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비 딕 -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214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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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방대한 책을 어떻게 페이지 하나에 정리할 수 있을까. 한 손에 들기도 제법 묵직한 두 권의 책을 보고 있자니 읽는 것도 살짝 부담이긴 했지만, 그 놀라운 분량을 정리하는 것도 조금은 부담이다. 많은 고전들이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빛을 발했듯이, <모비딕>도 처음 출간되었을 때는 평가가 극명하게 갈렸다고 한다. 책 속에서는 극적인 서사와 생생한 묘사를 통해 바다 위를 떠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한편, 다양한 정보를 총망라한 부분들을 주인공 '이슈마엘'의 입을 빌려 이야기하는 부분들이 등장하는데, 소설의 특징을 지니고 있지만, 시대를 초월한 자유로운 서술 때문에 호평과 혹평이 뒤섞였다고 한다. 나 또한 책을 읽으면서 방대한 정보들과 어원, 인용들이 나열된 책의 많은 분량을 보고 있노라니 책의 장르가 허구의 소설인지 자연학적 지식 서적인지 불분명하게 느껴졌는데, 그 당시 이 책의 첫 등장은 얼마나 파격적이었을지 상상할 수 없다.

 

  일단 중심이 되는 이야기는 거대한 흰 고래를 찾으려는 포경선에 탄 사람들의 이야기다. 고래잡이를 하고자 '낸터컷' 항구로 가는 도중, 식인종 '키퀘그'를 만나 그의 남다른 인품을 보고 친구가 되기로 결심한 주인공 '이슈마엘'. 그 둘은 우연히 '피쿼드 호'라는 포경선을 발견하게 되고, 소문이 무성한 선장 '에이해브'에 대한 궁금증을 안고 배에 승선하게 된다. 그 후 바다 위를 항해하는 갑판 위에서 발견한 '에이해브' 선장은 흰 고래 '모비 딕'에 의해 한쪽 다리가 잘렸고, '모비딕'을 정복하기 위한 광기에 사로잡힌 인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와 대립하여 '개인의 복수'가 우선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마음을 가지는 일등 항해사 '스타벅', 주인공의 친구인 식인종 '키퀘그'와 묵직한 힘으로 배를 이끌어가는 '타슈테고'와 '다구' 등의 선원들이 광포한 바다에서 고래와의 싸움을 벌인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 뒷편에는 고래의 생김 묘사라던지, 포경선의 구조, 고래의 서식환경, 고고학과 화석학에 관련된 정보들이 등장하는 '고래학 장'이 있다. 이는 심해를 떠돌아다니는 고래잡이들의 숭고한 영혼을 뒤흔들게 하는 흰 고래 '모비딕'에 대한 경이로움을 보다 극대화하는 동시에 공포감을 더하기도 한다. 성경에서 차용한 많은 부분들과 각종 어원과 발췌, 철학적 사유, 대량의 주석들은 '피쿼드 호'의 항해라는 중심 스토리에 몰입하기 조금 산만하게 하는 부분도 없지 않아 있지만, 다양한 지식과 정보로서, 거대하고 황량한 바다에서 떠도는 그들의 존재를 더욱 주의 깊게 통찰할 수 있는 자료가 된다.

 

