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의 나라 1 책세상문고 세계문학 8
모옌 지음, 박명애 옮김 / 책세상 / 2003년 2월
평점 :
품절


향락에 취한 도시, 상상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 <술의 나라 - 모옌>

 

 

 

After Reading

 

 

 

   사람에 따라 역겨울 수도 있는 책입니다. 아니, 아마 많은 사람에게 혐오감을 줄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우울하고 어두운 분위기의 소설이라도 그럭저럭 상관없이 읽는 편이지만, 이 책은 중간중간 참을 수 없이 얼굴이 찡그려져서 덮을까말까 고민했습니다. 그 이유는 소설의 재미와는 상관없이, 인간으로서 상상하기 버거운 소재를 이 책이 다루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탄광산업으로 번창한 주꾸어라는 도시에 고위 수사관인 띵꼬우가 수사를 나가게 됩니다. 바로 '아이고기'를 먹는다는 소문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서지요. 그런데 수사의 초반부터 뭔가 제대로 알 수 없는 분위기가 풍겨옵니다. 마치 우리나라의 만화(혹은 영화) <이끼>에서,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의문을 파헤치기 위해서 들어갔을 때, 아이러니한 냄새를 풍기던 도시와 그 마을 사람들처럼요. 수사관 띵꼬우도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호랑이 굴 속에서 마치 포위된 짐승과도 같은 느낌을 말이죠. 경제발전으로 술과 향락에 엄청 빠져들던, 그런 이상한 눈길의 주꾸어 시 사람들은 띵꼬우에게도 호화스런 식탁을 대접합니다. 술은 안마신다던 띵꼬우의 입에 한 잔, 한잔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올바른 수사를 해야할 목적은 점차 흐릿해지고, 점점 알 수 없는 혼란스러운 사건들이 그에게 일어나게 되면서 점차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야기의 독특함과 함께 소설은 아주 재밌는 형식 또한 갖추고 있습니다. 띵꼬우 수사관이 도시에 잠입한 기본 틀의 이야기와 더불어, 또 하나의 이야기가 등장하지요. 주꾸어 시에 살고 있는 문학청년 '리이또우'와 '모옌'이 나누는 편지글, 그리고 '모옌'작가에게 보내는 '리이또우'의 짧은 소설들. 그 짧은 소설들은 주꾸어 시에 대한 내용으로 어린 아이, 제비집, 당나귀 성기를 먹는 이상하고 해괴망측한 도시 사람들의 이면을 볼 수 있게 합니다. 이러한 소설의 형식은 소설 속의 액자, 계속해서 액자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을 주면서, 색다른 소설을 만들어내는 작가의 재치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대신, 중간 중간 환상 속 이야기 같은 부분은 조금 책장을 넘기기 힘들기도 합니다.

 

   다양한 형태의 이야기가 섞인 <술의 나라>는 타락한 인간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줍니다.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해야 하지만, 그들의 식문화는 인정할 수 없는 너머로 들어선 듯 보입니다. 먹을 것에 대한 욕망이 넘쳐흘러, 기본적인 생존욕구를 넘어 폭력적인 학살의 수준까지 넘어가는 <술의 나라> 속 사람들의 모습은 '그들이 과연 인간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향락과 욕망에 취해 이성을 잃어버린 주꾸어 시의 사람들, 그리고 그 도시에 발을 들여 같이 취해가는 주인공. 절대 있어서는 안될 이야기지만, 혹시나 실제로 있을까 싶어 두려워지는 소설입니다.

 

 

Underline

 

 

 

   - 태양이 아이들의 얼굴을 비추고 있어서 아이들의 얼굴은 여러 개의 꽃송이가 무더기로 피어난 해바라기 꽃밭 같았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갓길을 따라서 아이들에게 접근했다. 그의 몸을 스쳐 지나가는 자전거는 거무죽죽한 뱀장어 같았다. 자전거를 탄 사람들의 얼굴에는 강렬한 햇빛 때문인지 모호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아이들은 하나같이 꽃처럼 단장을 하고 있었으며, 포동포동한 얼굴에 미소 짓는 눈동자들이 돋보였다. 그들은 굵고 긴 붉은 줄에 묶여 있는 한 두름의 물고기 같았으며, 한 나무 줄기에 열려 있는 잘 익은 열매 같았다. 자동차가 아이들의 몸에 매연을 내뿜었다. 그 연기는 석탄 같았고, 아이들은 한 꼬치에 꿰어 구워진 새 같았고, 그 위에다 여러 가지 조미료를 뿌려놓아서 독특한 향기가 코를 찌르는 것 같았다. 아이들은 나라의 미래이고 꽃이며 제일 소중한 보배다. 누가 감히 그 아이들을 깔아뭉개 죽이겠는가? (1권, 30p)

 

 

