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리맨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 모두 언젠가는 죽는다 <에브리맨 - 필립 로스>

 

 

 

 

 

 

  "그 무겁고, 무덤 같고, 바위 같은 무게는 말한다. 우리 모두 언젠가는 죽는다고" 

 

  소설은 한 평범한 남자의 장례식으로부터 시작된다. 초반부터 '죽음'이란 이미지가 가득 차 있는 소설. 언제 어디서나 있을만한 흔한 장례식에 뒤이어, 흔한 만큼 평범했지만 결코 평범하지만은 않았던 그 남자의 삶에 대한 회상이 이어진다. 그 회상의 첫 부분에서 나오는, 삶에서 단언컨대 가장 끔찍한 첫 경험이었던 '탈장수술'. 병원에서 있었던 한 소년의 죽음과 마취 직전에 다가왔던 극심한 공포감은 그 남자에게 있어서, 살아가면서 아픔과 고통,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사건이었다.

 

  몇 차례의 이혼, 그리고 계속해서 찾아오는 신체상의 문제는 삶을 지탱하고 있던 그를 더욱 무력하게 만드는 것들이었고, 이혼한 아내와 아들들은 자신에게 어떠한 애정 따위 없으며 삶의 외로움을 더욱 극심하게 만드는 원인이다. 그런 그에게 한 가지 희망은 딸인 '낸시'와 '피비'. 그리고 평생 바라보고 살아왔던 또 다른 꿈 '그림'이었다. 그렇게 그림에 대한 열망을 삶의 후반부에서 작은 일상으로 이루어내고, 젊은 여자를 유혹하고 만나면서 그는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다고 할 수 있는 평범한 삶을 보낸다.

 

  노년기에 접어든 한 남자의 쓸쓸한 인생에의 관조는 소설 속에서 중간 중간 격한 감정으로 나타난다. 담담하고 냉정한 어투로 이야기되는 삶의 회상은 점차 나이가 먹어갈수록, 죽음과 고통에 가까워져갈수록 절망적이고 외롭다. 죽는 순간에 어떠한 감정으로 그 죽음을 맞이할지는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것이고, 살면서 그 감정이 좋은 것이 되게끔 걱정하고 준비하고 대비한다. 소설의 끝부분에서는 주인공이 결국 소설의 마지막,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처음부터 두려워하던 바로 그 때로' 되돌아간다는 표현이 나온다. 그 마지막 부분은 소설의 처음과 끝이 만나게 되는 지점이며 더욱더 아이러니한 감정을 안겨주게 된다. 

 

  그런데, 삶은 정말 '무'일까, 아니면 죽음과 맞닿을 때의 삶이 '유'에서 '무'로 변해버리는 것일까. 주인공의 마지막 감정과 회상은 체념일까, 저항일까. 삶의 마지막에서 더 이상 초조하고 불안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이 바라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런 부정적인 감정까지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닌지 모르겠다.


 

 

  - 동생인 로니가 먼저 무덤으로 나섰다. 손에 흙을 한 줌 쥐자 그의 몸 전체가 떨리고 흔들리기 시작했다. 당장이라도 거세게 토해버릴 것 같았다. 그는 아버지를 향한 감정에 사로잡혔지만, 그 감정은 적대감이 아니라 적대감 때문에 빠져나올 수단을 찾지 못 했던 다른 감정이었다. 입을 열었지만, 일련의 괴상한 헐떡거림밖에 나오지 않았다. 무엇이 그를 사로잡고 있는지 몰라도, 그 스스로는 절대 그것을 끝내지 못할 것처럼 보였다. (21p)

 

 

  - 그는 아버지가 세상에서 1센티미터씩 사라지는 것을 다 지켜보았다. 맨 끝까지 그 과정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 죽음 같았다. 그렇다고 첫 번째 죽음보다 덜 끔찍하지도 않은 죽음. 그는 갑자기 밀려오는 감정에 실려 자신의 삶의 켜들을 뚫고 저 아래로, 저 아래로 내려갔다. 병원에서 그의 아버지가 갓 태어난 손자 세 명을 처음으로 안아주고 있었다. (67p)