  흰 고래를 바라보며 항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책의 장르를 불분명하게 만드는 고래학적 지식과 어원이 끊임없이 등장하는 이 책은 '바다 지식의 총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자연에 대적하는, 참으로 자그마한 존재인 인간의 끈질긴 싸움과 종교적인 사유, 생생한 포경업의 모습과 역사를 파악할 수 있다. 다소 도전하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소주제마다 짤막하게 나눠져있는 글들을 천천히 읽어내려간다면 괜찮을 것이다. (물론 '고래학'에 관련된 부분들은 책장이 무지하게 잘 안넘어 간다..... ; 열심히... ) '위대한 걸작'이라고 표현되는 고전을 읽어냈다는 뿌듯함과 다양한 지식을 몸소 체험한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래, 고래잡이는 죽음을 불사하는 일이야. 입술 한 번 달싹할 틈없는 순간적인 혼란 속에서 사람들을 영원에 던져 넣지. 하지만 그다음엔? 내가 보기에 우리가 생사의 문제를 대단히 잘못 생각해 온 듯 하다. 내가 생각하기엔 이승에서 그림자라고 부르는 게 실은 나의 실체인 듯하다. 또 영적인 것을 보는 우리는 물속에서 태양을 보며 탁한 물을 더없이 맑은 공기라고 생각하는 굴조개와 흡사하다. 몸뚱이 따윈 누구라도 가져가라지. 가져가라니까. 이건 내가 아니라고. 그러니 낸터컷을 위해 만세 삼창을 부르자. 그리고 배나 몸뚱이에는 언제 구멍이 뚫리더라도 상관없어. (상권, 85p)

 

 

  가장 숭고한 진리, 신처럼 가없고 무한한 진리는 망망대해에만 존재한다. 그러니 바람이 아우성치는 무한한 바다에서 죽어 없어지는 편이 바람이 불어 가는 해안에 수치스럽게 내던져지는 것보다 낫다. 설사 그곳이 안전하다 할지라도 누가 벌레처럼 뭍으로 기어가겠는가? 끔찍한 그 공포! 이 모든 고통이 다 부질없단 말인가? 굳세어라, 벌킹턴, 굳세어라! 불굴의 의지로 버텨라, 영웅이여! 그대가 죽어 묻힐 바다의 물보라, 그곳에서 그대는 신이 되어 솟아오르리! (상권, 192p)

 

 

  엄청난 크기의 도르래는 이제 임무를 모두 마쳤다. 목이 잘리고 가죽이 벗겨진 고래의 몸이 대리석 무덤처럼 번쩍인다. 색은 달라졌지만 부피는 조금도 줄어든 것 같지 않다. 여전히 커다랗다. 서서히 떠내려가는 사체 주변으로 굶주린 상어들이 몰려들면서 파도가 일고 물이 튄다. 하늘은 날카롭게 우짖는 새들의 욕심 사나운 날갯짓으로 어지렇고, 새들은 무례한 단검 같은 부리로 고래를 찔러 댄다. 목이 잘린 희고 커다란 환영은 떠내려가면서 배와 점점 멀어지고, 간격이 벌어질수록 수면의 상어와 허공의 새 떼가 일으키는 무시무시한 소음은 더 커지는 것 같았다. 거의 제자리를 멈춰 선 배에서는 그 고약한 광경을 몇 시간이나 볼 수 있었다. (하권, 48p)

 

 

  영원토록 경뇌유를 짤 수 있다면! 하지만 나는 오래 반복된 경험을 통해 인간이란 어떤 경우에도 결국 자신이 얻을 수 있는 행복에 대한 환상을 낮추거나 최소한 변경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행복은 지성이나 공상이 아닌 아내와 사랑, 침대, 식탁, 안장과 난롯가, 시골 같은 곳에 놓아야 한다. 나는 이제 이런 것들을 모두 깨달았기 때문에 기름통을 영원토록 짤 준비가 되어 있었다. 밤에 그리는 환상의 상념 속에서 나는 줄지어 선 천사들이 저마다 경뇌유 통에 손을 담그고 있는 천국을 봤다. (하권, 210p)

 

 

   죽음은 낯선 미지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일뿐, 무한히 멀고 황량한 곳, 육지가 보이지 않는 망망한 바다라는 가능성과 나누는 첫 인사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죽음을 갈망하는 이런 자들의 눈에, 그래도 자살을 기피하는 내면의 양심이 남아 있을 경우, 모든 것을 일으키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바다는 상상을 초월하는 흥미로운 공포와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는 놀라운 모험의 드넓은 평원을 유혹하듯 눈앞에 펼쳐 놓는다. 그리고 무한한 태평양의 한복판에서는 수많은 인어가 노래를 부른다. (하권, 316p)

 

 

* 이렇게 썼지만, 꽤 오랫동안 붙잡고 있었습니다. 사실 더 오래 붙잡고 있어야 할 책이지만..

