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로 산다는 것 - 잃어버리는 많은 것들 그래도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
제니퍼 시니어 지음, 이경식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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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부모로 산다는 것> 제니퍼 시니어 / 알에이치코리아

 잃어버리는 많은 것들 그래도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

 


 

 

 

   ​아이들을 참 좋아하지만 정말로 '잘' 키울 자신은 없다. 아직 엄마가 되어보지 않아서 모르지만, 배 아파 낳은 사랑하는 자식이 갑자기 짜증 덩어리가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떤 한 부모의 자식인 나도 자라는 내내 부모님 속을 썩이고 또 썩인다. 내가 만약 부모가 된다면, 처음으로 경험하는 '부모'라는 이름에 환희를 부르겠지만, 점점 더 걱정은 태산일 것이다. 밖에 나가면 많이들 보이는 젊은 엄마들은, 내가 보기에도 꽤 어리숙해 보이는 사람들이 많은데, 영화를 보러 왔다가 아이가 생떼를 부리는 바람에 채 다 보지도 못하고 복도에서 아이를 안고 조마조마 스크린을 살피는 엄마들, 공공장소에서 시끄럽게 우는 아이들을 어쩌질 못하고 안절부절하고 있는 엄마들을 보면....... '부모로 산다는 것', 역시 참 어려워 보인다.

  이 책은 미국인 저자에 의해 미국 사회의 부모 - 아이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다뤄졌지만, 책에서 보이는 모습은 우리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중산층 부모들의 이야기를 주로 하면서, 엄마에게만 집중되는 육아, 가장의 피로에 허덕이는 아빠, 커갈수록 점점 손윗사람이 되어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중산층의 어린이는 자기 부모에게 자기 의견을 주장하면서 대들고, 자기 아버지의 무능함을 불평하며, 부모가 내린 판단을 헐뜯고 방해한다.") 아빠들은 육아에 대한 판단에 그리 가혹하지 않은데 그것은 아이들을 덜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라 엄마들보다 육아에 대한 완벽주의가 조금 덜한 것뿐이다. 미국의 엄마들도 우리의 열성 엄마들처럼 좋다는 것들은 모두 양육에 참고한다. '구몬'같은 학습지, 미식축구 같은 스포츠, 그리고 외국어를 아이에게 익히도록 하기 위해 여러 가지 외국어를 번갈아가며 말을 건다. 책 속에서는 양육에 대한 부모 (아빠와 엄마)의 시각 차이 또한 얼마나 스트레스를 주는지에 관한 이야기도 다루며, 다양한 학문을 토대로한 설명과 함께 (주석이 엄청나다.) 부모의 마음을 감정적으로 이해하는 글 보다는 조목조목 따져가면서 냉정하거나 혹은 담담하게 기술하고 있다.

  여타의 육아 관련 도서들과는 달리, 이 책에서 중요한 것은 어떤 책들보다도 '부모'의 삶에 집중하여 삶의 방향을 만들어나간다는 것이다. 부모가 자신의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육아의 고통을 기쁨으로 가릴 수 있다는 것이다. "잃어버리는 많은 것들, 그래도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 아이를 낳자마자 아이에게 속박을 당하고, 너무나 많은 것을 잃어가지만 왜 사람들이 자식을 키우고 행복감과 성취감을 느끼며 살아가는지 알 것 같기도 하다. 

 

 

"아이는 향기로울 수 있고 사랑스러울 수 있고 숭배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어른이라면, 너무도 뻔뻔스러워서 미치광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모든 특성 또한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 필립스는 이 특성들을 하나씩 열거한다. 아기는 자제할줄 모른다. 우리가 하는 언어로 말을 하지 않는다. 또 스스로를 다치게 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지켜볼 필요가 있다. "아기는 지나칠 정도로 자기가 원하는 대로만 사는 것 같다. 마치 이 세상에는 자기 혼자만 산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41p)

사람들은 모두 판에 박힌 일상에서 해방되기를 갈망한다. 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어른 자아에서 해방되기를 갈망한다. 적어도 이따금씩은 그런 경험을 간절하게 바란다. 공적인 역할들과 일상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온갖 의무들과 관련이 있는 자아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우리는 단순히 휴가를 가거나 독한 술을 마심으로써 그런 위안을 찾을 수는 있다.) 내가 이야기하는 자아는 육체보다는 머리에만 의지해서 너무 많이 살아가는 자아, 세상에서 찾을 수 있는 즐거움보다 세상의 원리에 대한 지식으로 짓눌려 있는 자아, 누군가로부터 비판과 평가를 받고 사랑받지 못할 것을 두려워하는 자아다. 대부분의 어른들은 관용과 무조건적인 사랑이 넘치는 세상에서 살지 않는다. 그러나 아이를 키우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165p)

