가 고등교육을 받고 기업이 단순기술을 채택하면 노동자는 교육투자에 들인 비용에 형편없는 수입을 누리게 되어 손해를 보지만 기업은 숙련도가 높은 노동자를 쓰게 되므로 높은 이윤을 누릴 수 있다. 반대로 노동자는 초등교육을 받고 기업이 고도기술을 채택하면 기업은 고도기술투자비용을 건지지 못하고 손해를 보지만 노동자는 보다 생산성 높은 일을 하게 되어 교육투자비용에 비해 높은 이득을 누릴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자와 기업이 (마치 가위바위보를 하는 것과 비슷하게) 동시에 선택을 해야한다면 각각 무엇을 선택하게 될까? 앞에서 설명한 상황을 용의자의 딜레마 게임이라고 부르는데 두 사람이 협조를 하면 고등교육과 고도기술의 채택이 이루어지지만 각각 자신에게 최대의 이득이 될 것이 무엇인지와 상대방의 행동이 어떻게 될지를 예측하여 행동하게 되면 놀랍게도 나쁜 결과인 초등교육과 단순기술이 선택된다.

노동자는 인적자본에 적게 투자하고 기업도 인적자본이 별로 필요하지 않는 생산기술을 채택한다. 노동자는 기업이 단순기술을 채택하기 때문에 자신도 초등교육만 받는다고 말하고 기업 역시 노동자가 초등교육만을 받기 때문에 자신도 단순기술을 채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낮은 수준의 투자량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상황이 저개발국이 처한 저성장함정과 닮았다.

이상에서 제시된 설명은 저성장함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현상을 설명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몇몇 나라들은 지난 수십년간 고도성장을 계속하여 저성장함정에서 벗어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의 경우 1960년에 상대소득이 7.5%-20% 구간에 있었지만 2000년에는 40-60% 구간으로 이동했다. <표 1>에 의하면 이렇게 높아질 확률은 2.63%에 불과했다. 앞선 저성장함정 이론으로 이들 나라의 경제기적을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한국의 고도성장에 대해 높은 교육열과 중등교육의 빠른 확산을 그 이유로 꼽고 있긴 하지만 실제 저성장함정을 벗어나지 못한 많은 저개발국에서도 상당한 정도의 중등교육의 확산을 관찰할 수 있다. 또한 저성장함정 가설로는 처음에는 경제성장에 성공하는 듯 하다가 다시 실패하는 나라들을 설명하는 것도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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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에 대한 몇가지 단상 *

* 이 글은 Deardorff and Stern (2000)에 크게 의존했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 및 결론에 대해 전
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의 글에서 다루고 있는 WT O에 대해서는 다른 글을 통해
소개하고자 한다.


세계화의 정의

세계화 또는 글로발라이제이션은 쓰는 사람들마다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이글에서는 주
로 경제학적인 견지에서 세계화를 살펴볼 것이므로 비교적 간단하게 세계화란 상품, 서비스 그리
고 몇몇 생산요소의 국제적 거래의 증가 및 국경을 넘어서서 활동하는 조직체 - 기업, 국제기구,
정부 및 NGO - 의 성장 으로 정의한다.


세계화의 역사적 배경

세계화는 20세기 말에 최초로 등장한 사건이 아니다. 세계화의 물결은 20세기 초반에 이미 한번
최고조에 달했었다. 영국이 자유무역의 기치를 들고 세계시장을 주름잡을 때 상품무역이나 외국인
직접투자는 그 전의 시기보다 훨씬 높았다.
그런데 제1차 세계대전(1914-1918)과 전간기(戰間期)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1939-1945)을 거치
면서 국제적 거래는 크게 퇴조하였다. 국제적 거래의 퇴조는 직접적으로 관세전쟁과 경제블럭의
형성으로 나타난다. 1929년 세계대공황이 미국에서 시작된 후 국제수지 악화를 우려한 일국의 수
입관세 인상은 즉각적으로 무역상대국의 보복 관세 인상을 낳았고 이것은 선진국들 사이의 무역을
대폭 감소시켰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적 거래는 다시 증가하기 시작했다. 1980년에 이르면 1913년 이전 수
준을 회복하게 되고 1990년대에는 과거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의 국제적 거래가 이루어졌
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국제적 거래는 다시 증가하기 시작했다. 이미 세계화의 물결
이 다시 밀려오기 시작한 것인다. 그런데 왜 40년이 넘게 지난 1990년대에 와서 세계화가 얘기되
기 시작한 것일까? 1990년대에 세계화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세계무역기구(WTO)의 창설과 출
범 때문이다. 세계무역기구는 국가간 거래의 장벽을 없애기 위한 목적으로 1995년 창설되었다.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WTO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 1947년 발족한 GATT(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를 전신으로 하고 있다. GATT는 전간기에 퇴조한 국제 거래를 다시 활성화하기 위해 선
진국을 중심으로 무역장벽을 점진적으로 줄여가기 위해 만들어진 협의체이다. 이것은 47년 이후
총 8번의 무역에 관한 교섭을 진행했고 이를 통해 무역장벽을 크게 축소시켜왔다. 8번째 무역교섭
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우르과이 라운드이며 우르과이 라운드에서 GATT를 좀더 발전시킨 WTO
를 만들기로 합의하여 1995년 WTO가 시작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세계화는 이미 GATT와 함께 시작되었고 1995년 WTO 출범과 함께 좀더 체계적
으로 추진되고 있을 뿐이다. 다만 1995년의 시점에서 뒤를 돌아보면 1947년과 비교하여 엄청나게
국제적 거래가 활발해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고 이런 놀라움을 바탕으로 세계화라는 트렌드에 사
람들이 주목하기 시작했고 볼 수 있다.


