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영화포스터 커버 특별판)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 / 다산책방

​기억이란 참 매정하다.

 

 

   이 책을 거의 1년 전에 읽었다. 아무 생각 없이 읽다가 반전을 접했을 때, 또 한번 처음부터 읽는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책이었다. 내용의 강렬함 때문인지, 그때도 지금도 여기저기 소개되고 있는 책이다. 1년 전에는 빨간 책방, 그리고 맨 부커상이라는 화려한 경력, 이번엔 'TV 책을 보다'에서 방영되었다고 한다. 이 책을 만나기 전에는 작가의 이름조차 생소했지만, 이제는 신작이 나오면 흘깃 보며 기대하는 작가가 되었다. 사실 같은 책을 다시 들여다보는 것은 쏟아져 나오는 새 책들 속에서 '가능하다면 하고 싶지만, 쉽게 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이번에 다산북스 나나흰으로 활동하게 되면서 기막힌 반전의 책을 두 번째로 읽게 되는 기회를 가졌다. 1년 전에 읽은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와, 1년 후에 읽은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그 느낌은 역시 조금은 달랐다. 억력이 좋지는 않은 편이어서 이 책이 반전을 거듭하고 있다는 것은 아직 알고 있었지만, 정확하게 설명하기는 어려울 정도로 내 기억에 희미하게 남아있었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1부에서는 주인공 토니와 두 친구들, 그리고 전학 온 에이드리언의 어릴 적 이야기를 다룬다. 학교 수업과 여자친구, 여행, 그리고 졸업....... 여느 학생들에게 일어날 법한 사총사의 이야기를 회고식으로 정리한다. 2부는 40년 후의 이야기다. 잠깐 사귀었던 베로니카의 어머니가 보낸 유산과 편지, 그리고 '왜 나에게 유산이 왔을까'하는 토니의 의문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제목의 함정, 예감 아닌 예감"

  예전에 읽었을 때 이 책의 제목이 약간은 핀트가 어긋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왠지 괜찮은 제목인 것 같기도 하다. (물론 해석하기 나름이지만)

  주인공 토니는 미련스러울 정도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감을 잡지 못한다. "아직도 전혀 감을 못 잡는구나, 넌 늘 그랬어."라는 말에도 허허, 웃으며 '말을 안 해주는데 어떻게 아냐고-' 하는 식이다. 상황의 심각성을 짐작하지 못하고, 음흉한 생각마저 한다. 읽으면서 '이런 멍청한 인간이 다 있어.'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으나, 잠시 뒤에 찝찝한 기분이 들기 시작한다. 나도 왠지 이럴 것 같다는 생각.  

 

  예감은, 어떤 일이 일어나기 전에 본능적으로 미리 느끼는 것이다. 그런데 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라는 제목이 나왔을까? 주인공은 지지리도 예감하지 못하는데 말이다.

  두 가지 생각이 있다. 첫 번째는 '제목이라는 함정'. 우리들은 가끔 "내 예감이 맞았어."라는 말을 하기도 하지만, 정작 그 예감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예감은 '미래'가 '현재'가 됐을 때에만 실현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예감했다고 믿는 상황은, 결국 그 결과를 보고 나서 긍정적으로 말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시간이라는 함정 안에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라고 과언하는 것은 생각해보면 꽤나 자만이 가득한 발언이다. 우리의 인생은 너무도 불확실하니까 말이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왠지, 전혀 예감할 수 없는 우리를 말하는 반어법이 담긴 제목인 것 같기도 하다.

  두 번째로 잠깐 언뜻 든 생각은, 아주 작은 실수와 관련된 것이다. 토니가 보낸 편지, 그가 기억하는 것과는 다른 실제의 편지는 결국 여러 사람들의 미래를 '예언'해버린 격이 되었다. 예감이라고는 하지 못하는 '토니'가 어떻게 이 사건을 '예감'(보다 확실히 말하면 찍어 맞춘 거지만) 하게끔 되어버렸을까? 결국 이 제목은 '큰 파국을 일으킬 수 있는 예언 같은 작은 실수'를 미리 경고하고 있다. 토니가 그 편지를 다른 쪽으로 썼다면, 그들의 인생은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시간은 기억의 '정착제'가 아닌 '용해제'다"

