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나라 쿠파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수현 옮김 / 민음사 / 2014년 8월
평점 :
절판


『밤의 나라 쿠파』 이사카 고타로 / 민음사

 치밀하고 꼼꼼한 우화 + 신비스러운 판타지

 

 

 

 

 

  ​세상에 가지각색 다양한 소재를 가진 책들이 있는데, 꽤 많은 책들을 접하고 있다고 생각해도, 계속해서 특이하고 개성 있는 책들을 만나게 된다. 물론 어느 정도 비슷한 설정은 있다. 고양이가 주인공이 되어, 사람처럼 말을 하고 자신이 살고 있는 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데, 그 형식은 (아직 읽어보지 못했지만)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떠올리게 하고, 이야기 속의 나라가 소국, 즉 난쟁이들의 나라처럼 보이는 것은 ​『걸리버 여행기』를 떠올리게도 한다. 이전의 작품을 떠올리게 하는 이런 몇 가지 장치가 있었지만, 『밤의 나라 쿠파』는 그것들을 떼어놓고서도 너무나 특별하고 개성 있는 소설이었다.

  주인공은 일단, 아내가 바람을 피우는 것을 알게 되고 방황하고 있는 '나'라는 한 남자인데, 소설 전체를 지배하는 이야기를 풀어놓는 것은 고양이 '톰'이다. 그는 자신이 살고 있던 나라가 '철국'이라는 나라가 침략당해 8년간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그의 나라를 도와달라고 요청한다. 그리고 숲에 살고 있는 '쿠파'라는 삼나무에 대한 이야기도 더한다. '쿠파'는 움직이는 삼나무, 물리쳐야 할 대상이다. 고양이 '톰'의 나라, 그 작은 나라에서는 쿠파를 무찌르기 위해서 병사들을 뽑아서 숲으로 보낸다. 그러나 쿠파를 무찌른 병사들은 몸이 투명해져서 돌아온다는 사실이 그를 놀라게 했다. 죽는 것은 아닌데 투명해진 몸을 이끌고 돌아오는 병사들, 대체 무슨 일일까. 정체불명의 신비한 나라, 강력한 철국의 지배를 받고 있는 고양이 '톰'의 나라와 '쿠파'의 존재는 소설의 판타지를 더욱더 부풀려 놓고, 그 진실은 소설의 끝에 밝혀진다.

 

  그저 동물들의 본성만이 아닌, 동물이 인간의 습성 - 말과 행동, 사회를 이루는 인간의 모습과 흡사한 - 을 가지고 소설 속에 등장했을 때, 대부분 인간 사회를 비판하거나 풍자하는 우화의 특징을 갖게 된다. 『밤의 나라 쿠파』 또한 고양이의 이야기를 듣는 주인공 '인간'이라는 비교적 특별한 전개로 시작하지만, 쿠파의 이야기 속에서 결코 가볍지 만은 않은 우화적 요소들을 담고 있다. 가령 철국이 그보다 작은 나라를 지배하는 것이라든지, 말할 수 있는 쥐가 등장하여 자신을 잡지 말아 달라며 간청하며 계약을 한다든지, 복안 대장이 말한 "시키는 대로 하든가, (...)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든가"라는 부분들이든지, 그들은 인간 사회에서의 권력과 지배, 사람들의 행동들을 떠올리게 한다.

