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껴쓰기로 연습하는 글쓰기 책
명로진 지음 / 퍼플카우콘텐츠그룹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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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의 감을 잡기위해 함께한  <베껴쓰기로 연습하는 글쓰기 책 - 명로진>

 

 

 

 After Reading

 

 

  많은 사람들이 글쓰기의 전략으로 '필사 (베껴쓰기)'를 말한다. 필사는 작가의 멋진 문장들을, 단순히 표면적으로가 아니라 글 속에 빠져드는 것처럼 느낄 수 있게 한다고. 띄어쓰기 하나 하나, 따옴표와 문장부호까지 하나하나 천천히 써내려가다보면, 그냥 독서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으로 글을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전에 나도 글쓰기에 관심이 많아서 어떤 책 한 권을 베껴쓰기로 다짐했었다. 꾸준함과 집중력이 중요했다. 그래서인지 부족한 나는 책 한 권을 무사히 끝내쓸 수 없었다. '해야 되는데.' 하는 의무로 만들어버리니, 자꾸 미루고, '내일 두배로 쓰면 되지.' 하는 합리화까지 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읽지 않은 책을 따라쓰려는 과감한 시도에서 나온 처참한 실패였던 것 같다.

 


 

 

 

  그 필사를 그만두고선, 뭔가 제대로 바로잡아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글쓰기 책과 함께 조금씩 써보기로 했다. 책 속에는 베껴쓰기 교본 30편과 함께 '좋은 글을 쓰는 방법'이 나와 있다. 저자가 생각하는 '좋은 글'이 되려면 어떻게 써야 하는지 알려주면서 그 글에 맞는 책들의 발췌문을 베껴쓰기 교본으로 소개한다. 다방면으로 유능하고, 글쓰기 강사로서 이름을 떨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명로진의 글을 접한적이 없기에, 처음에는 '과연-'이라는 생각이 없지않았다. 그러나, 베껴쓰기 교본 중간에 조심스럽게 끼워넣은 '명로진'의 글은 놀라웠다. 실제로 페이지를 넘기기 전에 '이 글을 도대체 누가 쓴거야?' 하고 생각했는데, 저자의 이름이 있었다. 정말로, 글이 좋아서 그 전업작가들의 글들 중에서도 유독 기억에 남았다.

 

  그런데 글쓰기 팁을 읽으면서, '좋은 글', '잘쓴 글'이라는 것이 참으로 애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이나 '잘'이라는 단어만큼 주관적인 것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솔직하게 말하면 '내가 생각하는 좋은 글'과 저자의 '좋은 글'에 차이가 있는 부분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나에게 필요한, 약점을 보완할 만한 팁을 골라 적용하였다. 꽤 많은 도움이 되었다. '내가 쓴 글이 정말로 답답하게 읽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하면서.

 

 
 

 

 

   한 달 넘게 이 책을 가지고 글을 따라 써보았다. 첫 한달은 역시 꾸준히 쓰지 못하고, 띄엄띄엄, 날짜의 텀이 길지만, 이번 달엔 목표량 만큼 따라갈 수 있었다. 그러다보니 이제, 조금은 '베껴쓰는' 감은 생긴 것 같다. 습관처럼 쓸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달까. 아직은 그냥 '쓰는' 것은 두렵지만, 좀 더 꾸준한 필사로, 멋진 글을 쓸 수있게 되리라는 꿈을 가져도 좋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오늘부턴 예전에 읽었던 책(기억이 가물가물한)에 표시해놓은 것들을 써볼 예정이다.

 

(글쓰기의 팁과, 무난하게 필사의 감을 익히고자 하는 사람에게 추천한다. 글은 소설 뿐만 아니라 다양한 것들이 있어서, 어떠한 분야에 확고하게 마음을 다잡은 사람이라면 조금 지루할 수도 있을듯. 간혹, 반말로 가르치는 듯한 저자의 거침없는 말투에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지만, 난 볼만했다.)

 

 

 Underline

 

 

   - "글이 애인보다는 확실히 말을 잘 듣는다. 글을 쓰면 좋은 점은 또 있다. 글은 내가 쓰고 싶을 때 언제든지 쓸 수 있다. 집에서나 출퇴근할 때나 회사에서나, (팀장 눈치를 봐야 하지만) 글은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 글은 나를 위로해준다. 글은 투정하지 않는다. 아, 그리고 글은 술 마시고 꼬장 부리지 않는다." (중략) 글의 과거 모습은 반성이다. 글을 쓰는 것이 친구와 말로 수다를 떠는 것보다 훨씬 낫다. 말로 하면 아무리 진지하고 진실한 것이라 해도 다 날아간다. 말은 시간에 예속된다. 공간에 구속된다. 말을 하는 그 순간에만 빛난다. 말을 듣는 그 장소에서만 이해된다. 따라서 말로 아무리 떠들어 봐야, 우리 뇌가 기억하는 용량은 제한적이다. (45p)

