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퍼펑크 - 어산지, 감시로부터의 자유를 말하다
줄리언 어산지 외 지음, 박세연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약자에게 프라이버시를, 강자에게 투명성을 <사이퍼펑크 - 줄리언 어산지, 제이컵 아펠바움 외>

 

 

 

 

 

 ​ After Reading                                                                                                                                          

 

 

  ​세상의 모든 정보를 다양하고 쉽게 접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지만 마찬가지로 우리는 자신의 정보까지 개방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감시체제'에 놓이게 되었다. '구글링(Googling)'이라는 명칭은 유명하다. 어디서도 나오지 않는 정보를 구글은 찾아준다는 의미로 쓰이기도 하는데, 예전에 친구가 갑자기 자신의 이름을 구글링 해보라고 얘기한 적이 있었다. 자신의 정보가 다른 국가의 페이지에서 나온다며 깜짝 놀라며 나에게 내 이름도 찾아보라 했다. 다행히 내 정보는 발견하지 못했지만, (아마도 어느 곳에는 있었을지 모를..) 세계 곳곳에서 어디선가 내 정보가 떠돌아다닐 거라 생각하니 소름이 끼쳤다.

  정부나 기업 등의 비윤리적 행위와 관련된 비밀 문서를 폭로하는 웹사이트, 위키리크스 (Wikileaks)로 온 세상이 떠들썩한 때가 있었다. 국민들의 알 권리를 위해 은밀하게 정부나 기업을 감시하고, 그것을 폭로하던 위키리크스, 당시 많은 관심은 없었지만 그때 폭로된 정보의 신뢰성과 비밀을 폭로한다는 점에서 윤리적인 문제도 간혹 생각한 적이 있었다. 이후 위키리크스는 정부 체제 안에서 수사를 받고 사이트 자체에 대한 검열과 서비스 중단으로 응답했으며, '보안 위반'이라며 그들이 남긴 자료들에 대한 접근을 차단하였다. 그리고 현재 은신해있는 위키리크스의 편집장 '줄리언 어산지'는 '감시로부터의 자유'를 새롭게 주장하기 시작했다. 바로 사이퍼 펑크. 사이퍼 펑크 (Cypherpunk)는 "사회적, 정치적 변화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암호 기술 및 이와 유사한 방법을 활용하는 사람"을 말하는데, 80년대부터 유래한 이 '사이퍼 펑크'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해커나 크래커 등 다양한 분야로 나누어지지만, 이 책에서의 핵심은 우리 곁에 조용히 존재하고 있는 '감시 체제'를 벗어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느냐를 연구하는 것에 있다. 줄리언 어산지를 중심으로 모인 사이퍼 펑크 지지자들은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감시 체제의 형태, 그리고 민간 기업에 의한 감시, 검열 등에 대하여 토론한다. 그 토론의 내용이 책 <사이퍼 펑크>에 그대로 담겨있다.

  ​그들에 의하면 현재 대규모의 감시 기술은 엄청나게 정교해졌으며 비용 또한 낮아지게 되었다. 커뮤니케이션이 증가하면서 감시 또한 증가했고, 감시 기술의 수출은 널리 이루어지고 있는 반면에 감시 기술에 대응할 수 있는 '암호 기술'은 금지되어 있다. 인터넷에 수많은 국민들의 개인 정보가 떠돌지만, 직접 검열할 수 있는 시스템은 개인에게 마련되지 않았다. 그런데 오히려 기업과 정부에 대한 정보는 검열되고 제어되고 있다. 네티즌들이 웹사이트에 다는 정치적 댓글들은 간혹 삭제되기도 하고, 메인페이지에 뜬 기사들은 순서가 뒤바뀌며 여러 정보를 가리곤 한다. 세계의 정부, 그리고 기관들은 사람들의 수많은 데이터를 수집하면서도 "우리에게는 그러할 권리가 있다"며 비판에 변명한다. 토론자들은 이러한 상황에 대한 해결책으로 여러가지를 내놓는데 중요한 것은 "우리가 원할 때, 자신만이 해독할 수 있고, 어느 누구도 접근할 수 없는 강력한 암호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부와 기업들은 그 기술을 제작하는데 있어서 비도덕적인 방법으로 통제해서는 안되며, 정보가 자유롭게 흐르는 보편적인 네트워크인 인터넷은 보다 신중해져야 한다. "세상에서 수집된 모든 정보들이 공개된다면, 힘의 역학 관계는 변화할 것이며, 우리는 세계적인 문명의 차원에서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하게 될 것입니다"

  이들의 토론을 읽다보면 지금 우리가 어떤 세계에 살고 있는지, 우리는 어떻게 스스로의 정보를 보호하고 살아가야 하는지 막막함이 앞선다. 인류의 문명을 위협하고 있는 이 사회, 우리만의 새로운 세계인 사이버 공간에서 감시의 눈이 쳐다보고 있는 이 현실을 어떻게 이겨나가야 할까. 얼마전 있었던 은행권의 대량 개인 정보 유출 사태까지 생각이 나면서 오싹해진다. 무언가 대책이 필요하다.

