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대왕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9
윌리엄 골딩 지음, 이덕형 옮김 / 문예출판사 / 199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가장 순수한 아이들에게서 드러난 인간의 본성 <파리대왕 - 윌리엄 골딩> 

 

 

 

 

 

 

  책을 읽고서, 여운에 잠기다가 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동명의 영화를 보았다. 상상했던 모든 것이 시각적으로 재현되어 더 잔인한 감이 있지만, 아이들의 모습이 책을 보면서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앳되어 보여서 안타까웠다. 90년대에 나온 영화 <파리대왕>도 괜찮았지만, 역시 축약된 부분이 많아 책을 먼저 읽기를 추천한다. 책은 영화보다도 잔혹하고 소름 끼치는 장면이 많다. (+ 영화 속에서는 아이들을 사관학교 출신들로 설정하였다.)

 

 핵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사회, 영국의 소년들은 무인도에 고립되고, 앞으로 살아남을 일이 막막하기만 하다. 그중 의식 있는 소년 '랠프'가 대장으로 나서고, 다른 소년들의 동의를 받고 무인도 생활을 이끌기로 한다. 새끼돼지라 불리는 뚱뚱한 소년은 아이들의 놀림을 받지만, '랠프'의 참모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지독한 근시인 '새끼돼지'의 눈과 같은 안경은, 소중한 불을 피울 수 있는 유일한 도구다. '랠프'는 가장 먼저 규칙을 정한다. '소라를 잡은 사람만 말을 할 수 있고, 그 소라는 누구에게나 주어질 수 있다.', '구조되기 위하여 산꼭대기의 봉화를 올리고, 그것을 지켜내야 한다.' 그러나 고기를 얻기 위해 멧돼지 사냥에 몰두한 '잭'과 그 주위의 소년들은 '봉화'의 규칙을 지켜내지 못하고, 살육의 희열을 느껴가면서 대장 '랠프'와 대립하게 된다. 이제 두 팀으로 나눠진 소년들, '잭' 군단들은 얼굴에 색칠을 하고 벌거벗으며 사냥에 나선다. 그러던 중 낙하산에 매달린 채 무인도에 떨어진 어떤 병사를 괴물로 착각한 소년들은 괴물의 존재를 두려워하며, 상상하지 못할 행동을 저지르는데..

 

 순수했던 많은 아이들이 이후 광기 어린 모습으로 변해가는 과정은 '무인도라는 극한의 상황에서' 비록 어린아이들일지라도, 어디까지의 본성을 드러낼 수 있는지 보여준다. 어린아이들, 어쩌면 보다 의식이 자리 잡히지 못한 그들은 인간의 본성을 드러내기에 효과적인 장치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어린아이들은 무인도의 생활 속에서, 어른들의 정치와 흡사한 모습을 보여준다. 합리적인 규칙에 서있고 인간의 본성을 결코 잃지 않으려는 이상주의자 '랠프'는 회의와 발언권 등을 떠올리게 하는 민주주의 사회를 꿈꾸는 대장이다. 그와 반대로 폭력적이고 강압적인 '잭'은 고기로 아이들을 현혹시키는 '독재자'의 모습을 보인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언제 올지 모르는 '구조'를 기다리기보다, 지금 잘 먹고 잘 사는 '현실'을 택하기 위해 '잭'의 편을 선택한다. '문명'이라고 불리는 사회의 '규칙'은 결국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사라진다. 랠프에게 남은 친구는 '새끼돼지' 하나뿐, 그는 살아가는데 가장 큰 도움이 되는 '안경'(불을 만드는)을 지니고 있다. 그 안경은 결국 불행을 부른다. 

 

  순결했던 아이들은 결국 '선(善)'을 지키지 못 했다. '순수'는 '선'과 직결되지 못했다. 아이들의 죽고 죽이는 싸움이 어른에게는 마치 놀이처럼 느껴질 정도로 순수한 모습이었지만, 본성을 드러낸, 그 드러낸 모습을 목격한, 그 서러움의 폭발이 결말 부분에 나타난다. 인간의 본성은 결국 '악(惡)'일까, 멧돼지 머리 앞에서 들었던 '짐승의 일부분'이 우리 안에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 이 이야기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그것들을 드러내고 있어, 너무나 잔혹하다.

 

  작가 '윌리엄 골딩'은 2차 세계대전에 대한 큰 회의감에 이 소설을 만들어냈다고 한다. 많은 문학작품이 현실을 반영하듯 그들의 세계는 현실과 닮았다. 이데올로기의 갈등, 이득을 탐하려는 싸움, 우리를 고통스럽게 했던 독재와 현혹.. 더욱더 아이러니한 점은 소설의 끝에 등장한다. 광기를 맛본 그들 앞에 보인 '군홧발', 소년들은 과연 '구조'된 것인가. 혹여 더 큰 싸움 속에 빠져버린 것은 아닐까?