​  처음 읽었을 때부터 이 말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수차례 역사에 관한 책을 냈던 작가 '줄리언 반스'는 '기억'이라는 것에 굉장히 세밀하게 다룬다.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이라고 1부의 끝에 언급했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기억'이다. 시간의 흐름이 기억에게 어떤 일을 벌일 수 있는지, 실제로 일어난 상황들을 얼마나 주관적으로 왜곡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경고를 남기고 있다. 그러한 점에서 1부, 토니의 기억에 의존한 주관적인 회상 - 두번째로 읽어보니 꽤 빠른 전개로 이뤄지는 이 부분은 - 은 이런 '기억의 배신'을 한눈에 볼 수 있다.

​  우리는 살면서, 좋은 기억은 꼭 안고 가고 싶고, 나쁜 기억은 반대로 완전히 잊히기를 바란다. 물론 우리가 원하는 대로 되지는 않는다. 나쁜 기억은 생각보다 더 선명하게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하지만, 가끔 그 기억은 예상치 못하게 왜곡된다. 보통 이런 경우는, 자신이 일을 벌인 경우이거나, 가해자가 됐거나 인 듯하다. 실제로 나는 이런 경험을 해보았다. 철없을 때 친구들과 벌인 어떤 기억은 시간이 흐르면서 내 기억에서 왜곡되었다. 갑자기 옛날 얘기를 하다가 친구는, 내가 전혀 한 적이 없다고 여겼던 행동을 과감하게 했다고 말했다. 내 기억으로는, 너무나 소심해서 그 상황에서 전혀 과감할 수가 없다고 여겼던 나는, 의외로 대담했다는 것이다. 나는 내 기억 속에서 은연중에 지워버렸던 얼굴 빨개지는 기억을 다시 되살릴 수밖에 없었다. (사실 아직도 가물가물하다.) 그러고보면 '시간은 기억의 정착제가 아닌 용해제'라는 말이 정말로 맞아떨어지는 듯하다. 기억은, 우리 상상보다도 너무나 매정하게 뒤통수를 때린다.

  보통 많은 사람들이 지루해하지 않게, 적당한 길이의 서평을 선호하는 편이지만, 풀어내고 주절주절 (횡설수설) 하다 보니 길어졌다. 어쨌든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호불호가 갈리는 소설이기도 하지만, 두번째로 읽을 때도 정말 흥미진진한 소설이다. 반전은, 다소... 막장 드라마스러운 면이 있기는 하지만, 그 반전을 숨겨둔 이야기와 '기억'이란 것에 대한 작가의 묘한 애정과 집착으로 풀어내린 문장들은 읽으면서 계속 기억하고 싶을 만큼 좋다. 초반에 나오는 기억에 대한 서술은, 첫 번째 읽을 때 조금 뜬금없다고 여겼을지 몰라도, 기막힌 반전과 끝을 맛본 두 번째의 독서때는 그 의미가 조금 더 가깝게 다가왔다. 물론 이 서평은 객관적인 풀이나 해석이 아닌, "그런걸까 -?" 하는 단순한 나의 생각이다.

 

 

 

 

 1년 전에 쓴 리뷰. 정말 별말 없지만.

http://pretty9121.blog.me/110171041403 

 

 

 

Copyright ⓒ 2014. by Rinny. All Rights Reserved.
출판사에서 지원받은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쓴 서평입니다.
덧글과 공감은 글쓴이에게 큰 힘이 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루시와 레몽의 집 - 알자스 작은 마을에서 맛본 조금 더 특별한 프랑스
신이현 지음 / 이야기가있는집 / 2014년 7월
평점 :
품절


『루시와 레몽의 집』 신이현 / 이야기가 있는 집

세상에서 겨울이 가장 아름다운 알자스의 '맛있는 이야기'

 

 

 

  프랑스 북동부 한쪽에 긴 모양으로 자리 잡은 '알자스'라는 도시는 우리에게 익숙하지는 않은 곳이다. 독일과 가까이 붙어 있는 알자스는 몇차례 전쟁으로 인해 독일의 지배를 받기도 했던, 아픈 기억이 있는 도시인데, 우리나라와는 거의 지구 반대편에 있으며 저자 '신이현'의 시댁이기도 하다. '시댁'이라고 하는, 우리나라에서는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그곳은 저자에게 조금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것 같다. 자주는 방문할 수 없고, 간혹 먼 거리를 이동해 방문해도 '여행'이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는 '루시와 레몽의 집'. 그 집이 있는 알자스는 항상 맛있는 냄새가 폴폴 풍기고, 따뜻한 이야기와 미소가 있고, 세상에서 겨울이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 

