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라뇨 전염병 감염자들의 기록
에두아르도 라고 외 지음, 신미경 외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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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라뇨 전염병 감염자들의 기록』 에두아르도 라고 외 / 열린책들

라틴 문학의 시한폭탄, '볼라뇨' 문학에 중독된 사람들

 

 

 

 

  책에 대한 아무런 정보 없이 이 표지를 본다면, 독특한 글씨로 꾸며진 디자인과 '감염자'들이라는 단어 때문에 혹 스릴러 소설인가 오해할지 모른다. 그러나 '볼라뇨'라는 단어가 작가를 지칭하는 것을 알게 된다면, 놀랄지도 모른다. 맞다, 이 책은 '작가에 대한 책'이다. 라틴아메리카에서 최고의 작가라고 추앙받는, 라틴 문학의 시한폭탄이라고도 불리는 '로베르토 볼라뇨'. 열린책들에서 이 작가에 대한 버즈북 『볼라뇨, 로베르토 볼라뇨』를 출간하고, 또한번 작가에 대한 기록인 이 책을 내놓은 것을 보면, 출판사 내에서도 '볼라뇨'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있다. (얼마 전 볼라뇨의 작품 컬렉션 - 전 17권 - 으로 책장까지 나오지 않았는가. 얼마나 갖고 싶었는지...)

 

 

 

 

  2,666원이라는 상상 못할 가격. 그러나 이런 터무니없어 보이는 숫자는 '볼라뇨'와 연관되면서 큰 의미를 가지게 되는데, 볼라뇨가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집필했던 미완성의 유작의 제목이 『2666』이기 때문이다. 사실 『2666』은 출간 소식을 듣고 사놓은지 오래였지만, 아직도 펼쳐보지 못하고 있다. 만만치 않은 두께의 책이기도 하고 (5권이다), 일단은 작가의 가장 유명한 대표작인 『야만스러운 탐정들』 조차도 그 위엄에 눌려 아직 읽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출간된 그의 여러 작품들 중 아직 두 권밖에 접하지 않은 나로서는 '볼라뇨'에 대하여 뭐라 말하기가 어렵기는 사실이다. 일단 간단하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작품은 너무나도 독특하며 난해하고,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있지만, 굳이 끙끙 앓으면서까지 이해하고 싶은 매력을 풍긴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직 내가 '볼라뇨 전염병' 감염자라고는 볼 수는 없지만, 음... 냄새만 맡은 격이라고 할까.

  ​『볼라뇨 전염병 감염자들의 기록』은 말그대로 볼라뇨 문학에 미쳐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엮어놓았는데, 이는 프랑스 잡지 『시클로코스미아』 3호의 내용과 국내 필진의 글을 가져온 것이다. '볼라뇨'라는 작가에 대한 찬사, 비평과 에세이, 오마주 작품들을 담고 있다. 다소 어려움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들은 오마주 작품들보다는 (볼라뇨의 작품을 모두 읽은 후에 접한다면 더욱 재밌지 않을까.) 찬사와 비평들이다. 가장 인상 깊은 구절을 발췌해보자면, 그의 작품 세계를 탐색하다 보면 "모든 것이 동시에 쓰였고, 지금 읽는 것은 이미 예전에 읽었으며, 여기 쓰인 것은 새로운 글쓰기라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투명한 공간 너머로』 안토니오 베를리)"라는 부분이다. 그의 모든 작품들이 문학적 우주 안에 있고, 그것의 결말은 다시 또 다른 작품의 시작으로, 그리고 끝으로, 마치 돌고 도는 행성들처럼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작품의 가치는 대체 얼마만큼인걸까. 