 

 

  『밤의 나라 쿠파』는 신비스럽고 독특한 판타지 소설이기도 하지만, 아주 치밀하고 꼼꼼한 우화이기도 하다. 그 독특함에 쉽사리 페이지를 넘기기는 솔직히 어려웠으나 (진도가 나가지 않아 꽤 고생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정말 빠르고 흥미진진하게 읽은 듯하다.) 마지막까지 궁금증을 놓지 않고 읽은 결과 소설의 비밀을, 작가가 중간중간 놓은 인간에의 비유와 말하고자 하는 바도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었다. 표지의 '고양이'가 뜬금없이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때의 놀라움이 생생하다. 특별하고 신기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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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지원받은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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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가 설명하는 쿠파의 이야기, 쿠파의 병사로 뽑힌 젊은이의 이야기를 듣고 내 머리를 스친 생각은 '그 얘기에 나오는 '나'란 실존 인물일까?' 하는 것이었다. 아직 젊은데도 쿠파의 병사로 뽑히고 싶어 안절부절못하는 '나'가 누구인지 알고 싶었다. 고양이에게 묻자 그는 혀를 내민 채 무심하게 보이기도 하는 그 커다란 눈동자를 포함해 '왜 그렇게 열심이지?'하는 표정을 지었다. 바보 취급을 당한 기분이 들었지만 화를 내 봤자 의미는 없다. "글쎄, 옛날부터 부모가 자식에게 전해 주던 옛날이야기 같은 거라서 정말로 있었던 인간인지 아닌지도 알 수가 없어." (92p)

쥐들은 그때가 되어서야 벌레의 존재를 개달은 눈치였다. "어제 너희가 우리를 잡을 덫을 만들 때 식물을 썼잖아. 그러면서 흙에서 뿌리를 뽑을 때 아마 이 벌레의 집이 부서진 거라고 보는데." 앞에 있는 쥐들이 서로의 얼굴을 보았다. "그게 어쨌다는 말씀입니까."

"억지로 잠을 깬 이 벌레들이 입은 피해를 너희는 신경이나 썼냐?"

눈치가 좋은 건지 '중심의 쥐'는 곧 "아, 마음에 두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에게 있어 쥐가 저희에게 있어 벌레 같은 거라고 하고 싶으신 거군요."

"바로 그거야. 누구든 자기보다 작은 존재에 관해서는 의식이 흐려지기 마련인지도 몰라. 배짱을 부리자는 건 아니지만, 그래서 우리도 너희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았어. 하지만 누구나 자기가 모르는 사이 누군가에게 피해를 끼치며 살고 있는 게 아닐까." (218p)

톰은 내 걸음걸이에 맞춰 위아래로 흔들리고 있다가 "그건 왜, 철국의 애꾸눈 병장이 말한 게 다니까, 아마 위협하려고 거짓말을 한 거겠지." 하고 아까와 똑같이 대답했다. "하지만 만에 하나 사실이라면?" 나는 말했다. "뭐?"

"만에 하나 너희 나라가 그 이야기처럼 철국보다 훨씬 작은 나라였다면?" 심술을 부리려던 건 아니었다. 그저 요즘 나의 심경에서 보면 '자신이 옳다고 믿어 의심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일에 관해서도 의심을 해 봐야 하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았던 것이다. 믿어 마지 않았던 아내가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이 염두에 있었다. 우리부부에게는 아무런 문제도 없다. 그건 내가 그렇게 믿고 있었을 뿐이었다. 더 말하자면 나는 고양이와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지금까지 믿고 살아왔다. 둘 다 이제는 무너진 사실이다. 우리 부부에게는 문제가 있었고 고양이와도 말이 통했다.

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만에 하나." 하고 말했다. "만에 하나 우리 나라가 작다면, 혹시 그렇다면."하고 말헀다. "이야기가 어떻게 되는 거야. 전쟁은 왜 8년이나 간 걸까." "나도 잘 아는 건 아니지만, 하지만 옳다고 믿었던 것도 의심해 볼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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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집에서 즐거운 하루 -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좋아지는 64가지 힌트 라이프스타일 아이콘 Lifestyle Icon 3
이노세 아츠코 지음, 이은정 옮김 / 인디고(글담)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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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집에서 즐거운 하루』 이노세 아츠코 / 인디고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좋아지는 힌트

 

 

 