  

  원래 이 책은 『알자스』라는 이름으로 7년 전, 세상에 나왔던 책이었다고 한다. 에필로그를 읽어보니 『루시와 레몽의 집』이었던 그곳이 '레몽의 집'만이 되어버린 것을 슬퍼하고 위안하며, 이 책을 새로이 낸 것도 같다. 그리고 사실, 『알자스』라는 제목보다는 『루시와 레몽의 집』이라는 제목이 더 잘 어울리기도 하다. 예쁜 제목을 가진 이 책에는 친구처럼 살아가며, 딱 하루의 차이를 두고 함께 삶을 마감하고자 하는 꿈을 꾸는 루시와 레몽 (저자의 시부모)의 이야기,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알자스'의 음식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단순히 '알자스'의 이야기가 아닌, 루시와 레몽과 가족들의 이야기다.

  루시는 이것저것 레몽에게 심부름을 시키고, 레몽은 자꾸 부르는 그 말에 "예, 대장님."하고 장난치며 달려간다. 그들은 티격태격하면서도 손을 꼭 붙잡고 살아간다. 도미 (저자의 남편)가 먹고 싶다는 '엄마 음식'을 말하자마자 꽤 복잡한 음식에도 불구하고 루시는 당장 요리를 준비한다. 가끔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는 레몽의 행동에, 나머지 가족들은 짜증 내지 않고 그러려니 하고 넘어간다. 식사마다 격식을 차리는 가족의 특성상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는 설거지에도 도미의 형제들은 투덜대면서도 오순도순 그것을 마친다. 알자스에서 맛볼 수 있는 따뜻한 포도주, 그들이 심고 기르는 채소들이 있는 그 집. 소박하지만 행복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그 집에 가본다면, 저자가 아닌 누구라도 그 곳의 이야기를 다른 이들에게 전해주고 싶을 것 같다.

  루시가 세상을 떠난 이후로 레몽은 오랜 시간 슬픔에 잠겼다가, 다시 일어나 루시가 남긴 레시피 책을 펴고 요리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녀의 맛있는 요리가 레몽의 상처를 치유했듯, 고소하고 달콤한 냄새가 나는 이 책을 보는 우리에게도 따스한 기운이 스미는 듯하다. 항상 꾸는 꿈이지만, 이렇게 소박하게 오순도순, 맛있고 건강한 요리를 직접 해 먹으면서 행복하게 살아갔으면 좋겠다.

 

 

 

Copyright ⓒ 2014. by Rinny. All Rights Reserved.
덧글과 공감은 글쓴이에게 큰 힘이 됩니다.

 

이 산을 넘으면 파리에서와는 다른 세상이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다. 더구나 겨울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알자스에 와야 한다. 이 세상에서 겨울이 가장 아름다운 곳이기 때문이다. 추울수록 더욱 싱싱해 보이는 거대한 전나무와 그것을 푹 뒤집어씌울 정도의 많은 눈, 겨울에 먹어야만 제맛인 부드럽고 따뜻한 음식들은 이곳을 겨울에만 존재하는 땅처럼 여겨지게 한다. 어쩌면 알자스 첫 조상은 첫눈 내리기 시작할 때 생명을 얻어 보주 산 깊은 자락에서 한 생을 살다 그 눈이 다 녹을 때 땅속으로 사라져 버린 사람들이었는지도 모른다는 동화적인 생각도 든다. (17p)

나는 독한 버찌 술을 넣은 치즈를 먹으며 웃는다. 이 치즈는 꼭 순두부처럼 부드럽다. 치즈에 독주를 뿌려 먹을 생각을 했다니 농부가 아니라면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요일 날 편안하게 실컷 포식을 하고 난 뒤 몸이 무거워졌을 때 디저트에 독한 술이라도 넣어 먹지 않으면 다시 농장을 둘러볼 힘이 나지 않았을 것이다. 나 또한 치즈 속에 든 독주를 마시니 갑자기 음식 먹는 꿈에서 깨어난 것처럼 움직일 기운이 생긴다. 레몽과 루시가 이번에는 식당 주인과 한참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우리는 현관 벽에 붙은 식당 주변 산책로 지도를 보면서 기다린다. 밖에는 오후 햇살이 눈부시다.