  수많은 사람들이 찬사를 남기는 이 작가를, 그 찬사에 대해서도 (작품을 다 읽지 않아) 크게 공감하지 못하는 것이 살짝은 답답하기도 하다. 언젠가 꽤 많은 시간을 들여, 그의 작품들을 만나보고 싶다. 나 또한 볼라뇨 전염병에 감염될지는 아직,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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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지 않으면 인생이 아니다 - 용감하고 유쾌한 노부부가 세계여행을 통해 깨달은 삶의 기쁨
린 마틴 지음, 신승미 옮김 / 글담출판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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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지 않으면 인생이 아니다』 린 마틴 / 글담출판사

낯선 곳에서 느끼는 두려움을 선택하다

 

 

 
 
 ​ After Reading                                                                                                                                         

 

 

 

  많은 사람들이 한 번쯤은 꿈꾸어보는 세계여행. 나의 경우, 그 유혹이 세차게 드는 때가 있다면 (우리나라의 경우) 취직하기 전 여유가 생길 이십 대에, 그리고 자식들이 어느 정도 자립을 하고 난 뒤의 중년 혹은 노년의 삶을 살 때 일 것 같다. 막연히 "가고 싶다"를 넘어, "가고 싶다." "가고 싶다"....... "가야 한다", "이 때가 아니면 안 된다"가 되는 시기인 것이다. 그러나 그 두 시기에서 떠나기를 망설이게 되는 일종의 장애물 중 가장 큰 것은 '용기'일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이 장애물은 점점 더 높아질 것이다. 젊을 때는 패기와 깡으로 덤빈다 하더라도, 나이가 들면 많은 선택에서 주저하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TV 프로 「꽃보다 할배」를 보고 열광하게 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물론 프로그램의 틀 안에서 스케줄에 맞춰 주어지는 여행일지라도, 그 여행 안에서 실패를 최소화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공부하는 배우 '이순재'를 보면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단순한 여행 에세이로 보이는 표지 속에서 주목을 끄는 제목 '즐겁지 않으면 인생이 아니다'는 마치 자기 계발서를 떠올리게 하는 제목이지만, 책을 쓴 저자 - 이 책의 주인공 -을 생각해보면 그럴 만도 하다. 70세의 나이로 집과 가족, 짊어지고 있던 모든 것들을 털어버리고 남편과 함께 세계여행을 떠난 것이다. 이 도전부터가 여느 자기계발서에서 구구절절 설명하는 것보다도 더 큰 '교훈'이 되는 듯 하다. 유럽과 남미, 북미를 넘나드는 세계 여행, 그들은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살아보기 위해' 떠난다. 유명한 관광지를 돌아다니면서 시간에 쫓기는 것보다는, 며칠을 살기 때문에 적당히 쉬고 여유를 즐긴다. 일상생활에서 즐길 수 없던 조그만 사치를 느끼면서 둘이서 행복하게 여행한다.

  "익숙한 곳에서 느끼는 안락함보다 낯선 곳에서 느끼는 두려움을 선택하다."책 속에 나온 구절처럼, 여행의 모든 순간이 즐겁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모국에서 자유자재로 운전하며 다니던 길은 어떤 나라에서는 좌우가 바뀌어 당황스럽기도 했다. 현지인들의 습관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해하기도 한다. 바쁜 보행자들에게 이리 치이고 밀쳐져 짜증이 나기도 하고, 적은 시간을 머무는 집인 탓에 안락한 가구 (특히 푹신한 의자)를 갖지 못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은 여유롭게, 때로는 한 발짝 물러서며 해결해나간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한 곳에서 정착하고 살았다면 참지 못 했을 짜증스러운 일들을 쉽게 무시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마틴 부부는 여행을 통해 변해가면서, 시간을 통해 주어지는 연륜과 경험을 활용해간다. 그들은 다시 한번 떠나게 되더라도, 어려움 앞에서 포기할 것 같지는 않다. 그들의 좌우명인,"아무것도 미루지 말자." 이 말을 듣고 금방이라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 Underline                                                                                                                                                 

 

 

  심지어 요즘에도 새로 만난 사람들 중에 우리의 생활 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나서 우리의 선택이 그들의 선택을 위협하기라도 하는 양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음, 나는 내 가구와 개와 자동차를 절대 포기할 수 없어요."라는 식으로 말한다. 가끔 이런 자유분방한 생활이 모든 사람에게 적합하지는 않다는 점을 설명해야 할 때도 있다. 그저 이런 생활이 현재 우리의 인생에 잘 들어맞을 뿐이다.