 

 

  - 그는 늘 안정에 의해 힘을 얻었다. 그것은 정지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것은 정체였다. 이제 모든 형태의 위로는 사라졌고, 위라는 항목 밑에는 황폐만이 있었으며, 과거로는 돌아갈 수 없었다. 이질감이 그를 사로잡았다. '이질감', 이것은 그의 언어에서는 그에게 낯선 어떤 상태를 묘사하던 말이었다. 그러나 그의 그림 교실 학생 밀리선트 크레이머가 자신의 상태를 한탄할 때 그 말을 묘하게 도드라지는 느낌으로 사용하면서 달라졌다. 이제 그 어떤 것도 그의 호기심에 불을 붙이지 못했고 그의 요구에 답을 해주지도 못했다. 그의 그림도, 그의 가족도, 그 이웃도. 아침에 널을 깐 산책로에서 그의 옆에서 조깅하는 젊은 여자들을 빼면 아무것도. 맙소사, 그는 생각했다, 한때 나였던 남자! 나를 둘러쌌던 생활! 나의 것이었던 힘! 그때는 어디에서도 '이질감'은 느낄 수 없었다! 한때는 나도 완전한 인간이었는데. (135p)

 

 

  - "(...) 노년은 전투예요. 이런 게 아니라도, 또다른 걸로 말이에요. 가차없는 전투죠. 하필이면 가장 약하고, 예전처럼 투지를 불태우는 게 가장 어려울 때 말이에요." (149p)

 

 

  - 자신이 없애버린 모든 것, 이렇다 할 이유도 없는 것 같은데 스스로 없애버린 모든 것, 더 심각한 일이지만, 자신의 모든 의도와는 반대로, 자신의 의지와는 반대로 없애버린 모든 것을 깨닫자, 자신에게 한 번도 가혹하지 않았던, 늘 그를 위로해주고 도와주었던 형에게 가혹했던 것을 깨닫자, 자신이 가족을 버린 것이 자식들에게 주었을 영향을 깨닫자, 자신이 이제 단지 신체적으로만 전에 원치 않았던 모습으로 쪼그라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수치스럽게 깨닫자, 그는 주먹으로 가슴을 치기 시작했다. 그의 자책에 박자를 맞추어 쳤다. 심장제세동기를 불과 몇 센티미터 차이로 빗나갔다. (164p)

 


 

  

짦은 소설인데도 어떤 긴- 소설보다 감동이 더할 때,

이런 책은 더 좋아지는 것 같아요. (단순히 짧다고 좋은 건 아님 ㅎㅎㅎ;;)

중간 중간 베껴 쓰고 싶은 멋진 글들도 많고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 화가 풀리면 인생도 풀린다, 개정판 틱낫한 스님 대표 컬렉션 1
틱낫한 지음, 최수민 옮김 / 명진출판사 / 2013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내 몸을 감싼 불편한 감정에서 자유로워지는 법 <화 - 틱낫한>

       

 

 

 

 

   

  당신은 갑자기 화가 나서 참지 못할 때, 스트레스가 마구 쌓여서 이도 저도 못할 때 어떻게 하나요? 갑작스럽게 끓어오르는 화는 순식간에 자신의 몸을 감싸게 됩니다. 사소한 이유가 될 수도 있고 누군가와 얽힌 큰 사건이 될 수도 있겠지요. 쉽게 수그러 들 때도 있지만, 도저히 참지 못해 소리를 지르고 울고 욕을 하기도 합니다. 화를 밖으로 미친 듯이 분출하는 거죠. 참 스트레스도 많고, 화나는 것도 많은 세상입니다. 이 책의 저자인 틱낫한 스님도 '눈 돌리면 화나는 것 투성이'라고 말할 정도니까요.

