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관상 1~2 세트 - 전2권 - 관상의 神 역학 시리즈
백금남 지음 / 도서출판 책방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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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이치를 깨달았지만 세상은 변하게 할 수 없었다 <관상 - 백금남>

 

 

 

 

After Reading

 

 

 

 

   영화로 나와 흥행하고 있는 <관상>의 소설을 처음 접하게 되었을 때, 소설을 토대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알고보니 시나리오와 소설이 비슷한 시점에서 제작되어 영화 개봉일에 맞추어 동시에 나온 것이었습니다. 원래 소설과 영화가 함께 있는 경우에는 전 소설을 먼저 읽는 것을 좋아합니다. 영화를 보고 소설을 보면 자꾸 영화의 이미지와 장면이 떠올라서, 시간의 제약이 있는 영화라는 매체에서 상영되지 않은 부분은 자세히 읽지 않게 되기 때문이지요. 어쨌든 다행인지 아닌지, 요즘 난리인 영화 <관상>을 아직 보지 못한 채, 이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영화를 접하지 못했기 때문에 자세한 비교는 불가능하지만, 이 서평에서는 여기저기 듣고 본 영화의 내용을 가지고 이야기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영화 속에서 '관상쟁이'의 삶을 통해서, 조선의 피튀기는 권력 다툼과 역사적 결과를 주로 다뤘다면, 소설 속에서는 '관상'이란 것에 보다 더욱 깊숙이 접근하는 듯 보입니다. 주인공인 '내경'의 아버지인 '지겸' 그리고 그의 스승인 '천수', 그리고 다시 주인공의 스승이 되는 아버지의 친구 '상학' 까지. 소설 <관상>의 대부분은 그들의 이야기와 관상쟁이의 피를 타고난 주인공 '내경'이 사람의 얼굴을 진정으로 통찰하게 되는 이야기를 많은 부분 다루게 됩니다. 사람의 운명을 결정짓는 '관상'은 약간 허무맹랑하게 들릴 정도로 신기하고 굉장히 넓은 영역에 퍼져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오장육부의 기운이 모이는 얼굴을 보는 기본적인 '관상'은 많은 것을 결정하는 '찰색(피부색)과 함께 다루게 되고, 그밖에도 뼈를 보는 '골상'이 있으며 심지어는 생식기를 통해 관상을 보기도 하는데 거의 경악할 정도였지요. 이렇게 많은 부분을 통해 사람의 운명을 판단할 수 있다니!

 

  길고 긴 수련으로 얻어내는 특별한 능력인 '관상'이 소설 2권에서는 실제 역사적 사건과 (물론 약간의 픽션이 가미된 역사 팩션입니다) 만나게 됩니다. 사람들의 운명을 보는 눈, 조선의 운명이 어떤 손에 달려있는지를 알 수 있는 눈을 가진 관상쟁이는 그의 능력으로 하여금 역사를 짊어지게 될 인물들과 마주하게 되는데요. 그들의 욕망을 채워주기 위해 관상쟁이 '내경'은 많은 인물들에게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하게 되는데, 그 일을 통해 그는 곧 알게 됩니다. 곧 조선에 피바람이 닥쳐올 것이라는 것을. 그리하여 자신의 복수심이 불타 '흔적없이 살으라던' 스승의 말을 어기게 될 것이라는 것을.

 

  "그날의 삶과 오늘의 삶이 무엇이 다르랴... 우리 모두가 세상의 정원사가 되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작가가 후기에 남겼던 한 줄이, 너무나 가슴에 와닿습니다. 미래의 성패를 알고 싶은 욕망은 현재나 역사 속에나, 누구에게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알고 있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누구에게나 자신의 삶을 올바로 비추어야 할 거울을 지녀야함을 소설은, 그리고 영화는 알려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굴곡져 있는 세상 속에, 더욱더 구부러질 세상을 바라보고만 있을 수 없던 관상쟁이의 삶이 너무나 고독하고 안쓰러워지는 소설 <관상>. 세상의 이치를 깨달았지만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없었던 그의 이야기는 그 멀리 우주의 존재를 파악하는 거창한 의미의 '관상' 그리고 무언가는 세상을 정확하게 판단하고 바꿀 수 있는 확실한 잣대가 아님을 알려주는 것 같습니다. 언제나 현실은 그보다 더 가혹하니까요.

 

 

 

Underline

 

 

 

 

   - 세상의 모든 모습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새들이 집을 옮기는 걸 보면 큰 비가 올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럼 큰 비가 왔다. 개미가 싸우면 전쟁이 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얼마 안 있어 국경 근방에 적들이 출몰해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아버지가 언젠가 너는 커서 이 아비처럼 상쟁이가 될 것이라고 하더니 선천적으로 천기와 지기를 살피는 재주를 타고난 것인지도 몰랐다. 가끔 아버지 꿈을 꾸었다. 달 밝은 밤. 숫돌에 칼을 갈고 있었다. 시퍼렇게 눈을 치뜨고 칼을 갈고 있었다. 다가가보면 달빛 속에 앉아 칼을 갈고 있는 사람은 내경 자신이었다. (1권, 120p)

 

 

