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ve a Dream 마틴 루서 킹 - 그래픽 평전, 2014 세종도서 선정 도서 푸른지식 그래픽 평전 1
아서 플라워스, 피노, 마누 치트라카르 / 푸른지식 / 2014년 2월
평점 :
절판


 

 

  "저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 이 나라가 떨쳐 일어나 진정한 의미의 국가 이념을 실천하리라는 꿈,

 즉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진리를 우리 모두가 자명한 진실로 받아들이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50년 전 미국 워싱턴에서는 "I Have a Dream"이라는 제목의 연설이 울려 퍼지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유명한 마틴 루서 킹의 평화 대행진 연설이었죠. 그는, 그 이름만으로 우리에게 자유와 감동의 상징으로 전해지고 있지요. 그는 전 세계적으로 흑인 인권 신장을 위해 힘썼습니다. 최연소 흑인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고 시민운동가의 리더였죠. 더욱이 그 피 나는 노력 속에서도, 비폭력으로 저항하고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던 선구자였습니다.  

 

 

 
  ​인종차별 -인간의 가장 이기적이고도 추악한 행동 - 이 현재에 와서 아예 없어졌다고 할 수는 없겠죠. (은연중에, 혹은 마음속에 남아있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현재는, 이전에 상상도 할 수 없는 많은 변화가 이루어졌습니다. 과거에 흑인들은 열등한 인간으로 여겨졌고 짐승 같은 취급을 받았습니다. 죽도록 일하는 노예가 되었고, 성 노예로도 팔리기 일쑤였습니다. 그들은 무조건 백인들의 말에 따라야 했죠. 그 후 1863년 남북 전쟁 당시 '노예 해방령'으로 노예제도가 법적으로 철폐되었지만, 미국의 남부 쪽에서는 아직도 심각한 인종차별이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흑인들은 저항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죠. 예전부터 쭉,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이었죠. 게다가 그 차별에 저항하게 되면 집에서 쫓겨나고 목숨을 잃는 등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런 시대에, 마틴 루서 킹이 존재하고 있었죠. 지금의 많은 흑인들이 자신의 능력을 펼치고, 미국에서는 최초로 대통령직을 맡게 되는 등 흑인의 인권이 살아날 수 있었던 이유. 그와 같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의 일대기, 감동적인 이야기를 미국의 한 구전 예술가와 인도의 예술가가 멋진 그래픽 평전으로 펴냈습니다. 독특한 느낌의 그림과 페이지마다 다양하게 변형한 글자들이 멋지게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인도 벵골 지역에는 '파투아 예술'이라는 것이 있는데, 화자가 그림이 그려진 스크롤을 들고 그림 속의 이미지를 손으로 가리키면서 노래와 말로, 이야기를 전하는 형식의 구전 예술입니다. 이 책은 이러한 '파투아 전통 예술'을 발전시켜 순차적으로 전달되는 이미지 속에서 한 위인의 생애를 그래픽 노블 형태로 만들어낸 결과물입니다. 인도의 예술가인 '마누 치트라카르', 인간에게 계급을 매기는 카스트 제도를 느끼면서 자란 그는 이 책의 많은 캐릭터들의 표정에, 자신이 보고 자란 그 감정을 불어넣었죠. 그리고 그 그림은 우연히 미국의 구전 예술가인 '아서 플라워스'를 만나 새로운 시도의 그래픽 평전으로 변신했습니다.
 

 

 

 

 

  작가들은 마틴 루서 킹의 생애 속 선택들을 숙명과도 같은 신의 뜻으로 연결합니다. 신의 뜻과 연결된 마틴 루서 킹의 생애는 묘하게 신비스러운 느낌을 줍니다. 물론 독특한 그림도 한몫 하지요. 물론 이러한 것들은 위인을 더욱 위대하게 만들려는 일종의 시도이지만, 마틴 루서 킹은 원래 살면서 '운명'과 같은 말들을 많이 꺼냈습니다. 그는 자신의 저서에서 자신이 위대한 사상의 도구가 될 수 있어서 영광이며 흑인의 영적인 힘이 전 세계로 뻗어나가 모든 나라들이 더 높은 곳에 다다르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흑인은 운명을 타고난 민족이라는 시선이죠. 그러한 시선은 인권 신장을 향한 모든 투쟁에서, 마틴 자신이 올곧은 믿음과 꿋꿋한 의지를 놓치지 않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어준 것 같습니다.
  구전 예술을 책으로 승화시킨 <I Have A Dream>은 우리에게 말을 걸고 가끔은 마틴 루서 킹의 행동에 말을 걸면서 이야기를 이끌어갑니다. 누구보다도 파란만장한 삶을 겪으면서, 때로는 방해받고 질타 받았지만 이 세계의 '평등'을 일궈냈던 마틴 루서 킹. 그의 삶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듣는 이야기는, 국가와 인종을 넘어 어떤 사람들에게나 많은 감동을 줄 것 같습니다. 세상의 많은 위인들의 일대기를 이런 비슷한 방식으로 흥미롭게 만나봤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이 읽기에도 좋은 교육서가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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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비즈니스 산책 - 인종의 용광로, 비즈니스의 용광로 비즈니스 산책 시리즈
엄성필 지음 / 한빛비즈 / 2014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여행에 관한 책들은 넘쳐난다. 관광지의 정보를 세세하게 담은 여행 정보 서적부터, 여행에서의 감정을 그대로 담은 여행 에세이까지. 그러나 '비즈니스 산책' 시리즈는 그중에서도 특별하다. 앞표지에 크게 자리 잡은 뉴욕의 풍경이 '여행'과 관련된 책임을 알려주는 듯하지만, 이 책은 단순한 여행보다는 비즈니스 관점으로 뉴욕을 조명한 책이다.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사는 뉴욕에서 인기 있는 것들, 그리고 고객을 유치하는 마케팅과 뉴욕만의 특별한 비즈니스 원칙들을 다루고 있다.