아이들은 우리에게, 우리가 절대적이라고 믿는 지식이 (이 지식은 하루 온종일 우리 주변에서 윙윙 소리를 낸다) 한때 우리가 배워야 했던 바로 그 지식임을 일깨워준다. 아이들은 옷을 입은 채로 욕조에 들어가고 먹다 남은 바나나를 냉장고에 집어넣으며 장난감을 장난감 제조회사들이 전혀 상상도 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사용한다. (각각의 물감을 따로 사용하지 않고 아예 여러 개를 합치고 섞어서 사용한다. 스티커를 나란히 붙이지 않고 포개서 계속 붙인다. 도미노를 블록으로 사용하고, 자동차를 하늘을 나는 비행체로 사용하고, 발레 치마를 신부의 면사포로 사용한다. 그래 아이들아, 실컷 해라!) 지금까지 그 누구도 아이들에게 다른 방식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전체 우주는 온갖 종류의 실험을 기다리고 있는 대상이다. (178p)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는 상실을 피할 수 없다. 아이가 어느 날 자기를 훌쩍 떠나갈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사랑을 쏟아부어서 강하게 키우는 것이 부모가 수행해야 하는 역설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아직 어리고 자기 몸을 제대로 간수하지 못할 때조차도 우리는 이 아이들이 언젠가는 우리 곁을 떠나고 말 것을 예감한다. 우리는 이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이제 곧 아이가 벗어 버릴 모습을 아쉬워한다. (40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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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플 패키지 - 성공의 세 가지 유전자
에이미 추아.제드 러벤펠드 지음, 이영아 옮김 / 와이즈베리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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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트리플 패키지> 에이미 추아, 레드 러벤펠드 / 와이즈베리

성공의 세 가지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

 

 

 

 

   ​성공의 요소라고 하면 사람들은 어떤 것들을 떠올릴까? 아마도 끊임없는 노력과 인내심, 약간은 특출난 능력이나 통찰력 등의 긍정적인 단어들이 제시될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성공의 요소' 즉 성공의 유전자는 평소 '성공'과 연계해서는 거의 떠올리기 힘든 것들을 가리킨다. 그 세 가지 성공의 유전자는 한 집단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으며 그 집단의 원동력이 된다. 성공에 대한 엄청난 압박감이 의욕과 엄청난 성취를 이룬다. 과연 '트리플 패키지'란 무엇일까.

  그 세 가지 유전자, '트리플 패키지'의 첫 번째는 '우월 콤플렉스'다. 한 집단에 깊이 내면화된 믿음과도 같은 우월 콤플렉스는 다양한 특성으로 인해 드러나는데, 종교인들이나 이민자들, 유대인들의 모습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한 미국 변호사의 말을 들어보면 이 우월 콤플렉스를 짐작할 수 있다. "나는 미국에 사는 흑인 여성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두 배는 더 노력해야 할 거라는 생각을 하며 자랐다. (...) 그러니 내가 극복 못할 장애물이 뭐가 있겠는가?" 태어날 때부터 가족들에게 자기 문화의 우월함을 주입당하며 자라는 사람의 사기는 굉장히 높아진다. 트리플 패키지 두 번째는 '불안감'이다. 이 집단은 '생존' 자체에 큰 위협을 받았던 유대인들이나 모르몬 교도들을 예로 들 수 있는데, 그들은 불안정한 위치 때문에 실체가 있는 자신의 소유물을 더욱더 갈구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 개인이 어떤 욕구에 따라 움직이려면 그 욕구를 부채질하는 것이 있어야 하며, 불안은 그 자극제가 된다.  세 번째로 '충동 조절'은 유혹을 이겨내는 능력인데, 유달리 어릴 때부터 충동 조절을 강요당하는 집단은 성공의 발판 위에 서 있다는 것이다. 충동 조절은 '인생을 즐기며 살아가라'는 현대의 라이프 스타일과 조금은 엇갈리는 행동이지만, 그들의 엄격한 조절과 자제는 다른 집단과의 차별성을 가진다.

  책을 읽다 보면 이러한 특성이 아시아계 미국인, 유대인, 모르몬 교도들​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는데, 트리플 패키지는 일종의 부정적 상황에서 견딜 수 있게 만드는 힘, 또는 증폭되는 의지를 불러오는 듯하다. 저자는 트리플 패키지를 주장함에 이어 '일반화'의 오류를 막기 위해 그에 대한 문제점과 오해 등을 제시하기도 한다. 하지만 문제는 이 트리플 패키지는 너무나 한정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성공의 '유전자'라고 생각되는 것은 이 세 가지 보다 강력한 것들이 있을 거라는 관념 때문에 이 내용들이 크게 와 닿지 않는다는 것이다. 역시 공감할 부분은 있지만, 어느 곳에 적용할지는 자기 판단에 달려있다.

