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내 인생의 가장 젊은 날입니다
이근후 지음 / 샘터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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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내 인생의 가장 젊은 날입니다』 이근후 / 샘터

 겨울이라는 계절은 조금 더 자유로워야 합니다

  

 

 

 저자는 인생을 사계절로 나눕니다. 인생을 시간으로 환산한다는 얘기를 들었던 어떤 책이 떠오르는데요. 사계절은 더욱더 인생의 참맛을 담아낸 것 같아 마음에 쏙 듭니다. 파릇파릇한 새싹 같은 청년기, 삶을 뜨겁게 살아가는 적응의 시기, 차분하게 익어가는 장년에서 노년의 시기, 사계절이 끝나가는 평온한 노년기……. 꽤 그럴듯하지 않나요? 그중 가장 눈여겨보게 되는 것은 겨울입니다. 70대의 작가가 보내고 있는 지금의 인생은 '겨울'입니다. 정신과 전문의로 50년간 환자를 돌보다가 퇴임 후에 다양한 활동을 하고 나서 이제는 약간의 휴식을 할 시간이라고 할까요. 그러나 추위에 꽁꽁 움츠리고 따뜻한 곳에서만 머무르려는 겨울의 특성과는 다르게, 작가는 이 시기에 '더 자유로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거울 속의 노인을 보고 흠칫 놀랐다. '이게 나라고?' 내 딴엔 거울 속 저 노인보다 젊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너털웃음을 짓자 거울 속 노인도 따라 웃는다. 거울 속의 당신은 나와 함께 나이 들어갔다. 그런데 나라고 생각하니 갑자기 젊어 보인다. 그래, 지금의 나를 외면하지 않으면, 오늘이 내 인생의 가장 젊은 날이다."
 인생의 끝자락에 서 있는 저자는 나이가 들었다고, 이제는 모든 게 변해간다고 체념하는 모습을 버리고, 그저 기쁘게 살아가기로 결심합니다. 그래서 저자는 매해 네팔로 의료 봉사를 가는 것을 멈추지 않고, 사이버 대학을 최고령으로 졸업했습니다. 한 해를 보낼 때마다 왠지 싱숭생숭하고, 눈 깜짝할 새에 지나버린 몇 년을 아쉬워하던 그동안의 마음가짐을 조금 반성하게 됩니다. ​

 

 

 

- 책 속에는 캘리그라피 문구가 챕터마다 등장합니다 :)

 

 

 

  살아온 인생이 길고 풍성한 만큼, 얘깃거리가 참 많습니다. 그 다양한 이야기를 사계절로 나눈 인생을 토대로 하여, 편지 형식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청소년과 어른 사이에 불안하게 걸쳐있고 꿈을 찾아가는 젊은이들에게 보내는 편지, 그리고 역할을 감내하면서 오늘을 사는 (이제는 부모가 된) 사람들에게 보내는 편지, 내려놓음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해봐야 하는 장년층을 위한 편지, 행복하게 떠날 준비를 하는 노년층에게 보내는 편지. 특히나 마지막 챕터에서는 '죽음'이라는 것을 연상할 수밖에 없게 되는데, 어떻게든 찾아오게 될 삶의 끝을 적극적으로 준비하고, "자투리 삶이라고 하기엔 노년이 너무 길지 않느냐"며 되묻는 저자의 마음가짐을 인생의 끝까지 담아두고 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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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살아가는 이상 자유는 주어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결국 자유를 얻기 위해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장 좋은 방법은 결국 스스로 자유롭다고 느끼는 경험을 쌓아가는 것입니다. 자유 역시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막연한 동경의 대상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자유와 속박은 언제나 함께 존재하며 역학관계를 이루기에 예단만으로는 자유를 얻기가 어렵습니다. 자유는 경험해봐야 그 가치를 알 수 있습니다. 가치를 모르고는 용기를 낼 수 없습니다. 용기가 없는 새는 새장 밖 세상을 알 수 없습니다. 자유를 얻고자 한다면 용기를 내 새로운 경험을 해봐야 합니다. 새장 밖으로 나가 날아본 새가 새장 속의 모이를 그리워할까요? 그것 역시 새장 밖에서 겪을 경험에 달렸습니다. 하지만 새장에만 있는 새는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입니다. (102p)

사실 따져보면 우리가 산 물건 중 꼭 필요했던 것은 일부입니다. 대부분은 설득에 의해 소장하게 된 것입니다. 가격이 싸서, 덤으로 준다기에, 지금 아니면 못 산다고 해서, 좋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멋져 보여셔, 탐이 나서 등등 이 모든 것이 사실 나를 향한 설득이지 않겠습니까?