 

 
 
 
    상상할 수 없는 거대한 도시 뉴욕은 이제 관광지보다는 그 자체가 브랜드인 비즈니스의 천국이다. (물론 지옥의 비즈니스를 경험할 수도 있는 곳이다.) 언젠가는 뉴욕이 파산하고 몰락할 거라는 예상이 있었던 적이 있었지만, 뉴욕은 이제 많은 사람들이 선망하고 한 번쯤 발을 디뎌보고 싶은 도시가 되었다. Big Apple 그리고 I♥NY의 도시 뉴욕은 엄청난 임대료를 자랑하고 있는 길거리 점포부터 다양한 음식의 맛집이 있고, 건물을 허가 없이 높이 올릴 수 없다. 말 그대로 '하늘 값'을 지불해야 하는 독특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세계 각지에서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모여들고 다양한 직업으로 진출한다. 뉴욕은 패션의 중심지기도 하다. 백화점에서는 상품을 직접 고르고 직접 판매하는, 배짱 좋은 운영방식을 택하고 있다. 럭셔리 아이템들이 넘쳐나고 신예 디자이너들이 자생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고 있다.
  "잘 나가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 이 책의 사례가 있는데 그중 한 가지는 신예 디자이너들의 자생 시스템이다. 맨해튼에 위치하고 있는 '가먼트 디스트릭트'에서는 패션이 만들어지는 과정, 그 모든 것이 존재하고 있다. 원부자재뿐만 아니라 샘플 제작을 할 수 있는 환경, 바이어와의 연결, 주문까지 연결된다. 기존 명품에만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디자인을 창출해내는 이러한 시스템은 우리나라의 '오즈세컨'이라는 브랜드를 백화점에 입점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리고 세계 패션위크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는 뉴욕의 패션을 더욱더 활발하게 지켜내고 발달시켜나가고 있다.
 
 

 
 
​  우리에게 이 책 속에 있는 정보들이 더욱 절실해진 것은 이제 뉴욕을 바라보는 사람들도, 세계로 진출하기 위해 뉴욕에 입점하려는 기업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우리와는 다른 문화에 맞춘 비즈니스적 관점이 절실히 필요하다. KOTRA의 북미지역 총괄본부장이자 오랜 시간 한국의 브랜드를 세계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애쓴 저자의 조언은 실전에서 얻은 소중한 노하우다. 우리나라의 제품들은 세계에서 예전보다 많은 인정을 받고 있지만, 서비스적인 문제나 비즈니스맨들의 기본 매너는 아직 부족하다고 한다. 뉴욕에는 독창적인 한국의 맛으로 세계인의 입맛을 유혹하고 있는 인기 한식당이 있고 뉴욕에 브랜드를 유치한 한국 기업들도 있다. Dr.Jart라는 비비크림, 아모레 퍼시픽, 교촌치킨, 카페베네 등이 많은 관심을 끌고 있지만, 시시각각 변하는 고객들의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꽤 세심한 노력이 필요하다.
  뉴욕은 미국의 도시지만, 이제는 축소된 세계인들의 공간이다. '미국 우월주의'적인 발언일지도 모르겠지만, 다양한 국가에서 모여드는 사람들과 기업들이 이것을 증명하고 있다. 한국의 브랜드도 이제는 세계인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들이 많지만, 그들이 모두 '그것이 한국 제품이다'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세계 속의 뉴욕, 뉴욕 속의 세계에서 우리의 존재감을 적극 발휘시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저자는 언어와 서비스, 기본 매너, 문화적 다양성을 중시하는 태도 등을 사례로 제시한다. 이러한 팁들은 뉴욕 뿐만 아니라 우리의 경영시장, 또다른 해외시장에서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점차 멋진 모습으로 세계를 활보하는 우리의 문화를 많이 발견할 수 있다면 좋겠다.
 