고전은 읽으면 읽을수록 참맛이 난다고 했으니, 오랜 후에 다시 읽어볼 기회가 있었으면 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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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최고의 몸매 만들기 - 엉덩이에서 시작하는 기적의 롯칸식 8분 습관
시미즈 롯칸 지음, 한혜정 옮김, 이웅희 감수 / 코코넛(coconut)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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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 솔깃하는 제목입니다. '내 생애 최고의 몸매 만들기'. 아마도  신년이라 더욱, 많은 분들이 다이어트를 결심하고 시작하셨을 거라 생각해요. 저도 마찬가지로, 이번엔 꼭 성공해보겠다고 다이어트를 다짐했고, 며칠 전부터 친구와 열심히 운동하고 있는데 동네에서 운동하는 분들을 참 많이 발견했답니다. (신년이라서 그런걸까요.)사실 이번에 시작한 운동은 다이어트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체력을 기르고 자세 또한 좋아지고 싶어서이기도 한데, 요즘엔 다이어트뿐만 아니라 체형 교정도 무척이나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스마트폰, 컴퓨터, 그리고 앉아있는 직업 등으로 인해서 안 좋은 습관이 만들어지게 되고 그것 때문에 체형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많으니까요. 저도 물론, 그런 경우고요.

 

  <내 생애 최고의 몸매 만들기>는 대단한 운동이 아니라, 몇 가지 습관을 고치고 짧은 시간에 할 수 있는 효과적인 운동으로 체형 교정을 할 수 있는 방법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운동할 짬도 내기 힘든 바쁜 요즘, 몇 분만 투자해서 할 수 있는 체형 교정. 저자가 직접 체험하고 (15킬로를 감량했다고 합니다) 효과를 본 운동과 습관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많은 다이어트 & 운동 책들이 그러하듯이, '시간은 짧게 효과는 크게'라는 운동인데.. 과연 정말 쓸만할까요?!

 


 

 

 

  '기적의 롯칸식 8분 습관'이라고 불리는 운동법. 그 방법들은 엉덩이, 다리, 가슴, 골반 순서로 효과적인 운동법을 알려줍니다. 한 페이지 당 한 동작씩,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어요. 전체샷으로 알아보기 힘든 세밀한 부분까지 확대하여 정확하고 바른 운동 자세를 만들어주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단시간에 에너지를 소비하는 다른 운동들 보다, 쉬워 보이고 간단해 보이는 동작이지만 정확한 자세를 잡아서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하는데요. 저자인 '롯칸'은 자신의 운동을 통해 효과를 보려하는 독자들에게 '바른 자세로 제대로 했는가''매일 꾸준히 했는가' 이 두 가지를 꼭 지켜야 한다고 말합니다.

  

 

 

 

 

  골반은 여자의 몸에서 너무나 중요한 부분인 듯합니다. 예전에 다른 건강 관련 책에서 봤다시피, 여자의 골반은 신체의 균형과 건강까지 관여하는데 굉장히 신경 써서 살펴야 하는 곳인 것 같습니다. 사실, 골반이 얼굴의 형태를 만들어내고.. 뭐 이런 것들은 살짝 의심이 가긴 하지만, 어쨌든 여자의 가장 소중한 부분인 자궁을 감싸는 부분이기도 하고 몸의 균형을 좌지우지하는 곳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아요.

 

 

 

 

  골반의 상태를 자가진단할 수 있는 체크리스트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저도, 운동이 필요하다는 진단이 나왔네요 ^^!