  - "저는 상황을 조사하려고 왔지, 술을 마시러 찾아온 게 아닙니다." 무례한 어조가 역력했다. 광산 책임자와 당 위원회 서기가 완전히 똑같은 눈길을 주고 받더니 조금도 화를 내지 않고 여전히 자애로운 어조로 대답했다. "알고 있습니다. 알지요. 당신에게 술을 마시라고 권하지 않을 겁니다." 띵꼬우는 형제 같은 이들 중 도대체 누가 당 위원회 서기이고 누가 광산 책임자인지 구분할 수 없었지만, 그들이 언짢아할까 염려되어 묻지도 못한 채 멍청하게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다. (...) "어서어서 가기나 하십시다. 술은 안 마셔도 식사는 해야지요." 그는 계속 앞으로 나갈 수 밖에 없었다. 한 사람이 앞에 서고 두 사람이 뒤를 따르는 삼각형 구조가 싫다고 그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그 모양으로 걷자니 술자리를 향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법당을 향해 걷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발걸음을 늦추어 그들과 나란히 걸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은 헛된 생각이었다. 그가 발걸음을 늦추면 뒤따르던 두 사람도 동시에 발걸음을 늦추었으니 삼각형 모양은 결코 뒤틀리지 않았고, 그는 시종일관 붙잡혀 가는 사람 같은 위치에 처해 있었다. (1권, 70p)

 

 

  - 나중에 누군가 여러 개의 손가락이 달린 손으로 선홍색의 포도주 술잔을 그에게 넘겨주었는데, 그에게는 그 손가락이 마치 다리가 여덟 개 달린 오징어처럼 모호하게 느껴졌다. 아직 껍데기 같은 몸에 남아 있는 의식의 찌꺼기 까지 동원해 있는 힘을 다해 힘겹게 일을 하고 있으나, 이미 해체되어가고 있는 그에게 그 손은 무리 지어 돌아다니는 사물처럼 보였다. 그것은 마치 여러 층으로 겹쳐진 분홍색 연꽃 같았다. 그런데 술잔 역시 여러 층으로 겹겹이 쌓여 있었다. 영롱한 보석으로 된 탑 같고, 특수한 기술로 찍어낸 사진 같았다. 주위의 선홍색보다 짙은 색을 띠고 있는 술잔들은 비교적 안정적으로 놓여 있었고, 한 무리의 얇고 붉은 안개를 뿌리고 있었다. 이것은 한 잔의 술이 아니라 금방 떠오른 태양이며, 차갑고 농염한 그 불길한 애인의 심리였다....... (1권, 79p)

 

 

  - 얼어붙은 비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소리가 갑자기 사라지면서 산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지는 듯한 어떤 격렬한 소리가 부근에서 들려왔다. 그 진동에 그는 자기도 모르게 뛰었다. 무엇이 폭발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손전등 불빛이 혁명 전사 묘지를 비추던 바로 그 순간 한 줄기의 거대한 용기가 갑자기 그의 온몸에 주입되었다는 것이었다. 한 줄기 거대한 용기는 술의 고질병 같은 질투, 과부의 술과도 같은 사악함과 연약함, 애정의 술처럼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늘 마음에 걸리는 것들, 이 모든 것을 시큼하고 더러운 땀과 비린내 나는 오줌으로 바꾸어 체외로 배출해버렸다. 카자흐 초원을 질주하는 맹렬한 말과 같은 보드카가 그를 용맹스럽게 만들었다. 조심성이 없고 거칠고 호방하며, 거칠면서도 섬세하며, 모험심이 풍부하고 아주 자극적이어서 마치 스페인의 투우사처럼 광란적인 코냑이 그를 변하게 만들었다. (2권, 398p)

 

 

  - .......와, 와, 와! 진깡쫜, 그리고 이미 먹혀버린 후 화장실에 배설될 어린 남자아이들을 생각하자 띵꼬우의 마음속에 남아 있던 책임감과 정의감은, 한쪽에서 불타고 있는 북두칠성과 같이 암흑 속에서 도처로 돌아다니고 있는 의식을 비춰주었다. 이때 그는 귓바퀴와 코끝에 참기 어려운 아픔을 느꼈다. 마치 독을 묻힌 날카로운 물건이 그의 귀와 코를 지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구부려 앉았다. 하늘과 땅이 돌았고, 커다란 머리는 아주 큼직한 별자리처럼 느껴졌다. 힘겹게 부은 눈을 뜨니 네다섯개의 커다란 회색 그림자가 그의 몸을 넘고 있었으며, 땅을 내디딜 때마다 가슴이 갑갑해지는 듯한 이상한 소리를 굼뜨게 내뱉었다. 동시에 그는 날카롭게 찍찍거리는 새된 소리를 들었다. 도대체 어떤 진귀한 동물이 울고 있는 것일까? (2권, 511p)

 

 

Add...

 

 

 

작가는 자신의 문장에 대해 '세련되지 않은, 흙에서 빚은 문장이고 질그릇같이 투박하다'고 표현합니다.

그런데, 충분히 세련된 것 같은데?.......... 노벨문학상 수상자라고 기대했는데, 정말 대단하긴 하네요.