 집에서 뒹굴뒹굴, 하는 일 없이 '집'에 머물러 있다는 건 심심할 수도 있지만 생각해보면 꽤 편안한 일입니다. 저는 집에 있는 시간을 정말 좋아할 정도로 '집순이'입니다. 물론 책 한 권만 있다면 몇 시간 혼자 보내기가 그리 어렵지 않죠. 하지만 집에 있다는 것을 엄청 지루하게 느끼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집은 유일하게 우리가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속에 숨겨두었던 마음과 걸리적 거리는 것들을 모두 풀어놓을 수 있는 공간입니다. 이 공간에서 편안함을 느끼지 않을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을 못 견뎌하기에 저자는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좋아지는 64가지 힌트"를 제시합니다.

 

 

 

 

 

  힌트의 기본이 되는 것은 집을 "언제나 머물고 싶은 공간"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로부터 저자인 '이노세 아츠코'만의 정리 방법, 디저트나 음식 만들기, 손님을 접대하는 소소한 예절, 마음을 편안하게 만드는 캔들 등의 소품들을 소개하게 됩니다. 몇 가지 기분 좋은 '시간 보내기' 방법을 예로 들어보자면, "불필요한 공간은 과감하게 없애기", "마음의 평화를 되찾아 주는 글쓰기", "소품을 만들거나 리폼하기" 등이 있습니다. 집 전체와 구조에 대한 사진이 들어있지는 않지만, 이렇게 소소한 방법들과 사진들을 보면, 아츠코의 집이 참 아늑하고 편안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집에서 어떤 일을 해야 행복한지는 물론 사람마다 다를 겁니다. 역시나 "얼마나 행복한지"에 따라 그 방법의 효과가 달라지겠지요. 책 속에서 드러난 아츠코의 마음은, 확실히 편안하고 안정적이고, 기분이 좋아 보입니다. 사람 간의 대화 방법들이 소개되어 있는 페이지를 보다 보면, 굉장히 신중하고 따뜻한 사람이란 것도 알 것 같고요. 『오늘도 집에서 즐거운 하루』, 이 소소한 즐거움들을, 나중에 저만의 집 (공간)을 갖게 될 때 적용해보고 싶어집니다.

 

 

 

 

- 뒤쪽에서 아츠코의 레시피 몇가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이 '키슈' 요리는 꼭 한번 해먹고 싶어지는 비주얼이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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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에 깔끔하도록 물건은 안 보이는 곳에 수납합시다.'

저는 이 슬로건을 따르다 실패한 적이 있습니다. 일단 물건이 문 안쪽으로 들어가면 아예 존재 자체를 잊어버리기 때문이지요. 확실히 물건이 보이지 않으면 깔끔하긴 합니다. 하지만 문 안쪽에는 '어쨌든 넣고 보자'라는 생각으로 쑤셔 넣은 물건들이 뒤엉켜서 어디에 뭐가 있는지 파악할 수조차 없는 난감한 상태가 되어버립니다. 갑자기 무언가가 필요해서 꺼내려고 해도 어디에 들어 있는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도 않고요. (18p)

친한 친구는 '핑크 방이 좋아.'라고 솔직하게 말해 주니까 "그럼, 거기서 먹자. 미치코, 차 갖다 줄래?" 하고 부탁합니다. 차를 마시는 곳이나 밥을 먹는 곳이 정해져 있지 않아서 어디든 거실이 될 수 있어요. 방문한 사람에게 공간 선택을 맡기면 그 사람의 심리 상태를 알 수 있어서 재미있어요. 저 역시 점심을 먹을 때마다 그날 그 시간의 기분에 따라 장소를 바꾸고 있습니다. (90p)