무역개방의 승리자와 패배자


많은 이들이 1999년 시애틀 정상회담과 관련한 격렬했던 반세계화 시위를 기억할 것이다. 이 시
위는 세계화란 무엇이며 왜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은 세계화를 반대하는가라는 의문을 갖게 만들었
다. 앞에서 세계화를 정의하면서 국제적 거래의 증가를 언급했는데 그렇다면 국제적 거래의 증가
는 세계 전체에 악영향을 미치는 일인지, 세계 전체가 아니더라도 국제적 거래의 증가로 인해 피
해를 보는 집단이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경제학에 따르면 모든 거래는 거래 당사자에게 이득을 가져다 준다. 국가간 거래도 거래하는 두
나라 모두 이득을 얻는다. 국제적 거래의 증가는 세계 전체에 악영향을 미치는 일은 아니라는 것
이 경제학의 결론이다 그렇다면 국제적 거래의 증가를 반대하는 것은 바보짓처럼 보인다.
그런데 무역을 통해 나라 전체는 이득을 얻지만 무역개방의 결과 한 나라 내에서 이득을 보는
집단과 손해를 보는 집단이 나뉜다. 무역의 이득이란 무역의 이득과 무역의 손해를 합한 순이득이
양의 값을 갖는다는 의미일 뿐 모든 집단이 다 이득을 얻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손해를 보는 집
단은 세계화에 반대할 것이고 이것이 반세계화 시위의 경제적 이유라 할 수 있다.
국제무역이론에는 스톨퍼-사무엘슨 정리(Stolper-Samuelson Theorem)이라는 것이 있다. 이에 따
르면 한 나라 내에 상대적으로 풍부하게 존재하는 생산요소 소유자는 무역을 통해 이득을 보고,
상대적으로 희소한 생산요소 소유자는 손해를 본다. 예를 들어 미국은 자본이 풍부하고 노동이 희
소한 나라이다. 미국이 무역장벽을 낮추게 되면 자본을 많이 투입하는 상품이 상대적으로 싸므로
수출이 늘어나고 노동을 많이 투입하는 상품은 가격이 국제가격에 비해 비싸므로 수입이 늘어나
서, 전체적으로 미국 내에서 자본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노동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게 된다. 그
결과 자본을 가진 사람들이 얻는 수입이 늘어나고 노동을 가진 사람들의 수입이 줄어들게 된다.
이런 점에서 미국에서 노동조합이 반세계화 시위에 적극 참여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반
대로 노동이 풍부한 중국의 경우 세계화는 중국 내에서 노동을 많이 사용하는 재화의 수출을 늘려
중국노동자의 소득을 증가시킨다. 중국의 노동자들이 반세계화 시위를 벌였다는 뉴스를 들어본 사
람은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상대적으로 희소한 생산요소의 소유자만이 손해를 보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경우 무역장벽을
낮추게 되면 노동을 많이 쓰는 산업 전체가 외국으로부터의 수입경쟁제품에 의해 시장을 잠식당하
게 된다. 이에 따라 이 산업의 노동자 뿐만 아니라 경영자와 주주도 손해를 보게 된다. 미국의 철
강산업이나 섬유산업은 무역장벽 완화로 피해를 보는 대표적 산업이며 이들 산업계의 지도자들은
미국 의회와 정부에 무역장벽을 계속 유지해줄 것을 요구하고 로비를 벌이게 된다. 멕시코의 경우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통해 큰 손해를 보게 된 산업은 농업이다. 엄청난 면적의 토지와 풍부한
자본을 바탕으로 한 싼 미국의 농산물이 밀려들어오게 됨에 따라 멕시코 농민들은 농토를 떠나 도
시로 이주해야만 했다.
동전에는 뒷면만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피해를 보는 산업이 있으면 이득을 보는 산업도 있다.
상대적으로 싸게 생산하고 있던 산업들은 수출이 확대되면서 이득을 본다. 이들은 거센 반세계화시위 앞에서 드러내놓고 친세계화 시위를 벌이기보다는 침묵하며 표정관리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무역개방을 반대하는 선진국의 시위가 바보들의 행동은 아니다. 충분히 합리적인 경제적 이유가
있는 일이다. 하지만 후진국의 노동자가 선진국의 반세계화 시위에 무조건 동참해야할 이유도 없
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무역개방과 경제성장