다음에는 모옌의 <열세걸음>이나 <개구리>를 한번 읽어볼래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철학카페에서 문학읽기 - <파우스트>에서 <당신들의 천국>까지, 철학, 세기의 문학을 읽다
김용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철학, 세기의 문학을 읽다 <철학카페에서 문학읽기 - 김용규>

 

 

 

 

 After Reading

 

 

 

 

   문학에 대해 항상 궁금했지만 감히 철학에게 물어보지 못한 것

 

  꽤 오래 책장에 꽂혀 있었던 책이다. 사놓고선 계속 읽지 못했던 이유는 제법 굵직굵직한 고전들을 주로 다루고 있어서, 어느 정도 책에 대한 개념이 잡힌 후에 읽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었다. 표지에 있는 '철학, 세기의 문학을 읽다'라는 문구처럼, 저자는 많은 고전들 중에서도 진지하고 심각한 질문을 하는 책을 다룬다. 조금 어려울 수 있는 책들이라 부담을 덜어주려고 했는지, '철학카페'라는 이름 하에 카페에서 도란도란 이야기 듣는 것처럼 느껴지는 어투로 철학과 문학을 말하고 있다.

 

  저자는 책 속에서 말하는 문학 비평을 커피에 비유한다. 카페에서 자신의 기호에 따라 주문하는 커피, 부드럽거나 씁쓸한 다양한 맛들. 이 책 속에는 이렇듯 다양한 맛의 커피같은 정보들이 섞여 있다. 고전 하나를 소개할 때마다 가볍게 워밍업처럼 시작되는 첫 이야기, 그리고 책에 대한 소개, 뒤에는 조금은 깊이있게 들어가는 철학적인 해석까지. 저자는 이러한 '커피'들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골라 마셔도 된다고 말하지만, 특별 메뉴인 '철학적 해석'을 꼭 읽어보길 권하고 있다. '철학카페'라는 이름을 붙인 만큼,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묵직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기에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예전부터 느꼈지만, 대작이라고 평가받고 있는 고전문학들은 인간의 존재, 실존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것들이 많다고 느낀다. 살아가면서 한번쯤은 고민해볼 기회를 가지게 되는 '나'의 존재에 대해서. 이 책도 <파우스트>, <데미안>, <구토> 같은 묵직한 문학들을 통해 그런 고민들을 같이 생각해볼 수 있는 도움을 준다. 고전의 중요성을 알지만 쉽사리 도전해볼 수 없었던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철학적 해석 부분은 조금 어려울 수 있지만, 참고 넘어간다면 고전을 읽을 때도 더욱 풍부한 생각을 가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Underline

 

 

 

 

   - "하지만 네가 내 크기를 알기 전에는 난 내가 얼마나 큰지를 몰랐어. 네가 내 나이를 알기 전에는 난 내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도 몰랐지. 네가 내 모습이 아름답다고 하기 전에는 난 내 모습이 어떤지도 몰랐어. 더구나 네가 내게 말을 걸기 전에는 난 말도 할 줄 몰랐단다. 그래서 만일 네가 없다면 난 다시 내 크기를 모르게 될 거야. 내 나이를 잊게 되겠지. 내 모습도 볼 수 없을 거야. 난 다시 벙어리가 된단다. 넌 내 거울이야. 나에게 가장 소중한 친구지. 넌, 이 넓은 우주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란 말이야." "아, 정말 아름다운 꿈이다." 꿈에서 태어난 소년은 감탄을 터뜨렸습니다. 그리고 이내 알게 되었지요. 어떤 것이 아름다운 것은 그것을 아름답게 생각하는 상대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73p)

 

 

  -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에로스의 이러한 본성을 '탐욕적'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에로스는 완전하고 철저하게 상대를 소유하려는 욕망이자, 결국에는 그와 하나가 되려고 하는 탐욕이라는 거지요. 곧 사랑으로는 상대에게 영원히 다가갈 수만 있을 뿐, 단 한순간도 하나가 될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바로 에로스로서의 사랑이 가진 존재론적 구조이자 한계인 거지요. 그래서 우리 사랑이란 깊어질수록 쓸쓸하고, 다가갈수록 허전해지게 마련인 겁니다. 알고 보면, 질투의 존재론적 자리도 바로 여기에 있는 거지요. 만일 사랑을 통해 완전하고 철저하게 상대를 소유할 수 있다면, 그래서 결국 하나가 될 수 있다면 질투라는 말은 아예 생기지 않았을 테니까요. 그렇다면 에로스 안에는 이미 질투의 씨앗이 뿌려져 있는 겁니다. (111p)

 

 

  -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못생긴 데다, 사교적이지도 못하고, 특별한 재능이나 재산마저 없다고 한다면, 그는 사회에서 인정 받거나 사랑 받기가 어렵지요. 따라서 그의 존재는 자신의 기쁨이 되지 못합니다. 하지만 가정에서는 그렇지 않지요. 가정이란 가족 중 그 누가 설령 못생겼다고 해도, 또는 성격이 사교적이지 못하다고 해도, 특별한 재능이나 재산이 없다고 해도 그의 '있음' 그 자체가 인정받고 사랑받아 기쁨이 되는 장소라는 말입니다. 바로 이것이 마르셀이 행한 '가정에 대한 존재론적 새석'이라는 거지요. (118p)

 

 

