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문명 붕괴를 기뻐하라



왜 ‘붕괴‘를 개탄해야 하는가? 붕괴가 그려내는 상황이 보통 억압적이고 연약한 복합체인 국가가 더 작고 탈중심화된 파편들로 분해되는 것이라면, 국가의 붕괴를 한탄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국가의 붕괴를개탄하는 단순하면서도 전적으로 피상적인 이유 하나는, 고대 문명들에 관한 자료를 모아 정리해야 하는 사명을 띤 모든 학자와 전문가가필요로 하는 가공되지 않은 1차 자료들이 국가의 붕괴 탓에 사라지기때문이다. 국가의 붕괴로 고고학자들에게 중요한 발굴 장소도 줄어들고, 역사학자들에게 중요한 기록과 문헌도 줄어들며, 박물관 전시실을채울 크고 작은 장신구들도 줄어드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 이집트 고왕국, 기원전 제3천년기 중반의 우루크에 대한 멋지고 유익한 자료들은 많지만, 그 뒤에 이어지는 그리스 ‘암흑기‘, 이집트 ‘제1중간기‘, 아카드제국 아래에서 진행된 우루크 쇠락기 자료들은 찾아봐야 헛수고다. 

그러나 이 ‘텅 빈 시기들이 짧으나마 수많은 국민이 자유를 만끽한시기이며 인류 복지가 개선된 시기였다는 강력한 주장이 있다. - P266

인구 집단의 안녕을 궁정이나 국가 중심의 권력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초기 국가의 국민이 세금, 징병, 전염병, 압제를 피하기 위해 농경과 도시 중심을 모두 버리고 떠난 경우는 드물지 않다. 

한 가지 관점에서 보자면, 그들은 채집이나 목축과 같이 더 기초적인 형태의 생계 방식으로 퇴보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더 폭넓다고 생각하는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그들은 부역과 세금을 면했고, 전염병을 피했고, 억압적 구속에서 벗어나 더 큰 자유와 물리적 이동성을 확보했고, 어쩌면 전쟁터에서의 죽음을 모면한 것이었다. 이와 같은 경우에 국가를 버리고 떠난 일은 해방으로 경험되었을 것이다. 

물론 이 관점이 국가 밖에서의 삶이 다른 종류의 위험과 폭력으로 특징지어지는 경우도 많음을 부정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도시 중심을 포기하는 것 그 자체가 폭력과 만행으로 몰락하는 일이라고 상정할 확실한 근거는 전혀 없음을 주장하려는 것이다. - P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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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기
- 1000천년의 메소포타미아 전원화
- 400년의 그리스 암흑기



정착생활이나 정착생활에 완전히 의존하는 국가 건설 모두 한 번에 이루어진 성과는 아니었다. 커다란 인구 집단이 사라져버리고 정착생활 자체가 그 이전 정착생활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축소된 길고 긴 시기들이 있었다. 대략 기원전 1800년에서 700년까지 -1000년이 넘는 동안-메소포타미아의 정착지들은 그 이전의 4분의 1도 되지않았고, 도시 정착지들은 그 이전의 16분의 1에 지나지 않았다. 그에 따른 결과는 그 일대 전체에 끼칠 정도였고, 그래서 그 결과를 가혹한 통치자라든가, 지역적 전쟁, 특별한 흉작 같은 순전히 국지적인 우발 사건들하고만 결부시킬 수는 없다.  - P244

완전하게 합의된 의견이 없는 것 같지만, 우르 제3왕조의 몰락 이후 1000년이 넘는 동안 메소포타미아에서는 도시화보다는 전원화ruralization 가 지배적이었으며, 이는 대체로 갑작스러운 유목민의 침입때문이라고 하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 P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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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보다 더 재미있는 최진기의 전쟁사 2 - 근세부터 현대까지 세계사보다 더 재미있는 최진기의 전쟁사 2
최진기 지음 / 이지퍼블리싱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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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가하라, 고니시, 가토

1600년, 결국 이시다 미쓰나리와 도쿠가와 이에야스 사이에 전쟁이 일어납니다. 이 전쟁이 바로 그 유명한 세키가하라 전투*(1600, 일본 역사에서 도쿠가와 가의 패권이 확립된 전투)입니다. 오사카 성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언덕에서 일본군 30만 명이 격돌하는 일본 최대 전투가 벌어집니다. 이시다 미쓰나리를 따르는 사람들이 서군이고,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따르는 사람들이 동군이죠. - <세계사보다 더 재미있는 최진기의 전쟁사 2>, 최진기 지음 - 밀리의 서재
https://millie.page.link/psF9K5rRZYMmfbZT8