"우리는 저쪽으로 가자꾸나."

식당에서 나온 레몽이 햇빛이 사라질세라 바쁘게 우리를 재촉한다. 햇살이 더없이 따뜻한 날이다 바람도 없다. 두 노인네는 우리 앞에서 손을 꼭 잡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간다. 꼭 의좋은 남매같다. (132p)

오늘도 그녀는 나를 커다란 잡초 앞으로 데리고 가 기대에 찬 질문을 던진다. 넓적하다고 다 호박잎처럼 먹을 수 있는 게 아닌데 말이다. 한 평의 텃밭이 있다면 한국 사람들은 무엇을 심을까. 틀림없이 상추와 고추, 깻잎을 심을 것이다. 이곳 사람들이라면 무엇을 심을까. 상추와 토마토, 껍질째 먹을 수 있는 완두콩, 파를 심는다. 어느 동네 어디를 가도 똑같다. 정원 옆 조그맣게 가꾼 텃밭을 보면 어김없이 상추, 완두콩, 토마토, 파 이렇게 줄지어 서있다. 루시의 두 딸, 친구들, 낯모르는 저 산위의 사람들 할 것 없이 모두 똑같다. (210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교 입시
미나토 가나에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14년 7월
평점 :
절판


『고교입시』 미나토 가나에 / 북폴리오

 최종 목표가 고교 합격이라니, 15살에 인생을 정하는 거야?

 

 

 

  우리나라의 경우, 대부분 인생의 최종목표를 '대학'으로 결정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무리 명성이 높은 고등학교를 나와도, 특목고를 나와도 사회로 나갈때 적히는 'ㅇㅇ'대학교라는 이름이 인생의 만족도를 결정하곤 하지요. 미나토 가나에의 소설, 『고교입시』에는 다소 아이러니한 상황이 등장합니다. 현 내의 가장 우수한 학교인 '이치고' 입시기간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 이야기 속에서는 학생과 학부모들이 '이치고'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다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습니다.

 

  "최종 목표가 고교 합격이라니, 15살에 인생을 정하는 거야?" 지역 최고의 고등학교, 이치고에 합격한다면 그 뒤에 어떤 삶을 살든 비판받지 않습니다. 이치고 졸업 이후 다소 부진한 성적으로 이름 모르는 대학을 가도, 백수가 되어도, 나이가 한참 먹을 때까지 '이치고'의 자부심을 이어갑니다. 학생들과 학부모, 주민들까지 모두의 이슈인 '고교 입시'는 많은 선생님들의 관리 하에 철저하게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입시 시험 전날에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입시를 짓밟아버리자'라고 쓰인 벽보, 한 선생님의 휴대전화 분실. 약간은 불안한 낌새가 보이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어간 이 상황은 시험 당일날에도 비슷하게 벌어집니다. 고사장에서 모든 휴대전화를 걷었지만, 시험 중에 어떤 학생의 휴대전화 벨소리가 울리고 교사의 "실격"이라는 말 한마디에 학생은 과호흡을 일으키며 고사장을 빠져나오게 됩니다. 단순히 한 학생의 부주의라고 말했던 이 사건은 생각과는 다르게 흘러가게 됩니다. 그 학생은 알고보니 현 의원의 딸, 그리고 없어지는 누군가의 시험지 한장, 인터넷에 계속해서 생중계되는 학교의 상황까지. "입시를 짓밟아버리자"라고 외쳤던 벽보, 그것은 누구의 생각이고 어떻게 벌어진 일일까요?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맺힌 소녀의 얼굴이 나와있는 표지와 '그날 하루가 한 영혼의 인생을 짓밟고 있다'는 카피를 보면, 생각보다 무섭고 오싹한 내용을 상상하게 하지만, 『고교입시』는 기대했던 것보다는 약간은 심심했던 소설입니다. 그리고 작가 미나토 가나에가 선택한 서술방식 - 거의 10명 정도의 사람들이 나와 자신의 생각을 반복하는 - 은 조금 독특하게 느껴졌을지 모르나, 읽는데 약간 부담도 생기고 몰입을 방해하는 감이 있긴 했지요.