  - 인간은 이러한 존재질문을 하는, 곧 세계와 자신이 존재하는 의미를 묻는 유일한 존재자입니다. 풀도, 나무도, 소도, 양도, 그 어떤 존재자들도 이런 질문을 하지 않지요. 인간만이 자신의 존재에 대해 염려하며, 존재에 대한 질문을 하지요. 그래서 하이데거는 인간을 '존재하면서 스스로 자신의 존재 자체를 가장 큰 문제로 삼고 있는 존재자'라고 규정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정작 그렇게 간절하게 존재의 의미를 묻고 있는 우리가 그것에 대해 도대체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는 것이지요. 중요한 것은, 이때 '알 수 없다'라는 말의 의미가 무지가 아니라 무의미라는 겁니다. 즉, 자신과 세계가 존재하는 의미가 있기는 한데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뜻이 아니라, 아무리 찾아보아도 그런 것 자체를 아예 발견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190p)

 

 

  - 이어 "자유라는 것에 사랑이 깃들기는 어려워도, 사랑으로 행하는 길에 자유가 함께 행해질 수도 있다."라고도 합니다. 한마디로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서로를 사랑하는 가운데서, 아니 지배자와 피지배자라는 구분조차 없는 곳에서만 '우리들의 천국'은 비로소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이지요. 옳은 말이지요.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바로 여기에서 이청준의 정치철학 내지 유토피아공학은 한계를 드러내 보입니다. 그가 천국 건설의 해법으로 제시한 사랑이란 엄밀히 말하자면 종교적 해법이지 사회공학적 해법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 우리가 오늘날 추진하고 있는 사회공학인 민주주의에는 비록 선거에 의해 결정된다고 하더라도 통치자가 있게 마련이고, 그와 통치를 받는 사람들 사이의 대립은 불가피합니다. 민주주의란 단지 통치가 통치 받는 자들의 '동의'에 이루어진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지, '사랑'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지요. (248p)

 

 

 Add...

 

 

 시리즈로 나온 <철학카페에서 시 읽기>도 읽어봐야지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정글만리 2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알면 알수록 멀고 먼 중국, 정글 속으로 들어가라 <정글만리 2,3 - 조정래>

 

 

 

 

 After Reading

 

 

 

   아직까지도 화제되고 있는 조정래 작가의 소설 <정글만리>. 빈둥빈둥대다가 드디어 세권을 다 읽게 되었다. 완독하고서의 느낌은, 그냥 그런 느낌?

  1권을 읽고 '정글만리'의 첫부분을 맛본 뒤, 다음 편에서의 좀 더 극적인 이야기가 전개될거라 기대했지만 2,3권의 느낌도 1권과 별반 다르지 않다. 알면 알수록 뒤통수를 치는 굉장히 특별한 중국의 문화를 인물들의 상황 속에서 살펴볼 수 있는 게 주된 내용이며, 그 속에서 정글처럼 살아가는 비즈니스맨들의 사투가 굉장히 재밌고 스릴있다. 꽌시(관계)를 중요시하며 '런타이둬(사람이 너무 많아)'를 반복하는 중국의 사회는 이상할 정도로 다양한 모습을 포함하고 있다. <정글만리>는 이처럼 너무나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중국 사회의 병폐와 그에 반한 놀라운 성장등을 다뤘다. 그 이야기 속에는 중국에 인접한, 그리고 가장 많은 관계를 맺고 있을 '한국'과 '일본'에 대한 이야기도 담겨있다.

 

  그러나 이 책으로 '조정래' 작가를 파악하기엔 조금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놀랍고도 방대한 취재력이지만 우리나라 대표작가인 '조정래' 작가에 대한 기대가 컸기에, 뭔가 읽고나서 밍숭맹숭한 기분이었다. 재밌게 읽긴 했지만, 그닥 크게 남는게 없달까.. 특별한 큰 사건이 없이 비즈니스의 일상등을 다루고 있어서 소설에 큰 굴곡이 없다는 것도 살짝 아쉬운 점. 하지만 가장 좋은 점은 마치 직접 여행하는 것처럼 술술 읽힌다는 점, 실제 중국에 있는 것처럼 생생한 정보와 대화 속 이야기다. 그리고 직접 가보고는 알기 힘든 것들을 다뤄준다는 것에서 세상의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책'이라는 매체의 힘을 알 수 있게 해준다. 무엇보다도 중국, 그리고 국제적 관계, 문화 등에 관심없는 사람들에게도 쉽게 그리고 재밌게 읽힐 수 있을 듯한 이야기 때문에 좀더 폭넓은 독자들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국제 관계 속에서 더욱 높이 뻗어나갈 중국의 힘, 그리고 그 속의 인물들을 통해 중국과 많은 교류를 맺는 우리나라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생각해볼 수 있는 책. 앞으로도 더욱 커나갈 중국의 땅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더욱 궁금해진다.