앞서 무역개방이 경제적 이득을 가져다 준다는 점을 설명했다. 이러한 경제적 이득은 무역개방
전과 무역개방 직후의 비교를 통해 확인된다. 무역개방 전에 비해 소비자들은 훨씬 싼 가격으로
다양한 재화를 소비할 수 있게 되고 무역개방의 이득은 소비자에게 집중적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무역개방 이후 장기적으로 이득이 보장되는 것일까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경제학은 명확
한 답변을 가지고 있지 않다. 무역개방 직후에는 각국 소비자의 후생이 증대하지만, 장기적으로 한
나라의 성장 잠재력을 가진 산업이 붕괴되고 이로 인해 생산성 증가가 멈추어서 결국에는 후생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경제학은 이 문제를 무역개방이 경제성장률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라는 각
도에서 심각하게 논의해 왔는데 그 결론은 경우에 따라 다르다 라는 다소 실망스러운 애매모호한
답안에 머물러 있다.
세계화의 옹호론자들은 무역개방이 경제성장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 예로서 한국, 대만, 홍콩, 싱
가폴 등 아시아의 4마리 호랑이를 들고 있다. 이들 나라들은 1960년대까지 상당정도의 무역개방을
실시했고 그 결과 빠른 경제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라틴아메리카는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높은 관세를 부과하는 정책을 실시했다는 것이다. 1980년대 중국의 개혁개
방은 또 하나의 예가 된다. 중국은 개혁개방을 통해 연평균 10%에 달하는 경제성장은 20년간 지
속하고 있다.
세계화의 비판자들은 라틴아메리카가 1980년대 초에 무역개방을 단행했음에도 불구하고 빈발하
는 외환위기와 함께 매우 저조한 경제성장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무역개방은 경제성장의
만병통치약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비판가들은 19세기 영국 주도의 세계경제 내에
서 후발국 미국과 독일이나 20세기 후반 아시아의 4마리 호랑이의 성장과정을 자세히 들여다 보
면 무조건 시장을 개방하기보다는 수출주력상품에 대해서는 수출보조금을 주고 전략적 육성산업은
고율의 수입관세를 부과하여 보호하는 등 일반적인 무역개방의 정의와 어긋나는 정책을 시행하는
것을 통해 경제성장을 이룩했음을 지적하고 있다.
현재 경제학계의 주류적인 견해는 세계화가 경제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세계
정치지형도 이런 견해에 유리한 상황이다. 개발도상국은 세계화가 경제성장의 지름길이라는 생각
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지만 첫째, 세계화와 관련된 국제협약에 가입하지 않을 경우 포기해야하
는 단기적인 무역의 이득이 무시할 수 없고 둘째, 국내의 부패한 정치권력과 이익집단에 의한 자
의적인 무역정책이 낳는 부작용 또한 만만치 않다는 점에서 세계화의 흐름을 일방적으로 거부하기
도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자본시장 개방의 승리자와 패배자


세계화에는 상품과 서비스의 국제적 거래의 증가뿐만 아니라 몇몇 생산요소의 국제적 이동의 증가도 포함되어 있다. 자본은 노동에 비해 쉽게 국제적으로 이동할 수 있다. 쉽게 이동할 수 있는
생산요소는 쉽게 이동할 수 없는 생산요소의 희생 위에서 이득을 얻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의
자본은 임금이 싼 나라로 이동함으로써 더 많은 이득을 취할 수 있다. 미국의 노동자는 자국 공장
을 폐쇄하고 임금이 싼 멕시코에 새로운 공장을 세우는 대기업의 정책에 항의하게 된다.
자본의 국제적 이동에는 생산요소별 소득의 차이 외에도 또다른 측면이 있다. 자본이 국제적으
로 이동할 때 늘 새로운 공장을 세우기 위해 이동하는 것은 아니다. 단기적으로 금융투자를 목적
으로 이동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단기적 금융이득을 목적으로 움직이는 자본 - 이를 핫머니(hot
money)라고도 부른다 - 은 외환위기의 가능성을 높힌다는 점에서 우려를 낳고 있다.
자본이 국내로 유입되면 국내 자본수요를 충족한다는 점에서 유익하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자본
이 빠져나가면 우선 국내 자본공급이 급속히 위축되어 기업들이 자금압박에 시달리게 된다. 게다
가 자본 도피(capital flight)로 인해 국내 외환의 공급이 감소하게 되면 국내 화폐가치가 급속히 떨
어진다. 이것은 국내 기업과 은행 입장에서 외환으로 갚아야할 액수의 실질가치가 증가하는 것을
의미하고 이는 기업과 은행의 파산을 낳는다. 기업부도와 은행 파산이 이어지면 국내 기업의 투자
수요가 격감하고 이것이 소비수요의 감소로 파급되면서 엄청난 실업사태를 낳을 수 있다. 상대적
으로 국내 화폐가치의 하락으로 이득을 보는 수출기업도 주거래은행의 신용상태가 나빠짐에 따라
수출에 필요한 신용을 확보하는 것이 어려워짐에 따라 수출환경이 나빠진다. 결론적으로 외환위기
에 따른 유입된 해외자본의 빠른 유출은 심각한 불황을 야기하여 큰 고통을 안겨준다.
1995년의 멕시코의 외환위기나 1997년 아시아의 외환위기는 개방된 자본시장의 결과라는 점에
서 많은 사람들의 우려를 낳았다. 하지만 이러한 외환위기의 발생을 근거로 자본시장 개방을 무조
건 반대하는 것 역시 성급한다. 왜냐하면 외환위기 이후 위기를 경험한 나라들이 다시 빠르게 회
복되었던 데도 역시 개방된 자본시장이 기여했으며, 외환위기 전에 빠른 성장을 보였던 것도 정당
하게 평가해줘야하기 때문이다. 외환위기의 가능성을 최소화하면서도 개방된 자본시장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제도적 보완이 현재 논의되고 있다.