  - "이 세상은 하나의 거대한 바둑판이다. 관상쟁이는 언제나 불쌍한 사람을 가엾게 여겨 둘 두 점을 주는 사람이다. 그리하여 한 점을 가져오는 사람이야. 이기려 하지 말거라. 언제나 져야 한다. 장자는 말했다. 배를 타고 건너가다가 빈 배가 와서 부딪치면 아무리 성격이 나쁜 자라도 화를 내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이 있다면 피하라고 소리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저주를 퍼붓는 사람도 있다. 모든 것은 그 배에 누군가 있다는 상대성으로부터 일어나는 것이다. 그렇다 상대적 생각을 가지고 대하니 미워하고 대립하고 죽고 죽이고 하는 것이다. 먼저 세상의 강을 건너가려면 너의 배부터 비워야 한다. (...) 세상의 상을 살피며 흔적 없이 살아라. 구함은 잃음의 시작인 법. 그 법을 모른다면 진정한 너를 만날 수는 없을 것이다. '누구요?'하고 물어도 너는 너를 대답할 수 없다. 언제나 너에게 '누구요?'하고 물어라. 바로 그것이 상대에게 누구냐고 묻는 거와 같다. 관상쟁이가 세상을 향해 돌 두점을 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주지 않고는 결코 너의 상도 타인의 상도 열 수가 없다. (1권, 309p)"

 

 

  - 세상의 조복으로 이루어지는 길? 그것이 무상이다? 내경은 비로소 만물의 상은 물들거나 흐려짐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처염상정. 더러운 곳에 머물러도 깨끗함을 잃지 않는다는 말 그대로다. 연꽃과 연밥이 두 개가 아닐 것이다. 연꽃이 피어남과 동시에 연밥이 나타나는 것이 인과 연의 이법이었다. "화개현실이다!" 원인과 결과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비로소 깨달았다. 인을 지을 때 이미 과가 생겨나는 것이 이 세상의 모습이라는 걸 비로소 깨달았다. 원인이 곧 결과였다. 결과 속에 원인이 있고, 원인 속에 결과가 있었다. 세상사 아무리 혼탁해도, 추악하고 왜곡되어 있어도 본심을 잃지 않고 그 흙탕물 속에 몸과 마음을 더럽힘 없이 초연하게 정도를 지켜가야 할 것이었다. (2권, 33p)

 

 

  - 내경의 입가에 알 듯 모를 듯한 미소가 번졌다. 막다른 곳에 선 두마리의 사나운 짐승. 어리석은 짐승은 자신의 힘만 믿고 무작정 쫓기만 한다. 간악한 짐승은 어디서 돌아서야 할지 정확히 알고 있다. 그리고 어디를 물어야 할지도 알고 있다. 그것이 자신의 세상을 만드는 길이라는 걸 영악스럽게 알고 있는 것이다. 운세는 덫과 같은 것. 그 덫에 호랑이가 걸릴지 이리가 걸릴지는 운세만이 알고 있다. 호랑이가 걸릴 운세라면 이리의 운세를 바꿀 수 없다. 그것이 운명이다. (2권, 274p)

 

 

  - 관상쟁이는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세상은 그대로다. 세상은 변하는 게 아니다. 상을 깨달았다 하여 세계가 변하는 것이 아니다. 오늘도 찬 서리는 내리고 봄이 되면 꽃은 핀다. 세상은 그대로다. 그 속에 변하는 상을 보기 위해 미련하게 고집스런 관상쟁이가 서 있었다. 자신의 앞날조차 보지 못하면서 도대체 내가 누구의 앞날을 보려했던 것인지. 그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거짓이었다. 일체유심조. 상이란 마음 하나의 장난이었던 것을. 자신 스스로가 만들어나가는 공간. 그 공간의 이해. 그 공간을 신력을 다해 이해해보려했다. 그러나 세상의 이해를 바랐다는 사실 그 자체가 무엄이었다. 그것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연의 영역이었고 신의 영역이었다. (2권, 31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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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상'에 대하여 더욱 깊게 알거나, 역사팩션 보다도 그 속의 관상쟁이의 삶에 더욱 감정이입해보고 싶다면 ㅋㅋ

소설 <관상>을 읽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굉장히 흥미진진한 소설이네요.

소설이 너무 좋아선지, 영화가 조금 기대보다 덜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이 책을 읽으니 허영만 화백의 '꼴'을 읽어보고 싶어졌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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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이방인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호세 무뇨스 그림 / 책세상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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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부조리한 세계에 대한 조용한 저항 <일러스트 이방인 - 알베르 카뮈> 

 

 

 

 

 After Reading

 

 

  아직 읽어보지 못한 <이방인>을 일러스트판으로 만나보았다. <일러스트 이방인>이 출간되었을때, 그 유명한 <이방인>을 나는 읽어보지 못한 상태였고, 그림의 분위기가 제목에서 불러일으키는 이야기의 분위기가 꽤 맞을 거라는 상상을 했다. 그래서 곧바로 주문하게 된 이 책. 한 손으로 받치고 있기 어려운, 일반적인 책들 판형의 1.5배 정도 크기에 달하는 이 멋진 책은 역시 그림도 굉장히 좋지만 문단을 자유자재로 위치시켜놓아서 꼭 그래픽 노블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모두 흑백이며 날카로운 터치의 그림과 상황에 꼭 맞는 인물들의 리얼한 표정은 무언가 오싹한 느낌마저 들었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모르겠다."