 


 

 

  숲 속의 정적은 무더위보다 더 그를 짓눌렀다. 대낮인데도 벌레의 울음소리조차 없었다. 화려한 빛깔의 새 한 마리가 나뭇가지로 지은 원시적인 둥지에 있다가 잭의 모습을 보고 놀라서 푸드덕 날았을 때에야 비로소 정적은 깨어졌다. 그리고 아득한 태고의 심연 속에서부터 퉁겨져 나오는 것 같은 요란한 울음소리가 만드는 메아리가 울려올 뿐이었다. 잭 자신도 이 울음소리에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를 내면서 찔끔했다. 순간 그는 사냥 나온 소년이라기보다 울창한 나무 사이를 살금살금 기어 다니는 원숭이 같은 피조물이 되는 것 같았다. (70p)

 

 

  파리 떼는 사이먼의 콧구멍 밑을 간질이고 넓적다리 위에 등넘기를 하고 있었다. 파리 떼는 시커멓고 다양한 색이 섞인 초록색을 띠었고 헤아릴 수 없이 수가 많았다. 그런데 사이먼의 정면에는 파리대왕이 자기의 지팡이에 매달려서 밝게 웃고 있었다. 마침내 사이먼은 눈 감은 자세를 포기하고 돌아보았다. 흰 이빨과 희미한 눈과 피가 보였다. 또한 그의 응시는 그 케케묵고 피할 수 없는 인식으로 인해 부동의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사이먼의 오른쪽 관자놀이에서 맥박이 뛰기 시작하더니 골을 때렸다. (209p)

 

 

  "너는 여기 혼자 와서 무엇을 하는 거냐? 넌 내가 두렵지 않으냐?"

 사이먼은 고개를 저었다.

 "너를 도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직 나뿐이야. 그런데 내가 바로 그 짐승이야."

 사이먼의 입이 기를 쓰더니 귀로 들을 수 있는 단어가 가까스로 튀어나왔다.

 "막대기에 꽂힌 멧돼지 머리야."

 "짐승을 사냥해서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다니 가소롭기 짝이 없구나." 하고 멧돼지 머리가 말했다. 잠시 숲과 희미하게 식별될 수 있는 다른 그 밖의 장소들이 멧돼지 머리가 낸 웃음소리를 흉내 내며 메아리를 보냈다. "너도 알지? 나는 너희들의 일부분이야. 아주 밀접하게 가까이 있는 일부분이야. 왜 모든 것이 그릇되게 돌아가고 모든 일이 현재의 이 모양으로 되었는가 하면, 그건 모두 나 때문이야." (218p)

 

 

  "짐승을 죽여라! 목을 따라! 피를 흘려라! 그놈을 죽여라!"

 막대기가 내리퍼부어지고 새로 원을 그린 소년들은 함성을 질렀다. 그 짐승은 원의 한가운데에서 두 팔로 얼굴을 가리고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 짐승은 고함소리에 지지 않으려고 산에 있는 시체에 대해서 무어라고 자꾸만 큰 소리로 떠들어댔다. 짐승은 허우적거리며 앞으로 나가 원형을 꿰뚫고 가파른 바위 끝에서 물가의 모랫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곧 소년의 무리는 물밀듯이 그 뒤를 따라 바위를 내려가 짐승에게로 뛰어내렸다. 그들은 고함을 지르고 주먹질을 했다. 물어뜯고 할퀼 뿐이었다.

 곧 구름이 걷히고 비가 폭포처럼 억수로 퍼부었다. 빗물은 산꼭대기에서 퍼부어 나뭇잎과 가지를 나무 줄기에서 떼어내고 모래 위에서 안간힘을 쓰는 한 떼의 소년들 위로 냉수 샤워처럼 퍼부어댔다. (233p)

 


 

 

 

 

- 이런 종류의 소설들이 참 많은 것 같아요. 역시 극한의 상황은 무인도가 최고인가 봅니다...

