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이순원 지음 / 북극곰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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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이순원 / 북극곰

사랑만큼 가슴 뛰는 어린 날의 추억 공유

 

 

 

 

  책을 읽고 나서

 

 

 첫사랑은 풋풋하다. 어색하고 부끄럽다. 오랜 사랑으로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이 '첫'에 머무른다. 알지 못하고 스쳐 갈 수도 있다. 쌍방향이 아니라 일방적일 수도 있다. 그래서 더욱 기억에 남는, 잊히지 않을 그런 것. "누구에게나 첫사랑이 있다.", 암, 그렇고말고. 그러나 사실 '첫사랑'이라는 소재는 너무나 아름다운 추억을 상기시킬 수 있고도, 서정적인 이야기를 펼쳐낼 수 있지만, 작품의 제목으로 떡하니 갖다놓으면 왠지 모르게 싱거운 느낌이 든다는 게 함정이다. 게다가 대놓고 큼지막한 하트 그림까지. 너무도 직관적이어서 예상치 못한 조합이라 오히려 그 속 알맹이가 무척이나 궁금해진다.

 

 88년에 등단해 『은비령』 등의 작품으로 각종 문학상을 휩쓸었던 '이순원' 작가의 작품은 한 번쯤 만나보고 싶었다. 내게는 언뜻 표지를 보았던 『19세』라는 작품이 첫 작품으로 읽힐 줄 알았지만, 우연히 이 작품을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다. '첫사랑'에 관한,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다.

 

 소설은 표지의 느낌처럼 정직하고 진실하게 다가온다. 작가는 한 초등학교 동창회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1학년 때부터 6학년 때까지 오직 한 교실에서 공부했던 친구들, 남자 스물넷, 여자 스물두 명이었던 가랑잎 초등학교의 동창생들이 모여, 어렵지만 정다웠던 추억들에 대하여 담소를 나눈다. 그리고 어느새 그 이야기는 부끄러워 당시는 말할 수 없었던 '첫사랑' 자현이에게까지 닿는다. 모두가 선망했던 자현이, 그리고 주인공 정수가 뒤이어 친구들과 개인적으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한 번씩 자현이의 이름이 등장한다. 정수는 자현이의 근황을 알고 있지만, 섣불리 그 근황을 꺼내지 않는다. 그들의 아름다웠던 추억이자 사랑이었던 '자현'의 모습을 그대로 남겨두기 위해서. 그리고 정수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누군가의 첫사랑을 이뤄주기로 한다.

 

 '첫사랑'이라서 남녀 간의 로맨스를,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라서 작가 자신을 투영한 주인공이 열렬히 사랑하는 모습을 상상했는가. 아니다. 나 또한 그랬으나, 내가 상상한 모든 장면이 깨어진 채, 사랑의 진한 감정보다는 예쁜 추억을 상기시키는 순수한 장면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어린 날의 추억'이라고 하면 영화 『써니』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데, 어릴 적 '써니'의 멤버들을 하나하나 찾아가는 장면 속에서 나는 모두가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하지만 영화 속 그들의 삶도 각자의 아픔과 애환이 있었다. 그들의 아픔을 묻어준 건 바로, 친구의 존재였다. 친구라는 이름으로 각자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이해하는 장면들을,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계속해서 떠올렸다. 각자의 삶을 사느라 바빠 공유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함께 되짚고, 추억을 공유하는 그 모습이 너무도 따뜻해서 조용한 감동이 인다.

 

 부끄러운 첫사랑의 기억만큼이나, 가슴 뛰는 '추억'이라는 존재 하나가 그들에게 하나씩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순리에 따라 받아들이는 친구들의 모습도 참 보기 좋다. 작가는 이러한 이야기를 어떠한 허세도 꾸밈도 없이, 순수하게 대화를 중심으로 산뜻하게 표현해낸다. 메시지를 찾으려 애썼던 그동안의 무거운 소설들 사이에서, 나를 따스히 보듬어주는 소설이다.

 

 

 

 

Written by. 리니

한국 소설/ 첫사랑, 추억, 친구/ 북극곰 출판사 

해당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책을 읽고 쓴 서평입니다.