 

 

 

 Underline                                                                                                                                             

 

 

 

  ​제레미 : 이는 정부 지원의 감시뿐만 아니라 프라이버시의 문제, 즉 제삼자가 데이터를 관리하는 방식과 그러한 데이터를 가지고 실행되고 있는 것에 대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지식의 문제입니다. 저는 페이스북을 쓰지 않아서 잘 모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모든 개인적인 정보를 기꺼이 페이스북에 넘겨줍니다. 그런데 개인적인 정보와 공개적인 정보 사이의 경계선을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이들을 비난할 수 있을까요? 디지털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기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연예계나 정치계 혹은 언론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만이 공개적인 형태의 삶을 살았지만, 지금은 누구든 정보 공개만 설정하면 잠재적으로 그러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공개>는 무언가를 공적인 형태로 놓아둔다는 말이며, 이는 세상이 자신의 데이터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는 의미입니다. (70p, 민간 기업의 스파이 활동)

  줄리언 : (...) 미래의 감시 디스토피아에 저항하기 위한 유일한 현실적인 대책은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지키기 위한 방안을 스스로 모색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모든 정보를 가로챌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스스로 자제해 주기를 바랄 수는 없습니다. 한 가지 역사적인 비유로 인류가 손을 씻게 된 과정을 한번 생각해봅시다. 모든 사람들이 손을 씻기까지는 세균이 질병의 원인이라는 이론이 등장하고, 그리고 그 이론이 널리 알려져야 했습니다. 손에 묻어 있는 보이지 않는 존재가 질병을 옮긴다는 다소 편집증적인 생각이 사람들 머릿속에 자리를 잡아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인식이 형성되고 나서, 기업들은 그러한 걱정을 덜어줄 수 잇는 비누 제품을 생산하기 시작했죠. 이러한 점에서 문제 해결을 위한 충분한 욕구를 자극하기 위해서는, 그 이전에 그 문제에 대한 두려움을 사람들에게 주입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88p, 물리의 법칙으로 전면적 감시에 맞서다.)

  제레미 : 모든 기업이 그랬습니다. 인터넷 세상에 등장해 폭발적으로 성장한 모든 것들이 몇 년, 아니 불과 몇달 전까지만 해도 무명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다음번 혁신이 어떤 모습으로 등장할지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혁신이 등장하는 속도는 정책이 등장하는 속도보다 훨씬 빠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시장 상황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그리고 다양한 기업과 주체 사이의 역학 관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이미 강력한 힘을 확보하고 있는 쪽에 힘을 실어준다면, 더욱 놀라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새로운 진입자들의 등장을 차단하게 될 겁니다.

  줄리언 : 시장의 규제는 자유를 위해 존재하는 거죠.

  제레미 : 물론 독점과 맞​서 싸워야 하고, 악의적인 시도를 처벌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기업들보다 더욱 강한 힘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정책이 사회 속으로 파고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불가능합니다. (...) 바람직한 정책은 문제를 바로잡고, 세상을 공공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고, 현실 속으로 파고들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강력한 산업 주체들이 정책을 결정하도록 내버려 둘 때, 우리는 절대 그러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144p, 인터넷과 경제)

  제이컵 : 아시아 지역에서 벌어지는 검열에 관해 얘기할 때,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이 문제를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로 생각한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일들은 마치 <동쪽 저편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만 일어나는 것으로 여기죠. 하지만 우리가 미국에서 구글로 검색을 할 때, 법적 요건에 따라 일부 검색 결과가 생략되었다는 메시지를 그냥 넘겨 버려서는 안 됩니다. 물론 그 일을 수행한 방식, 그리고 방식과 이유, 지역에 관한 사회적 현실 사이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이 문제의 중요한 부분은 아키텍쳐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가령 인터넷 전반에 걸쳐 아키텍처는 분명히 분산화된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동일한 차원에서 중국 방식의 검열 작업을 수행하기는 힘듭니다. (157p, 검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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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거슬러
토마스 에스페달 지음, 손화수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3월
평점 :
품절