- 책장을 보니, 어두운 소설만 가득이다. 기분 좋은 '소설' 추천해줄 분 없나요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양장)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윤성원 옮김 / 문학사상사 / 200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하루키 소설의 느낌 그대로, 그러나 왠지 깔끔한 기분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 무라카미 하루키>

 

 

 

 

 

 

 

 

   "완벽한 문장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아. 완벽한 절망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

 

  소설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완벽한 문장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나' 혹은 '하루키' 그 자신이 대학생 시절부터 하던 글쓰기에 대한 고민이 드러나는 한 문장. 글쓰기란, 그에게 어려운 작업이었다. 정직하기란 어렵고, 정확한 언어를 찾기도 어려웠던, 많은 고난을 겪게 하는 일. 그러나 책 속에서의 또 한 문장이 내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는 일은 즐거운 작업이기도 하다. 삶이 힘든 것에 비하면 글에 의미를 부여하는 건 너무나 간단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일까.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글을 쓰길 원하고, 더 좋은 글을 쓰기 위해 자신만의 방법을 모색하고, 나아질 거란 확신을 가지고 한 줄 한 줄 써내려간다.

 

  그러고 보면 글을 쓰는 작업은 삶을 사는 것과 유사한 것 같다. 현재까지 한 경험이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혹은 써내려갈 문장의 불씨가 되고, 언제나 완벽하기를 원하지만 완벽할 수 없고, 어렵고 어려운 것... 차이점이라면 글은 고치면서 써나갈 수 있지만 삶은 이미 행해진 것은 고칠 수 없다는 것뿐. 그래서 삶은 글보다 더욱 더 어렵고 고되다.

 

  지금은 세계적인 작가로 자리매김한 그의 청춘 시절은 생각보다 더욱 파란만장하고, 시끄럽게도 사색과 고민이 넘치던 시기였을 것이다. 지금도 많은 소설 속에서 '청춘'들의 이야기를 써내고 있으니 말이다. 하루키의 초기작인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또한 '청춘', 젊은 시절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리고, 이 작품은 자신의 경험을 담은 자전적 소설이다. 하루키는 재즈카페를 경영하면서 '불현듯 무언가 쓰고 싶어서' 이 작품을 썼다. 고향을 방문한 '나' 그리고 '쥐'라고 불리는 개성적인 친구, 손가락 한 개가 없는 여자친구, 정도가 책 속에 등장하는 주요 등장인물이다. 그리고 책 속의 '나'가 심취하고 위안 받았던 가상의 작가 '데릭 하트필드'에 대한 서술이 여러 부분 등장한다. '하트필드'는 소설의 처음과 끝을 장식하는, 필연적으로 문학에 심취하게 만드는 존재가 된다. ('나'가 하루키 자신이라면 '하트필드'에 해당하는 실존 인물의 작가가 있었을 듯싶다.)

 

  이 책은 다른 하루키의 장편 소설들처럼 느낌은 비슷하지만 읽고 난 뒤의 기분은 유달리 깔끔한 느낌이다. 이후에 나온 작가의 다른 장편 소설들도 물론 멋진 소설들이지만, 약간의 부담스러움과 살짝궁 찝찝함이 남았던 것이 있었다. 무언가 한 번에 감당하기 힘든 생각들이 쭉 늘어진 느낌. (작가의 표현력도 성장하고, 그래서 더욱 폭발적으로 써내려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갑자기 든다..) 그래서 약간은 에세이처럼 가벼운, 무거운 대화 속에서 설명할 수 없는 고민들을 독자에게 많은 부분 넘겨주는, 간결함이 느껴지는 이 소설에 더욱 애정이 간다.

 

 

 

 

 

 

          "맛있었어?" 

 "굉장히 맛있었어."

그녀는 가볍게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왜 언제나 물어보기 전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아?"

"글쎄...... 버릇이라고나 할까? 언제나 중요한 건 꼭 빼놓고 얘기한다니까."

"충고 한 마디 해도 돼?" "해봐." "그 버릇을 고치지 않으면 손해 볼걸."

"아마 그렇겠지. 하지만 고물자동차와 같아서 어딘가를 수리하면 다른 곳이 한층 두드러지거든."

 그녀는 웃으면서 레코드를 마빈 게이로 바꿨다. 시곗바늘은 여덟시 가까이를 가리키고 있었다. (87p)

    

 

         누구나 쿨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시절이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에 나는 마음속의 생각을 절반만 입 밖으로 내야겠다고 결심했다. 이유는 잊어버렸지만 나는 몇 년동안 그 결심을 실행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나는 나 자신이 생각한 것을 절반밖에 얘기하지 못하는 인간이 되어버린 사실을 발견했다. 그것이 쿨한 것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잘 모른다. 그러나 1년 내내 서리제거제를 넣어주어야 하는 구식 냉장고를 쿨하다고 부를 수 있다면, 나 또한 그렇다. (106p)

 

 