우리들의 술자리는 그렇게 하나하나 아련한 기억 속에 옛날의 슬프고 힘든 추억들을 건져내고 있었다. 그러면서 우리는 서로 손을 잡기도 하고, 술잔을 부딪치기도 했다.

"그때, 정말 이뻤다. 자현이."

그러느라고 이야기는 다시 자현이에게로 돌아왔다. 나는 누군가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아직 은봉이가 모르는 자현이의 이야기를 할까 싶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어릴 땐 아무리 좋아도 그런 내색조차 부끄러워 가슴속으로 감추고 감추어야 했던 우리의 첫사랑이 바로 그녀였던 것이다. (31쪽)

아무리 의미 전달이 목적이라지만 같은 사투리도 서울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으면 괜찮고, 서울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면 안 된다는 법은 또 무엇인가. `굴암 한 남박 삶아서`와 `도토리를 한 그릇 삶아서`가 어떻게 같은 뜻인가? 같은 물건이더라도 `굴암`은 굴암이고 `도토리`는 도토리인 것이다. `굴암`은 우리 어린 날 가난한 집의 한 끼 점심 양식이고, 도토리는 아이들이 부르는 동요 그대로 다람쥐가 소풍을 갈 때 싸가지고 가는 점심이거나 때로는 도토리묵을 해 먹는 별식의 원료인 것이다. (66쪽)

"그릇 때문에 그랬다. 운동선수 밥이라고 그냥 네모난 도시락이 아니라 그보다 조금 더 큰 동그란 찬합에다 밥을 싸주셨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노란 알루미늄 찬합이지만 그때 나는 그렇게 이쁜 그릇을 본 적이 없었다. 얼마나 이뻤냐면 뚜껑에 사과하고 포도하고 복숭아 그림이 그려져 있던 건데 그걸 수돗가에서 씻으며 그런 생각을 했던 거야. 이다음 이런 이쁜 그릇 많은 집에 시집가서 하루종일 그릇만 씻고 싶다고. 그러니 그 도시락을 내가 얼마나 깨끗이 씻었겠나. 씻다가 혹시 어디 긁히기라도 할까 봐 일부러 볏닢만 끊어 만든 야들야들한 수세미로 씻고 또 씻고, 아마 그렇게 열 번도 더 씻어 물기까지 말린 다음 다시 보자기에 곱게 싸 니 책상 속에 넣어두곤 했지." (88쪽)

"느들이야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 사랑이 크면 그런 건 아무 문제도 안 된다고. 그래, 그런 경우도 아주 없지는 않겠지. 그렇지만 그것도 서로 처지가 비슷할 때의 얘기지 아무리 사랑이 커도 처음부터 곁에 설 수 있는 나무가 있고 곁에 설 수 없는 나무가 있는 거야. 그걸 가지고 사람 탓하고 사랑 탓할 일도 아니고." (1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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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 법칙
편혜영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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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 법칙』 편혜영 / 문학동네

 제각기 뻗어 나가는 우리네 삶의 무수한 접점들

 

 

 

 

  책을 읽고 나서

 

 점(點), 그리고 각각의 점이 모여 선을 만들고 장면을 이룬다는 빤한 이야기로부터 이 글을 시작한다. 누군가의 파국은 또 누군가의 파국과 연결되어 있었다. 무의미하게 이어온 관계는 또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었다. 우리 인간은 어마어마한 세상 속 하나의 점, 수없이 많은 사람과 연결된 그 '선(線)'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원을 형성해가고 있을까?

 

 

 편혜영의 소설은 어둡다고들 한다. 이 소설 속에도 어둠과 슬픔이 혼재해있다. 누군가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 제3금융권, 다단계, 조금씩 커다래지는 '악의'…… 하지만 어딘가 텁텁한 맛은 있어도, 파국으로 치달아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정도로 어둡지는 않다. 조금은 느슨하게 '삶'에 닿은 채, 느릿느릿 걸어가는 소설이다. '생의 마지막 순간 보내온 간절한 발신음'이라는 인상 강한 카피에 비해 소설은 느릿느릿하게 펼쳐지다가도, 때로는 미스터리 소설처럼 박진감 넘치는 모순된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한다.