  저자인 틱낫한은 베트남의 승려이자 시인, 평화운동가입니다. 그는 평생을 평화를 위해서 힘써왔고 80년대부터는 명상센터인 '플럼빌리지'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틱낫한 스님은 명상과 관련된 많은 책을 쓰기도 했는데, 이번에 제가 읽은 책은 하루에도 몇 번씩 찾아올 수 있는 '화(anger)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비슷한 시리즈로 <힘>, <기도> 등이 있습니다.) 이 책은 도대체 '화'는 어디서부터 오는지, 그 '화'를 멈출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화'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에 대해 차분하게 이야기해줍니다.

  스님에 의하면 '화'는 우리 안에 있는 상처이고, 마치 아기와도 같은 존재입니다. 무언가 고통스럽고 불만이 있을 때 아기는 시끄럽게 울지요. 그 아기를 달래기 위해서 '어머니'의 역할을 맡고 있는 우리는 그를 감싸 안고 울음의 근본 원인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 '화'를 남들에게 무조건 돌리면 안된다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무조건 가만히 참아서는 안됩니다. 화는 그때그때 풀어주어야 합니다. 화를 푸는 방법으로, 스님은 몇 가지 방법을 제시하는데, 만약 혼자만의 '화'라면 자신의 '화'를 자각하고 호흡과 명상으로 긍정의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만약 남들과의 관계로 인해서 '화'가 일어난다면, 그 당사자에게 나의 상태를 차분하게 설명하고, 그의 이야기를 '연민'의 감정으로 듣고 나와 그를 감싸 안을 수 있다는 것이죠.

  마치 '생생하게 꿈꾸면 이루어진다' 같은 이야기처럼 허황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생각해보면 우리가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는 부분들인 것 같습니다. 바쁘고 시끄러운 세상에서 자신만의 시간을 갖기 쉽지 않은데다가, 그리고 가장 중요한 '용기'를 쉽게 내기란 어려우니까요. '화'를 극복하려는 용기, 누군가와 관련된 '화'를 바른 방법으로 풀어내고자 하는 용기말이지요. 이 책은 그러한 용기를 가지도록 격려해주는 것 같습니다. 확실하게 '화'를 푸는 것에 대하여 정확한 해답을 주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마음을 평안하게 하고 맑은 정신을 갖게 하는 데에는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책을 다 읽고 난 뒤 뭔가 편안한 마음이 드는 걸 보면요.


 

 

 

   - 화는 우리의 적이 아니라 우리의 아기다. 화는 우리의 위장이나 폐와도 같다. 위장이나 폐에 질환이 있다고 해서 우리는 그것을 떼어버릴 수 없다. 화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화를 받아들이는 것은 그것을 잘 보살필 수 있다는 것을, 긍정적인 에너지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있기 때문이다. (36p)

 

 

  - 화가 치미는 순간에 우리는 대개 그 원인을 타인에게 돌리기가 쉽다. 자신이 당하는 모든 고통이 다 남들 때문에 빚어진 것이라고 믿으려 한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바로 자기 안에 들어 있던 어떤 화의 씨앗이 고통을 일으킨 주요 원인이라는 것을 이내 알 수 있다. (...) 우리는 누구나 의식의 깊은 곳에 화의 씨를 갖고 있다. 그런데 사람에 따라서는 화의 씨가 가령 사랑이나 이해 같은 다른 감정의 씨보다 훨씬 더 큰 경우가 있다. 화의 씨가 더 큰 것은 그것을 다스리는 훈련을 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각의 에너지를 길러내기 시작하면, 우리의 고통이나 불행의 원인이 타인들이 아니라 우리의 내면에 들어 있는 화의 씨앗이라는 사실을 맨 먼저 통찰하게 된다. 타인들은 단지 부차적인 원인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42p)

 

 