 

 

​"내 능력을 보여주고 말겠다"는 심리는 트리플 패키지의 한 특징인 우월 콤플렉스가 그 우월함을 인정해주지 않는 사회와 충돌할 때 격하게 발생한다. 이러한 현상은 이민자 집단들 사이에서 아주 흔하게 발견된다. 엄청난 민족적 자부심으로 무장한 소수민족이 미국에서 갑작스레 멸시받고 거부당하면 분노에 가까운 것이 생기고, 니체가 말했듯 분노는 세계를 움직이는 큰 힘 가운데 하나이다. (21p)

우월 콤플렉스는 타민족의 비위를 거스를 수도 있지만, 편견 가득한 사회에서는 사회학자들이 말하는 '종족 갑옷'이 되어 소수민족들이 "차별대우와 배척 앞에서 심리적으로 잘 대처하는"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109p)

토크빌이 설명한 불안감은 정신적인 것이 아니었다. 새로운 경험을 바라는 갈망, 단순한 방랑벽도 아니었다. 후대 사람이 말하는 실존적 불안은 더더욱 아니었다. 미국인들의 불안감은 물질적인 문제였다. 그들은 더 많은 것을 원했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든 이들이 재산, 명성, 권력을 얻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갖지 못한 좋은 것들을 끊임없이 생각하며," 자기보다 더 많이 가진 자들을 "끈덕지게 관찰한다." 더 많은 것을 바라는 이런 갈망 때문에 그들은 자신이 가진 것을 즐겁게 누리지 못하고, 응당 느껴야 할 행복을 느끼지 못한 채 '우울함'에 빠졌다. 궁극적으로 말하자면, 미국인들의 불안감은 '출세욕'과 연관되어 있었다. (115p)

​블레인, 카프카의 단식 광대, 스토아 철학자는 우월감과 충동 조절의 결합을 보여준다는 공통점이 있다. 즉, 충동 조절 능력이라는 자신의 우월함을 믿고 충동 조절을 통해 우월감을 얻는 것이다. 즉, 충동 조절 능력이라는 자신의 우월함을 믿고, 충동 조절을 통해 우월감을 얻는 것이다. 그럴수록 그들의 인내력은 점점 더 커진다. 극단적인 경우, 충동 조절을 통해 우월 콤플렉스를 쌓아올린 블레인 같은 사람들은 결국 감전을 견디며 장대 꼭대기에 서 있게 된다. 그러나 우월감과 충동 조절이 좀 더 순한 형태로 결합된다면 트리플 패키지 내의 또 다른 유력한 조합이 될 수 있다. (158p)

트리플 패키지를 욕심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바로 거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트리플 패키지의 제약은 사람들이 관습적이든 아니든 자신이 정의하는 대로의 성공을 이루고 자신만의 인생을 쓸 수 있게 해준다. 단, 그 목표를 이루자마자 트리플 패키지의 구속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 즉, 트리플 패키지는 비트겐슈타인이 말하는 역설의 사다리와도 같다. 그 사다리를 다 오른 후에는 버려야 한다. (19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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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남자는 필요하다 - 남자와 함께하기로 결정한 당신에게, 개정판
남인숙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4년 4월
평점 :
절판


<어쨌거나 남자는 필요하다> 남인숙 / 위즈덤하우스

남자들이 알면 불편해하지만 여자들은 꼭 알아야 할 것들

 

 

 

 

   ​어떤 사람들은 불편하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수긍이 가는 제목의 책. <어쨌거나 남자는 필요하다.> 사실 살아가는데 나만 괜찮다면 무조건 남자가 필요하지는 않다는 주의여서 (그렇다고 독신 주의자는 아니다) 제목을 보곤 살짝 흠칫했지만, 일반적인 연애지침서와 비교해서 가볍지 않은 느낌이어서 쭉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사랑(연애)를 글로 배웠어요~" 하고 주장할 수 있는 류의 책이기는 하지만, 이 책은 엄밀히 말하면 연애보다는 '남자'라는 종족에 대한 심리 관련서라고 볼 수 있기도 하다. 남자를 유혹하는 '여우'를 만드는 책이라기보다는, 나와는 다른 남자를 포용하고 이해하게 만드는 책이라는 뜻이다. 연인들 사이에서만 활용할 수 있는 책이 아니라, 직장과 가정, 모든 사회에 적용될 수 있겠다.

 

  꽤 따끈따끈한 책이라고 느껴질 만큼 발매일이 현재와 가깝지만 이 책은 몇 년 전에 절판 후 재출간된 책이다. 절판이 되기 전 여자들이 알지 못하는 '남자' 모습에 대한 명쾌한 분석과 많은 표본과 설문조사로 얻어진 확실한 해답으로 많은 인기를 모았던 모양인데, 복잡하게만 느껴지는 남자들의 감정,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벌어지는 싸움과 오해를 막기 위한 이야기가 꽤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이 책이 베스트셀러였던 이유 중에 하나라고 짐작되는 부분은 줄글로 쭉 늘여놓은 지침이 아니라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소설과도 같은 책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중국의 고전 소설 <금병매>이 줄거리와 캐릭터의 이름까지 (역시 읽다 보니 이름이 특이하더라니.) 차용해서 남자와 여자 생각의 차이를 소설처럼 보여주는 동시에 그 행동의 분석을 덧붙이고 있다. 소설의 줄거리를 현대적으로 재창조한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주인공들의 '썸' 그리고 만남부터 결혼까지, 그리고 자식을 얻게 되고 남자가 가장의 노릇을 하기까지의 내용으로 물 흐르듯 흘러가기 때문에 살면서 만날 수 있는 대부분의 '남자와의 문제'는 이 책에 나와있지 않을까.

