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 심청 - 사랑으로 죽다
방민호 지음 / 다산책방 / 2015년 1월
평점 :
절판


 『연인 심청』 방민호 / 다산책방

 심청은 왜 그렇게 살아야만 했을까

 

 

 

   얼마 전 『왜 주인공은 모두 길을 떠날까?』라는 에세이에서 『심청전』에 관련한 대목을 읽었던 게 생각이 났다. '심청'이라는 이름에 '효녀'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따라올 만큼 이 이야기에서 가장 먼저 보게 되는 것은 그녀의 깊은 효심이었다. 그러나 앞에 언급한 에세이에서는 그녀의 효심보다, '서로를 놓아야 자유로워질 수 있는 굴레'에 초점을 맞추었다. 눈이 보이지 않고, 아내도 잃은 예전의 심 봉사는 딸아이를 젖동냥하면서 키워낸 장한 아버지였지만, 심청이가 조금씩 성장하고 아버지를 불쌍히 여기기 시작할 때부터 무기력한 인간이 되었다. 자식을 위해 온갖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바깥'으로 나가는 가장의 모습은 사라졌고, 그들의 비극은 거기서부터 시작됐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그 비극을 떨쳐낼 수 있는 뭔가가 『연인 심청』에 등장하길 바랐다. 무기력한 심봉사와는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을까, 혹여 심청이가 사랑과 자유를 위해서 또 다른 선택을 하지는 않을까. 하지만 소설은 뜻밖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물론, 새로운 설정이 등장한다. 가장 뚜렷하고 큰 역할을 한 주인공이 '심 봉사'와 '윤상'이라는 새로운 인물이다. 우리가 대개 떠올리는 심 봉사의 모습은 단지 무기력하고 능력이 없는 아버지의 모습이나, 이 소설 속에서는 세속적인 인물로 나오며 노름과 여자, 욕망에 빠져 타락한 모습마저 보여주는 인물이다. (심청전에는 다양한 판본이 있는데, 이야기 속의 모습들을 조금 더 극적으로 소설 속에서 조합한 듯 보인다.) 그리고 '윤상'은 심청에게 '연인'이라는 타이틀을 달아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주인공이다. 어릴 때부터 막역한 사이였고, 심청에겐 동경의 대상이자 각자의 슬픔을 나누는 사랑하는 연인이다. 소설 속에서 실제로 그는 심청이가 벗어나지 못하는 (아버지와의 질긴) 굴레를 벗어나도록 권유하고 용기를 북돋우고 있다.

 

 그러나 심청은 그녀의 지겹도록 질긴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 '연인 심청'이 아니라, 아직도 '효녀 심청'이었다. 단지 이야기적인 면에서는 그렇다. 개인적으로 심청전의 재해석이 나온다면, 이야기의 큰 축을 좌지우지하는 주인공의 색다른 선택을 보여주길 바랐다. 그래서 우리가 알고 있는 이야기 그대로 심청이가 아버지를 위해서 인당수에 빠져버리는 장면이나, 어떤 다른 이가 곤경에 처했는데도 아버지의 행복만을 비는 모습에는 답답함에 돌아버릴 정도였다. 하지만 작가는 이야기를 크게 변화시키는 대신에, 심청이가 끝까지 버릴 수 없던 '효심'어린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소설을 각색했다. 일종의 반전, 혹은 비밀을 숨겨둔 것이다. 이 비밀은 불교의 윤회사상이나 업(業)과 관련되어 있으며, 그토록 답답하기 이를 데 없던 심청의 모든 선택은 정해져 있던 삶의 단계를 어쩔 수 없이 밟을 수밖에 없었던 것을 시사해준다.

 

 소설 속에는 불교 사상과 관련되어 표현된 영혼과 삶, 운명에 관한 대사들이나 많은 장면이 아름답고 매끄럽게 펼쳐진다. 한 줄 한 줄 고요하게 마음에 담고 싶던 글도 많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각색의 방법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심청이가 '왜 그렇게 살아야만 했을까'에 대한 이유 대신 '어떻게 살아야 했을까'로, 확 변한 심청이의 모습을 보고 싶었기 때문에 약간의 아쉬움이 있다.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지도 모르겠다.

 

- 현재, 『연인 심청』은 리뷰대회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응모기간이 넉넉하고 상금도 두둑하니

관심있는 분들은 도전해 보시길!

 

 

 

 

 

Copyright ⓒ 2015. by 리니의 컬쳐톡 All Rights Reserved.
서포터즈로 지원받은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쓴 서평입니다.
덧글과 공감은 글쓴이에게 큰 힘이 됩니다.

