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일드 싱 - 돌아온 킬러 의사와 백색 호수 미스터리 밀리언셀러 클럽 119
조시 베이젤 지음, 이정아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4월
평점 :
절판


『와일드 싱』 조시 베이젤 / 황금가지

네스 호의 괴물을 모티브로 한 블랙코미디 미스터리

 

 

 

 

  책을 읽고 나서

 

 외국 작품들에서 우스갯소리로 이야기하던 '네스 호의 괴물'을 소재로 한 미스터리 소설입니다. 네스호에 공룡처럼 생긴 괴생명체가 산다며 영국에서 오랫동안 구전으로 내려오는 괴담이자 전설이지요. 그래서 이 작품에선 첫 페이지부터 으스스한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백색 호수에서 무언가에 갑작스러운 공격을 받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어떤 스릴러 영화만큼이나 강렬한 도입부죠. 그렇게 해서 실제 '네스 호의 괴담'처럼, 사람들을 궁금케 하는 괴담과 '카더라'가 속출하게 되고, 주인공에게 이 사건의 진위를 확인해 달라는 요청이 오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만나게 되는 전직 킬러인 의사 '아지무스'와 고생물학자 '바이올렛'이 만나 정체불명의 존재를 찾아 나서는 모임에 참여하게 되고요.

 

 

 소재부터 굉장히 재미있어, 흥미진진하고 오싹한 진행을 기대하고 읽었습니다. 백색 호수에 진짜로 괴물이 살고 있는지, 인간이 만들어낸 것은 아닌지에 대한 갑론을박, 정치와 과학(의학)적인 이론이 넘나드는 내용과 풍성한 각주가 돋보였고요. (게다가 그 풍성한 각주는 주인공의 시점으로 적혀있어, 색다르고 흥미롭게 보이지요. 이런 각주는 처음 만나볼 정도로요) 하지만, 저는 이상하게 집중이 되지 않더라고요. 황금가지의 밀리언셀러 클럽은 믿고 보는 시리즈이지만, 블랙 코미디를 연출한 장면들은 짐작이 가면서도 큰 웃음이 나오진 않고, 상황 전환과 인물들이 계속해서 변화되니 저에게는 굉장히 산만하게 느껴졌어요. 사실상 이 작품은 괴물의 정체를 밝히는 미스터리와 모험의 스릴 보다는 부가적인 것들, 인물들의 대화(주인공과 바이올렛의 티격태격하는 사랑놀이를 포함하여)나 정치적인 논쟁이나 풍자에 초점이 맞춰졌다는 생각과 함께, 제가 애초부터 다른 쪽으로 너무 기대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의 오성은 편견 없는 견해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의지와 감성의 영향을 받는다. 사실 그래서 기상천외한 지식이 탄생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신이 진실이기를 바라는 것만 믿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프랜시스 베이컨)

 

 대신, 결말은 최근에 읽은 사회적 호러 소설 『더 스토어』만큼이나 오싹하고 소름이 끼치더군요. 정체불명의 괴생명체, 사람들의 입에서 전해 내려오는 괴담의 의미, 그리고 인간의 욕심과 무책임함에 대한 공포가 첫 장에 나온 '베이컨'의 말과 맞물려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영화 <괴물>의 괴생명체도, 실제로 존재하는 돌연변이 생명체도 어쩌면 세상을 마음대로 주무르려는 인간에게서 자행된 것이기에, 식상한 말이지만 "인간이 가장 무섭다."라는 말을 하게 됩니다. 네스 호의 괴물을 모티브로 한 블랙코미디 미스터리 『와일드 싱』, 풍성한 각주와 엄청난 출처, 부록 등을 보면 작가가 이 작품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알 수 있지만, 제게는 그다지 흥미롭게 다가오지 못해 아쉬운 작품이었습니다.

 

 

 

 

 

Written by. 리니

영미 소설/ 추리, 미스터리/ 블랙코미디/ 밀리언셀러 클럽 119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책을 읽고 쓴 서평입니다.

 

 

늑대인간의 울부짖음이 경계수역을 찢을 듯 울려 퍼졌다. 그 소리가 마치 호수 건너편에서 온 힘을 다해 내지르는 듯했다.

바텐더가 내 얼굴을 보더니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저건 그냥 아비새예요."

순간 미네소타 북부 지역에서 일어나는 불가사의한 일들 가운데 몇 건이나 그냥 아비새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밝혀질지 궁금해졌다.

"너무 많은 걸 기대하진 마세요." (145쪽)

나는 마스크는 물론 스노클도 벗어 버렸다. 그리고 손전등도 사라졌다. 나는 숨도 쉬지 않고 마치 건물에서 떨어지듯 전속력으로 헤엄만 쳤다. 그러면서 아직 물에 잠긴 부분에 있으니 곶까지 이를 악물고 갈 것인지 아니면 진짜 육지가 나올 때까지 기다릴 것인지 결정을 내려 보려 했다.