 

 

 주인공 둘, '윤세오'와 '신기정'은 각각 자신의 곁에 있는 누군가를 잃었다. '윤세오'는 가스 사고로 아버지를 잃고 '신기정'은 강에서 익사체가 된 이복동생의 소식을 듣는다. 그들의 사망에 얽혀있는 것들을 추적해나가는 둘의 방식은 조금 다르다. 아마도 그 방식은 죽은 사람과의 사이에 따라 달라지는 것인가. 가까운 듯 먼 동생의 흔적을 찾아 나가는 '신기정'의 모습은 매우 침착하다. 하지만 '윤세오'는 조용한 듯 끓어 넘치는 분노를 잠재우지 못한다. 자신에겐 모든 나쁜 것들을 숨기려 했던 사랑하는 아빠는 사고가 아닌 '살인'으로 죽음을 맞이한 것 같다는 생각이 불쑥 터져 나온다. 그리고 대상을 찾아낸 직후, 그 악의는 큰 덩어리의 '악'이 되어 버린다. '선(線)의 법칙', 작은 점이 만나 선을 이루는 것처럼 그 악은 조금씩 팽창되어 간다.

 

 

악의가 악이 되는 것은 언제부터일까. 상상하고 품는 것만으로 악이 되는 걸까. 실행될 때 비로소 악이 될까, 실행하더라도 실패하면 악은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악이 아니라면 얼마든지 행동을 바꾸고 거처를 옮기고 생활을 바꾸게 해도 좋은 것일까. 그렇다면 악의는 환상이나 몽상인 걸까. 환상이나 몽상은 종종 현실을 바꾸기도 하니까. (96쪽)

 

 그리고 또 다른 선(線)은 그들 자신이었다. 아마도 모든 것이 '원인과 결과'처럼 선으로 이어질 테지만, 소설 속에 짙은 색깔로 존재하는 선은 이야기 면에서는 '사람'이고, 표현 면에서는 '윤세오'의 내면을 좀먹는 '악의'다. 하지만 그 둘의 추적이 각각 다른 곳을 향하다가, 한 선 안에서 만날 땐 불꽃이 튀는 것처럼 강렬한 장면을 만들어낸다. 그들이 짐작하지 못했던 접점, 그리고 그들이 돌아온 궤적은 어느새 큰 원을 그리고 있는 사실을, 그들도 독자도 마주한다. 잔인하리만치 좁은 세상이다. 소설 속에서 그리 큰 행보가 없었던 누군가도 그 세상 안에서 나름의 영향을 주며 살아가고 있었다. 내가 만들어온 사소한 궤적들도 얼마나 긴 선으로, 많은 장면으로 이어져 있을까?

 

 

 결국은 "삶은 계속된다."라는 메시지다. 내게는 편혜영의 첫 작품, 기대했던 것과 달리 메시지와 표현은 새롭지 않았지만, 실마리를 풀어가는 그들의 모습과 차분히 이어나가는 건조한 말들에 가슴이 먹먹하다. "제각기 뻗어 나가는" 우리네 삶이 다른 이들과 걸치고 걸쳐 있다는 사실이 어쩔 수 없음을 인지하고, 가장 우선으로 해야 할 일을 깨닫는 '에필로그'의 장면은 예상치 못한 강렬함으로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게 한다.

 

 

 

Written by. 리니

한국 소설/ 문학동네 장편소설 

소장하고 있는 책을 읽고 쓴 서평입니다.

 

"그럴 분이 아니에요."

그렇게 말하니 몹시 외로워졌다. 하지만 괜찮다고 다독였다. 몸에 붕대를 감고 병실에 홀로 누워 있는 아빠만큼 외롭지는 않을테니까. 견딜만 했다. 얼마나 외롭든 아빠만큼은 아닐 것이었다.

"암요. 당연히 그럴 분이 아니죠. 절대 그럴 분이 아니죠."

김명국이 웃었다.

"그런데요, 이런 일은 다 절대로 그럴 리 없는 사람들이 해요. 인간은 원래 그럴 리 없는 존재거든요. 죄다 그럴 것 같은 사람뿐이면 무서워서 어떻게 살겠습니까. 사람은요. 성추행할 리 없는데 그렇게 하고요. 사기칠 리 없는데 사기칩니다. 물론 자살할 리 없는데 자살하고요."

