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차를 타는 당신에게 - 마음을 다잡는 특별한 이야기들
서주희 지음 / 샘터사 / 201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첫차를 타는 당신에게』 서주희 / 샘터

 마음을 다잡는 특별한 이야기들

 

 

 
 
 
▒ 책을 읽고 나서.
 
 일본의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작은 목표나 계획을 정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딱 하나 자신과의 약속을 정해서 꼭 실천하기로 했죠. 그것은  "매일 첫차를 타고 출근한다."라는 다짐이었습니다. 매일 새벽 5시, 첫차를 타고 조용한 그곳에서 책을 읽고 번역을 했다고 합니다.  『첫차를 타는 당신에게』에 나오는, 제목과도 관련된 아주 인상 깊은 에피소드였습니다. 하루의 자투리 시간, 누군가는 부족한 잠을 때우기 위해서 침대에서 꿈틀거릴 때, 그는 남들보다 먼저 하루를 시작했고 내일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비록 조그만 습관이었지만, 그것의 더께가 어언 30년이 되었을 때, 그 사람은 얼마나 달라져 있었을까요?
 저도 의지가 참 약한 사람에 속합니다. 잠도 어찌나 많고 잠귀도 어찌나 어두운지, 매일매일 일어나기가 정말 쉽지가 않습니다. 꾸준히 유지해오던 생활패턴이 있어도 쉬는 날엔 10시간 이상을 내리 잘 수 있는 강력한 수면제지요. 학교 다닐 땐 '지각대장' 소리를 많이도 들었고, 일어나야 할 때 "5분만 더"라는 말을 달고 살죠. '부지런함'이 저의 가장 큰 숙제와도 같은데, 참 고치기가 어렵습니다.
 다양한 에피소드가 담긴 이런 에세이를 읽게 되면, 처음에는 "아, 식상하다-"며 핀잔을 주다가, 갈수록 "좋은 말도 많은데?"하고 말을 바꾸게 됩니다. 그리고 배움보다는 실천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게 되죠. '세계의 엄청난 부자들이 오히려 적은 돈을 소중히 한다는 것', '마오쩌둥이 식량 생산을 늘리기 위해 참새를 박멸하는 '타마작' 운동을 벌인 어리석은 사건', '최초 에베레스트 등정의 이름표를 양보한 한 셰르파'의 이야기……. 세상엔 정말 본받을 사람도 많고, 받아들일 교훈들도 많습니다. 오로지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떤 방법으로 나에게 적용하느냐는 것이겠죠. 저는 이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한 번에 머금으려 하지 않고, 먼저 하나만 골라서 되새기며 실천하려 합니다.
 

​Written by. 리니

한국 에세이/ 힐링 에세이/ 좋은글.

서포터즈를 통해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한번 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다 하지만, 글로 쓴 것은 그보다 더 지우기 어렵습니다. 더구나 사이버 공간에 남아 있는 것이라면 그 처리도 만만치 않습니다. 기록된다는 것만으로도 무서운데, 내가 세상에서 사라진 뒤에도 증식되어 도처로 퍼져나갈지 모른다니, 죽어서도 찜찜한 일입니다.

삶을 정리해야 한다면, 이제 그 범주 안에 사이버 공간 역시 포함해야만 할 것 같습니다. 그러니 말을 뱉든, 글을 쓰든 신중해야 합니다. 그 원칙은 동일합니다. 언제나 책임질 수 있는 말만 하자는 것입니다. (66p)

현상을 잘못 파악하면 그릇된 판단을 내리게 됩니다. 그런 실수를 하지 않으려면 눈앞의 현상뿐 아니라 그로부터 파생될 수 있는 갖가지 문제들 그리고 그것들을 포함하고 있는 `전체`를 알아야 합니다. 생물체는 물론이거니와 이 세상의 모든 현상 또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까닭입니다. 넓은 시야를 가진 사람은 어떤 문제든 전체의 한 부분으로서 파악하며, 그만큼 현명한 판단을 내릴 확률도 높습니다.

