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 부족과 명의 자유주의로부터의 후퇴

몽골제국이 쇠퇴한 것은 은이 부족해지면서 화폐에 의존한 결과 경제가혼란스러워졌기 때문이라는 게 정설입니다. 지금처럼 누구라도 불환지폐(단지 종잇조각에 익숙해져 있으면 은이 부족해도 별일이 없지만, 일반인이 은과의 태환을 그만둘 수 없는 상황인 경우에지폐를 은으로 교환할 수 없다는 것은 제국의 정통성을 뒤흔들어버리고 남을 것입니다.
인류가 금본위제를 폐지 (금과 교환할 수 없는 지폐라도 납득하고 사용할 수 있게 된 것)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시기이며, 마지막 태환지폐였던 달러와금의 교환이 정지된 것은 1971년의 닉슨쇼크때니까 몽골제국은 늦었던 것이 아니라 너무 앞섰기 때문에 멸망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P62

명나라를 건국한 주원장은 은에 의존한 경제정책이야말로 망국의 원흉이라고 판단하여 중국 역사상에서 보기 드문 ‘반 글로벌화‘ 정책을 취합니다(자신 스스로 자유시장 경쟁하에 ‘패배자그룹이 많은 내륙지역에서 온갖 고통을 맛본 경력을 가지고 있으며, 연안지역의 해상세력과 격렬하게 대립하면서 천하를 장악한 경위도 영향을 미쳤다고 봅니다).

이 ‘반 글로벌 정책‘이 바로 이갑제로 이동의 자유를 폐지하고 민중을 고향의 ‘호‘에 묶어두고 취업의 자유도 제한하여 각호마다 생산 물자를국가가 공정하게 세습시켰으며, 징세도 물납방식으로 되돌아갔습니다. 여러 호를 하나로 묶어 거기에 연대책임을 지워 도망을 방지했는가 하면, 지역의 유력자를 이장에 임명하여 질서유지를 담당하게 하였습니다. 더불어 해금정책을 취하여 사무역을 단속하고 해외무역은 조공 형식으로만 허용하였습니다.
- P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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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세 중국 송나라와 1990년대 세계의 동형성

과거가 전면적으로 채용되고, 당나라 때까지 남아있던 귀족에 의한 세습정치가 완전히 폐지된다. 나아가 전시라고 불린 황제 직속으로 시험 감독을 시행하는 최종시험이 설치되어..……… 라는 이야기는 고등학교에서도 배우는 것인데, 이것은 시험합격자에게 황제에 대한 은의를 느끼게 하고, 모든 관료를 황제 개인의 자식과 동일하게 취급하여 중앙집권을 철저하게 하기 위한 방책입니다(宮崎市定, 『科擧』), 바로 이것을 통해 지금까지 관리들 사이에서 사적인 당파를 만들어 자신의 파벌을 유지해온 귀족의 힘을 제거할 수 있었습니다.

더욱이 채용된 관료는 자신의 출신지에는 부임하지 못하고 수년마다 다음 부임지로 순회하는 ‘군현제 하에서 경력을 쌓기 때문에 고향에서 다진 기반으로 황제에게 반란을 일으키거나 하는 염려가 없어졌습니다 - P33

경제적으로도 귀족에 불리한 정책이 도입되었습니다. 송나라의 개혁파 재상이라고 알려진 왕안석의 청묘법 (정부가 농민에게 저리로 융자해주고 변제 때는 수확물을 화폐로 바꾸어서 갚는 것을 의무화한 입법)은 국가융자를 통해 농민에게 화폐사용이 전파되도록 한 정책입니다. 모든 백성들이 전통적인 물납(수확한 작물을 그대로 납입하는 것)이 아니라 농작물을 시장에서 판매하여 국가에 변제하는 것이지요(小島,『中國思想宗敎ⓝ奔流』). 이처럼 청묘법은 일반 서민이 상업에 눈을 뜨고 돈의 의미를 깨닫도록 고안된 것입니다. - P33

이처럼 송나라시대의 중국에서 세계 최초로 황제만을 예외로 둔 채 신분제나 세습제가 철폐된 결과 이동의 자유 · 영업의 자유·직업선택의 자유가 널리 세상으로 퍼져나가게 되었습니다. 과거를 통해 관리 즉, 지배자 층으로상승하는 문호도 개방됩니다. 남성이라면 사실상 거의 누구나 과거 시험을 칠 수 있었기 때문에 (남녀 간의 차별을 별도로 한다면) ‘자유‘와 ‘기회의 평등‘은 이때 이미 거의 달성되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결과의 평등‘ 쪽은 어땠을까요? 물론 그런 것은 보장되지 않습니다. 기회를 평등하게 했기 때문에 그 이후는 자유경쟁만 있을 뿐입니다. 장사능력을 발휘해서 대박이 난 사람, 또는 시험공부에 열심히 몰두해 성과를 거둔 사람만이 막대한 보상을 약속받습니다. 이것이 불가능한 게으름뱅이는 철저하게 사회의 바닥으로 떨어지지요. 무능한 귀족들에 의한 기득권 독점이 배제되고 어디까지나 백성 전체가 성공을 향해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인센티브가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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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와 한 사이 중간제국 파르티아