김명국은 윤세오의 묵묵한 얼굴을 마주하고 입을 다물었다. (42쪽)

그럴 수 없었다. 윤세오에게 그 일은 필연이나 의무에 가까웠다. 가능한 때를 위해 충동을 참아야 했다. 충동은 윤세오가 느끼는 분노와 증오를 모두 담지 못했다. 장도리를 사용하는 것보다 좋은 방법을 찾을 수 있을 터였다. 윤세오는 그것을 찾아낼 때까지 기꺼이 악의와 동행할 생각이었다.

악의는 윤세오에게 할 일을 주었다. 슬픔을 떨치고 일어나게 했다. 기운 차려 움직이게 했다. 밥을 먹게 했고 누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곳저곳 다니게 했다. 고시원에서의 단출한 생활을 군말없이 꾸리게 했다. 덥고 어두운 밤 창도 없는 고시원에서 소음을 만들지 않기 위해 그저 누워만 있는 시간을 견디게 했다. 아무와도 말하지 않는 시간을 참게 했다. 재만 남은 157번지로 돌아가지 않게 했다. (100쪽)

신기정은 부이라는 이름을 여러 번 소리내어 불러보았다. 동생의 이름을 쓰고 그 옆에 부이라고 적은 후 각각의 이름을 동그라미로 둘러쌌다. 둘러싼 동그라미를 선으로 이었다. 하부라인과 상부라인의 구조가 만들어졌다. 이번에는 윤세오의 이름을 적고 세개의 이름을 각기 감싼 동그라미를 가능한 방향으로 연결해보았다. 맨 처음 동생이 있다. 그다음 윤세오, 그리고 부이. 순서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었다. 어디로 선을 긋건, 윤세오-동생-부이로 연결되는 선이건, 동생-부이-윤세오로 이어지는 선이건, 그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상상 속에서는 모든 게 가능했다. 그 세 이름 중 신기정이 제대로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었다. 신기정은 여러 방향으로 뻗어나가는 동시에 각자의 자리에 머무는 그 선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마치 거기에 그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이름을 보면 세 사람의 얼굴이 보이기라도 하는 것처럼. (120쪽)


윤세오는 이 작은 슈퍼마켓에 자신을 내맡기고 싶어졌다. 사람이 서로에게 덫이 되거나 먹이사슬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거나 원망과 분노를 품는 것이 아니라, 즐겁게 일하고 뭔가를 시도해보고 동료라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을 사귀고 함께 농담하고 얘기를 나누는 것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그러는 데에서 소소한 행복을 깨닫는 삶을 살아보고 싶었다. (1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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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트 히어애프터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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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트 히어 애프터』 요시모토 바나나 / 민음사

"그런 마음이면 되는 거였다"

 

 

 

  책을 읽고 나서

 

 

  작가 '요시모토 바나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수많은 작품이 우리나라에도 출간되어 있고, 나올 때마다 여기저기 좋은 글들이 보인다. 하지만 내게 그는 항상 관심 밖이었다. 표지 탓일까, 바나나라는 다소 가볍고 귀여운 필명 때문일까. 남성적이고 힘 있는 작품들만을 좋아했던 나에게는 그다지 눈에 들어오지 않는 작가였다. 다행히, 지금은 다양한 작품들을 읽으려고 노력하는 중이어서, 깊게 박혀버린 나쁜 편견을 뒤로 한 채 읽어보기로 했다.

 

 아, 사실은 '편견을 타파하자'는 포부보다는, 최근 '죽음'에 대한 책들을 부쩍 읽고 있던 찰나에 이 책의 내용을 보게 된 탓도 있었다. 거의 연속적으로 '존 버거'의 『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과 '롤랑 바르트'의 『애도일기』를 읽었다. 그리고 이어서 '요시모토 바나나'의 『스위트 히어 애프터』다. 셋 다 죽음을 다루고 있는데, 그 내용과 느낌은 굉장히 다르다. 일단은 '죽음에 대하여' 냉철하게 말해보자. 우리는 결국 '죽음'으로 살려가고 있는 존재들이다. 눈을 감는 순간이 두렵지만, 눈을 감는 순간이 행복하길 바라면서 모두가 철저한 준비를 한다. 그리고 생애 절대로 알지 못할 '죽음'에 대해 궁금해한다. 하지만 그 궁금증과 철저한 준비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의 '죽음'은 언제나 슬픔 속에서 허우적대게 한다. 뜻밖에 먼 사이의 사람들에게도…….