대화를 하다 보면 "이렇게 하는 것이 좋다."라고 충고를 듣는 경우가 있지요. 하지만 그 뒤에 숨어 잇는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려는 마음을 엿보게 되면 그 충고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고 싶어집니다. 사람은 왜 상대방이 나와 같다는 것에 안심하고 자신과 동일화시키려고 하는 걸까요. 남의 의견을 존중해서 듣는 것도 좋지만 사람에게는 각자의 가치관이 있습니다.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지 않는 관계가 가장 좋은 관계라고 생각해요. 이러한 관계는 가족 사이에서도 유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3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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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불량일기 - 고군분투 사고 치며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대학에서 살아남기
에릭 케스터 지음, 차백만 옮김 / 미래의창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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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불량일기』 에릭 케스터 / 미래의 창

하버드 부적응자의 시트콤 같은 이야기

 
  뭘해도 요리조리 약삭빠르게 잘 빠져나가는 놈이 있는가 하면, 이상하게 운은 항상 지지리도 안 좋아서 남들보다 더 곤란한 상황을 겪고 좌충우돌하는 놈이 있습니다. 마치 코미디 시트콤의 한 장면을 보는 것처럼, 유독 그 사람에게 독특하고 기상천외한 일이 생기죠. 이 책을 보기 전엔 '바로 나다' 싶었는데, 『하버드 불량일기』의 주인공은 더하답니다. 평소에 하버드 학생'이라고 하면 모두 모범생 스타일에 반듯하고 깔끔한 사람들 뿐일 거라는 생각을 하진 않았지만 이 정도의 학생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세계에서 내로라할 인재들이 모이는 만큼 바보같이 보이는 천재도, 날티나는 사람들도 모두 볼 수 있을 거라고 상상했죠. 하지만 이 책의 주인공은 그 상상을 강하게 깨 부십니다. 첫날부터 팬티를 입고 하버드 광장을 가로지르는가 하면, 교수님이 스크린에 띄운 중간고사 시험 성적 그래프에선 혼자 바닥을 치기도 하고, 기숙사에 침투한 노숙자로 오인받아 전교생 앞에서 경찰에 소환되기도 합니다.

 

 

  『하버드 불량일기』는 그가 하버드에서 대학 생활을 한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입니다. 얼굴도 보통, 공부는 하버드생들 중에서 하위권인 '에릭 케스터'가 잘하는 게 있다면 바로 미식축구 (그는 체대생 입니다)와 '유머'입니다. 입학 첫날부터 사고를 치는 책의 앞장면을 볼 때부터, 그가 남다른 '똘끼'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지요. 그리고 미식축구 팀에 속해있는 그는 대회 준비하랴, 성적 따라가랴, 나름의 부담이 많습니다. 그는 하루하루 하버드에서 자신의 방법으로 생존하기 위해 기를 씁니다. 그리고 책 속에는 우리가 상상하지 못할 하버드의 모습들이 담겨있기도 합니다. 컨닝은 기본인 학생들, 하버드의 3대 기행 (존 하버드 동상에 오줌싸기 등), 상류층만 들어갈 수 있는 클럽, 가끔 열리는 파티....... 저자인 에릭 케스터는 이런 하버드의 모습을 우스꽝스럽고 신랄하게 내보이며 이야기합니다.

 

 