아우구스투스 이래 140여 년간 로마에서는 파르티아를 공격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 되었다. 로마 제국이 유프라테스강을 동쪽 경계로 삼고 지중해 서쪽으로 팽창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로마는 북아프리카 지중해 연안의 카르타고(Carthago)를 빼앗고, 멀리 유럽의 이베리아반도까지 식민지를 넓혀나갔다. 로마 제국을 누르기에는 역부족임을 안 파르티아도 로마와의 소모전으로 국력을 소진하는 대신 중국을 파트너로 삼아 교류하면서 번영을 누렸다. 중국의 비단을 로마에 팔고 로마의 금·은 주화, 유리, 금 세공품 등을 중국에 팔면서 500년 제국을 유지했다. 중국 역사서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안식국’이 바로 파르티아다. 여기서 ‘안식’은 창건자 아르사케스의 중국식 표기로 보인다. - <인류 본사>, 이희수 - 밀리의 서재
https://millie.page.link/wnnfrK2oTc9gkcpg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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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로스와 헬레니즘의 과대평가

헬레니즘 담론에는 수준 높은 그리스 문화를 미개하고 야만적인 오리엔트에 이식했다는 시각이 기저에 깔려있다. 그것이 문제다. 당시 페르시아는 3,000년 동안 축적된 오리엔트의 단단하고 깊은 문화 위에 자리 잡아 과학·제도·거버넌스·예술·영성 등 어느 하나 그리스를 능가하지 못할 분야가 없었다. 그럼에도 그리스 북쪽 변방의 작은 나라 마케도니아의 젊은 왕이 13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이 광대한 제국을 발 아래 두었다고 해서 이를 두고 헬레니즘의 승리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무리 양보해도 지나쳐 보인다. 그 젊은 왕이 위대한 그리스 문화를 이식하여 오리엔트를 변화시켰다는 주장은 지극히 유럽 중심적인 오만함에서 비롯된 과장일 뿐이다. 오히려 인류 고대사에서 그토록 짧은 시간에 찬란한 문명의 금자탑들을 철저하게 파괴하고 초토화한 사례는 달리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 <인류 본사>, 이희수 - 밀리의 서재
https://millie.page.link/5nUcp8ULT9TBSRhu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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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트버스키 그리고 뇌섬엽

노벨상을 받은 대니얼 카너먼 Daniel Kahneman 교수와 함께 연구했던 아모스 트버스키Amos Tversky 교수는 전자를 ‘시스템 1‘, 후자를
‘시스템 2‘ 라고 명명한 바 있다. 우리 뇌는 최대한 에너지를 아끼려고 노력하는 인지적 구두쇠로서, 별다른 일이 없는 한 에너지 소모가 가장 적은 시스템 1을 통해 정보를 처리하고 의사결정을 하고자 한다. 하지만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시스템 1의 작동만으로는 부족한 위급 상황일 경우에는 에너지 소모를 감수하고라도 시스템 2를 가동시켜야 한다. - P161

시스템 2의 역할을 수행하는 뇌 영역으로는 가장 먼저 전전두피질, 그중에서도 ‘외측 전전두피질(Lateral prefrontal cortex‘을 꼽을 수 있다. ‘중앙 집행 기제 central executive system‘라고도 불리는 이 부위는 주로 복잡하고 정교한 논리적 추론이나 사고를 요구하는 상황에서 높은 활동 수준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자기통제 능력과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반대로 시스템 1의 역할을 수행하는부분은 그 아래쪽에 위치한 복내측 전전두피질이라 할 수 있다. - P161

시스템 1과 시스템 2의 의사결정 모형은 매우 그럴싸하게 들린다. 그러나 의사결정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특징을 설명하기에는 취약한 면이 있다. 과연 시스템 1에서 시스템 2로의 전환은 누가 결정하는가? 여기서 ‘결정을 위한 결정‘이 필요해진다. 다시 말해 시스템 1을 사용하는 결정과 시스템 2를 사용하는 결정 중 무엇을 사용할지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그런데 필수적으로 에너지를 소비해야 하는 시스템 2를 사용하는 모드로 전환하는 결정은 중대한 상황일 경우에만 정당화될 수 있다. 유기체에게 있어 이러한 상황을 알리기에 가장 적합한 후보는 누굴까? 바로 생존과 가장 밀접한 체내 항상성의 붕괴 여부를 제일 먼저, 가장 민감하게 감지할 수 있는 뇌섬엽이다. - P161

지를 소비해야 하는 시스템 2를 사용하는 모드로 전환하는 결정은중대한 상황일 경우에만 정당화될 수 있다. 유기체에게 있어 이러한 상황을 알리기에 가장 적합한 후보는 누굴까? 바로 생존과 가장밀접한 체내 항상성의 붕괴 여부를 제일 먼저, 가장 민감하게 감지할 수 있는 뇌섬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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