살아있기에 '부자연스러움'을 갈망할 수 있는 우리 <자연을 거슬러 - 토마스 에스페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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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적으로 '자연을 거스른다'라고 하면 광활하고 무한한 자연에 맞서 인간이 물리적으로 대항하는 등의 장면을 예상하곤 한다. 그러나 이 소설 속의 '자연'은 조금 더 폭넓은 의미를 지칭한다. 'Nature',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동식물 등의 자연이 아닌, 자연스럽고 천진한, 당연한 것을 의미하는 그 모든 의미까지 포함된다. 그러나 이 '자연스러움'과 그 반대의 '부자연스러움'을 판단할 때 우리는 작은 딜레마에 봉착한다.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들, 사랑을 포함한 삶을 이야기할 때 어떤 것을 '당연하고 자연스럽다'라고 믿어야 하는가? 많은 미디어에서, 혹은 입으로 전해지는 루머 등에 등장하는 부자연스러워 보이는 사랑을 하는 사람들. 그들은 왜 그렇게나 비난받으면서 서로 죽고 못 사는 것일까? 세상의 많은 성 소수자들은 그들의 정체성을 드러내면서까지 세상이 말하는 '자연스러움'을 거스르려 하는 것일까? 나도 사실은 이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가끔은 편협한 시각을 내세우기도 하며 "괜찮다."라고 이야기하면서도 부정적인 감정을 처음에는 드러내게 된다. 그리고 이후 "오죽했으면 저럴까?"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들의 마음을 공감할 수는 없지만 '이해'하는 식으로 다가가게 된다.
  작가인 '토마스 에스페달'도 이런 부자연스러운 사랑에 푹 빠져있었다. 자신의 사랑이 이 세상 속에서 부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겨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빠르게 달리는 롤러코스터에 어쩔 수 없이 앉아있는 것'처럼 느끼기도 하면서도, 숨 막히는 사랑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던 듯 보인다. 소설 속에서 작가의 분신으로 등장한 등장인물은 자기보다 한참 나이가 적은 여자를 만나는 한 남자, 혹은 과외 선생님과 육체적 관계로 사랑하는 한 소녀다. 그들은 여느 연인들처럼 서로에게 홀린 듯 사랑하고 행복을 찾는다. 그러나 고민한다. 우리의 부자연스러운 사랑이, 행복을 가져올 순 있는 것일까. 그렇게 의심하던 그들에게는 불행과 고뇌가 따른다. 파괴, 모욕, 그리고 실연.
  각 소주제로 분류된 소설은 작가의 체험이 스며든 자전적인 소설이다. 후반부에 나오는 한 남자의 고백록은 사랑에 빠져 허우적대는 여느 연인들의 말들처럼 절절하고 감상적이다. 모든 세상이 자신의 위주로 돌아가는 듯, 그의 주위에 있는 자연과 풀과 잎사귀, 새가 지저귀는 소리조차 자신이 해오던 사랑의 체험 속에 들어있는 듯. 그는 외친다. "사랑 없이는 살 수 없오." 남들의 눈에 부자연스러웠던 사랑을, 자연을 거슬러 그 감정 덩어리를 하나씩 하나씩 분출하는 그의 모습은 안쓰럽고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실연이 있고 난 뒤, 그 사랑을 거스르려고 (잊으려고) 하는 그의 노력은 소용이 없어 보인다. "모든 것이 끝나버렸다."라고 말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 그렇다. 그만의 사랑, 당연히 존재했던 그의 '사랑'이 없어짐으로써 그는 좌절한다.
  그리고 그는 여러 번 행복에 대하여 자문한다. 그리고 삶에 대해 자문한다. "시간, 물질, 죽음, 삶.... 그 모든 것의 '자연'을 거스르며 살 수는 없을까?" 하지만 그런 그의 시도에 자연은 무자비하게 대응한다. 절대로 자연의 흐름을 거부해선 안된다고, 그대로 받아들여야만 한다고. 그가 받은 자연의 대답은, 그를 더 고독하고 절망하게 만든다. 삶과 운명, 그리고 자연을 절대로 거부하거나 바꿀 수 없음을, 소설은 노자의 '무위자연'의 삶을 가리키는 듯 강력하게 이야기한다. 그러나 자연을 거스르려는 그의 행동은 쓸모없는 일은 아니다. 우리는 살아있기 때문에 어디로든 퉁퉁 튀어나갈 수 있으며, 때로는 '부자연스러움'을 맛보고 거리낌 없이 행동할 수 있다. 우리는 살아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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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침대에서 지체 없이 모을 일으켜 몇 분 동안 꼼짝 않고 앉아 허공만 멀뚱멀뚱 바라보았다. 그 순간, 우리가 누구인지, 또 어디로 가야 하는지 기억해내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우리는 그 몇 분 동안 실체없는 존재였으며, 아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생명에 불과했다. 우리는 그렇게 우리가 누구인지, 또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우리가 짐승인지 인간인지, 또는 인간인지 기계인지 아무 생각도 없이 침대에 앉아 있곤 했다.
  그 순간은 몇 초씩 또는 몇 분씩 지속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우리가 누구인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모른 채 그저 베개에 머리를 묻고 이불을 목까지 끌어올린 후 다시 잠에 빠져들었으면 하는 생각밖에 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부드러운 베개에 머리를 대자마자 빠져 들 것 같은 그 달콤한 수면 속으로 도망치고 싶은 생각을 떨치려 안간힘을 쓰다 보면, 어느 순간 우리는 그것이 단지 희망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을 깨닫곤 했다. (41p)
  우리의 삶엔 진실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일까? 우리는 자연 속에서, 숲과 날짐승들에 둘러싸여 살지 않았던가? 그렇다. 하지만 우리는 사랑 없는 삶을 살고 있었다. 함께 살면서 아이도 낳았고 필요할 때면 함께 힘을 합쳐 일하기도 했지만, 그녀와 나 사이의 사랑은 어느덧 사라지고 없었다. 어쩌면 우리 사이의 사랑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는 결혼을 하려 한다. 어떤 면에서 보자면 자연스럽게 여겨지기도 했다. 우리는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는 롤러코스터에서 뛰어내리지도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앉아 있어야만 하는 사람들 같았다. 롤러코스터는 무거운 속력으로 돌고 또 돌았으며, 우리는 두려움에 떨며 서로를 꼭 붙들고 있었다. 문득, 제자리를 벗어난 롤러코스터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낯선 세계로 향했다. (103p)
  행복에 관한 책은 짧고 단편적일 수밖에 없다. 행복을 이야기할 때, 장편소설처럼 지속적이고 서로 연관이 있는 이야기를 이어 나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 속에서는 연계성도 찾아볼 수 없으며, 이성과 논리를 찾을 수도 없다. 이처럼 행복에 대한 장편소설을 쓰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150p)
  행복은 눈앞만 가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몸도 덮어버린다. 그것은 마치 새살처럼, 이전의 낡고 상처난 피부를 얇고 매끈하게 덮어 버리기 마련이다. 내가 그녀의 불편을 눈치채지 못했던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행복에 한가운데에 있으면 기억력도 나빠지기 마련이다. 설탕처럼 달콤한 그 무엇이 몸속 핏줄을 통해 내장까지 가득 차오르고 결국은 손가락과 발가락, 성기와 얼굴, 눈과 귀, 코와 입술, 혀와 피부를 통해 분출된다. 행복에 젖어 있으면 모든 것이 새롭게 보이기 마련이며 과거는 망각 속으로 사라져 버리기 일쑤다. 집중할 수도 없고 주변의 일에 주의를 기울일 수도 없다. 나는 사랑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것인지 너무 오래전에 잊어버렸다. (164p)
  나는 두 주먹을 꼭 쥐고 거친 숨을 내쉬어 본다. 문득 온몸을 스치는 한기에 몸서리친다. 몸속에 자리한 땀과 열을 불어내기라도 하듯 숨을 훅 내쉬어 본다. 폐와 심장 주변에 얇게 서리가 내려앉은 것 같다. 위장과 간과 혈관과 고환을 조여오는 한기. 온몸이 얼음장 같다. 잠에서 깬 후 한기에 몸을 떤다. 차가운 공기 때문에 눈가와 입가가 쓰라리다. 얼굴의 살갗이 딱딱하게 얼어붙었다. 서리 낀 얼굴. 차갑고 무거운 양손. 얼음처럼 차가운 공기는 성기마저 오그라뜨린다. 억지로 잠에서 깨어났건만 살아갈 의욕이 없다. 열정과 따스함, 믿음과 힘이 사라져 버렸다. 살아갈 의욕이 없다. (228p)
​ P.S                                                                                                                                                         
소설이 마치 단편집처럼, 화자가 바뀌면서 약간 읽는데 어려움이 있기는 했지만
소설의 문장은 참 좋았던 것 같습니다 :) 일단은 주제도, 내용도 새로운 자전적 소설을 만났다는데 의의를 두기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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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복으로 리셋하라 - 1일 1식 저자 나구모 박사의 몸과 마음 최적화 전략
나구모 요시노리 지음, 황소연 옮김 / 북폴리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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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1식' 두 번째 이야기, 몸과 마음 최적화 전략 <공복으로 리셋하라 - 나구모 요시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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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엄청난 열풍이 불었던 '1일 1식' 식사법. 나도 그때, 열풍에 끼어들어 책을 읽었었는데, 저자가 말하는 '지켜야 할 것'에는 당연 고개를 끄덕일만한 것들이 많았지만 반신반의한 것들도 간혹 있었다. 아마 완벽히는 믿지 못 했던 것 같다. "이렇게 하면 정말로 좋아진다고?"하는 삐뚤어진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물론 시도하진 못 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공복'이 필요하다는 것과 그것에 대한 저자의 논리는 어느 정도 수긍이 가기는 했다.