그러다가 곶의 기슭, 즉 진짜 곶이자 물 윗부분에 도착했다. 나는 물갈퀴를 벗어 던지고 나무뿌리로 만들어진 사다리를 뛰어 올라갔다. 그 순간 가속도를 잃거나 발을 헛디디면 뾰족뾰족한 가시덤불에 처박힌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어쨌든 물 밖으로 나왔으니 가슴을 쓸어내렸다. 곧이어 풀밭에 도착했다. 앞에 나무 둥치가 보였다. 그것을 부여잡고 휙 돌아 반대편을 마주한 채 멈춰 섰다. (336p)

"영국은행의 가치보다 네 배나 많은 양이었소. 이런 표현을 써서 미안하오만, 백인들은 그 이후 생존자들이 살았던 방식을 낭만적으로 포장하고 싶어 했지. 마치 퍼스트 네이션스 사람들이 군벌의 통치를 받는 유목 민족이 되어 숲 속에서 살고 싶어 한 것처럼 말이오. 우리는 그런 삶을 원하지 않았소. 백인이 강제로 우리를 그렇게 살게 한 거요. 그 시절이야말로 우리에게는 암흑기였소. 하지만 당신네들은 그런 얘기보다 주술사니 영혼 안내자니 하는 것들과 간소한 삶의 고결함 따위에 대해서만 떠든단 말이오. 물론 간소한 삶이었던 건 맞소. 우리 세상이 전부 끝나 버렸으니까." 이야기의 방향을 바꾸려는 듯 그가 말했다. "댁들은 히틀러가 자기 벙커에다 제로니모의 그림을 걸어 놨단 걸 아시오?" (39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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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스터즈 - 눈만 뜨면 티격태격, 텔게마이어 자매의 리얼 버라이어티 성장 여행기
레이나 텔게마이어 지음, 권혁 옮김 / 돋을새김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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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스터즈』 레이나 텔게마이어 / 돋을새김

좌충우돌, 티격태격, 자매라면 공감할 거예요.

 

 

  책을 읽고 나서

 

 자매의 좌충우돌 성장기를 그리고 있는 『씨스터즈』는 작가의 경험이 담긴 '자전적' 만화입니다. 사실, 읽기 전에는 그래픽 노블이란 이야기를 들었으나, 그림체나 글밥의 정도를 보면 가볍게 볼 수 있는 '만화'에 가깝습니다. 물론 만화와 그래픽 노블의 경계를 뚜렷하게 구분지을 순 없겠지만요. 어쨌든 이 책의 표지는 참 귀엽습니다. 표정이 다른 두 스마일과 '씨스터즈'라는 제목, 뒤에 있는 "단 하루만이라도 동생 없는 세상에서 살게 해주세요!"라는 카피는 강력하게 눈길을 잡아끕니다. 언니, 혹은 여동생이 있는 여자분들이라면 아마도 살면서 많은 '티격태격' 에피소드가 있었을 겁니다.

 

 

  

 일단은, 작가의 가족관계와 저의 가족관계가 아주 비슷해서 퍽 공감이 가게 되었습니다. 물론 화자로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첫째 '레이나'와는 반대로 저는 둘째고, 성격적으로 다른 부분이 많았지만, 왠지 모를 그들의 신경전, 그리고 그 분위기를 직감할 수 있었어요.

 

  실제로 언니는 어렸을 때 저한테 질투를 많이 했다고 막 괴롭혔다고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 그때는 아무것도 모를 때라 기억이 가물가물하긴 해요. 중학교 때까지는 아무것도 모를 때라 그렇게 많이 싸우지는 않았고, 오히려 고등학교 이후에 많이도 싸웠죠. 자매들의 공통점인 '옷' 가지고도 싸우고, 별거 아닌 거에도 싸우고, 진짜 심각하게도 싸우고 울고불고하고 말이죠. 그런데도 또 같이 다니는 게 웃기지만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은연중에 서로에게 영향도 많이 받았겠고, 저는 언니에게 많은 것들을 배우기도 했고, 얼굴과 성격은 다르지만, 목소리는 똑같고 생각하는 방향도 비슷하고 말이죠. 진짜 미울 땐 진짜 밉지만, 또 편할 땐 그렇게 편할 수가 없는 자매 사이죠.

 

 

 

 

 만화는 엄마, 남동생과 일주일간의 여행을 떠난 두 자매의 이야기가 주가 되어, '레이나'에게 여동생이 처음으로 생겼을 때의 이야기와 다른 내용이 번갈아 진행됩니다. 처음에는 만화와 그림인데도 무척이나 시끄러운 기분에 적응하지 못했었는데 (가족들이 얼마나 소리를 질러대는지), 조금 지나니 세상 자매들도 뭐 비슷한 생각을 하는구나 하며 웃음이 나더라고요. 읽다 보니 최근에 읽은 성장소설 『앨리스와 앨리스』가 생각이 났는데, 동생을 무조건 미워하는 소녀의 이야기와 그 심경 변화가 비슷한 느낌을 들게 했어요. 이 씨스터즈도, 사소한 것에 다투고 소리 지르고 티격태격하다가, 매우 사소하고 엉뚱한 순간에 멋쩍은 웃음을 짓고 마음을 이해하며 풀어지는 걸요.

