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주의자의 은밀한 뇌구조 - 인간의 선량함, 그 지속가능성에 대한 뇌과학자의 질문
김학진 지음 / 갈매나무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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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근세 신분제의 미스테리




말투를 바꾸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출판 미디어가 발전한 중국은 1000년경부터 머리가 좋은 서민들을 수험 경쟁에 열심히 참가시켜서 그 승자를 관료로 선발하는 채용 시스템을 개발했습니다.

 그러나 종이가 귀하고 인쇄기술도 없었던 동시대의 일본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섭정 · 관백을배출하는 것은 대대로 후지와라 가문‘이라는 식으로 통치기관 내부에서 상류계급의 집안끼리 직위를 나누어 가지고, 집안 내에서 후계자를 육성하는 교육시스템에 의존해서 관료를 채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후지와라 씨를 정점으로 하는 대귀족에 의한 관위의 가직화, 가산화가 진행되어 장원제와 물납경제에 입각한 귀족정치는 쇠퇴하기는커녕 두고두고 권세를 자랑합니다. - P43

인접한 중국에서는 근세부터 즉 송나라시대부터 신분제라는 것이 폐지되었습니다. 나아가 에도시대는 잘 알려진 대로 서적 문화나 인쇄출판업이 꽃핀 시대였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 미디어의 측면에서도 송나라에 근접했다고 할까, 과거를 실시하려고 했다면 가능한 환경에 도달한 시대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웃나라에서 600년이전에 없어진 신분제도를 계속 유지하고 있었다는 것은 이상하다고 밖에 할수가 없습니다.

에도시대의 신분제를 ‘당연하다‘고 취급하는 것은 일본인이 중국인의 발끝도 따라가지 못하는 열등민족이기 때문에 그 정도는 당연하다고 하는 ‘자학적‘인 역사인식을 고백하는 것과 동일합니다. 그래도 별로 상관없다고 한다면 그것도 좋습니다만, 그렇지 않다면 왜 근세의 일본인이 이 시기에 이르러 굳이 신분제 사회를 선택한 것일까를 자신의 언어로 설명해야만 합니다(‘새역모‘든 일교조든 과연 몇 명의 선생님들이 설명할 수 있을지 저는걱정입니다). - P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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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근세시스템 대 일본의 근세시스템

이 책의 독자들에게도 오해가 있어서는 곤란하기 때문에 여기서 정리해두고자 합니다만, 중국의 근세 일본의 근세도 각각 완결된 정책 묶음이기 때문에 일괄적으로 그 우위를 논할 수는 없습니다. 각각이 효과를 발휘하는 국면과 폐해를 가져온 국면이 있을 수밖에 없겠죠.
우선 광대한 영역의 시장권에서 자유롭게 상업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중국형의 혈족 네트워크가 정보망으로써도 안전망(만일의 경우 보험으로써도 뛰어납니다). 역으로 동일한 지역의 모두가 협력하면서 농사일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일본식의 가족제도나 촌청제가 기술 축적 면에서 좋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으로 기초학력과 범용성이 높은 종합직generalist 을 발탁하는 데에도 일률적인 필기시험 형태인 중국의 과거제도가 적당합니다. 그러나 그 직에 고유한 특수 기능이나 지역의 실정에 특화된 전문직specialist 을 육성한다면 일본의 가격에 의한 직인훈련이 효과적입니다.

혹은 중앙 주도로 대담한 개혁을 효과적으로 진행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황제 집권이나 군현제가 안성맞춤이지만, 역으로 지역마다의 개별성이나 기존의 질서를 잘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감금 관행이나 봉건제가 더 안심일 것입니다. - P90

문제는 각각의 정책 묶음의 특성과 사회적 필요성이 뒤틀리게 된 경우입니다. 좀더 극단화 시키면, 중일 양국의 특징을 혼합하여 사용하는 ‘혼합체제‘는 결과적으로 시스템의 어딘가에 결함이 발생하는 국면이 급증하기 때문에 가장 위험하다는 생각이 듭니다(이 부분은 제인 제이콥스 Jane Jacobs의『Systems of survival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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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 이데올로기의 힘