꼭 필요한 물건만 사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사실 꼭 필요한 것을 구별하기도 힘듭니다. 좋아 보이고 탐이 나서 살 수도 있습니다. 자기만족을 위해 필요한 일이죠. 하지만 다른 이가 가졌다고 나도 꼭 가질 필요 또한 없습니다. 소유의 기준은 필요와 효용입니다. 비교는 결코 소유의 진짜 이유가 되지 못합니다. 단지 비교할 수 있는 `상황`을 소유할 수 있을 뿐입니다. 비교우위에서 밀린다면 어차피 교체될 물건이기 때문입니다. (123p)

그동안 쌓아온 경험과 지혜라는 자산은 인생의 이모작을 꾸며보고 준비하는 또 다른 흥분을 주는 소재가 됩니다. 나이 듦을 받아들였다 해서 절대 끝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나이 듦을 받아들이면 새로운 인생이 펼쳐질 뿐입니다. 오히려 나이에 집착하는 만큼 젊지 않아 못할 일이 늘어날 뿐입니다.

젊어지고 싶다는 마음은 사실 건강해지고 싶다는 마음과는 다릅니다. 늙고 싶지 않다는 뜻일 뿐이죠. 마찬가지로 젊게 사는 것과 젊은 것 또한 다릅니다. 그러니 나이 듦을 받아들인다면 순리대로 나이에 맞는 일들이 눈에 더 잘 보일 테고, 마음이 편한만큼 활력도 생길 것입니다. (194p)

내려놓는 것은 포기와 다릅니다. 내가 사람들과 더불어 살기 위해 그리고 내가 더 행복해지기 위해 짐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일단 내려놓으면 잊게 됩니다. 그러니 더 이상의 번뇌가 없ㅈ습니다. 하지만 포기하려 하면 아쉬운 마음이 남습니다. 그 자체로 또 하나의 짐이 됩니다. 마음의 문제는 포기가 안 됩니다. 내려놓아야 해결됩니다. (20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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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은 원하는 인생을 살아라 - 카이스트 윤태성 교수가 말하는 나를 위한 다섯 가지 용기
윤태성 지음 / 다산북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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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은 원하는 인생을 살아라』 윤태성 / 다산북스

 현실에 안주해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자그마한 용기를

 

 

 

 어떤 한 인물의 조언을 가득 담는 책은 읽다 보면 좋은 글들이 가득한 듯 보이지만, 쉼 없이 읽어내기란 개인적으로 참 어렵게 느껴집니다. 마침, 비슷한 책을 읽어야 하는 상황이 와서 더욱이나 지루함을 안고 있었죠. 가장 좋은 방법은 하루하루 끊어 읽는 것입니다.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제대로 깨닫고 실천할 수 있을 만큼요. 그래서 저도 (하루에 한 주제만큼까진 아니지만) 이 책을 어느 정도 끊어서 읽었습니다. 생각보다 두께가 좀 나가는데, 천천히 읽으니 좋은 말들이 잘 와 닿더군요. 『한 번은 원하는 인생을 살아라』는 제목 그대로, 젊은이들에게 던지는 인생의 조언 (이렇게 말하면 너무 막연하지만)을 담은 책입니다. 저자의 이력이 꽤 화려합니다. 두산그룹에 취업해서 7년을 보내다가, 회사를 사직하고 도쿄대로 유학을 가고, 그곳에서 소프트웨어 벤처를 창업하고, 카이스트 교수로 근무하고 있다는 파란만장한 인생의 소유자인데요. 평소 학생들과 나눴던 이야기와 다양한 경험을 토대로, 젊은이들이 가장 크게 고민하는 것들에 대한 질문과 답변을 책으로 엮었습니다.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았다고 합니다. 요즘같이 돈 벌어먹고 살기 참 어려운 시대에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는 그들에게 최대한 성심성의껏 조언을 남겨주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책의 중요 키워드는 비즈니스, 꿈, 커리어, 목표라고 추릴 수 있는데, 생각보다 정말 많은 고민들을 한 권의 책에 꽉꽉 담았습니다. 첫 직장에서 이런저런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청년들에게, 너무나 바쁘다고 생각하는 청년들에게, 미래에 대한 고민조차 사치라고 생각하는 청년들에게 힘이 되는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어릴 때부터 지녀왔던 꿈이 있더래도, "나는 어떻게 살고 싶어"라는 당찬 포부가 있더래도, 현실 앞에서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수정하고 조금씩 지워나가는 청년들이 참 많습니다. (저도 조금씩 그래 왔고요.) 원래부터 "돈, 돈" 하면서, 성공에 목매어 살아가고 싶었던 사람들은 없었겠죠. 좋은 삶을 살고 싶고 진정 원하는 인생을 살아가고자 하는 꿈을 모두가 갖고 있지만, 어느새 조금씩 그 꿈은 변해갑니다.

