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금이 있던 자리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19
신경숙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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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금이 있던 자리』 신경숙 / 문학과지성사

추억이 머물던 자리에서

 

 

 

 

   베스트 셀러 혹은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책들에 대한 왠지 모를 기피에 대해서 언급한 적이 있다. 그럴 경우 나는 작가의 전작부터 읽곤 하는데, 신경숙 작가의 경우에는 『​외딴방』이 내 마음에 큰 자국을 남긴 책이 되었다. 그리고 그보다 오래전에 나온 『풍금이 있던 자리』는 나보다 책을 잘 아시는 분들께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라는 이야기에, 작가의 책 중 두 번째로 읽기로 결심했다. 『외딴방』​의 이야기 자체가 한국 사람으로서는 감정이 갈 수밖에 없는 것이었고 다소 충격적이라고 할 수도 있는 것이었지만, 이야기의 흐름에서 집중하게 되는 건 작가가 써 내려가는 한 줄, 한 줄이었다. 자전적 소설이라고도 이야기하는 소설이기 때문에, 머릿속에 있는 기억을 하나하나 끄집어 내는 듯 조용히 속삭이는 그녀의 글들은 여태껏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 좋아하는 작가의 목록, 그 빈칸을 채우기에 충분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말함으로써 더욱 효과적으로 그려냈을 듯한 『외딴방』의 수채화 같은 작품과 다르게, 아마도 『풍금이 있던 자리』는 '자전적 소설'이라고 어디서나 드러낸 곳이 없었으나, 그 추억을 살려내고 이야기하는 모습이 꼭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보는 느낌이어서 왠지 모를 묘한 감정이 생겨나는 것이 참 이상한 책이었다. 여러 개의 단편 소설이 수록된 책이었지만, 한편으로 된 일기장을 훔쳐보는 느낌이었다.

  표제작인  『풍금이 있던 자리』 ​와 『직녀들』은 그 구성과 표현방식에 있어서도 내게는 특별했던 소설이었고, 그 또다른 이유는 전혀 아름답지만은 않은, 혹은 별 이야기가 나올 것 같지 않은 소재를 가지고서도 너무나 아름다운 이야기로 엮어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저쪽 언덕』 속에서는 다소 우스꽝스러울 수 있을 '개의 시선'으로 보는 추억 속 이야기가 담겨 있었고, 『멀리, 끝없는 길 위에』서는 어느샌가 지나간 한순간, 그리고 언젠가 지나갈 한순간을 살아가는 꿈같은 추억이 아련했다. 또한 그 속에는 중간중간에 '글'에 대한 사유가 섞여있어서 "살아가면서 언젠가 이렇게나 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마저 들어서, 그 소중하게 적힌 작가의 글에 대한 애정은 더욱더 샘솟았다.

  처음에는 어색했던 쉼표와 말 줄임표가 계속되는 작가의 문장이​었지만, 이제는 그 조용하고 고요한 글이 마치 목소리처럼 '들리고 있다'라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강한 인상을 받은 작가의 전작들처럼 조금씩 세월이 흘러 꺼내진 책들도 비슷한 느낌을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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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을 땅바닥에 대고 엎드려 있었어요. 오늘 이 치받침은 이렇게 삭혀질 수 잇는 것이 아님을 알지만, 달리 삭힐 방법이 제겐 없습니다. 당신은 정말 떠날 것인가? 한 시간 전부터 저는 시계를 들여다보고 여기 있었습니다. 시침이 오후 3시를 막 지나갈 때, 그토록 간절히 붙잡고 있던 당신과의 끈을 놓아버린 셈입니다. 제가 놓아버린 한 끝은 지금 여기에서, 당신이 잡고 있는 거기 한 끝을 향해 날아가고 있는 중인가요? 당신은 시계를 들여다보며 거기 서계신가요? (40p, 풍금이 있던 자리)

지나간다는 것,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고국에서의 무기력한 날들을 그는 지나간다는 것에 기대어 보냈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 80마일의 속도로 스쳐 지나가는 저 모래 풍경들과 같이 다 지나갈 것이다. 첫사랑의 여자가 지나갔듯이, 청춘이 멍에 같은 가난한 고향을 둔 죄로 동생을 뒷바라지하는 사이 지나갔듯이, 그 멍에를 지나서 고생했던 3년이 고국의 불타오른 부동산 바람에 공허히 지나갔듯이, 앞날도 그렇게 지나가리라,고 생각하니 못 견딜 일이 없었다. 그의 삶에서 열정이 환희가 빠져나가니까 울분도 광포해질 일도 같이 빠져나갔다. 다가와서 지나가는 것들에 대해 침묵하기로 했으므로 그것들이 어쩌다가 던져주고 가는 소소한 기쁨에 수다를 떨 권리도 그에겐 없었다. 인생은 나를 그렇게 대하기로 한 것이다, (93p, 멀어지는 산)