  목차에 나열된 소제목들을 보자면 흥미로운 내용들이 가득하다. '칸트주의자인 여자, 벤담 주의자인 남자', '왜 모든 여자의 로망은 게이 남자 친구인가', '남자답지 못하느니 나쁜 남자가 되는 게 낫다.', '왜 남자들은 철이 들지 않을까' 등....... 물론 세상의 모든 남자들이 이 책에 나와있는 행동 분석대로 움직일지는 만무하지만, 작가의 설명과 조언들은 꽤 쓸모가 있어 보이고 설득력 있기도 하다. 그리고 "그래도 남자는 귀엽다"로 귀결되는 이 책은 중요한 한 가지를 주지시킨다. "우리가 (남자와 여자의) '다른 점'에 그토록 주목하는 이유는 우리가 지구 상의 그 누구보다 서로 닮아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 책의 많은 내용을, 여자들이 키득거리며 읽고 배운다는 것을 안다면 남자들이 불편해하겠지만, 어쨌거나 남자들과 공존하기 위해, 그를 더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니 이해해주었으면 좋겠다. (사실, 읽으면서 <어쨌거나 여자는 필요하다> 편으로 여자들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책이 나오면 책은 꽤- 아주 꽤 복잡해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고.. 속닥속닥 ㅋㅋㅋㅋ)

  

어떤 여자들은 남자들이 양육받은 것과 정반대의 성향인 다정함을 요구하면서도 그들의 편향적 취향을 무조건 비난한다. 자신의 취향을 없애고 스스로를 남자들의 판타지에 끼워 맞출 필요는 없지만, 이제까지 그들을 형성한 생물학적, 문화인류학적 배경을 무시하고 전체를 '마초'로 몰아세우는 것은 그들로서도 억울한 일이다. 모든 미디어에서 긴 머리에 하늘하늘한 옷을 입은 여자를 진실된 여자로 그리는 마당에 드라마의 악녀들이 주로 입는 세련된 차림으로 나타나 편견을 가지지 말라고 하니 그들도 헛갈린다. 외모만 밝히는 단세포라고 취급받는 그들은 여자들과는 사물을 다르게 보는, 보이지 않는 안경을 하나 덧쓰고 있는 셈이다. 그 안경이 사물을 어떻게 비추는지 여자들이 이해할 수만 있다면, 초점을 달리해 정확히 볼 수 있도록 남자들을 유도할 수도 있다. (35p)

여자들은 그 무엇이 되었든 자신의 과거에 구체성이라는 살과 뼈를 제공해서는 안 된다. 요즘 괜찮은 남자들치고 연인에게 과거를 미주알고주알 캐묻는 사람은 없지만 함께 지내다 보면 자연스럽게 서로의 과거가 드러나게 되어 있다. 그럴 때에는 구체성을 띠지 않고 희미하게 답을 하는 게 최선이다.

​ "너 만나기 전에 한두 명 더 있었어." 이 정도가 좋다. 그를 만나기 전에 마흔네 명의 남자가 더 있었다면 '그냥 좀 있었어' 정도로 애매하게 말하는 것이 연약한 남자들의 정서적 안정을 위한 배려이자 예의이다. 또한 아무리 상대방이 이해하고 있다고 해도 과거의 연인과 스킨십이나 육체관계가 있었다는 말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아니, 과거와 관계된 말은 그게 무엇이든 아끼면 아낄수록 좋다. 어떤 말이든 하면 할수록 구체화된 정보가 되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숫자나 상황, 사물, 이미지 등이 좋지 않은 최악의 이유는 그것이 상상을 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110p)

여자들이 남자와 다툴 때 답답함을 느끼는 것은 그를 둘러싸고 있는 이 유리 큐브 때문이다. 이 큐브는 여자를 화나게 한 행동에 대한 정당한 해명을 구차한 변명으로 여기게 하기도 하고, 대화를 요구하는 여자에게 '더 이상 아무 말도 듣기 싫다, 그 어떤 말도 하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게 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망치를 들고 큐브를 깨서 그에게 다가가려 들면 그는 여자를 적으로 간주할 것이다. 남자들의 유리 큐브는 아주 어려서부터 만들어졌으며 거의 일생 대부분의 시간 동안 그와 함께하며 점점 견고해졌다. 그것은 남자들을 가두어 두는 몹쓸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마지막까지 스스로를 보호하는 갑옷이기도 하다.