조그맣게 보이는 빛만 쳐다보지 말고 터널 밖으로 나가세요. 밝은 하늘 아래에서는 무엇이든 보다 더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을 것입니다. (112p)

​내가 아닌 사람들은 전부 나와 다른 성격, 다른 생활 습관,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매우 당연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그 `다름`에 분노합니다. 그들에게 있어 자신과 다른 종교, 출신 지역, 소득 계층, 피부색 등은 곧 틀린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자기만의 세계가 옳다고 생각하는 이런 사람을 가리켜 우리는 편협하다고 합니다. `내가 아닌 사람`의 `나와 다른 생각`을 존중하는 것이야말로 다수가 함께하는 사회생활의 기본 덕목임에도 그것을 갖추지 못한 것입니다. (116p)


​성공에 이르는 데 있어 우리가 기억해야 할 말은 한계점이 아니라 임계점입니다. 임계점이란 물리학 용어로, 간단히 설명하자면 물질의 고유한 성질이 바뀌는 온도나 압력, 혹은 변하는 그 지점을 의미합니다. 물을 예로 들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액체상태인 물은 100도가 되면 기체 상태인 수증기로 변합니다. 따라서 100도가 바로 임계점인 셈입니다. 물이 100도에서 끓는다는 점은 누구나 아는 과학 상식이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참 놀라운 사실입니다. 99도, 99.5도 그리고 99.99......도일 때까지만 해도 이전처럼 액체로만 존재했던 물질이 100도가 되는 순간부터 기체로 변한다는 게 참 신기하지요. (171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양이인 척 호랑이
버드폴더 글.그림 / 놀 / 201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양이인 척 호랑이』 버드폴더 / 놀(다산북스)

어떤 모습이든 즐겁게 살아간다면

  

 

 

 

 ▒ 책을 읽고 나서.

 동화(童話)는 더 이상 어린이들만의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요즘은 어른들에게 더 반짝 인기를 끌고 있는 듯하다. 얼마 전 드라마에서 나와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에드워드 툴레인의 신기한 여행』도, 내가 자주 보고 있는 다음 웹툰의 『안녕! 바북아』도, 그리고 조금 분량이 있는 『인디고 고전 시리즈』도 동화적인 감성을 자극하는 것들이다. 세상이 각박하고 모두가 바빠졌기 때문일까. 무거운 고민이 (대개는) 없어 보이지만, 짧디짧은 내용 속에 생각할 거리가 담겨 있음에도 불구하고 읽기가 편하다. 그래서 나도 무거운 책들 사이에 하나씩은 끼워서 읽고 있다.

 

  

  『고양이인 척 호랑이』는 '버드폴더'라는 일러스트레이터가 트위터에 연재한 동화를 묶어놓은 것이다. 한 페이지에 그림 하나, 그리고 한 줄에서 세 줄 사이의 예쁜 문장들이 동심을 자극하고 있다. '눈이 어두운 할머니가 주워와 함께 살게 되었지만 (할머니가 놀랄까 봐) 고양이인 척하는' 호랑이는 다시 '호랑이인 척하는 고양이'와 만나, 새롭게 친구가 되고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고 성장해 나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서커스 장면도 등장하고, 다분히 판타지적인 설정도 등장하지만, 귀여운 이들의 모습과 그림 속에서 마음이 따뜻해진다.

 

 

 

 

 사실 어떤 책이든 마찬가지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심오하고 깊이 있는 주제를 찾을 수 있다. 별 무겁지 않아 보이는 이런 동화책도 그렇다. 생존하기 위해서, 또는 강해지고 싶어서 이들은 모습을 바꾸어 세상에 맞춰 살아가게 되었지만, 서로의 모습을 이해하며 살아가는 '고양이인 척 호랑이'와 '호랑이인 척 고양이'의 우정이 참 정겹게 느껴진다. 인간의 모습을 닮아 있는 (아니면, 우리가 잊고 있는 모습들을 가진) 동물들의 이야기 『고양이인 척 호랑이』는 "어떤 모습이든 즐겁게 살아간다면 -"이라는 가정을 던져주고 있는 것일까.