 

 『스위트 히어 애프터』는 죽음 후에 남겨진 사람들을 그린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죽음 문턱에 갔다 온 여자를 그리고 있다. 남자친구는 세상을 떠났고, 자신은 기적같이 살아남았다. 그리고 그 신비스러운 (이라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체험 이후, 돌아온 생에서는 세상을 떠도는 '혼'들을 본다. 한마디로 말해서 '죽었다 살아나서 귀신을 보는 이야기'지만, 이 이야기가 남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건 단연 '요시모토 바나나'라는 작가의 섬세한 손길일 것이다. 종이 한 장 차이의 삶과 죽음, 격하디격한 체험을 오로라의 신비스러운 색채로 표현하고, 같은 슬픔을 공유한 '죽은 남자친구와의 가족'과는 어느새 뜨거운 가슴으로 서로를 감싼다. 그리고 편안하게 자신을 감싸주는 친구들, 단골 바의 '신가키' 씨, 그리고 새롭게 자신과 만난 '아타루'를 보게 된다. 세상을 떠도는 귀신들의 모습에서는 무언가를 잃어버린 슬픔을 느낀다. 그렇게, 주인공 사요코는 지금 뛰고 있는 자신의 숨소리와 그것을 뛰게 하는 모든 것들을 새로이 깨닫게 된다.

 

 강아지가 죽었을 때, 그렇게 슬퍼해서는 안 되는 거였네. 슬퍼하면 슬픈 색이 여기 하늘에, 공기에 흘러들고 만다. 그렇게 실감했다. 우리 참 즐거웠지, 시간을 공유했고 같이 산책도 했고, 정말 잘 지냈어. 그런 마음이면 되는 거였다. (16쪽)

 

 일본 소설 특유의 담담함과 물기 어린 슬픔이 이 소설 속에서도 잔잔히 전해져 온다. 순수하면서도 담백한 그녀의 언어들이 가슴을 어루만진다. 나는 뜬금없이 그 담백한 언어 속에서 그녀의 강아지에 감정을 이입해서 울컥하고 만다. 그러나 잠시 뒤에 보니 이 한 문장이 이 소설을 제대로 말해주고 있는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추억, 기억의 공유와 인연, "그런 마음이면 되는 거였다." 언제까지나 "사랑하는 이여, 내게 돌아오기를." 하며 울부짖겠지만, 그 인연을 소중히 했다면, 사랑했다면 되는 거였다. 그렇게 하려면 나는 오늘을 더욱더 세심하게 신경 써야 하겠다. 먼 훗날 기억할 소중한 추억을 위해서.

 

 

 

 

 

Written by. 리니

일본 소설/ 힐링 소설/ 죽음, 이별, 위로 

 

 

그 세계의 하늘은 언제나 오로라처럼, 무지개처럼 신비로운 색이었다.

모든 것이 아침이나 저녁노을처럼, 생명의 반짝임으로 은근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맑고 상쾌한 바람이 부드럽게 살랑살랑 스치고 지나가 나무들이 흔들리면, 솜털이 바람에 날리듯 뭔지 모를 반짝이는 것이 사방으로 화르르 퍼졌다. 그 풍경은 만화경처럼 매일 모양이 바뀌어 며칠을 두고 봐도 싫증 나지 않았다. 정말 아름답네, 하고 생각했다. (16쪽)

이제는 만날 때마다 서로가 눈물을 참지는 않는다. 울지 않기 위해 참거나 억지를 부리지도 않는다. 당시처럼 누군가가 괜찮으면 누군가가 엉망이어서, 견디지 못하고 교대로 오열하지도 않는다. 다만, 각자의 입장에서 힘겹게 쌓아 온 시간을 서로가 차분하게 나눌 뿐이다. (25쪽)

영혼에 상처받고, 영혼으로 치유되는 이상한 날들.