  우리의 독특한 생활 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유는 삶을 대대적으로 바꾸라고 설득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런 변화를 꾀하고 싶은 사람이든 그렇지 않은 사람이든, 시야를 넓힐 때 생기는 이익을 강조하고 싶을 뿐이다. 시야를 넓히는 일을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저 가까운 도시를 가본다거나, 새로운 동호회에 가입한다거나,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것 모두가 여기에 해당되니까. (36p)

  게리가 안부 인사 대신 해 달래요.

  '아무것도 미루지 말라.'는 말을요.

​  용감한 사람이 해준 심오한 충고였다.

  "아무것도 미루지 말라."는 말은 내 데스크톱 컴퓨터 화면에 커다란 글자로 떠 있고, 우리 부부의 좌우명이 되었다. 우리는 비용을 감당할 형편이 안 되거나 실행하기에 너무 힘들 것 같거나 "우린 너무 늙었어."라는 한탄에 빠져 그냥 미뤄 두고 싶은 일이 생길 때마다 이 좌우명을 명심하려고 노력한다. 게리가 할 수 있다면 우리도 할 수 있다! (120p)

  나이가 많은 사람일수록 힘에 겨운 상황에 처하면 훨씬 벅차한다. 특히 자신은 어쩔 줄 몰라서 허둥대고 있는데, 주변 사람들은 무엇을 할지 정확하게 알고 있을 때 더욱 그렇다. 이미 노인 (나는 노인보다 어른이라는 말이 더 좋다)인 우리 부부는 항상 스스로가 하는 일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이를테면 파리에서의 둘째 날에 우리는 처음으로 지하철 표를 사면서 끔찍하게 고생했다. 승차권 발매기가 우리의 신용카드를 인식하지 못했고, 그래서 유로화를 집어 넣었지만 그 돈도 자꾸 반환됐다. 우리 뒤에 서 있던 사람들이 특유의 프랑스 방식으로 짜증난다는 티를 냈다. 우리 뒤에 바짝 붙어 작게 한숨을 내쉬며 발바닥을 탁탁 치는 방식으로 서두르라고 표현했던 것이다. 결국 역무원이 부스로 우리를 불러서 직접 표를 팔았다. 우리는 또다시 창피를 당하느니 앞으로는 부스에서 표를 사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역무원은 항상 자리에 있지 않았고, 결국 우리는 한숨소리와 발바닥을 치는 소리를 감수한 채 창피를 꾹 참고 다시 도전해 봤다. 마침내 우리는 승차권 발매기를 사용하는 방법을 알게 됐으며, 스스로 알아서 자유자재로 승차권을 구매할 수 있게 되었다. (160p)

  팀은 내가 서로 밀치며 급하게 걷는 사람들과 속도를 맞추느라고 짜증이 났음을 눈치채고 부드럽게 말했다.

  "어느 나라를 가든 도시 사람들은 늘 서두르잖아. 그들은 우리와 달리 휴가 중이 아니고 먹고살기 바빠서 우리를 배려할 여력이 없지."

  "그래요. 그런데 우리는 왜 이렇게 짜증이 나고 화가 나는 걸까요? 우리가 너그럽지 못한 사람들인 걸까요?"​

​  "아니야. 우리는 새로운 것을 배우고 있는 사람들일 뿐이야. 오히려 다른 도시에서 접하는 실상이 예상과 다를 수도 있다고 말한 사람은 바로 당신이잖아. 그저 우리는 강해지기만 하면 돼. 새로운 문화에서는 새로운 수준의 인내심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나는 당신보다 더 못받아들이잖아." (165p)

    ​

 

​ P.S : 북 트레일러 영상                                                                                                                               

 

 