 

   ​세렌디피티3가 북적이는 것을 보면, 꼭 음식의 맛이 성공을 좌우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유명세 자체가 소비자의 구매 포인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명세는 그야말로 컨택 포인트다. 유명한 가게일수록 고객의 기대감은 더 크다. 만약 일부러 찾아간 가게가 실망스럽다면, 고객은 더 크게 낙담할 수밖에 없다. 지속적으로 찾게 만들기 위해서는 유명세만으로는 부족하다. 내 입맛이 보편적이지 않아, 세렌디피티3의 음식과 가격에 불만이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소비자가 만족하는 지점이 다양하다는 것이다. (77p)

  과거에 비해 패션 제조업으로서의 명성은 쇠락해가고 있지만 뉴욕은 여전히 신예 디자이너들이 자생할 수 있는 생태계 역할을 해내고 있다. 디자이너 브랜드가 탄생하려면 이처럼 잘 갖추어진 서식지와 소비시장이 필요하다. 즉 디자이너 스케치가 현지에서 구입한 원부자재를 사용하여 샘플로 만들어지고, 쇼룸을 통해 판매자로부터 주문을 받아 현지의 봉제공장에서 생산되고 공급되며, 현지 백화점 등에서 판매되는 생태계가 형성돼 있어야 한다. (155p)

  한국인에게는 인간의 3대 욕구가 아닌 4대 욕구가 있다고 한다. 식욕, 성욕, 수면욕, 그리고 치욕. 단번에 알아들은 분들은 역시 치욕이 왕성한 분들이다! 치욕은 일명 치킨에 대한 욕구다. 웃자고 나온 말이지만 그만큼 한국인에게 치킨은 빼놓을 수 없는 먹을거리다. 그리고 한국식 치킨은 이제 뉴욕의 주류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그 선두에는 바로 본촌과 교촌이 있다. (179p)

  내가 하는 일은 한국 기업의 미국시장 진출을 돕고, 미국 기업의 투자를 한국으로 유치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나는 많은 미국 기업 측 사람들과 수시로 접촉하고 만난다. 나는 맨해튼에서 미국인들과 비즈니스를 하면서 느낀 바가 하나 있는데 그들은 자신의 이익이 없으면 절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바쁘게 돌아가는 맨해튼에서 시간은 곧 돈이다.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누군가가 만남을 청한다는 것은 곧 그 사람의 돈을 빼앗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그들과 만날때는 동기부여, 즉 뭔가 돈이 될 만한 것들을 주어야 한다. 그래야 만날 수 있다. (301p) ​

 
* '세계를 걸으며 배우는 비즈니스 산책 시리즈' 중의 뉴욕 편이구요.
런던은 이미 출간되있고, 상하이와 이스라엘 편이 나올 예정이네요. 개인적으로 이스라엘이 정말 궁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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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 선생
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남진희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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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볼라뇨의 필생의 역작인 <2666>이 (물론 사다 놓고 대작이란 부담감에 아직 읽지 못하였으나) 악의 기원과 본질을 탐구하고 있는 소설이라면, 그 분량의 거의 1/5도 되지 않을 듯한 <팽 선생>은 일종의 '맛보기'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볼라뇨 작가 인생 '초기'에 쓰였기 때문에 독자들에게는 볼라뇨 문학의 시작점을 건드려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1938년이라는, 비교적 정확한 연도가 제시된 '파리'의 어느 날, 최면 요법가인 팽 선생은 '레노 부인'으로부터 자신의 친구의 남편 (바예흐)의 병을 치료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달려가는데, 그의 병은 '딸꾹질이 멈추지 않는 병'이다. 어떤 의사도 그를 치료하지 못해 거의 죽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평소 부인에 대한 호감이 있었던 팽 선생은 그녀의 절실한 부탁을 수락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치료할 것임을 약속한다. 이후 '바예흐'를 방문하려 하는 그는 이상하게도 묘한 불안감을 직감하게 된다. 누군가가 따라오고 있다는 불안감, 무언가로부터 감시당하고 보여지고 있다는 긴장감. 그 이상한 분위기가 이어지고 이후에는 거의 의도적으로 - 뇌물을 주면서 혹은 술과 먹을 것으로 회유하면서 - 바예흐를 향한 팽 선생의 접근을 막고 있는 듯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꿈과 현실의 경계를 주무르는 '최면요법가'라는 직업의 팽 선생은, 되려 자신이 그 이상한 경계를 넘나들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불안한 흐름을 만들어내는 긴장과 감시 속에 그는 계속해서 악몽을 꾸게 되고, '깨어있음'과 '잠들어 있음'이 반복되는 모호한 소설의 구성 속에서 어딘지 모르게 멀뚱멀뚱 서있는 듯한 존재로 보인다. 소설의 중간쯤 극장에서 상영되는 <현실>이라는 이름의 영화는 그 대사들과 함께 소설의 아이러니한 상황을 더욱 극대화시키는데, 긴장 속에서 갇혀있는 '팽 선생'의 모습은 언젠가 보았던 영화 <트루먼 쇼>의 무시무시한 상황을 생각나게 한다.