  책은 '하버드'의 실상을 낱낱이 고백하는 느낌이 아니라, 제목 그대로 우스꽝스러운 '일기'를 보는 느낌입니다. 저자인 '에릭 케스터'의 똘끼가 글에서도 묻어 나와 읽는 내내 키득거리며 웃게 하기도 하고요. 분명 에세이 장르인데, 소설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생각보다 꽤 많은 분량에도, 점점 페이지가 조금 남아 가는 게 아쉬울 정도로 재밌더군요. 남다른 비밀을 가지고 있는 룸메이트, 15살의 어린 천재 대학생, 짝사랑 그녀 같은 다양한 캐릭터도 이 글에 매력을 더하는 듯싶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요소를 빼놓고서, 이 책이 재밌고 유쾌한 건 저자의 글솜씨 때문인 것 같아요. (미국식 농담이 가끔 이해가 안 가는 부분도 있고, 어느 정도 과장된 부분도 있다지만, 이렇게 재밌게 쓰는 것도 능력인 것 같습니다.)  영화나 드라마로 나오면 정말 많은 사람을 웃게 만들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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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시 시험지로 시선을 돌리는 순간, 갑자기 학생들의 낄낄대는 소리가 강의실을 가득 메웠다. 학생들이 웃는 건 플름 교수 때문이 아니라, 화면에 비춰진 그래프 때문이었다. 플름 교수는 프로젝터의 배율을 확 줄였고, 그러자 그래프도 크게 축소됐다. 나는 실눈을 뜨고 그래프를 주시했다. 그러자 플름 교수가 다시 그래프를 확대해서 이번에는 그래프의 0점에서 50점에 해당하는 부분을 비췄다. 그래프에는 달랑 점 하나가 박혀 있었다. 마치 무능력의 바다를 떠도는 난파선처럼 '38점' 이라고 적힌 점 하나가 외로이 표류하고 있었다. "이런, 썅." 나도 모르게 욕이 나왔다. (38p)

사실 하버드 학생들은 극성스런 부모를 둔 경우가 많다. 상당수는 오래전부터 인생의 목표가 오로지 하버드 대학에 입학하는 것이었고, 그에 맞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심지어 몇몇 학생들은 유아기 때부터 하버드 입학을 위한 교육을 받아왔다. 부모는 아기가 손에 쥐고 놀던 장난감을 빼앗고 대신 그 손에 바이올린을 쥐어줬다. 아기는 '미래의 하버드생'이라고 적힌 턱받이를 하고 유아용 의자에 앉아 주기율표를 노려봐야 했다. 아빠는 침을 흘리는 아기에게 브로콜리를 먹어야지만 저녁에 루빅 큐브를 가지고 놀게 해주겠다고 말하기 일쑤였다. 그렇게 수년 동안 심화 학습 과정이 이어졌고, 그 기간 동안 아이는 '여름방학 때 캠핑을 가느니 그 시간에 차라리 여름학교에서 유기화학을 배우라.'는 가훈을 철저하게 지켰다.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는 이미 정상적인 10대의 삶에 대한 희망을 버린 뒤였다. 이들이 고등학교 때 접했던 섹스라고는 생물 수업 시간에 관찰한 세균 간의 짝짓기가 전부였다. (47p)

모든 하버드 기숙사 입구에는 학생증을 인식시켜야만 문이 열리는 전자자물쇠가 설치돼 있다. 전자자물쇠는 대학교에서 흔히 쓰는 보안장치였고, 특히나 하버드에서는 아주 중요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하버드는 다양한 사람들을 비롯해 심지어 정신 나간 사람들도 왕래하는 도심 한복판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하버드 광장은 노숙자들로 넘쳐났다. 여기에 하버드 공부벌레들까지 더해지면 언제든 불의의 사고가 터질 수 있었다. 한마디로 하버드 광장은 나무 밑에서 천재가 형이상학 교재를 탐독하는 동안에 약간 떨어진 곳에서는 부랑자가 풀숲에서 똥을 누는, 매우 특수한 공간이다. 하버드 학생들과 노숙자들은 서로 다른 것 같으면서 동시에 비슷했다. 학생들은 노숙자가 다가와 돈을 구걸하면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한 시간 후에는 그 자신이 교수를 찾아가 리포트 점수를 더 달라고 구걸하는 처지가 된다. 게다가 하버드 학생들은 계속해서 혼잣말로 뭔가를 주절대고, 몸에서 악취가 풍긴다는 점에서 노숙자와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165p)