 

 

​Written by. 리니

일러스트 에세이, 동물 감성 동화 

서포터즈로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브릴리언스
마커스 세이키 지음, 정대단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1월
평점 :
절판


『브릴리언스』 마커스 세이키 / 황금가지

두려움의 대상인가, 조금 다를 뿐인가

 

 

 

 

 

 

▒ 책을 읽고 나서. 

 

 '돌연변이'에 관한 SF 소설이나 영화는 무척이나 많이 등장해왔다. 이 소재는 온갖 상상력을 발현시켜서 흥미진진함을 더하는 동시에 사회를 비판하기에 아주 효과적으로 작용한다. 조금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비판받고 분류되며, 대개는 파괴를 당하는 생명 경시의 풍경 ……. 『브릴리언스』도 마찬가지다. '브릴리언스'는 돌연변이 인간을 부르는 소설 속의 용어인데, 이들은 외모적으로는 보통 인간과 다를 게 없고 오로지 다양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현실에서 보자면 '서번트 증후군'(savant syndrome : 장애를 가지고 있음에도 특정 영역에서 그 장애와 대조되는 천재성이나 뛰어난 재능을 보이는 증후군)과도 비슷한데, 조금 더 상상을 덧입혔다. '벽을 통과할 수 있거나, 알고리즘을 만들어내는데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거나, 사람들의 행동 패턴을 기가 막히게 알아챈다거나, 수학적인 능력이 상상을 초월하는 재미있는 능력들이 등장한다.

  이들을 국가에 도움이 되는 인재로 키워낸다면 가장 좋으련만 역시나 정부는 그들을 그대로 놔두지 않는다. 그리고 점점 브릴리언트들의 영향력이 거세지고,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편법을 쓰는 그들도 생기면서 사람들도 그들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인식하기 시작한다. 특별한 점은 이 '브릴리언트'들에게도 등급이 나뉜다는 점인데, 정부는 이것을 이용하여 그들을 통제하기 시작한다. 가장 뛰어난 능력을 가진 1급, 그리고 보통 인간들보다 일부 능력이 조금 뛰어날 뿐인 그다음 등급들. 정부는 이러한 1급 '브릴리언트'들을 어릴 때부터 검사를 통해 '아카데미'라는 기관으로 보내 사회에서 격리한다.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소재와 전개의 소설이 빛을 발할 수 있었던 것은 엄청난 몰입감을 주는 필력 때문이기도 했지만, 주인공의 위치가 아주 큰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닉 쿠퍼'라는 주인공은 1급 브릴리언트이면서 정부에 협조해 같은 브릴리언트들을 체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어느 날 그의 아이가 특별한 능력을 발휘해 1급 브릴리언트라는 의심이 피어오르기 시작하면서 혼란이 온다. 여기서 아이에게 하는 말이 참 우습다. "사람들이 전부 다 다르다는 건 알고 있지? 어떤 사람들은 키가 크고 어떤 사람들은 작아. 누구는 금발이고 누구는 아이스크림을 좋아하지. 그리고 이 모든 차이는 옳거나 그르거나, 좋거나 나쁜 게 아니야.(140p)"라고 말하는 그의 모습이 브릴리언트를 사냥하는 모습과 겹쳐지면서 아이러니한 상황을 연출하는 것이다. 이후, 아이를 아카데미에 보내지 않는 대신, 그들의 우두머리를 홀로 테러하기로 거래한 주인공이 브릴리언트들을 만나고, 진실을 마주하면서 하는 선택의 광경은 더욱 흥미롭다.

 자신은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믿었지만, 조금씩 밝혀지는 비밀들을 접하고 되물을 수밖에 없는 여러 질문이 이야기를 전개하는데 크나큰 역할을 하게 된다. "나는 그들의 적인가, 아군인가.", "진실인가 권력인가"와 같은 주인공의 딜레마를 끊임없이 반복해서 보여주면서, 우리 시대에도 중요한 질문 '다른 것은 과연 틀린 것인가.' 라고 묻고 있는 소설 『브릴리언스』. 앞으로 다가올 상황이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데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몰입감을 주는 영화 같은 소설이다. 묵직한 600페이지의 소설이 단숨에 넘어갔다.

 

 

 

 

  - 장(章)이 넘어갈 때마다 소설의 상황에 맞춘 각종 글들이 등장한다. 뉴스 기사, 인터뷰, 광고 ……. 이것 또한 소설에 재미를 더한다.