이런 남자들의 유일한 산소통은 여자다. 남자들이 달팽이집처럼 지고 다니는 그 유리 큐브의 열쇠는 남자가 아닌 그의 파트너인 여자가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여자가 밖에서 문을 열어 주어야만 잠시나마 자신의 약한 자아를 대면하고 용서할 수 있다. (144p)

남자들이 '버럭'하는 이유가 또 하나 있다. 사람은 누구나 감정을 밖으로 배출해야 살아갈 수가 있는데 남자들은 슬픔, 외로움, 두려움 등의 감정을 말이나 행동으로 쉽사리 표현할 수 없다. 남자가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은 그나마 분노가 유일하다. 화를 낸다는 것, 헐크처럼 감정을 폭발시킨다는 것, 활화산처럼 감정을 일순간에 뿜어낸다는 것...... 말만 들어도 어딘가 남성적이지 않은가? 그래서 남자들은 자신들의 모든 부정적인 감정을 엉뚱하게 분노로 표출하는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해서, 슬퍼도 화를 내고, 무서워도 화를 내고, 절망해도 화를 내며, 외로워도 화를 낸다는 뜻이다. (229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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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사회 - 현대사회의 감정에 관한 철학에세이
정지우 지음 / 이경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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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사회> 정지우 / 이경

 개인의 보편적 관념이 사라진 지금, 우리의 사회는 '없다'

 

 

 

 

 After Reading                                                                                                                                   

 


 

  ​분노. 한국 사회를 한마디로 말한다면 이렇게 잘 어울리는 말이 있을까? 지금의 한국은 정말 분노 덩어리다. 해결되지 못한 많은 병폐들이 교묘하게 덮어씌워져서, 혹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흩어져서 조용한 울음과 분노로 터져나오고 있다. 조용히 타오르는 촛불 속에서 우리의 슬픔은 끓고 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아무리 빠른 성장과 역사적인 아픔이 있기로서니, 어느 하나 불안하지 않은 곳이 없어 개인의 무기력함과 우울은 더해진다. 우리는 이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가야만 하는 것일까. 그것에 대한 답을, 그리고 생각의 틀을 <분노사회>를 통해 잡을 수 있을 듯 싶었다. 작가가 말하는 분노 사회란 무엇인가. 우리나라, 한국의 사회는 어떤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을까. 책을 덮은 지금, 우리의 사회는 예상했다시피, 너무나 심각했다. 

  현대사회에서 감정은 의식, 즉 관념에 의해 드러나는데 그중 분노라는 감정은 유독 관념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크게 드러난다. 분노는 그 관념이 정당한 것인가 부당한 것인가에 따라, 혹은 올바른 것인가 그른 것인가에 따라 그 성격이 달라지며, 분노가 증오로 바뀌는 연결점이 바로 이곳에 존재하고 있다. 한국 사회의 분노는 정말로 많은 부분 왜곡되어 있다. 역사적으로 큰 굴곡이 있었고 짧은 기간 동안 엄청난 성장과 병폐가 동시에 발생된 만큼, 집단주의 또한 너무나 팽배해졌는데, 뜨겁게 일어나는 집단주의가 있는 반면에 개인들은 자신의 보편적인 사회와 관념을 또렷하게 자리매김하지 못한다. 개인의 보편적인 관념이 만나서 사회가 성장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할 수 있는데, 그 보편적인 관념마저 형성되지 못한 채 그릇된 분노와 증오를 쏟아내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책에서 말하는 한국 사회는 안타깝고도 허탈한 단어로 존재한다. '사회 없음' 어긋나버린 개인의 관념과 사회가 정상적으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부자연스러운 사회. 증오와 분노, 상실이 넘쳐나는 사회가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다.

  최근까지 엄청난 논쟁에 휩싸인 '일베(일간 베스트)'는 증오의 아이콘이다. "증오는 자기가 믿는 세계가 현실과 일치하지 않을수록, 그럼에도 더욱 자기의 세계를 맹신하고 싶을 때" 불어나는 감정인데, 그들의 증오는 너무나도 뒤틀리고 끔찍한 모습으로 보이고 있다. 자신들이 믿는 세계에 도취되어 있는 그들, '일베'라는 단어 하나만으로 우리는 또한 분노를 일으킨다. 책에 발췌된 내용에 따르면 그들은 "자기 존재를 형성하는 임을 외부에서 찾는 경향"을 보이고 있으며 "좌절한 사람들이기에 급진적인 변화를 선호한다."라는 것이다. (에릭 호퍼 『맹신자들』) 그것은 극우를 비롯하여 극좌에도 포함된다. "열등감, 시기심, 수치심에서 비롯된 좌절과 분노는 사회가 정당하게 바로 서는 데는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한다."

 ​

  작가에 의하면 "나 하나만 잘하면 돼"하는 상상은 절대 잘못된 것이다. 인간은 계속해서 변화되는 사회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으며, 새로운 자신을 발견한다. 자신의 내면만을 향하는 것은 결국 막다른 길에 머물 것이며, 자신의 존재가 반드시 세계 전체와 연계되어야 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자신의 올바른 관념을 형성하고, 그 관념과 일치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믿음과 (그러나 사회가 당연히 하루아침에 변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에 따른 실천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자유를 갈망하며 책임을 감수하는 개인들로부터 시작될 수 있다. 타자를 고려하고, 삶에 대한 정확하고 올바른 관철이 좋은 사회를 건설한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만 정당한 분노가 행해질 수 있을 것이며, 현재의 '사회 없음'으로 대변되는 한국 사회가 일어설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답이 나온다. 우리는 개인의 올바른 의식(관념)을 정립할 의무를 지녀야 하고, 분노하고 실천할 권리를 지녀야 한다. 나에 대한 중심을 잃지 않고, 전체를 보아야 한다. 쉽진 않을 것이고 꽤 오래 걸릴 것이지만, 일단은 책을 통해 희망을 얻었다.