   <1일 1식>이 식습관에 많은 부분 초점을 맞춘 책이라면, 이 책은 의학박사인 저자 '나구모'의 라이프 스타일을 전반적으로 생물학적인 이론을 이용하여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며칠 동안 먹지 않고도 살 수 있는 '인체 메커니즘'을 갖고 있지만 사람들은 '꼬르륵 소리가 나지 않는 공복(공복감)'으로 과도하게 몸에 지방을 축적하고 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불어난 몸은 생활습관병을 유발하고, 우리는 미용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건강을 위해서 몸을 가볍게 만들어야 한다. 내일을 위해서, 더 건강하고 편안한 미래를 위해서 준비해야 한다. 우리들의 몸과 마음을 최적화 시킬 시간이다.

  저자의 이름을 딴 '나구모식 건강법'을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운동하지 않는다, 늦잠 자지 않는다, 먹지 않는다, 뜨겁게 하지 않는다, 씻지 않는다, 생각하지 않는다."인데, 역시 대부분은 동의하는 것들이지만,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것도 있다. '운동하지 않는다'와 '뜨겁게 하지 않는다', 그리고 '씻지 않는다'라니. 건강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완전히 뒤바꾸는 법칙들이다. 상상이 가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몇 개만 설명해보자면, 저자는 '논엑서사이즈 (non-exercise)'를 주장한다. 사실 '논(non)'이라고 해서 운동을 아예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일부러 시간 내서 운동하려고 애쓰지 말고, 일상생활에서 할 수 있는 운동을 꾸준히 실천하자"는 이야기다. 저자가 주장하는 '1일 1식' 식사법은 물론이고, 걸어 다니기, 일부러 서있기, 몸을 꼿꼿이 하기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그렇다면 '씻지 않는다'라는 어떤 얘기일까? 저자는 지나친 청결에 대해서도 주의하자고 주장하고 있는데, 우리 몸은 이미 다양한 방어 기능을 지니고 있으므로 화학용 세정제나 각질을 벗겨내는 것은 오히려 해로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실제로 비누와 샴푸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미지근한 물로만 씻어낸다고 한다. (?!!!) 저자가 말하는 근거가 어느 정도 설득력 있게 들리기는 하지만 따라 해 보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