- 청아. 사람은 크면 부모랑 헤어지게 되어 있어. 누구나 어렸을 땐 부모와 영원히 같이 살고 싶지.

하지만 부모는 늙고 죽어지고 아이들은 커서 새 세상을 만들어.

- 하지만.

청이는 말을 잇지 못한다.

- 하지만?

- 저마다 운명이 다른 것 같아요. 행복하게 살도록 난 사람도 있고.......

- 아냐. 그런 건 없어.

- 아버진 나 없으면 아무 일도 못 하셔서.......

하지만 윤상이는 심봉사까지 같이 살자고 말하고 싶지 않다. 윤상이 마음에 아버지란 존재는 더럽고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더구나 심봉사는 자기가 보기에 아버지라는 말에 어울리는 위엄이 없다.

- 운명이 저마다 타고나는 거라면 우리가 만드는 게 운명이겠지. (87p)

아버지께 드리려던 옷을 윤상이에게 주게 된 것에서 더 애틋한 사랑을 느낀다. 지아비의 옷을 짓는 지어미처럼 청이는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해나간다.

바느질하면서 청이는 아늑한 사랑의 세계로 깊이깊이 내려간다. 그곳엔 따사로운 빛과 천천히 흐르는 물과 널찍한 바위가 있다. 살랑거리는 바람과 새초롬하게 피어난 들꽃들이 있다. 청이는 아무도 없는 그 깊은 계곡 하염없이 물길 돌아가는 절벽 아래 서 있다가, 올려다보니 가파른 벼랑 위로 되돌아갈 길이 막막하다.

모든 것을 단념하고 세속으로 되돌아가려는 한 가닥 미련조차 단념하고, 청이는 그냥 물가에 앉아 헤적이는 햇빛에 반짝거리는 물만 바라보기로 한다.

마음이 더할 수 없이 평온해진다. 생명이 이렇듯 연초록 나뭇잎들처럼 아름답게 반짝일 때 이렇게 훌쩍 떠나는 것도 좋으리. 마음이 명경처럼 고요하고 맑으니 이제 세상과 이별하는 절차도 자기 안에서는 다 끝낸 듯하다. 인생의 허망함이란 굳이 일러 말할 필요가 없다. (103p)

이제 정말 떠나야 하는가.

청이는 마침내 샛별 같은 두 눈을 꼭 감고, 두 손으로 떨리는 치맛자락을 꼭 움켜잡고, 비틀거리는 걸음을 애써 고르며 두어 걸음 배이물 앞으로 다가가, 허공을 향해, 마치 갈매기가 날갯짓으로 공중에 솟았다 바다를 향해 툭 떨어져 내리듯이 풍덩, 바닷물 곳으로 떨어져 내린다. 뱃사람들 모두가 그제야 정신이 깨어난 듯 소리를 내어 운다. 이 슬픈 광경은 오늘의 필치로는 제대로 그려낼 재주가 없다. 옛 문헌은 이것을 이렇게 표현해놓았다.

향화는 풍랑을 쫓고 명월은 해문에 잠겼도다. 영좌도 울고 사공도 울고, 접근 화장이 모두 운다.

장사도 좋거니와 우리가 연년이 사람을 사다 이 물에 넣고 가니 우리 후사가 잘 되겠느냐. 영좌도 울고 집좌도 울음을 울어대며 명년부텀은 이 장사를 그만두자.

그러나 사람의 어리석음이란 한이 없다. 내년인들 이들이 죄 없는 처녀를 용왕께 바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지금 저렇듯 슬프게 울고 있는 이들이 내일이나 모레면 벌써 오늘 일을 잊고 바다를 건너가고 건너오는 사이에 배 곳간에 쌓일 재물 생각으로 근심을 잊고 희희낙락들 하게 된다. 이 웃음이 어리석은 중생의 뜻 없는 웃음일망정 그것이 그네들의 고단한 생애를 견딜 수 있게 하는 명약인 것이다. (142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끝의 시작 오늘의 젊은 작가 6
서유미 지음 / 민음사 / 201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끝의 시작』 서유미 / 민음사

 벚꽃피는 계절, 그리고 이별의 순간

 

 