그 외의 논의들


세계화를 찬성하는 입장에서는 낮은 인플레이션과 빠른 기술향상을 세계화 추진의 또하나의 근
거로 들고 있다. 무역개방이 인플레이션을 억제할 수 있는 이유는 임금상승을 억제할 수 있기 때
문이며, 빠른 기술향상이 가능한 것은 보다 큰 시장을 목표로 기술을 개발할수록 기술진보의 이득
이 크기 때문에 기술향상의 유인이 더 크기 때문이다. 논리적으로 저인플레이션과 고생산상향상은
세계화의 결과일 수 있지만 실증적으로 낮은 인플레이션과 생산성 증가에 세계화에 결정적으로 기
여했다는 증거는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세계화를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각국의 전통문화가 사라진다는 점을 많이 언급하고 있다. 미국
문화가 전세계에 확산되고 있는 현실에서 전통적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각국의 기성세대들은 이에
강한 거부감을 나타내고 있다. 경제학자들은 소비자들이 자발적으로 선택한 결과로서의 미국 문화
의 확산을 비난하지 않는다. 젊은 세대가 전통 차(茶)를 마시지 않고 코카콜라를 마시는 것을 기분
나쁘게 여기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다른 사람에게 차를 마시라고 강요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고 경제학자들은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경제학자들이 미국 문화의 세계적 확산을 저지하려
는 각국의 노력을 비합리적인 것으로 치부하지는 않는다. 전통문화는 잠재적으로 발전가능성이 높지만 지금 당장은 비교열위에 있는 재화로 볼 수 있으며 한시적으로 보호한다면 장기적으로 충분
히 경쟁력을 갖춰서 수출도 가능한 자생력을 가진 재화일 수 있으며 이 경우 유치산업 보호론에
입각하여 한시적인 보호가 경제적으로 근거있는 일일 수 있다.


세계화의 미래


세계화에 반대하는 이들의 주장이 전혀 근거없는 것은 아니다. 반세계화론자들의 주장은 무시되
어서는 안되고 이러한 세계화에 대한 우려에 대해 각국 정부와 국제기구는 진지하게 검토하고 보
완책을 모색해야 한다. 세계화가 전체적으로 이득을 가져다 준다면 이익을 없는 집단은 피해를 입
는 집단에게 납득할만한 보상을 제공해야 한다. 이것은 각국 내에서 이루어져야 하고 필요하다면
국가 사이에서도 진지하게 검토되어야 한다.
세계화의 트렌드는 영원히 돌릴 수 없는 것일까? 앞서 살펴본 것처럼 이미 20세기 초엽 최고조
에 달했던 세계화는 한번 퇴조를 경험했다. 현재 진행되는 세계화 역시 언제든지 그 방향을 바꿀
수 있다. 최근 미국에서 시작된 철강분쟁은 그 좋은 예이다. 무역개방의 피해를 입는 미국 철강산
업의 로비와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미 행정부에 의해 철강에 대한 세이프가드 조치가 내려졌
다. 미국의 세이프가드에 대해 EU는 즉각 보복조치를 취하였으며 이에 따라 전세계 철강의 국제
적 거래가 위축되었다. 이는 철강을 수출하는 한국에 피해를 줄 뿐만 아니라 철강을 이용하여 제
품을 생산하는 세계 모든 기업들에게도 악영향을 미친다.
WTO를 주도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미국이 이런 일을 했다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미
국의 정책당국자는 미국 내의 세계화로 손해보는 집단을 대변한 것이다. 우리가 놀라야 할 일은
오히려 수많은 피해집단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WTO에 주도적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 아닐까.
미국의 반세계화 시위대는 미국 정부가 국민의 의사를 대변하지 않고 자유무역이라는 이념 또는
WTO라는 주권에 기반하지 않은 단순한 국제기구의 규범, 나아가 미국 아닌 다른 나라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것에 우려를 표명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고 이런 정치적 저항은 충분한 정당성을 갖고
있다. 세계화는 각국의 정치적 상황에 따라 그 방향을 틀 수 있다는 점에서 세계화의 미래를 장담
하기 어렵다.

참고문헌
Deardorff and Stern(2000), What the Public Should Know about Globalization and the
World Trade Organization, Discussion Paper No. 460, School of Public Policy, The
University of Michigan
Rodriguez and Rodrik(2000), Trade Policy and Economic Growth : A Skeptic's Guide to
the Cross-National Evidence

(200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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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TO를 둘러싼 몇가지 쟁점들


강화된 GATT


세계무역기구(WTO)는 무역장벽 설정에 대한 규범들에 동의한 회원국들로 구성되며 규범의 주요목적은 다른 나라의 이익을 해치는 방식으로 무역정책을 사용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다.

WTO는 기존의 GATT가 강화된 형태이다. 여기서 강화되었다는 것은 분쟁해결메카니즘에서 뚜렷이 드러난다. GATT의 경우 무역분쟁이 발생하고 한 나라가 제소할 경우 전문가 패널에 조사를 의뢰한다. 전문가 패널이 작성한 패널 보고서는 GATT 전회원국의 만장일치가 있을 때에만 발간된다. 이럴 경우 제소를 당한 회원국이 거부하면 패널 보고서는 발간될 수 없다는 점에서 분쟁해결에 있어서 무력한 경우가 많았다.

WTO에서는 거꾸로 WTO 전회원국이 만장일치로 패널 보고서를 거부할 때만 패널 보고서를 발간하지 않는다. 이로 인해 WTO의 분쟁해결메카니즘은 보다 효과적인 것이 되었다.

GATT보다 강화된 또 하나의 특징은 WTO에서 다루는 영역이 넓어졌다는 것이다. GATT에서 다루지 않았던 서비스, 섬유와 의류, 농산물, 지적재산권 등이 WTO에서 다루어진다.