 

 '이방인'이라는 제목만큼 많이 들어온 소설의 첫마디. 소설의 이야기를 좌지우지하게 될 하나의 사건이자, 어떠한 의미를 많이 품고 있는 듯 보이는 문장이다. 소설은 이렇게 '엄마의 죽음'을 만나게 된 주인공 뫼르소의 독백으로 시작한다. 엄마의 죽음에 '어쩌면'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뫼르소. 그는 어쩐지 너무나 건조한 말투로 어머니의 죽음 이후에도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를 하고, 사람들을 만난다. 마치 어머니의 죽음은 그에 삶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는 듯이. 그러나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만나게 된 오묘한 사람들의 눈길, 그리고 심판대에 올라있는 듯한 느낌에 그는 잠시 멈칫한다. 사회의 부조리한 시선을 감지하게 되는 시점이다. 이후 일상의 균열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우연히 자신의 눈을 찌르는 타는 듯한 태양은 그로 하여금 권총의 피스톨을 당겨버리게 한다. 뫼르소는 우연하게 생겨버린 자신의 죄를 심판받으면서 그리고 자신이 의도하지 않았던 죄마저 떠안기 시작한다. 그는 불안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어떠한 이유도 없이 그냥 하지 않았던 일에 대해서 책임이 생기기 시작한다. 군중들 속에서 그는 '이방인'이 된다. 시종일관 담담하던 그는 자신이 흥분하고 있고, 절박한 심정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뫼르소, 그는 결국 그러한 세계 속으로는 끼어들 수 없다는 듯, 혼자의 길을 택한다.

 

 불쌍한 뫼르소, 그러나 이해할 수 없는 뫼르소. 그는 항시 자신의 행동에 충실한, 단순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자신만의 행복이 있으며, 자신만이 느끼는 감정이 있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그런 '다름'에 돌을 던진다. 추궁하고 추궁하며 일반적인 상식 하에 억지로 맞추기를 기대한다. 그렇게 형성된 부조리한 상황 속에서 뫼르소는 마지막 선택을 그리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세상 속에 들어가 자신의 행동을 부정하는 것 대신, 세상 밖으로 나가 자신의 선택을 긍정하기를 택한 뫼르소의 행동은 어리석게 보이지만, 조용한 저항이었다. 자신에게 떳떳한 선택을 함으로서 마지막 순간, 어떠한 곳에서 찾을 수 없던 삶의 가치를 찾았고 행복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바윗덩이를 밀며 오르며 의지를 느끼는' 시지프의 신화 내용과도 연결되며 카뮈가 말하는 삶의 철학과도 관계된다.

 

 "그렇다. 나한테는 이것밖에 없다. 그러나 적어도 나는 이 진리를, 그것이 나를 붙들고 놓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굳게 붙들고 있다. 내 생각은 옳았고, 지금도 옳고, 또 언제나 옳다." 이러한 말을 할 수 있었던 뫼르소는 진정한 자유를 잡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혹시나 나는, 이방인이 될까 두려워 '옳다'는 것을 반대로 말하고 있지는 않을지, '보통'의 세계에 기어코 들어가기 위해서 가슴 속에서 울리는 목소리를 외면하고 있지는 않을지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Underline 

 

 

 

   - 무언가 스치는 소리에 잠이 깼다. 눈을 감고 있었던 탓으로 방안의 흰빛은 눈부셔 보였다. 내 앞에는 그림자 하나 없었고, 물체 하나하나, 모서리 하나하나, 모든 곡선들이 눈이 아플 정도로 뚜렷이 드러나 보이고 있었다. 엄마의 양로원 친구들이 들어온 것은 그때였다. 모두 한 여남은 명 되었는데, 그들은 아무 말 없이 그 눈부신 빛 속으로 살며시 들어왔던 것이다. 그들은 의자 삐걱거리는 소리 하나 나지 않게 하고 앉았다. (...) 그들의 얼굴을 보고 놀란 것은, 눈은 보이지도 않고 다만 온통 주름살투성이인 얼굴 한가운데에 광채 없는 빛만이 보여서였다. 그들이 앉았을 때, 거의 모두가 나를 바라보며 이가 빠져버린 입속으로 입술이 온통 다 말려들어간 채 머리를 어색하게 수그렸는데, 그것이 나에 대한 인사인지 혹은 그들의 버릇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아마도 나에게 인사를 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들이 모두 문지기를 둘러싸고 나와 마주 앉아서 고개를 꾸벅거리고 있는 것을 내가 알아차린 것은 바로 그때였다. 나는 한순간, 그들이 나를 심판하기 위해서 거기에 와 앉아 있다는 어처구니 없는 인상을 받았다. (13p)

 

 