 

 

 Underline

 

 

 

   - 그녀는 다른 조선족들처럼 한국을 '모국'이라고 분명하게 구분했다. 그리고 그들은 중국을 자기들의 '조국'이라고 했다. 그들의 그 명백한 태도는 처음에 한국사람들을 얼마나 당황하게 하고, 실망시켰으며, 심지어는 배신감을 느끼게 했던가. 영원히 갈 수 없는 땅으로 여겨졌던 중국과 어느 날 느닷없이 수교가 되고, 그 물결을 따라 만주의 조선족과 남한의 한국 사람들은 일순간에 한 덩어리로 뒤엉켰다. 잊을 수 없는 슬픈 역사, 민족이 강제로 이주당해 짓밟힌 땅, 독립투사들이 피 흘려 싸운 땅 만주, 거기서 힘들게 살아온 우리 민족의 성원, 독립투사들의 후손......, 이런 피의 이끌림과 역사의 책무감까지 겹쳐진 감상으로 한국사람들은 조선족들을 덥썩 껴안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들의 입에서 나온 소리. "대한민국은 나의 모국일 뿐이고, 나의 조국은 중국이다." 이 말이 자극한 감정적 배신감을 이성적 논리로 소화해 내는 데 한국사람들은 몇 년을 소모해야 했다. (2권, 247p)

 

 

  - '아하, 중국! 그것이면 안 되는 것이 없는 중국.......' 전대광은 또다시 새로운 것을 알게 된 중국에 탄복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중국이라는 나라는 새로운 사실들로 가득찬 수천 페이지짜리 백과사전을 한 장, 한 장 넘겨가는 기분이었다. 살아갈수록 끝도 없이 새로운 것이 나타나는 나라, 그래서 살아갈수록 그 실체가 알쏭달쏭 모호해지는 대상. 그래서 중국 생활 6개월이면 중국 전체에 대해서 아는 척하고, 1년이면 자기 분야에 대해서만 아는 척하고, 10년이 넘으면 아무 말도 안 한다는 말이 생겨났는지도 모른다. (2권, 302p)

 

 

  - 그 구조적인 난관을 돌파하는 것은 각 개개인이 해결해야 할 문제일 뿐이었다. 그 '개인문제'가 이름 하여 '자유경쟁'이었다. 그지없이 아름다운 것 같은 이름인 '자유경쟁'. 그것은 '그 누구의 제재나 간섭을 받지 않고 서로가 맘껏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라는 아주 고상하고 정직한 의미 같지만, 그것은 오로지 능력 있는 자만 살아남는 약육강식, 적자 생존의 처절한 정글게임이었다. 그 게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졸업반 학생들은 폭염을 무릅쓰며 방학인데도 도서관살이를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3권, 171p)

 

 

  - 그는 행복이 무엇인지 비로소 그 실체를 잡고 있었다. 사람들은 흔히 행복이 무엇인지 묻고 찾고 싶어 한다. 그것은 마치 공기처럼 보이지도 않고, 잡히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퍽 지혜롭게 말했다. 불행하지 않은 때는 다 행복이라고. 그러나 그 말은 너무 포괄적이고 구체성이 없다. '시간의 흐름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행복이다.' 그는 현재 겪고 있는 절실한 체험을 통해 행복을 이렇게 정의했다. 그는 날마다 시간을 죽이기 위해서 영자신문을 그야말로 광고까지 샅샅이 다 읽었다. 그래도 시간은 남았다. 매일 오전에 일일 보고서를 제출하러 공안에 가서 눈치를 살폈지만 금족령을 풀어줄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아쉬울 것 없는 일을 기대하는 것처럼 큰 어리석음은 없었다. '그래, 만만디에 이기는 방법은 더 만만디 하는 것 뿐이다.' (3권, 240p)

 

 

 

 Add...

 

 

 근데 정말 무섭긴 합니다. 그야말로 정글 같은 중국..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밤의 피크닉
온다 리쿠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0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풋풋함, 설렘, 그들만의 특별한 보행제 <밤의 피크닉 - 온다 리쿠>

 

 

 

 

 After Reading

 

 

 

   '모두 줄지어 함께 걷는다. 단지 그것뿐인데, 어째서 이렇게 특별한 느낌인 걸까.'

 

  고등학교의 마지막 행사로 이뤄지는 '보행제'. 북고(北高) 학생들은 밤을 새워 80km를 걷는다. 학교에서 시작해서 다시 학교로 돌아오는 코스를 도는 형식이다. 친구들과 함께 걷는 이 행사에, 주인공들은 각자 남다른 마음가짐으로 걷기 시작한다. 아침 8시부터 그 다음날 아침 8시까지, 그 중간에 행하게 되는 '밤 걷기'는 무언가 특별하다. 작년에 전학간 친구는 이 '보행제'를 너무도 사랑했고, 이번 보행제에 주문을 걸어놓았다고 한다. 도오루와 다카코, 미와코 그리고 친구들은 각자의 비밀을 안고 각자의 다짐을 가지고, 친구들의 발걸음 소리만 들리는 고요하고 어두운 밤, 가장 내밀한 시간을 걷는다.