 

  소설을 다 읽고 난 후에도 당혹스러운 감정이 온몸을 감싸는 이 소설은 어떠한 말로도 정확히 정의 내리기 어렵게 보이긴 하지만, 옮긴이의 말에 의하면 실제 인물들의 등장으로 어떠한 의미를 잡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실제로 스페인 내전 당시 전체주의의 폭력에 희생하며 온몸으로 저항했던 '바예흐' 시인은 소설 속에서, 많은 이들의 무관심 속에 홀로 죽어가는 인물로 그려진다. 부조리한 현실을 바꾸려고 노력했던 한 개인이, 문학 속에서는 억압된 심리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팽 선생'의 모습으로 그려지고, 그 현실을 부정적으로 만들어나가는 막대한 힘들 - 설명할 수 없이 묘한 분위기의 긴장감과 억압된 분위기 - 과 그 힘들을 보고 있지만 빨려 들지 않고 방관하는 '레노 부인'과 같은 사람들, 그리고 막대한 힘과 권력을 빌려 자신의 위치를 재창조해 나가려고 하는 '플뢰뫼루보두' 같은 사람들로 나누어진다.

 

  각기 다른 성질의 사람들이 모여 어떤 사회를 만들어내고 있는가. 그리고 억압과 불안의 심리가 있었던 과거의 모습과, 미래인 지금은 또 어떻게 달라졌는가. 조금 더 나은 사회를 바라보았던 볼라뇨의 바람은 뒤로 한 채, 아마도 지금은 과거의 모습처럼 - 마찬가지로 또 하나의 희생양과 함께 - 같은 모습으로 만들어지고 있을지도. '악'이라고 불리는 거대한 힘은 모호하게 연결되는 장면들과 곱씹으면 소름 끼치는 대사들에 숨겨져있다. 그것을 찾아보는 재미, 볼라뇨의 소설에서 느껴볼 수 있을지도.

 

 

   그녀를 따라가려는 순간, 몰려 있던 사람들이 흩어지는 듯한 느낌과 조금 전 아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의사들의 얼굴에서 경계의 빛을 잡아낼 수 있었다. 두 사람을 향해 웃음을 지었다. 그들은 내 추측을 확인해 볼 수 있는 몸짓을, 즉 그들의 입장에서 보여 줄 수 있는 무표정한 얼굴을 했지만, 이는 그곳에 모여 있던 사람들의 무표정과는 비교가 되는 것이었다. 나는 레노 부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내 기억으로는 그녀가 지나치게 빨리 걸었던 것 같다. 반대로 내 다리는 납덩이나 된 듯이 너무나 무거웠다. 결국 나는 잠깐 멈춰 섰다. 예술품을 전시한 갤러리에 잇는 것 같은 느낌이 혈관을 타고 올라왔고, 결국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다. (32p)

 

두려움이라고 하기엔 애매한, 하지만 두려움 비슷한 것이 나에게 남아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숙명적인 정적에 묻혀 사라져 버렸다. 도대체 무엇이, 어떤 목적으로 이런 소리를 내는지 밝히고 싶은 마음이 만들어낸 정적 말이다. 한 가지는 명백했다. 소리는 내가 있는 곳으로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지금은 벽을 따라오고 있지만, 곧 벽에서 멀어져 내가 있는 중앙을 향해 다가올 것 같았다. 나와 평행이 되었을 때 벽에서 떨어져 나올 가능성이 커 보였다. 그러나 나를 뒤에 남겨둔 채 계속해서 나아갈 가능성도 있었다. 그 경우엔 분명히 뒤쪽에서 접근하려고 할 것이다. (107p)

 