이시다 미쓰나리에겐 여러 결점이 있었고,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충신으로 꼽히던 가토 기요마사와 사이가 나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점이 악수로 작용합니다.
이시다 미쓰나리와 대립했던 가토 기요마사는 도쿠가와 이에야스 편을 듭니다. 이것은 나중에 서군의 패전 원인 중 하나가 됩니다. 그리고 한편으로 가토 기요마사와 사이가 나빴던 고니시 유키나가는 당연히 이시다 미쓰나리 편에 섭니다. - <세계사보다 더 재미있는 최진기의 전쟁사 2>, 최진기 지음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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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 4월 13일 부산에 도착한 일본군은 1군부터 10군까지 군대를 나눠서 진격합니다. 1군은 고니시 유키나가(1558~1600, 가토 기요마사와 함께 선봉을 맡아 한양에 제일 먼저 입성한 무장)가 이끌고, 2군은 가토 기요마사(1562~1611, 일본 센고쿠 시대와 에도 시대에 걸쳐 활동한 무장)가 이끌고 올라오죠. - <세계사보다 더 재미있는 최진기의 전쟁사 2>, 최진기 지음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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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순천에서부터 울산까지 23개의 성을 쌓고 버팁니다. 하지만 전세는 점점 더 조명 연합군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결국 일본군이 지키고 있던 울산성 마저 포위되고 맙니다.
일본군이 농성전을 펼치던 23개의 성 가운데 순천에는 고니시 유키나가, 울산에는 가토 기요마사가 있었습니다. 이 두 사람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최측근으로 서로 라이벌 관계였습니다. 특히 가토 기요마사는 상인 출신에 크리스찬인 고니시 유키나가를 아주 싫어했습니다. - <세계사보다 더 재미있는 최진기의 전쟁사 2>, 최진기 지음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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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보다 더 재미있는 최진기의 전쟁사 2 - 근세부터 현대까지 세계사보다 더 재미있는 최진기의 전쟁사 2
최진기 지음 / 이지퍼블리싱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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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년과 정유년 사이 6년의 소강상태

임진왜란은 크게 1592~1593년에 한 번, 1597년 정유년에 또 한 번 그리고 1599년에 일어난 싸움을 거쳐 총 세 번의 싸움으로 기록됩니다. 1597년은 정유년에 있던 전투를 의미하고, 1598년은 도망을 가다가 발생한 전투를 말합니다. 나머지는 전부 소강상태였어요. 1593년부터 1597년까지는 전투가 거의 없습니다. - <세계사보다 더 재미있는 최진기의 전쟁사 2>, 최진기 지음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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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은 벽제관 전투에서 이긴 후 한양을 비우고 부산 쪽으로 내려와요. 그래서 일본 본진은 부산에 자리잡게 됩니다. 명나라 본진은 평양에 있고, 일본의 본진은 부산에 있으니 아이러니한 상황입니다. 본진이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데 무슨 전쟁이 벌어지겠습니까? 그래서 6년 동안 전투가 없었죠. 그동안 농민들은 모내기하며 농사짓고 살았습니다 - <세계사보다 더 재미있는 최진기의 전쟁사 2>, 최진기 지음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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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보다 더 재미있는 최진기의 전쟁사 2 - 근세부터 현대까지 세계사보다 더 재미있는 최진기의 전쟁사 2
최진기 지음 / 이지퍼블리싱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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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의 3대 대첩은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 3대 대첩은 각각 이순신 장군의 한산도 대첩(1592), 진주 목사 김시민의 진주성 전투(1592), 권율 장군의 행주 대첩(1593)이죠. - <세계사보다 더 재미있는 최진기의 전쟁사 2>, 최진기 지음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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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일본은 우리와 달리 일반적으로 벽제관 전투(1593), 칠천량 해전(1597), 울산성 전투(1597)를 임진왜란의 3대 전투로 꼽습니다. - <세계사보다 더 재미있는 최진기의 전쟁사 2>, 최진기 지음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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