 

  '밤'이라는 시간에 유독 각별한 건 나만이 아닐 것이다. 집안에서 혼자 감성을 짜내며 즐기는 밤 시간도 너무나 좋지만, 마음 맞는 누군가와 함께 일때 그 밤의 시간은 더욱더 편안하고 소중한 시간이다. 친구들과 여행가서 밤새우며 속닥거리는 시간, 밤 바다에 나가 거닐며 도란도란 이야기 하는 시간, 약간의 술 한잔을 곁들여 마음 속에 품고 있는 이야기를 하는 시간. 밤은 그렇게도 너무 좋은 추억을 가지는 시간이지만, 소설 속 친구들처럼 같은 복장을 하고 같은 거리를 걸으며 같은 목적으로 걷는 밤 시간은 더욱 깊은 추억을 만들어낼 것 같다. 일상과 비일상의, 어른과 아이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 보행제는 단순히 걷는 것만이 아닐 것이다. 마음 속 깊이 묻어둔 이야기들을 빼꼼하게 꺼낼 수 있는 용기를 주기도 하고, 일상 속에서 해보지 못했던 것들을 '에라, 모르겠다' 저질러 보기도 한다. 우리 학생들이 가장 힘든 고3때, 실제로도 이러한 행사가 있다면 어땠을까? 졸업식 전날 처럼, 마지막으로 친구와 속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털어낼 수 있는, 그리고 새로운 세상 속으로 나갈 수 있는 준비로서. 떨리고 힘들기도 하지만, 마음을 풀어놓고 걸은 뒤 맞는 아침, 그 아침 빛이 소설을 읽은 지금 너무나 궁금하다.

 

  단지 걷는 것뿐인데 특별한 느낌이라던 소설 속 그 친구의 말처럼, <밤의 피크닉>도 단지 걷는 이야기 뿐이지만 너무나 특별한 느낌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한발짝 한발짝 발걸음 소리와 함께 친구들의 속닥이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 잔잔하고 평화롭게. 참 신기하다. 눈에 띄게 특별한 이야기도 없지만 괜히 설레는 이 느낌은, 청춘의 이야기이기 때문일까? 나도 무언가를 추억하고 있기 때문일까? 아무튼 참 좋다.

 

 

 

Underline

 

 

 

   - 당연한 일이지만, 길은 어디까지고 이어져 있어 언제나 끊어지는 법 없이 어딘가의 장소로 나온다. 지도에는 공백도 끝도 있지만 현실 세계는 빈틈없이 이어져 있다. 그 당연한 사실을 매년 이 보행제를 경험할 때마다 실감한다. 철이 들었을 때부터 언제나 간략화된 지도와 노선도, 도로지도로밖에 세상을 파악하지 않아서, 이런 식으로 어디에나 빠짐없이 세계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게 생각되는 것이다. 그런 한편, 세계는 연속되어 있는 듯 하면서 연속되어 있지 않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한 장의 큰 지도가 아니라 많은 지도를 조금씩 여기저기에 겹치게 붙여놓았다, 하는 것이 도오루가 걸으며 느끼는 이 세계다. 그래서 곳곳에 '이음매가 울퉁불퉁하다'고 느끼는 장소가 있으며, '연하게' 느껴지는 장소와 '짙고 중요한' 느낌이 드는 장소가 있음을 깨닫는다. (20p)

 

 

  - 그래도 바다로 눈을 돌리면 아직도 낮의 영역이다. 파도에는 아직 오렌지빛 테두리가 흔들리고 있고, 하늘도 밝다. 낮은 바다의 세계이고, 밤은 육지의 세계다. 도오루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들은 그야말로 그 경계선에 앉아 있다. 낮과 밤 뿐만 아니라, 지금은 여러 가지 것의 경계선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어른과 아이, 일상과 비일상, 현실과 허구. 보행제는 그런 경계선 위를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며 걸어가는 행사다. 여기에서 떨어지면 냉혹한 현실의 세계로 돌아갈 뿐. 고교생이라는 허구의, 최후의 판타지를 무사히 연기해 낼지 어떨지는 오늘밤에 정해진다. (98p)

 

 

  - 피로라는 것은 시간과 정비례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몇 번이나 작은 언덕을 넘듯, 계단을 오르듯 체내에 쌓여가는 것이다. 해가 저물었을 무렵에는 아직 전체 일정의 반도 오지 않았다니 믿을 수 없어, 하는 절망적인 기분이었으면서, 완전히 어두워져 버린 지금 최초로 맞았던 피로의 절정은 어디로 갔는지 시간이 재설정된 듯 모두가 생기를 되찾고 있다. 몸이 익숙해진 것인지도 모르고 포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때까지는 지금부터 나아갈 길의 다난함에 겁을 먹고 몸으로 견뎌내야 한다는 것에 거부반응을 보였지만, 이젠 겨우 만 하루 어울려주는 거라는 사실에 위안을 받은 것 같다. 아니면 뇌의 착각일까. 처음 가는 길인 경우 돌아올 때가 짧게 느껴지는 것은 뇌가 이미 익숙해져서 정보처리를 줄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뇌 속의 세계에서 낮 시간은 이미 잊혀지고, 새로운 밤의 세계를 분석하느라 바쁠 것이다. 주변은 어둡고 평소에는 경험하지 않는 시간대의 활동이기 때문에, 뇌 쪽에서도 신선하게 느껴져서 몸의 피로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을지도 모른다. (112p)

 

 