...... 소설은, 나를 바라보지 않는다, 돌보지 않는다. 소설의 눈을 들여다보면, 그 밤의 내가 보인다, 볏짚 속에서 칠흑의 하늘을 향해 눈을 뜨고 있는 짐승의 눈, 나의 눈. 거기, 그의 눈 속에 추수하는 벌판이 있다, 내가 있다, 농부의 아낙, 나의 어머니, 그의 딸. 청결하게 쏟아지는 햇빛, 아, 그의 눈은 영화관의 화면, 멍석을 깔아놓고 벼를 한줌씩 잡고 홀태질을 하는 여인들을 그의 눈은 펼쳐놓는다, 얼굴로 흘러내리는 기름진 땀방울까지. 홀태 밑으로 소복소복 쌓여가는 누런 낟알들은 당그래로 다시 긁어 모아져 가마니에 담겨 한쪽에 쌓여간다,

그의 눈 속에서, 낟알이 떨어진 지푸라기들도 쌓여쌓여 다발로 묶여져 산이 되어간다, 그의 눈 속에서. 방 빗자루를 만들 양으로 홀태에 감긴 결 고운 속 지푸라기들을 한줌씩 들고 있는 아이들이 뛰어다닌다, 여전히 그의 눈 속에서. 들판에 넘치는 햇빛이 어린 나를 졸립게 한다. 그의 눈 속에서, 볏짚더미 어느 속에 들어가 나는 무릎에 얼굴을 묻고 사람들 속에 섞여 홀태질을 하는 나의 집, 어머니를 바라본다, 그의 눈 속에서. 이마에 땀방울, 그 반들거림, 밀짚모자 위의 노란 수건, 털어진 낟알들, 누렇게 빛나는 햇빛, 졸리웠던 게 아니라, 숨바꼭질을 했던 건 아닐까, 청명한 하늘이, 먼산의 능선이, 그의 눈 속의 나의 시선 속에서, 멀어지고 가까워지고 정지. 여기에서 그의 눈 속의 나, 움직임이 느려진다. (233p, 멀리, 끝없는 길 위에)

삶은 적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아가기 위해서 쓰고 있는 것 같다니까.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그녀 얘길 써야 하지? 가만히 살다 간 그녀에게 무덤을 만들어줘보겠다, 이것이 내 생각인데 그대로의 그녀를 쓰지 못하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나는 나도 모르게 상황을 독특하게 만들고 때론 부풀리고 심지어는 극단으로 몰아가고 있으니. 그런 작위로 어떻게 그녀 속의 우연, 기미, 어찌할 수 없음, 이런 것들을 내가 짚어내느냐고? 놓쳐버린 것들, 그녀가 느꼈던 기미들. 내가 써보고 싶은 건 그것들인데 그런데 그런 것을 다 놓치고 지금 나는 뭘 적고 있는 것인가? 적어보려고 애쓰면서 사는 삶은 도대체 무엇인가? 도대체 어떤 기준을 가져야 하는가? 내가 물어보는 거지. 이번에는 그녀의 기저음들을 그 시간의 결에 스며들었던 햇살이나 빗방울들을 놓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내 마음은 대답을 못 해. 이번에도 어느 부분은 과장될 것이고 어느 부분은 소멸될 것이야. 있는 그대로 쓰겠다고 해놓고, 그렇겠다고 해놓고는. (250, 멀리, 끝없는 길 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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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런지 돈을 끌어당기는 여자의 39가지 습관
와타나베 가오루 지음, 김윤수 옮김 / 다산북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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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런지 돈을 끌어당기는 여자의 39가지 습관』 와타나베 가오루 / 다산북스

 돈에게 사랑받는 '마음 재테크', 과연?

 

 

 

 

  '돈을 끌어당기는 습관'이라 하니, 개인적인 재테크에 도움이 되는 책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읽어보니 이 책은 내가 지금까지 접해보지 못한 '돈에 관한 자기계발서' 느낌입니다. '돈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돈을 끌어당길 수 있는'이라는 수식어가 붙었지만 역시 이 책의 초점은 '마음가짐'에 맞춰져 있습니다.