 

 

 

  

 Underline                                                                                                                                                      

 

 

 

 

  ​현재 우리 사회의 문제를 알고자 한다면, 우리 사회의 관념들이 어떻게 진화해왔는지 살펴보지 않으면 안된다. 더불어 현재 사회의 관념이 정확히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지 알 필요가 있다. 한국 사회를 장악하고 있는 관념들은 하나같이 분노를 양산해내고 있는데, 그만큼 우리 사회의 모든 관념들이 거의 다 어긋나 있고 파편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실상 우리에게 '하나의 사회'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남아있는지조차 의문스럽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오래 전부터 사회 없는 상태에서 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사회 없음, 그것이야 말로 지금의 한국 사회를 설명하는 가장 적합한 말일지도 모른다. (60p)

​  우리는 사회 없는 사회, 세계 없는 세계 속에서 분노를 느끼고, 누군가를 증오하며, 속물성에 충실히 살아간다. 이 모든 사태를 만들어낸 게 우리와는 관련 없는 것들일 수도 있다.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있어왔던 자본주의, 세계화, 국제관계, 금융, 역사, 권력, 전쟁 등이 실타래처럼 얽히고 설켜서 우리로부터 세계를 앗아간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거기에 참여해서 그 논리에 따라 충실히 살아가는 순간 우리 역시 공범이 되었다는 사실을 면죄해주지 않는다. (85p)

  어떻게 살 것인가? 나에게 달려있는, 오직 나만의 문제인 것 같은, 내게만 가장 절실해 보이는 바로 그 질문에 내 삶뿐만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 이 사회의 존망 역시 달려 있다. 중요한 건 내부와 외부, 주관과 객관,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의 구분을 뛰어넘는 것이다. 바로 그러한 초월 속에서 진정한 삶이 실현된다. 그 삶은 사익을 줄이고 공익을 택하거나, 주관적 삶보다 객관적 사회를 우위에 놓거나, 내 삶을 포기하고 타인을 위해 헌신하는 식의 삶이 아니다. 그것은 내게 가장 이득이 되는 삶이면서도 동시에 사회에도 가장 이득이 되는, 내가 가장 좋다고 확신할 수 있는, 주관적이고 객관적인 '좋은 삶' 이다. 그 진정한 의미에서 자유롭고 좋은 삶에 동참할 때, 자유로운 개인들의 사회가 성립한다. 그 삶에 참여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결국 우리가 믿는 사회도 바꾸게 된다. 지금 여기에서 시작하는 삶 속에 사회가 있다. 내가 내 삶을 저버릴 때, 사회 역시 저버리게 된다. (122p)

  사회가 나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사회를 규정하며 사는 삶이 될 때, 다시 말해, 사회라는 너트에 나라는 볼트를 끼워 맞추는 삶이 아니라 사회와 내가 삼투 관계를 이루며 융화될 때, 나의 문제는 사회의 문제가 되고 사회의 문제는 나의 문제가 된다. 나라는 존재는 완전히 표백된, 순일하고 순수한 상태의 존재가 아니다. 나는 세계의 무한 관계망으로 얽혀 있는 존재다. 나는 어떤 의미에서 반드시 이 사회에 의해 혜택을 보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 이 사회에 의해 피해를 입고 있다. 또 한편으로는 이 사회에 보탬을 주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이 사회에 해를 끼치고 있다. 그러한 관계를 벗어나기란 원초적으로 불가능하다.

  인간의 삶은 근본적으로 부채의 삶이면서 기부의 삶이다. 어느 한 사람 예외 없이, 지금껏 살아왔던 모든 인간은 누군가에 의한 피해자이면서 누군가에 대한 가해자이며, 채무자이자 채권자이다. 그러한 관계를 마음 안에서 의도적으로 끊을 수는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삶은 항상 타자와 연계되어 있다. 자본주의의 폐기를 주장하는 지식인이 자본주의의 수혜자이고, 속세를 부정하며 떠도는 출가승이 세속인의 보시에 의존하여 살 수밖에 없듯이, 모든 관계로부터의 '완전하고 순수한 자유'는 상상 속에서만 가능할 뿐이다. (131p)

  가장 좋은 삶이 무엇인지 알면 알수록, 주인은 그 삶을 실천하지 않을 수 없다. 주인에게는 반드시 앎과 실천이 동반된다. 실천은 앎에 의해 추동되고, 앎은 실천에 의해 더 확실하게 자리잡는다. 가장 좋은 가치, 가장 좋은 삶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실천하지 않는 이는 그 가장 좋은 삶에 대한 관념마저도 잃게 된다. 결국 그는 현재의 자기 자신을 합리화만 하는 상태로 전락하고 만다. 반면, 진정한 앎 앞에서 복종하고 실천하는 자는 그 앎을 더욱 강화시키면서 진정한 주인으로 끊임없이 상승해간다. (178p)

 

 

 

  P.S                                                                                                                                                            

 

 

 

하나하나 포스트잇이 붙여질수록 감동이 일었던 책.