  그러나 『고교입시』라는 것이 이야기 속의 '이치고'를 빼놓고도, 많은 상황에 적용해볼 수 있다는 것에 의미가 깊은 소설인 것 같습니다. 일본에서의 입시 상황은 잘 모르겠지만 이런 이치고 같은 명문고 입시, 우리나라의 특목고와 인생을 건 수능... 생각보다 현실은 소설보다 더욱 씁쓸하고 무시무시할지도 모릅니다.

 

 

 

 

* 본 책은 일본 드라마로도 나와 있다고 합니다. 작가 미나토 가나에의 최초 드라마 대본 도전작이기도 하고요.

등장인물이 많아 영상으로 볼 땐 더욱 흥미진진할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Copyright ⓒ 2014. by Rinny. All Rights Reserved.
서포터즈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쓴 서평입니다.
덧글과 공감은 글쓴이에게 큰 힘이 됩니다.

 

"교코 선생, 지역에서 최고라는 데 의미가 있는 거야. 이 일대에서는 도쿄대보다 이치고라니까. 지역 최고의 고등학교인 이치고에 합격하면 부모는 만만세. 그다음에는 도쿄대에 가든 백수가 되든 상관없어. 그렇지, 미즈노?" 미즈노는 천하의 도쿄대 출신이다. 이치고 동급생 시절부터 나를 깔보았지만, 지금은 같은 직장에 대니고 있다. 미즈노가 나를 싫어하는 만큼, 나는 미즈노를 싫어하지 않는다.

"알기 쉽게 설명하자면 어떤 형제가 있는데, 형은 이치고에 붙어서 졸업한 후 삼류대에 진학하고 동생은 이치고에 떨어져서 다른 학교에 가서 졸업한 후 일류대에 합격했다고 쳐. 어느 쪽이 자랑스러운 아들인지 알아?" 아이다 선생이 간단한 예를 들어 교코 선생에게 설명했다.

"난 동생이라고 생각하지만 이곳의 상식으로는 형?"

"정답." (26p)

​55번이 사와무라 회장의 아들이란 사실에 모두 얼굴이 어두워졌다. 46번의 답안지를 찾고 있었는데, 나온 것은 55번, 55번의 답안지는 두장이 되었다. 게다가 55번은 커닝을 고발당했다. 고발한 사람은 59번.

즉, 마쓰시마 선생님의 아들이 사와무라 회장의 아들을 고발한 것이 된다.

대체 무엇부터 해결해야 좋을까? (212p)

"대체 이 익명의 네티즌은 현행 입시에 어떤 불만을 품고 있을까?"

"입시 제도 자체 아닐까요?"

"학력으로 순위를 정하지 말고 초등학교나 중학교처럼 집에서 제일 가까운 곳에 가게 하라는 건가? 언제까지, 어디까지 행동을 통일하면 나라가 망하지 않을까."

​ "그러나 학력만이 인간의 우세를 결정짓는 것도 아니죠."

"그런 생각이 만연하다 보면 머리 좋은 사람은 냉혈한이고, 머리나쁜 사람은 마음이 너그럽다는 이상한 극단론이 생기는 거야. 어째서 열심히 공부한 것을 비판당해야 하느냐고."

"그런 서열이 낮은 학교에 다니는 것은 열심히 하지 않아서라고?"

"그것도 역시 극단론이지. 인간에게는 어차피 능력 차가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해. 그 속에서 나름대로 노력하면 되는 거지. 그리고 그 노력은 어떤 형태로든 인정받거나 칭찬받아야 한다고 생각해. 하지만 그건 학력을 판정하는 자리에서 얘기할 건 아냐."



"그럼 어디서?"

"부모가 집에서 칭찬해주면 되지. 자신이 자신을 칭찬해주면 돼. 옛날에는 그랬잖은가. 달리기 경주에서 꼴찌를 해도 열심히 달리기만 하면 우리 어머니는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잘 뛰었다고 칭찬해주었어."