   나는 보도 한복판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아무것도 나를 가려 줄 만한 것이 없었을뿐더러, 나는 비에 흠뻑 젖어있었다. 좀 놀란 듯한 그의 두 눈을 향해 완벽한 과녁이 되어 주었다. 멀리서 천둥소리가 들려왔다. 스페인 사람은 재미있다는 표정이었다. 이 사내는 내가 자기를 따라오길 원하고 잇는 것일까? 분명히 그럴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맥이 빠졌다. 다른 대안이 있다면 그것은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누가 미친 것일까? 그인가, 아니면 나인가? 온몸에서 오한이 이는 것을 느꼈다. 의심할 여지 없이 병이 날 것만 같았다. 그러니 내 정신은 여전히 맑게 깨어 있었다. 어떻게 그것을 설명할 수 있을까? 호기심과, 비현실적인 거리를 따라 두런거리며 나아가고 있는 알 수 없는 믿음을 향해 열어 놓은 마음. 그러나 나는 비를 계속 맞고 싶지 않았다. 이것은 보류해 놓은 뭔가를 아직은 포기 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했다. 순간적으로 떠오른 따뜻한 커피와 술 한잔에 대한 생각에 나는 깜짝 놀랐다. (120p)

 

   스페인 사람은 마치 모르는 사람처럼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에게 웃음을 지어 보이고 싶었지만, 잘되지 않았다. 그가 팔꿈치를 움직여 자기 동료에게 내가 나타난 것을 알렸다. 그 친구가 눈치채는 데는 시간이 좀 걸렸다. 그는 스크린 속 장면 하나하나에 몰입하고 있었다. 그는 얼굴을 돌려 나를 바라보더니 자연스럼게 말을 건넸다. 「안녕, 팽. 잘 지냈나?」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시간이 만들어 낸 적지 않은 흔적에도 불구하고, 금세 그를 알아볼 수 있었다.

<인생은 아름다워. 그리고 당신은 아직 젊고. 사랑하는 친구여, 노력해 보게.> <나는 여전히 밤이 두려워, 폴.> <용기를 내!> <용기를 낸다는 건 무엇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야 할지를 알 때 비로소 가능한 거야. 그런데 내 경우는 아니야. 내 적들은 허공을 떠다니고 있어. 더 문제는 제일 밑에 있다는 거야. 죄악의 땅을 기어다니고 있다고.> <아무튼 너무 지나치게 악몽에 짓눌리진 마, 미쉘. 악몽은 다 쓸데없는 거라고. 그것을 명심해야 해.> <악몽은 과거야, 내 과거라고. 잊기 위해서는 아예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할 거야.> (12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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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일기
폴 오스터 지음, 송은주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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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당신은 그런 일이 당신에게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일어날 리 없다고,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일어나도 당신에게만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런 일들이 하나씩 하나씩 다른 이들에게 일어나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당신에게도 일어나기 시작한다."

 

  인생의 겨울이 시작되었다. 봄, 겨울, 가을의 흔적을 모두 씻어내듯이, 폴 오스터의 인생도 <겨울일기>에 스르륵 쏟아낸다. 그는 몸이 기억하는 시간의 기록을 털어놓는다. 단, 그 몸은 자신의 몸이 아닌 당신의 몸으로 언급된다. '당신'이란 이름으로 그는 한 발짝 물러나, 자신의 일부이자 이제는 멀리 떨어진 '당신(혹은 자신)'을 추억한다. '당신'이기에 그 몸의 생동하는 움직임을 눈앞에서 보는 것처럼 기억해낼 수 있다. 또는 그 당신을 많은 사람들에게 넓게 적용할 수 있다. 기억은 그의 몸에 새겨졌다. 얼굴에 있는 지워지지 않는 흉터, 담배로 인해 끓어오르는 가래를 내뱉던 목구멍, 행복감을 만끽하며 달렸던 다리, 농성으로 인해 잡혀서 짓밟히고 그 밖의 수많은 곳을 스치고 건드린 손은 육체의 일부이자 기억의 한 부분이 된다.

 

  상상하기 낯부끄러운 것들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인생의 회고록에, 몸이 뚜렷이 기억하는 감정을 불어넣는다. 사춘기의 쑥스러운 성충동과 어머니에 대한 애착을 고스란히 고백한다. 하나하나 벗겨내 알몸이 될 때까지, 허공으로 추락하는 자유와 행복의 감정 그리고 참을 수 없이 솟구치던 분노와 변명도 할 수 없었던 수치스러운 감정까지 드러낸다. 한없이 깊은 감정으로 추락해 들어가다가, 어릴 때의 에피소드 - 그 시시껄렁한, 예를 들면 자신이 좋아했던 여러 가지 음식이나 황당무계한 이야기들 같은 - 를 속닥속닥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스무 번이 넘게 변화했던 그의 생활공간 (집)도 빼놓지 않는다. 어떻게 이렇게 세세한 것들까지 기억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그 자신의 몸을 품은 그 공간들을 빼곡하게 기억한다. 변화되는 모든 상황 속의 감각을 털어낸다. 물론 그 집도 보이지 않는 그의 흔적을, 집 안을 활보하던 발의 느낌을 기억할 것이지만 말이다.