WTO의 승리자와 패배자


WTO의 활동으로부터 피해를 입는 집단은 누구인가. WTO가 국제적 거래를 증가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활동하므로 세계화로부터 피해를 입는 집단이 이에 포함된다. 그런데 WTO가 다른 나라의 이익을 해치는 무역정책을 제한하고 있으므로 추가적으로 무역정책을 수단으로 특정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 측에게도 피해를 준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환경, 인권, 노동과 관련된 문제이다.


환경문제


예를 들어 새우-거북이 분쟁을 생각해보자. 미국 국내법은 멸종위기에 처한 바다거북을 구하기 위해 새우잡이에 종사하는 어부가 거북제거장치(turtle exclusion devices, TEDs) 없는 그물을 사용한 새우의 수입을 금지하고 있다. 그런데 어느 새우가 이런 그물로 잡혔는지를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특정 나라들의 새우 수입을 제한하는 형태로 시행되었다. 이들 수입제한국들은 WTO에 제소하였고 WTO는 “미국이 다른 나라의 이익을 해치는 방식으로 무역정책을 사용하였다”고 판정했다.

환경보호를 위한 미국의 주권적 행위가 WTO에 의해 침해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미국의 환경보호론자들은 WTO가 환경을 파괴하고 있다고 느낄 것이다.

그런데 다른 각도에서 문제를 볼 수 있다. 새우 금수조치는 지구 환경을 보호하고자 하는 미국의 정책으로 인한 비용을 전적으로 새우잡이국에게 부담시키는 것이다. 새우잡이국 어부들에게는 거북의 생존도 중요하지만 어부들의 생존도 중요하다. 미국 환경론자의 거북이에 대한 동정심을 위해 새우잡이국 어부들이 빈곤한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은 어부들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리고 어부들이 거북이를 잡기 위해서 새우를 잡는 것도 아니고 거북제거장치를 구입한 경제적 여유가 없기 때문인 점을 감안하면 환경보호를 위한 비용을 가난한 어부들이 부담한다는 논지는 충분히 이해가 간다. 이런 점에서 WTO의 조치는 환경보호 비용의 부담을 명시적으로 논의할 수 있도록 강제하는 효과를 발휘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실제로 새우잡이국과의 분쟁은 미국의 환경단체가 돈을 들여서 새우잡이국에게 거북제거장치를 제공함으로써 실질적인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인권문제


미국 내에서 인권침해국과의 교역에 대한 반대가 많다. 인권운동가들은 인권침해국과의 무역을 금지하는 것을 통해 인권침해국의 인권개선노력을 끌어내고자 한다. 미국 행정부 역시 자신들에게 위협이 된다고 생각하는 나라들을 인권침해국으로 규정하고 무역을 금지하는 방식의 정책을 종종 취해왔다. WTO의 규범은 이러한 점도 금지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인권운동가들은 WTO를 인권의 적으로 보기도 한다.

중국이 WTO를 가입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어 왔는데 그 이유도 이런 점에서 유추해 볼 수 있다. 미국 내 일부 인권운동가들은 중국의 인권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중국의 WTO 가입을 반대해 왔고 미 행정부 역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인권문제를 거론하면서 WTO 가입을 늦쳐 왔다. 2001년 중국이 WTO에 가입함으로써 이제 더 이상 미국이 중국의 인권문제를 이유로 무역제재를 가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북한의 WTO 가입 문제도 비슷한 상황이다.


노동기준


선진국의 노동조합은 무역과 노동기준(labor standard)을 연계시키길 희망해 왔다. 적절한 노동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나라와의 무역을 금지하자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그런데 노동기준은 도덕적 문제와 경제적 문제를 구별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매우 복잡하다. 노예노동을 사용하거나 아동노동을 착취하는 나라와의 무역을 금지하는 노동기준은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하지만 최저임금의 수준을 근거로 무역을 금지하는 노동기준은 이해하기 어렵다. 작업환경이나 부모의 허락을 받은 아동노동의 사용의 경우 애매모호하다.

개발도상국은 선진국 노동조합에서 주장하는 노동기준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본다. 선진국 노동조합이 자신들의 임금과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그 정도 작업환경과 임금으로도 충분히 노동하고자 하는 노동자의 임금과 일자리를 파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WTO는 노동기준과 무역을 연계하는 것에 반대한다. 높은 수준의 노동기준을 지지하는 이들의 입장에서는 WTO는 착취자이지만 많은 개발도상국 지도자들과 경제학자들은 WTO의 결정에 지지를 보낸다. 


국가주권과 WTO


WTO가 주권을 제약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애초에 WTO의 목적이 주권을 제약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WTO의 전신인 GATT는 각국의 관세율에 대한 주권을 제약하는 협정이었다. 각국은 무역의 이득을 극대화하기 위해 기꺼이 관세주권을 포기한 것이다. WTO가 새삼 문제가 되는 것은 GATT에 비해 더 폭넓은 문제들에 대해 주권 제약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WTO가 요구하는 것은 다른 나라의 이익을 해치는 방식으로 무역정책을 사용하지 못하게 한다는 점에서만 주권을 제약한다. 게다가 WTO의 가입과 탈퇴가 자유롭다는 점에서 WTO의 주권 제약은 한계를 가지고 있다. 주권의 제약이 부담스러운 나라는 탈퇴하면 되기 때문이다.