 

 

  - 우리가 카페에 앉아 이야기 할 때는, 이 얘기 했다, 저 얘기 했다 해도 된다. 그때의 이야기는 목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친목을 도모하기 위한 수다라 해도, 일관성 없는 구성은 상대방에게 배척을 받는다. 아리스토텔레서는 <시학>에서 말했다. "가장 나쁜 플롯은 에피소드 플롯이다" 이야기에는 구성이 있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가장 좋은 구성이 아니라, 가장 구린 구성에 대해 강조했다. 이 '에피소드 플롯' 이라는 거다. (159p)

 

 

  - "글을 지을 때는 반드시 생경하고 궁벽한 병통을 없애야만 한다. 글을 평이하게 펼쳐서 온건하고 순순하게 하기를 힘써야 문체가 절로 좋아지는 법이다. 또 특히나 처음과 끝을 상세히 점검해서 글의 귀결이 주제의 맥락을 잃지 않도록 해야만 한다. 네가 쓴 시권을 보니 생경하고 난삽하다 (정민 <아버지의 편지>에서 인용)" 너무 꾸미려 하면 본질이 보이지 않는다. 생경하고 난삽하면 주제의 맥락에서 벗어나게 된다.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게 쓰려면 글이 단순하고 강직해야 한다. (167p)

 

 

  -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우리가 쓰는 글이 소설이 아니지 않느냐?" 소설이 아니어도, 소설처럼 써야 한다. 우리가 쓰는 글이 그저 혼자 읽고 말 것이 아니기에 그렇다. 그게 아니라면 우리는 글을 쓸 이유가 없다. 재미도 없고 슬프지도 않고, 웃기지도 않은 글을 왜 읽어야 하냔 말이다. 글은 이어진 사슬과 같다. 천 개의 고리로 된 사슬이 있다 치자. 천 개의 고리 중 한 개라도 끊어진다면 사슬 전체를 못 쓴다. 하나의 산문은 천 개의 고리다. 천 개의 고리 중 하나가 허술하면 전체가 무너진다. 하나의 꼭지는 단단히 이어져 있어야 한다. 하나의 문단, 그리고 하나의 문장 역시 단단히 이어져 있어야 한다. (207p)

 

 

  - 바로 이것이다. 시작 - 중간 - 결말이 매끄럽게 이어지려면, 앞의 사건과 뒤의 사건이 서로 '개연적인' 또는 '필연적인' 인과 관계로 연결돼야 한다. 일어날 법한 일이나 반드시 일어나야 하는 사건으로 연결될 수 없는 일들은 있어선 안 된다. 뒤에서 받쳐 줄 단어가 없다면 앞의 단어도 없는 것이다. 스파이크를 때리려면 토스를 해주어야 한다. 슛을 넣으려면 패스를 해주어야 한다. 물고기를 잡으려면 밑밥을 뿌려야 한다. 우리는? 밑밥도 뿌리지 않고 낚싯대만 드리운다. 단 한 번 패스로 골을 넣으려 한다. 리시브도 하지 않고 네트 위로 점프한다. (214p)

 

Add...

 

 

이젠 본격적으로 -

(아 그리고, 이 책의 베껴쓰기 교본을 통해 좋은 책 목록을 얻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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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은 책상이다
페터 빅셀 지음, 이용숙 옮김 / 예담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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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의 아웃사이더를 향한 서글픈 시선 <책상은 책상이다 - 페터 빅셀>

 

 

After Reading

 

 

   '언어는 사회적 약속에 근거한, 일종의 계약이다.'

 

  책상이 책상이라고 불려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들은 왜 이 땅에서 한국어를 쓰고 있으며, 왜 우리들의 책상과 그들의 책상은 다르게 불려지는 걸까.

파고들어가면 한도 끝도 없는 언어학에 관련된 이야기지만, 누구나 알고 있는 당연한 사실을 빌려서 이야기하자면 '언어는 사회적 계약'으로써의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사회 안에서, 그리고 그 속의 관계 속에서 언어는 형성된다. 만약에 한 사회의 언어를 파괴하려고 시도한다면 어떻게 될까?

 

  <책상은 책상이다> 속 같은 이름의 단편은 이러한 언어의 특징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있다. 소설의 주인공은 모두가 책상이라고 부르는 책상을, 왜 책상이라고 불러야하는지, 의자, 침대, 사진을 왜 정해진대로만 불러야 하는지 의아해졌다. 그리고 그 규칙을 파괴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그는 이제부터 침대를 '사진'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그리고 다른 사물들에 대하여 자신만의 이름을 붙인다. 그 결과는 어떨까. 새롭다. 자신만의 언어가 생겼다. 누구와도 말할 수 없다. 그는 고립되었다.