 

 

 

​Written by. 리니

영미소설/ SF 스릴러/ 레전더리 픽처스 영화화 예정.

출판사를 통해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바스케즈는 좁은 골목 맞은편의 건물을 흘끗 쳐다봤다. 180센티미터 정도 되는 거리였다. 뛰어서 건너기에는 멀었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꼭 이런 식이 될 필요는 없어. 당신은 아직 아무도 해치지 않았잖아."

쿠퍼는 바스케즈의 몸짓에서, 종아리의 떨림과 어깨의 경직에서 주저하는 기색을 읽었다.

"내려와서 대화를 하자고."

"대화라." 바스케즈가 콧방귀를 뀌었다. "너희 DAR 놈들이 어떻게 대화를 하는지 잘 알지. 정치가들이 즐겨 쓰는 그 용어가 뭐더라? `집중 심문` 아주 듣기 좋은 말이지. 고문이라는 단어보다 훨씬 좋게 들려. 마치 분석대응 부서 (The Department of Analysis and Response)가 `돌연변이 통제국`보다 듣기 좋은 것처럼"

쿠퍼는 바스케즈의 자세와 몸짓을 보고 그녀가 결심을 마쳤다는 사실을 알았다. (24p)

"이제 너도 컸으니까, 아빠가 몇 가지 이야기를 해 줄게. 하지만 지금 당장은 전부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몰라, 알겠니?" 케이트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쿠퍼가 말을 이었다. "사람들이 전부 다 다르다는 건 알고 있지? 어떤 사람들은 키가 크고 어떤 사람들은 작아. 누구는 금발이고 누구는 아이스크림을 좋아하지. 그리고 이 모든 차이는 옳거나 그르거나, 좋거나 나쁜 게 아니야.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다른 이들보다 몇몇 부분이 아주 뛰어나단다. 음악을 이해하거나, 큰 숫자를 암산하거나, 다른 사람이 슬프거나 화났을 때 말하지 않아도 알아볼 수 있지. 누구나 조금씩 그런 능력이 있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걸 아주아주 잘해. 아빠처럼. 그리고 아빠 생각에는 너도 그런 것 같구나."

"그럼 그건 좋은 거야?"

"그건 좋거나 나쁜 게 아냐. 그저 우리의 일부일 뿐이지." (140p)

당신은 미래를 막을 수 없어.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편을 고르는 것뿐이야. 알렉스 바스케즈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들려왔다.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그리고 편을 고르는 일은 바스케즈의 생각보다 더 복잡했다. 쿠퍼는 테러리스트를 사냥하는 정부 요원인가, 아니면 위험에 처한 딸을 둔 아버지인가? 그는 군인인가 민간인인가? 만약 그가 조국에 충성한다면, 아카데미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인가?

그래 알렉스, 난 편을 골랐어. 하지만 바로 지금, 하늘을 날고 있는 이 순간만큼은 오로지 나 자신을 위한 시간이야. 쿠퍼는 비행기의 금속 벽에 기대, 터보프롭 엔진의 요동을 등으로 느끼며 자신이 감수해야 할 위험에 대해 생각했다. (213p)

스미스는 그가 평생에 걸쳐 싸워 온 모든 것이었다. 그는 단지 살인자나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인간의 형태를 한 재앙이었다. 쓰나미, 지진, 혹은 상수도에서 터진 오물 폭탄이었다. 자시 자신과 자신의 신념 외에 다른 무엇도 믿지 않는, 세상을 더 낫게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자기 뜻대로 바꾸기 위해 사람을 죽이는 남자. 그가 와이오밍의 아름다운 밤하늘 아래 맨발로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452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알랭 파사르의 주방 - 흙, 햇볕, 래디시, 그리고
크리스토프 블랭 글.그림, 차유진 옮김 / 푸른지식 / 2015년 2월
평점 :
품절


 『알랭 파사르의 주방』 크리스토브 블랭 / 푸른지식

 흙, 햇볕, 래디시, 그리고...