하버드 학생들이 밤에 존 하버드 동상을 찾는 이유는 당연히 하버드의 3대 기행 중 첫번째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한번 찾은 학생이 또 다시 존 하버드를 찾는 걸 보면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그저 오줌을 싸러 오는 녀석도 많은 것 같다. 그 이유는 하버드를 상징하는 불멸의 아이콘에게 오줌을 갈기는 행위가 왠지 모를 쾌감을 주기 때문이 아닐까? 한마디로 존 하버드에게 오줌을 싸는 행위는 하버드 학생들에게 일종의 치유 과정이었다. (29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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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테라피 마음을 치유하는 색칠놀이 아트테라피 컬러링북 시리즈 1
마리 페론 지음, 백낙선 옮김 / 북샾일공칠(book#107)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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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트 테라피』 마리 페론 / 북샵일공칠

 마음을 치유하는 색칠놀이

 

 

  어른이 되고 나서도 아이들 색칠놀이 같은 것들을 사고 싶다- 하는 생각이 든 적이 있나요? 어렸을 때 색칠놀이를 싫어하는 여자아이들은 드물었을 거예요. 저도 색칠놀이를 좋아했고, 미술을 잘 하는 건 아니지만 색깔을 칠해서 예쁜 그림을 만드는 건 참 좋아했던 기억이 나요. 어느 정도 나이가 먹고 나서 서점, 혹은 문구점에 들렀을 때, 아이들 색칠공부 연습장을 보고 "하고 싶다."라고 생각한 적도 있어요. 물론 그림을 그려서 직접 색칠을 하고, 작품을 만들어내는 재미도 있겠지만, 미술에 관심도 없고 그저 끄적이면서 낙서 비슷한 색칠, 그림을 즐겨 보고 싶을 때가 있거든요.

 

 

  『아트 테라피』. 어디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이 선택하는 색깔에 따라 어느 정도 감정을 파악할 수 있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있어요. 우리는 항상 색깔과 함께 하죠. 어디에나 색깔이 있고, 하루에도 수많은 (이름을 표현하기조차 힘들 정도로 다양한) 색깔을 보고 지나칩니다. 그런 색깔들을 보면서 우리는 서로 다른 느낌들을 받고요. 사람마다 각 색들을 보는 감정은 다르겠지만, 전 노란색에 파릇파릇하고 상쾌한 기분을 느끼고, 연보라색에 차분함을 느낍니다. 강렬한 색채가 끌릴 때가 있고 파스텔 톤의 색채가 끌릴 때도 있고요. 그렇다면, 흰 종이 안에 이 다양한 감정과 색채를 뿌려내 본다면요?

 

 

 

  인물과 사물, 두 파트로 나뉘어서 마음에 드는 그림을 선택하고, 색칠을 해볼 수 있어요. 저는 집에 있는 마카와 색연필을 사용했어요. 일단은 그림 자체가 참 예쁘고 여자들이 한 번쯤은 따라 그려보고 싶어 하는 그림들이에요. 조금 어렸을 땐, 이런 여자 그림들을 낙서 삼아 울퉁불퉁 그리곤 했는데, 그때의 추억이 새록새록 생각나네요. 미술에는 관심도 없고, 솜씨도 없지만, 바쁜 와중에 "어떤 색깔을 쓸까" 고민하면서 칠하다 보면 참 차분해지기도 하고, 온갖 잡생각들이 정리되는 느낌이에요.

 

 

 

 

   이 책 보고, 저희 언니도 참 신나서 그림들을 색칠하고 놀았어요. 저보다 솜씨가 좋고, 색도 잘 쓰는 언니의 그림은 독특하니 예뻐요. (저도 마카의 생생한 느낌이 좋은데, 이거 은근히 색칠하기 어려워요.) 언니도 꽤 오랫동안 여러가지 그림을, 아무런 말없이 기분 좋게 그렸어요.