 

 

 마치 물과 불처럼 싸우던 이 자매도, 시간이 흘러 변한 사촌들과의 사이에선 또 끈끈한 유대감을 다시 갖게 되는 부분은 정말 제대로 표현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랑 언니도, 또래가 없는 친척 집에 갈 때면 서로를 의지하면서 꼭 붙어 있거든요. 일주일간의 자동차 여행의 끝, 부모님의 사이를 걱정하며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는 부분도 기억에 남아요. 무엇보다 자매의 가장 좋은 점은, 이야기하기 쉽지 않은 문제들도, 남들에게 부끄러운 말도 스스럼없이 할 수 있다는 것,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굉장히 가볍게 읽혔고, 때로는 이들의 애증관계로 인한 싸움에 미친 듯이 시끄럽기도 했지만, 자매의 갈등을 실감 나게 표현한 만화 『씨스터즈』. 이들의 멋쩍은 웃음에 왠지 모를 따뜻한 감정과 가족의 의미가 담겨있는 것 같아 마지막엔 기분이 사르르 풀렸답니다. 물론 완벽하게 '해피!'는 아니지만, 언젠가 또 소리 지르면 또 신나게 싸울 걸 알고 있

지만, 이들은 가족이니까요!

 

 

 

Written by. 리니

만화, 그래픽 노블/ 가족, 성장/ 영미 만화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책을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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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스토어 밀리언셀러 클럽 138
벤틀리 리틀 지음, 송경아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5월
평점 :
절판


『더 스토어』 벤틀리 리틀 / 황금가지

비현실적인 가상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가장 현실적인 공포

 

 

 

 

  책을 읽고 나서

 

 

동네 상권이 몰락하는 것은 어제 일만이 아닙니다. 조그만 슈퍼들은 문을 닫고, 재래시장의 발길이 끊기고, 대기업의 브랜드 편의점이 놀라운 속도로 거리를 점령해갑니다. 개인의 능력으로 창업했던 소담스러운 식당은 기업의 손길로 만들어진 대형 음식점 옆에서 밀리고 밀리기도 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책도, 그렇습니다. 동네에 자리하고 있었던 작은 서점은 대형 서점과 온라인 서점에 밀려 근근이 삶을 이어가다가 문을 닫곤 합니다. 예전에 제가 파트타임으로 일했던 서점도, 최근에 지나가다 보니 PC방으로 바뀌어 있던 것을 보고 왠지 모를 착잡함이 든 기억이 있지요. 그렇지만, 이런 문제 속에서도 우리는 딱히 무언가를 바꿔보려고 하진 않습니다. 아니, 바꿔보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어느샌가 잊혀져 가죠. 개인이 살기 바쁘고, 그것들이 편리하기 때문이죠. 대형 마트는 다양한 물건과 고객들을 위한 서비스들이 있습니다. 주차도 편리하고 포인트도 쌓입니다. 대형 서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가끔은 좀 무서울 때가 있습니다. 예전에 이런 이야기를 들었죠. '대형 마트에는 시계가 없다'고요. 요즘이야 다들 휴대폰을 갖고 있긴 하지만, 시간이 흐르는 것을 알 수 없는 대형마트에서 우리는 가끔 눈이 벌게지도록 충동구매를 합니다. 이것도 할인, 저것도 할인, 그리고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판촉행사 소리, 좋은 상품을 누구보다 빨리 사려고 길게 늘어진 줄…… 끝까지 소비의 유혹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하는 덫에 걸려있는 것 같기도 하죠.

 

대중들은 언제나 소상공인과 미국의 개척 정신이라는 이야기를 침이 마르도록 칭송했다. 그들은 동네 구멍가게가 없어졌다고 한탄하고 커다란 기업체가 비인격적이고 대기업이 과잉이라고 불평했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이 되면 그들은 서비스보다 편리함을 선택했다. 질보다 가격을 골랐다. 사람들에게는 더 이상 의리나, 공동체의 진정성 같은 것은 없었다. 이제 이 읍은 더 스토어, 뉴먼 킹과 그의 수백만 달러 짜리 회사의 편을 들고 있었다. 

 