 

 

 

   제가 책을 읽는 것만큼 즐거움을 얻는 것이 있다면 바로 '음식'입니다. 아니, 저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의 행복과 힘이 음식에서 나오는 게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재료 본연의 맛과 식감을 살려 정성스럽게 요리한 식탁을 마다할 사람이 있을까요? 때로는 푸짐한 밥심으로, 때로는 감칠맛 나면서도 색다른 요리들로 우리는 행복을 맛보게 됩니다. 그리고 반대로 자신만의 식탁을 만드는 재미도 참 쏠쏠하죠. 솜씨는 미숙해도 음식에 들어간 누군가의 정성을 느끼게 되는 건 크나큰 행복이니까요.

 

 

 

  처음 만나보는 요리 소재의 그래픽 노블 『알랭 파사르의 주방』 미슐랭 3스타를 받은 프랑스 식당 '라르페주(L'arpege)'의 일상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곳의 셰프 알랭 파사르의 요리 철학과 레시피가 그대로 담겨 있지요. 그의 식탁은 채식 위주의 요리들로 가득 채워져 있고, 요리에 사용되는 채소들은 직접 농장에서 재배한다고 합니다. 재료들을 모아 색을 맞추면 이전에 만들어본 적이 없는 요리들도 실패할 가능성이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합니다. 그의 주방에선 크게 소리치는 법이 없지요. 분명하고 정확하게 수정사항을 전달하면서, 그곳의 상황에 능숙하게 대처합니다.

 

 

 알랭 파사르의 이름을 저는 처음 들어보지만, 세계에서 그의 입지는 정말 대단해 보입니다. 옮긴이의 말 "현재 가장 위대한 요리사 중 한 사람, 그런 위대한 요리사들 사이에서도 존경의 대상이자 진정한 예술가라 불리는 마스터 셰프, 지난 몇 십 년간 전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식당 50개를 선정하는 목록에서 한 번도 제외된 적이 없는 (그의 식당) 라르페주." 를 보니 왜 그의 이름을 달고 이런 책이 나왔는지 알 수 있을 것도 같아요.

 

 

 

 레시피와 만화가 번갈아 등장합니다. 레스토랑에서 만나볼 수 있는 고급진 요리들의 레시피가 나오고 요리를 하는 과정이 다소 무심한 그림체로 그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레시피를 보고 있자니 군침이 도는 걸 참을 수가 없습니다. '아카시아 꿀을 넣은 보랏빛 정열'이라니!  음식에 붙이는 이름치고는 너무 과하다 싶을 정도로 멋진 단어인데요. "색깔은 창작의 중심축"이라고 말하는 알랭 파사르의 요리 철학에 정말 잘 어울리는 요리인 것 같아요. 그리고 이런 재미있는 요리들이 책 속엔 그득합니다.

 

 

 단, 멋진 요리들의 향연이 참 새롭고 신선하게 다가오긴 하는 것에 비해 몰입감은 조금 덜했습니다. 보기 좋은 떡을 바로 앞에 두고 군침만 흘리고 있는 느낌, 음식의 사진조차 등장하지 않아 상상력의 끝까지 경험하고 오다 보면 조금은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일러스트로 그려낸 셰프 '알랭 파사르'와 그의 요리들이라는 시도 자체는 참 좋았지만, 이쪽에 관심이 없는 분들은 조금 모호한 느낌을 받을지도 모르겠어요.

 

 

 

  재료 본연의 맛을 중시하는 알랭 파사르의 요리를 책임지는 농장의 이야기도 다수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농장 자체도 자연이 만든 시스템에 많은 부분 어긋나지 않게 소신껏 운영되고 있는 것 같아요. 이토록 신중한 그의 식탁이라니, 파리로 훌쩍 떠나 한번 맛보고 싶어집니다-!

 

 

 

​Written by. 리니

만화, 그래픽 노블/ 요리, 레시피.