내가 방긋 웃어도, 그녀는 별 반응 없이 나를 바라보고, 나와 거리를 똑같은 것으로 인정해주고, 그런 상태로 방긋거리며 이쪽을 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러면 나는 자신이 세계와 반듯하게 하나가 된 것처럼 여겨졌다. 궁지에 몰려 괴로워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거야, 잘 섞여 있어, 대기에 녹아 있을 수 있어. 그렇게 안심할 수 있었다. (60쪽)

아타루 씨가 컵도 두 개 들고 있기에, 우리 둘은 그 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어제 먹고 남은 마늘 바게트를 조금씩 먹으면서, 아침 해는 어느 거리에도 고루 아름답고 하얀 빛을 뿌리고, 온갖 것을 싹 쓸어 어제의 세계로 가져갔다. 또 아침이 왔다,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이 얼마나 꿈같은 시스템인가. 인간이 제아무리 대단한 사고를 한다 한들, 여기까지는 따라올 수 없다. 억지로 밝게 하는 것 외에는, 모든 일을 리셋하거나 백지로 돌릴 방법은 없다. 이 흐름에 올라 있으면 생명이 있는 한 반드시 살아남을 수 있다. 태양도 얼마나 굉장한지 모르겠다. 감동하게 된다. (1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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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베라는 남자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최민우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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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베라는 남자』 프레드릭 배크만 / 다산책방

마음과 마음이 만드는 '유쾌한 균열'

 

 

 

  책을 읽고 나서

 

 

 파란 빛의 상큼한 표지와 한껏 눈썹을 치켜뜬 노인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예전 큰 인기를 누렸던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이 떠오른다. 두 책은 이야기 구성에 있어서는 확실히 다른 책이다. 하지만 폭탄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정체불명의 노인을 주인공으로 설정한 것뿐만 아니라 형식과 문체, 짧은 호흡으로 진행되는 이야기 등이 오묘하게 비슷한 느낌이 있다고 개인적으로는 느끼고 있다. '100세 노인'이 2009년, 그리고 이 작품이 2012년, 똑같은 스웨덴에서 출간된 것을 보면, 전 세계적으로 인기가 있었던 어떤 '코드'를 비슷하게 재현해낸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이보다 더 닮았다고 생각하는 건, 영화 <그랜토리노>다. 지금은 책에 밀려 다양한 영화를 접하고 있진 못하지만, 예전에 우연히 만나게 된 <그랜토리노>는 간혹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로 뜬금없이 소개할 정도로 마음에 들었던 영화였다. 이 둘은 자동차 (그랜토리노, 오베의 경우는 '사브')를 매개로 진행되는 이야기나, 무뚝뚝하고 폐쇄적인 노인이 점점 자신의 과거를 드러내며 이웃과의 관계를 회복해나가는 점에서 닮았다. 하지만 이런 다양한 매체와의 유사성 - 아주 작은 것이라 하더라도 - 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가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것은 이야기의 흡인력과 '감동 코드'가 아닐까 싶다.

 

 이 책이 주인공의 남다른 까칠함과 '시한폭탄 같은 소설' 등으로 홍보되고 있기는 하지만, 단지 유쾌함만으로 승부하는 소설은 아니다. 오베라는 남자' (현재) - '오베였던 남자 (과거)'를 번갈아 진행되는 이야기는 의외로 어두운 것 같으면서도, 그 주축은 '사랑'이다. 단지 이성 간의 로맨스만이 아니라,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사람 사이의 관계도 포함되는 '사랑' 말이다. 고집스럽고 촌철살인의 말을 내뱉으며, 이웃들과 싸우기 일쑤였던 노인의 모습 이면에는, 한 여자를 목숨처럼 사랑했던 마음이 담겨있었고, 아버지에게서 얻은 꿋꿋한 신념이 담겨 있었다. 또한, 갑작스레 나타난 정체불명의 이웃집 여자가 아니었다면, 매일 시도하던 자살 시도가 한 번쯤 성공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존심으로 똘똘 뭉쳤지만, 자존감은 바닥이었던 '오베라는 남자'를 필요로 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 그것이 변화를 향한 딱 한 걸음이었다. 그리고 그 "유쾌한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할 때, 우리는 예상했듯 코끝이 찡한 감동의 장면들을 접하게 되는 것이다.