"그렇군요. 우리 부모님도 서툴게 그린 그림을 언제까지고 거실에 걸어놓으셨죠."

"고교 입시란 그것도 같은 게 아닐까."​ (327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허영만 식객 Ⅱ 1 : 그리움을 맛보다 허영만 식객 Ⅱ 1
허영만 지음 / 시루 / 201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식객2-1권, 그리움을 맛보다』 허영만 / 시루

음식을 담아, 사람을 담아

 

 

 

   우리 시대의 대표 작가, 허영만 화백은 어찌나 사람들이 좋아할 소재들을 항상 들고 나오는지. 생각보다 굉장히 오래된 작품들, 그리고 현재 나오고 있는 작품들을 보면, 특별하고 재미있는 소재들을 고르는 솜씨는 역시 탁월한 것 같다. 그 중 『식객』 시리즈는 정말 '신의 한수'라 할 만 하다. '먹는 즐거움'과 '다양한 맛'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이 시리즈를 무척이나 기대하며 읽어볼까 고민했지만, 생각보다 많은 권수에 놀라 아직까지 읽지 못하다가 '두 번째 이야기'를 먼저 만나본 소감은, "아, 정말 『식객』을 진작 읽을 걸 그랬다" (물론 좋은 뜻에서다.)

 

 

 

 

 

  "음식이 사람을 이렇게 행복하게 해주다니."

  세상의 많은 음식이 행복을 담고 있고, 허영만 화백은 이 행복을 너무나 맛깔스럽게 그려낸다. 『식객』 2부의 1권은 '그리움을 맛보다'라는 부제로 정감 가는 이야기를 담았다. 미각을 자극하고, 기억을 되살리는 음식. 흔히 볼 수 있는 음식과 흔히는 볼 수 없는 음식들이 '그냥 밥집'이라는 식당의 배경 아래 펼쳐진다. 평면적인 종이 위에 그려진 그림들이 이렇게 생생할 수가 있을까. 음식을 가장 맛있게 먹기 위해 준비하는 '워밍업' - 위의 그림과 같은 - 부터 군침이 고이기 시작한다. 딱 한입 먹고 나서 주인공들이 감탄하는 모습을 보고 꼭 내가 먹은 양 미소가 지어진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미각으로 느껴지는 추억을 회상한다. 아, 정말로 따뜻하고 맛있는 만화책이다. 음식의 맛,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그득하다.

 

 

 

 

  한국적인 정서가 가득 담겼다. 자기가 만든 음식을 먹고 보여주는 행복감에 살아가는 '그냥 밥집'의 주인, 농사 지는 한낮에 먹는 막걸리를 곁들인 '참', 계곡물이 흐르는 숲에서 먹는 보리밥과 동동주. 화려하지는 않지만, 추억을 되살리고 정감을 주고 소박한 즐거움을 주는 우리 음식. 이렇게 글로만 나열해도 미각을 자극하는데, 색이 선명한 그림으로 보면 더하다. 밤에 이 책을 드는 것을 주의하라. 오감 자극. 침샘 자극. 새벽에 이 책을 읽으면서 먹을 것 뭐 없나 냉장고를 열게 될지도 모른다.

 

 

  

   정말 많은 사랑을 받았던 『식객』 시리즈의 완결판인 이 책이, 반갑기도 하지만 아쉽기도 했다. 그러나 스토리적인 면에서도, 이야기 하나하나 취재노트와 어떤 경우에는 레시피까지 공개한 꼼꼼한 구성에 역시나 감탄을 했더랬다. "50년을 향해서 달려가겠다."라는 허영만 화백. 짧지만 감회가 느껴지는 이 첫 페이지에 살짝이 감동하게 된다. 인쇄된 사인이지만, 너무나 행복하다. 계속해서, 함께 해주셨음 좋겠다.