 돈의 이미지는 우리에게 좋지만은 않습니다. 돈이란 더럽다는 생각이 은연중에 있고 부자 혹은 돈을 밝히는 사람들을 보면 불쾌한 감정마저 듭니다. 하지만 '돈'이라는 게 이 세상에서 꼭 사라져야만 하는 건 아니겠지요. 돈이 없이 살아갈 수 있다고 말은 하지만, 정말로 그럴 수 있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겁니다.  저자는 '돈'에 대한 우리의 인식부터 꼬집습니다. 겉으로는 안 그런척하지만 돈에 목매며 살아가는 인식을 고쳐야 한다고요. 무의식중에 뱉는 '돈'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은 결국 정말로 우리로부터 돈이 멀어지게 만들고, 결국에는 지금보다 더 돈을 갈구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된다고 합니다. 돈을 좋아한다고 해서 죄책감을 가질 필요도 없습니다. 돈은 우리가 행복을 얻기 위해서 무언가에 보상하는 것이고, 그렇게 얻은 소소한 행복도 만족하며 살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책 속에서는 여러 가지 방법들을 소개합니다. '꺼내야 다시 들어간다'라는 법칙을 따르고, 쓸 곳과 안 쓸 곳을 스스로 구분하고, 돈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다양한 방법들이 나와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한다면, '돈'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을 없애고, 계획적이고 적당히 쓰는 반면에 쓸 때는 행복감을 느끼면서 쓰라는 것이지요. 결국에 이 책은 돈이 술술 들어오게 만드는 책이 아니라, 돈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마음 재테크'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의미는 참 좋은 책입니다. 돈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바꾸는 것에 대해서는 굉장히 새로운 마음으로 읽었지만,  제시한 다양한 방법들은 식상한 느낌이 드는 것도 있고 『시크릿』(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과 같은 느낌의 조언도 있어 조금 거부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읽는다면 좋겠습니다. 이 책을 읽고 돈이 왕창 들어온다는 상상보다는, 돈에 대한 집착과 조급함을 버리고 돈으로 인한 소소한 행복을 찾는 데에 초점을 맞추어 읽는다면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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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법칙은 사람이 돈을 어떻게 인식하는지와 관계가 있다. 다시 말해, 돈에 대해 어떠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풍족해지느냐 마느냐가 결정된다. 물론 인간성의 좋고 나쁨, 성숙도에 따라서 행복의 여부는 달라지긴 하지만, 그건 다른 문제이기 때문에 지금은 제외하는 것이 좋겠다. 경제적으로 풍족함을 이룬 사람들은 돈을 아주 많이 좋아한다. `정말?` 혹은 `과연?`하고 반신반의할지도 모르겠지만, 실은 `아주 많이 좋아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몇몇은 위화감을 느낄 수도 있다. 그리고 여전히 `어떻게 대놓고 돈이 좋다고 하겠어` `돈을 너무 좋아하면 배금주의자 같아......`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15p)

갖고 싶은 것에 지나치게 집착하면 행복해지지도 못하고 돈도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나 감사하는 마음은 실제로 `있는 것`, `갖고 있는 것`을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그 풍족한 마음은 더 많은 풍족함을 끌어당긴다. 점점 더 풍족해질 수 있다.

실제로 감사하는 마음이 많은 살마들은 가진 것을 베푸는 마음도 커서 돈이나 물질이 부족해지는 일이 없다. 늘 여러 곳에서 적당한 타이밍에 풍족하게 제공받고, 또 그걸 다른 사람들에게 돌려준다.

만약 자신에게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으면, 내어주기가 꺼려져서 주변 사람들에게 베푸는 것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늘 자신에게는 모든 것이 `있다`, `갖고 있다`고 생각하면 주변에도 아낌없이 줄 수 있다. 그래서 오히려 여러 가지가 풍족하게 주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42p)

사람들은 대개 스스로를 낮추며 "아니, 실은 이거 엄청 싼 거야!"라고 말하는 경향이 있는데, 왜 굳이 `싸구려 자랑`을 하는가? 그건 나 자신에게도, 주변 사람들에게도 "나는 싼 옷을 입고 있어"라고 인풋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주변에서 좋아 보인다고, 비싸 보인다고 봐준다면 충분히 좋은 것이다. 칭찬은 칭찬대로 받아들여도 누가 뭐라고 하지 않는다. 또 그렇게 하는 게 `빗장`을 제거하는 습관이 되기도 한다. (9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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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세기
캐런 톰슨 워커 지음, 정회성 옮김 / 민음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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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기적의 세기』 캐런 톰슨 워커 / 민음사

 사소한 기적을 선물해준 시간

 

 

 

 

 