  - 조금 전과 다름없이 시뻘건 폭발은 그대로였다. 모래 위에서 바다는 잔물결들의 급하고 가쁜 숨결을 다하여 헐떡거리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바위께로 걸어가고 있었는데, 햇볕에 쬐어 이마가 부풀어오르는 것 같았다. 더위 전체가 내 위로 내리눌러대면서 나의 걸음을 막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얼굴 위에 엄청나게 무거운 바람이 와닿을때마다, 나는 이를 악물고, 바지 호주머니 속에서 두 주먹을 부르쥐고, 태양과 태양이 쏟아 부어주는 그 영문 모를 취기를 견뎌 이기려고 전력을 다해 몸을 버티는 것이었다. 모래나 흰 조개껍질이나 유리조각에서 뿜어나오는 빛이 칼날처럼 번뜩일 때마다 양쪽 턱뼈가 움찔했다. 나는 오랫동안 걸었다. 햇빛과 바다의 먼지 같은 수증기 때문에 눈부신 후광에 둘러싸인 거무스름한 바윗덩어리가 멀리 조그맣게 바라다보였다. 나는 바위 뒤에 서늘한 샘을 생각했다. 나는 졸졸 흐르는 그 샘물의 속삭임을 되찾아가고 싶었고, 태양과 그 그늘 밑의 노력과 여자의 울음소리를 피하고 싶었으며, 그리고 그늘과 힘겨운 휴식을 되찾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73p)

 

 

  - 아마도 얼굴 위에 드리운 그늘 탓이었던지 웃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기다렸다. 뜨거운 햇볕에 뺨이 타는 듯했고 땀방울들이 눈썹 위에 고이는 것을 나는 느꼈다. 그것은 엄마의 장례식을 치르던 그날과 똑같은 태양이었다. 특히 그날과 똑같이 머리가 아팠고, 이마의 모든 핏대가 한꺼번에 다 피부 밑에서 지끈거렸다. 그 햇볕의 뜨거움을 견디지 못하여 나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나는 그것이 어리석은 짓이며, 한 걸음 몸을 옮겨본댔자 태양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한 걸음, 다만 한 걸음 앞으로 나섰던 것이다. 그러자 이번에는 아랍인이, 몸을 일으키지는 않은 채 단도를 뽑아서 태양 빛에 비추며 나에게로 겨누었다. 빛이 강철 위에서 반사하자, 길쭉한 칼날이 되어 번쩍하면서 나의 이마를 쑤시는 것 같았다. 그와 동시에, 눈썹에 맺혔던 땀이 한꺼번에 눈꺼풀 위로 흘러내려 미지근하고 누꺼운 막이 되어 눈두덩을 덮었다. (74p)

 

 

  - 그는, 나의 상고가 수락될 것이라고 확신하지만 나는 죄의 짐을 지고 있으므로 그것을 벗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의견에 따르면, 인간들의 심판은 아무것도 아니고 하느님의 심판이 전부라는 것이었다. 나에게 사형을 선고한 것은 인간의 심판이라고 내가 지적했더니, 그렇지만 그것으로 나의 죄가 씻긴 것은 아니라고 그는 가르쳐주었을 뿐이었다. 나는 죄인이고, 죄의 대가를 치르는 것이니, 그 이상 더 나에게 요구할 수는 없을 것이었다. 그 순간 사제가 다시 일어섰는데 워낙 좁은 감방이라, 나는 그가 움직이고 싶어도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앉아 있든지 일어서든지 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134p)

 

 

  - 나는 보기에는 맨주먹 같을지 모르나, 나에게는 확신이 있어. 나 자신에 대한, 모든 것에 대한 확신. 그보다 더한 확신이 있어. 나의 인생과, 닥쳐올 이 죽음에 대한 확신이 있어. 그렇다. 나한테는 이것밖에 없다. 그러나 적어도 나는 이 진리를, 그것이 나를 붙들고 놓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굳게 붙들고 있다. 내 생각은 옳았고, 지금도 옳고, 또 언제나 옳다. 나는 이렇게 살았으나, 또 다르게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이런 것을 하고 저런 것은 하지 않았다. 어떤 일은 하지 않았는데 다른 일은 했다. 그러니 어떻단 말인가? 나는 마치 저 순간을, 내가 정당하다는 것이 증명될 저 신새벽을 여태껏 기다리며 살아온 것만 같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중요한 것은 없다. 나는 그 까닭을 알고 있다. 그 역시 그 까닭을 알고 있는 것이다. (13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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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쓰긴 썼지만 어렵긴 어려운 이방인 입니다. ㅜ,ㅜ 대체 리뷰에서 뭔소리를 하고 있는 건가요-

 

일러스트판이라 글씨는 좀 작았지만, 그림과 함께 보다보니

이야기에 취하는 듯한 묘한 기분이 듭니다. 그림은 진짜 소름끼칠정도로 좋았어요... (개인적으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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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저란트
크리스티안 크라흐트 지음, 김진혜.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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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도, 종착점도 없이 떠도는 여행 <파저란트 - 크리스티안 크라흐트>

 

 

 

After Reading

 

 

 