 

 이런 굴곡진 인생길에서 저자가 하는 특별한 제안은 '커리어 디자인'이라는 것입니다. 인생을 길게 보면서 갈림길이 나오면 어느 쪽 길을 선택할 것인지 미리 설계하는 것이죠. 저는 계획을 짜면서 일상을 보내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기는 하지만, 인생만큼은 계획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이 '커리어 디자인'에 대해서 듣는 순간 의외로 재밌게 느껴졌습니다. 어찌 보면 단순하게 인생 플랜을 짜는 것 같기도 하지만, 언젠가 다가올 결정의 순간에 부차적인 길을 다져놓는 꼼꼼한 작업입니다. 그리고 인생을 '수정'한다는 의미에서 조금 더 현실적으로 여겨지기도 하고요.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또 하나 있습니다. 인생을 꼼꼼하게 계획하기에 앞서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나는 지금까지 누구였나, 나는 지금부터 누구여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어쩌면 바쁜 일상 속에서 나는 누구인지 파악하는 것조차도 용기를 가져야 하는 일인지도 모르겠어요. 정말로 원하는 인생을 살기 위해 한 번쯤은 용기를 내서 부차적인 갈림길을 선택하는 것, 그리고 인생을 바꿔보는 것. 모두가 선망하는 대기업에 취업했지만,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찾기 위해 유학을 선택한 저자의 삶에서 느낀 '용기'의 경험이 조금이나마 전달되어, 저도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던 것 같아요. 『한 번은 원하는 인생을 살아라』, 물론 수많은 조언들을 모두 받아들여 적용할 수는 없겠지만, 작은 용기와 인생에 대한 포부를 전달받을 수 있는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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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생활에서 만나는 문제 중에는 정답이 없는 경우가 더 많다. 문제를 풀기보다 문제를 정의하는 것 자체가 더 어렵다. 사회에는 다양한 관점이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새로이 정의하고 풀어가는 훈련이 일구이언이다. 만물에는 음과 양이, 손에는 손바닥과 손등이 있듯이 세상에는 다양한 관점이 존재하며 각자가 타당성을 주장한다. 만약 상대방의 관점을 이해할 수 있다면 나의 논리를 펴기가 더 수월해진다.

싸움은 양쪽 이야기를 다 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평소에 언론 기사는 다양한 매체를 균형 있게 읽는 게 좋다. 균형적인 관점을 가지기 위해서 토론을 들을 때 절반은 이쪽, 절반은 저쪽의 입장에서 듣는 게 좋다. 각자의 관점을 이해한 다음에는 토론 내용에 대해서 건전하게 비판한다. 막연하게 비판만 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을 제시한다. 물론 대안에는 합당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 (93p)

한 사람이 평생 동안 가질 수 있는 감정의 총량이 일정하다면 가급적 인생의 말년에 행복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인생의 초년에는 슬픔, 고통, 어려움, 고독, 낭만, 좌절 등 사용해야 할 감정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런 감정은 일찍 맛볼수록 내 인생을 풍요롭게 해준다. 그러나 행복은 당장은 사용하기 좋지만 너무 일찍 많이 사용하면 나중에 행복이 모자라게 되어 힘들어진다. 그러므로 질투를 하려면 가능한 이른 나이에 하자. 그러면 질투는 성공을 위한 비료로 사용될 수 있다. (111p)

경청하는 능력을 키우려면 상대방이 길게 한 말을 문장 하나로 줄이는 연습이 좋다. 저 사람이 한 시간 동안 주장한 내용을 하나의 문장으로 만들 수 있을까? 만약 단어 하나로 나타낸다면 뭐가 좋을까? 이는 신문에서 톱뉴스의 헤드라인을 정하는 것과 비슷하다. 너무 추상적이거나 애매한 표현을 사용하면 보는 사람들이 알기 어렵다. 그렇다고 너무 쉬운 말이나 평이한 표현을 사용하면 깊이가 없어서 가벼워 보이니 고민이다. 그래서 길게 말하는 것보다 문장 하나로 요약하기가 더 어렵다. 그런데 요약을 잘하는 노하우는 의외로 간단하다. 말하는 사람의 목적과 관점에 맞추어 요약하는 연습을 많이 해보는 것이다. (316p)