  저자의 전작과 이 책을 읽어본 결과, 내용의 신뢰성에 대한 판단은 제쳐두고라도 일단 드는 생각이 있다. 저자는 참 '편안하고 만족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 많은 것에 욕심내지 않고, 조금씩 덜어냄으로써 실제로 자신도 많은 효과를 얻었고 또한 많은 독자들이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도록 권유하고 있다는 것. 바쁜 현대인들에게 '1일 1식'과 여유롭게 건강을 체크하고 이 책에 나온 모든 것을 실행하기엔 어려워 보이긴 하지만, 조금씩 실천할 수 있는 만큼 시도해본다면 어쨌든 '내 몸의 작은 변화'를 느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여유로운 마음이다. 뭐든지 급하게 빼고 고치려 하면 안되는 법. 조금씩, 내 몸의 최적화 (리셋)을 시작해보자.

 

 

 Underline                                                                                                                                             

 

 

 

  ​인생의 유통기한이 앞으로 3일 남은 상황, 몸이 건강하고 돈도 자유롭게 쓸 수 있다면 많은 사람들은 최고로 맛있는 것을 먹고 음주가무를 즐기며 최대한 즐겁게 남은 생을 보내고 싶어 할 것이다. 즉 인생의 단기 목표는 '쾌락'이다. 질문을 바꿔, 3일이 아니라 3개월이 남았다면 대답은 어떻게 달라질까? 지금까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낯선 곳에 가서 난생 처음 맛보는 여행의 즐거움을 누리고 싶다는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이처럼 인생의 중기 목표는 '일상에서의 탈출'이다.

  그 시간이 3년이라면 어떨까? 3년 동안 매일같이 폭음 폭식을 할 수도 없고, 해외여행을 3년이나 다니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무엇보다 체력이 허락하지 않을 테니.

  그런 연유에선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족과 보내는 시간을 좀더 소중히 여기겠다', '지금 하는 일을 꾸준히 해 나가겠다'고 대답한다. 요컨대 인생의 장기 목표는 '변함없는 일상'이다. (12p)

  평소에 전혀 운동을 하지 않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달리기를 시작하거나 근력 운동을 하면 제일 먼저 근육 속의 탄수화물이 연소한다. 탄수화물은 800킬로칼로리만 비축되어 있기 때문에 순식간에 고갈되고 만다. 이때 탄수화물이 연소하면 젖산이라는 피로물질이 나와서 금세 피로감이 몰려온다. 따라서 오랫동안 운동을 지속하기 어렵다. 또한 탄수화물이 바닥나면 혈당도 같이 떨어져서 허기가 밀려온다. 그리하여 식욕을 참지 못하고 배가 부를 때까지 먹으면 일부는 탄수화물로 비축되지만 대부분은 지방으로 축적된다. 바로 이것이 운동을 해도 되레 뚱뚱해지는 이유다. (44p)

  음식 맛에는 사람마다 상황마다 각양각색, 천차만별의 적당한 간이 존재한다. 때문에 그 사람의 체형이나 연령, 체질은 물론이고 그날의 날씨와 피로도, 업무내용 등을 고려해서 간을 적절하게 가감하는 게 옳다. 낮 동안 공원에서 유유자적 휴식을 취한 할아버지에게는 나트륨을 최대한 적게, 야구부 주장으로 열심히 뛰는 고등학생 아들에게는 좀 더 진한 맛을 곁들이는 등 옛날 어머니들은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맞는 조화로운 양념을 늘 염두에 두었다. 그런데 어느새 '적당히, 적절하게' 가감하는 염매는 자취를 감추었고, 요리책 레시피에도 알 수 있듯이 양념 분량은 작은술 하나, 큰술 둘 하는 식으로 천편일률적으로 균일화되었다. (108p)

  풍요로운 인생을 목표로 한다면 매 순간 만복이 아닌, 공복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인생에서 소중한 것들은 모두 공복이 가르쳐 준다'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마음에서 허기를 실감하면 사랑을 느끼고 또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머릿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면 배운 내용이 지식이 되고 행동으로 이어진다. 배가 굶주리면 먹은 음식이 영양분으로 흡수된다. 요컨대 공복이야말로 살아가는 힘을 곧추세우는 데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116p)

  신피질의 지배에서 벗어나는 일은 인간이 생존해 나가는 데 아주 중요한 분기점이 된다. 신피질의 무차별적인 공격을 받으며 자신이 분열되려고 할 때 도움이 되는 방법이 있따. 바로 앞에서 소개한 쓸데없는 잡생각의 고리를 끊고 한 가지에만 집중하는 '일의전심'과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자기애'의 마음가짐이다. 어떤 순간에도 자기애를 상실해서는 안 된다. 어떤 적이 나타나도 '나'만큼은 '내 편'이 되어야 한다. (17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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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 직전의 우리 작가정신 소설락 小說樂 4
김나정 지음 / 작가정신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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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분노의 심연 속에서 던지는 질문 <멸종 직전의 우리 - 김나정>

 

 

 

 

 ​ After Reading                                                                                                                                        

 

 

 

  ​'멸종'이라는 단어가 우리의 일상에서 쉽게 얘기될 수 있는 소재였던가? SF 소설에나 나올 법한 이 단어는 낯설지만 우리는, 혹은 주변의 어떤 이들은 빠져나올 수 없는 불안 속에, 지옥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들도 그렇다. 오해로 둘러싸인 한 소녀의 죽음, 그녀가 떠나간 후 남겨진 사람들. 그들은 각자의 응어리를 가슴에 지닌 채, 길고 긴 인생의 발걸음을 터덜터덜 걸어가고 있다. 언젠가는 그 발걸음이, 돌부리에나 걸려 쓰러질까 불안해하며 멸종 직전에 서있는 그들, 그리고 우리는 그 위기 속에서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을까.