  "그때 생각을 했지. 왜 이렇게 거대한 걸 만들었을까....... 물론 모든 무덤에는 의미가 있어. 어떤 사람이라도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가르쳐주지. 그래도 그 무덤은 너무 거대하더군. 거대하다는 건 때때로 사물의 본질을 완전히 다른 것으로 바꾸어 버려. 실제로 말이야, 그것은 전혀 무덤으로 보이지 않더군. 산이지. 해자의 수면은 개구리와 수초로 가득 차 있었고 울타리 주위는 온통 거미줄 투성이였어. 나는 잠자코 고분을 바라보면서 수면을 가르는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였어. 그때 내가 느낀 기분을 도저히 말로는 다 표현할 수가 없어. 아니, 기분 같은 게 아니었다고. 마치 뭔가에 푹 감싸인 듯한 감각이었어. 그러니까 매미나 개구리, 거미, 바람, 그 모든 게 하나가 되어 우주를 흘러가는 거지."

 쥐는 그렇게 말하고 이미 탄산이 빠진 콜라의 마지막 한 모금을 마셨다. "글을 쓸 때마다 나는 그 여름날의 오후와 나무가 울창한 고분을 떠올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하지. 매미나 개구리, 거미 여름풀 그리고 바람을 위해서 뭔가를 쓸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질까 하고 말이야." (111p)

 

 

 "(...) 이 세상에는 어떻게 손을 써볼 수 없는 일도 있더군."

 "예를 들면?"

 "예를 들면 충치 같은 거야. 어느 날 갑자기 쑤시기 시작하지. 누가 위로해 줘도 통증은 멈추지를 않아. 그렇게 되면 자기 자신에게 무척 화가 나기 시작하지. 그리고 그 다음엔 자신에게 화를 내지 않는 녀석들에게 견딜 수 없이 화가 나기 시작하는 거야. 알겠어?"

 "조금은" 나는 그렇게 대답하고 다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라구. 조건은 모두 같아. 고장난 비행기에 함께 탄 것처럼 말이야. 물론 운이 좋은 녀석도 있고 나쁜 녀석도 있겠지. 터프한 녀석이 있는가 하면 나약한 녀석도 있을 테고, 부자도 있고 가난뱅이도 있을거야. 하지만 남들보다 월등히 강한 녀석은 아무 데도 없다구. 모두 같은 거야.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는 자는 언젠가는 그것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겁을 집어 먹고 있고, 아무것도 갖지 못한 자는 영원히 아무것도 가질 수 없는 게 아닐까 걱정하고 있지. 모두 마찬가지야." (113p)


 

 


 

 

- '레종 데트르'는 하루키 소설에서 여러 번 등장하네요. 아직도 완벽하게 파악하긴 어려우나... T.T

- 초기 4부작 중 3개가 남았다는 사실이 반가워요. <1973년 핀볼>, <양을 쫓는 모험>, <댄스댄스댄스>

이것들로 조만간 책장을 채워야겠습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참을 수 없는 가우초
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이경민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문학은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여행이다 <참을 수 없는 가우초 - 로베르토 볼라뇨>

 

 

 

 

 

 

 

 

 

 

    새로운 작가를 만나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지만, 놀라운 작가를 만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책을 읽으면서 뭔가 확- 하고 와 닿는 글을 만날 때, 놀라움이 생기고 그저 그렇게 읽어나가던 책이 한순간 더욱 흥미진진해진다. <참을 수 없는 가우초>를 읽으면서 나는 작가에 대한 특별함을 느꼈다. '볼라뇨'라는 작가의 책을 처음 만나보았지만, 예전에 작가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없이 '아, 언제 이 책도 읽어봐야겠다' 정도로 스쳤던 책이 볼라뇨의 책이라는 것을 지금에서야 알았다. 그때 읽어보았으면 좋았으련만. <참을 수 없는 가우초>는 물론 멋진 책이기는 하지만 '어떤 작가의 책을 제대로 읽었다'고 하기엔 조금 아쉬운 감이 있기 때문이다. 뭔가 많은 단계를 단숨에 뛰어넘어버린 느낌이랄까. (작가의 다른 작품을 더 읽은 후에 봤으면 좋았겠다는 생각..)

 

  '라틴 아메리카 문학의 시한폭탄'이라고 불리는 '볼라뇨'의 문학적 유서와도 같은 이 작품은 짧은 소설 다섯 편과 두 편의 에세이가 수록되어있다. '시한폭탄'이라는 별명처럼 약간은 파격적이고 독특하며 언제 터질지 모르는 긴장감을 안고 있는 글들이다. 짧지만 '볼라뇨'가 추구하는 문학의 세계가 투영되어 있고, 카프카나 보르헤스 등의 문학과 연결되어 있다. 단편 <참을 수 없는 가우초>에서는 가우초 (라틴 아메리카 지역의 카우보이)의 생활에 침투하게 된 한 변호사가 삶의 방향을 정하기 위한 고민을 하고, <경찰 쥐>에서는 마치 인간의 모습인 양 착각하게 되는 '쥐 사회'의 모습이, <두 편의 가톨릭 이야기>에서는 '천명'과 '우연' 두 인물의 각기 다른 시점에서 바라보는 장면이 특이한 형태로 서술되어 있다.