 

  이 이야기는 굉장히 낯익다. 중학생인 동생은 이미 교과서를 통해 최근에 읽었다고 한다. 나도 왠지 읽은 듯한 느낌이 드는 걸 보니 학교에서 언젠가 읽어본 모양이다. 사실 이 이야기를 읽을 때는, 우스꽝스러운 주인공의 모습이 재밌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끝은, 무섭다. 왠지 슬프기도 하다. 작가는 이 짧은 이야기 속의 아웃사이더에게 경고를 주는 동시에, 서글픈 시선을 던진다.

 

  낯익은 단편 말고도 100페이지 안팎의 얇고 작은 책 한 권에는 여섯 편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이야기 속 주인공들은 무언가 기막힌 행동들을 하는, 어째 불쌍해보이기까지 하는 사회의 소외되고 고립된 사람들이다. 이 책의 독일어 원제인 kindergeschichten은 '아이들 이야기'라는 뜻이다. 짤막한 이야기 속 특별한 주인공들은 아이들의 관심을 일으킬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은 알고보면 이야기 속의 숨겨진 의미를 깨우칠 수 있는 '어른들을 위한' 이야기이다.

 

  페터 빅셀은 이 책 이외에도 다른 작품들 속에서 사회 안에서 소외된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점점, 개인주의가 팽배해지는 이 시대에 한번쯤을 돌아볼만한 작가인 것 같다.

 

 

Underline

 

 

 

  - 그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면 몇 날, 몇 주, 몇 달, 몇 해가 지난 뒤에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지금 그가 책상 앞에서 일어나 길을 떠나기만 한다면 훗날 책상의 반대쪽으로 다시 돌아올 수가 있을 것이다. 그건 사실이다. 그리고 누구나 그 사실을 알고 있다. (11p, 지구는 둥글다)

 

 

  - 어느새 그는 이 새로운 언어로 가끔 꿈을 꾸곤 했다. 그리고 학교 다닐 때 배운 노래들을 자기 언어로 바꾸어 그 노래들을 작은 소리로 혼자 불러보기도 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이처럼 자기 언어로 번역을 하는 일이 힘들어졌다. 옛날에 쓰던 언어를 거의 잊어버렸기 때문에 파란 공책에서 원래의 단어를 찾아보아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해야 하는 상황이 두려워졌다. 사람들이 이 물건을 뭐라고 부르는지 한참 생각해 봐야만 했기 때문이다. (중략) 그래서 남자는 다른 사람들의 얘기를 듣고 있으면 도저히 웃음을 참을 수 없을 정도가 되고 말았다. (31p, 책상은 책상이다)

 

 

  - 그는 집에 돌아가 이제 오로지 자기 자신을 위해서 발명을 계속했다. 그는 종이를 가져다가 '자동차'라고 써놓고, 몇 주일씩 몇 달씩 계산을 하고 도면을 그려 다시 자동차를 발명했다. 그런 다음 그는 에스컬레이터를 발명하고 전화를 발명하고 냉장고를 발명했다. 도시에 나가서 보고 온 모든 것을 그는 다시 한 번 발명했다. 그리고 매번 한 가지 발명을 마치고 나면 그 설계도를 갈기갈기 찢어 내던지며 말했다. "이건 벌써 세상에 나와 있어." (62p, 발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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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6펜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8
서머셋 몸 지음, 송무 옮김 / 민음사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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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이 빛나는 달의 세계, 차갑고 단단한 6펜스의 세계 <달과 6펜스 - 서머싯 몸>

 

 

 

After Reading

 

 

 

   영혼이 빛나는 달의 세계, 차갑고 단단한 6펜스의 세계.

 

  이 두 세계 중, 당신은 어느 쪽을 선택하겠는가? 여기 온몸을 다 바쳐서 달의 세계로 들어가고자 한 남자가 있다. 찰스 스트릭랜드, 그는 어느 순간 현실의 모든 것을 버린 채 홀연히 잠적한다. 가족들과 안정된 직업을 버리고 떠난 이유는 여자, 돈, 또는 상상하는 어떤 문제도 아니었다.