  소설의 내용은 제목을 보고 지레 짐작했던 것과는 확실히 다른 내용이었다. 이 이야기는 그럴듯하게 꾸며진 내용도 아닌, 블록버스터 영화처럼 극적인 반전이 빵빵 터지는 내용도 아니다. 그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 가끔은 논쟁도 벌어지는 - 잔혹한 이야기보다도 덜한, 그렇기에 너무나 익숙한 소재로 만들어진 이야기다. 한 교실 속에서의 청소년 왕따, 그리고 죽음, 그 죽음에 대한 복수심.... 그중 포인트는 증오와 분노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피아니스트를 향한 자신의 욕망을 딸에게 투영하던 엄마 '권희자' 그리고 자유롭게 하고 싶은 것마저 할 수 없었던 그녀의 딸 나림. 그들은 서로에 대한 분노를, 증오를 내뱉는다. 그렇게 만들어진 분노 덩어리는, 나림이와 같은 반이었던 선주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 순수한 동경에서 비롯된 오해가 나림의 증오를 만들고, 그 증오는 재밋거리 (따돌림)를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었다. 자신을 왜 미워하는지도 알 수 없었던 왕따 '선주'는 나림을 칼로 찌른다. 그리고 순식간에 두 집안은 마치 '멸종 위기'에 놓인 가족들처럼 망가지게 된다.

 

  선주는 증오심이 가득 찬 세월을 버리고 '수인'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러나 조용히 이름을 바꾸고 잠적하는 것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과제가 그녀에겐 남아있었다. 어릴 적, 자신도 시원하게 사실을 토로하지 못 했던 그 사건에 그녀는 수인(囚人)이라는 이름처럼 여전히 갇혀있는 것이다. 그녀는 꾸역꾸역 삶을 버텨내기 위해 살았고, 자신의 자식이 딱 친구 '나림'이 죽었을 나이가 되었을 때, 나림의 엄마 '권희자'가 찾아온다. 권희자와 나림, 선주(수인) 그 세 사람 모두 감정의 응어리를 어디에서도 시원하게 풀지 못했고, 그 증오는 악순환의 질긴 고리가 되어 가장 부정적인 방법인 복수의 감정으로 자라나게 된 것이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돌보지 않는 분노의 심연은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 감정의 골이 깊어지고 더 이상은 손쓸 수 없을 정도로 커져가는 것은 그 감정을 어떠한 곳에서도 풀 수 없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디에도 그 감정을 배출할 길이 없었던 그들은 오해 속에 가려진 진실을 외면한 채, 그 진실을 해결하기 위한 발버둥도 치지 못한 채 멸종 직전까지 살아오게 된 것이다.

 

  이 소설은 마음속에서 커져가기만 했던 분노 뒤에 있던 진실을, 꼬이고 꼬인 그들의 관계를 풀 수 있었던 실마리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화자가 여러 차례 바뀌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책장을 넘기면 진실이 드러나듯, 우리의 삶 속에서도 숨겨진 진실을 풀어내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기야 그렇다면, 삶은 너무나 쉬울 테지만.

 

 

 

 ​ Underline                                                                                                                                             

 

 

 

 ​ 그때 여자는 한 손으로 수인의 멱살을 잡고 다른 손으로 뺨을 후려갈겼다.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머리채를 잡고 울부짖었다. 아무도 말릴 수 없었다. 수인조차 그런 자신을 그저 지켜보기만 했다. 아프지 않았다. 늪이 쇠구슬을 집어삼켰다. 소리들도 사라졌다. 단지, 먹먹했다. 제풀에 지친 여자는 무너져내려, 수인의 발아래서 통곡했다. 수인은 무심한 눈으로 여자를 내려다보았다. 죄송하다고, 잘못했다고 말해. 이것아. 어머니는 등을 밀며 재촉했다. 수인은 외국어 교본을 읽듯 또박또박 말했다.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20p)

  삼 층 짜리 허름한 건물로 들어가는 김선주를 뒤로 하고 택시를 잡아 탔다. 열쇠공을 불러 문을 따고 김선주의 집으로 들어갔다. 카드 명세서가 말해주듯 살림은 빈궁했다. 그나마 마음이 달래졌다. 칠칠하게 살고 있었다면 모자가 잠든 사이에 집에 불을 질렀을지도 모른다. 벗어놓은 스타킹, 텔레비전 위의 먼지, 변기에 고인 오줌, 화장실 앞에 깔린 구질구질한 러그, 깜빡거리는 부엌 형광등, 구석에 던져놓은 아이 잠옷. 냉장고 문을 열자 두엄 냄새가 밀려왔다. 야채 칸은 물크러진 오이와 싹이 난 양파, 크트머리가 녹아든 상추들로 채워져 있었다. 보이는 것마다 구질구질 했다.