   독일 현대문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자, 수없이 논문에서 다뤄지는 소설이다. 소설의 제목 뜻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들이 많지만, '조국 Fatherland'를 독일식으로 발음할 때 나온 말이라는 해석이 가장 많다고 한다. 소설 전체에서 배경인 '독일'에 대한 서술이 여럿 등장하는데다가, 독일의 전후상황과 사회를 파악하는 것이 이 소설을 제대로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소설 속 주인공은 정처없이 떠도는 여행을 시작한다. 목적지도 없고 코스도 없는, 모든 것이 우연으로 다가오는 여행이다. 이야기는 여행 중 일어나는 사건을 중심으로 다뤄지지도 않는다. '나'가 친구들을 만나고, 술을 마시고, 그저 계속해서 돌아다니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 뿐, 그 중간에 사회에 대한 '나'의 의식이 조금 드러나있다. '나'는 훔쳐입은 바버재킷으로 허세를 부리며, 그 허세에 넘어가는 사람들에 냉소적인 시선을 보낸다. 그 밖의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회의와 전쟁이 끝난 현재에도 남아있는 과거의 잔재 '나치즘', 환락과 타락에 대한 '나'의 관점은 부정적으로 드러난다. 그저 허무한 모습에, 방랑하는 주인공. 그는 급격하게 변화된 독일 사회에서 많은 것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어떠한 목표도 없는 허무한 사람으로서 그 시대에 대응한다. 그 시대와 동떨어져 있는 다른 차원의 사람이고자 하는 것이다.

 

  다시 생각해보면 이 의미없어보이는 여행이 그의 정체성을 찾기위한 여행이며, 많은 독일인들의 생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역사의 큰 사건을 여러번 짊어졌던 독일사회 속 사람들은 상상할 수 없이 큰 혼란을 겪었을 것이다. 경제적 원조로 살아남을 길을 모색해야 했던 독일 통일, 그리고 사람들의 의식 속에 남아있었던 사회주의와 나치즘의 잔재 (과거청산에 적극적이었던 독일이지만, 현재도 일부 변형된 나치즘이 존재한다.) 그리고 급격한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비틀거리는 독일은 생각보다 많은 문제에 대항해야했을지도 모른다. 그 혼란 속에서 사람들은 물질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거나 의미없는 행동들로 공허한 감정을 달래야했을 것이다.

 

  사실 이렇게 해석해봤지만, 소설을 읽는 당시에는 뚜렷한 사건도 없는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고, 독자인 나마저도 의미없고 허무한 대화들에 도저히 집중할 수 없었다. 특별하게 어려운 내용은 아니었지만, 그냥 주인공의 행적과 의식을 조용히 따르는 느낌으로 읽어지는 소설이라 큰 맘 먹고 골라들어야 할 소설임에는 틀림없다. 한마디로 말해서 굉장히 어렵다. (그리고 별로 재미도 없다.) 대신 토마스 만의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을 떠올리게 하는 '우리는 호수 한가운데에 당도할 것이다. 머지않아' 라는 마지막 대사는 굉장히 좋은 여운이 남았다.

 

 

 

Underline

 

 

 

    - 택시가 출발하고, 나는 살짝 내린 차창 틈으로 연기가 구불구불 빠져나가는 모습을 관찰한다. 함부르크가 깨어난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고는 갑자기 2차대전 중의 폭격의 밤들과 폭풍 같은 불길 속의 함부르크를 생각지 않을 수 없다. 모든 것이 다 진화되었을 때 어떤 모습이었을지를. 나는 기꺼이 택시 운전사와 그것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다. 하지만 그는 입 냄새가 나고, 게다가 노인 냄새가 나고 썩은 냄새를 풍긴다. 마치 비오는 발코니에 너무 오래 방치되어 이제 곰팡이가 난 한 권의 책처럼. 뒷좌석까지 그 냄새가 전해온다. 담배 연기를 뚫고. (65p)

 

 

  - 내가 말하려는 것은, 그 편지에서 알렉산더가 하고자 한 이야기를 내가 이해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시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 모든 것이 정확히 이해되는 그런 순간들이 있다. 티셔츠에 대한 나이젤의 태도를 이해했을 때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러고 나면 갑자기 다시 모든 것이 내게서 빠져나간다. 나는 그것이 뭔가 독일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 더 나아가 독일의 끔찍한 '나치적 삶'과 관련되어 잇다는 것, 그래서 내가 알고 좋아하는 사람들은 어떤 투쟁적 태도를 가지게 되고, 일단 그렇게 되고 나면 그러한 태도를 바탕으로 행동하고 사고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는 사실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안다. 거기까지는 이해가 간다. 하지만 나는 때때로 이러한 태도의 발단을 이해할 수 없다. 그것이 시작되는 방식을. 그럴 때면 나는 자문해본다. 그렇게 늘 이해할 수 없었던 걸까? 그리고 나도 어쩌면 그런 것이 아닐까?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나도 도저히 종잡을 수 없는 게 아닐까? (97p)

 

 

  - 나는 다가올 몇 년 동안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다른 때에는 언제나 모든 것이 조감할 수 있는 범위 안에 놓여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도대체 모르겠다. 그렇게, 보라색, 연두색, 검은색 등 색색의 트레이닝복 분위기로 계속 갈 것인지? 동쪽 사람들은 다 그렇게 입고 다닌다. 그리고 그곳 사람들은 더 참을성이 많고 더 조용하고 훨씬 더 아름답다. 아마도 동쪽은 그 평온한 태도와 트레이닝 복으로 서쪽을 덮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안심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정말로 깊이 안심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보라색의 동쪽 사람이 무슨 아케이드에서 굴을 후루룩 먹는 점잔 빼는 서쪽 사람보다 백만 배는 더 좋으니까. 씻지 않은 엄청난 무리의 사람들이 동쪽에서, 몰다비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에서 몰려올 것이다. 거기까지는 확실하다. (190p)