 

  부인의 메신저 역할을 다하기 위해 스트릭랜드에게 접근한 화자에 의해서 그 비밀은 밝혀진다. 스트릭랜드의 꿈은 바로, '그림'이었다. 증권 브로커 스트릭랜드가 갑자기 그림에 빠져들게 된 계기는 밝혀지지 않는다. 그가 평생 '그림'이라는 또 다른 꿈을 꾸고 살아왔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그에게 그림은 그 순간 꼭 따라야만 하는 '삶의 숙명'이 되어버렸다. 그의 그림에 대한 확신과 갑자기 불타오른 예술혼은 너무나 갑작스러워서 마치 '악마에 홀린 것처럼' 보인다. 그림을 통해서 얻게되는 명성도, 돈도 중요하지 않다. 그저 그릴 수 있는 그 자체를 꿈꿀 뿐이다. 그러나 그의 그림은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한다. 역사 속 화가들의 그림이 사후에 재평가되었던 것처럼, 시대를 앞선 스트릭랜드의 그림도 오로지 소설 속 화자와 '스트로브'에 의해서만 인정될 뿐이다. 그런데도 그는그린다. 계속해서.

 

  반복되는 일상이 늘어갈수록, 삶이 각박해질수록 이상을 꿈꾸는 사람들은 많아진다. 그러나 그 이상을 바로 쫓아갈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많을까. 대부분은 포기하거나 중간점을 찾아 위안하기 마련이다. 자신의 등에 짊어진 '의무'때문이다. 스트릭랜드는 그 의무를 모두 저버리고 자신의 열망만을 좇았다. 그런 그에게 화자인 '나'는 '보편적인 도덕법칙'까지 들먹이면서 일반적인 행동원칙을 말해주고자 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이미 보통사람과는 다른 특별한 경우의 사람으로 정의한다. '나는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누구나 나처럼은 행동하지 않을 거라고.' 그 후로 보이는 그의 행동들은 역시 '미치광이'라는 말이 딱 어울릴 정도로 도덕에 어긋나고, 이기적이며, 뻔뻔스러운 것들이다. 그는 사람으로써 지탄받아야 마땅할 사람이다. 그러나 예술인으로서, 진정한 창조정신을 발휘한 빛나는 사람이었다.

 

  작가 서머셋 몸은 실제 화가인 고갱의 삶을 '스트릭랜드'에 투영하여 소설을 그려냈다. 물론 스트릭랜드의 삶에 상상력이 배로 더해져 극적으로 표현되었다. 그러나 둘의 삶은 비슷한 면이 있다. 고갱이 타히티 섬에서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것처럼, 스트릭랜드 또한 타히티 섬에서 마지막을 보낸다. 간혹 그의 이상을 좇은 삶이 비극적으로 마무리 되었다고 얘기되긴 하지만, 나는 그 삶이 실패한 삶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의 마지막은, 자신을 회피하지 않는 사람들 속에서, 새로운 공간 안에서, 그리고 따뜻한 보살핌 안에서 삶의 끝까지 예술적인 혼을 불태울 수 있었던 행복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예술인에 대한 특별하고 낭만적인 시선이 포함된 생각이다.) 소설 속 가장 전율이 흐르는 장면은 역시 그의 그림 앞에서다. 소설 속, 그림 앞에 서 있는 인물들의 경외스런 감정은, 책 너머에서 바라보는 나 마저도 느껴질 정도로 넘치고 넘쳐흘러서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다.

 

  예전에 이 책에 대해서 잘 모를 때에는 어이없게도, 이 책이 '모험'을 하는 책이라고 생각했었다.

글쎄, 상상했던 모험과는 다르지만 어쨌든 달의 세계로의 모험이기는 하다. 물론 그 모험자는 '모험'이라고 생각하지 않을진 몰라도.

 

 

 

Underline

 

 

 

  - "나는 그려야 해요." "승산없는 도박을 하자는 것입니까?" 그러자 그는 나를 쳐다보았다. 두 눈에 야릇한 빛을 띠고 있어 나는 어쩐지 불안했다. "나이가 몇이오? 스물셋?" 그 질문은 엉뚱하게 느껴졌다. 내 나이쯤이면 모험을 할 수 있겠다고 하겠지만 그는 벌써 청년기를 넘기고 버젓한 사회적 지위를 지닌 증권 중개업자이며, 아내와 두 아이까지 거느린 사람이다. 내게라면 자연스러운 선택일지 모르지만 그에게는 터무니없는 길이 아니겠는가. 나는 어디까지나 공평한 입장에 서고 싶었다.  (중략)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 그리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단 말이요. 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을 잘 치고 못 치고가 문제겠소? 우선 헤어나오는 게 중요하지. 그렇지 않으면 빠져죽어요." 그의 목소리에는 진실한 열정이 담겨 있었다. 나도 모르게 감명을 받았다. 그의 마음속에서 들끓고 있는 어떤 격렬한 힘이 내게도 전해 오는 것 같았다. 매우 강렬하고 압도적인 어떤 힘이, 말하자면 저항을 무력하게 하면서 꼼짝할 수 없도록 그를 사로잡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해할 수 없었다. 정말이지 그는 악마에게라도 사로잡혀 잇는 것 같았다. 악마가 느닷없이 달려들어 그를 갈가리 찢어놓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천연덕스러웠다. (69p)