개발도상국과 WTO


WTO는 개발도상국에게 유익한 측면만 가지고 있는 것일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WTO에서 규정하고 있는 반덤핑관세를 생각해보자. 덤핑이란 지나치게 싼 가격의 수입품을 지칭하는 것이다. 물론 그냥 가격이 싸다고 해서 모두 반덤핑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이 국내에서는 철강 1 톤을 1000달러에 판매하는데 미국에 수출할 때는 500달러에 판매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다른 나라에 파는 가격이 국내판매가격 또는 정상가격에 비해 지나치게 싸게 판매할 때 반덤핑관세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해외에 싸게 파는 이유는 무엇일까? 경제학의 이론에 따르면 수요가 가격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시장에서는 가격을 낮게 매기고 둔감하게 반응하는 시장에서는 가격을 높게 매기는 것이 기업 이윤을 극대화할 수 있는 길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국내가격과 수출가격이 다른 것은 충분한 합리적 근거가 있다. 결국 반덤핑관세를 부과하는 동기는 주로 수입품으로부터 국내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고 이것은 수입국의 수입품 소비자와 수출국의 기업에 피해를 주는 일이다. 자유로운 무역을 추구하는 WTO의 목적에 비추어볼 때 반덤핑관세조항은 저렴한 가격이라는 무기를 활용할 수 있는 개발도상국의 행동을 제약할 수 있다.

또 다른 예는 지적재산권 협정(TRIPs)이다. 지적재산권을 많이 가진 선진국 및 다국적기업은 지적재산권이 여타 나라들에서 잘 보장되길 희망할 것이다. 문제는 지적재산권 협정이 WTO 내에서 논의될 성질의 것인가이다. WTO 협정의 부속협정으로 지적재산권 협정이 존재한다는 것은 지적재산권을 무역정책과 연계시켜 보장하겠다는 것인데 이것은 이 글의 서두에서 밝힌 바와 같이 WTO가 무역정책을 다른 목표와 연계시키는 것을 최소화한다는 원칙과 충돌한다. 노동, 환경,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무역정책과 연계시키는 것을 반대한 것과 비교해 본다면 지적재산권에 대해서는 과도한 무역정책과의 연계가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적재산권 협정이 WTO의 부속협정으로 포함되는 것을 개발도상국에서 동의한 이유 중의 하나는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으로부터의 섬유수입을 규제하기 위해 발동했던 다자간섬유협정(MFA)을 단계적으로 폐지한다는 약속 때문이었다. 지적재산권 협정을 내주고 다자간섬유협정 폐지를 약속받은 것이다. 그런데 현재 개발도상국 일각에서는 지적재산권 협정 대신 얻은 다자간섬유협정의 단계적 폐지의 실익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과 반WTO 운동


선진국의 NGO 입장에서 WTO는, NGO가 추구하는 가치를 실현시키기 위한 강력한 무기인 특정 국가에 대한 무역규제정책의 사용을 제한한다는 점에서 사회진보의 적일 수 있다. 하지만 선진국 NGO의 가치에 동의하지 않거나 가치에 동의하더라도 그 중요성의 정도에 동의하지 않는 개발도상국의 기업, 노동자 및 NGO는 반WTO 운동에 전폭적인 지지를 표명하기 어렵다. 또한 선진국의 대기업의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일부 WTO 협정의 내용이나 투명하지 않은 의사결정절차는 개발도상국의 이익을 침해할 수 있다. 이러한 점들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 없이 무조건 WTO를 반대하거나 또는 반대로 영원히 변화될 수 없는 실체로 인정해 버리는 일은 우리들에게 그다지 도움이 안된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200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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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 경제성장
- 새만금 사업의 계속추진 여부에 대한 경제적 기준을 중심으로

OOO 양의 질문에 감사드립니다. 기대했던 환경문제에 대한 강의가 누락된 점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간락하게나마 새만금 사업에 대한 경제학적 접근방법에 대해 설명드리겠습니다.

경제학에서는 어떤 사업에 대해 이것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평가할 때 비용편익분석(또는 편익비용분석 benefit-cost analysis)이라는 것을 합니다. 비용편익분석이란 사업의 총편익에서 총비용을 뺀 순편익(net benefit)을 계산하는 것으로서 만약 순편익이 양의 값을 가지면 사업을 하는 것을 권하고 음의 값을 가지면 하지 말 것을 권합니다.

이때 총비용의 개념을 잘 생각해야 하는데 총비용 안에는 단순히 사업에 소요되는 비용뿐만 아니라 사업을 함으로써 잃게 되는 것도 포함됩니다. 경제학에서는 이렇게 폭넓게 정의된 비용을 기회비용(opportunity cost)이라고 부릅니다. 새만금사업의 경우 갯벌과 바다를 매립하는데 드는 비용만이 포함되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 갯벌과 바다가 창출하던 가치가 소실되므로 이것의 가치도 비용에 포함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새만금사업의 편익은 매립으로 창출되는 토지 및 담수호의 가치이며 비용은 (매립비용 + 매립으로 사라지는 갯벌과 바다의 가치)가 되는 것입니다. 만약 순편익인 (매립으로 창출된 토지 및 담수호의 가치) - (매립비용 + 매립으로 사라지는 갯벌과 바다의 가치)가 양의 값을 갖는다면 매립을 하는 것이 낫고 음의 값을 갖는다면 안하는 것이 낫습니다.

이것을 다른 각도에서 보면 매립하지 않는 행동의 가치와 매립하는 행동의 가치를 비교하는 것입니다. 매립하지 않는 행동의 가치는 (갯벌과 바다의 가치)이며 매립하는 행동의 가치는 (매립으로 창출된 토지 및 담수호의 가치 - 매립비용)입니다. 둘 중에서 어느 것이 크냐에 따라 결정하면 되는데 이것은 앞에서 설명한 순편익의 값이 양이냐 음이냐의 기준과 동일합니다.