 출판사를 통해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물구나무
백지연 지음 / 북폴리오 / 2015년 1월
평점 :
품절


 『물구나무』 백지연 / 북폴리오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

 

 

 이미 어떤 분야에서 유명한 사람의 저서를 볼 땐, 어쩔 수 없이 호기심과 비판 어린 시선이 함께 생기게 됩니다. 누군가의 얼굴을 표지에 크게 박은 책들이나 제목에 이름이 붙은 포토 에세이 같은 경우에는 그것이 누구를 대상으로 했는지, 어떤 목적으로 만들어졌는지 뻔히 보이기 때문에 약간의 편견이 자리 잡히게 되지요. 백지연 아나운서의 첫 소설 『물구나무』도 이런 편견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책이었습니다. (출판사 입장에서는 당연히, 그녀의 얼굴을 크게 표지에 넣을 수밖에 없었겠죠.) 이미 여러 권의 책을 냈고 대중들에게 신뢰감과 박식함을 뽐낼 수 있는 어떤 위치에 자리 잡은 인물이지만, 순수문학에의 첫 도전은 '과연'이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더라고요.

 

 

 그러나 이런 저의 떨떠름한 반응에도 불구하고 『물구나무』라는 소설은 좋았습니다. 그녀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이야기를 뱉어낸 느낌이었고, 그녀가 가장 이야기를 잘 다룰 수 있는 소설의 방식을 선택한 듯 보였습니다. 그것은 허구의 인물이자 주인공인 '인터뷰어'를 등장시킴으로써 다른 이들의 사연을 진심으로 들어주고, 인터뷰이들이 겪은 상황들을 공감하거나 유추해나가는 방법이었습니다. 형식적으로 엄격하게 인터뷰 형식을 취하고 있지는 않지만, 구성과 대화 방식이 닮아있었던 것 같아요. 그녀가 닳고 닳도록 해온 '인터뷰'와 닮아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소설은 매끄럽고 자연스럽게 읽혔고요.

 그리고 조금 더 이야기 하자면, 저는 개인적으로 소설을 읽을 때 느껴지는 두 가지 상반된 감정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는 '경외감', 그리고 다른 하나는 친숙함과 '공감'입니다. 글을 잘 쓰고 싶은 독자로서 문장과 이야기를 다루는 능수능란한 솜씨에서 느껴지는 '경외감'도 소설을 즐겁게 감상하는데 빼놓을 수 없는 재미지만, '공감' 또한 무척이나 큰 작용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두 가지를 모두 충족시킬 수 없다면 흥미는 떨어지기 일쑤지만, 『물구나무』는 '공감' 만큼은 확실하게 잡고 있는 소설이었습니다.

 

 "물구나무서기처럼 삶은 위와 아래가 뒤바뀌는 거지. 그래서 재미있기도 하지만 그런 이유로 두렵기도 한 것이 인생이지."

 

 인터뷰어로 순탄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주인공이 갑작스럽게 단짝 친구 한 명이 죽었다는 비보를 접하고, 옛 친구들을 만나 하나하나 추억 속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설정은 영화 <써니>를 떠올리게도 합니다. 그때, 영화의 장면들 중 가장 놀랬던 것이 '모두가 멋지고 순탄한 인생을 살고 있진 않다는 것'이었어요. 그들의 인생을 'Good' 혹은 'Bad'라는 두 선택지 안에서 확실하게 꼽아낼 수는 없지만, 누구는 눈물을 흘리고, 누구는 아파하며, 누구는 무언가 응어리진 감정을 꾹꾹 누르면서 살아가고 있었던 걸 보니, 왠지 모르게 가슴이 무거워지더군요. 소설『물구나무』속에 등장하는 여섯 여자들의 인생도 이와 비슷합니다. 27년 전 학교 체육 시간에 물구나무서기 과제에 다 같이 실패해 친해진 이들은, 이제 각자의 삶을 살면서 각기 다른 모습들로 인생을 마주하고 있어요. 특히나 어떤 인생도 '완벽하진 않다는 점'이 소설과 영화, 공통으로 전해주는 느낌입니다. 행복도, 불행도 있고말고요.

 

 

 『물구나무』는 추억할 만한 인생의 길이가 길든 짧든, 깊이가 깊든 얕든 간에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저자는 인생에 관해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한국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의 고충을 털어놓기도 하는데요. 한때 친구와 "우리 나중에 어떻게 될까-"라며 미래를 상상했던 이들이라면, 서로 바쁘고 정신없게 살아가면서 흐지부지된 추억들을 다시 그려보고 싶은 이들이라면 모두가 설레는 감정으로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Copyright ⓒ 2015. by 리니의 컬쳐톡 All Rights Reserved.
서포터즈로 지원받은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쓴 서평입니다.
덧글과 공감은 글쓴이에게 큰 힘이 됩니다.