  '기적'이라고 하면 대개 어마어마한 것들을 떠올리게 된다. 인생에 큰 변화를 가져오거나, 삶의 방향이 완전히 바뀌었거나 무언가 기이한 일들이 일어났을 때 우리는 '기적'이라 말한다. 사소한 뭔가에 '기적'이란 말을 붙이지는 않는다. 그저 그렇게 지내오던 일상에 뭔가 좋은 일이 생겼다고 해서 기적이라고 말하지도 않고, 갑자기 꽁돈이 들어왔다 하더라도 기적이라 말하지 않는다. 기적은 우리에게 항상 멀리 있는 것이었다. 뭔가 신비스럽고 상식적으로 떠올리지 못할 상황에서 일어날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 책의 제목에 '기적'이 있다.  『기적의 세기』 (The Age of Miracle), 놀라운 기적으로 가득 찬 시간을 가리키고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을 지배하고 있는건, 새롭게 변화한 지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재앙'이다. 지구의 자전 속도가 느려진 '슬로잉 현상'이 하루의 시간을 거의 두 배 가까이로 늘려가고, 우리 곁에서 똑딱이고 있는 시계 초점과는 정반대의 시간대로 세상이 돌아가기 시작한다. 중력이 바뀐 세상은 지구의 모든 것들을 흔들어 놓는다. 새는 날아가지 못해 땅으로 곤두박질치고 공을 던지는 스포츠는 불가능해졌다. 중력에 의한 것인지, 사람의 신체도 조금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무기력해지고 피로해지고 가끔 기절을 하기도 하는 '슬로잉 증후군'이 생겼다.

 

  지구에 재앙과 같은 상황이 직면했지만, 이 책의 분위기는 생각했던 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아마도 이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는 사춘기 소녀 '줄리아'의 시선이 주가 되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두려움 속에서, 밤과 낮이 뒤엉켜버린 이상한 세상을 바라보는 소녀의 시선은 호들갑 떨지도 않고 침착하다. 소녀는 너무나 크게 변해버린 세상 속에서 훨씬 작아 보이는 사소한 문제들을 바라본다. 좋아하는 남자아이와의 관계, 그리고 변해버린 부모님의 사이와 가까운 선생님의 모습, 이웃사람들의 행동들...... 『기적의 세기』는 소녀 줄리아의 시선을 통해, 재앙과 같은 '슬로잉'이란 소재는 저기 멀리 둔 채, 그보다 더 작은 기적과 같은 일상들을 주시해나간다. 사람들은 변화된 세상에 맞춰 새로운 시간 개념을 확립하고 자연스럽게 맞추어 살아가기도 하고, 변화를 거부하고 낮과 밤, 그리고 시간이 일치하지 않는 현실을 그대로 살아가기도 한다. 소녀는 그런 조용한 변화를 느끼면서 생각한다. 사람들의 행동은 변해가고 가끔 우연처럼 생기는 일들이 슬로잉 탓인지, 아니면 그냥 삶의 일부일 뿐인지,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인지.

​  기적의 범위는 좁혀진다. 영영 말 한번 못해볼 것 같은 남자친구와의 작은 대화가, 조금은 가까워진 부모님의 사이가, 이전에는 아무런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그저 그런 일상 속에서 살아있다는 자체가 기적이 된다. 소녀의 삶에서 그 기적과 같은 시간은 오랫동안 뇌리에 박혀있을 것이다. 나의 기억 속에도, 누군가의 기억 속에도 이런 '기적의 시간'이 있는 것 같아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게 된다.  『기적의 세기』는 책 속의 '슬로잉' 현상처럼 아주 미세한 떨림 속에서 느긋하게 진행된다. 무미건조하고 뜨거운 바람이 날리는 듯한 분위기를 작가가 의도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 책을 읽을 땐 유난히 그 분위기에 잠식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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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새로운 중력의 영향 아래 살게 되었다. 인식하기에는 너무 작은 변화였지만 몸은 벌써 중력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몇 주 동안 하루의 시간이 계속해서 늘어났고, 공을 멀리 차는 게 점점 더 힘들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미식축구의 공격수들도 예전처럼 공을 멀리 보내지 못했다. 홈런 타자들은 슬럼프에 빠졌다. 조종사들은 재교육을 받고 비행에 나섰다. 공중에서 물체를 떨어뜨리면 전보다 빨리 땅에 떨어졌다.