 

  그는 여러 번 죽음을 인식해왔다. 땅에 묻힌, 풍경에 갇힌 죽음들이 아직도 그곳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지금도 인식하고 있을, 또는 언젠가 자신에게도 찾아올 것인 죽음은, 피할 수 없는 큰 고통이고 통증이지만 두렵지 않다. 그의 신체가 그의 일부이므로, 죽음도 그 일부를 거치는 과정일 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죽음에 대한 언급에는 '늙음'의 쓸쓸함이 없다. 60여 년의 세월을 맞아왔음에도 생생하게 떠오르는 그의 기억 탓인지. 늙음이 언급되지 않기에 인생의 겨울은 차디차고 낯설지만 어두컴컴하지는 않다.  

 

  그의 말에 의하면 "평범한 삶이라고 부르는 것 속에 모든 것이 다 있다."라고 했다. 아마도 그 누구의 삶이더라도 '평범함' 그 자체의 삶은 없을 것이다. 그 모든 것을 담은 인생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은 그에게, 오로지 '단어'다. "몇 번의 아침이 남았을까"하고 고민하는 인생의 겨울, 그 시기의 폴 오스터. 모든 것과 연결된 육체로 그는 쓰기 시작한다. 언젠가 무용수의 춤을 보고 다시 잡게 된 펜, 자신의 호흡을 따라, 심장의 박동을 따라울리는 몸의 음악(글쓰기)을 연주한다. 이보다 환희스러운 경험이 있을까? 그는 자신의 모습과, 변화와 순간의 감정과 감각을 받아들이고 종이에 풀어내리면서, 새로운 인생을 맞이한다. 깊은 호흡으로 몸의 움직임을 듣는다. 그로 인해 새로운 봄을 시작할 것이다. 그의 봄도, 당신의 봄도.

 

 

  언제나 당신을 감싸고 있던 것은 외부, 즉 허공이지만 자세히 말하면 당신을 둘러싼 허공 속 당신의 몸이다. 발뒤꿈치는 땅에 굳게 딛고 있지만 나머지 부분은 허공 속에 있다. 그곳이 당신의 몸에서 이야기가 시작되는 지점이고 또한 모든 것이 몸에서 끝날 것이다. 지금 당신은 바람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그 후에는 시간이 허락한다면 열과 추위, 셀 수 없이 다양한 비, 눈이 없는 사람처럼 휘청거리며 뚫고 온 안개, 바르 강가에 있는 집의 타일 지붕을 덜거덕거릴 정도로 미친 듯이 때리던 기관총 소리 같은 우박에 대해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당신의 주의를 온통 차지한 것은 바람이다. 공기는 가만히 있을 때가 거의 없다. (18p)

 

  사람이 죽음을 맞는 바로 그 순간, 존재는 의식의 다른 차원으로 이동하고 이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을, 적어도 당신 생각으로는 그랬다. 그로부터 5년 후 처음으로 공황 발작이 일어났을 때, 몸이 갈기갈기 찢겨서 바닥에 패대기쳐지는 것 같은 갑작스럽고 엄청난 타격을 받았을 때 당신은 침착하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했다. 그때도 역시 당신은 죽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번에는 공포에 질려 울부짖었다. 살면서 그렇게 두려움을 느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의식의 다른 차원이니 눈물의 계곡으로부터의 조용한 탈출이니, 다 쓸데없는 소리였다. 당신은 바닥에 누워 가슴이 터지도록 울부짖고 또 울부짖었다. 죽음은 당신의 안에 있었지만 죽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울부짖었다. (40p)

 

  서른두 살. 1979년 초 거기에 정착하기 전 한바탕 충격과 갑작스러운 변화, 당신을 바꾸어 놓고 당신의 삶을 이전과 다른 방향으로 틀어 놓은 내면의 동요가 몰아쳤다. 어디로 가야 할지는 알지만 갈 데도 없고 이사할 돈도 없는 상태에서 당신은 파경 이후에도 더치스 카운티의 집에 머물며 아래층 서재 구석의 침대 겸용 소파에서 잠을 잤다. 지금 와서야 (서른두 해가 지나) 생각해 보니 그것은 어린 시절 당신의 침대였다. 두어 주가 지난 뒤 뉴욕으로 떠나면서 당신은 우주의 틈새 속으로 당신을 밀어 넣는, 델 듯이 뜨겁고도 명징한 에피파니의 순간, 일종의 계시를 경험했고 그것은 다시 글쓰기를 시작할 수 있게 했다. (102p)

 