유투브로 연결 http://youtu.be/UIFzvCejV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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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적 메메드 - 상
야샤르 케말 지음, 오은경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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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적 메메드』 아샤르 케말 / 열린책들

 영웅을 보는 민중의 시선

 

 

 
 
 
  책을 덮고 난 뒤, 영화 <다크나이트>에서 타락한 시민의 모습을 감추기 위해, 그리고 다수 시민들에게 희망을 남겨주기 위해 악당이란 누명을 쓰며 쫓기는 배트맨의 모습을 떠올렸다. 화려한 유니폼을 입고 거리를 자유자재로 누비며 약한 사람들을 적들로부터 멋지게 구해내는 영웅에게 연민이 느껴지는 것은 처음이었다. 생각해보면 '영웅' - 단어의 의미부터 남다르고 거창한 이 이름 - 이란 것이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영웅이 품은 큰 뜻, 그 원인이 복수심이든 단순한 동기든 상관없이 그것은 자기 자신뿐만이 아닌 많은 사람들을 향하기 때문이다.
  과거 터키의 사회 현실을 알려주는 듯한 이 소설은 '의적' 메메드, 즉 그 사회에서 다수를 위해 의롭게 싸웠던 청년 영웅을 허구적으로 그려내어 이야기한다. 죽도록 일하고도 지주의 탄압으로 제대로 일한 값을 받지 못하는 마을 사람들, 그리고 그 중 한 소년이었던 '메메드'. 그는 주변에서 말하던 "스스로 땅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마을을 꿈꾸며 마을을 탈출하고 여태껏 보지 못 했던 크고 다른 세상을 목격한다. 탈출 후 포악한 지주에게 금방 잡혀오지만, 조금씩 큰 뜻을 품기 시작한다. 시작은 자신의 처지를 개선하고 싶다는 꿈일지도 모르겠지만, 점점 그 뜻은 다수에게 향한다. 마을 사람들이 자신의 땅에서 자급자족하며 살게 하는 꿈, 자신은 산에서 그들을 지켜낼 수 있는 꿈. 그러나 조금은 평범해 보일지 모를 '의적 메메드'의 삶은 쫓기고 쫓기는 투쟁으로 가득했고, 사랑 또한 쉽게 이루어질 수 없었다. 그로부터 자유를 얻은 마을 사람들도 결국은 그를 고독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가 만든 세상만이 계속되고 있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영웅'이 되는 길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메메드'라는 작은 소년이 큰 뜻을 품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생각했던 것보다 작은 '영웅'은 곳곳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많지는 않아 보인다, 현대에는 더욱. ) 자국 내에서 정치적으로 많은 압박을 받으면서까지 터키의 리얼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파헤치는 이 작가 또한 - 쿠르드족의 독립투쟁을 정부는 탄압하고 있다고 한다. - 어디에도 말할 수 없는 자국 내의 답답한 현실을 조금이나마 풀어주는 '영웅'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아니면 그러길 바라는 또 다른 국가의 바람이 만든 것일지도. 결국은 '영웅'의 또다른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불행한 현실 속에서 기댈 곳 없는 민중들의 희망이 모여 만들어진 것이, 우리가 바라보는 '영웅'이기도 하다.
  ​작가는 '영웅', 즉 '소명을 가진 자들'에 대하여 파헤치고 싶었다고 언급했으며, 이 소설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책의 뒤쪽에서 다시 전하고 있다. 그는 '인간은 궁지에 처해 있거나 극한의 고통을 느낄 대 자신들의 은신처가 될 신화의 세계를 창조하려 한다'는 것이다. 어두운 세계의 '은신처'가 될 수 있었던 '의적' 그리고 '영웅', 결코 많지 않은 그들이 밑거름을 쌓아준 희망의 세계를 지켜나갈 것은 '우리' 밖에 없다는 것을 깨우쳐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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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메드는 충격에 휩싸였다.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온갖 상념에 빠져 있었다. 이 생각 저 생각이 밀려왔다. 머릿속엔 온통 이 넓은 세상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어쩌면 세상이 이렇게나 넓을 수가 있을까? 물방앗간 마을은 이제 하나의 점처럼 느껴졌다. 그 대단한 지주 압디도 개미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처음으로 제대로 된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사랑과 연민 사이를 오가고 있었다. 나 자신이 인간이라는 생각이 처음 들었다. 메메드는 몸을 뒤척이며 중얼거렸다. 「지주 압디도 사람이고, 우리도 사람이야......」 (109p)