적당히 낙천적인 성격이 창업을 할 때든 일을 할 때든 좋다. 그러나 아무리 낙천적인 성격이라도 벤처를 하다 보면 머리로는 침착해지려고 노력해도 마음은 그렇게 되기 힘든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에는 우선, `아, 내가 지금 힘들구나`라고 인정한다. 힘들 때 힘들지 않다고 해야 극복할 수 있다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나는 일단 힘들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편이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한다. `지금은 너무 힘드니까 당장 해야 할 일만 얼른 끝내고 푹쉬고 그 이후에 다시 고민해야지.` 또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할 수 있을만큼만 하고 그래도 안 되면 할 수 없지. 그런데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이란 어느 정도일까?` (32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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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의 파수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7
J.D. 샐린저 지음, 공경희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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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의 파수꾼』 J.D 샐린저 / 민음사

 콜필드의 '특별한 타락'

 

 

 

 내 청소년기는 아주 흐리멍덩했다. 시간의 한 부분이 잘린 것처럼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 시절이 있었고, 우스운 얘깃거리는 많지만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던 것 같은 시절도 있었다. 모두가 한 번쯤은 일탈을 경험하는 사춘기도 심하게 타지 않았다. 그저 조용한 아이는 아니었고 그냥 보통 학생 그 근처를 배회하며 재밌게 놀기도 하고, 아주 작은 장난과 실수도 쳐가며 살아왔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참 밋밋한 청소년기였다. 물론, 세상에 대해 고민조차 하지 않았다. '어른이 되고 싶다'는 발칙한 상상마저 들지 않았고 그냥 그렇게 시간을 보내며 살아왔던 것 같다. 그때를 생각해보면, "조금 더 날카롭고, 적극적이었다면?" 하는 궁금증도 든다. 청소년기여서 할 수 있는 이유 없는 반항적 심리를 알고나 있었을까. (물론 반항이란 각종 막돼먹은 행동들과 일탈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가장 날카롭게 여겨지는 아이들의 순수한 일침 같은 것을 해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순수한 어린아이의 얼굴을 가지고 이것저것 거르고 가면을 쓰고 있었던 나는, 속은 순수하지 못한 채 그저 어른들처럼 행세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만약, 그때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었더라면, 어떤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사실상 모든 청소년에게 권장도서로 한 번씩은 언급되곤 하는 이 책을 그때 만났더라도, 이해는 하지 못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때 읽었던 기억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다면 느낌이 달라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어(소설 속 영어) 이외에는 온통 낙제점이라 퇴학을 당하고, 학교란 쓸데없는 거라는 푸념을 하고, 술을 먹고, 어른들의 온갖 퇴폐적인 행동들이 가득 찬 호텔에서 창녀와 그저 대화만 하기를 시도하고, 선정적인 말이 갈기갈기 적혀있는 벽의 낙서를 있는 힘껏 지우는 콜필드. 그의 행동을 언뜻 보면 일탈하는 청소년과 다를 것 없이 보이지만, 어른들의 세계를 증오하고 그 증오를 표출하길 서슴지 않았고, 그것을 바꿀 수 없음에 한탄하여 너무나 고독했던 소년이었다. 그런 그에게, 스승 앤톨리니 선생은 특별한 이야기를 한다. '일반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좀 특별한 것처럼 보이는 타락'을 겪고 있다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환경이 줄 수 없는 어떤 것을 찾는 것이라는 일종의, 특별한 타락.

  비록 그 좋은 말을 해주던 스승도, 갑작스러운 의심 때문에 콜필드에게 외면당했지만, '특별한 타락'이라는 말이 뇌리에 깊게 새겨진다. '청춘'이란 말보다도 그 의미는 깊다. 그는 어른들의 세계를 경멸했고, 그런 어른들을 흉내 내는 가식과 속물적인 친구들의 모습에 혀를 찼다.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 어린애들만 수천 명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 난 아득한 절벽 옆에 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16살이 그리던 '호밀밭의 파수꾼'. 그에게 세계는 벼랑이었다. 모든 게 구질구질하지만 완벽하게 탈출할 수는 없는, 그래서 콜필드는 벼랑의 마지막 한 발자국에 간신히 서 있다.

 

 세계에 대하여,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질문을 하고, 순수함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세상을 경험하며 방황하며 남다른 성장통을 겪었던 콜필드. 질풍노도의 시기만이 불러일으킬 수 없는 순수한 반발, 지금은 그 모습조차 자신에게 찾아볼 수 없어 너무나 아쉽다. 옛날처럼 가혹한 세계에 살고 있으면서도, 그저 속물적으로 맞춰가고 있다. 변했을까, 아니면 그 '특별한 타락'마저 경험하지 못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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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녀는 가버렸다. 해군 장교와 나는 서로 만나서 반가웠다는 인사를 나누었다. 정말 환장할 노릇이다. 전혀 반갑지도 않은 사람에게 늘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같은 인사말을 해야 한다는 건 말이다. 그렇지만 이 세상에서 계속 살아가려면, 그런 말들을 해야만 한다.