너무나 냉철해서 부끄러웠고, 무언가 울컥했던 책.

 

정지우 작가의 책은 지금까지 세권 읽었고, 세권 다 베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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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신 판 세계문학의 숲 41
크누트 함순 지음, 김석희 옮김 / 시공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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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문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작가의 아름다운 문장들 <목신 판 - 크누트 함순>

 

 

 

 

 ​ After Reading                                                                                                                                  

 

 

 

 

  ​오래 전 읽었던 크누트 함순의 책 <굶주림>은 제목 자체에서도 보이듯, 극한의 상황에서 자존심과 신념을 지키려는 주인공의 처절한 움직임에서 울컥한 감정이 밀려들었던 책이었다. '굶주림'이라는 소재만을 가지고, 어떠한 사물을 보고 쏟아지는 서글픈 감정이 그렇게나 표현될 수 있다는 것에 놀랍고 충격을 많이 받았던 작품이다. 그렇게 '크누트 함순'이라는 이름은 뇌리에 박히게 되었고 (이름이 적잖이 특이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작가이지만 국내에서는 많은 작품을 만나보기 힘들었는데 새로 번역된 그의 작품을 발견하자마자 너무나 반가웠다. 국내 초역된 이 책은 중단편 소설이며, 이전에 봤던 <굶주림>과는 느낌이 확연히 다른 '고독한 사랑의 노래'다.

 목신 판. 실제로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산과 숲, 들판, 목축의 신 '판'은 로마식 이름으로 '파우누스'라고도 불리며, 실제로 우리들에게는 그의 이름을 떠올릴 수 있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자유롭고 장난기도 많았던 목신 '판'은 어느 날 아름다운 님프였던 '시링크스'를 보고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시링크스'는 그를 거부한다. 그런 그녀를 '판'은 끝까지 쫓아다니며 구애하지만, 그것에 못 견뎌했던 '시링크스'는 강의 신에게 사정하여 갈대로 변한다. 상심한 '판'은 그 갈대로 악기를 만들어 불고, 그 악기는 '판 파이프'라고 불리는 악기의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크누트 함순의 <목신 판>에는 '판'의 모습을 상상하게 만드는 주인공이 나온다. 정열적이며 감정에 충실한 주인공 '글란'은 숲에서 살며 세상을 방랑하고, 사회와는 동떨어져있는 그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간혹 가끔은 돌출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그렇기에 고독함을 안고 사는 그에게도 사랑하는 여자가 생기는데, 그녀는 잡힐 듯 말 듯, 이상한 행동으로 그를 갈팡질팡하게 만든다. 이 소설에는 그런 그녀의 대한 마음과 고민, 그리고 숲에서 사는 방랑자가 자연의 아름다움을 예찬하는 부분들이 아름답게 그려진다. 특별한 점은 그들의 사랑이 - 이 소설은 꽤 오래전에 쓰였는데도 불구하고 - 너무나 자유분방하다는 것이다. 옮긴이의 해설에서는 이런 자유분방한 그들의 사랑을 선선하고 편안한 '북유럽'의 여름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의문을 품는다. 이후 2부에서 인도로 배경이 바뀌고 불타는 질투로 소설의 느낌이 확연히 달라지는 것도 비교하는 재미가 있다. <빅토리아>는 약간은 통속적인 로맨스를 그리고 있는데, 한마디로 말하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소재다. 꼬이고 꼬이는 그들의 사랑, 그리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아파하고, 절절하게 그 사랑을 읊는 주인공들의 말과 심리가 표현돼있으며, 초반부터 마치 동화처럼 이야기가 펼쳐진다.

​  전작에서 읽어 감명을 받았던 그의 멋진 문장들은 그대로였고, 전작의 '굶주림'이라는 소재로 인한 무거움을 다소 환기시켜, 아름답고 산뜻했다. '크누트 함순'이라는 이름은 다소 잘 알려지지 않은 감이 있지만, 유럽의 많은 작가들, 심지어 영미 작가들까지 - 토마스 만, 카프카, 막심 고리키, 피츠제럴드, 헤밍웨이 등 - 영향을 미친 '근대 문학의 아버지'라고 불린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작품을 훌륭하게 평가한다. 소설에 대한 구조나 장면들까지도 해석한 그들의 평가에 온전히 고개를 끄덕일 수는 없었으나 (난 잘 모르니까요.), 자신의 체험이 가미된 그의 절절하고 아름다운 문장을 읽는 느낌이 좋았다.