「메메드, 이 녀석아. 네가 못된 짓을 하거나 엉뚱한 사람을 죽이기라도 하면 내가 이 손으로 너를 직접 경찰에다 넘길 테다.」

「아무 죄도 없는 사람을 내가 해칠리 없다는 걸 아저씨도 잘 아시잖아요.」

쉴레이만은 반색을 하며 메메드의 목덜미를 끌어안고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내 말을 잘 들어 보렴, 아들아. 네가 결백하거나 나쁜 짓을 하지 않은 사람을 죽이거나 또 재물 때문에 사람을 죽인다면, 너는 나를 피해가지 못할 거다.」

「나는 그런 사람들과 관련 없는 자들만 죽였어요.」 메메드가 아주 침착하게 대답했다.

쉴레이만은 그래도 그의 목을 놓지 않고 덧붙였다.

「그런데 또 다른 지주 압디를 만났는데도 그런 자를 네가 죽이지 않는다면, 내 손이 너를 용서하지 못할 거다. 네가 백 명의 지주 압디를 만나면, 만나는 대로 다 죽여야 한다......」 「약속할게요......」 메메드가 웃으면서 말했다. 「내가 백 명의 지주 압디를 만나면 백 명 모두를 죽여 버리겠어요.」 (167p)

「내가 지금 무슨 생각하는지 알아, 자바르?」

자바르가 대답했다.

「내가 어찌 알겠어?」

​ 「디켄리로 가는 거야. 다섯 마을에 사는 노인들을 모두 한 군데로 불러, 지주 압디는 이제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는 거지. <지금부터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소들은 여러분 것입니다. 절반이고 뭐고 소작료는 이제 낼 필요가 없어요. 땅도 모두 여러분 것이 되는 거예요. 농사는 원하는 만큼 지으세요. 내가 산에 있는 한, 마음 놓고 사십시오. 내가 총에 맞아 죽으면 그때나 다른 방법을 찾아보시고요.> 나중에 마을 사람들을 모아서 엉겅퀴 밭을 모두 태워 버릴 거야. 엉겅퀴를 태우지 않으면 절대로 농사를 못 짓게 할 거라고.」

자바르가 눈시울을 적시며 말했다. 「좋아. 지주가 없는 마을이라니! 자기가 수확한 것은 모두 자기가 가져가는 거야.」

메메드가 미소를 지었다. 「자기가 수확한 것은 모두.......」 (39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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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의 거짓말 : 성서 편 명화의 거짓말
나카노 교코 지음, 이연식 옮김 / 북폴리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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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의 거짓말 (성서 편)』 나카노 교코 / 북폴리오

명화 속 기묘한 이야기를 읽는 법

 

 

 

  미술작품이나 문학작품이나 무조건 정해진 법칙대로 보는 것은 피해야 할 일이겠지만, 작품에 대한 어느 정도의 지식이 보다 폭넓은 해석을 도와주는 건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특히나 '명화'라고 불리는 미술작품들은 그것이 만들어진 시대의 이야기, 즉 꽤 오래전의 역사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림의 배경, 소품, 채색, 그리고 인물화의 경우에는 그 사람의 표정까지도 이야기를 담고 있을 수 있다. 물론 후세의 주관적인 해석이 들어가 있을 가능성도 있기는 하지만.