 

 

  - 그건 물론 설명하기가 좀 힘들다. 그래도 굳이 말하자면 마치 사람이 이 세상에서 자기 자리를 찾은 것 같은 약간 그런 기분이다. 더 이상 빨아들이는 소용돌이도 없고, 자기 옆을 막 지나가는 삶 때문에 무기력해질 일도 없이, 그냥 고요하게 있는 것이다. 바로 그렇다. 고요하게 있기. 고요함. (195p)

 

 

  - 나는 아이들에게 독일 이야기를 해줄 거다. 북쪽에 있는 그 큰 나라에 대해서. 저 아래 평지에서 스스로 구축되는 그 거대한 기계에 관해서. 그리고 인간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줄 것이다. 그 기계 내부에 사는 선택된 사람들, 좋은 자동차를 몰아야하고, 좋은 마약을 하고, 좋은 술을 마시고, 좋은 음악을 들어야 하는 선민들 말이다. 한편 그들 주변 사람들도 모두 똑같은 행위를 한다. 단지 아주 약간 살짝 질이 떨어지는 것으로 말이다. 그래서 선민들은 오직 그런 걸 약간 더 좋게, 약간 더 세게, 약간 더 세련되게 한다는 믿음에 의지해서만 계속 살아갈 수 있다. (21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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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적 짧고, 작은 책인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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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 인문학 소소소 小 少 笑
윤석미 지음 / 포북(for book)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작게, 적게, 웃으며' 생각을 다듬는 소소한 시간 <1분 인문학 소·소·소 - 윤석미>

 

 

 After Reading

 

 

 

  저는 웬만해선 책을, 첫머리부터 끝까지 쭈욱 쉼없이 읽어나가야 된다는 강박관념이 있습니다. 빠르게 읽거나 딴짓을 안한다는 것이 아니라, 한 권의 책을 집고나면 천천히라도 꼭 끝까지 읽어나가야 된다는 것이지요. 그때문에 책을 중단하는 것을 굉장히 안타깝게 여기고, 여러 책을 같이 읽는 것도 좀 힘들어합니다. (기억력 때문에 ...) 아무튼 이런 '책 한권을 쭉 읽어야 되는 강박이 있는' 제게 부담되는 책은 <365일 매일 긍정의 한줄> 같은 책이에요. 매일 한번씩 오랫동안 읽어야 더 느낌이 좋을텐데, 한번에 다 읽어버리고 싶고, 그런데 이야기는 짧게 끊어져서 흐름은 계속 끊기고. 그런 책들이 굉장히 힘들게 느껴지지요. (음, 부정적인 시작이지만 책의 혹평은 아닙니다....) 그런데 <1분 인문학>은 제게 <...긍정의 한줄>과 같은 느낌의 책이었습니다. '1분'이라는 단어에서 예상하다시피, 이 책은 오랫동안 하나하나씩 읽어나가야 더 빛을 보는 책이었거든요. 

 

 

 

 

  그렇지만 처음에 저를 이 책에 이끈 '소, 소, 소'. 각각 다른 뜻을 가진 한자들의 만남이 너무나 좋아서, 꾹 참고 제 습관대로 쭉 읽게 되었답니다. 이렇게 예쁘고 뜻좋은 한자의 만남이 더 있을까요? '소, 소, 소'라는 발음도 너무 좋고, 왠지 소근소근 아기자기한 느낌의 한자들. 저자는 이 한자들을 하나씩 주제로 하여, 자신이 습득해왔던 인문학적 지식을 짧게 짧게 책에 풀어놓습니다. 딱 1분 안에 읽을 수 있는 분량씩으로 150개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야기들은 식상한 것보다는 새롭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들이 많았습니다. 책, 위인, 전래동화, 과학 상식, 자연현상까지, 우리가 별로 깊게 생각하지 않던 것들에서 슬기롭게 살아갈 수 있는 삶의 해답을 떠올릴 수 있다는 것이 정말로 신선했지요.

 

  제목은 '1분 인문학'이지만, 이 책을 읽을 때 '소, 소, 소'에 초점을 맞추어 읽는 것이 더 만족도가 높을 것 같습니다. 짧은 이야기들 속을 파고들어가면 충분히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인문학적 지혜들이 숨겨져 있지만, '인문학에 입문해보겠다!' 하고 혹시 생각하는 독자들에게는 조금 아쉬움을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에요. 대신, 처음부터 제 맘에 쏙 들었던 '소, 소, 소'는 작은 이야기들의 주제이기도 하면서 이야기 전체를 망라하고 있어서, 이쪽을 바라보고 이 책을 접한 독자들은 충분히 행복한 기운을 받을 수 있지 않나 생각이 들어요.