Copyright ⓒ 2014. by Rinny. All Rights Reserved.
출판사에서 지원받은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쓴 서평입니다.
덧글과 공감은 글쓴이에게 큰 힘이 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인의 사물들 - 시인의 마음에 비친 내밀한 이야기들
강정 외 지음, 허정 사진 / 한겨레출판 / 2014년 6월
평점 :
절판


『시인의 사물들』 강정, 권혁웅 외 / 한겨레출판

이야기를 만드는 특별하고 내밀한 사물들

 

 

  

  누구나 그렇듯이 내 장래희망도 어릴 때부터 참 많이 바뀌었다. 학교에서 나눠준 종이에 별 의미 없이 적은 것들도 있었고, 그리 많은 주목을 받지 못한 활동에도 큰 뿌듯함을 얻어 바로 장래희망으로 직결시킨 것들도 있었다. 내가 유난히 더 되짚어 기억하는 것은 지금 내가 읽고 쓰는데 동기 부여를 해주는 (종이에 아무렇지도 않게 썼던) '작가'라는 꿈과 초등학교 때 한 번인가 종이에 썼던 '바이올리니스트'라는 꿈이다. 후자는 아마, 평생 이루지 못하고 사라질 꿈이기 때문에 (물론 굳이 피 나는 노력을 하여 이루고 싶지는 않은 꿈이기 때문에) 왠지 아련하고 잊지 못할 추억이기도 하다.

  악기 하나는 꼭 배우게 했던 엄마들의 노력 탓에, 울며 겨자 먹기로 피아노를 배웠던 기억이 난다. 연습을 안 하고 실수 연발에 다그치던 과외 선생님은 너무나 싫었다. 글쎄, 피아노에 대한 흥미가 별로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남들과는 다른 것을 배우고 싶었다. 남들 다 치는 피아노 말고, 뭔가 특별한 것.

 그 바람이 초등학교 고학년 때쯤 이루어졌던 것 같다. '특기 적성'시간에 내 손에 들어오게 된 싸구려 바이올린. 작은 몸에 맞춰 나온 연습용 바이올린이었지만 내 눈에 그 특이한 악기는 번쩍번쩍 윤이 났다. 말꼬리로 만든 활에 송진을 마구 비벼서 바이올린 줄에 그으면 야릇한 소리가 났다. 손가락에 힘을 주어 줄의 다른 곳을 누르고, 활을 그으면 소리가 달라졌다. 줄에 누른 손가락을 떨어 음을 더욱 멋지게 내는 선생님의 음악과는 다르게, 나와 내 친구들의 소리는 굉장히 밋밋했지만, 간단한 음으로 이루어진 음악들을 - 아마도 미뉴에트일 것을 - 신나게 연주했다. 그리고 어찌 된 이유인지 기억은 잘 안 나지만, 2년도 채 되지 않게 연주하고 그만두게 되었다.

   누구에게나 특별한 추억을 상기시키는 사물들이 있다. 지금은 사라진 시대의 사물들, 그리고 조금씩 변형되어 다른 이름으로 자리 잡게 된 사물들....... 그리고 나의 사물들 중 하나는 아직도 우리 집 창고 속에 줄이 끊어진 채로 있는 '바이올린'이다. 그 사물들을 보고 이야기를 끄집어내며 '옛날 생각'을 하는 건 언제나 정겹다. 심지어 남의 이야기까지도 정겹다. 시인들의 특별하고 내밀한 추억들이 담긴 『시인의 사물들』이 유독 내 마음에 다가온 것은 '시인'들의 멋진 문장들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감성을 투영한 '사물들'이 내게도 정겹게 다가왔기 때문이기도 했다.

  언젠가 그 독특함에 굳이 구매하고 싶어 안달을 했던 '타자기', 그리고 내게도 특별한 물건인 '카메라', 지금은 거의 쓰이지 않는 '카세트테이프' 같은 사물들이 다양한 주제 안에서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담은채 이야기된다. '살다, 삶', '보다, 시선', '열다, 세계', '쌓다, 축적', '원하다, 욕망'의 주제로 묶인 이 사물들이, 내가 항상 부러워 하던 시인의 '우월한' 시선을 만났다. 이 책을 읽고 나의 사물들과 다른 사람들의 사물들을 엮어보고 싶어졌다. 시인들의 독특한 시선으로 능수능란한 글이 나오지는 못하겠지만, 누구에게나 특별한 추억을 담은 것들은 있을 것이기에 나는 묻고 싶다. "당신의 사물들은 무엇인가요?"

 

Copyright ⓒ 2014. by Rinny. All Rights Reserved.
출판사에서 지원받은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쓴 서평입니다.
덧글과 공감은 글쓴이에게 큰 힘이 됩니다.