   미술에 큰 관심은 없는 나는 어떠한 작품을 봤을때 미술적인 감각이나 작품의 의도를 직접 파악하지는 못하기 때문에, 간접적으로나마 미술을 가까이 접할 수 있는 이런 책들을 좋아하는 편이다. 특히 나카노 교코의 책은 미술 전공자가 아닌 일반인들도 흥미를 가질만한 주제들로 이런 책들을 엮어내는데, 작가의 책 중 처음으로 접한 것이 『무서운 그림』 시리즈, 그다음엔 『명화의 거짓말』이었다. 언뜻 보면 그냥 정교한 작품이라고 느낄 수도 있는 명화들을 같은 주제로 엮어, 전해 내려오는 작품의 해석과 작가의 말을 덧붙인다.

 

  역자의 후기 한쪽을 빌려와보면 "성서는 모순과 오류로 가득한 텍스트다. 하지만 그런 모순과 오류가 성서에 질서와 일관성을 부여하려 했던 사람들의 대패질에도 완전히 깎여 나가지 않은 채, 복잡하고 다채로운 목소리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흥미롭다."라고 한다. 세계사의 꽤 오랜 부분을 차지했던 기독교인만큼, 성서의 내용을 소재로 한 명화들도 넘쳐나는데, 이런 작품들이야말로 앞에서 말했던 '폭넓은 해석을 위한 지식 (성서)'이 중요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기독교의 비중이 엄청난 위용을 자랑하기에, 종교화와 성서의 이야기 또한 익숙할지도 모르지만, 이 책은 원래 우리나라만큼 '기독교'와 친하지 않은 일본인들을 대상으로 쓴 것이어서 그림의 토대가 되는 기초적인 성서의 이야기를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다루고 있다. 책의 내용은 구약성서와 신약성서로 크게 분류되어있으며, 작게 보자면 천지창조부터 예수의 부활까지 역사적 시간을 따라 쭉 전개된다.

 

 

  온 페이지가 명화로 장식된 부분들의 귀퉁이에는 작은 설명들이 쓰여있다. 조토 디 본도네 『예수를 배신함』이라는 작품 하나를 예로 들면, 작가의 작은 해석을 통해서, 작품 속의 수많은 사람들이 취하는 행동의 이면과 표정의 의미, 그리고 그림 뒤에 펼쳐지는 당시의 상황을 조금은 파악할 수 있다. 예수를 배신한 '유다'의 표정과 고귀한 예수의 표정을 세밀하게 표현해낸 이 그림이 자못 흥미롭다. 처음 느낀 바 (책의 내용이 없었다면 입 맞추고 있는 저 사람이 배신자 '유다'라고는 생각지 못 했을 것이다)와 다르게, 그림에 숨겨진 이야기를 듣고서 '보이는' 것들은 작품의 매력을 더한다. 이야기를 읽고난 뒤 작품은 놀라울 수도, 어쩌면 무시무시하게 변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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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고향의 맛.멋
이재인 지음 / 멘토프레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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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고향의 맛·멋> 이재인 / 멘토프레스

고향의 정취를 만끽하는 여행

 

 

 

 

 ​ After Reading                                                                                                                                     

 

 

 

   ​내가 노골적으로 많이 쓰고 싶은 단어, 어감이 좋은 단어 '멋'과 '맛'이다. 여행을 간다면 빼놓지 못할 단어, 그것도 '맛'과 '멋'이다. 평소에는 가지 못하는 우리나라 구석구석을 돌아보고, 새로운 맛을 찾아가는 즐거움은 '여행'에서만 유독 그 즐거움이 강해지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제목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단어 '맛'과 '멋' 하나로도 책에 대한 기대감을 충족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기본적인 정보로 만으로 보지 못 했던 새로운 것이 이 책에 담겨있었다.