  '끝은 새로운 시작'이라는 말은 이제 조금은 식상한 문장이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하지만 듣기에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습니다. 안 좋은 어감의 '끝'에 희망을 불어넣는 '시작'이라는 단어가, 둘이 상반된 의미임에도 불구하고 참 잘 어울리기 때문이죠. 그리고 『끝의 시작』이라는 소설의 제목을 보고서도 두 가지 상반된 느낌을 저는 갖고 있었습니다. 첫 번째로, "식상하고 진부하기까지 한 '끝과 시작'을 어떻게 표현해낼까" 하는 느낌, 그리고 두 번째로 '그렇지만 오히려 독특할 수도 있겠다'하는 느낌이었습니다. '끝의 시작'을 삶에 대입해보면, 생각보다 그 상황들이 많지만은 않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상실과 공허, 그리고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이별'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그림이 되겠지만, 책 속의 그림들은 생각보다 풍성하고, 다채롭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현실적인 그림들입니다. 딱히 '공감'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꼭 어딘가에 있을 법한 이야기랄까요.

 

 어머니의 암 투병과 아내의 이혼 통보를 통해 '이별의 유예기간'을 가지고 있는 '무영'

 결혼생활의 무미건조함을 어린 남자와의 밀회로 달래려는 '무영'의 부인 '여진'

 '영무'가 일하는 우편취급국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는 가난한 청춘 '소정'

 

 

 오묘하게 얽혀있는 이들은 각기 다른 모습의 이별 (혹은 끝)을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습니다. 그리고 그 이별까지의 기간을 담아낸 장면들은 무척이나 헛헛한 기분입니다. 어머니의 암 선고와 아내의 이혼 통보가 오직 타이밍일 뿐 어차피 언젠가 찾아올 것이라는걸, 어린 남자와의 밀회가 그리 길지만은 않을 거라는걸, 일도 사랑도 지긋한 현실 속에서는 이상적으로 비치지만은 않을 거라는걸, 그들은 은연중에 실감하면서 언제나처럼 무미건조한 삶을 이어갑니다. 그러나 작가는 그 삶을 마주 보기 힘들 정도로 지독하거나 절망적으로 그려내고 있진 않습니다. 울컥하며 올라오는 이별의 순간도 잔잔한 물결로 찾아옵니다. 거부할 수 없는 순간이 찾아오리라는 것을, 그들은 이미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일까요.

 

 

  "사랑이 끝난 것에 대해, 이별의 이유에 대해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될수록 설명의 방식이 달라진다는 걸, 주관에서 객관으로 옮겨 간다는 걸 깨닫게 될 뿐이었다." (138p)

  이별의 순간과 함께한 '벚꽃 피는 계절'은 눈 깜짝할 사이에 다시 흘러가 버립니다. 마치, 나무에 화려하게 매달려 있던 꽃잎들이 어느 순간 모두 바닥에 떨어져 흙과 물과 섞여서 원래 꽃잎인지도 모를 만큼 흩어져 버리는 것처럼 말이죠. 그러나 어느 순간 반짝이며 빛나는 뜨거운 태양이 찾아오고, 즐거운 계절이 찾아옵니다. 거짓말처럼 시간이 흘러서, 어느새 새로운 계절의 시작으로 들어섭니다. 화려하고 향긋했던 벚꽃의 잔상은 이미 남아있어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를 조금씩 건들긴 하지만, "슬픈 건 슬퍼하고 잊을 건 잊고 좋은 일엔 기뻐하자 (172p)"라는 소설 속 말처럼 다들 그렇게 살아가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Copyright ⓒ 2015. by 리니의 컬쳐톡 All Rights Reserved.
출판사에서 지원받은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쓴 서평입니다.
덧글과 공감은 글쓴이에게 큰 힘이 됩니다.

 

"우리...... 그 일도 잘 이겨 냈잖아. 앞으로 잘 지내다 보면......"

"내가 좀 살고 싶어서 그래." 여진의 말투는 단호했다. 입가에 우유 거품이 조금 묻어 있었다.

영무에겐 이혼 자체보다 타이밍이 더 가혹했다. 며칠 동안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마음 졸이며 지냈다. 혼자서 엄마의 발병과 상태의 심각성을 감당해야 했고 항암치료를 하지 않겠다는 결정도 내려야 했다. 버거운 시간이었고 여진에게 위로 받고 싶은 마음도 얼마쯤 있었다. 위로나 격려로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다는 걸 아는데도 그랬다. 오래전, 영무가 모르던 어느 순간부터 그 밤을 향해 한쪽에서는 폐암이, 다른 쪽에서는 이혼이 달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병원에 먼저 왔기 때문에 폐암을 일찍 만나고 오늘에서야 이혼을 만나게 된 것뿐이다. 시간을 늦출 수는 있지만 어느 것도 피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 그를 기운 빠지게 했다. (28p)

"그동안 수고한 인턴들에게 박수 좀 쳐 주자고."