 

 

  - 그의 영혼 깊숙한 곳에 어떤 창조의 본능 같은 것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았다. 그 창조 본능은 그 동안 삶의 여러 정황 때문에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마치 암이 생체 조직 속에서 자라듯 걷잡을 수 없이 자라나서 마침내 존재 모두를 정복하여 급기야는 어쩔 수 없는 행동으로까지 몰아간 것이 아니었을까. 뻐꾸기는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는데 새끼가 부화하면 다른 새의 새끼들을 둥지에서 밀어내고 마침내는 그들을 보호해 준 둥지마저 부수어버린다고 하지 않던가. 하지만 창조본능이 하필이면 이 우둔한 증권 중개인을 사로잡아 파멸시키고, 그를 의지해 사는 사람들마저 불행에 빠뜨린다는 건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하기야 권력 있고 부유한 인간들의 혼을 끈질기게 쫓아다니다 마침내 그들을 성령으로 굴복시켜 사로잡음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세상의 안락과 여인의 사랑을 버리고 수도원의 고통스러운 금욕적 삶을 선택하게 만드는 신의 뜻보다야 더 기묘할 건 없다. 삶의 전환은 여러 모양을 취할 수 있고, 여러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어떤 이들에게는 그것이 성난 격류로 돌을 산산조각내는 대격변처럼 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또 어떤 이들에게는 그것이 마치 방울방울 끊임없이 떨어지는 물방울에 돌이 닳듯이 천천히 올 수도 있다. 스트릭랜드의 경우는 그 전환이 광신자에게처럼 단숨에, 사도들에게처럼 광포하게 왔다고나 할까. (75p)

 

 

  - 내가 그에게 이런 말을 했던 것을 기억한다. "이것 보세요. 모두가 선생님처럼 행동한다면 세상이 어찌 되겠습니까?" "어리석은 소리를 하는군. 나처럼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을 줄 아오? 세상 사람 대부분은 그냥 평범하게 살면서도 전혀 불만이 없어요." 한번은 이렇게 비꼬아보기도 했다. "아무래도 이런 격언을 믿지 않으시는 군요. '그대의 모든 행동이 보편적인 법칙에 맞을 수 있도록 행동하라'는 격언 말입니다." "들어본 적도 없거니와 돼먹지 않은 헛소리요." "칸트가 한 말인데요." "누가 말했든, 헛소리는 헛소리요." (77p)

 

 

  - 스트릭랜드는 그때까지 자신을 얽매어왔던 굴레를 과감히 깨뜨려버렸던 것이다. 자기 자신이 아닌, 뭐랄까, 전혀 생각지 못했던 힘으로 넘치는 새로운 혼을 발견했던 것이다. 강렬하고 특이한 개성을 대담하고 단순하게 묘사한 것만은 아니었다. 살결은 열정에 가득한 어떤 관능, 불가해한 어떤 것을 품고 있는 관능으로 채색되어 잇었는데, 그렇다고 채색에 그치는 것만은 아니었다. 중량감, 그러니까 육체의 무게를 뚜렷하게 느끼게 해주는 그런 중량감에 그치는 것만도 아니었다. 거기에는 어떤 영적인 것이, 혼을 어지럽히는 전혀 새로운 어떤 영성이 깃들어 있어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상상을 이끌어 가면서, 영원한 별들만이 빛나는 어둡고 텅 빈 우주를 - 벌거벗은 영혼이 두려움에 떨면서 새로운 신비를 찾아 모험의 여정을 나선 그런 우주를 - 암시하는 것만 같았다. (191p)

 

 

  - 뭐라 형용할 수 없이 기이하고 신비로웠다. 그는 숨이 막혔다. 이해할 수도, 분석할 수도 없는 감정이 그를 가득 채웠다. 창세의 순간을 목격할 때 느낄 법한 기쁨과 외경을 느꼈다고 할까. 무섭고도 관능적이고 열정적인 것, 그러면서 또한 공포스러운 어떤 것, 그를 두렵게 만드는 어떤 것이 거기에 있었다. 그것은 감추어진 자연의 심연을 파헤치고 들어가, 아름답고도 무서운 비밀을 보고 만 사람의 작품이었다. 그것은 사람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신성한 것을 알아버린 이의 작품이었다. 거기에는 원시적인 무엇, 무서운 어떤 것이 있었다. 인간 세계의 것이 아니었다. 악마의 마법이 어렴풋이 연상되었다. 그것은 아름답고도 음란했다. (293p) 

 

 

 Add...

 

 

서머셋 몸은 소설을 쓸 때 어떠한 것보다도 '재미'를 우선시한다고.