  - 비가 내릴 때 우리는 햇빛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비행기를 타고 높이 올라가 구름 속으로 들어가 보면 다시 햇빛을 보게 된다. 햇빛이 늘 거기에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그제야 새삼 깨닫는다. 이것과 마찬가지로, 분노와 절망의 순간에도 우리의 사랑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대화하고 용서하고 연민의 정을 베풀 능력이 늘 거기에 있다. 우리는 이것을 반드시 믿어야 한다. 우리에겐 분노와 고통이란 감정만이 있는 게 아니다. 우리의 마음속에는 사랑하고 이해하고 연민을 가질 능력이 있다는 것을 늘 깨달아야 한다. 그러한 사실들을 잊지 않고 있으면 비가 내릴 때도 절망하지 않을 수 있다. (101p)

 

 

  - 우리는 삶에서 해야 할 일이 너무도 많다. 그러므로 무엇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일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대학 학위를 얻으려면 6년이나 8년이 걸린다. 참으로 긴 시간이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학위를 얻지 않으면 안 된다는 믿음이 긴 시간을 투자하게 한다. 학위가 행복의 우선 조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삶의 행복과 안녕을 위해서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있을 수도 있다. 아버지나 어머니나 배우자와의 관계를 개선시키는 것이 그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거기에 시간을 얼마나 들이는지? 관계를 개선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시간을 우리는 충분히 들이는지? (191p)

 

 


 

 

  

책 뒤에 나와있는 부록들은, 명상에 관련된 것들입니다.

온몸을 자각하기 - 다리를 자각하기 등 반복되는 행동들이지만

왠지 해보면 편안하고 좋을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
앨리스 먼로 지음, 서정은 옮김 / 뿔(웅진)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성숙한 감성이 채워진 아홉 가지 이야기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 - 앨리스 먼로>

 

 

 

 

 

 

 

 

 
 
  제대로 된 독서 습관이 자리 잡힌 지 얼마 되지 않은 나는 수상작이나 유명한 고전들에게 많은 신뢰를 하는 편이다. '이 책은 수상작이니 정말 멋진 작품이고, 배울 점이 많겠지.' 생각하면서. 아마도 '검증된' 책을 많이 읽으려고 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러다 보니  가끔은 버거운 작품들을 만나는 경우가 있다. 세상에 수많은 책이 있고, 취향이 다르니 어떠한 책이 안 맞고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가끔은 아쉽다. 조금만 더 잘 읽혔으면 좋았을걸, 조금만 더 이해할 수 있는 성숙함이 있었으면 좋았을걸, 하고.
 
  이 단편집을 쓴 작가 '앨리스 먼로'는 2013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캐나다의 여류작가다. 수상 소식이 인터넷에 알려졌을 때,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작가라는 것에 놀랐고, 작가의 소설들은 거의 단편소설집이 전부였다는 것에 또 한 번 놀랐다. 평소 단편보다는 장편소설을 선호하는 편이었지만, 이 작가의 단편소설은 굉장한 힘이 있겠구나 하며 그녀의 책을 처음으로 접해보았다.
 
  여러 개의 단편에서 성숙한 감정들이 물씬 풍기고 있다. 간단해 보이지만 무언가 의미 있어 보이는 단편집의 제목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이라는 단어들의 조합처럼, 여류작가의 섬세한 감성이 느껴진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단편은 책의 맨 끝에 나왔던 <곰이 산을 넘어오다>였다. 2008년의 영화인 <어웨이 프롬 허>의 원작이어서 그런지 읽기 전 기대가 컸었고 책 속의 여러 단편들 중 가장 잘 읽혔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부인을 바라보는 남편의 시선'이라는 확실한 상황이 정해져있고 어느 정도 결말도 드러내고 있기도 하니, 작가가 이야기를 통해 건네주고 있는 듯한 감정을 어느 정도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다음으로 인상 깊은 작품들은 문장이 특히나 아름다웠던 <기억>과 <물 위의 다리>. 앨리스 먼로의 문체는 확실히 좋았다, 마치 한낮에 햇빛이 마구 쬐여드는 실내에서 아른아른한 기분을 느끼는 듯한 글들.
 
