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민은행 이야기 - 착한 자본주의를 실현하다
데이비드 본스타인 지음, 김병순 옮김 / 갈라파고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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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의 크기와 부

(재무차관) 무히드는 마을 사람들이 하는 일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러나 한 가지 의문이 그를 끈질기게 괴롭혔다. 이들이 파는 물건과 서비스를 누가 살까?

무히드가 소매상 여인에게 물었다. "누가 당신에게 물건을 사나요?" "누구나 살 수 있어요. 그러나 대개는 다른 회원들이 사요." 여인이대답했다.

무히드는 잠시 멈추었다가 과장된 몸짓으로 자신의 손을 탁자 위에 펼치며 천천히 말했다. "그 사람들은 서로서로 물건을 팔아주었어요. 그리고 그때 알았어요. 이것이 바로 애덤 스미스가 말한 것이었구나. 그들은 부를 창조하면서 동시에 그 부를 위한 시장도 창조한 겁니다. 그리고그 사건이 내가 그라민은행을 다시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뒤 나는 한 번도 그라민은행의 철학이 건강한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지 않았어요." - P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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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본스타인 지음, 김병순 옮김 / 갈라파고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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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민 은행에 대한 이념적 비판

그들에게 그라민은행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알량한 빵 부스러기나 던져주는 반혁명적 사업이었다. 그들은 대출이 농촌 마을사람들을 소자본가로 만들고 농사 품값을 올렸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땅 없는 사람들이 단결해 반기를 들 수 있는 기회를 파괴하는 극심한 경쟁 환경을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어떤 경우든 은행 대출만으로는 소용이 없었다.

한편 여러 개발구호단체는 한가지만 잘해서는 안 되고 동시에 여러 가지를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방글라데시에는 종합적인 농촌 개발이 필요하다고 믿었다. 

또한 이들은 은행이 해봐야 얼마나 큰 역할을 할 수 있겠느냐고 회의했다. 

그리고 그라민은행의 성공을 한 사람의 능력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유누스는 동시에 수백 곳에 있을 수 없기 때문에 대규모 복제는불가능한 일이었고, 소규모사업으로는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올 수 없었다. 

그러나 어쨌든 그것이 성장한다 해도 마을 사람들은 대출금을 갚지못할 것이다. 또 시장은 그렇게 많은 생산자와 소상인을 수용할 수 없기 때문에 사업 기회를 제공하지 못할 것이다. 물론 그 이전에 사업 확장을위한 기금이 바닥날 게 뻔했다.

다카대학의 경제학 교수인 나스린 쿤드케르가 말했다. "그라민은행은 급진주의자들이 만족할 정도로 근본적이지 않아요. 그리고 보수주의자들이 좋아할 만큼 보수적이지도 않지요. 중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 P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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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본스타인 지음, 김병순 옮김 / 갈라파고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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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1980년 로마에 본부를 둔 유엔 산하 구호단체 국제농업개발기금(IFAID)은 농업 관련 사업과 신용 프로그램에 싼 이자로 기금을 제공하기위해 방글라데시에 사업 확인 사절단을 보냈다. 그 사절단이 찾을 수 있는 모든 사업을 확인한 뒤에도 아직 수백만 달러의 기금이 남아 있었다. - P162

사절단은 340만 달러를 지원할 수 있었는데, 그 금액을 방글라데시은행에 빌려주고 그것을 다시 그라민은행 사업에 3퍼센트의 낮은 이자로 빌려주기로 했다. 방글라데시 은행은 본디 사업연계기금의 경우 6퍼센트의 이자로 빌려주게 되어 있었다. 유누스는 두 지역에 추가로 이 사업을 확대하는 계획안을 만들었다. 한 곳은 방글라데시 북쪽의 랑푸르였고다른 한 곳은 남쪽의 파투아칼리였다. 유누스는 지점을 100개로 늘릴 계획이었다. - P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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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적 난관과 대안

가난하지만 서로 생활수준이 다른 사람들이 함께 모임을 만들었고 거기서 더 가난한 사람들은 무시를 당했다. 또 한 가족이 같은 모임 회원으로 가입하는 일을 허용했다. 자연히 그들은 자기들끼리만 혜택을 나눠가졌다. 최악의 경우 어떤 센터에서는 가장 가난한 사람들(강물 범람으로모든 것을 잃고 정부 소유의 배에서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완전히 무시되고 있었다. 사람들이 그들은 그냥 정처 없이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이에요. 우리는 그들을 책임질 수 없어요. 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유누스가 기억을 더듬었다. 그들이 돈을 빌린 다음 도망을 가버리면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에 유누스가 답했다. "이곳에 정착하고 싶도록 여건을 만들면 그들은 이곳에 남을 겁니다." - P154

유누스의 직원들 사이에도 다른 문제가 있었다. 합리적 결정이었다고 생각했는데 결국에는 생각지 못한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그랬다. 그 가운데 하나가 지점 직원을 지역 주민 가운데서 뽑은 것이었다. 주바이룰호쿠에가 설명했다. "우리는 그 지역에 사는 사람을 직원으로 뽑으면 일이 더 잘 풀릴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그 직원을 친구처럼 생각했기 때문에 그 직원은 너무 많은 압력을 받았어요." 특히 여자직원들은 자기 마을에서 전문가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냥 누구네 딸, 여동생, 아내일 뿐이고 마을 사람들은 그들을 이용하려고만 했다. 결국 유누스는 멀리 떨어진 지역 출신의 여자 직원을 지점에 배치했다. 그러나 누르자처럼 가족의 만류를 뿌리치고 먼 곳까지 일하러 올 여성들은 많지 않았다. - P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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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의 시대

익명의 낯선 사람과 만났는데, 이 익숙지 않은 상황에서 사람들은 낯선 이들과 어떻게 지내야 했을까요? 대충, 공자는 과거의 관습에서 만들어진 예, 예수는 사랑, 부처는 자비, 그런 걸 말한 것 같네요. 한 가족처럼 살던 씨족공동체 구성원들끼리는 굳이 거창한 사회 윤리나 정치 규범이 필요 없었는데, 낯선 사람과 조우하게 된 시대에는 정말 제대로 된 사회 윤리, 정치 규범이 필요해진 것입니다. - <묵자 : 공자를 딛고 일어선 천민 사상가>, 임건순 지음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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