 

  '문학은 여행과 같다'는 볼라뇨의 문학에 대한 태도가 나머지 에세이들에서 드러나 있다. 병으로 인해 죽을 때까지, 문학을 손에서 놓지 않았던 그에게 문학이란 무엇이었을까. 문학 + 병 = 병이라고 표현한 그에게 병과 문학은 어떤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을까. "권태의 사막 한가운데 있는 공포의 오아시스" 혹시 그에게 문학은 수많은 '공포의 오아시스' 속에서 찾아낸 '시원한 오아시스'가 아니었을까?

 

  이해하기 쉬운 책은 아니다. 그러나 독자가 반드시 그 모든 것을 이해하는 책이라고 좋은 책이 아니다. 볼라뇨는 에세이의 끝에서 베스트셀러 작가들에 대한 유쾌한 독설을 날린다. 오로지 성공과 명예만을 쫓아가기 시작한 많은 작가들의 모습, 그 속에서 '작가'로서 어떤 길을 택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그의 글에서 보이는 듯 하다. '어떤 곳에서 길을 잃을지라도 새로운 것을 찾아 떠나는 여행', 문학. 우리는 '작가'이자, '독자'였던 볼라뇨의 글들을 통해 그러한 여행에 동참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그 여행의 시작선을 밟았고 내가 아직 접해보지 못한 '여행 속의 오아시스'를, 볼라뇨의 다른 책들에서 찾아보려 한다. 언젠가 우연히, 엄청난 뭔가를 만나게 될 수도.

 


 

 

  - 말을 타본 게 대체 얼마만이야? 페레다는 생각했다. 페레다는 순간적으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안락함과 널찍한 의자에 익숙한 자기의 뼈가 부러지지나 않을까 걱정했다. 밤은 늑대의 입처럼 어두웠다. 페레다는 이 표현이 멍청한 소리 같았다. 분명 유럽의 어두운 밤은 늑대의 입 같겠지만 아메리카의 밤은 그렇지 않다. 차라리 아메리카의 밤은 공허함, 붙잡을 게 없는 곳, 허공의 공간, 완전한 노천, 위아래로 텅 빈 어둠이었다. 무탈하시오, 돈 둘세가 소리치는 말이 들렸다. 하늘에 맡겨야지요, 어둠 속에서 그가 대답했다. (29p, 참을 수 없는 가우초)

 

 

  - 꿈에서 그만 깨시게, 페페. 그리고 자네 업무나 잘하면 그만이네, 서장이 말했다. 현실적인 일도 어지간히 복잡한데 비현실적인 일을 덧붙이면 현실까지 흐트러지네. 견디기 힘든 졸음이 쏟아졌지만 나는 흐트러진다는 말이 무슨 의미냐고 물었다. 서장은 검시관에게 동의를 구하듯 그를 쳐다보며 깊고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그러니까 내 말은, 삶이라는 게 짧지 않은가, 불행히도 우리의 삶이 그러하고, 그러니 질서를 향해 가야 한다는 것이네. 무질서가 아니라 말일세. 게다가 상상의 무질서라면 더더욱 아니 될 말이고. 검시관은 심각하게 날 쳐다보며 그 말에 동의했다. 나 또한 수긍했다. (69p, 경찰 쥐)

 

 

  - 그는 음험하기보다는 탁월한 익살꾼이라 할 만한 사람이었다. 세월이 흐르고 보니 평탄해 보이던 그의 삶이 이제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다. 힘겨운 삶이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웠을 거라는 얘기다. 그렇지만 그는 그저 우연한 사건의 희생자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 사건은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겐 흔한 일이다. 알고 보면 뭔가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흔히 벌어지는 일이다. 우리 모두는 결국 우리가 사랑하는 대상의 희생자로 전락하고 만다. 그건 아마 열정이라는 것이 - 인간의 다른 어떤 감정보다 빠르게 - 제 끝을 향해 질주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욕망의 대상을 지나치게 헤프게 다루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84p, 알바로 루셀로트의 여행)

 

 