 

  '인생, 뭐 있겠습니까? 마음대로 하시지요!' 그러나 '어떤 생각을 하느냐가 그 사람을 만듭니다'

 원래는 따로 떨어져 있던 저자의 말이지만, 교훈을 주는 이야기들 속에서 이렇게 붙여놔야 더욱 어울릴 것 같은 한마디.

 역시 자신이 원하는 뜻대로 살아가는게 '자신에게는 최고의 삶'이 될지 모르지만, 가끔 흔들리고 이것저것 생각이 뒤엉키는 당신이라면,

 가끔은 이런 지혜도 필요합니다. 소, 소, 소한 지혜 말이지요 :)

 

 

 

Underline

 

 

 

 

  - 탈무드에는 사람을 평가하는 세 가지 기준이 실려 있습니다. 그 첫 번째는 '키소'입니다. 키소란 돈을 넣는 주머니를 말합니다. 즉, 그 사람이 돈을 어디에 어떻게 쓰며 사는가. 이것이 그 사람을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이 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코소'입니다. 코소란 술잔, 즉 '향락'을 의미하는 것으로 지금 그 사람이 무엇을 즐기며 지내는가, 지금 무엇에 빠져 있는가, 지금 그 사람 마음을 빼앗아간 것은 무엇인가를 살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 사람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고, 기뻐하고 감사하며 즐겼던 일이 무엇이었는가를 보면 그 사람의 인생을 평가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세 번째는 '카소'로 카소란 '노여움'을 말합니다. 또한 인내력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따라서 자기의 감정이나 분노를 얼마나 억제할 수 있는가, 고통 가운데서 얼마나 참고 인내할 수 있는가를 보면 그 사람을 평가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33p)

 

 

  - '길'에도 여러 종류의 길이 있습니다. 차나 사람이 많이 다니는 큰길은 한길. 한길이 아닌 뒤꼍으로 난 길로 뒷골목의 좁은 길은 뒤안길. 뒤안길과 비슷한 길로 마을의 좁은 골목길을 뜻하는 고샅길. 꼬불꼬불한 논두렁 위로 난 논틀길. 등처럼 굽은 길이라고 해서 등굽잇길. 빙 둘러서 가는 우회로인 에움길. 원길에서 곁으로 갈라져 나간 골목이란 뜻의 겹 골목길. 드나들 때 반드시 거치게 되는 길목이란 의미의 나들목. (...) 이 밖에도 두렁길, 자갈길, 외길, 굽돌이길, 속길 등등 참으로 많은 길들이 있습니다. 길의 종류가 이렇게 많은 까닭은 돌아가야 할 곳이 많고, 좁은 곳이 많고, 지나가기 어려운 곳이 많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차나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한길만 있었을 것입니다. 인생길 역시 마찬가지. 아니 인생길에는 땅의 길보다 더 많은 길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생의 길 위에서 '어디로 가야 하나' 헤매는 것인지 모릅니다. (79p)

 

 

  - 옛사람들은 왜 벗어놓은 신발의 모양이 곧 그 사람의 마음가짐을 말해 준다고 생각했을까? 그 이유를 산사의 절에서 찾아봅니다. 절에서는 법당이나 승방 등 신발을 벗어놓는 자리마다 '조고각하'라는 글귀를 써 놓습니다. 비출 조, 돌아볼 고, 다리 각, 아래 하, 그러니까 조고각하라는 말은 발밑을 잘 살펴보라는 뜻입니다. 신발을 제자리에 잘 벗어놓았는지, 나중에 다시 신을 때 잘 찾아 신을 수 있도록 가지런히 벗어놓았는지를 보면 신발 주인이 어느 정도 반듯한 정신을 지녔는지를 엿볼 수 있다는 것. 신발을 반듯한 모양으로 벗어놓은 사람은 소소한 일상생활일지언정 올바로 행하고, 자신을 돌아볼 줄 아는 사람이라고 믿었던 것이죠. 신발을 제자리에 가지런히 벗어놓으려면 잠시 뒤를 돌아보는 마음이 있어야만 합니다. 허둥지둥 나가고 들어오는 사람은 절대로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놓을 수가 없죠. 그러니 나의 몸과 내 마음이 얼마나 가깝게 움직이는지는 벗어놓은 신발을 보면 알 수 있는 일입니다. (218p)

 

 

  - '열 살 때, 여느 때와 전혀 다름없이 눈을 떴다. 아침이었고, 높은 창을 통하여 본 이웃집의 기다란 지붕 너머로 푸른 하늘이 보였다. 막 잠에서 깬 이 순간, 무엇인지 새롭고 훌륭한 것이 생기기나 한 것처럼 비로소 아름다운 생활이 그 가치와 의미를 지니기 시작했다. 그래서 어제의 나도 잊어버리고, 내일의 나도 잊어버린 채 오로지 오늘의 '행복'에만 부드럽게 둘러싸여지는 기분이었다.' 1946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고, 1962년, 여든다섯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헤르만 헤세. 그가 자신의 온 생애를 통틀어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꼽은 것은 바로 '열 살 때 잠에서 막 깨어나 푸른 하늘을 봤던 순간'이었습니다. (247p)

 

 