  하지만 그것조차 그들이 살아 있다는 증거였다. 죽은 사람은 그런 흔적조차 남기지 못한다. (65p)

  치지 못한다고 말해야 한다. 이제 피아노를 치지 못합니다, 솔직하게 털어놓으면 된다. 담임 선생님은 재촉했다. 손가락으로 건반을 눌렀다. 손가락은 건반 위에서 죽마를 탄 어릿광대처럼 뒤뚱거렸다. 피아노 속의 해머가 머릿속을 두들겨댔다. 누군가 웃기 시작했다. 동시에 사방에서 깔깔대는 소리가 들렸다. 합창 대회 반주는 다른 아이가 맡았다. 화장실로 가려는데 그 아이가 가로막았다. "나림아, 너 피아노 잘 쳤잖아."

​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지려고 하는데 그 아이는 비켜주지 않았다. 정말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 아이를 밀치고 교실 밖으로 나갔다. 화장실 변기에 앉아 내 손을 들여다보았다. 차라리 잘라내고 싶다. 더러운 장갑처럼 눈 속에 파묻고 싶다. 나는 왼손으로 변기 레버를 내리고, 오른손으로 휴지를 뜯어 코를 풀었다. 그 아이의 이름은 김선주라고 했다. (172p)

  ​"엄마가 좋아?"

  어른들은 가끔씩 말도 안 되는 질문을 한다.

  하늘이 왜 파란지, 구름은 왜 하얗고, 금붕어는 왜 죽는지, 겨울이면 눈이 왜 오는지 나는 모른다. 그렇지만 하늘은 파랗고, 구름은 하얗고, 금붕어는 죽었고, 겨울이면 눈이 온다. 눈이 녹으면 꽃이 핀다는 걸 안다. "엄마가 나쁜 사람이라도?" 나는 화가 났다.

  "우리 엄마는 나쁜 사람 아니야." (240p)​

  이 소설은 독자의 마음을 한껏 불편하게 할 것이다. 이 이야기는 어떤 희망의 손짓이나 구원의 기대도 사라진 자리에서, 모든 행복의 씨앗이 사라진 폐허 위에서, 우리 자신에게 질문하게 만든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면, 누구도 이 증오와 분노와 폭력의 심연을 들여다보려 하지 않는다면, '멸종 직전의 우리'는 어떻게 스스로를 구해낼 수 있을까. (283p, 작품해설)

  P.S                                                                                                                                                         

​김나정 작가는 저에게, 조금 생소했지만 문학평론가이자 작가로 활동하신 분이고, 여러 권의 저서가 나와있네요.

문장도 참 좋고, 일단은 깔끔한 느낌이 들었던. 소재는 요즘 참 흔하디 흔한 것이었지만, 단순히 왕따에 대한 이야기를 넘어가 있기 때문에 흥미로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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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동물 관찰기 - 다윈의 안경으로 본
마크 넬리슨 지음, 최진영 옮김 / 푸른지식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Review                                                                                                                                                    

 

 

  ​"인간이 가장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을 위한 가장 솔직하고 조금은 발칙한 행동생물학" 

  생명의 역사는 너무나 오래되었고, 종의 개수도 무지하게 많다. 다윈이 진화론을 주장한 이전의 사람들은 각각의 종들은 따로따로 창조된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다윈은 인류의 본질에 대한 생각을 송두리째 뒤바꾸었다. 자연에 따라 변이 되고 세월이 지나면 다른 종으로 진화해간다는 다윈의 진화론은 그 시대 정말 충격적인 주장이었다. 그러나 인류의 진화 단계를 보고 있으면, 초기의 인간은 동물과 비슷한 형태이며, '인간은 동물이다'라는 생각을 뒷받침하고 있는 듯하다.

  다윈의 '진화론'을 바탕으로 이 책은 동물의 일종인 '인간'을 관찰하고 있다. 모든 생물종 중에서 자신들이 가장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인간들에게 발칙한 질문을 던지며, 이성적이고 객관적으로 그들의 행동을 설명하고 있다. 다윈의 안경 - 인간이 환경에 따라 다르게 적응하며 진화해 나간다는 - 을 쓰고 살펴보는 인간의 모습들은 재밌고 일상적인 주제 안에서 다뤄지면서 어렵지 않게 전달된다. 인간의 행동들. "이 모든 것은 어디에서 왔는가"의 궁금증 하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재밌게 살펴본다.

  ​몇 가지 재미있게 봤던 주제를 살펴보면, 첫째로 "왜 부자보다 유명인에게 관대할까"라는 물음이다. 운동선수나 연예인들의 경우 어떠한 잘못을 해도 비교적 빠르게 면죄부를 얻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돈 많은 사업가의 경우 징역살이를 해도 동정표를 얻지 못한다. 이는 오래전부터 내려온 조직 내 구성원 간의 지배관계에서 비롯된 결과인데, 돈이 많은 사업가들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방법으로 지배적 위치에 올랐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을 매의 눈으로 관찰한다. 반대로 운동선수나 연예인들은 항상 매체를 통해 우리 눈에 띈다. 그들은 우리에게 조금은 친근한 존재가 되어, 자연스럽게 관대한 대상이 되어간 것이다.