 

  리뷰에서 많은 부분 생략했지만, 책의 70% 분량을 '체형교정 운동법'의 동작 사진들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많은 동작들이, 집에서 간단하게 눕거나 앉아서 할 수 있는 운동이지만, 확실하게 근육을 당겨줄 수 있는 것들이더라고요. 약간 요가 동작들과 비슷하기도 하고요. 유산소 운동을 하면서 체형 교정을 위해서 요가를 함께 하고 싶었는데, 이 책을 만나게 돼서 다행이고요. '기적의 롯칸식 8분 습관'으로 예쁜 체형 만들어보고 싶어요. 다이어트와 건강 관리를 결심한 만큼, 사진을 보면서 동작을 따라 하고 좀 더 바른 자세, 멋진 몸매를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해봐야겠어요. 어제부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 큰 효과를 보게 되면 꼭 알려드릴게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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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부 러시아 고전산책 6
막심 고리키 지음, 이수경 옮김 / 작가정신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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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 문학이라 하면 왠지 거창하고 묵직할 거라는 일종의 편견이 있었다. 국내에서 처음 소개되는 단편들로 구성되었다는 <마부>를 펼치기 전에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생각과는 달리, 읽고 난 뒤의 느낌이 산뜻하다. 삶의 방향을 진지하게 제시하면서도, 인간에 대한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눈에띤다. 처음 만나보는 '막심 고리키'의 문학. <어머니>라는 아주 유명한 작품을 아직 읽어보지 못했다. 이 단편집에 수록되어 있는 소설들은 작가의 초기 작품이니, 유명한 장편을 읽기 전에 만나본 것도 좋다는 생각이 든다.

 

  책의 첫 부분에 등장하는 <마부>와 <환영>에서는 신비스럽고 영적인 존재가 등장한다. 그들은 주인공의 결정과 행동에 간접적으로 관여하면서 주인공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크리스마스 주간, 빛이 떠오르는 시간적 배경에서 전개되는 이야기 속에서는 작가의 종교적인 관점도 드러나면서 어떤 삶이 옳은 삶이냐에 관한 메시지를 전해준다. <로맨스>와 <아름다움>에서는 사랑과 아름다움에 매혹되어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있으며, 가장 뇌리에 깊게 박힌 단편 <아쿨리나 할머니>는 소외된 사람들을 감싸 안았지만 홀로 죽어가게 된 노파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 책에서 나타난 '막심 고리키'의 글은 직선적이었다.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을 완전한 문장으로 드러내고 있다. <지난해>와 <시간>이라는 단편에서는 멋진 삶을 살기 위해 지켜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데, 그중 <시간>은 독특한 관점으로 서술하면서도 작가의 신념을 정확하게 드러내고 있는 글이다. 그래서 마치 에세이를 읽고 있는 듯한 느낌이기도 하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끊임없이 고민하는 우리에게 따뜻한 경고를 보내고 있는 짧은 소설들. <마부>는 이성과 진리를 외면하고 독창성이 사라져가는 이 시대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고, 수정된 행동으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만든다. 새해가 밝은 지금, 많이 무겁진 않은 고전을 통하여 삶을 어떻게 충실하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물음을 또다시 던져보게 되었다.


 

 

  '정말로 내 안에는 자신을 범죄자로 느끼게 하는 내적 규범이 존재하지 않은가?'

 그의 영혼 속에 그런 규범이 없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그러나 그는 양심의 가책, 참회, 자신이 범죄를 저질렀다는 죄책감이 인간의 특성이라는 사실을 잊을 수 없었다. 그는 내면에서 계속 그 감정을 찾았다. 찾고 또 찾았으나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그는 자신에게 놀랐다. '나의 모든 감정이 어디로 사라져버렸을까?' 그에게 삶이란 심장이 메말라버린 사람의 잠꼬대도, 환상적인 어떤 것도 아닌 이상야릇한 것으로 여겨졌다. (29p, 마부)

 

 

  눈물이 질질 흐르는 충혈된 눈을 한 그녀는 이미 오래전부터 따라다니는 꼬리표처럼 진짜 '키예프의 마녀' 같았다. 그녀는 늙어 꼬부라진 몸으로 지팡이로 인도를 툭툭 두드리며 걸어갔다. 합죽이 같은 검은 입은 늘 미소를 띤 채 뭔가 쉬쉬거리며 중얼거렸다. 그녀는 살아 있으면서 더러운 냄새가 나는 혐오스런 덩어리 자체였다. 그랬다. 그녀는 어떻게든 호감을 불러일으킬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행하게도, 그녀 자신은 불행인지도 잘 모르는 듯한데, 주위에 사람이 없으면 견디지 못했다. 그래서 운명이 그녀에게 '손자들'을 보내지 않으면 운명의 부주의를 바로 잡기 위해 스스로 할 수 있는 한 '손자들'을 끌어모았다. (157p, 아쿨리나 할머니)