  - 보를레르 시에서 뱃사람들이 원하는 여행은 어찌 보면 어쩔 수 없는 운명적 여행 같습니다. 나는 여행하려 합니다. 미지의 땅에서 길을 잃을 테죠. 무엇을 만나고 무슨 일이 생길까요. 하지만 그 전에 모든 것을 내려놓으렵니다. 다시 말해, 진정한 여행을 하려면 여행자는 아무것도 잃을 게 없어야 하니까요. 여행, 이 멀고도 파란만장한 19세기의 여행은 입원실에서 아사신 암살 교단의 불한당처럼 수건으로 얼굴을 가린 자들이 기다리는 수술실로 향하는 침대 위 환자의 여행과 다르지 않습니다. 분명 여행 초기엔 낙원에 대한 비전이 살아있습니다. 그런 비전은 여행자의 현실보다는 그의 의지나 문화에서 비롯한 것이지요. (144p, 문학+병=병)

 

 

  - 카네티는 그의 저술에서 20세기 최고의 작가 카프카가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고 처음 피를 토한 날 이후로 그 무엇도 자신과 글쓰기를 떼어 놓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고 합니다. 글쓰기와 떨어질 수 없다는 말로 난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나는 카프카가 여행과 섹스, 책은 어디로도 이어지지 않는 길이며, 그럼에도 뭔가를 찾아서 그 길에 들어서고 길을 잃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고 말하려 했던 것 같습니다. 그 뭔가가 책이든, 몸짓이든, 잃어버린 무엇이든, 그것이 어떤 방법이든, 그 어떤 것이 됐든, 그걸 찾아서 말입니다. 운이 따르면 늘 거기에 있었던 것, 바로 새로운 것을 찾을지도 모르지요. (154p, 문학+병=병)

 


 


 

 

 

 

 

 

 

 

 

 

 

 

 

 

 

 
짜잔 - 책을 열어 뒤집어보면 토끼가 나타납니다.
이 토끼는 단편 <참을 수 없는 가우초>에 등장하지요 :)
 
* 곧 작가의 평생에 걸친 역작인 <2666>이 출간된다고 합니다 - 기대중!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데드맨 데드맨 시리즈
가와이 간지 지음, 권일영 옮김 / 작가정신 / 2013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어느 날 죽은 사람에게서 도착한 메일 <데드맨 - 가와이 간지>

 

 

 

 

 

 

  "자, 이제 퀴즈예요. 머리만 남아 되살아난 당신은 누구 것이죠? 아니 당신은 대체 누구일까요?"

 

  도쿄의 한 고급 아파트에서 머리가 없는 시체가 발견된다. 찬물에 담긴 시체, 그리고 욕실은 너무나 깨끗해 살인의 흔적조차 없다. 그리고 시체의 절단은 메스로 그은 듯 완벽하게 처리되어있다. 이 범죄현장에는 흔히 많은 사건 현장에서 보이듯 울분과 원한이 보이지 않는다. 주인공 '가부라기'를 중심으로 한 형사팀은 유일하게 단서로 남겨진 라텍스 장갑과 머리카락, 발자국 만으로 수사를 시작하는데, 당최 알 수 없는 살인 사건의 정체를 파헤치지 못하고 수사는 위기에 봉착하게 되는데.. 그날 이후 차례차례 다른 곳에서 발견된 몸통이 없는 시체, 오른팔이 없는 시체, 오른 다리가 없는 시체...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 '데드맨'이라는 이름으로 도착한 메일. 죽은 사람이라는 뜻의 '데드맨'의 메일은 마치 장난 같지만, 정체 모를 살인 사건을 풀어나갈 단서가 될 것 같다. '가부라기 형사팀'은 이 '데드맨'의 정체를 알아내고, 살인사건과의 연관성이 무엇일지 고민하게 된다.

 

  소설 <데드맨>은 '요코미조 세이시 미스터리 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한 한 신인작가의 작품이다. 신인작가의 소설이지만, 역시 '대상' 수상작인 만큼 긴장감 넘치고 잘 짜인 구성으로 되어있는 대단한 작품이다. 이야기는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들의 시점과 '데드맨'이라 추측되는 사람의 시점에서 번갈아서 진행된다. 다양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형사들의 캐릭터는 살아있어 시리즈물로 활용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다만 내가 소설을 읽을 당시엔 캐릭터보다는 이야기에 중점을 두며 읽어서, 사회적인 메시지가 더욱 강하게 느껴졌다. 비윤리적인 인간의 이기심, 부조리한 사회 앞에서 작아질 수밖에 없는 한 개인에 대한 안타까운 시선 ... 작가는 이 독특한 소설을 통해 권력과 사회, 인간의 실존에 대해 통찰하고 있다.