버락 오바마의 연설을보면 ˝차별받아온 흑인인 자신이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사실이야말로 미국이라는 나라의 빛나는 전통이며 희망의 증거˝라는 식으로 이야기하지요. 이런 방법을 통해 그냥 내버려두면 자신과 대립할 것 같은(예를 들면, 보수파백인들과 같은 사람들을 그들이 받드는 건국이념에 호소하는 방식으로 자기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실은 ‘소수민족에 의한 다수파 통치‘라는 딜레마를 안고 있던 청나라의 옹정제도 자신을 비판한 한인 유학자를 교화하기 위해 작성한 『대의각미록大義覺迷錄』(1729)에서 오바마와 똑같은 일을 했습니다. 옹정제는 이 책을 통해 주류인 한민족 사람들이 제시한 이념은 전 세계에 통용되는 보편적인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올바르게 터득한 사람이라면 천자의 자리에 올라도 좋으며, ‘오랑캐‘가 황제가 되는 것은 중화제국의 수치가 아니라 오히려 진보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어필했습니다.

이처럼 상대가 믿고 있는 이념의 보편성을 우선 인정하고, 그렇다면 ‘외부에서 온 우리들에게도 자격이 있다‘는 형태로 권력의 정통성을 만들어내는 방식이 송나라에서 과거제도와 주자학 이데올로기가 탄생한 이후 그 나라 왕권의 핵심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근세중국의 사회제도는 세계의 누구든 사용자가 될 수 있는 극히 범용성이 높은 시스템으로 설계되었으며, 중국인들은 이것을 ‘국가적 자긍심‘으로 삼아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도 ‘일본에서만 사용하는 것을 자랑하는 안이한 사고‘ 방식과는 많이 다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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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의 범람과 청의 송 자유주의로의 복귀




그런데 명나라 중국은 왜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자유시장을 규제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까요? 앞에서 논한 것처럼 부족이 원나라 쇠퇴를 가져왔던 역사에서 배웠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은만 충분했더라면 무리하지 않아도 될 일입니다. 은이 필요하다. 뭘 하든 은이 필요하다, 은만 있으면 송 · 원나라시대의 자유사회로 돌아갈 수 있다. 그렇게 염원하고 있던 차에 정말로 은이 출현합니다. 어디에서냐 하면, 하나는 이와미 등 일본의 은 광산이고 다른 하나는 포토시 은광산(현재의 볼리비아, 1545년 개발)을 시작으로 한 라틴아메리카의 유럽 식민지입니다.

이렇게 하여 일본에서 전국시대로 불리는 16세기는 실은 전 세계적인 전국난세가 됩니다. 중국에서는 전통적인 왜구 마피아 외에 모피와 조선인삼의 교역로를 장악한 만주 마피아(이후의 청나라), 동남아시아의 은유통로에 입각한 대만 마피아와 이슬람 마피아, 새로운 참가자인 남만마피아(유럽인)가 움직였으며, 유럽에서는 이 비등하는 화폐욕구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와 결부되어 예를 들면 면죄부 판매나 금욕주의에 대한시비를 둘러싸고 기독교가 분열하여 가톨릭대 프로테스탄트의 유혈 낭자한 종교전쟁이 발생합니다.

마피아, 마피아라고 집요하게 쓰고 있습니다만 이것은 원래 명나라가 사회주의 정권처럼 자유경제를 억압했기 때문에 마피아처럼 할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로, 마피아이기 때문에 야만이라든가 구식이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오히려 오랫동안 ‘오랑캐‘로 멸시받던 만주족에서 천자를 낸 청이란 왕조는 송나라 이후 중국사회의 변화를 집대성한 하나의 극점이라고 해야 할 문명입니다.

청나라는 경제정책에서도 송나라 이후의 노선에 극히 충실하여 인두세를 완전히 포기하고, 민중의 소재를 치밀하게 파악하는 것을 그만두었으며, 화폐유통의 관리(예를 들면 은과 동전의 교환비율 설정이나 지역통화적인 지폐의 발행)도 민간에게 완전히 맡기는 등 정부가 사회를 위해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는 궁극의 자유방임 정책을 취하였습니다. 그 결과 명나라의 통제경제에서 급변하여 사회에 활기가 돌아오고 미증유의 호경기가 발생하였습니다.

이것은 정말로 세계에서 최초로 신분이나 직업을 자유화한 중화문명의 긍정적 측면입니다. 한편 이것과 표리일체의 부정적 측면으로는 국가가 부의 재분배기능을 포기했기 때문에 (현재의 중국과 동일하게) 시장경쟁의 승자와 패자 사이에 절대적인 격차가 발생했다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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