 『더 스토어』는 이런 사회 현실을 공포, 호러 장르로 풀어낸 작품입니다. 공포나 호러를 개인적으로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도, 책을 펼쳤던 이유는 거대 자본이 한 마을을 둘러싸 마치 흡혈귀처럼 존재하며 세상을 지배하는 과정을 어떻게 소름 끼치게 표현했을지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거창하고도 파격적인 설정의 『더 스토어』는 첫판부터 으스스한 분위기를 가지고 이야기를 전개해나갑니다. 지방의 작은 도시에 '더 스토어'라는 마트의 입점이 결정 납니다. 그리고 거대 자본 속에서 도시는 그들, 더 스토어에게 건설과 그 이후의 모든 것들에 예외 사항을 두며, '어서 오세요' 하며 반기게 됩니다. 한 가족의 가장인 주인공이 사랑했던 마을의 길은 '더 스토어' 자본 속에 흔적 없이 덮이게 되고, 부지의 주변에 동물들이 어떤 상해도 없이 죽어 있는 이상 현상으로 으스스한 분위기도 연출합니다. 그리고 '더 스토어'가 오픈하자, 마을의 분위기는 조금 바뀌게 됩니다. 익숙지 못한 대형 마트를 극구 반대했던 마을 사람들은 생각보다 이곳이 '나쁘지만은 않다'라고 생각하고, 다양한 상품에 홀려 상품을 신 나게 구매합니다. 청소년들은 일자리가 생겨 기쁘게 지원서를 냅니다. 그러나 그 뒤에서 '더 스토어'는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을 자행하고 있었죠. 두 딸이 모두 그곳에서 일하게 되고 위험성과 괴상망측한 상황을 접한 주인공에게 '더 스토어'의 문제는 더욱 가까이로 다가오게 됩니다.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디스토피아의 공간 '더 스토어'와 똑같지는 않지만, 충분히 연상 가능한 거대 자본의 위협이 맞물려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소설은 굉장히 강렬하면서도 오싹합니다. 분명히 비현실적인 가상의 공간이며 현실에선 '설마' 있을법하지 않은 일들인데, 묘하게 공감 가면서 현실에서 자행되는 모든 일을 연상하게 한다고 할까요. 사회의 부조리한 부분을 비판하고 호러 장르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면서, 소설은 어떤 공포 영화보다도 현실적인 공포를 자아냅니다. (그 과정에서 선정적인 설정이나 장면들이 등장하여 공포는 더욱 극대화됩니다) 다소 거창한 소재와 많은 등장인물이 등장한 소설의 끝 부분이 깔끔하게 마무리되지 않은 아쉬움은 있었지만, 사회적 문제와 공포가 적당히 어우러진 색다른 소설을 만나 참 좋았습니다.

 

 

 

 

Written by. 리니

영미 소설/ 장르문학/ 공포, 호러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책을 읽고 쓴 서평입니다.

 

 

고속도로 위에서 조깅을 멈췄다. 살얼음이 언 아스팔트에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하면서, 트레일러 공원을 지나쳐 달려 주니퍼 주거 지역으로 들어갔다. 그는 주니퍼에 산 10년동안 조깅 루트를 바꾸지 않았다. 반쯤은 습관 때문이고, 반쯤은 일부러 그랬다. 그는 일과를 멋대로 바꾸는 사람이 아니었다. 일단 좋아하는 것을 찾으면 그대로 계속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일과를 바꾸었다. 그는 더 스토어의 부지를, 가장 좋아하는 길이었으나 이제는 특히 더 피하게 되어버린 지역을 생각했다. 쓰러진 나무들돠 반반해진 땅에는 그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구석이 있었다. 그것을 보면 오렌지 카운티가 생각났다. 그가 태어나고 자란 장소지만 오렌지 밭과 노지 딸기들이 복숭아색 콘도와 틀로 찍어낸 듯한 쇼핑센터로 바뀌는 모습을 본 곳. 그래서 밀어진 땅, 파괴된 산비탈, 중장비들을 둘러싼 철사 울타리를 보면 그는 우울해졌다. 속상했고, 화가 났고, 아침 조깅의 기분이 망쳐졌다. (79p)

지니가 기억하는 한 한 가지 화제가 이렇게 모든 대화를 지배한 적이 없었다. 지방 선거, 주 선거, 전국 선거, 전쟁, 국제적 사건 - 어떤 것도 교직원, 교사, 학생들의 흥미를 더 스토어만큼 휘어잡지 못했다. 할인 소매점의 개점이 세계적으로 중요한 사건들보다 사람들의 삶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슬픈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부지북식간에 나머지 다른 사람들과 함께 그곳에서 이제 이 읍에서 이용할 수 있는 놀라운 새 패션, 굉장히 싼 가격, 여러 가지 가사도구들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난 이미 빚을 지고 있어. 내 마스터 카드를 한도까지 다 썼고, 두어 가지 물건은 할부로 사야 했어." (119p)

왜 그는 계속 그들을 `사람들`이 아니라 `사람 모습`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그들이 인간처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이었다. 그 모습들에는, 그들의 체격, 외모, 동작에는 뭔가 그에게 이상해 보이고 부자연스러워 보이는 점이 있었다.

그는 다시 걸어와 입구에서 떨어져 어둠 속에 섞이려고 했다. 그 모습 중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이 유리한 지점에서 그는 그들이 더 스토어 안을 돌아다닐 때 지켜볼 수 있었다. 검은 후드와 모자 아래의 얼굴은 희었고, 피부는 설화석고 같은 색이었고 비정상적인 특성을 갖고 있었다. 보통 피부 - 인간의 피부 - 에는 없는 정체불명의 성질이었다. 그렇지만 불가능한 얘기였다. 그가 미쳐 있을 뿐이다. 동물들 때문에 기겁을 했고, 그때부터 겁을 먹은 것이다. 여기에는 아무 것도 이상한 점이 없고, 정상에서 벗어난 것이 없었다. 사람들일 뿐이다. 그처럼 묘지 근무를 하는 사람들, 자기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 (20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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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슈퍼히어로
김보영 외 지음 / 황금가지 / 2015년 3월
평점 :
품절


『이웃집 슈퍼 히어로』 진산, dcdc, 좌백 외 6명 / 황금가지

유쾌함과 서글픔이 공존하는 한국 사회의 히어로

 

 

 

 

 ▒ 책을 읽고 나서.

