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아메리카 민중의 감수성을 조작해 그들이 박해받은 과정을 잊고 미국 자본이 가져다준 발전에만 주목하게 한 일의 또 다른 포인트는 사람들의 기억을 조작한 것이다. 사회의 집단기억 조작은 20세기 통치 기술의 거대한 진전이었다. 20세기 이전에는 아무리 사납고 잔인한 폭군도 사람들의 기억을 조작하는 능력까지는 갖지 못했다. 그런데 20세기에 들어와 새로운 전체주의 정권이 그것을 완성했고, 사실상 감각과 기억을 통제한 그 기술 체계야말로 전체주의를 전체주의로 만든 관건이었다.

통치자가 국가의 힘으로 공동의 경험과 기억을 지움으로써 분명히 일어났던 사건을 모두가 잊게 되었다. 남들이 다 잊었기 때문에 아직 기억하는 사람들까지 덩달아 자신의 기억을 의심하게 되었다. - <이야기를 위한 삶>, 양자오 저/김택규 역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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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오늘 밖에 나갔다 갑자기 발을 헛디뎌 구덩이에 빠지는 바람에 머리가 깨져 피가 철철 났다면 “나는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이런 일을 당한 거지!”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독교 신학의 시각에서 보면 안타깝게도 그는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 왜냐하면 그는 인간이고 그의 선조가 하느님에게 거역해 쫓겨나는 바람에 죄인의 운명을 타고났기 때문이다. 따라서 살다가 어떤 일을 당해도 결코 무고한 게 아니다 - <이야기를 위한 삶>, 양자오 저/김택규 역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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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예수가 세상에 내려와 길을 가다 바위에 깔렸는데 그것을 눈치 챈 사람도 구해 주는 사람도 없어 고통 속에 죽었다면, 그것도 죄 없이 수난당한 것이지만 어떻게 의미가 같다고 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보면 예수가 수난당한 것의 포인트는 ‘민중과 민중의 해방을 위해 죄 없이 수난당한’ 데 있지 그저 ‘죄 없이 수난당한’ 데 있지 않다.

해방신학의 이론적 출발점은 예수가 죄 없이 수난당한 일을 ‘역사화’한 것이다. - <이야기를 위한 삶>, 양자오 저/김택규 역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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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전의 신앙은 예수가 죄 없이 수난당한 것에 집중하는 동시에 예수를 믿는 사람은 미래에 구원을 얻어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음을 강조했다. 그리고 예수의 부활을 어떤 증명의 수단으로 간주하면서 예수가 정말로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사람들이 믿게 했다. 인류의 경험에서 인간의 힘으로 넘어설 수 없는 절대적 경험은 바로 죽음이며, 예수는 부활을 통해 자신과 다른 사람들이 결코 같지 않음을 증명했다. 그렇다면 더 이야기할 게 뭐가 있겠는가? 부활은 예수가 확실히 하느님이 보낸 존재라는 것을 증명했다 - <이야기를 위한 삶>, 양자오 저/김택규 역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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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신학의 새로운 서술에 따르면 예수의 부활은 세상에 대한 그의 사랑과 아쉬움을 선명하게 드러낸 데에 의의가 있다. 예수는 다른 방식으로, 예컨대 하늘을 날거나 큰불로 성을 불태우는 식으로 자신의 초월적인 정체성을 증명하는 대신 자신을 불의하게 대하고 못 박아 죽인 이 세상에서 부활하는 쪽을 택했다. 이것은 과연 무엇 때문일까? 예수는 분명 이 세상에서 대단히 굴욕적인 대우를 받았는데! 그는 충분히 이 세상에 돌아오지 않는 쪽을 택할 수도 있었다. 이 세상은 그가 결코 재림하고 싶지 않은 곳이 돼야 마땅했다. 그는 하느님의 아들인데도 여기에서 오해받고 고통받고 수치스러운 방식으로 도둑 사이에서 못 박혀 죽었다. 따라서 이 세상을 사무치게 증오할 수도 있었다.

예수의 부활은 그의 박애를 보여 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세상에서 그가 해방을 추구했음을 보여 준다. 그 해방은 머나먼 하느님 나라의 행복보다 인간의 나라에서 행하는 실천과 관련이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가 이 세상에서 부활할 이유가 없었다 - <이야기를 위한 삶>, 양자오 저/김택규 역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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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인간이 진정으로 돌아가야 할 곳은 눈앞에 있는 인간의 나라가 아니라 하느님의 나라라고 설명했다. 하느님의 나라와 비교하면 인간의 나라는 부차적이고 공허하고 속되고 타락한 곳이며, 인간의 나라에서 벗어나야만 비로소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해방신학은 하느님의 나라에 대한 환멸에서 비롯된 새로운 사유였다. 그러한 사유 방향의 대전환은 당연히 흐루쇼프의 스탈린 체제 비판으로 소련의 기존 이미지가 와해된 것과 관련이 있었다. 해방신학의 핵심 의의는 가톨릭 신앙의 기본 가치를 새로 쓴 데 있었으며, 해방신학이 동원한 주요 수단은 예수그리스도의 이야기를 고쳐 쓰고 다시 쓴 것이었다. - <이야기를 위한 삶>, 양자오 저/김택규 역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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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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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國立大學의 발족과 軌를 같이 하여 수많은 私立大學이 창건되거나 개편되어 새로운 발족을보게 되었다. 그리하여 戰時下와 休戰直後, 즉金長官의 在任期間은高等敎育의국:952--1954년간 樂한歷史 前無後한 이례적 膨脹을 거듭하는 시기로 부각되었다.  - P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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