팀장이 주머니에 찌르고 있던 손을 꺼내 박수를 치자 직원들이 일제히 수고했어요, 하며 박수를 쳤다. 누군가는 휘파람까지 불며 환호했다. 박수 소리가 예상보다 커서 기분이 이상했다. 소정은 눈물이 날 것 같아서 눈을 여러 번 깜박거렸다. 3개월 동안 같이 지냈는데 앞으로 못 본다는 게 슬픈 게 아니라 마지막 날까지 옮겨 갈 곳을 정하지 못했다는 게 서글펐다. 월말이긴 하지만 모두가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는 1월에 백수가 되는 건 추운 일이었다. (37p)

샤워 후 몸에 밴 냄새를 모두 지우고 나면 엄마는 물기를 말린 뒤 플라스틱으로 된 커다란 헤어롤을 머리 전체에 말았다. "어때? 괜찮아 보여?"

엄마가 물을 때마다 영무는 고개를 끄덕였다. 헤어롤과 붉은 립스틱, 손톱과 발톱에 바르는 진한 색 매니큐어는 그의 취향이 아니었지만 그렇게 해서 살아갈 힘을 얻을 수만 있다면 좀 더 진하고 붉어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예뻐요." 그러면 엄마는 흡족해하며 웃었다. 살아 있고 살아간다는 건 이상한 일이었다. 몸에 바른 색은 지워질 것이고 다시 냄새가 날 테지만 그것에 굴하지 않고 꾸준히 다른 색으로 칠하고 새로운 향수를 뿌린다. 그게 견디는 방법인지 그렇게 하는 것이 견디게 만드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엄마는 살아가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영무는 거울 앞에 앉아 있는 엄마를 이따금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거대한 벽 앞에서 엄마는 어떻게 우회했을까. 궁금했지만 한 번도 묻지 못했다. (103p)

4시에 여진은 냉장고에서 와인을 꺼내 개봉했고 살짝 눅눅해진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올해도 꽃구경은 글렀구나 싶었다. 석현이 술이 깨지 않은 상태에서 던진 말일 가능성이 컸지만 그 순간에는 꽃을 보러 가자는 말을 의심하지 않았고 진심으로 받아들였다. 밤의 연인인 그들에게 한낮의 데이트라는 건 확실히 꿈같은 면이 있었다. 사실 이 만남 자체가, 일주일에 한두 번씩 만나 밤을 같이 보낸다는 것 자체가 봄날 같고 꽃놀이처럼 황홀했다. 꽃이란 영원하지도 않고 영원할 수도 없고 그 아름다움이 금세 사라지기 때문에 매혹적이고 감탄이 나오는 것이다. 이 만남과 이 시절도 그렇게 받아들이기로 결정하자 꽃을 보지 못하는 게, 꽃잎이 떨어지는 게 견딜 만해졌다. 여진은 통 안에 담긴 샌드위치를 천천히 먹어 치웠다. 이 너그러움이 취기와 포만감에서 비롯된 일시적인 감정이 아니길 바랐다. (159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마일, 스미레
모리사와 아키오 지음, 이수미 옮김 / 샘터사 / 2014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스마일, 스미레!』 모리사와 아키오 / 샘터

 거침없이 로우킥, 거침없이 스마일!

 

 

 사실 '힐링'이라는 말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데다가 무작정 이것저것 '힐링'을 붙이는 것에 혀를 끌끌 차던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소설을 읽을 때만큼은 예외인 것 같다. 대개 사람들은 어두운 이야기보다 따뜻한 이야기를 찾는다. 어둡고 질척한 이야기에 유독 몰입해서 그 기분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감성적인 사람들은, 그 책을 읽는 것만으로 힘들고 괴롭다. 반대로 따뜻한 이야기들은 온몸으로 받아들인다는 장점이 있을 것이다. 허구로 만들어진 희망과 기쁨을 어떤 비아냥거리는 태도 없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비뚤어지지 않은 사람들. 때로는 그들이 참 부럽게 느껴진다. 