 

 <어벤저스> 시리즈가 또 한 번 히어로 무비 열풍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재미도 재미지만, 히어로 무비는 대개 중박은 치는 것 같다는 생각이에요. 시리즈물로 계속해서 이어지는 데다가, 잠시나마 대리만족을 할 수 있는 화끈한 영화를 사람들은 보고 싶어 하죠. 각박한 현실이기에 사람들은 더욱 히어로물과 액션을 찾습니다. 뻥뻥, 터지는 영상의 통쾌함이 주는 만족이 의외로 크니까요. 마찬가지로, 저도 히어로물을 좋아합니다. 특히 배트맨 시리즈를 정말 좋아하는데요. 비교적 어두운 배경의 사회 현실에 액션과 숨겨진 철학이 잘 버무려져 있어서 몰입감이 더욱 커지고 마음속으로 간절히 히어로를 응원하게 되더라고요.

 

 

 『이웃집 슈퍼 히어로』는 우리나라 작가들이 각기 다른 개성으로 펼쳐낸 단편 소설집입니다. '히어로물' 시리즈죠. 독특한 표지와 '이웃집 슈퍼 히어로'라는 제목이 B급 정서를 묘하게 풍기고 있어요. 책 속에 담긴 이야기들도 하나같이 얼마나 '똘끼작렬'인지, 히어로의 성향도, 모습도 가지각색으로 드러납니다. 초인이 되기 위해 무언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설정의 <존재의 비용>, 여성의 고충인 '생리'로 독특한 여성 히어로를 탄생시킨 <월간영웅홍양전>, '배트맨' 시리즈를 무협물로 패러디한 <편복협과 옥나찰>, 초인의 존재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말하는 <초인은 지금>, 히어로의 존재를 빌려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는 <노병들> 등, 어떻게 이런 생각들을 했을까 놀랄 정도로 독특한 이야기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작품이 히어로의 이면에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없는 막강한 능력이나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어깨에 엄청난 무게를 짊어지고 사는 초인들의 모습, 초인을 필요로 하는 사회 현실, 그리고 초인의 개입 이후 더욱 불행해지는 세상, 여기저기 힘을 쓰느라 얻어터져도 하소연할 데 없는 초인들의 고충들을 그리고 있습니다. 구성을 참 잘했다 느껴지는 것이, 초인의 탄생 비화를 알려주는 첫 작품부터, 다소 무겁게 느껴지는 마지막 작품까지 어느 정도의 흐름을 맞춘 듯이 느껴지더군요.  통쾌함에 웃다가, 다시 또 심각해지다가, 히어로의 감정에 몰입하기도 하며 신나게 읽었습니다. 

테러리스트는 무자비한 폭행에서 벗어나려고 바닥을 질질 기어갔지만요. 음, 그게 될 상대가 아니더라고요. 영자 씨는 테러리스트의 곰인형 탈의 머리 부분을 벗겨다가 테러리스트의 머리에다 던져 맞췄어요.

"마…… 말도 안 돼 …… 데이터에 따르면 홍양, 너의 힘이 이렇게나 강할 리가 없는데? 어제까지만 해도 이 정도로 강하지 않았는데 어째서 지금은 ……?"

"이틀째다, 시발놈아!" 영자 씨의 외침에 테러리스트는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를 못한 것 같은데도 그 박력에 그만 그렇구나 넘어가더라고요. 저는 알거든요. 명복을 빌어주었죠. 이틀째라잖아요. (71p, 월간영웅홍양전 - dcdc)

 

 

 참 웃긴 것은, 히어로의 이면과 그들이 짊어진 무게를 그리고 있는 작품들이 묘하게 공감되면서도, 저는 스펙타클하게 뻥뻥- 터지는 작품들이 제일 기억에 남더라고요. 그런 점에서 <월간영웅홍양전>이 민감할 수 있는 주제면서도, 굉장히 살짝살짝 꺾어서 재밌게 표현한 것이 유쾌하고 좋았습니다. 그리고 히어로를 쫓는 경찰, 그들을 피하는 히어로를 그린 <선과 선>, 살짝 서글픈 분위기를 자아냈던 <세상에서 가장 빠른 사람>도 한국 사회의 현실과 맞물려 더욱 공감이 가는 단편이었습니다. 짧지만 강력한 주제를 내포하고 있었죠.