 그러나 이야기들에 담긴 감정들을 이해하기엔 내가 아직 어렸던 것일까. 아직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결혼'이라는 세계, 그리고 또 다른 삶에 대한 욕구와 생활과의 균형, 사랑인지 아닌지 그저 관심인지 아리송한 감정들, 자신만의 공간을 내어주고 싶지 않은 이기적인 마음... 작품 속에 드러나는 생각들은 이렇게 하나하나 생각해볼 수는 있지만 깊이 공감하기는 아직 어려웠다.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이야기가 왠지 나른하고 몽롱한 느낌이라 더욱 몰입이 안된 탓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중에, 더욱 많은 삶이 채워지고 경험해보지 못한 많은 감정이 기억 속에 차곡차곡 쌓아지면, 이 책도 다르게 다가올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이 작품은 아직은 나에게 너무 일렀다. (흠, 그런데 나중에 읽어도 별 감흥이 없다면.... 몰라. ) 후에 다시 한번 읽어보기라 약속하며 다시 책장에 꽂아두기로 했다.
 

 
 

   - 그녀가 정말 그 사실을 잘 안다는 걸, 그녀와 함께라면 다 괜찮을 거라는 걸 그는 확신할 수 있었다. 그에게 필요한 건 바로 조해너 같은 사람이었다. 기꺼운 감사의 마음이 밀려왔다. 고맙다는 마음이 특히 상대방이 그런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 상황에서라면, 부담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반응이라는 걸 그는 이제 깨달았다. 뭔가 새로운 변화를 내부로부터 감지할 수 있었다. 바로 이게 내게 필요한 변화였어. 그는 전에도 늘 이런 말을 하곤 했지만, 이번에야말로 이 말이 진실임이 입증될 것 같았다. 따뜻한 겨울, 상록수 숲의 향기와 익어가는 사과들. 가정을 꾸리는 데 필요한 모든 것들. (75p,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

 

 

- "가서 좋은 게 있을지 잘 모르겠어요. 좋은 시절도 있었겠지만, 지금 그녀는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거든요. 당신은 상상도 못할 거예요. 어떨 때는 그녀가 연극을 하는 것 같은 생각도 들어요. 일테면 종일 한자리에 앉아 누가 말을 걸든 간에 '아직도 건강하고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지.' 계속해서 그 말을 듣고 있으면 미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그러다가 또 어떤 날은 멀쩡하게 대답을 하기도 하고요." 그녀가 말했다. (158p, 어머니의 가구)

 

 

- 마이크는 이 모든 것을 나와는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와 함께 있었으므로 나 역시 그것들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다. 나는 그의 시선으로 그리고 동시에 나의 시선으로 그것들을 바라보았다. 내가 받은 인상은 본성상 말로 표현될 수 없는 것이라서 그저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실질적으로 쓸모가 있는 것은 그의 의견들이었다. 헛간 입구의 크고 흰 바위는 아래쪽 경사면의 작은 바위들 위를 날아 마구간 문 옆의 단단한 땅 위로 한 번에 착지하기 위한 디딤돌이 되었다. 나무들, 특히 가지를 타고 베란다 지붕으로 올라갈 수 있는 집 바로 옆의 단풍나무들은 모두 기어오르기 위한 기둥이 되었다. (217p, 쐐기풀)

 

 

- 첫 번째 시를 받아본 후 그녀는 무슨 답을 해야 할지 고심했다. 뭔가 감상 평 같은 말, 하지만 엉뚱하지 않은 말을 해야 할 텐데. 브렌던이 들을 수 없을 만큼 멀리 갔을 때 그녀가 한 말이라곤 고작 "시, 고마웠어요."라는 한마디 뿐이었다. "재미있었어요."라는 말은 할까 하다가 참았다. 라이오넬은 고개를 휙 젖히더니 대화를 중단시키려는 듯한 소리를 냈다. 시는 계속해서 도착했지만 로너는 이제 더 이상 시에 대해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 시가 메시지가 아니라 제안일지 모른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를테면 브렌던이 생각하는 것 같은, 구애의 제안은 아니었다. 시에는 그녀에 대한 감정은 물론, 사적인 내용은 조금도 포함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라이오넬의 시를 읽을 때면 그녀는 봄철에 보도를 걸을 때 종종 눈에 들어오는 희미한 그림자가 생각 나곤 했다. 지난해의 젖은 낙엽들이 남긴 그런 자국들 말이다. (264p, 포스트앤드빔)