 

 나는 힐링과 희망을 불러일으키는 소설들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위에 말했던 비뚤어진 마음으로 "너무 식상한데-"하고 핀잔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모순적으로, 가끔 이런 책들도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두운 소설들을 읽고 깨달음을 얻었다면, 잠시 힐링을 주는 메시지로 유쾌함을 얻어야 한다는 걸, 몇 권의 힐링 소설을 접하면서 느끼고 있다. 사람들이 '모리사와 아키오'라는 작가의 이름만으로 그의 책을 찾는 것은 말 그대로 행복을 찾는 여행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행복을 찾으려는 희망이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는 책을 통해서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다른 사람들의 글을 통해 접한 작가의 스타일은 '힐링'과 '따스함' 그대로였고, 『스마일, 스미레!』도 비슷한 느낌이다. 끈적끈적하고 흐릿한 도쿄의 일상을 바쁘게 살아가는 주인공 '스미레'. 그녀는 자그마한 좌절도 겪었지만, 1인 음악기획사 사장으로 자신의 일을 충실히 하며 살아가는 당찬 여성이다. 말 그대로 '캔디' 스타일이다. 아무리 지독한 문제가 찾아와도 슬픈 감정에 잠식해버리지 않고, 매일매일 운세를 확인하며 다가올 일상이 즐겁기를 바라고, 맘에 안 드는 것이 있다면 거침없이 로우킥을 날려버리는 쿨한 '스미레'.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인생에는 굴곡이 있는 법. 그에게도 절망적인 사건이 찾아온다.

  그러나 한가지 잊은 것이 있나니. 그녀의 이름은 'Smile'을 일본식으로 읽은 발음 '스미레'인 것이다. 다가오는 슬픔 앞에서 일어설 수밖에 없는, 아무리 슬픈 일이 있어서 웃을 운명을 타고난 이름의 소유자인 것이다. 인생의 모토이자 그녀의 이름의 의미 'Smile'과 함께 힘이 되어주는 것은 역시 '사람'이다. 사람을 통해서 절망과 아픔을 느꼈다면, 또다시 사람을 통해서 그녀는 슬픔을 걷어버리고 일어난다. 

  소설 속에서 반복되는 '과잉'과 '공허', 일본의 도쿄를 지배하고 있는 단어인 이 둘은 행복의 길을 방해하면서 출렁거리며 유혹하는 걸림돌이다. 주인공 '스미레'는 누구보다 적극적인 행동으로 행복을 찾아가면서, '과잉'과 '공허' 사이 중간쯤에서 알맞게 머무르기를 꿈꾸고 있다.

 

 

Copyright ⓒ 2015. by 리니의 컬쳐톡 All Rights Reserved.
서평단을 통해 받은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쓴 서평입니다.
덧글과 공감은 글쓴이에게 큰 힘이 됩니다.

 

"있잖아, 료."

차가운 유리에 이마를 딱 붙인 채 바로 옆에 있는 얼굴을 본다.

"응?"

"이런 멋진 경치를 보면 뇌에 여러 생각이 한꺼번에 떠올라서 순간적으로 머리가 멈춰버려. 감동은 조금 시간차를 두고 서서히 느껴지는 것 같지 않아?"

"아아, 그럴지도 모르겠어. 어른이 되면 마음보다 머리가 먼저 반응하니까."

"마음보다, 머리가......."

"응, 어른들이 머리보다 가슴으로 판단하게 되면 세상이 훨씬 더 즐거워질 텐데."

"그러게, 정말." (33p)

문득 발밑에서 유리구슬 하나가 푸른빛으로 신비롭게 빛났다. 아이가 주웠다면 좋아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나도 어릴 때 종종 이 무수한 표류물 속에서 `보물`을 찾으며 놀곤 했던가?

잔물결의 바다 거품이 터지는 쏴아 하는 소리에, 즐겨 마시던 크림소다를 떠올렸다.

어깨를 짓누르는 여행 가방을 흰 모래 위에 털썩 내려놓고, 양손을 하늘을 향해 뻗고 기지개를 켰다. 겨울 오후 햇살이 수면에서 하늘하늘 흔들리고, 얕은 여울에서 숭어가 퐁당 튀어 올랐다. 원래는 이 바다 너머로 후지산이 보인다. 하지만 오늘은 숨어있다. 하늘은 맑아도 대기에 수분이 많아 옅은 안개가 낀 모양이었다.

나는 맑은 공기를 폐로 힘껏 세 번 빨아들였다가 다시 토해냈다. 2년만에 맞는 바닷바람이 세포 구석구석까지 들어와 도시에서 쌓인 침전물을 씻어내줄 것만 같았다. (111p)

지금 생각하면 나는 도쿄라는 도시의 온갖 `과잉`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공간을 밀어젖히며 살아왔던 것 같다.

도쿄는 밀도가 높다. 물질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농밀하다. 흥겹고 늘 자유롭지만, 이따금 나 자신의 호흡과 리듬에 위화감을 느낄 때도 있다.