 ​내가 안 왔으면 여기서 며칠을 있었을까. 아니, 몇 달을 있었을까. 숨이 다하도록 버텼을 거다. 숨이 다하고도 버텼을 거다. 이대로 파묻혀버렸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랬을 거다. 내 뒤로 아무도 오지 않았겠지. 번개가 사람 다 구했다는 속보나 한 줄 나가고, 영웅 만들어 줄 궁리나 하다가 덮어버렸을 것이다. 사건 키우지 않으려고 실종자 수색도 끝까지 안 했겠지. 애를 잃은 엄마가 법원 앞에서 시위를 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거다. 거기 서 있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못할 줄을 안다. 꽃밭이나 차도 한 번만 잘못 밟아도 범법자로 착실히 집어넣어 오지 않았던가. 집안에 초인 있었으면 시선도 곱지 않을 거다. 혼자 일 도맡아 하다 뒤처리 못한 일만 들이대도 줄줄이 엮여 나올걸. (327p, 세상에서 가장 빠른 사람 - 김보영)

​ 통쾌함과 서글픔이 공존하는 한국 사회의 히어로를 그린 『이웃집 슈퍼 히어로』, 생각보다 조금 어두웠고 현실이 현실인 만큼 암울한 주제도 담겨 있었지만, '히어로물'이라는 하나의 장르를 통해, 다양한 이야기를 엮어낸 이 책이 참 신선하고 재밌었습니다. 몇몇 작품은 장편으로 계약을 맺기도 했다는데, 더욱 풍성한 재미를 안겨줄 '한국형 히어로 소설'을 기대합니다.

 ​

 

 

Written by. 리니

한국 소설, 단편 소설/ SF 환상 문학/ 히어로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쓴 서평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삶이 이토록 팍팍한 것은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세상이 잘못된 게 틀림없다. 이 부조리를 어떻게든 해야 한다. 그러나 보통 사람의 능력으로는 어떻게도 할 수 없다. 그래서 요 사이는 자기 소개서를 쓰다가도 백일몽을 종종 꾼다. 나에게 텔레포트의 능력이 있다면, 나에게 시간을 멈출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여기 처음 도착했을 때도 그런 백일몽인 줄 알았다. 운운.

하아. 결국 이야기가 끝났을 때 나는 한숨을 쉬고야 말았다. 부조리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조금쯤 결기 비슷한 거라도 보이던 그가 내 한숨 소리에 어깨를 움츠렸다.

"어, 제 생각이 이상한가요?"

"아뇨, 아뇨."

이상하지 않지. 전혀 이상하지 않아. 그런 것들에 부조리함을 느끼는 것도, 비범한 능력을 얻어 악의 축들을 때려잡으면 이 모든 부조리가 해결될 거라는 백일몽을 꾸는 것도 전혀 이상하지 않아. 그런데 그게 문제야, 이 사람아. 아무것도 이상하지 않다는 거. 당연하다는 거.

그게 당신의 인생을 평범 속에 가두고, 그러므로 당신의 존재는 평범을 넘어설 수 없는 거야. 초인이 되기 위해 지불할 수 있는 비범한 무엇이 없다고. (16p, 존재의 비용 - 진산)

"올 것이 왔군요."

그녀가 말했다. 카메라를 든 기자들이 추모비로 다가오고 있었다. 오늘 많은 기자들이 보도 사진이나 방송 자료화면을 확보하러 서울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추모비는 좋은 자료화면일 것이다. 기자 몇 명은 벌써 그녀를 알아본 눈빛이었다.

투표하셨어요? 기자들은 성급하게 외쳤다.

"나는 미성년자라 투표권이 없는데……."

그녀는 중얼거리고 나를 돌아보았다. `도망치고 싶어요.` (180p, 초인은 지금 - 김이환)

처음에는 경찰이 그의 존재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잡으려고 드는 게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경찰이란 기존의 틀을 수호하는 존재니까. 적어도 스스로에게는 그렇게 되뇌었다. 나는 경찰이 나쁜 사람만 잡는다고 믿는 순진한 어린아이가 아니고, 이해받지 못하는 상황쯤은 각오하고 있었다고, 경찰이나 언론이 그를 받아들이지 못해도 이해할 수 있다고 말이다. 그런데 아니었다.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꽤 많은 언론이 지훈을 좋게 보게 된 지금도, 경찰 중에서도 상당수가 한숨을 내쉬며 그의 존재를 눈감게 된 지금도 임 형사는 포기하지 않았고, 그게 가끔은 정말 짜증이 났다. (213p, 선과 선 - 이수현)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사람들은 누가 잘못했는지 알고 싶어 한다. 책임자를 추궁하고 흑막을 찾는다. 하지만 내 경험에 의하면 이런 일은 누가 잘못했을 때가 아니라 잘한 사람이 하나도 없을 때에 일어난다. 경로에 줄 서 있는 수백 수천의 사람 중 그 누구도, 아무도.

뒷돈도 있고 해먹은 놈도 있겠지만 밝히려면 한 세월일 거다. 형동생 하는 사이며 남의 목숨줄이 제 목숨줄이라 조개같이 쉬쉬한다.