 

  신체의 한 부분이 없어진 '시체', '데드맨'이라는 제목에서 풍기는 이미지 때문에 상상하기 두려울 정도로 잔인한 소설일 줄 알았지만, 생각보다 그렇게 잔인하지 않다. 또한 '살해된 시체들 각각의 신체 부위들로 새로운 사람을 만들어내는' 비현실적이고 얼토당토않게 들리는 이 상상을 현실적으로 해석해낸 작가의 솜씨가 돋보인다. 추리소설의 가장 큰 재미 중 하나인 반전도, 많이 파격적이지는 않았지만 설득력 있고 놀라웠다. 처음엔 무시무시하게 느껴졌던 '데드맨'의 정체, 살인 사건의 비밀을 하나하나 까보는 재미, 아마도 추리소설 매니아들에게도 이 소설은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 지금의 나는 나일 것이다. 하지만 어제의 나는 내가 아니었다. 아니, 날짜를 거슬러 올라가며 읽은 이 일기에 따르면 어제도, 그 전에도 나는 내가 아니었다. 내가 나로 돌아온 것은 약 1년 만의 일이다. 내일의 나는 과연 나일까? 아마 아니리라. 지금 이 시간을 놓치면 나는 영원히 내가 아니게 되고 말지도 모른다. 그런 예감이 든다. 아아, 이 지독한 오한. 이 끔찍한 전율. 이 무시무시한 공포! (7p)

 

 

  - "어떤 남자가 병이 들어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하죠. 한편 몸은 건강한데 뜻하지 않은 사고로 뇌사 상태에 빠진 남자가 있다고 하고요. 이때 병이 걸린 남자의 머리 혹은 뇌를 뇌사 상태인 남자에게 이식하는 경우는 생각할 수 없을까요?" 기리하라가 또 대답은 하지 않고 질문을 던졌다. "그런 경우에 두 사람 가운데 한 명은 죽고 한 명은 살아남게 되죠. 그럼 살아남은 사람은 어느 쪽이고 죽은 사람은 어느 쪽일까요?" (105p)

 

 

  - "물리학자인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경험을 아무리 쌓아도 논리는 생기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일반적인 추론법, 귀납법이나 연역법으로는 진실에 도달할 수 없다는 의미죠. 즉, 진실에 이르기 위해서는." 설명을 하면서 사와다는 오른손을 펼쳐 들었다. "우선 진실이 있는 곳까지 단숨에 뛰어넘어 진실을 움켜쥐어야 해요. 그리고 그다음에 그게 진실이라는 걸 증명하면 되죠." (118p)

 

 

  - "선배는 두 번째 시체를 발견했을 때 이렇게 말씀하셨죠? 범인의 목적은 머리 부분과 몸통 부분을 가지고 가는 게 아니라 현장에 나머지 부분을 놔두고 가는 것이 아니겠냐고요." (199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도, 바람도 그릴 수 있다면 - 만화와 사진으로 풀어낸 인도여행 이야기, 인도 여행법
박혜경 지음 / 에디터 / 201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묘하게 아름다운 인도, 만화로 보는 그 나라의 여행법 

[인도, 바람도 그릴 수 있다면 - 박혜경]

 

 

 

 

 

 

 

 

  인도라는 나라는 나에게 더없이 많은 환상이 깃든 곳이었다. 영화에서 보았던 화려함과 소박함이 공존하던 마을의 모습, 온통 새파란 빛으로 칠해져 신비스러움이 가득하던 블루시티 '조드푸르'. 그리고 우연히 가게 되었던 '스티븐 맥커리 사진전'에서 본 오묘한 느낌의 사진들, 호수에 비치던 타지마할의 그림자. 한 번도 가지 못했던 어떤 곳에 대한 조그만 환상이 모여, 나는 언젠가부터 상상속의 여행을 하고 있었다.

 

  내가 본 인도에 대한 풍경들이 어쩌면 정말로 '환상'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고는 있다. 그리고 그것은 지극히 일부분, 과장돼서 보이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한다. 부푼 마음으로 그 넓은 땅 중 한 곳을 밟았을 때, 설레는 기대가 두려움으로 바뀔지도 모른다. 하지만 경험해보지 못한 모든 것이 설렘을 안겨주듯, 아직도 '인도'는 나에게 '아름다운 나라'다.