돌이켜 보면 슬로잉은 다른 종류의 변화, 이를테면 처음에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물체가 떨어지는 속도보다 더 심각한 여러가지 변화를 불러일으켰던 것 같다. 슬로잉으로 인해 친구 간의 우정이 흔들리거나 연인 사이가 가까워지고 멀어지는 등 미묘한 감정의 행로에 혼란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슬로잉 탓에 내 사춘기가 어땠다는 식으로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내 사춘기는 지극히 평범했고, 내가 느낀 고통은 누구나 경험하는 흔해 빠진 것이었으리라. 우연이란 것은 분명히 존재한다. 서로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두 가지 혹은 그 이상의 일들이 겹쳐서 일어나는 경우는 흔하다. 어쩌면 나와 내 가족에게 일어난

그러는 동안 시간은 쉴 새 없이 흘렀다. 손목시계는 계속 째깍째깍 소리를 내며 돌아갔다. 할아버지의 골동 시계들은 옛날 종소리로 시간을 알렸다. 미국의 모든 도시에서 교회의 종이 매시 정각에 울렸다. 한 주가 흐르고 두 주가 흘렀다. 우리 집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나는 해나의 전화이기를 바랐다. 아직 해나에게서는 전화가 없었다. 시간은 계속해서 늘어났다. 우리의 하루는 삼십 시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하루가 이십사 시간이었다는 사실이 아주 낯설게 여겨지기 시작했고, 하루를 호두 껍데기처럼 매끈하게 두 번의 열두 시간으로 딱 잘라 나누는 건 불가능하게 생각되었다. 그토록 단순하게 나눈 시간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의아스러웠다. (105p)

인생을 거꾸로 돌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실망으로 가득한 수십 년을 버텨 낸 후에, 모든 것이 가능하고 타협을 모르는 청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부모님 앞에도 예전에는 빛나는 인생이 펼쳐져 있었으리라. 땅속에 파묻힌 황금처럼 희망이 반쯤 가려져 있었다고 나는 믿고 싶다. 젊은 시절의 두 사람은 어떠한 미래든지 자유롭게 그려 냈을 것이다. 두 사람이 꿈꾼 미래가 이런 모습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예전 시절은 원래 다 지나가 버린 허상처럼 느껴지는 법 아닌가?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명목뿐인 말만 남는다. 예를 들어, 자동차가 발명되고 수십년이 지났는데도 우리는 마차를 말 앞에 놓지 말라고 계속해서 서로에게 경고한다. 여전히 우리는 백일몽과 악몽을 꾸며, 클락 타임의 이른 아침 시간은 점점 더 현실에서 벗어난 표현이지만 새벽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와 비슷하게 부모님은 사이가 멀어지고 있음에도 계속해서 서로를 자기라 불렀다. (128p)

"너한테는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빠가 천천히 걸으면서 말했다. 가로등이 도로를 밝히고 있었다. 나는 아빠가 무슨 말을 하려고 그러는가 싶어서 약간 겁이 났다.

"패러독스란 말이 무슨 뜻인지 아니?" 아빠는 그렇게 묻고 이마를 쓱쓱 문질렀다. 주위에 줄지어 늘어선 주택들이 검은 하늘에 둥실 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모르는데요." 당시 파카 소매 속에서 주먹을 불끈 쥐었던 게 기억난다. 아빠와 내 입에서 계속 하얀 입김이 뿜어져 나왔다. 긴 어둠과 함께 찾아온 추위가 나는 아직 익숙하지 않았다.

"패러독스란 언뜻 모순되어 보이는 두 가지가 모두 진실인 경우를 뜻해."

아빠는 그렇게 말하고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아빠의 뒤통수에 조그맣게 머리가 벗겨진 곳이 잇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한 곳이 아니었다. 아빠의 머리는 군데군데 벗겨져 있었다. 그것은 흐르는 세월은 막을 수 없다는 걸 보여주는 증거 중의 증거였다.

"그 말을 잊지마, 알았지? 인생에는 흑백으로 나뉘지 않는 것도 있어." (36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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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손 밀리언셀러 클럽 104
모치즈키 료코 지음, 김우진 옮김 / 황금가지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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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신의 손』 모치즈키 료코 / 황금가지

 "글을 쓴다는 건, 몸속에 괴물을 한 마리 키우는 것과 같아요."