 

 

  지난 해의 손님들은 슬픔에 잠겨 조용히 흩어졌다. 자리를 뜨면서 희망은 침묵을 지켰다. 위선은 슬픔에 찬 얼굴로 공상과 이야기를 나눴다. 이성과 인내에 대해, 권태가 머큐리의 말을 듣지 않고 반발할까봐 걱정했다는 내용이었다. 마침내 모두들 흩어졌다. 이미 새로운 해의 옷으로 갈아입은 지난해만이 홀로 남았다. 그리고 진리가 남았는데 그녀는 언제 어디서나 영원한 꼴찌였다. (173p, 지난해)

 

 

  똑딱, 똑딱!

 고요하고 적막한 밤에 무정한 시계추 소리를 듣는 것은 소름 끼치는 일이다. 그 소리는 천편일률적이고 수학적으로 계산되어 언제나 똑같은 것, 부단한 삶의 여정을 나타낸다. 어둠과 잠이 지상을 감싸고, 모두들 침묵에 빠져 있는 시간, 시계만이 냉철하고 크게 시간의 흐름을 알려주고 있다....... 추의 움직임과 더불어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흘러간 순간은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는다. 시간은 어디서 나타나, 어디로 사라지는 걸까? 그 누구도 이 질문에 담하지 못할 것이다...... 답할 수 없는 많은 질문들이 여전히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고, 중요한 다른 문제들도 그 해결 여부에 따라 우리의 행복을 좌우한다. 살 가치가 있다고 인식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177p, 시간)

 

 

  생각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자! 당신은 생각의 탄생을 도와야 한다. 생각은 언제나 당신의 노력에 보답할 것이다. 생각은 도처에, 어느 곳이건 존재한다. 마음만 먹으면 당신은 돌덩어리 틈새에서도 생각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사람들은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그들은 지금처럼 삶의 노예가 아닌, 삶의 주인이 될 것이다. 살고자 하는 열망과 자신의 힘에 대한 도도한 인식만 있으면 된다. 그러면 삶 전체는 영혼의 힘으로 가득 차고, 위업의 고결함으로 깊은 감동을 주는 멋진 시간, 위대한 시간이 될 것이다. (184p,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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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린 사람들 열린책들 세계문학 216
제임스 조이스 지음, 이강훈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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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문학작품들에는 작가가 의도하여 사회를 반영하여 메시지를 던지는 경우와, 의도하지 않았지만 사회의 모습이 그려지는 경우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더블린 사람들>은 전자에 속하는 작품이다. 몇백 년 동안 영국의 식민지였던 아일랜드가 20세기 초 독립되고 난 후, 아일랜드 사회에서는 강한 민족주의 정신이 팽배하게 되고 그것은 문예부흥운동으로까지 이어졌다. 민족주의의 최정점에서, 더블린 출신의 작가 제임스 조이스는 점점 마비되고 세속적이 돼가는 아일랜드 사람들에게 올바른 가치를 깨우쳐주고자 했다. 아일랜드 사람들이 반들반들하게 닦은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 볼 기회를 주기 위해 썼다고 그는 이 작품을 썼다고 말했다.