그래서 그런지 고전 치고는 꽤 술술 읽혔던 듯 하다. 다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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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뫼비우스 그림 / 열린책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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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천외한 몽상 속으로 들어가볼까요 <나무 - 베르나르 베르베르> 

 

 

 After Reading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기발한 몽상가다.

 

  대부분의 생각이 많은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많은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뽑아낸다. '상상력'이라는 단어로 대표되는 (최근엔 상상력 사전을 내기도 했으니...) 작가 베르베르도 평소에 수많은 생각들과 몽상을 하지 않을까? 역시 실제로 베르베르는 산책할 때의 관찰, 친구들과 나누는 이야기 이외에도 자신이 꾸는 '꿈'에게서 영감을 받아 단편소설을 구상한다고 한다. 꿈은 현실에서 가장 동떨어진 이야기를 만들어내기도 해서 가끔은 허황되기도 하고 허무하기도 한 경험이다. 그러나 꿈은 현실에서 경험하지 못할 과감하고 스릴 넘치는 상황으로 꿈의 주인공을 넘나들게 하기도 한다. <나무>의 단편소설들을 하나하나 읽는 느낌은, 왠지 꿈을 꾸는 느낌이다. 소설은 허황되고 몽롱한 느낌과 함께, 때로는 스펙타클한 상황마저 선사한다.

 

  당신은 상상해본 적이 있는가? 피부가 투명인 사람, 말하는 기계들, 의사를 표현하는 식물, 노인들을 경멸하는 사회, 17이상의 숫자를 세지 못하는 나라들을.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의 과학 상상대회가 열리면 한번쯤은 상상해보았던 소재들이다. 그만큼 굉장히 단순한 소재들로 보일 수도 있는데 이런 소재들을 가지고 소설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그 소재들을 실감나게 표현할 상상력과 배경에 대한 표현이 관건이라고 생각한다. 베르베르는 지금까지 수많은 장편 소설들에서 뽐내왔던 자신만의 상상력을 통해 독자들을 매혹하기 시작한다.

 

 책을 펴는 순간, 나는 베르나르의 기상천외한 몽상 속으로 탁, 하고 빠져들어 간다.

만약 그것이 실제 꾸는 꿈이라면 꿈을 깨는 동시에 한 순간에 잊혀져 버리는 이야기가 될 것이고, 군데군데 기억 속에서만 남아있을 것이다.. 하지만 베르베르는 역시나 노련하게도 그 꿈과 같은 이야기들에 비판적인 메세지를 남긴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너무나 생생하게 남아서, 언젠가 미래에 이루어질 수 있을 듯한, 그의 상상력이 현실로 될 듯한 느낌이 든다. 베르베르의 책들 중에서는 특별한 상상이 끊임없이 길어지는 장편 소설이 그 재미가 각별하지만, 짤막하고 기발한 꿈 같은 단편도 그 나름대로 매력이 있다.

 

 

 Underline

 

 

 

  - 그들은 내 모습에서 그들 자신의 이면을 보았을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 인간이 순전한 정신적 존재가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살덩이이자 갖가지 빛깔의 기관들 속으로 이상한 액체들을 순환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활동하는 장기들의 집합체이기도 하다는 것을 상기했으리라. 말하자면 나는 살가죽을 한두 꺼풀 벗기고 보면 우리 인간의 모습이 진정 어떠한지를 그들에게 일깨워 준 셈이다. 내 모습은 하나의 진실이지만, 아무도 그것을 정면으로 바라볼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57p, 투명 피부)

 

 

  - '우리가 이런 처지에 놓일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어......' 그러자 한 노파가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세상이 어쩌다 이렇게 된거죠? 우리는 우리 부모님들에게 그런 식으로 행동한 적이 없는데......' 프레드가 노파의 말을 잘랐다. '추억을 자꾸 되새기는 일은 그만두기로 합시다. 한탄과 하소연도 부질없습니다. 이제 현재 속에서 살기로 합시다. 젊음을 숭배하는 시대 조류에 우리 자식들이 세뇌되었다는 것은 여러분도 잘 아실 겁니다. 우리 자녀들은 육체의 아름다움에 너무 집착합니다. 몸무게를 줄이고 주름살을 없애는 것을 하나의 신앙 행위처럼 여기고 체조나 조깅을 신성한 의무로 생각합니다. 그렇게 몸을 가꾸고 젊음을 유지하는 데에만 몰두한 나머지 그들은 바보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를 제거함으로써 자신들의 젊음이 영원히 유지될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그건 참으로 큰 착각이죠' (87p, 황혼의 반란)

 

 