 

 

 

 

 

좀 더 다양한 색 도구가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있는 걸로 마구 칠한 마카롱.... ㅋㅋ

그래도 칠한 동안 즐거웠다면 괜찮은거죠?!ㅋㅋ

 

 

 

 

 

  실제로 이렇게 색칠한 그림을 놓고, 심리를 파악해보았으면 더 좋았을 듯싶기도 했지만, 뒤쪽에 나온 다양한 사람들의 색채와 상담 내용을 살펴보니 어느 정도 감이 오는 것 같기도 하더라고요. (그래도 쬐금 아쉬움.) 책은 8절지 보다 조금 작고, A4지보다는 조금 큰 크기라 색칠하며 놀기에도 편하게 되어있어요. 한 장 한 장 그림이 나올 때마다 뒤쪽에는 앞에 있는 그림이 조그맣게 나와있고 따라 그려볼 수 있는 공간을 준 것 같더라고요. 음, 제대로 따라 그려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언젠가 여유 있는 시간을 갖고 그림도 그려보고 싶어요.

  마음을 정화하는 '그림 그리기', 아마도 그림을 잘 그릴 수 있는 사람만 가능하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겠지만, 이 책은 누구나 그 설렘과 힐링을 느껴볼 수 있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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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눈물 위를 달린다
팀 보울러 지음, 양혜진 옮김 / 놀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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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눈물 위를 달린다』 팀 보울러 / 놀

 가족의 운명을 위해 위험천만한 거리를 달리다, 잘 읽히는 성장소설

 

 

 
 
  청소년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성장소설에는 비슷비슷한 공식이 있다. 무언가 불완전한 생활을 하거나 가족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다. 특이한 생각이나 행동을 하기도 한다. 『소년은 눈물 위를 달린다』의 '지니'도 이 공식에 속한다. 엄마는 다른 남자를 집에 데리고 오고, 아빠는 술에 취해 폭력을 행사한다. 집세를 몇달이나 밀려 집주인이 찾아오기도 한다. 학교에선 '스핑크'라는 아이가 이유 없이 괴롭힌다. 그런 그가 어두운 밤거리를 달리기 시작한다. 정체불명의 누군가의 협박을 받고, 가족의 목숨을 담보로 위험천만한 거리를 전속력으로 달린다. 허리춤엔 뭔가 가득 들은 주머니를 찬 채로, 마치 누군가에게 쫓기는 것처럼. 그에게 집도, 가족도 학교도 아무런 안정감을 주지는 않지만, 그가 밤거리를 달리는 이유는 '가족'을 위해서다. 가족의 운명을 짊어지고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도 모른 채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달리는 한 소년. 군소리 없이 절박하게 달리는 소년의 모습에 답답함과 안타까움이 터진다. 어린 소년이 왜 위험한 밤거리를 달려야만 했을까?
 
  『소년은 눈물 위를 달린다』는 정말 잘 읽히는 소설이다. 소년의 절박한 뜀박질을 빠른 호흡으로 뒤따라가면서, 용기 있게 달리는 소년의 모습을 보면서 독자 또한 그가 성장하고 결국엔 행복으로 치유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게 된다. 따뜻한 성장소설의 끝에는 항상 행복이 있고 깨달음이 있고, 화해가 있으니 소년이 더 이상 눈물 위를 달리지 않기를, 기쁨 속에 뛸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소년은 눈물 위를 달린다』에서는 가슴 저릿한 감동이 있지는 않지만, 툭툭 던지는 말속에 미지근한 다정함이 있다. "그 개자식을 왜 사랑하는지 모르겠다."라고 말하는 지니. 한때는 싸우고 아등바등 하는 가족도, 이 '가족'이라는 이름 안에서 서로 사랑할 수밖에 없는 필연이 있는 것이다. 어딘가 비정상적인 '지니'의 부모님도, 아들을 미워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오히려, 사랑하지만 가끔은 실수를 하는 우리네 가족들의 모습과 참 비슷하다.
   그러나 소설의 방향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다는 함정이 있어, 약간은 밋밋함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단순히 재미와 소년의 따뜻한 성장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읽어봐도 좋겠다.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은 『리버보이』를 쓴 작가이니, 그의 신작을 기대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을 테니까. 마지막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제목이다. 원제가 『Night Runner』, 약간은 밋밋해 보이는 제목이 『소년은 눈물 위를 달린다』라는 세련된 제목이 되었다. 멋진 번역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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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지원받은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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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색이 짙었어요. 번드르르하게 차려입었고요. 깔끔히 면도한 얼굴에, 미끈해 보이는 남자예요. 서른 살쯤 돼 보였고, 번쩍거리는 코트를 입었어요. 분명히......." 웬 손이 나타나 딸각 전화를 끊는다. 겁에 질려 돌아보자 내가 방금 묘사한 남자가 나를 쳐다보고 있다. 그는 전화박스 문을 열고는 내가 나가지 못하게 떡 버티고 서 있다. 그는 잠시 재미있다는 듯이 나를 싸늘하게 바라보더니, 침착하게 내 손에서 수화기를 빼내 제자리에 걸어 놓는다. 손수건이 펄럭이며 바닥에 떨어지는 것이 느껴진다.