 

 

- 데려가 주세요.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다른 데로 가요 대신 그녀는 다른 데로 데려가 주세요라고 부탁했던 것이다. 그녀에게는 이 사실이 중요했다. 모험, 그리고 결정권의 이전. 완벽한 모험과 결정권의 이전. 다른 데로 가요라고 말했다면 자기가 먼저 시작한다는 점에서 모험은 여전히 존재했겠지만 자신을 온전히 내맡기는 포기는 없었을 터이고 그 순간의 에로틱한 흥분 역시 모두 사라지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그 역시 선택권을 포기하며 다른 곳 어디요?라고 물었다면 그 경우 역시 에로틱한 긴장감은 모두 증발하고 말았을 터이다. 그는 그때 자신이 말했던 것처럼 바로 그렇게 대답해야만 했다. 알았어요라고. (319p, 기억)

 

 

 

 

  이 책보다 조금 더 알려진 <행복한 그림자의 춤>도 비슷한 느낌일까요, 집에 사다 놓긴 했는데 펼쳐보기 조금 겁납니다 ;

이번에 문학동네 세계문학으로도 하나 출판되었던데 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이 엠 넘버 포 4 - 말할 수 없는 비밀 로리언레거시 시리즈 4
피타커스 로어 지음, 이수영 옮김 / 세계사 / 201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 권을 읽으면 그다음을 읽지 않을 수 없는 <아이 엠 넘버 포 3, 4 - 피타커스 로어>

   

 

 

 

 

  "오랜 동안 감춰져 있던 비밀의 장막이 걷히고 긴 시간 흩어져 있던 진실의 조각이 맞춰진다

  그들 앞에 서서히 형체를 드러내는 진실의 실체는"

 

  난 시리즈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나마 완결 난 걸 읽는 건 괜찮지만, 작가가 계속해서 쓰고 있는 시리즈물은 도저히 기다릴 수가 없어서다. 그래서 왠지 시리즈물을 시작하는 것 자체가 좀 겁이 나는데, 이 '아이 엠 넘버 포'는 내가 유일하게 기다리면서 읽고 있는 시리즈다. 처음엔 세계사 출판사의 서포터즈로 이 책의 1권을 만났고, 영화로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권을 보고, 우연히 티비에서 영화가 나와서 봤지만 영화는 완전히 기대 이하.. 이 시리즈는 무조건 책으로 보는 것이 낫다. (영화의 속편이 나올지 안 나올지도 모르겠다. 너무 흥행이 안되서).

 