  두 번째로 "웃음의 진짜 정체"는 웃음과 미소의 차이를 파악한다. 그 차이는 무엇일까? 미소와 웃음은 근원과 기능부터 다르다. "미소는 공격성에 제동을 거는 기능을 하여 인사할 때 좋은 수단이 된다. 반면 웃음은 장난을 치려는 데서 비롯했지만 한편으로 공격적 요소를 포함하므로 인사하는 수단으론 적합하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의 글은 한 과학 월간지 <에오스>의 개인 블로그 시스템에 기재된 글들을 한편의 책으로 묶은 것이다. 점점 이과와 문과의 경계가 뚜렷해지고 비전공자들에게는 과학이 너무나 거리가 멀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쉽게 접하는 과학적 지식이 반가울 뿐이다. '과학'이라는 소재이지만 가볍고 위트 있게 쓰여있어서, 각 주제에 대한 근거가 부족해 보일 때도 있기는 하지만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하기 좋아하는 우리들에게는 심리학 측면과 관련해서도 도움이 될 수 있기도 하다. 일단은 글 자체에서 과학에 관심이 없는 독자들까지 폭넓은 독자층을 포섭하려는 노력으로 '위트'와 '유머'를 더한 듯 보이고, 인터뷰나 상황 예시 등으로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에게 과학을 전달하고 있어 쉽고 재미있게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고마운 책이다.

 

 

 Underline                                                                                                                                               

 

 

 

  ​그녀가 말하는 마음 들여다보기는 실수와 잘못된 선택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 밖에 모든 행동도 현미경 아래에 두고 살펴보라고 말한다. 일상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사건에서 우리가 특정 행동을 하는 이유, 또는 하지 않는 이유를 이해하면 할수록 좋다. 그러고 보면 인간이야말로 가장 흥미로운 관찰 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하는 행동을 찍은 다큐멘터리가 있다면 화성인조차 그것을 보는 데 중독될 것이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인 우리가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아마도 우리가 그 흥미진진한 쇼 안에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인기 드라마의 주인공도 연기 중에는 그 장면의 재미를 못 느끼지 않는가. 강단에 선 가녀린 소녀도 어두운 강당 안의 관객만 바라볼 뿐, 부끄러워하는 자신의 귀여운 모습은 보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재차 강조하는데, 중요한 것은 그 쇼 안에서도 자신과 거리를 두고 스스로를 관찰하는 것이다. (8p)

  발걸음, 움직임, 눈 깜빡임까지 젊은 연인의 모습은 우리가 하는 사회적 행동의 기본 요소를 그대로 담고 있다. 그 표정과 몸의 움츠림, 어깨를 늘어뜨리는 모습까지 모두 사소하지만 분명한 우리의 행동 레퍼토리 중 하나이며, 이는 타인에게 공격성이 없음을 나타낸다.

  미소도 거기에 포함된다. 모르는 사람은 그 미소를 친절함의 표현으로 여기겠지만, 이는 공격 억제 신호의 첫번째 단계다. 보통 실수를 저지른 사람이 잘 웃기 마련이다. 말실수하고, 무언가를 떨어뜨리고, 지나가는 사람과 부딪힌 경우 등등. "바보짓을 저질렀네요. 죄송합니다." 라거나 "규칙을 어겼네요. 죄송합니다" 또는 "당신이 생각지도 못한 일을 저질렀네요. 죄송합니다." 라는 말로 사과할 것이다. 그러면 적어도 나에게는 전혀 나쁜 의도가 없었다는 것이 상대에게 전달되며, 어려운 상황을 맞이할 일도 없다. (...) 그런데 우리가 합리적이어서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일까? 아니, 그렇지 않다. 그저 선천적으로 유전자에 새겨진 행동 시스템을 따라 행동하는 것뿐이다. (96p)

  우리는 매일 미디어를 통해 영화감독, 운동선수, 기업가들을 본다. 그래서인지 마치 그들이 우리 거실에 함께 앉아 있거나 개인적으로 아는 것처럼 친근하게 느껴진다. 그렇게 해주는 매체인 신문, 텔레비전, 인터넷은 우리 조상의 시대에는 절대 상상할 수 없던 존재다. 우리 조상에게 '본다'는 것은 눈앞에 실제로 존재하여 만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당신은 폴란스키와 함께 모닥불 주변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람들에게 감정을 이입한 과도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우리는 그중 누군가를 존경하는 반면 누군가의 실패를 고소하게 여기기도 한다. 그렇다, 매우 공정하지 못한 행동이다. 하지만 우리 뇌는 아직 현대 사회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135p)

  사람은 나이를 먹을수록 자신의 변화를 거시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내 관심사는 35년 전의 그것과는 전혀 다르다. 다윈주의와 같은 몇몇 이론에 대한 관심은 오래전부터 변함없이 계속되고 있지만, 그 역시 현재에 맞추어 변화했다. 그 밖에도 전체적으로 관심사가 달라지거나 완전히 새로운 관심사가 생겼다. 내가 어렸을 때는 경제학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지루하고 재미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오늘의 나는 경제학 서적의 매력에 내 에너지를 온통 빼앗길까 봐 되도록 경제학 관련 서적에서 멀어지려고 노력한다. (15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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