 

삶의 수다한 흔적과 파편과 그로 인한 미세한 파문들의 반향을 꼼꼼히 관찰하는 일. 그건 결국 내가 대하는 세계와 인간의 심리적, 정신적 점막들을 살펴 헤아리는 일이 된다. 그때 돋보기는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익히 알다시피 돋보기로 빛을 흑점에 모아 열기를 투과시키면 뭔가를 불태울 수도 있다. 나는 어쩌면 태양을 정면으로 받으며 서서 뭔가를 태우고 싶어 하는 건지도 모른다. 살면서 놓쳐버린 것들, 저질렀던 과오들, 화를 돋우고 심신을 절망케 하는 그 모든 허구의 뒷담화 따위를.

돋보기가 돌연 무섭다. (17p, 돋보기 - 강정)

찌는 수직으로 솟고 그 자세 그대로 가라앉는다. 흐트러짐이 없다. 선방 수좌처럼 늘 꼿꼿한 허리를 세우고 있는 찌 위에 꿈과 후회와 웬수 같은 기억들을 올리고 되잖은 양심 같은 것들도 올려본다. 그래도 선명한 빨강의 찌 끝, 찌톱을 수면에 살짝 드러낸 직립의 자세는 무너지는 법이 없다. 때로 그 무겁다는 연애와 돈 따위를 올려도 마찬가지다.밤이 왔다. 찌톱에 케미라이트를 꽂아 불을 밝힌다. 파란 찌불은 수면에 별처럼 떠서 깜빡거린다. 이제 머잖아 어신이 올 것이다. 아니 어쩌면 밤새도록 한 번도 오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쁜 애인을 보듯 찌를 본다. 어, 그런데 어쩐 일인가? 거기 유체 이탈이래도 한 듯 내가, 당신이, 세상을 살아가는 온갖 것들이 서 있는 게 아닌가? 나날이 힘겨워지는 밥벌이며 보살펴야 할 가족이며 의무들을 추처럼 달고서는, 훨훨 어디 다른 곳으로 다른 것이 되어 날아가고 싶은 욕망을 팽팽히 견디면서는, 깊디깊은 제각기의 삶 속에, 줄이 끊어지기 전까지는 결코 무너질 수 없는 직립의 자세로. (48p, 찌 - 전동균)

무엇이든, 마지막 하나만 남았을 때의 불안감을 나는 알고 있다. 빨래를 하지 않아 옷장 속에 한 장만 남아 있는 속옷이라든가, 정류장까지 죽도록 뛰어야 탈 수 있는 한 대 뿐인 막차라든가. 이제야 배가 좀 채워지는구나 싶은데 딱 한 숟갈만 남은 뜨끈한 밥이라든가, 하나만 더 있었더라면 상황이 달라졌을 테고 하나가 더 필요하므로 불만인 무엇들.둘이 남았을 때는 모르다가 하나만 사라졌는데도 보이는 다른 하나의 커다란 공백. 이 '마지막'과 '하나' 사이에 놓인 긴장감이 싫어서, 또 긴장감이 불러오는 상상이 귀찮아서 우리는 늘 미래를 준비한다. 그러나 길을 물어보기 위해 뒤에서 어깨를 두드리는 타인의 차가운 손처럼, 모든 '마지막 하나'는 불현듯 찾아오는 법이다. (84p, 성냥 - 정영효)

바깥에서 밥을 먹으면 식후 커피까지 합하여 거의 만 원 가까운 돈이 빠져나간다. 사랑 때문이 아니라, 돈 때문에 싸는 도시락인가? 농담도 걸어보지만, 도시락에는 농담이 별로 없다. 거기에는 삶의 무게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대체로 슬픔의 맛이다. 도시락에는 만 원에 비할 수 없는 누군가의 손가락이 묻어 있을 것이다. 역시, 열심히 살아야 하는가. 그냥, 도시락처럼 얌전히만 살고 싶은데. 내일도 도시락처럼 담겨 우리는 출근을 하겠지만, 되도록 슬프지는 않기로 한다. 입에 넣어 오래 씹으면 찬 반찬도 결국 고유한 맛을 낸다. 모든 맛에는 슬플 틈이 없다. 도시락은 그런 것이다. (175p, 도시락 - 서효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