 

 짧은 단편들 여럿이 담겨있는 <더블린 사람들>에는 이처럼 아일랜드 사람들과 역사를 비추는 장면들이 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단편 <애러비> 속에서 주인공에게 꿈같은 공간이었던 '애러비'는 알고 보니 천박하고 공허한 공간이었고, 그는 결국 분노와 환멸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작은 구름>에서는 아일랜드라는 국가의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유럽에 대한 동경만으로 살아가는 '더블리너'의 모습이 그려진다. <짝패들>에 나오는 한 아버지의 초상을 통해서 많은 시간 동안 지배당해왔던 아일랜드의 모습과 그 사회 속에서 권력에 굴복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그러나 가족 안에서는 그러한 권력과 폭력을 행사하는 모습을 그린다. 또한 탐욕적인 어머니의 모습을 그렸던 작품인 <어떤 어머니>와 행복을 꿈꾸며 도피하려 하지만 결국 그 도피처도 확신하지 못하는 <이블린> 속에서 종속적인 여자들의 모습도 드러낸다.

 

  작가 제임스 조이스는 이러한 '더블린 사람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면서도 대놓고 비판하지 않는다. 과장되지 않은, 현실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글속의 주제를 독자들이 해석하게끔 한다. 이렇듯 정확하게 드러내지 않는 텍스트들의 특성상, 작가가 비판하는 공간에 대한 어떠한 지식 없이 메시지를 해석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언급한 단편들 이외에도 많은 글속에서 아일랜드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힘썼던 인물과 '문예부흥운동'과 같은 역사적 사실들이 등장하는데, 이러한 정보들이 작품을 이해하는데 많은 영향을 주므로 그냥 작품만 읽고 넘어간다면 약간은 심심할 지도 모른다.

 

  예쁘게 포장된 그림이 아닌, 마비되고 우울한 한 시대의 초상화를 그리고 있는 단편집이지만, 누구보다도 그 나라를 사랑하고 그 나라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 전해주려 했던 작가의 상황이 연상된다. Dubliner의 이야기지만, 사회 속에서 제 모습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릴 수 있는 작품인 듯 하다. 짧지만 강한 임팩트가 있는 소설들이, 마찬가지로 기억 속에 강하게 남는다.

 


 

 

  더 있어 봐야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나는 그 여자의 물건들에 좀 더 관심이 있는 듯 보이려고 잠시 더 서성거렸다. 그러다가 천천히 몸을 돌려 바자 중심부에서 걸어 나왔다. 나는 들고 있던 1페니짜리 동전 두 개를 주머니 속 6펜스 동전 위에 떨어뜨렸다. 전시장 끝에서 누군가 불이 나갔다고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홀의 윗부분은 이제 완전히 어둠에 잠겨 있었다. 어둠 속을 바라보면서 나는 허영심에 속고 놀림당한 어리석은 내 자신을 보았다. 그리고 내 눈은 괴로움과 분노로 타오르고 있었다. (43p, 애러비)

 

 

  늦가을 붉게 타는 석양이 풀밭과 산책로를 비추고 있었다. 석양빛은 흐트러진 옷차림의 보모들, 벤치에서 졸고 있는 늙은 남자들 위로 친절하게 황금빛 먼지를 뿌리고는 움직이는 모든 것들 - 소리를 지르며 자갈길을 달려가는 어린이들과 정원을 가로질러 걸어가는 모든 사람들 - 위에서 어른거렸다. 그는 그 모습을 보면서 인생을 생각했고 (인생을 생각할 때마다 항상 그랬듯이) 그러자 슬퍼졌다. 미묘한 우울감이 그를 사로잡았다. 그는 운명에 대항하는 것이 얼마나 무익한가를 느꼈다. 이것이 수많은 세대들이 그에게 물려주었던 지혜의 핵심이었다. (91p, 작은 구름)

 

 

  차가운 어둠 속에서 붉은 불빛들이 아늑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는 언덕 아래를 쳐다보았다. 아래쪽 공원 벽의 그림자 아래에 누워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타락한 은밀한 사랑에 그는 절망감을 느꼈다. 그는 자기 인생의 청렴함을 곱씹어 보았다. 그는 자신이 삶의 축제에서 추방되었음을 느꼈다. 한 인간이 그를 사랑했었던 것 같았지만 그는 그녀의 삶과 행복을 거부했다. 그녀에게 불명예, 부끄러운 죽음을 선고했던 것이다. 그는 벽 아래에 누워 있는 사람들이 그를 쳐다보고 있다는 것, 그가 빨리 가버리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무도 그를 원하지 않았다. (153p, 가슴 아픈 사건)