 

 

 

  소설은 어떤 작가의 작품이 문학상을 수상하는 장면과 함께 시작됩니다. 그와 함께, 첫 부분부터 작가의 남다른 문제 인식을 드러내고 있지요. 출판계의 상황이나 문학작품, 그리고 순문학에 비해 장르문학의 가치를 저평가하는 상황에 대한 짧은 글이 등장합니다. 사실상 문학작품의 장르를 완벽하게 나누는 것이 어려운 일이기도 하고, 그것을 나누는 것이 의미 있는지는 알 수가 없죠. 그저 작품을 재밌게 읽고 남는 것이 있다면 좋은 것이 아닐까요. 이런 사회적인 비판과 함께 미스터리한 사건들을 능수능란하게 펼쳐내는 『신의 손』같은 작품들이 있다면 독자의 만족은, 순문학이든 장르문학이든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작품을 읽기 전엔, '유괴사건'이라는 말에 겁을 집어 먹고, 약간은 잔인하고 무서운 추리 스릴러 이야기가 나올까 걱정했지만, 소설은 생각과는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편집자로 일하는 주인공 '미무라'에게 불현듯 어떤 여성이 들고 온 『녹색 원숭이』라는 작품. 초보의 작품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남다른 포스를 풍기는 작품이었지만, '미무라'는 이 작품의 제목과 내용에서 심상찮은 뭔가를 느끼게 되지요. 바로, 실종된 여류 작가 '기스기 교코'의 작품과 아주 똑같았던 것입니다. 대체 이 작품을 들고 온 여자의 저의는 무엇인지, 과연 이 작품을 그 여자가 도작 한 것인지, 누군가가 자신을 놀리려 하는 건지, '미무라'는 굉장히 혼란스러운 마음을 갖게 됩니다. 과연 어찌 된 일일까요.

 

  작가는 이 실종된 여류 작가의 이야기와 함께, 오래전 정체불명의 유괴사건을 오묘하게 섞어놓습니다. 두 사건과 관련된 다양한 등장인물이 등장하면서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두 퍼즐 조각이 끝에 가서야 완벽하게 맞춰지지요. 그 맞춰지는 과정이, 책의 묵직한 두께처럼, 철저하고 꼼꼼합니다. 소설의 중후반쯤에서 "대체 뭔데 -" 하는 투덜거림이 나오기도 했지만, 마지막에 가서야 『녹색 원숭이』라는 오싹한 작품의 비밀이 밝혀지니 쫙 소름이 끼쳤습니다.

 

  『신의 손』을 읽고 나니, 어떤 하나의 작품을 내기까지 작가의 고통이 전보다 더욱더 깊게 느껴집니다. 보통 사람들이 갖고 싶어 하는 능력인 '작가의 정신세계', 작품에 빠져들어 거의 미쳐가 본능에 의해 글을 썼던 작품 속 작가의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안타까워 보입니다. '신의 손'을 갖고 싶었던 여자, 그것을 감당하기 어려웠던 여자의 인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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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지 편집부도 판매부에서 매출액 보고를 듣는다. 하지만 이곳은 그런 세속적인 것은 상관 않는 곳. 무릇 문학이란 경쟁 원리와는 맞지 않는 것이어서, 상업주의를 도입하면 뿌리부터 썩어 소멸하는 법. 번화가의 패스트푸드점도 아닌데 매상에 신경 써야 되겠는가.

이런 식으로 `문학은 팔리지 않는다`에서 `팔리지 않으니까 문학이다`라는 전환 논리가 횡행하고, 언제부턴가 마이너리티로 있는 것에 미덕까지 느끼는 풍조가 작가들 사이에서 만연했다. 그 결과, `문예 작품은 존재 그 자체에 의의가 있다`며 언뜻 철학적이어서 고상하게 여겨지는 현대 문학의 위치에 모두가 걱정을 끌어안고 낙담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편집자들이 문예 소설을 가혹한 소비 문화 속으로 던져 넣을 생각이 없다는 것은 명백했다. 그들 문예부 직원들은 스스로의 사명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지켜내는 것이라고 보고 있었다. 하지만 미무라는 `한번 팔아 보라`는 목표가 문예지 편집부에도 그저 먼지 쌓인 사어(死語)가 아니라 현실적인 구호라는 사실을 편집장이 되고서야 처음으로 깨달았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매월 보고되는 수치를 현실의 공포로 느끼게 되었다. 또한 그것을 뒤통수가 뜨끈한 공포로서 이해하는 것은 그저 편집장 혼자라는, 즉 `판매 부수`같은 예술의 적(敵)과는 자기 혼자서 싸울 수 밖에 없다는 것을 통감하였다. (14p)


시간은 감정을 씻어 내린다. 유아에게 일어난 불행, 그게 주는 슬픔에 계속 몰두하는 건 어느 시점 이후론 강박관념으로 변할 수 밖에 없다. 감정적 짐덩어리가 되는 것이다. 그래도 미치코는 생각했다. 20년전의 지역 사회였다면, 아니 지역 문화였다면 사람 하나가 실종되었다는 사실을, 그 사실이 가진 무게를 모두가 조금씩 등에 짊어지고 살아갔을지도 모른다. 사라진 생명에 대한 슬픔을 한쪽 가슴에 묻고 살아갔을 것이다. 하지만 흔적도 없이 치워진 팻말, 사건에 대해 알 수 있는 물건 한 조각도 남기지 않은 이 공원에 그런 상냥함은 없었다.