주위에 사람이 많아서 즐거울 텐데도 문득 마음 안쪽을 들여다보면, 어두컴컴한 곳에 외톨이가 된 내가 무릎을 끌어안고 앉아 있을 때가 많았다.

밤을 밝혔던 화려한 네온사인이 꺼지고 신선한 새벽빛에 감도는 허무함을 느껴을 때, 도쿄는 참 신비로운 곳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과잉`과 `공허`는 종이 한 장 차이인지도 모른다.

도쿄타워에서 본 야경을 떠올렸다. 그날 밤 내가 받아들이기 힘겨웠던 것은 `과잉` 뒤로 보였다가 사라지는 `공허`였다. (116p)

늦잠의 행복을 음미하며 지난밤의 라이브를 생각했다. 하루토, 밋치, 도시짱, 링코와 미사키, 서포트 멤버들, 관객, 점장과 유키씨, 음향과 조명 담당. 그리고 나.

많은 눈물과, 그보다 더 많았던 웃음. 그곳에 있는 사람 모두가 공통으로 느꼈던 그 신비로운 기분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잘 표현할 수는 없지만, 영혼의 어떤 근원 같은 부분이 다정한 온기에 스르르 녹아 어느새 모두 하나로 연결된 듯한, 그런 달콤하고 신선한 쾌감이었다. (250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이오그래피 매거진 2 김부겸 - 김부겸 편 - 경계境界를 경계警戒하다, Biograghy Magazine
스리체어스 편집부 엮음 / 스리체어스 / 201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바이오그래피 매거진』 ISSUE 2. 김부겸 / 스리체어스

 "경계境界를 경계警戒하다"

 

  

 

 한 호에 한 인물을 소개하는 획기적인 『바이오그래피 매거진』. 1호 '이어령'편에 이어서 2호는 '김부겸'이 장식했다. 1호를 장식한 인물도 예상 가능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번 '김부겸' 편을 보고 조금은 의아했다. 먼저 말하자면, 나는 정치를 잘 모른다. 선거 때마다 반짝, 그리고 특별한 사건이 있을 때마다 반짝했다가, 곧 수그러진다. 무언가의 옳고 그름은 판단할 수 있지만 내가 원하는 세상을 그리기 위한, 틀 잡힌 생각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싫어하는 정당은 있지만, 지지하는 정당은 없다. 그렇게 소심하게 세상을 살고 있는 나에게 '김부겸'은 작년 총선에서 연예인인 딸과 함께 유세 하던 장면으로만 기억에 남아 있었다.

 

 

 

 사실, 이번 호를 받아보고선 조금 놀랐다. 한 권의 책이라면 모르지만, 한 호에 한 인물을 이야기하는 잡지에서 정치인이 떡하니 등장하다니 리스크를 감수하고 가는 게 아닌가. 대체 왜 이 인물을 택했을까. 일단은 이 사람에 대해 정확히 알아야 할 것 같다. '김부겸'이라는 인물은 정치인이다. 날 때부터 대구 토박이였지만 다른 사람들과 사뭇 다른 길을 걸었다. 호남 세력이 주류인 정당에 들어갔지만,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사람은 그까지 해서 세 명밖에 없었다. 정치하다 보니 어쩌다 들어간 한나라당에서는 평생 떼지 못할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이름표를 붙여 왔다. 안정적인 곳에서 재선을 통해 정치인생을 계속 할 수 있었으나, 이제는 "보수 진영인 텃밭 대구에 민주당 기호를 달고 나왔다." 그리고 낙선했다. (그러나 또다시 도전하려 한다.)

 

 

 "경계境界를 경계警戒하다"라는 제목이 붙은 이번 호는 한 인물의 인생을 통해서 전편보다도 확실하게 우리 사회를 꾸짖고 있는듯했다. 끊어질 듯하면서도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는 우리나라의 고질병, 지역주의는 안과 밖을 나누는 경계境界다. 보수 진영이니 진보 진영이니 중요하진 않다. 그 보이지 않는 경계가 너무나 엄격하고, 그 지역 내에서는 너무나 당연시되고 있다. 매거진 속에 무작위로 뽑아놓은 일반인들의 코멘트 - 특히 그가 총선에서 도전하고 있는 대구 시민들의 - 를 보면, 지역을 나누는 울타리가 무섭게도 두텁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경계境界를 기필코 뚫으려고 하는 사람이 바로 '김부겸'이다. 