  기본적인 내용은, ' 로리언'이라는 행성에 다른 행성에 사는 모가도어 인들이 침략하기 시작하고, 그중 9명의 아이들만이 살아남는다. 그들은 '가드 '라 불리며 보호자인 '세판 '과 함께 로리언 행성을 탈출하여 지구로 도망쳐온다. 그 탈출 때 로리언의 원로들이 걸어놓은 방어체는 '이 아이들은 순서대로만 죽일 수 있다 '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죽을 때마다 나머지 번호의 가드들 다리에는 표식이 생겨난다. 그러던 어느 날 넘버포의 다리에 3개째의 표식이 나타난다. 죽음의 표적이 된 넘버 포 '존'은 필사적으로 도망치고, (여기까지가 1권 정도) 그 후 지구 여러 곳에 흩어져 있던 가드들이 서서히 모이게 된다. 그들은 힘을 합쳐 자신들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적들에게 맞서기 위해 힘을 기르기 시작한다. (2,3권 완전 축약) 그리고 4권에서는 드디어 모든 아이들이 모인다. 다양한 능력 (염력, 투명인간, 불을 다루는... 등)을 가지고 있는 그들은 자신들을 둘러싼 비밀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약간은 유치한 판타지 이야기일수도 있지만, 이상하게 중독되고 빠져든다. 한 권을 읽으면 그다음을 읽지 않을 수 없다. (아마 많은 책이 그러겠지만, 이건 도저히 궁금해서 참을 수 없는 ^^;) 그리고 4권에는 반전이 등장한다. 그것도 조금 여러 가지?  전 6권의 시리즈 중 후반에 돌입했으니 비밀이 하나씩 등장하기 시작하는데, 나에겐 예상할 수 없는 반전이었다. 또한 내가 고등학교 때 엄청 빠졌던 트와일라잇 시리즈 그건 로맨스가 반이었지만, <아이 엠 넘버포>는 적당히 감질나게 등장한다. 또한 4권 내내 끊임없이 이어지는 긴장감이, 이 시리즈에 몰입하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다.

 

 한가지 함정은, 작가가.... 참 느리게 쓴다는 것이다... 3권과 4권도, 정확히 1년의 시간이 걸려서 나왔다. 앞으로 또 1년은 어떻게 기다릴까..

기다릴 자신이 없다면, 아예 완결이 난 후에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아마... 완결은 2년 뒤겠지요?)

 

  

   

시리즈의 4권이기 때문에, 스포 될 걸 어떻게 고를까 고민하다가...

 그냥 언더라인은 생략했습니다. 아무튼 전 밤새우면서 2권을 읽었답니다...... ㅠㅠㅠㅠ

 

1권 http://pretty9121.blog.me/110153434662  

2권 http://pretty9121.blog.me/110165981931   

궁금하시다면 ... 1,2권의 리뷰도... 비루하지만요 ㅋㅋ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잘 있지 말아요 - 당신의 가슴속에 영원히 기억될 특별한 연애담
정여울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가 사랑하기 전에 알았으면 좋았을 것들 <잘 있지 말아요 - 정여울>

 

 

After Reading

 

 

 

   세상에는 많은 사랑이 있다. 그리고 세상을 담은 '책'과 '영화', '뮤지컬' 등에도 굉장히 많은 사랑이 있다. 물론 거기에는 약간의 판타지가 덧입혀지지만 사랑이라는 감정의 본질은 똑같이 살아있다. 당기려 하지만 자꾸만 낯선 사람이 돼버리는 영화 <클로저>의 사랑, 자신의 추한 모습을 감추고 진정한 사랑을 찾으려는 <오페라의 유령>의 사랑, 지독히 개인적인 <달과 6펜스>의 대가도 보답도 바라지 않는 사랑,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영혼에 이끌리는 듯한 <베니스에서의 죽음>의 사랑....

 

  '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는 위안을 던지는 <잘 있지 말아요>라는 사랑 에세이에는, 이처럼 가지각색의 '사랑'이 등장한다. 작가는 이 사랑의 모습을 사랑, 연애, 이별, 인연이라는 네 개의 타이틀로 분류하여 이야기한다. 이들 사랑의 모습은 때로는 마치 사랑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것도 있지만, 빛깔이 다른 사랑이며 형태가 다른 사랑이다. 그것을 보고 누군가는 '이런 사랑이 어딨어'라고 핀잔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다양한 매체 속의 사랑보다도 더 다양한 모습의 사랑을 행하며 살아간다. 평범하게만 보이는 사랑도, 그 사랑을 느끼는 당사자에게는 무척이나 특별한 것이기에..