새만금사업의 문제는 이보다 약간 복잡합니다. 이미 사업은 시작되어 수년간 계속해왔고 그 동안 1조원의 돈이 투입되었습니다. 현재 1조원의 돈이 투입된 상황에서 사업을 계속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는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요? 이 경우도 비용편익분석을 사용해야 합니다. 사업을 중단하는 행위의 가치는 (갯벌과 바다의 가치)이고 사업을 계속하는 것의 가치는 (매립으로 창출된 토지 및 담수호의 가치 - (매립비용 - 1조원))이 됩니다. 총매립비용 중에서 1조원이 투입되었고 이로 인해 향후 추가적으로 소요되는 비용이 1조원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중단의 가치와 계속의 가치를 비교하는 식은 결국 (매립으로 창출된 토지 및 담수호의 가치) - (매립비용 - 1조 + 매립으로 사라지는 갯벌과 바다의 가치)가 양이냐 음이냐의 문제가 됩니다. 사업을 시작하기 전의 기준과 1조원의 차이가 생깁니다.

예를 들어 매립으로 창출된 토지 및 담수호의 가치가 10조, 총매립비용이 5조, 매립으로 사라지는 갯벌과 바다의 가치가 5조 5천억이라고 합시다.(이 수치는 전적으로 예를 들기 위해 제가 만들어낸 수치입니다) 이런 사업은 순편익이 -5천억이므로 당연히 추진하면 안되는 사업입니다. 그런데 잘못된 판단과 결정으로 사업이 추진되었고 그동안 1조원의 돈이 지출되었다고 합시다. 그리고 앞으로 4조의 돈을 더 투입하면 매립이 끝난다고 가정합시다. 이 시점에서 국민들이 사업의 재고를 촉구하고 나서서 재평가를 할 때 어떤 기준으로 사업 계속 여부를 판단해야 할까요? 제로베이스에서 계산하여 지금까지 진척된 공사를 무시하고 평가하면 편익은 10조인데 비용은 10조 5천억이므로 해서는 안되는 일이 됩니다. 하지만 이미 1조원만큼의 공사가 진척된 상황에서는 향후 예상되는 편익은 10조인데 향후 추가될 비용은 9조 5천억이므로 사업을 계속하는 것이 낫습니다.

이미 투입하여 회수할 수 없는 금액을 매몰비용(sunk cost)이라고 부르는데 보통 매몰비용은 의사결정에서 제외되어야 한다고 경제학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로또 복권을 구입하는 갑돌이는 지금까지 100만원의 돈을 로또복권 구매에 썼지만 한번도 돈을 번 적이 없었습니다. 이번 주에 로또 복권을 구입할까 말까 고민하는 갑돌이에게 지금까지 지출한 돈 액수는 의사결정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아야 하는 것이 경제원리에 맞는 행동입니다. 1000원의 구매비용과 예상수익 1000원(1/800만분의 확률로 80억원이 당첨되고 7,999,999 / 8,000,000의 확률로 꽝이 되므로 기대값은 1000원입니다)을 비교해서 행동하면 됩니다. 지금까지 쓴 돈이 아까워서 계속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다른 예를 들어봅시다. 고시공부를 하는 을순이는 지금까지 3년을 고시공부에 매달렸지만 계속 낙방을 했습니다. 다시 시험을 쳐야할까 말아야 할까를 고민할 때 3년 동안 공부한 것이 아까워서 계속 공부를 하겠다고 결정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하지만 3년 전에 공부를 시작할 때 판단기준과 3년 후인 지금의 판단기준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미 3년을 공부했으므로 시험에 붙을 확률도 더 높아졌고 향후 공부하는데 드는 비용도 낮아진 것을 감안해야 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지금 고시공부를 시작할까 말까를 고민하는 병철이의 상황보다는 을순이가 훨씬 고시공부를 계속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고시합격의 편익은 병철이나 을순이 모두 똑같지만 고시공부의 비용은 을순이가 더 낮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랫동안 고시공부를 하는 사람이 많은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고시공부를 계속하는 사람이 매몰비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난하는 사람은 오히려 비난하는 자신이 매몰비용을 잘 이해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로또복권의 매몰비용과 고시공부의 매몰비용은 다른 것입니다.

다시 새만금 사업으로 돌아가서 생각해보면 현재 새만금사업의 계속추진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논리는 이렇습니다. 우선 매립으로 사라지는 갯벌과 바다의 가치가 5조 5천억이 아니라 6조 5천억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매립의 편익은 10조이지만 비용은 11조 5천억이었다는 것이고 순편익은 -1조 5천억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업은 시작하지 말았어야할 사업이었다는 것입니다. 지금 1조를 투입한 상태에서 계산해봐도 매립의 편익은 10조이지만 향후 비용은 10조 5천억이 더 든다는 것이고 따라서 지금이라도 당장 그만둬야 한다는 것입니다.

추진을 반대하는 이들은 지금 막지 않으면 향후 더 막기 어려워진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만약 정부가 사업을 계속 추진하여 1조를 더 투입하고 3조원의 추가비용만을 남겨둔 상태가 된다면 그때는 사업을 추진하는 것의 편익은 10조인데 비용은 9조 5천억이 되어 순편익이 양의 값을 갖기 때문입니다. 이 상태에서 사업을 그만두면 전체적으로 손해는 2조인데 비해 계속하면 1조 5천억으로 손해가 줄어들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경제적 기준으로 볼 때 사업을 계속추진하는 것이 더 낫게 됩니다.