  - 오늘 아침에 나는 이런 일을 상상했다. 사회학자, 수학자, 역사학자, 생물학자, 철학자, 정치가, 과학 소설 작가, 천문학자 등 지식의 모든 지평에서 온 남녀들이 외부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벗어난 장소에 함께 모여 <미래를 내다보는 사람들의 클럽>을 결성한다. 그 전문가들은 갖가지 주제를 놓고 토론을 벌이면서 자기들의 지식과 직관을 결합할 것이고 그것을 바탕으로 나무 모양의 도표를 만들어 갈 것이다. 미래에 지구와 인류와 인류의 의식에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을 표시한 수형도를 말이다. 그들의 의견은 서로 다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때로는 그들의 생각이 틀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 역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누가 옳으냐 그르냐가 아니라, 인류의 미래에 대한 모든 전망을 도덕적 판단에 매이지 않고 축적해 나가는 것이다. 그렇게 축적된 전망들은 우리가 미래에 일어나리라고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시나리오의 데이터 뱅크가 될 것이다. (129p, 가능성의 나무)

 

 

  - 그는 줄곧 그런 생각에 시달리고 있었다. 모든 것이 이미 자기 안에 있다...... 인간은 아무것도 배우지 않는다. 자기 안에 감춰져 있던 진리를 자기 자신에게 드러낼 뿐이다. 그렇다면 갓난아기도 이미 위대한 현자일 수 있을까? 어머니 뱃속의 아기가 백과사전의 방대한 지식을 가질 수 있을까? (164p, 완전한 은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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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너무 쉬운 사진 - 사진전문기자가 알려주는 ‘보여주고 싶은’ 사진 찍기
유창우 지음 / 위즈덤스타일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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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작법만 공부하다 지친 당신, 다시 카메라를 꺼내라 <내겐 너무 쉬운 사진 - 유창우>

 

 

 

 

 After Reading

 

 

 

  조작법만 공부하다 지친 당신, 다시 카메라를 꺼내라!

 

  요즘엔 매일 가지고 다니는 핸드폰에도 당연히 카메라가 장착되어 있고, 예전에는 전문적인 일이라고 생각했던 '사진'이 취미로 확대되가면서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도 많아진 것 같아요. 사진을 찍다보면, 특히나 전문적인 멋진 사진들을 보면 '나도 사진을 잘 찍고 싶다'하는 생각들이 한번쯤은 떠올라요. 저같은 경우에는 여행을 하다가 카메라의 한계를 많이 느끼다보니까 이번에 카메라를 바꾸게 되었는데요. 물론 '사진을 잘 찍는 데에는 장비보다 기술'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치만 기술이 느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지만 정말 부담스럽죠. 아예 전문적으로 사진사가 되고 싶다면 '사진학개론' 같은 정석서부터 파고들겠지만, 추억을 더욱 아름답게 남기기 위한 일반 사람들의 바람을 맞추기 위해서 그 어려운 '사진학개론'을 읽기란... 참 벅찬 일입니다.

 

  그렇다고 아예 무조건 계속 찍는다해서 멋진 사진이 나올까는 장담을 못하는데. 그럴땐 전문가들의 팁이 정말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누구나 쉽게 적용할 수 있는, 그러나 필살기처럼 강력한 팁을 모은 책이 <내겐 너무 쉬운 사진>입니다. 전직 사진전문기자였던 저자가 알려주는 상황에 따른 사진찍기 팁은.. 글쎄요, 처음엔 식상할 줄 알았지만 생각보다 획기적인 이야기들이 많았습니다.

 

 역시나 사진 관련 책이기에 사진과 함께 보여드리자면,

 

 

 

 

많은 사람들이 카메라를 처음으로 사게 되는 이유, 뭘까요? 바로, 아기의 모습을 찍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이 책에 나오는 팁 중 하나는 '아기의 작은 모습을 강조하는 것!'. 소품과 배경, 그리고 부모님의 큰 몸과 함께했을 때 도드라지는 작은 생명체의 모습이

얼마나 귀엽고 경이롭게 보일까요. 그리고 아기의 성장과정을 찍어놓는 건 너무나, 뿌듯하고 보람된 일일것 같아요.

 

 

 

 

 

 

그리고, 색다른 가족 사진을 찍는 법. 저자의 아버지께서 장난스럽게 거울 앞에서 찍은 가족사진이라고 합니다.

사진관에서 웅장한 배경 앞, 진지하게 찍은 가족사진보다도 더 행복하고 단란해보이는 가족사진이에요.

 

 

  이 밖에도 비가 올때, 계절에 따라, 친구들과 함께, 인물을 찍을 때, 일출을 찍을 때와 같은 상황별 사진찍기 팁들이 많이 들어있는 책. 감각있는 사진을 찍기 위해서 신경쓰는 사소한 차이가 멋진 사진을 결정한다고 하는데요. 이 책의 가장 좋은 의도는 생활 속 사진을 멋지게 담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마음 속 부담을 없애준다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아주 대단한 사진은 아니더라도, 문득 꺼내든 사진에 행복감과 뿌듯함을 함께 느낄 수 있도록 -

 

 '이 책을 덮을 무렵엔, 누구나 일단 카메라부터 꺼내 셔터를 무작정 눌러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짧고, 찍을 건 아직도 너무나 많으니까.'