 

  작가 정여울의 글은 생각보다 더욱 감성적이고 예쁘고, 흡인력 있다. 지금까지 보아왔던 '책 에세이'나 '인문학 에세이'와 비슷한 면이 있지만, 몇십 개나 되는 사랑을 이야기하는데도 지루함 없이 읽어내려가게 만드는 것은 작가의 글이 무척이나 좋았던 이유도 있었다. 그녀는 책 속에서, 영화 속에서 공감했던 사랑의 아픔을, 우연을, 야속함을 이야기하면서, 독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사랑의 아픈 모습이 이렇게나 많이 드러나고, 과거의 사랑이 쓰디쓴 추억으로 남는 경우도 많은 것처럼, 사랑을 두려워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또다시 사랑에 뛰어들고, 옆에 있는 사람과 행복을 꿈꾸는 많은 이들의 모습은 우리의 삶에서 '사랑'이 결코 작은 부분이 아님을, 사랑에는 상상할 수 없는 특별한 낭만이 있음을 증명해주는 것이 아닐까. <잘 있지 말아요> 같은 책들은 이러한 특별한 낭만을 보다 잘 가꿔나갈 수 있도록 용기를 준다. '사랑하기 전에 알았으면 좋았을 것들', 그것은 또 다른 사랑에서 배운다.

 

   

Underline

 

 

 

   - 사랑에 대한 이야기들은 어떤 기계장치로도 지울 수 없는 메모리 같아서,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아주 작은 기억의 촉매만으로도 환하게 되살아난다. 이 사랑 이야기들은 수없이 영화나 연극이나 뮤지컬로 리메이크되었지만, 시대가 변할수록 더욱 새로운 울림으로 되살아난다. 영화에서 본 사랑 이야기들은 소설로 다시 읽을 때 더욱 섬세한 울림으로 되살아난다. 마치 엠피스리로만 듣던 음악을 오래된 카페에서 엘피판으로 들을 때의 반가움처럼. 단순한 기계음보다 더욱 다사롭고, 소리의 질감 하나하나가 되살아나는 느낌이 좋다. (18p)

 

 

  - 만약 인생의 클라이맥스가 사춘기에 이미 끝나버렸다면 어떨까? 우리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 미래가 아니라 과거에 있다는 것을 명백히 깨달아버린다면, 과연 '과거보다 결코 아름다울 리가 없는 미래'를 향해 묵묵히 성실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가장 아름다운 세계가 과거에 이미 끝나버렸다면, 우리는 과연 그저 과거를 추억하는 것만으로 만족하며 현실을 인정할 수 있을까. (68p)

 

 

  - 많은 사람들은 '계'를 지키기 위해 '색'을 포기한다. 계율의 그물망을 뚫고 욕망을 택한 사람들은, 욕망의 대가를 철저히 치러내야 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계율의 물샐 틈 없는 수비를 뚫고 기어이 자신만의 색을 이루어낸다. 그 색은 사랑일 수도, 신념일 수도, 공동체일 수도 있다. 계율이 가로막는 모든 금지된 길들 위에 인간의 색이 꿈꾸는 피 묻은 이정표가 세워진다. (204p)

 

 

  - 애당초 '바로 너'를 원하면서도, 왜 '너 아닌 모든 것'을 향해 가능성을 타진하는 것일까. 너무도 행복한 사랑에 빠져 있을 때, 왜 인간은 대상과의 진정한 결합을 은근히 가로막는 것일까. 불가능한 대상을 추구하는 것, 가장 사랑하는 존재를 파멸시키는 것, 그것 또한 인간의 치명적인 본성일까. 우리가 누군가를 '원한다'는 것은 그를 도저히 손에 넣을 수 없다는 무의식의 판단 때문일까. 욕망을 '계속 생생하게 살아있게' 하려면 욕망의 최종적인 실현을 방해해야만 하는 것일까. (226p)

 

 

 

Add...

 

 

 

얼마 전 읽었던 <가장 좋은 사랑은 아직 오지 않았다>라는 책이 계속 떠올랐어요.

느낌이 비슷한 책인데, 둘 다 좋긴 좋네요,

그나저나 요즘 이상하게 사랑 에세이를 많이 읽게 되네요.... 허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