  세 번째 잔을 다 비우고 또 한 잔을 비운다. 결국 이것이 마지막 잔, 치명적인 한 잔이 되고 만다. 몸의 안팎에서 동시에 공격이 시작된다. 마치 보이지 않는 힘이 당신을 의자에 억지로 주저앉혔다가 땅바닥에 패대기치는 것처럼 당신을 둘러싼 공기의 압력이 갑자기 엄습한다. 동시에 머리통 벽면을 두드리며 절그렁거리는 소리가 어지럽게 울리고 머릿속은 섬뜩할 정도로 가벼워진다. 그러는 내내 바깥쪽에서는 계속해서 당신을 짓누르고 안쪽은 텅 비어 가는 바로 그 순간, 어느 때보다도 더 어둡고 텅 빈 바로 그때, 당신은 기절해 버릴 것만 같다. 고동이 빨라지고 가슴을 뚫고 터져 버리려고 하는 심장을 느낄 수 있다. (...) 이제 당신은 돌이 되어 가고 있다. 부엌 바닥에 누워 입을 벌린 채 움직일 수도 생각할 수도 없게 되어 검고 깊은 죽음의 바닷속으로 당신의 몸뚱이가 익사해 가기를 기다리며 공포에 질려 울부짖는다. (140p)

 

  당신은 <옛날이 좋았지>라는 말을 싫어한다. 문득 향수에 젖어 지금보다 삶을 더 낫게 만들어 준 것만 같은 무언가가 사라졌다는 데 슬퍼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때면 스스로에게 당장 그만두고 잘 생각해 보라고, 지금을 볼 때와 같이 그때를 정밀하게 들여다보라고 말한다. 오래지 않아 당신은 그때와 지금 사이에는 거의 차이가 없으며 본질적으로는 같다는 결론에 이른다. (19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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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자격 - 내가 제대로 키우고 있는 건가
최효찬.이미미 지음 / 와이즈베리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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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의 교육은 그야말로 '과잉'의 시대다. 아이들의 최종 목표인 '입시'를 위하여 많은 엄마들이 자식 교육에 매달린다. 영어 유치원, 조기 유학, 과외와 학원... 그리고  가장 큰 과잉은 부모의 '애착'이다. 부모는 자신이 이루지 못 했던 것을 아이에게 바라거나, 자신보다 더 높은 수준의 아이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이러한 문제가 붉어질 때마다 '열성 엄마들의 지역'에서는 몇 가지 화제가 되는 것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가장 최근에 본 것은 '현대판 뒤주'다. 엄마는 옷장만 한 붙박이장에 책상을 설치하고 공부하는 공간을 만든다. 그곳은 아이 하나 딱 앉을 만한 공간이다. 그리곤 문을 닫고 자물쇠를 건다. 아이는 그 속에서 엄마가 원하는 대로, 원하는 시간 동안 오로지 공부 만을 위해 갇혀있는 것이다. 심하게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부모들의 자식 교육은 일단 '아이가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이 기본이지만, 그 기본적인 질문마저 꺼낼 수 없을 정도로 나쁘게 변질되어 가는 교육의 모습에 '정말 부모 맞나?'하는 물음까지 던지게 된다.

 

  많은 부모들이 이렇게 교육에 열을 올리고 있으니, 그렇게 아이를 닦달하기 원하지 않는 부모들도 덩달아 흔들리게 된다. '내 아이도 저런 학원에 보내야 되지 않을까', '사교육에 돈을 더 투자해야 되지 않을까'하고 고민한다. 그리고 그 고민들을 해결해줄 사교육 기관들은 서로 경쟁한다. 경쟁하고 경쟁해서 보다 더 좋은 교육을 위해 힘쓴다. 그렇다 보니 아이들은 학교보다도 더욱 활성화되고 재미난 교육을 제공하는 학원을 더 선호하기 시작하기도 한다. 문제는 그런 교육 비용을 감당하기 힘든 부모들이다. 사교육 비용을 감당하기 힘든 부모들은 그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포기하게 된다. 점점 부모들의 지원을 강하게 받는 아이들만 공부에 매달리게 된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은 자연적으로 명문고나 특목고를 바라보기 시작하고, (그리고 그 입시에는 역시 돈이 따른다.) 일반고는 '슬럼화'현상이 일어난다.

 