 

 

  게이브리얼의 눈에 관용의 눈물이 고였다. 그 자신은 어떤 여자에게도 그런 감정을 느껴 본 적이 없었지만 그런 감정이 사랑임에 틀림없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눈물이 더 많이 고였고 희미한 어둠 속에서 그는 빗방울이 떨어지는 나무 아래에 서 있는 젊은 남자의 모습을 그려 보았다. 다른 모습들도 가까이 있었다. 그의 영혼은 수많은 죽은 자들이 살고 있는 그 지역에 접근 했었다. 그는 이리저리 흔들리고 깜빡이는 그들의 존재를 의식할 수는 있었지만 인식할 수는 없었다. 그 자신의 정체성도 회색빛의 알 수 없는 세계로 사라져 들어가고 있었다. 그 죽은 자들이 한때 지어내고 살았던 확고한 세상 그 자체도 점점 줄어들어 사라지고 있었다. (303p, 죽은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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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물고기
다니엘 월러스 지음, 장영희 옮김 / 동아시아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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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을 나열하자면 한도 끝도 없지만, 가장 짧은 시간 내에 '인생이 즐겁다.'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유머'다. 많은 책들 속에서도 필요성을 강조하듯이, 가장 짧은 한마디와 단순한 생각으로 누군가를 기분 좋게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유머'다. 길게 이어지는 지루한 대화 속에서 지루함을 탈피해주는 것도 '유머'고, 삶이 힘들면 힘들수록 우리가 매달리는 것도 웃음을 주는 '유머'다.

 

  그리고 일생에서 절대로 '유머'와 '상상력'을 버리지 않았던 한 남자가 있다. 그 존재 자체로 이야기가 되어버린 한 남자. 그는 소설 <큰 물고기> 속의 '에드워드 블룸'이다. 큰 연못에서 헤엄치는 큰 물고기가 되고자 했던 '에드워드 블룸'. 그러나 항상 즐겁고 엉뚱하고 재밌는 이야기가 가득했던 그의 삶에도 뜻밖의 우연은 다가오고, 에드워드는 병상에 눕게 된다. 투병 상황 속에서도 아버지는 '나는 이렇게 죽지 않아, 미래를 봤다'며 농담을 멈추지 않는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아들 '윌리엄 블룸'은 착잡하고 불만이 가득하다. 아들은 아버지의 '믿거나 말거나 모험담' 대신 현실적인 이야기, 인생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우습지 않은 상황에 억지로 웃어야 한다는 것은 답답하기만 하고 이해할 수 없다. 아들은 멋지게 포장된 위대한 아버지의 모습보다는, 굴곡이 있더라도 진실되게 보여지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기를 원한다.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그는 한 곳에서 정착할 수 없는 자유로운 사람이었고, 누구나 사랑하게 만드는 사교성이 넘치는 사람이었으며, 원하는 것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어떤 위험도 무릅썼고, 누구보다도 낭만적이고, 세상을 보는 일을 즐겼다. 평생 동안 가족들에게 들려준 이야기 속에는 어릴 때 이상한 노파의 눈을 통해 미래를 본 이야기, 어느 날 강가에서 신비스러운 소녀를 만나게 된 이야기, 엄청난 거인을 만난 영웅담, 전쟁에서 살아남아 돌아온 이야기... 믿거나 말거나 환상적인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어느 것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구분할 수 없는 이야기들.

 

  아들은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리고 우리에게 옮겨주면서 점점 깨달아나간다. 아버지가 정말로 물려주고 싶어 했던 것은, 자신의 위대한 영웅담이나 많은 사람들을 매혹시켰던 사교성이나 그 무엇이 아니라, 즐겁게 이야기하게 만드는 '웃음'이라는 것을. 위대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아버지의 삶이 진실이든 허구이든, 특별한 이야기를 믿고 즐길 수 있는 것임을.