뿔 달고 연두색 옷 입은 놈이 반짝반짝하며 날아와 내가 그랬지롱 내가 했으니 나만 가두면 되지롱 하고 다녀주기라도 하면 나도 얼마나 일하기 편할까? (295p, 세상에서 가장 빠른 사람 - 김보영)

세상을 제대로 잘 굴러가게 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힘이 필요했다. 힘은 가만히 있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것도 아니었고 떼를 쓰는 사람들에게 주어져서도 안 되었다. 당연히 잘못될 까봐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들보다는 무엇이라도 하는 사람들이 더 용기 있는 사람들이었다. 옳고 그른 것은 변하지 않고 올곧게 존재하고 있었다. (363p, 노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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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 무히카 - KBS <TV, 책을 보다> 선정 도서
미겔 앙헬 캄포도니코 지음, 송병선 외 옮김 / 21세기북스 / 2015년 4월
평점 :
절판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 무히카』 미셸 앙헬 캄포도니코 / 21세기북스

 우리도 이런 대통령이 절실합니다

 

 

 

 

  ▒ 책을 읽고 나서.

 

 우루과이의 전 대통령 '호세 무히카'는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으로 유명합니다. '가난'과 '대통령', 누군가에게 붙은 수식어가 이렇게 위화감이 느껴지는 것은 처음입니다. '가난한 대통령'이라, 현실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이상적인 인물이어서 말이죠. 그러나 무히카 대통령은 그 위화감 느껴지는 수식어를 백 번이고 붙여줘야 할 듯한 멋진 인물입니다. 그는 대통령 임기 동안 국가에서 제공되는 대통령 월급의 90% 이상을 각종 사회단체에 기부하고, 재임 중에 대통령궁을 노숙인에게 내주고 자신은 농장에서 생활했다고 합니다. 한 달 전, 그가 퇴임할 때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와도 같은 27년 된 비틀을 타고 자신의 집으로 향했죠. 그리고 지금은 자신의 소신과 가치를 지키며 농부의 삶을 살고 있다고 합니다. 퇴임 당시 국민들의 지지도가 65%에 육박했던 무히카 대통령의 행보와 어록은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많은 화제가 되었습니다.

 

 

 또한, 그에겐 특별한 이력이 있습니다. 책 속의 구절이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설명해주고 있죠.

 

 

호세 무히카가 하원에서 일하는 것을 본 사람이라면, 의심 많은 농부의 분위기를 풍기며 사무실에서 천천히 말하면서 줄담배를 피워대는 그 하원의원이 그토록 극적인 순간을 살아야만 했으며, 경찰과 총격전을 벌이며 맞섰고, 몬테비데오의 하수도를 통해 도망쳤으며, 중상을 입고 거의 죽을 지경에 처했었다는 사실을 상상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그는 기적처럼 목숨을 구했고, 푼타 카레라스 감옥에서 두 번이나 도망쳤으며, 비인간적인 조건에서 13년이나 감옥생활을 했고, 조직적인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 (181p)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 무히카』는 무히카의 탄생부터 정계에 진출하기까지의 그의 인생을 그대로 담아낸 인물 평전입니다. 무히카 대통령의 어록과 인터뷰 내용 또한 풍성하게 담겨 있어 마치 자서전을 읽는 듯한 느낌마저 드는 책이죠. 또한, 인생의 전환점과 같은 사건, 인물들에 대한 상세한 내용이 등장합니다. 이를테면, 게릴라로서 사회운동을 하는 과거에 대한 회상 그리고 자신이 몸담았던 '좌파'에 대한 가감 없는 비판과 의견, 혁명가의 '사랑' 이야기, 그가 생각하는 정치 인생과 우루과이 사회에 대한 모든 내용이 빽빽이 담겨있습니다. 사건 등이 차례대로 나열되는 형식이라 읽기에 쉬운 편은 아닙니다. 정치적인 이야기도 한몫하고 있죠. 하지만 이 책은 무히카의 '목소리'와 저자의 상세한 설명과 평가가 아주 조화롭게 구성된 최초의 전기로서, 읽으면 읽을수록 그의 인생에 빠져들게 됩니다.

 

<무히카 어록> 중에서.

- 나는 가난의 옹호자로 비쳐지고 싶지 않다. 나는 다만 낭비와 불필요한 지출과 에너지 고갈과 무엇이든 탕진하며 사는 삶을 견딜 수 없을 따름이다.

- 정치에서 첫 번째로 요구되는 것은 지적인 정직성이다. 지적으로 정직하지 않다면 나머지는 아무 소용이 없다.

- 국가가 모든 것을 소유하는 것은 상상하기조차 싫다. 내가 끌리는 것은 자치적인 경영이다. 중요한 기관에서 이것이 시도될 때 수반되는 위험까지 고려해도 그렇다. 어떤 것을 관리하는 주체는 국가가 아니라 민중이 되어야 한다.

- 나는 집 구석에 틀어박혀 자서전이나 쓰고 있는 늙은 연금수급자로 살아갈 생각이 없다. 절대로! 