릴리안에게 누군가를 만나러 가야 한다고 말해 버렸기 때문에, 그곳을 나오는 수밖에 없었다. 계속 거기서 어느 정도는 들어볼 만한 어니의 연주를 더 이상 들을 수가 없게 됐다 하지만 릴리안 시먼스와 해군 장교와 같이 앉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했다가는 끔찍하게 지겨울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곳을 나왔다. 코트를 걸치면서 미치도록 화가 나기는 했지만 말이다. 정말 사람들은 언제나 남의 일을 훼방 놓곤 한다. (121p)

사람들 중에는 잃어버린 물건을 며칠이고 찾아다니는 사람들도 있다. 이제까지 난 무엇을 잃어버리든 전혀 찾으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내가 겁이 많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변명하는 건 아니다. 정말 그런 건 아니다. 겁쟁이가 되어서는 안 된다. 어떤 녀석의 턱을 날려버리고 싶다면, 그 순간 그렇게 해야 한다. 그렇지만 난 그런 걸 별로 잘하지 못한다. 턱을 한 대 갈기는 것보다는 차라리 창문 밖으로 밀어버리거나, 그놈의 머리를 도끼로 잘라버리는 편이 훨씬 낫다. 난 주먹으로 싸움질하는 건 정말 싫다. 차라리 얻어 맞는 게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그걸 좋아한다는 소리는 아니다. 하지만 싸우면서 주먹질을 할 때 제일 나를 두렵게 만드는 건 상대 녀석의 얼굴이다. 문제는 내가 다른 자식들의 얼굴을 똑바로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차라리 둘 다 눈을 가리고 싸우라고 한다면 나을 것 같다. 정말 우습지도 않은 걸 겁낸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무서운 건 무서운 거다. 지금 난 농담하는게 아니다. (123p)

「성생활은 어때?」그에게 물었다. 그 녀석은 이 따위 질문을 받는 걸 싫어했다.

「가만히 좀 있어. 젠장. 그냥 좀 얌전히 앉아 있어봐」

「가만히 있잖아. 컬럼비아는 어때? 좋아?」

「당연하지. 싫은 데 다니는 사람 봤어?」그도 가끔은 이렇게 진부한 말을 하기도 한다.

「전공은 뭐야? 변태 성욕?」내가 물었다. 그저 좀 놀리고 싶을 뿐이었다.

「대체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이야? 날 놀리는 거야?」

「아니야. 그냥 농담 좀 한 거야. 이봐, 루스. 넌 머리가 좋잖아. 그래서 말인데 네 충고가 필요해. 난 지금 끔찍한.......」

그는 나를 보더니 신음했다.「콜필드. 여기 있고 싶으면 얌전히 있어. 조용히 술이나 마시고, 그냥 조용한 대화나......」

「알았어, 알았다구. 가만히 있을게」그는 나와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은 게 분명했다. 바로 이런 게 머리가 좋다는 인간들의 문제점이었다.

기분이 내키지 않으면, 절대로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고 싶어하지 않으니까. (193p)

「변호사는 괜찮지만...... 그렇게 썩 끌리는 건 아니야. 그러니까 죄 없는 사람들의 생명을 구해준다거나 하는 일만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변호사가 되면 그럴 수많은 없게 되거든. 일단은 돈을 많이 벌어야 하고, 몰려다니면서 골프를 치거나, 브리지를 해야만 해. 좋은 차를 사거나, 마티니를 마시면서 명사인 척하는 그런 짓들을 해야 한다는 거야. 그러다 보면, 정말 사람의 목숨을 구해주고 싶어서 그런 일을 한 건지, 아니면 굉장한 변호사가 되겠다고 그 일을 하는 건지 모르게 된다는 거지. 말하자면, 재판이 끝나고 법정에서 나올 때 신문기자니 뭐니 하는 사람들한테 잔뜩 둘러싸여 환호를 받는 삼류 영화의 주인공처럼 되는 거 말이야. 그렇게 되면 자기가 엉터리라는 걸 어떻게 알 수 있겠니? 그게 문제라는 거지」 피비가 내 말을 알아듣고 이해했는지는 의심스러웠다. 아직 어린아이였으니까. 하지만 적어도 내 말에 귀를 기울이고는 있다.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그렇게 나쁠 건 없다. (22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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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터 2015.2
샘터 편집부 엮음 / 샘터사(잡지)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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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샘터』 2015년 2월호 : 따뜻한 이야기가 참 많습니다.