 

 

 

 

 

  정치인을 다룬 만큼 중간중간에는 한국 정당의 역사와 정치 광고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리고 김부겸 같은 경계인境界人들의 목록을 적기도 했다. 1호에서도 그랬듯이, 『바이오그래피 매거진』은 누군가에겐 관심이 없을 법한 분야를 흥미로운 방법으로 전달하고 있다. 다양한 편집, 디자인의 방법으로 말이다. 눈이 참 즐겁다.

 

 이 한 권의 분량으로 그의 삶이나 인성을 정확히 평가할 수는 없지만, 그가 겪어온 인생과 그가 바라보고 있는 인생이 남다르고 수긍이 가기도 한다. 정치인생을 걷는 내내, 그에게는 수많은 이름이 붙었다. DJ 앞잡이, 빨갱이, 한나라당 출신, 철새 정치인....... 이런 이름을 붙인 한국 사회의 "경계境界를 경계警戒"하면서 그는 새로운 도전을 하려고 한다. 군가는 쓸데없는 객기라고 할 도전일 수도 있겠지만,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에 끝까지 도전하는 용기가 멋있어 보이기도 한다. 다가올 총선에서의 그의 행보가 기다려진다.

 

  "국회의원이 직업은 아니잖아요. 특정한 시기에 부여받은 일시적 대표일 뿐이지. '국회의원을 직업으로 삼기 시작하면 초라해진다. 내가 이런 정치를 하려고 한 건 아니지 않느냐. 대구 가서 마지막 도전을 해 보겠다.' 이렇게 마누라한테 사실상 강압을 했죠." (96p, 김부겸 인터뷰 중)

  

 

- 1호, 이어령 편 리뷰.

 

 

Copyright ⓒ 2015. by 리니의 컬쳐톡 All Rights Reserved.
출판사에서 지원받은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쓴 서평입니다.
덧글과 공감은 글쓴이에게 큰 힘이 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스 - 평범한 인생을 송두리째 뒤바꾼 50편의 비밀스러운 이야기
에덤 고프닉.조지 도스 그린.캐서린 번스 엮음, 박종근 옮김 / 북폴리오 / 2015년 1월
평점 :
절판


『모스』 애덤 고프닉, 조지 도스 그린, 캐서린 번스 편저 / 북폴리오

비밀스러운 이야기로 공감하는 '스토리텔링 콘서트'

 

 

 

   매주 일요일 저녁이면 우리 집 거실에 TV가 켜진다. 아빠가 좋아해서 챙겨보는 「강연 100℃」의 방영 날이다. 삶의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는 사람들이 한주에 몇 명씩 나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관중들은 감동이 이는 부분에서 손뼉을 쳐 응원한다. 나는 이 프로그램에 그리 관심이 없는 편이었다. 아니, 조금 삐딱하게 바라본 면이 없지 않아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예상하던 부분에서 반복적으로 나오는 박수, 너무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 때로는 매끄럽지 않고 어리숙해 보이는 강연들. 아마도 내게 '강연'이라는 말의 무게가 몹시 커 보였던 것이 분명하다. 무언가 대단한 목적을 이룬 사람만이 다수에게 인생의 노하우를 전해주기 위해서 웅장하고 큰 무대에 서는 것이 오직 '강연'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단한 목적'의 정도가 과연 무엇일까? 어느 하나 분명하지 않은 잣대에 나는 큰 착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언뜻 본 「강연 100℃」에는 유명한 사람도, 유명하지 않은 사람도 등장한다. 나는 제목의 뒷부분, '100℃'에 집중했어야 했다. 프로그램의 목적도 바로 그것일 테니까.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끼리의 감정 공유, 그리고 공감. 「강연 100℃」는 자유롭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따뜻한 이야기 나눔터였다.

 

  『모스』또한, 비슷한 취지의 프로그램이었다. 원래는 한가한 시골 마을에서 펼쳐졌던 스토리텔링 이벤트였지만, 지역을 넘어 뉴욕의 큰 도시로 장소를 옮겨서 실행되었고 팟캐스트를 통해서 세계인과 만나게 되었다. "THE MOTH", 빛나는 전구 주변으로 모여드는 나방들을 연상해서 이 이벤트는 '모스'라는 이름이 붙었다. 강렬하고, 특별한 자신의 이야기를 관중들에게 털어놓고, 관중들은 이야기의 끝에 웃음과 함께 강연자에게 박수갈채를 보낸다. 강연자가 이야기하는 내내 조용히 듣고, 어떤 표현이나 감탄을 보내지도 않는다. (이 부분은 「강연 100℃」와 조금 차이가 나는 부분이다.) 솔직한 이야기를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이 이벤트에서 가장 중요한 '공감'이라는 능력을 서로 발견한다. 그리고 이 책은 실제로 있었던 강연의 내용을 글로 펴낸 것이다.