 

두 사람이 이야기를 주고받는 동안, 갑자기 내 머릿속에는 남자와 여자에게 다르게 적용되곤 하는 형용사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다. 비슷한 상황에서 비슷한 행동을 하더라도 남자에게는 `강하다`라는 형용사를 쓴다면 여자에게는 `독하다`라고 한다거나, 여자에게는 `당돌하다`, `뻗댄다`라고 하는 반면 남자에게는 `당당하다`라고 하는 것. 세월에 따라 세상이 많이 변했지만 아직도 변화의 속도가 거기에 미치지 못하는 부분은 여기저기 산재해 있다. (25p)

갓 내린 커피와 갓 구운 빵의 황홀한 내음에 몸은 자동 반사를 한다. 아무 생각 없이 바게트 하나를 습관적으로 한 입 베어물고 우물거리자 겉은 바삭, 고소하고 안은 부드럽고 쫄깃한 식감이 미각을 깨웠다. 그 순간 흠칫 놀라고 말았다. 한때 내 삶의 3년간을 깊이 교차했던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는데, 비극적으로 죽었다는 소식을 바로 어제저녁에 들었는데 나의 오감은 바게트와 커피 향 같은 사소한 사치에 금방 황홀해질 수도 있는 것이라니. 예전에 어떤 작가가 자식을 잃고 나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나는요, 세상이 절단 났다고 생각했어요. 내 딸이 죽었으니까. 근데 장례 치른 그 다음날 아침 선잠을 자다 일어나봤더니 어김없이 해가 쨍쨍하게 뜨더라고요. 아파트 창문으로 내다보니 출근하려는 사람들이 버스 정류장으로 바쁘게 가고 있고요. 너무 이상했어요. 왜 세상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똑같이 움직이는 거야? 내 딸이 여기 없는데, 라고 소시라도 지르고 싶었죠. 그리고 산 입이라고 식구들 입에 또 밥을 밀어넣더라고요." (58p)

그러나 이 모든 `나라면`이라는 이야기는 철저히 가정일 뿐이고 나 또한 직접 그런 상황에 그녀처럼 내동댕이쳐졌다면 어떤 선택을 할지 알 수 없다. 큰일을 당해 우왕좌왕, 미로 속에서 헤매고 있는 그들을 마치 그들보다 높은 나무 위에 앉아 내려다보듯, 나갈 길을 알기라도 하듯, `나라면`, `이런 때는` 하며 주제 넘는 훈수질을 하는 게 얼마나 우습고 우스운 일이던가. (89p)

"불행은 대부분 예고 없이, 마치 뺨을 갈기듯, 우리 인생을 단숨에 후려치곤 하지만 때로 정말 무시무시한 불행은 행복의 가면을 쓰고 다가온다는 거지.

가장한 채 천천히. 사람 만나는 게 특히 그래. 내 경험으론 불행은 항상 좋은 인연의 가면을 쓴 악연과 함께 오더라고." (145p)

기대는 친구가 아닐 때 서로에게 더 좋은 친구가 되어줄 수 있는 것 같아. 그래서 내가 얻은 결론은 좋은 친구는 `공감`할 수 있는 사람 같아. 슬픈 영화 보면서 같이 눈물 흘리는 얇은 공감 말고. 인생의 공감이란 건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거든. 무슨 이야기를 하든 `아`할 때 `어`하고 알아들을 수 있는, 또는 남들이 보기에 `왜 저래?`라고 할 정도로 이유 없이 분노하더라도 어느 소소한 지점에서 폭발했는지 알 수 있는, 이유 없이 눈물 흘릴 때 왜 우는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것 같은 공감 말이야. 그런 공감이 사람을 덜 외롭게 하거든. 그런 공감을 할 때만이 대화에 쉼이나 힐링 효과가 실리거든. (150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