 

 

  왠지 모르게 괜히 바쁘고 조급해지는 연초입니다. 올해는 이런저런 활동들을 조금 줄여보겠다는 다짐을 했지만, 벌여놓은 일들을 마무리해야 하니 역시나 쉴 틈 없이 흘러가네요. 그러나 『샘터』를 읽는 시간만큼은 가볍고 따뜻합니다. 2월의 『샘터』는 '시샘달'이라는 이름이 적혀있는데요. '시샘달'의 잎샘추위와 꽃샘추위가 있는 겨울의 끝 달이라고 하네요. 순우리말로 된 달 이름이 언제 들어도 참 예쁩니다.

 

 

  

 『샘터』에는 원래 기분 좋은 이야기가 참 많지만, 이번에는 유난히 마음에 들어왔던 따뜻한 소식들이 많았답니다. 마치 숙명처럼, 국립중앙도서관의 관장을 맡고 '도서관의 도서관'과 정보의 바다를 꿈꾸는 '임원선 관장'의 이야기와 이전에 『별이 빛나는 건 흔들리기 때문이야』(샘터, 2014)라는 책으로 만나보았던 '십대들의 쪽지' 이야기, '사람을 만나는' 여행의 즐거움을 느끼고 문화로 가득 찬 '게스트 하우스'의 이야기까지.  역시나 책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제 눈을 사로잡네요.

 

 그리고 『나는 재미있게 산다』는 특집은 더욱 유쾌한 이야기가 담겨있었습니다. 그중에서 참 재미있게 읽었던 짧은 글은, 의사라는 일을 하면서도 어릴 적 꿈인 노래를 놓지 않고 즐겁게 밴드 생활을 하면서 살아가는 '이승민' 님의 이야기였답니다. "헤비메탈은 지겹고, 2015년에는 모던록도 좀 하자"고 리더에게 외치는 마지막 말이 참 재미납니다 :)

 

 

 다양한 분야의 정리 방법을 알려주는 코너 『정리의 달인』에는 역시 쏠쏠한 노하우를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미루는 습관 때문에 저도 참, 가끔은 사서 고생하기도 하고 자신이 한심하다고 느껴질 때가 많은데, 이런 습관들도 '정리'라는 단어가 적용될 수 있었네요. 생각해보면 참 작은 것들이지만, 인생에서 이것저것 미루면서 보낸 시간을 합하면 정말 어마어마할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시간의 낭비, 이제는 조금 줄여나가야겠죠.

  

  

 

   다양한 사람들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행복일기』. 이번 달에는 누구보다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임수복 님의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1983년 당시, 개발 지역이었던 천호동의 한 아파트의 경비원으로 일했고, 지금까지 30년을 그곳에서 있었다고요. 이웃 주민들의 뒤통수만 봐도 누군지를 다 알아보고, 동네를 뛰어다니던 아이들의 커가는 모습을 쭉- 보아왔고, '내 동'을 깨끗하고 아름답게 가꾸기 위해 텃밭에 나무를 심고 채소도 심는 경비원 아저씨. 중간 중간 일을 그만두어야 하는 빌미가 생길 때마다 동 사람들이 손을 모아 도우고, 계속 그곳에 있게 해달라고 서명하고 눈물을 지어서 지금까지 일을 할 수 있었지만 12월에 마지막 근무를 마쳤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맘 좋은 경비 아저씨의 말투 그대로 담은 편지에, 아쉬움과 행복함을 바라는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는 이 편지에, 저도 눈물이 핑 돌았네요.

 

 

  『샘터』를 읽다 보면 마음도 참 차분해지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어떤 자기 계발서보다도, 어떤 행복 에세이보다도 더 큰 (언뜻 보면 작아보이지만)행복을 발견하게 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따뜻한 이야기가 많았던 시샘달의 『샘터』. 3월에는 세찬 추위는 날려버린 채 새초롬한 봄을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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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하는 삶 - 개정판
이창래 지음, 정영목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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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하는 삶』 이창래 / 알에이치코리아

'세계와 자아의 균형을 맞춘다'는 변명의 삶

 

 

  실제의 자아와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완벽하게 일치하는 사람이 있을까. 우리는 어느샌가 자연스럽게, 교묘하게 자신을 포장하는 삶을 살고 있다. '척뿐인 삶'이라고 하면 너무 갔지만, '척하는 삶'이라는 말의 위화감이 거의 들지 않는 걸 보면, 지금도 우리는 이런 삶과 너무도 당연하게 연결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척'을 하며 사는 까닭, 그 이유는 꽤 다양하겠다. 물질을 위해서, 성공을 위해서, 사랑을 위해서. 그리고 그 밖의 다양한 이유를 나 자신이 아닌 밖에서 찾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유를 밖으로 돌리는 것을 통해서, 자신의 삶을 정당화할 수 있을까.