  - 날이 흐릿한 것이, 공기가 무겁다. 무리는 침묵하고 있으며 보폭도 있는 대로 좁혀져 있다.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도 잊고 그러면서도 그저 타성에 젖어 앞으로 발을 내딛고 있는 것이었다. 풍경도 달라지지 않고 (라기보다는 보이지 않고) 어둠 속에서 지친 몸으로 걷고 있으니, 점점 이것이 꿈 같다는 느낌이 든다. 마음과 몸이 완전히 분리되어, 머리는 꿈을 꾸고 있는 것 같고 몸은 타인의 것 같다. 륙색과 몸은 돌처럼 굳어져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금이 가면서 파삭파삭 부서져버릴 것 같아, 모두들 상반신을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지금 여기 있는 것은 저주 같은 의지뿐이다. 길고 긴 행렬을 그 강박관념만이 지탱하고 있다. 어쨌든 걸어라. 아무것도 생각하지 마라. 그저 발을 앞으로 내밀어라. (212p)

 

 

  - 시간의 감각이라는 것은 정말로 이상하다. 나중에 돌이켜보면 순간인데, 당시에는 이렇게도 길다. 1미터 걷는 것만으로도 울고 싶어지는데, 그렇게 긴 거리의 이동이 전부 이어져 있어, 같은 일 분 일 초의 연속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어쩌면 어느 하루만이 아닐지도 모른다. 농밀하며 눈 깜짝할 사이였던 이번 한 해며, 불과 얼마 전 입학한 것 같은 고교생활이며, 어쩌면 앞으로의 일생 역시 그런 '믿을 수 없는' 것의 반복일지도 모른다. 아마 몇 년쯤 흐른 뒤에도 역시 같은 말을 중얼거릴 것이다. 어째서 뒤돌아보았을 때는 순간인 걸까. 그 세월이 정말로 같은 일 분 일 초마다 전부 연속해 있다는 걸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하고. (224p)

 

 

Add...

 

 

 

책 제목처럼, 참 이쁜 소설?.. 아무튼 참 좋았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생존자 -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삶의 해부
테렌스 데 프레 지음, 차미례 옮김 / 서해문집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삶의 해부 <생존자 - 테렌스 데 프레>

 

 

After Reading

 

 

 

   "우리들이 살아 있는 인간이라는 유일한 증거는 우리들의 불꽃같은 눈동자들이었다."

 

  <생존자>는 역사상 인간 최대의 본성을 시험했던 '죽음의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기록과 발언을 토대로, 인간의 삶을 해석하고자 하는 인문학 도서이다.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는 '생존자'라는 단어가 죽음이라는 이미지와 직결되는 부분이 다소 있어 비현실적인 상황을 만들어내는 '소설'인줄 알았지만, 실제적인 기록과 체험을 직접 적어낸 책이다. 끔찍하고 무서운 상황을 그대로 전달해야되는 주제의 특성상, 저자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감정을 조절하기 위해서 책 전체에서 건조하고 담담한 문체로 적어내고 있다.

 

  한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죽음의 위험이 하루하루 도사리고 있는 수용소 안에서 '생존'이란 것은 보다 조직적인 관점이 중요해지며, 냉정한 결단력이 요구됨으로써 존재한다. 생존자들이 '생존'이후에 과거를 회상하게 되는 것을 보면 그들이 말하는 주어는 '나'에서, '우리'로 바뀌기 시작한다. 자신만의 것이 아니라, 너무나 많은 사람들과 함께 공유한 경험이기 때문이다. 단지 나 자신만의 체험이 아닌 우리의 '생존'을 위한 투쟁이었으며, 가혹한 세계를 기억하고자 하는 몸부림 또한 많은 사람들이 소리없이 동의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책 속에서 말하는 '생존자'는 '인간으로서의 행동 방식을 영위하려는 의지를 잃지 않은 채 공포와 절망을 견디어 낸 사람, 즉 육체 뿐만 아니라 정신까지도 살아남은 사람'이다. 인간으로서 견디지 못할 정도의 더러운 공간에서 살아남은 사람, 모든 사실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 암묵적으로 동의해 '증인'으로서 살아남은 사람, 현실보다 차라리 나은 매일 밤의 악몽을 견디며 살아남은 사람, 수용소 조직을 형성하며 서로 도우며 살아남은 사람이다.

 

  "나는 17개월 동안을 레닌그라드의 감독에서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사람이 내가 작가였다는 것을 알아보고 알은체를 했다. 그러자 내 뒤에 서 있던, 입술이 시퍼렇게 얼은 여인이 내 귀에 속삭이는 것이었다. '당신은 이 모든 것을 글로 쓸 수 있나요?' 나는 물론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원래 어떤 모습이었는지 상상하기도 힘든 그 여자의 얼굴에 미소 비슷한 것이 스쳐지나가는 것이었다." (64p)

 

  인간의 모든 것, 정신마저 파괴시키려고 노력했던 그 죽음의 장소들에서 살아남고자 하는 의지를 가진 '생존자'들의 내면은 어떠했는지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살아남아 그 끔찍한 이야기를 전해줄 수 있었는지 탐구해볼 수 있었던 인문학 책 <생존자>. 그들이 가장 원했던 일, '그 많은 사람들의 죽음, 슬픔, 끝없이 따라다니는 고통이 완전히 망각의 세계 속에 사라져 가지 않게 하는' 최소한으로 할 수 있었던 일이 실감나게 재현된 책이다. 극한의 세계를 '책'으로 체험하면서도 눈살이 찌푸려지거나 오싹할 수 있지만, 자신의 목숨을 걸어 증거와 기억을 남기기 위해 노력했던 생존자들의 모습을 보면 숙연한 마음으로 읽게 된다.