미치코는 현대 사회에서 문득문득 느껴지는 `방해물`에 대한 냉담함을, 질서정연하게 원래 모습으로 돌아간 공원과 거리에서 느꼈다. (15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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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잭과 콩나무 애덤 기드비츠의 잔혹 판타지 동화 2
애덤 기드비츠 지음, 서애경 옮김 / 미래엔아이세움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위험한 잭과 콩나무』 애덤 기드비츠 / 아이세움

무시무시하지만 교훈을 주는 신비한 모험의 세계로

 

 

 

 
 
  어렸을 때 봤던 동화들이 제가 알고 있던 실제 스토리와 조금은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선, '잔혹동화'라고 불리는 책들을 찾아본 적이 있었어요. 그림형제의 이야기가 대표적이었는데, 결말을 보곤 소스라치게 놀랐었죠. 어린이뿐만 아니라, 어른들까지도 상상하면 너무나 무서운 장면들을 가감없이 드러내고 있었어요. 그런 이야기들이 전해져 내려오면서, 조금씩 각색되고 모아지게 된 어린이들의 동화는 실제 이야기들과는 많은 부분 달라졌죠. 제가 읽어본 잔혹동화들은, 아무래도 아이들에게 그대로 전달하기란 어렵다고 생각이 드는 경우가 많았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직 꿈과 환상과 즐거움을 주는 동화만 보여주는 것도 좋진 않다는 생각도 들고요.
  『위험한 잭과 콩나무』는 제목을 보면, 어느 정도 잔혹동화라는 느낌이 들지만,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와 '전해지는 잔혹동화'의 중간 정도 되는 책이에요. 두께는 어린이가 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약 500페이지) 무시무시하지만, 단편인 듯 장편인듯싶은 구성이 그리 부담스럽게 느껴지진 않아 술술 읽힌답니다. 각 장마다 어디서 본 듯한 동화들이 가득 등장하지요. 『벌거벗은 임금님』, 『잭과 콩나무』, 『개구리 왕자』같은 동화들이 작가의 손길로 변형되어 이야기를 구성하는데, 각 이야기들은 주인공 '잭'과 '질', '개구리'를 중심으로 장편의 소설로 이어집니다.
  역시 아이들을 위한 동화인 만큼, 작가가 개입하여 '이 이야기에서 생각해야 될 것이 무엇인지', '어떤 행동을 주시해야 하는지'와 같은 힌트들을 제시해줍니다. 역시나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라는 게, 어느 정도 배울 점이나 교훈들을 넌지시 건네주어야 하는데, 그런 부분을 " 나는 너희가 잭과 질처럼 행동하길 바라지 않는다는 거야." 하는 식으로 자연스럽게 연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방식에 대해서도 너무 진지하지는 않게, 구연동화처럼 (대화체로) 실감 나게 전달하고 있지요. 그리고 약간 무시무시한 장면들이 나올 때에는 미리 언급을 주어서 살짝 긴장을 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세 주인공의 모험이 가끔은 위태위태하고 무시무시할 때도 있어, 『위험한 잭과 콩나무』는 너무 어린아이들 보다  어느 정도 행동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있는 초등생들에게 알맞은 책인 것 같습니다. 어두운 장면들은 '왜 이렇게 나오는 걸까' 하는 이유를 어느 정도 찾을 수 있는 아이들에게요. 사실 어른들에게도 재밌는 책이기도 한데... 몇 시간 동안 책을 쭉 읽어내릴 정도로 흥미진진하게 읽히니까요. 어쨌든 이 귀엽지만 무시무시한 판타지 동화책은 작가의 재미난 상상력이 보태져, 아이들에게 스스로 자신을 되돌아보고, 독립적인 생각과 행동을 하게끔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 시리즈로 되어 있네요. 전편은 『사라진 헨젤과 그레텔』.

 동화로 전해지는 이야기들을 각색하는 작가의 솜씨가 일품! 

 

 

 

Copyright ⓒ 2014. by Rinny. All Rights Reserved.
출판사에서 지원받은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쓴 서평입니다.
덧글과 공감은 글쓴이에게 큰 힘이 됩니다.

 

실은 말이야, 이런 옛이야기와 전래 동요에는 진짜 아이들에 관한 진짜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어. 두 아이가 암흑세계에서 분투하고 나서 그 세계를 헤치고 나올 때는 더 강해지고, 더 용감해지고, 그리고 보통은, 피투성이가 되어 있지.