 

 놀랍도록 대단한 소설, 이창래 작가의 『척하는 삶』은 아마도 우리와 별반 다를 게 없는 한 사람을 주인공으로 내보이고 있다. 미국의 작은 마을에서 의료기기 가게를 운영하면서, 닥 하타라고 불리며 존경과 신뢰를 바탕으로 살아가고 있는 주인공. 그는 너무나 편안하게 모든 사람의 인정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자신이 입양한 딸, '서니'는 그를 겉돌고 있다. 온갖 필요와 사랑을 모두 주었다고 생각했는데, 왜 딸은 점점 멀어져만 가는지,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은 왜 또한 가까이 다가서지 않는지 의문이다. 그 이유가, 그의 회상 속에서 밝혀진다. 그는 미국에서 살게 된, 한국계 일본인이었다. 어딘가 너무나 복잡하지 않은가. 그는 초반부터 말하기를, 그 작은 동네에 터전을 마련하면서도 '끼어들 수 없다는 느낌'과 어색한 상황 속에서 살아왔다고 한다. 닥 하타, 라고 존경 어린 말을 건네는 사람들 속에서도, 그는 중간 속에서 머무르는 주변인이었다.

 

  소설은 현재 '닥 하타'의 삶을 살고 있는 시점과 과거의 젊은 시절, 일본군에서 군의관으로 일했던 시점을 번갈아가면서 보여준다. 과거와 현재, 서술은 담담하며 침착하지만, 과거의 시점은 너무나도 강렬하다. 일본군에 있었던 '위안부'와 그곳에 있었던 사랑하는 여자 '끝애'와의 이야기를 묘사한다. 그는 그곳에서도 마치 지금과 같은 삶을 산다. 위안소의 여자들을 필요치 않았지만, '끝애'라는 여인은 '필요'했고 소유하려 했다. 어디까지나 중간인으로서 존재했고, 사랑했던 여인마저 구하지 못했다. 그것이 트라우마로 남아 그의 삶을 지배했을까. '척뿐인 삶'을 증오하며 자아와 완벽하게 일치하길 원했던 '끝애'의 행동 (입양 딸인 '서니'는 그녀와 닮았다. 그리고 역시 그와 맞춰가질 못한다), 그리고 그녀를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 나는 그가 죄책감에서 '척하는 삶'의 이유를 찾으려는 것으로 보였다. 그는 이전부터, 그래 왔는데도.

 

   그는 자신의 모든 행동의 이유를 밖으로 돌리면서 위치를 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이 언급될 때, 철저히 거부했다. (닥 하타라는 이름도, 결국엔 자신이 만들어낸 것이었는데도.) 놀랍도록 담담하고, 마치 감정이 없어 보이는 문장은 이런 그의 행동을 묘하게 소름 끼치게 했다. 그토록 큰 풍파를 겪었지만, 너무도 안정되고 편안하게 살아가는 그의 모습 속에서 약간은 아찔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조화와 균형'을 강조하며 살아왔고, 중간인으로서의 삶을 다하면서 세계와 자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던 그는, 어느새 자신도 모를 만큼 자연스럽게 그 균형을 교묘하게 맞추어나갔던 것이다.

"지금은 똑똑히 보이지만, 사실 나는 그 상황의 중요한 한 부분이었다. (...) 사실 무시무시한 것은 우리가 중심에 있었다는 것이다. 순진하게, 동시에 순진하지 않게 더 큰 과정들을 구성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414p)​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쓴 『척하는 삶』속에서 아마도 많은 사람이 '위안부'문제에 집중할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민감할 수 있는 그런 주제와 한국인의 한(恨)을 노골적이지 않고 우회적으로 담담하게 다루고 있다. 교묘하게 피하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철저하게 묘사하는데도), 슬픔과 고통을 그대로 분출하지 않고 조금씩 터뜨려 나가는 것이다. 그러한 서술을 통해, 외적인 상황보다 내적인 감정을 더욱더 충실하게 보도록 만들고 있어서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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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난다는 생각을 할 때 내가 가장 우려했던 것은 모두가 이따금씩 느낄 수 있는 어색함이었다. 예를 들어, 매일 다니는 거리나 가게에서, 또는 다른 경우라면 은은하고 푸릇푸릇한 공원 그 이상일 수 없는 곳에서 주변 환경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것. 사람들이 발을 멈추고 저 사람은 누구일까 하고 생각하는 것 (대부분이 다른 사람의 눈에 띄지 않게 그리한다.)에 대해 의식하고, 그것이 어떤 의미일까 궁리하는 것, 내 생각이든 남의 생각이든 나는 정말이지 이런 식의 생각을 좋아한 적이 없으며, 그래서 내가 이 타운에서 나 자신을 위해 꾸준하게 조성해 온 그런 상황 속에 들어가 있기를 늘 원해 왔다. (...)