 

 '아버지'란 이름을 달고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삶을 걸어가고 있다. 그들이 모두 위대한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도 연못 속에서 위풍당당하게 헤엄치는 위대한 '큰 물고기'가 되고 싶은 사람일 수 있다. 살아가면서 점점 줄어들고 있는 아버지라는 존재를 기억해주기를, 각자만의 특별한 이야기를 가진 위대한 '큰 물고기'로서 우리가 이해해주기를 소설은 말하고 있다. 존재 자체로 이야기가 된 너무나 특별한 아버지인 '에드워드 블룸'의 입을 빌려 소설은 말한다. "누군가가 한 이야기를 기억해준다면 그는 영원히 죽진 않는 거란다"라고.

 


  

 

  아버지는 항상 뭔가를 끊임없이 추구하며 살았다. 무엇이든 그것을 성취하는 것 자체는 중요하지 않았다. 성취하기까지의 투쟁이 중요했다. 결코 끝나지 않은 싸움이었다. 그래서 그는 일하고 또 일했다. 아버지는 한 번 나가면 여러 주 동안 뉴욕이나 유럽, 일본과 같은 곳을 돌아다녔다. 그러다가는 어느 날 불쑥 이상한 시간, 이를테면 밤 아홉 시쯤 집에 돌아오곤 했다. 그리고 마실 것을 만들어 들고는 명목상 한 가정의 아버지로서의 자리인 그의 의자를 메운 채 앉아 있곤 했다. 그럴 때면 으레 그는 멋진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다. (28p)

 

 

  그래서 우리는 두 명의 백치처럼 얼굴에 어설픈 미소를 띤 채 꼼짝없이 이러고 앉아있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이 그어지는 이정표가 되는 마지막 날, 즉 산 자와 죽은 자 모두에게 있어 모든 것이 변하게 될 그날의 마지막 순간에 무엇을 말하고 어떤 화해를 할 수 있는가? (110p)

 

 

  우리 모두가 아버지를 그렇게 생각해왔다. 이른 아침 박스 팬티만 입고 있는 모습을 봤어도, 그리고 한밤중에 모든 프로그램이 끝난 후에도 텔레비전 앞에 앉아, 그의 꿈꾸는 얼굴을 마치 수의처럼 덮고 있는 푸른 빛 속에서 입을 벌리고 잠들어 있는 모습을 봤어도 우리는 왠지 아버지가 신과 같다고 생각했다. 웃음의 신, 입만 열면 '옛날이 이런 사람이 있었단다'로 시작하는 신, 아니면 적어도 사람들이 좀 더 웃게 하기 위해 이 땅에 온 신과 어떤 인간 여자 사이에 태어난 혼혈 신이라고 생각했다. (166p)

 

 

  그래도 나는 이 모든 일이 다 잘 될 것이고, 그러다가 결국 다시 해피엔딩으로 끝날 것이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의 병까지도 하나의 은유로 생각했다. 그의 병은 그가 이 세상에 싫증났다는 것을 의미했다. 세상이 너무 재미없어진 것이다. 거인도 없고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유리 눈도 없고 생명을 구해주었더니 나중에 나타나서 목숨을 구해준 강의 소녀도 이젠 없었다. 이제는 단지 에드워드 블룸, 하나의 평범한 남자일 뿐이었다. 나는 그가 숨기고 싶은 장면을 살짝 엿보고 있는 것뿐이었다. 그것은 그의 잘못이 아니었다. 단지 이 세상이 이제는 그가 거창하게 살 수 있는 마술적인 힘을 갖고 있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의 병은 좀더 나은 곳으로 가기 위한 승차권이었다. 나는 이제 그걸 안다. (249p)

 

 

 

 

제목이, 아시겠죠? 팀 버튼 감독의 영화로 나왔던 원작 소설입니다 :)

개인적으로 마지막 장면은.. 정말 좋았어요. 소설과 영화 속에서 둘 다. 

 

아 참, 이 책은 절판되었어요. 중고로 구하시거나 빌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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