 

  이런 설렘을 더욱 크게 만들어준 이 책은, 만화로 그린 '인도 여행 가이드북'이다. 그러나 읽다 보면 지루한 나열로 되어있는 가이드북, 그리고 그냥 가벼운 만화라기보다는 여행자의 감성을 담아낸 에세이 같다. 귀여운 캐릭터와 그림체 때문에 다소 가볍기만한 책이 아닐까 처음에는 우려했지만, 짧은 글들에서 저자가 직접 체험하고 느낀 섬세하고 깊은 감정이 묻어 나왔다. 처음부터 '인도'라는 나라에 매혹되어 그 나라의 땅을 밟게 되었고, 가끔은 혼란스럽기도 하고 오해도 많이 했지만 결국 '인도'의 다양한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이게 되었었다는 저자. 여행자들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는 친근한 인도인들, 굉장히 다양한 음식들, 땀 흘리는 노동의 풍경 같은 아름다운 상상의 모습도 있지만, 반대로 터질듯한 더위와 약이 들은 음료를 권하여 돈을 훔치려는 사람들, 상식과 기준에 어긋나는 많은 상황들이 그곳에 존재한다. 그래서 저자는 말한다. '인도는 지극히 위험한 나라도 아니지만, 여행자가 지녀야 할 판단력과 융통성이 그 어느 곳보다 절실하다'고.

 

  물론 어느 여행지에서나 예상치 못한 상황이 존재하고, 단호한 선택이 필요할 때가 많다. 하지만 이 책을 다 보고 나니, '인도'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재미있는 곳이기도 하고 아직 나에게 감당 못할 여행지라고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언젠가 꼭 가볼 생각이다. 겁난다고 망설이기엔 너무나 아쉬울, '더럽게 아름다운 나라'가 바로 인도라는 곳이니까.


 

 

 

 

 

 

 

 

(만화형식으로 되어있지만, 좋은 글들이 많아 텍스트만 발췌했습니다.)

 

 

  - "넌 네 의견이 없어?" 그가 그런 말을 했던 이유는 내가 식당이랄지, 어떤 도시에 가고 싶은지, 기차를 탈 건지 버스를 탈 건지 등의 선택권을 종종 다른 일행에게 양보했기 때문이었다. "원하는 게 있으면 너도 A처럼 고집 좀 피워!"라는 게 요지였다. 하지만 그가 모르는 게 있었다. 처음부터 나는 반드시 인도여야만 하는 여행이었고, A는 인도가 아니라도 상관없는 여행이었다. 선택의 범위란 이토록 무섭다. 인도를 선택한 나는 아무래도 좋았으니까. 그 안에서 무엇을 먹든 무엇을 보든 무엇을 타든 난 이미 그 모든 것에 속해있는데, 소소한 선택으로 내 취향을 고집 피우는 것 따위. 그쯤이야 백 번이라도 양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인도에서 만족을 찾을 수 없었던 A는 다른 부수적인 요소에서 그것을 얻으려 했지만 녹록지 않았다. 제 취향을 다른 이에게 절대 양보하지 않던 그는 끝내 인도를 좋아하지 않았으니까. (프롤로그)

 

  - 여행자에게 있어서 배낭이란 자신의 정체성이나 마찬가지인지도 모르겠다. 필요한 물품이 배낭 하나에 깔끔하게 정리되는 걸 보면 놀랍기도 하고 떠나기 전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나름대로 철저히 예측하고 준비하면서 꿈꾸던 것에서 벗어난 실질적인 성취를 향한 의지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61p)

 

 

  - 나는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 이 시간이 앞으로도 오랫동안 기억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육교 밑에는 서너 명의 남자아이들이 물구나무를 서며 놀고 있었는데 내가 낭만에 빠진 동안 친구는 내내 그 아이들을 신경 쓰고 있었던 것이다. 기차를 기다리는 몇 시간 동안 우리는 같은 공간 속에서 각자 수많은 생각들을 했다. 그때 내가 느꼈던 건, 일행으로서 공간과 시간을 함께 공유하면서도 각자 사적인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220p)

 

 

  - 지나가던 한 인도인이 내 카메라에 환한 웃음을 보여줬다고 해서 내가 그 사람을 행복 또는 불행하다고 섣불리 해석할 수 있을까. 가끔 그런 여행자를 만날 때면 그가 관심 있는 건 오직 인도에서의 경험을 자신만의 가치관으로 풀어내 친구들에게 공감 받고 싶어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질주의 세계에서 온 여행자들은 어딘가 비세속적으로 보이는 인도인의 생활을 소박한 평온이라 칭송하면서도 결코 그들의 삶을 닮으려 풍덩 뛰어들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나 자신은 어떤 여행자일까. (238p)


 


 

 

만반의 준비를 하고 언젠가 꼭 갈 거예요 -!!

 

http://saturn0117.blog.me/

저자님의 블로그 gogo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