이 책은 그런 두 아이에 대한 이야기야. 잭이라는 소년과 질이라는 소녀. 맞아, 두 아이도 이야기의 어느 지점에서 언덕에서 굴러떨어져. 그리고 잭이 머리가 깨진다는 것도 맞아. 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이야기가 있지. 콩나무 한그루가 나와. 거인들이 나와. 인어도 한두 명쯤 나올 거야.

이 이야기는 무서워. 역겨워. 무시무시해. 이건 내가 들었던 옛이야기 중에서 가장 무시무시해.

하나 더 말하면 아름다워. 달달하지 않아. 귀엽지 않아. 벽난로에 남은 회색빛 재와 황금빛 잉걸불처럼 아름다워. 아니면 말라 가는 핏자국의 어두운 적갈색처럼 아름다워.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런 게 진짜 이야기야. (14p)

"너희는 혼동하고 있는 거야. 완전히, 순전히 혼동하고 있는 거야.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걸 절대 찾지 못할 거야. 그게 지금 여기 있어도."

잭은 얼굴을 찡그리며 주변을 돌아보았어. 질은 고개를 숙인 채 주변을 둘러보다가 다시 까마귀들을 보았지.

첫째 까마귀가 말했어. "남이 소원하는 게 아니라, 너희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할 때......."

둘째 까마귀가 말했어. "너희가 `타인`들의 눈에서 너희 자신의 모습을 찾는 일을 그만둘 때......."

셋째 까마귀가 말했어. "너희 자신의 얼굴과 얼굴을 마주할 때......."

까마귀들은 다 같이 읊조렸어. "그때, 너희는 너희가 진실로 구하는 것을 찾게 될 거야." 잭과 질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어. (238p)

질은 궁금했어. `어머니가 뭐라고 말할까?`

잭도 궁금했어. `마리와 그 소년들이 뭐라고 말할까?` `도롱뇽들이 어떤 바보 천치 같은 말을 할까?`

개구리는 마음을 굳게 먹고 궁금해하지 않으려고 애썼지. 집으로 가는 그 옛날 길을 걸으면서도 잭과 질의 마음은 여전히 헤매고 있었어. 어떤 생각인지 말하기 힘든 간질간질한 무엇인가가 머릿속에 있었어. 이 무시무시한 여행에서 알게 모르게 얻게 된 지혜, 새로 얻은 그 지혜는 여전히 불확실하고 말로 설명할 수가 없었지. 내내 잘못된 것을 찾고 있었을 거라는 깨달음도, 아직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웠어.

이건 아주 지혜로운 생각이야. 하지만 친애하는 독자들이여, 변하기 위해서, 어른이 되기 위해서, 지혜를 얻기 위해서 넓고 거친 세상으로 나갈 때는 조심해야 해. 지혜는 얻기 힘들지. 일단 얻는다 해도 잃기 쉬워. 특히, 넓고 거친 세상으로 떠난 사람이 자기가 달아난 곳으로 돌아올 때에는. (377p)

"뭐야? 뭐야?"

하지만 질은 여전히 눈동자만 굴렸어. 잭의 눈길도 미친 듯이 돌아가는 질의 눈동자들이 보고 있는 곳을 따라갔어. 잭도 촛대를 보았어. 그리고 벽을 보았어. 그리고 자기들이 서 있는 계단도 살펴 보았어. 외마디 소리가 터져 나오려 했으나, 잭은 입을 다물고 속으로 삼켰어. 촛대, 벽, 계단까지 모두 사람 뼈로 만들어져 있었던 거야. 개구리가 외쳤어. "도망치자! 도망쳐!" 잭은 재빨리 손을 내밀어 개구리의 입도 막았어. 잭과 질은 눈을 질끈 감아 버렸어. 그리고 가만히 서 있었지.

좋아.

너희가 다른 사람 집에 방문했다고 상상해 보자. 친구 집 같은 데 놀러 갔다고 말이야. 잠깐 친구가 사라졌고, 친구를 찾으려 다니는 일이 일어났어. 너희는 온갖 곳을 뒤져 보겠지. 그러다 지하실을 들여다보게 되는 거야. 그 지하실이 전부 사람 뼈로 만들어진 걸 알아냈다고 생각해 봐. 이런 상황에서 나는 너희가 이성적인 행동을 하길 바라. 할 수 있는 한 빨리 도망가는 거지. 그러니까 말이야, 나는 너희가 잭과 질처럼 행동하길 바라지 않는다는 거야. (39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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