 

 수록된 50편의 이야기는 모두가 '실화'라는 점에서 더욱 흥미롭고 깊게 와 닿는다. 허무맹랑할 정도로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들도 많지만, 현실이란 허구보다 더욱 잔인하고 때로는 더욱더 거대한 반전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해준다. 유명인들의 이야기도 있지만, 일반인들이 예상치 못하게 겪은 이야기들이 더욱 많아 '공감'이라는 취지에 더욱 부합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짧디짧은 이야기 속에 담은 다양한 사람들의 인생이 모여 더욱더 특별한 공간을 만든다. 강연자는 나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말들을 솔직하고 진중하게 풀어내고, 청중은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때로는 자신의 삶과 연결하며 관계를 맺는 스토리텔링 콘서트, '모스 (MOTH)'. 이런 자리가 곳곳에 존재한다면, 세상의 아픔은 조금이나마 치유될 수 있을는지.

 

 

 

 

Copyright ⓒ 2015. by 리니의 컬쳐톡 All Rights Reserved.
서포터즈로 지원받은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쓴 서평입니다.
덧글과 공감은 글쓴이에게 큰 힘이 됩니다.

 

저는 충격에 빠졌습니다. 그때 제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정확히 기억할 수는 없지만 나의 도시와 가족을 파괴하고 있는 전쟁을 더는 못 견디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곧장 안쪽으로 걸어가 피아노를 부수고 있는 군인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제발 그만하라고 크게 소리쳤습니다.

"그러지 마세요, 매우 비싼 악기들이에요. 이건 앞으로 여러분의 아이들과 또 그 아이들의 아이들을 위해 쓰일 악기라고요. 들어보시겠어요? 이 악기들이 어떤 소리를 내는지를요. 원하시면 지금 연주해드릴 수도 있어요."

군인들이 갑자기 조용해지더니 저를 쳐다보았습니다. 저는 피아노 앞에 앉아 「월광 소나타」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몇 사람은 바닥에 앉았습니다. 나머지는 가까이 다가와 건반 위에서 움직이는 제 손을 구경했습니다. 연주가 끝나자 군인 한 명이 타지키스탄 민요를 연주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처음 방 안으로 들어갔을 때 그들은 전부 러시아말을 하고 있었지만 그 군인은 타지키스탄 말로 부탁했습니다. 제가 연주를 시작하자 군인들은 연주에 맞춰 다함께 노래를 불렀습니다. 마치 합창단 같았습니다. (96p)

넌 입양아란다, 넌 입양아란다, 넌 입양아란다!

그 순간 끼-익 하고 세상이 완전히 멈췄습니다. 침대에 누워 인생의 모든 것을 따졌던 3년 전이 떠올랐습니다. 공허함의 정체가 밝혀졌습니다. 그 잃어버린 고리가 저를 미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제가 모르는 유일한 한 가지였습니다. 공허함은 이제 채워졌습니다. (...)

그래서 다짐했습니다. "좋아, 다시 죽도록 우울해지기 전까지 진짜 미친 짓이나 하나 해보자. `난 버림 받았어, 난 쓸모가 없어, 난 아무것도 아니야, 사랑하는 엄마도, 아빠도 없어.`라고 생각하는 어린 고아들과 입양아들을 위해 음악을 만들어야 해." (168p)

모든 것은 이렇게 작디작은 희망에서 시작됩니다. 하지만 희망은 쌓입니다. 여기서 조금, 저기서 조금, 그러다가 희망은 마침내 벗어나기 힘든 어떤 것으로 변합니다. 바로 부정입니다. 우리 가족의 반응은 극단적이었지만 최악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자랑스러워할 수 있었고, 어떻게든 다시 사랑할 수 있는 훌륭한 존재가 되는 것이 해결책이라 생각했습니다. (...) 삶은 그래도 흘러간다고 애기하지만 저의 삶은 그대로 서서히 멈췄습니다. 제 미래, 제 욕망, 제 슬픔은 무시했습니다. 생각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저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날마다 귓가에 나타나 이렇게 속삭였습니다. `포기하지마, 도망치지 마, 거의 다 왔어. 변하지도 성장하지도 마. 다른 마음은 절대로 먹지 마. 그러면 그들을 영영 되찾을 수 없을 거야!` (318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