  바로 내가 '맛'과 '멋'이라는 말에 취해 보지 못 했던 '고향'이란 것이었다. 작가는 지금도 우리나라 어딘가에 소박한 삶을 꾸려가며 살고 있는 고향의 여러 사람들을 소개하고자 하였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고향의 아름다운 정취, 그리고 고향 사람이 직접 소개하는 '맛'을 소개하고자 하였다. "이 책을 통해 독자는 잠시, 잊었던 고향을 다시 떠올릴 것이고, 단 한 번도 고향 다운 고향을 가져본 적 없는 이들에게는 한없이 달려가고 싶은 마음의 고향을 더러 꿈꿔보기도 할 것이다." 인터넷을 뒤지면 주르륵 나오는 엄청난 관광지들과 맛집이 아닌, 우리가 고향이라 부르는 정이 담긴 그곳, 그리고 이야기가 담긴 그곳을 소개한다.

  고향을 소개한 다음 고향의 인물을 이야기하고, 고향의 맛을 소개하는 매뉴얼대로 각각의 지역을 소개한다. 고향의 이야기를 하고자 하니 우리의 과거, 역사에 대한 이야기 또한 빼놓지 않는다. 가장 좋았던 점은 고향에 대한 이야기 속에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시인들의 시, 그리고 그 시인들이 정겹게 소개하는 '맛집'들이었다. 그리고 충청도의 멋과 맛, 그리고 가까운 서울과 수원에 대한 얘기까지 빼놓지 않은 고향 냄새가 물씬 나는 책, <다시, 고향의 맛·멋>을 읽으니 훌쩍 여행을 떠나고 싶다.

 

 

 

 

 ​ Underline                                                                                                                                                  

 

 

​  우리가 명장 서영기 교수를 통해 배워야 할 것은 불교용어인 '할劼'이다. '할'이란 무언의 경책, 즉 가르침이다. 세속주의에 젖은 사람들은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을 뛰어넘는 것이 다반사다. 그런데 서영기 도예가는 한 번도 교수를 꿈꾸거나 도자기를 팔아 생계를 유지하겠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고 고백한다. 다만 자기가 할 일에 최선을 기울였고 선생님 가르침으로 110퍼센트 실천하다 보니 명장 도예가가 되었고, 나아가 어엿한 4년제 대학의 도예학과 교수직에 진출했다. 쉬운 말로 엉덩이에 뿔내지 말고 인간부터 되면 자연스럽게 최고경지에 이르는 길이 있다는 것이다. 그 길을 안내해준 것이 자신의 삶에서는 스승의 가르침 '할'이라고 했다. 그의 손길을 통해 만들어진 찻그릇이나 도예품들은 모두가 명품名品이다. (49p)

  백제 / 천 오백 년, 별로 / 오랜 세월이 아니다 / 우리 할아버지가 / 그 할아버지를 생각하듯 / 몇 번 안 가서 / 백제는

  우리 엊그제, 그끄제에 / 있다.

  전봉준 이하의 동학 농민 운동가들의 해방정신은 과거 백제의 기상으로도 연결되어 시인에게 역사적 사명을 부여한다. 신동엽 시인은 전봉준 만을 노래하는 데 그치지 않고 백제라는 더 먼 과거를 돌아봄으로써 우리 미래를 설계해 나간다. 우리는 언제나 엊그제, 그끄제라는 과거 속에서 살아가기에 과거는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며 우리의 현재이기도 하다. (94p)

  김경란 화가는 붓에 그리 강렬한 힘을 주지 않고 하얀 캔버스 위에 붓을 가벼이 놀리면서도 강렬한 인상을 남겨준다. 김경란 화가의 서로 부딪치면서 섞이는 색들의 동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선을 그으며 흐릿한 사물의 외양을 분명하게 잡아내면서도 자신의 내면색으로 재창조해낸다. 부서져내리는 해바라기들에 미소짓는 하얀 소녀는 그림자로 뒤에 남으면서도 쉽사리 잊혀지지 않는다. 해바라기들은 온전하지 않기에 하얀 소녀를 둘러싸며 새로운 의미로 재탄생한다. 이런 분명함과 흐릿함의 교차지점에서 은연히 드러나는 자아의 경지가 바로 김경란 그림의 매력이다. (16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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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지원받은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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