"내 코트가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네." 그가 조용히 말한다.

나는 그를 쏘아보며 당당하게 행동하려고 애쓴다. "번쩍거린다고 했지, 마음에 든다는 말은 안 했는데요."

그의 입에 미소가 떠오른다. 하지만 눈은 그대로다. 계속해서 차들이 으르렁거리며 지나간다. 그가 옆으로 몇 걸음 옮기자 길가에 세워 둔 차가 한 대 보인다. 크고 번쩍번쩍한 차다. 앞자리에는 남자 둘이 탔고, 뒷자리의 인도 쪽 차 문이 열려 있다. 플래시 코트가 고갯짓으로 문을 가리키며 말한다. "타." (21p)

아빠가 옷을 입은 채로 침대에 널브러져 있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맥주 캔을 내려놓는 소리가 나지 않았으니 침대는 물론 몸에도 엎질렀을 것이다. 처음 있는 일도 아니다. 한번은 몸에 온통 토한 채 그대로 잠이 든 적도 있었다. 나는 아빠가 괜찮은지 확인하러 가지 않을 거다. 지금 당장은 그 꼴을 보아낼 자신이 없다. 대체 내가 왜 저 개자식을 사랑하나 모르겠다. 함께 보낸 좋은 날들 때문인 것 같은데, 요즘은 그런 날도 거의 없다. 엄마도 똑같다.

나는 현관문을 열고 집 밖을 주시한다. 아무도 없다. 애벗가는 조용하다. 어쨌든 이 근방은 늘 그렇듯 조용하다. 이웃들은 없느니만 못하다. 이런 때조차, 아니, 이런 때는 특히. 초인종을 누르는 사람도, 괜찮은지 물으러 오는 사람도 없었다. 늘 이런 식이다. 우리 엄마가 총에 맞았는데 아무도 상관하지 않는다. 이웃들은 그저 커튼을 닫고, 문을 걸어 잠그고, 오코로 가족이 자기네 문제를 알아서 처리하게 내버려 둔다. 자신들과는 상관없는 일이니까.

"아암." 나는 그들을 향해 중얼거린다. "댁들하고는 아무 상관없고말고." (69p)

"우리 그렇게 할 수 있어. 산뜻하게 새 출발을 할 수 있다고."

그런 말이 낯설다. 아빠가 그런 말을 한 적이 한번도 없어서일 것이다. 아니, 어쩌면 내가 지금 환청을 듣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미 내 머릿속에서는 온갖 장면이 펼쳐지기 시작했으니까 말이다. 들판과 언덕들, 길고 고즈넉한 밤, 호수에 비친 달....... '산뜻하게 새 출발'이라? 안 될 게 뭔가? 엄마는 이미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활짝 미소까지 지으며, 하지만 나는 눈을 감는다. 그리고 꿈을 꾼다. (28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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