 

 

 

 Underline

 

 

 

  - 휴식을 기록한다는 건, 이래저래 의미심장하다. 빽빽한 빌딩숲에서 매일 허덕이며 일상을 보내는 도시 사람은 외롭고 늘 목이 마르다. 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하루하루는 전쟁이다. 회사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두들기다가 자정을 맞곤 하는 사람들. 그런 우리에게 휴식은 곧 갈망이고 그리움이고 집착할 수밖에 없는 대상이다. 카페에 앉아 잠시 차 한 잔을 두고 멍하니 생각에 잠길 수 있는 여유조차 사치일 때가 많은 사람들. 그래서 사람들은 그런 순간이 찾아오면 휴대전화 카메라라도 꺼내드나보다. 모처럼 찾아온 망중한, 그 짧고도 그윽한 시간을 오래 기억하고 싶을 테니까. 그 마음을 이해하고 나서야 나 역시 카페에서 카메라를 꺼내들게 됐다. 커피도 잘 안 마시고 이런 사진을 찍어 블로그에 올리는 데에는 더더욱 취미가 없는 나란 사람이지만, 사람들이 이런 사진을 자꾸 찍고 싶어하고 또 어떻게 하면 더 예쁘게 찍을까 고민하는 것이 곧 잔을 통해 일상의 쉼표를 발견하기 위함임을 알게 된 이상, 나 역시 그런 순간을 한 번쯤 경험해보고 싶었다. (77p)

 

 

  - 흔히들 우연히 얻은 결과를 두고 '소 뒷걸음치다 쥐 잡았다'고 한다. 성과를 얕잡아 볼 때 쓰는 말이다. 하지만 사진 찍을 땐 '소 뒷걸음치는'능력도 사실 참 중요하다. 사진이라는 게 결국은 알고 보면 모두 우연과 필연이 부딪쳐 생기는 창작물이니 말이다. 특히 여행지에선 '소 뒷걸음'없이는 재미있는 사진을 건지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난 여행을 떠날 때만큼은 '소 뒷걸음질해서라도 좋은 사진을 많이 찍게 해달라'고 속으로 빌곤 한다. (100p)

 

 

  - 시를 읽고 쓰고 싶은 마음을 '시심'이라고 한다면 사진을 찍고 싶은 마음은 농담 삼아 '사심'이라고 불러도 될까. 희한하게 연말 또는 연초가 되면 사람들의 '사심'이 유난히 강해지는 모양이다. 그리고 태양은 바로 이 사심을 자극하는 가장 강력한 촉매제다. 해는 날마다 지고 뜬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특별한 순간이 다가오면 떠오르는 해를 보며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곤 한다. 아무래도 그 "말갛게 씻은 애띤 얼굴"을 보고 있으면 잊고 있던 희망이 다시 가슴 속에서 조용히 움트는 게 느껴지기 때문인가보다. 매일 가라앉지만 다시 솟아오르는 존재. 늘 우리보다 더 빠르게 머리 위로 뜨는 빛. 해는 그래서 매일 반복되는 일상, 그 중심에 있음에도 사람을 새삼 각성시키고 또 고양한다. 아직도 많은 사람이 일출 사진을 찍고 싶어 한다는 건, 그만큼 여전히 우리에겐 삶을 흔들어 깨워줄 자양강장제가 필요하다는 반증일지도 모르겠다. (111p)

 

 

  - 가령 매일 지나치는 출근길에 카메라를 들고 나가보면 늘 똑같던 아침이 자못 특별해지는 걸 느낄 게다. 담벼락과 골목, 그냥 지나치던 동네가게 간판, 집 앞에 놓인 자전거, 돌담에 누군가 그려놓은 귀여운 낙서까지. 늘 보던 것이라고 무심히 넘겼던 것이 새삼스레 세밀하게 보인다. 그저 그런 일상의 순간이 낯설게 다가온다. 카메라의 힘은 이런 것이다. 손에 쥐는 순간 갑자기 관찰력이 생기고 데면데면하게 지나쳤던 사물이나 사람도 사진이라는 관점에서 다시 보게 되는 것 말이다. 그 묘미를 알면 사진이 재밌어진다. 즐거워진다. 낯선 곳에서 허둥지둥할 때보다 더 좋은 사진을 건질 수 있다. (228p)

 

 

 Add...

 

 

 

음식 사진을 잘찍는 방법에 대해서도 나와있다 :)

나에게 가장 필요한 정본데?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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