 

 

 

Underline

 

 

 

  - 생존자에게 있어서는 내려가는 길이 다시 곧 올라가는 길이 된다. 다른 유형의 영웅들과 마찬가지로 생존자들도 바로 사선 위에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선을 넘어가 버리지 않고 그 선상에 '머문다'는 것이 구별되는 점이다. 그리고 그들의 특이한 자유가 정말 현실화되는 것은 존재와 사멸이 팽팽히 맞선 지점에서이다. 그들의 혜안은 마음속의 환상으로 흐려지지 않는다. 그들은 돌발적으로 닥친 위기 속에서 자신들의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갑자기 발견하고 놀라지 않는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매 순간마다 죽음이 곧 닥쳐온다는 사실을 인식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항상 죽음과 접하고 있으므로 생존자들은 죽음을 어느 정도 가볍게 여기는 마음을 갖게 된다. 그들은 언제 죽을지도 모르지만, 살아 있는 한 결코 두려움을 느끼는 일은 없다. 그리고 죽음에 가까워질수록 생존자들은 우리들보다 더욱 절실하게 삶에 뿌리박게 된다. 그들의 살아남으려는 의지는 삶 자체로 추진되는 것이며, 강하게 튕겨 오르는 용수철처럼 완강한 힘을 가진다. (55p)

 

 

  - 정신적 파괴는 대량 학살의 요구와는 종류가 다른 것인데도, 그 자체로 하나의 목적이 된다. 즉 영혼을 죽이는 것이 목표다. 인간의 정신력을 말살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공포나 극도의 궁핍보다도 우선 생존자의 순수성과 가치 의식에 대한 무자비한 공격이 선행되었으며, 이것이 배설물에 의한 고문으로 나타난 것이다. (...) 왜 그토록 비참하게 수용자들을 학대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까? 왜 그런 동물 이하의 상태에까지 인간들을 몰아넣지 않으면 안 되었을까? 이러한 의문에 대한 가장 의미심장하고도 정곡을 찌른 해답은 "SS 대원들의 작업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다시 말해서 희생자들이 도저히 인간이라고 보기 힘든 천하고 더러운 몰골을 하고 있을수록, 학살자들은 인간을 대량 살육한다는 공포감을 덜 느끼게 되는 것이다. (119p)

 

 

  - 동정심이란 좀처럼 가져서는 안 되는 것이었고, 특히 자기 연민에 빠지는 것은 절대로 금물이었다. 감정은 판단을 흐리게 하고 결단력을 약하게 할 뿐 아니라, 지하조직의 모든 멤버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었다. 집단 강제수용소의 사람들이 죽음의 운명을 거부하기 위해서는, 도덕적인 상처를 지불하고라도 삶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정신적인 큰 손상을 입더라도 삶은 그대로 지속되어야 했고, 전략적 타협과 도덕적 타락을 분별할 수 있는 명확한 시선도 그대로 유지해야 했다. 매번 어려운 선택이 강요되었지만, 어떤 임무 앞에서는 모든 사람이 평등할 수가 없었다. 가장 선량하고 칭찬받을 만한 훌륭한 인격을 갖춘 사람들이라도, 작전에 투입될만한 행동력은 부족한 경우가 많았다. (234p)

 

 

  - 굶주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의 빵을 훔칠 만큼 도덕적으로 타락한 재소자가 생겼다 하더라도, 그를 SS대원들에게는 물론 구역 감독에게도 보고하는 사람은 없었다. 같은 방을 사용하는 사람이 직접 처벌했던 것이다. 그가 죽을 만큼 매를 때리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화장터에 보내지기 꼭 알맞게 만들어 버렸다. 사람들은 모두 이 빵의 법률을 인정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 법은 실제로 수용소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도덕성을 유지시키고, 동시에 서로 신뢰할 수 있는 기반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모두들 깨달았기 때문이다. (255p, Weinstock)

 

 

  - 이곳에 온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이 예전의 바로 그 사람인가를 의심하게 되는 순간,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해 버린다. 인간의 존재는 간 곳이 없고 그 자리엔 비참하고 가련한 동물만이 남아있다. 모든 것을 빼앗긴 벌거숭이의 동물, 심한 구역질을 참아가면서 타인의 땀으로 흠뻑 젖은 누더기를 가지고 열심히 자신의 알몸을 가리고 있는 동물. (315p, Szmaglewska)

 

 

  - 죽음에 대한 자각은 삶을 향한 강력한 관심을 일으키는 데 반하여, 죽음에 대한 부정은 격렬한 파괴 행위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문명사회와 극한 상황의 궁극적 차이, 즉 '우리'와 그들의 차이는 아마도 옥타비오 파스의 다음과 같은 짧고 신랄한 말 속에서 파악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정신은 죽음에 맞설 때면 삶이 되고, 삶에 맞설 때는 죽음이 된다." (356p)

 

 

Add... 

 

 

가장 충격적인 부분은 '배설물의 공격' 편이었습니다....

생각보다 더욱 참담한 모습에 할말이 없어지는 부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