일부 극단적인 주장을 펴는 사람들은 사업을 완수했을 때 전체적으로 평가할 때 1조 5천억의 손해를 야기하는 사업이므로 2조를 이미 투입하였다고 해도 계속해서는 안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들은 향후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선례를 남기고 책임자를 문책하기 위해서 사업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제 생각에는 책임자 문책의 문제와 사업 추진 여부의 문제는 다른 것입니다. 사업 추진은 경제성 기준에 따라 결정하더라도 여전히 1조 5천억의 손해는 남아 있으므로 책임자는 당연히 문책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사업의 추진 여부에 대한 경제학적 기준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새만금사업의 계속 추진여부에 대한 쟁점은 이러한 “기준의 문제”보다는 갯벌과 바다, 매립된 토지의 “가치에 대한 견해차”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이에 대해 제 자신이 이에 대한 가치평가의 전문가가 아니므로 얘기하기 곤란합니다. 논란에 대해서는 아래의 링크에 있는 내용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http://jbchbank.co.kr/lecture/sisa/samankm.html


다만 새만금사업단에서 공식적으로 제시한 편익에 대해 몇가지 코멘트를 하고자 합니다. 새만금사업단에서는 쌀 증산, 물부족 해결, 침수방지, 관광지화, 고용창출 다섯가지로 편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쌀 증산의 문제는 WTO 체제 하에서 쌀 값이 계속 하락할 것으로 예상되는 바 사업을 시작할 때의 가치평가가 과대평가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사업추진과정에서 고용창출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편익으로 계산하는 것은 경제학적으로 볼 때 문제가 많은 주장입니다. 사업에 드는 돈을 다른 곳에 투입했을 경우 다른 영역에서 고용창출이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라북도 입장에서는 이 지역의 고용창출이 큰 이득이겠지만 다른 지역 사람들은 비전북 지역에서 창출될 수 있는 고용을 굳이 전라북도에 집중시켜야 할 이유에 대해 납득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침수방지는 새만금사업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관광지화는 해당지역의 문제이지 전국적인 차원에서 크게 중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담수호 건설을 통해 물부족 해결의 문제는 담수호의 가능성 여부가 핵심인데 이전 시화호의 사례가 부정적인 예상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대도시의 하천들이 맑아지는 사례에서 보듯이 환경기술의 역량을 환경단체에서 너무 낮게 평가하는 것 아닌가하는 의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경제성장과 환경의 문제에서 경제학자들은 환경기술의 가능성에 대해 비교적 낙관적인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소득수준이 상승함에 따라 필수재에 대한 수요가 많이 충족되자 삶의 질이나 환경이 주는 영향에 관심이 높아지고 이를 얻는데 비용을 치룰 용의가 있게 됩니다. 이것은 환경관련 기술의 시장을 크게 만들고 시장이 커지면 연구개발의 성공으로 인한 이득도 커지므로 연구자들의 관심이 모이게 됩니다. 이에 따라 환경기술이 발전하게 되면 환경도 살리면서 경제도 성장하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라는 낙관적인 기대를 갖게 됩니다.

‘지속가능한 성장’(sustainable growth)이란 환경문제를 악화시키지 않으면서 이루어지는 경제성장을 의미합니다. 20세기 후반 이후 환경문제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경제학 내에서도 지속가능한 성장에 대한 관심이 커져 왔습니다. 그런데 환경문제는 시장경제에서 쉽게 해결되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특수이익효과(special interest effect)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환경파괴의 이익은 소수에게 집중적으로 돌아가지만 파괴의 피해는 다수에게 넓게 조금씩 돌아갑니다. 한명이 100억의 이득을 환경파괴로 누리고 1000만명에게 200억의 손해가 돌아간다면 1사람당 2000원의 피해가 돌아가게 됩니다. 환경피해를 막고자 노력하는데 혼자서 노력하는 개인적 비용이 100만원이 든다면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나서서 막아주면 좋지만 자신이 나서기는 꺼려할 것입니다. 이에 비해 100억의 이득을 누리는 사람은 1억의 추가비용을 들여서라도 자신의 사업을 추진할 것입니다. 시장경제에서 특수이익효과에 의해 손쉽게 환경파괴가 이루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만약 10만명이 1100원의 자발적인 기부를 한다면 1억 천만원의 돈을 모을 수 있을 것이고 이를 통해 환경파괴 저지에 나설 수 있을 것입니다. 환경운동단체의 활동은 이러한 원리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시장경제 자체는 환경문제가 해결되기 어려운 구조이므로 ‘정치’가 개입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국내 정치만으로 전지구적 환경파괴를 막기는 또 어렵습니다. 국내 환경단체들이 자국 내의 환경파괴에는 자국 정부에 압력을 넣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적극적으로 나서지만 타국의 환경파괴를 막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환경문제에 대한 해결은 현단계에서는 자발성과 헌신성을 필요로하는 윤리적 행위에 의해서 가능한 실정입니다. 경제학자들은 장기적으로 시장경제가 기술발전을 통해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룰 수 있다는 낙관을 갖지만 이들 역시 그 장기가 오기 전에 환경이 어떤 기술로도 회복불가능한 상태에 이른다면 장기적 미래는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를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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