 

 

 

 

 

 

 

 ​ Underline                                                                                                                                              

 

 

 

  ​사방이 쥐 죽은 듯 조용하다. 나는 밤이 이슥하도록 그곳에 누워 창밖을 내다본다. 그 시간에는 요정의 불빛이 들판과 숲 위를 떠다녔다. 해는 지고, 기름처럼 잔자난 수평선을 새빨간 빛으로 물들였다. 하늘은 어디나 탁 트이고 맑았다. 그 깨끗한 바다를 들여다보며 세상의 밑바닥과 얼굴을 맞대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내 심장은 드러난 그 밑바닥에 닿아서 따뜻하게 고동치고, 거기에서 편안했다. 그 수평선은 왜 오늘 밤 자줏빛과 황금빛으로 자신을 장식하고 있는지, 세상의 그곳에서는 어떤 축제가 벌어지고 있는지 아무도 모를 거라고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별들에서 음악 소리가 들려오고, 넓은 강에서 사람들이 뱃놀이를 하는 웅장하고 화려한 축제가 벌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뱃놀이 일행은 저쪽으로 향하고 있다! 나는 눈을 감고 뱃놀이 일행과 동행하며, 생각이 내 머릿속을 항해하는 것을 상상했다. (21p, 목신 판)

  "희망은 이상한 거야. 그래, 아주 야릇한 거지. 너는 어느 날 아침 사랑하는 누군가를 만나게 되기를 바라면서 어떤 길을 걸을 수 있어. 그 만남이 실현될까? 아니지. 왜? 그 누군가는 그날 아침에 바빠서 다른 곳에 가 있으니까. 나는 전에 산에서 눈먼 사미인 노인을 알게 됐어. 그 노인은 58년 동안 아무것도 보지 못했는데, 이제 일흔 살이 넘었지. 그 사람은 시간이 갈수록 자기가 점점 더 잘 볼 수 있다고 느꼈고, 상황이 꾸준히 좋아지고 있다고 생각했어. 불운한 일만 일어나지 않으면, 몇 년 뒤에는 태양을 분간할 수도 있을 거야. 그의 머리카락은 여전히 검었지만 눈은 새하얀 색이었어. 진흙으로 지은 노인의 오두막에 함께 앉아서 담배를 피울 때, 노인은 눈이 멀기 전에 보았던 것들을 나에게 모두 말해주었지. 노인은 강건하고 대담했어. 감정도 없고, 파괴할 수 없는 존재였지. 노인은 희망을 잃지 않았어. 내가 떠날 준비가 되자, 노인은 나를 배웅하려고 밖으로 따라 나와서 여러 방향을 가리키기 시작했지. '남쪽이 있고, 북쪽이 있네. 우선 이쪽으로 가게. 산을 조금 내려가면 저쪽으로 구부러지게.' '알았습니다!'하고 나는 말했지. 그러자 노인은 즐겁게 웃으면서 말했어. '4,50년 전에는 그걸 몰랐으니까, 그때보다 지금이 더 잘보이는 건 확실해. 상황이 계속 좋아지고 있어.' 그러고는 허리를 숙이고 오두막으로 다시 들어갔지. 그 영원한 오두막, 이 지상에 있는 그의 집으로. 그리고 몇 년 뒤에는 태양을 분간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에 가득 차서 여느 때처럼 다시 불 앞에 앉았지. 에바, 희망이란 우스운 거야. 예를 들면 나는 지금, 오늘 아침 길에서 만나지 못한 사람을 잊기를 바라고 있어."(137p, 목신 판)

  그렇다면 사랑이란 무엇인가? 장미꽃들 사이에서 속삭이는 바람 - 아니, 피 속의 노란 인광. 가장 늙고 가장 쇠약한 심장조차 끼어들지 않을 수 없는 '죽음의 무도'. 사랑은 밤이 다가오면 활짝 피는 마거리트 같고, 가벼운 입김에도 꽃잎을 닫고 살짝 만지기만 해도 죽어버리는 아네모네 같다.

  사랑은 그런 것. 사랑은 한 남자를 망칠 수도 있고, 다시 일으켜 세울 수도 있고, 그에게 다시 낙인을 찍을 수도 있다. 사랑은 변덕스러워서,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 내일 밤은 낯선 이에게 호의를 베풀 수 있다. 하지만 사랑은 또 한편으로는 불변성을 갖고 있어서,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봉인처럼 굳게 지속될 수도 있고, 죽음의 순간까지 꺼지지 않고 타오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사랑의 본질은 무엇인가?

  사랑은 하늘에 별이 빛나고 땅에 향기가 가득한 여름밤이다. 하지만 왜 사랑은 젊은이로 하여금 은밀한 길을 따라가게 하고 노인으로 하여금 외로운 방에서 발끝으로 서 있게 할까? 아아, 사랑은 사람의 마음을 버섯밭으로, 신비롭고 무참한 독버섯이 자라는 무성하고 뻔뻔한 밭으로 바꾸어놓기 때문이다. (230p, 빅토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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