  이런 사회 속에서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하는가? 이 책에서는 사회와 가정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절제, 욕심, 냉정, 긍정'이라는 해결책을 제시한다. 자식에게 환상을 적용하지 않고 아이의 홀로서기를 지원하고, 무조건 포용하려 들지 않고 살짝 부족하게 키우는 것, 가끔은 냉정해야 하고 긍정 마인드를 가져야 된다는 것. 아이들의 꿈과 도전을 응원하고 부모가 원하는 공부가 아닌, 아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하게끔 도와주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쉬워 보이는 해결책이지만, 생각보다 그것을 따르기는 어렵다. 부모의 바람과 욕심이 자신도 모르게 커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는 '스스로 선택한 것'은 절대 붙잡고 놓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몹쓸 사회지만 거부할 수 없는 이런 사회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들이 사회에 눈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자식을 깊게 바라보는 것이다. 이 책의 기본 논지도 바로 그것이다. 아이들에게 눈을 돌리고, 아이들의 성향을 파악하여 잘하는 것과 관심 있는 것을 꿈으로 만들어가게끔 도와주는 것. 만약 높은 성적과 공부를 아이가 원한다면 능력껏 끌어줘야 하지만, 아이가 원하는 것을 알지도 못한 채 이것저것 아이에게 적용시켜보는 것은 좋은 결과를 얻기 힘들다. 아이들에게는 각자의 성향이 있다. 무조건 닦달한다고 모두가 달라지지도 않고, 무조건 공부를 시킨다고 다 잘하지는 않는다. 모든 아이들이 똑같지 않듯이, 그들의 꿈도 다르다. 이제는 아이를 밀어주면서 성장하는 것 대신에, 아이에게 집중하면서 함께 걷는 성장이 필요한 듯하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사는 인생도 이제는 '돈이 있어야 가능한' 세상이다. 마이클 샌델 교수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란 책을 썼지만 세상엔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들이 너무 많다. 물론 경제력이 있는 집안의 아이들이 유학을 가서 방탕과 향락에 빠져 인생을 망치는 경우도 많지만 말이다. 그래도 돈이 있는 집 아이들은 한국에서 안 되면 미국 등 외국에 가서 또 한 번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 말하자면 '가진 자'들의 '패화 부활전'이라고 할까. 이런 경우를 보면 자식교육에도 돈의 위력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49p)

 

  그러고 보면 부모란 죽을 때까지 자식을 걱정하는 존재가 아닐까. 아무리 잘해 주어도 별로 칭찬받지 못하는 존재 말이다. 전 교사는 아직 늦둥이 아들 교육이 남아 있다. 그는 두 딸을 키우면서 긴 터널을 통과한 느낌이라면서 늦둥이 아들을 키우는 데는 이제 베테랑처럼 여유를 가지고 임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한다. '이 또한 다 지나가리라.' 탈무드에 나오는 이 말처럼 언젠가 자녀를 키우면서 겪는 이 모든 일들은 다 지나가고 부부만 덩그러니 남게 될 것이다. 그래도 자식을 키울 때가 인생에서 가장 재미있고 보람 있는 시절이라고 한다. 살아본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140p)

 

  주역에 '직방대(直方大)'라는 말이 있다. 자연히, 스스로, 본능적으로 아는 것을 뜻한다. 우리의 삶은 기본적으로 누가 가르쳐서 되는 것이 아니고, 태어나면서 누구나 삶을 위한 준비가 저절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따로 익히지 않아도 특별히 불리할 것이 없다고 강조한다. 우리 동네 김밥집 아주머니의 말은 주역의 이 말과 통하는 것 같다. 그는 힘든 세월을 통해 엄마가 욕심을 버리고 아이의 마음을 잘 다독여주는 것이 가장 중요함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래서 자녀로 인해 마음고생 하는 엄마들에게도 이런 얘기를 들려주고 싶다고 한다. "아이마다 자기 몫의 인생이 있답니다." 자식농사는 부모가 필사적으로 달려든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네 인생처럼 말이다. (147p)

 

  우리나라 엄마들 대부분은 자기계발을 포기하다시피 하고 자녀교육에 전념한다. 그것이 자녀를 위해 엄마가 해야 할 일이라고 여긴다. 그러자면 엄마는 마치 기숙사의 '사감'과 같은 얼굴을 자녀에게 보이게 된다. 엄마와 자녀와의 관계는 늘 학생과 사감처럼 긴장관계에 놓일 수밖에 없다. (...) 자녀도 꿈을 키워주고 이끄는 역할 모델이 필요하지만, 어머니도 자녀교육의 역할 모델이 필요하다. (182p)

 

  꿈을 정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성향에 맞춰 꿈의 '상수'를 정해 놓는 게 필요하다. 필자의 경우 꿈의 상수는 '변화'였다. 매일 똑같은 일이 아니라 매일 변화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 직업을 신문기자로 선택한 것은 매일 새로운 기사를 쓸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꿈의 상수는 재능 뿐만 아니라 자신의 성격을 고려해야 한다. 필자의 경우 '변화'였는데 이런 상수들에는 도전, 모험, 봉사, 헌신, 사랑, 명예, 권력, 실용, 평화 등등 수많은 키워드가 있다. 자신의 성향에 맞춰 하나 또는 두 개 정도 정하면 된다. 그리고 의사나 변호사, 엔지니어, 기자 등 자신이 하고 싶은 일, 즉 직업은 꿈의 '변수'에 해당한다. 하고 싶은 일은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19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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