그런데 이 모든 조화로운 관계에 당혹스러운 측면이 생겨난 것이다. 이것이 언제 어떻게 생긴 것인지, 실제로 지금도 생겨나고 있는지 어떤지는 나도 모르지만, 뭔가가 진행 중인 것만은 틀림없다. 집 밖으로 나가 마당을 걸으며 지붕의 예각, 따뜻한 색깔, 시간이 아로새겨진 전면을 살필 때마다, 마치 처음 보듯이 새로운 눈으로 볼 때마다, 평생 가야 이런 집을 내 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36p)



대답은 그렇게 하지만, 사실 말소리가 느낌보다 더 깊다. 나는 이제 뭘 `본다`해도 내가 보는 것에 대해 확신을 가지지 못한다. 그것이 현실인지, 아니면 내가 만든 것인지, 아니면 그 중간쯤으로 우리가 삶에 기대한 것 때문에 만들어 놓고 공유하는 환상인지. 아니면 이렇게 묻는 것이 오히려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최대한 버텨 내고 만족하고 목적을 부여하려면, 우리는 무엇을 보아야만 할까? (116p)

나는 선량한 닥 하타에서 괜찮은 노인네에서 저 늙은 동양인이 누구냐로 바뀌었다. 그 질문 (지난 여름 처치 스트리트의 새 식당에서 점심 값을 치르다 그런 소리를 들었다)에는 심각한 악의나 편견은 담겨 있지 않다. 그럼에도 나는 의아해할 수 밖에 없다. 이런 식으로 처량하게 자신의 자리가 줄어드는 것은 나이 든 사람들이라면 모두 겪는 일, 심지어 한창 때는 적당한 위치를 확보했던 사람들조차 겪는 일이 틀림없다. 그러나 내 경우는 시간으로 인해 흐릿해지는 것과도 다르고 현대 생활에서 늙어 가면서 일반적으로 예상할 수 있는 일과도 다르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내가 어떤 사람이냐 하는 것은 둘째 치고, 내가 어떤 인종에 속한 사람이냐 하는 것이 지속적이고 변함없는 사실로 남기 때문이다. 내 얼굴이라는 단순한 항상성. 따라서 나와 같은 사람은 사소한 손실들은 받아들이면서, 삶에서 생기는 위안들에 행복해야 하는 것일까? 아무리 의견이나 감정이 날카로운 사람이라 해도 적어도 나를 속속들이 알고는 있는 사람들을 찾아다녀야 하는 것일까? (280p)

어쩌면 이런 생각 자체에서도 순수의 맛이 나는지도 모른다. 내가 아는 것을 알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주 어린아이가 아니라면 거의 모든 사람에게 기만적이고 위험한 바람이다. 하물며 삶의 가장 먼 영역에 다가가고 있는 사람에게는.... 사실 나 같은 사람은 기억의 모든 조각과 부스러기를 갈망해야 마땅하다. 마침내 자신이 겪은 일들의 우연성이라든가 정황이라든가 얄궂은 면을 인식하고, 그런 일들이 많은 경우 필연적이었음을 인정해야 마땅하다. 어떤 신이 허락을 한다면, 이 모든 일들을 확고하게 움켜쥐고, 그런 풍부한 경험들을 살아냈으니 나는 운 좋은 사람이라고 말해야 한다. 그 경험들 때문에 자신이 되풀이하여 다시 만들어지는 것이고, 가장자리를 향해 천천히 다가서는 걸음에 어룰리게 살짝 고쳐지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내 머릿속에는 멈추는 것, 뒤로 도는 것밖에 없는 것 같다. 아니면 발끝으로 땅을 파며 뛰쳐나가, 노인네처럼 뻣뻣한 자세로 돌아다니다가 절벽 너머로 뛰쳐나가는 것. 툭 튀어 오른 첫번째 바위만 제대로 피해 그대로 자유 낙하를 할 수 있다면, 그 짧은 비행을 즐길 수만 있다면, 나는 정말 감사할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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