 세상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무히카 전 대통령의 삶과 그의 언행들을 보고 있자면, 사실 잘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이 정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이상적이고, 뜻밖의 행동들을 일궈낸 진정한 리더니까요. 그의 정치적인 업적도 놀랍습니다. 그가 재임하고 나서 우루과이 사회의 불평등을 줄어들었고, 경제는 반대로 성장했고, 빈곤율과 실업률이 감소했으며, 남미에서 가장 부패지수가 낮은 나라로 손꼽히게 되었습니다. 나눔의 가치를 끊임없이 어필하며 우루과이라는 국가에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알려주기도 하였죠. 진정한 리더, 언행일치의 모습을 여기저기서 보여주는 참된 리더의 모습 ……. 우리는 상상조차 하지 못할 그런 대통령의 모습이기에 괜히 더 착잡해지는 순간입니다. 우리에겐 가난한 척하는 29만 원 대통령이나, 악어의 눈물을 흘리는 대통령밖엔 없지요.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은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어쨌든, 우리에게도 이런 대통령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괜히 부러운 마음만 앞서는 오늘입니다.

 

 

 

 

 

Written by. 리니

인물 평전, 전기/ 우루과이 대통령, 무히카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가제본 도서를 읽고 쓴 서평입니다.

 

우리는 그런 자연의 일부라는 느낌이 듭니다. 그것뿐입니다. 오로지 자연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이지요. 몇몇 식물은 그 자리에서 수백만 년을 살아남습니다. 그에 비하면 우리는 스쳐지나가는 존재에 불과합니다. 그럼 중요한 게 무엇일까요? 나는 이런 일들을 전혀 모른 채 화분 하나를 사서 식물을 심는 어느 여자를 바라봅니다. 자연이라는 세계와 연결되고픈 마음에 그렇게 하는 것이지요.

나는 꽃을 꺾으면 감전된 것처럼 느끼는 식물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 식물들은 꽃을 꺾는 사람이 오기만 해도 감전 현상을 보이기도 합니다. 또한 나는 키가 큰 동물에게 먹히는 나무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가령 기린이 다가오면 나무는 공격할 수도 있다는 느낌을 전달합니다. 자기방어의 한 형태로 독을 품는 나무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나무와 식물들은 감각이 없지 않느냐고, 또 그들의 감각이 무엇이냐고 묻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생화학적 활동을 비롯해 그 모든 것을 알게 되면, 멍해집니다. 나는 초보 지식만을 가진 아마추어에 불과합니다. 내 앞에는 내가 모르는 세상이 무한히 펼쳐져 있기 때문에 그런 지식을 통해 거의 성스러운 기분에 잠깁니다. 흙덩이는 완벽한 실험실입니다. 그것은 너무나 정교해서 인간이 도저히 흉내낼 수도 없습니다. 흙은 글을 쓰거나 읽을 줄 모르기 때문에 성스러울 수 잇습니다. 인간도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이해하기 시작하면, 성스러운 태도를 가질 수 있습니다. (141p)

내가 `적`이라는 말을 사용할 때, 나는 `충돌`과 `대치`라는 차원에서 말합니다. 실질적인 적은 우리 앞에서 우리를 죽이거나 파괴하려고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적은 우리가 "토호세력의 핵"이라고 부른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존재 이유를 부여해주었고, 조직의 이름을 `민족해방운동`으로 붙이게 만든 장본인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우루과이가 저개발 국가이자 종속된 국가라는 정치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종속이란 대부분 국내 권력을 중심으로 설정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 중심을 토호세력으로 보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들은 국가의 부와 경제를 거의 독차지하는 주인들이자, 권력에 있어 국가가 취하는 중재나 결정의 실질적인 주인들이었기 때문입니다. (180p)



혁명가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다는 것을 기억해주세요. 혁명가는 별에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것은 말도 안 되는 헛소리예요. 혁명가들도 보통 사람들처럼 두려움을 느낍니다. 물론 그 두려움을 다루는 법을 배워야만 하겠지요.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혁명가 역시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욕망을 갖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욕구들이 아주 다른 환경에서 표출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사랑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합니다. (199p)

일상적 삶에 통용되는 규칙을 항상 거슬러야만 하는 삶, 즉 게릴라로서의 무질서한 삶을 견디기 위해서는,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커다란 확신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지하조직 전투원 고유의 특징인 극단적인 고독의 무게감이 지나치게 클 수도 있다. 조그만 방에 스스로 유폐된 채 느릿느릿 흘러가는 시간과 싸워야만 하기 때문이다. 조직의 다음 계획을 실행에 옮길 순간만을 기다리면서 말이다. 당시 이렇듯 적막한 고독 속에서, 일상적인 삶의 주변부로 내몰렸다고 느끼다 보면, 자신의 일에 대한 확신이 무너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조직의 명령을 기다리는 동안 자기 자신과 외부의 감시에 대해 지나치게 생각하다 보면, 어느 순간 신념을 포기하고 잃어버린 일상성을 회복하고 싶었을 수도 있다. (201p)



우리는 자본주의에서 과학적 방법을 취해야만 합니다. 시민의 참여와 책임감을 끌어내고, 소수의 결정권을 분산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즉,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권력을 시민에게 부여하기 위해서입니다. 인간은 스스로 결정을 내리지 않으면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시민이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잇는 위치로 올라가면 반드시 변화할 것입니다. 계급사회가 언제나 고수해 온 것이 있다면 바로 결정권입니다. 하지만 민주사회는 결정권에 기대는 사회가 아닙니다. 우리는 결정권을 제외한 다른 모든 것에 기대고 있습니다. (31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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