  - "인생은 전반적으로 순서가 잘못되어 있다. 인생은 여러 가지 특권과 돈이 확보되어 있는 노년기에 시작되어 그런 이점들을 훌륭하게 누릴 수 있는 청년기에 끝나는 것이 좋다. 사실 청년기에는 약간의 돈만 있어도 그 가치의 백배에 달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지만, 그때는 아쉽게도 돈이 없다. 나이가 많아지면 어느 정도 돈은 모았겠지만 이미 돈으로 살 만한 가치 있는 것들이 거의 없어진다. 인생의 전반부는 즐길 수 있는 능력은 충만한데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며, 인생의 후반부는 기회는 얼마든지 있는 데 반해 능력이 사라진다." <마크 트웨인의 인생 강론> 기회는 많은데 돈이 없는 청년기, 돈은 있는데 기회가 없는 노년기... 어느 쪽이 더 좋아 보입니까? (25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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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이야기와 함께 왼편에 그 이야기를 압축해놓은 문장이 하나씩 꼭 있는데,

그 한 문장들이 굉장히 좋았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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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 Y 베스트 컬렉션 세트 (전2권 + 영문판) - 성적이 오르고 머리가 좋아지는 셜록 홈즈 베스트 컬렉션
아서 코난 도일 지음, 시드니 패짓 그림, 꿈꾸는 세발자전거 엮음, 박기완 외 감수 / 미다스북스 / 2013년 9월
평점 :
품절


성적이 오르고 머리가 좋아지는 <셜록홈즈 y 베스트 컬렉션 - 아서 코난 도일>

 

 

 

 

 

너무나 유명한 셜록홈즈 시리즈, 많은 책으로도 드라마로도 영화로도 한번쯤은 접해봤을만한 이야기지요 :)

저도, 아직은 장편 시리즈로는 읽지 못했지만, 예전에 단편들은 몇개 접해본적이 있는데요. 이 알록달록한 책은 아서코난도일이 직접 뽑은 셜록홈즈 베스트 단편소설을 모아 청소년들을 위해 엮은 책이랍니다. '성적이 오르고 머리가 좋아지는' 이란 수식어가 붙어있는 걸 보면 학습 쪽으로도 많은 신경을 쓴 책이란 걸 알 수 있어요.

 

- 이번 서평은, 이미 잘 알려진 셜록홈즈 시리즈 이야기보다는, 어린이/청소년 학습에 도움을 주는 부분들을 중심으로 써볼게요.

 

 

 

 

 

책 첫머리부터 '책을 읽는 팁'이 나와있는데요.

 

일단, 첫번째, 그냥 재미있게 읽어라.

두번째, 문맥상의 단어를 익히면서 읽어라.

세번째, 예문들과 함께 단어들을 제대로 익혀라.

 

재미있는 추리소설과 함께 국어표현을 익히고, 언어감각을 익힐 수 있게 도움을 주는 책이었어요.

 

 

 

 

 

시리즈의 작가인 아서 코난 도일이 직접 선정한 베스트 단편들 중, 수능 국어의 필수 어휘들을 체크할 수 있게 만들어진 y베스트 컬렉션.

글을 읽는 도중, 굵은 글씨로 표시된 단어들은 EBS가 검증한 초중고 필수 국어단어이고, 옆에 한자어와 뜻이 간단하게 나와있습니다.

 

 

 

 

 

이야기의 끝에는 간단하게 살펴본 단어들을 응용해서 사용할 수 있도록 더욱 세세한 뜻과 예문들이 함께 있어,

보다 정확하고 효과적으로 단어들을 학습할 수 있었답니다.

선정된 단어들은 굉장히 쉬운 것도 있고 고등학교 수준의 단어들도 있었는데요,

성인인 저에게도 애매한 단어들도 간혹 끼어 있어서 자세히 짚고 넘어갈 수 있었어요.

 

 

 

 

 

표면적인 정의 뿐만 아니라, 비유적으로 가리키는 뜻들도 함께 있어서 어휘력 향상에 도움을 주는 부분이었습니다.

 

 

 

 

 

평소, 중학생인 동생이 책을 읽는 것을 살펴보면 아무래도 남자애라 그런지, 블록버스터처럼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많이 찾는 것 같아요.

그래서 동생한테 소설 부분과 어휘 부분을 보여주면서 이 책을 읽겠냐고 물어봤더니, 재밌겠다고 읽겠다고 하더라구요.

학습을 위주로 하는 책이라도, 아이들의 흥미를 끌려면 일단 재미있어야 하는 건 물론인데, 이 책은 그런 점에서 아주 재밌고 획기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 책이 아닐까 생각이 들어요. 독해력, 창의력, 추리력을 함께 증가시킬 수 있게 신경 쓴 부분들도 제법 꼼꼼하게 되어있는 것 같고, 모의고사나 ebs와 다수 학습서 집필 경력으로 검증된 감수자들이 눈에 띄는 것 같아요. 중간 중간 삽화들은 더욱더 몰입할 수 있고 호흡할 수 있는 부분이 되었어요. (엄청 재밌었던 단편 '마지막 사건'의 삽화!)

 

<성적이 오르고 머리가 좋아지는 셜록홈즈 Y 컬렉션>

재미없는 공부에 지친 학생들과 국어의 기초가 부족한 학생들에게, 혼자서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는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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