 

 그 감동의 장면 속에서도, 소설은 편리함 속에서 무언가를 잃고 점점 변해가는 세계를 혐오하는 노인의 모습이나 하얀 셔츠의 직원들이 등장해 권력을 자행하는 모습들, 그리고 이어지는 대화들을 통해 사회의 여러 면을 날카롭게 꼬집기도 해 작품의 흡인력을 더욱 높이기도 한다. 분명, 예상 가능한 이야기의 진행이지만, 노인의 까칠함 속의 숨은 의미를 찾을 때와 노인이 굳게 닫힌 마음을 아닌 척 열어젖히는 작지만 큰 변화가 이 소설 안에서도, 소설을 읽는 우리에게도 큰 힘으로 작용한다. 여러 의미에서 불통不通의 시대인 지금, 까칠하지만 까칠하지 않은 '오베라는 남자'와 한없이 따뜻하고 귀여운 그의 이웃과의 관계를 꿈꾸는 모든 이들이 사랑스러워할 소설이다.

 

 

 

 

 

 

Written by. 리니

북유럽, 스웨덴 소설/ 성장, 감동소설/ 인간관계, 이웃, 사랑

소장하고 있는 책을 읽고 쓴 서평입니다.

 

누구도 품질에 더 이상 신경쓰지 않았다. 루네도, 다른 이웃도, 오베가 일했던 직장의 관리자들도. 이제는 모든 것이 전산화되어야 했다. 꽉 끼는 셔츠를 입은 컨설턴트들이 노트북의 뚜껑 여는 방법을 알아내기 전까지 아무도 집 한 채 지은 적 없었던 것처럼. 마치 그게 그 옛날 콜로세움과 기자의 피라미드를 세운 방법이기라도 했던 것처럼. 맙소사, 사람들은 1889년에 에펠탑을 세웠는데 이제는 휴대 전화를 재충전하기 위해 휴식 시간을 갖지 않고서는 1층짜리 집의 빌어먹을 도면 하나 못 그려냈다.

이 세상은 한 사람의 인생이 끝나기도 전에 그 사람이 구식이 되어버리는 곳이었다. 더 이상 누구에게도 무언가를 제대로 해낼 능력이 없다는 사실에 나라 전체가 기립 박수를 보내고 있는 상황이었다. 범속함을 거리낌 없이 찬양해댔다. (119쪽)

오베는 문간에 서서 조용히 서류를 읽었다. 가슴에 통증이 느껴졌다. 그 통증이 무엇을 뜻하는 것이었는지, 그는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이해했다.

미움이었다. 그는 하얀 셔츠를 입은 남자들이 미웠다. 그는 누군가를 이렇게 미워한 기억이 없었지만, 지금은 미움이 그의 내면에 불타는 공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오베의 부모님이 이 집을 샀다. 오베는 여기서 자랐다. 이 집에서 걷는 법을 배웠다. 아버지는 여기서 사브의 엔진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걸 가르쳐주었다. 그 모든 시절이 지나고 나서, 시 당국에 있는 사람들이 여기에 다른 걸 지어야 한다고 결정을 내렸다. 얼굴이 둥근 남자가 오베가 불을 끄는 걸 막았고, 이제 또 다른 하얀 셔츠의 사나이들이 여기 서서 `시가`에 대해 떠들고 있었다.

하지만 오베는 사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는 해가 다 뜰 때까지 여기 서 있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런다고 상황을 바꿀 수는 없었다. (156쪽)

나중에 그때를 돌이켜보았을 때, 그는 자기가 왜 거기서 계속 기다렸는지 잘 설명할 수 없었다. 아마 그런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약속은 약속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나 싶다. 어쩌면 다른 이유도 있을 수 있었다. 딱 꼬집어 말하기는 좀 어렵지만, 물론 그때는 그걸 몰랐지만, 그는 훗날 자기 인생의 수많은 15분을 그녀를 기다리며 보낼 운명이었다. 그의 선친이 그 사실을 알았다면 사팔눈을 떴겠지만, 마침내 그녀가 꽃무늬가 그려진 긴 스커트를 입고, 오베로 하여금 자기 몸의 무게 중심을 오른발에서 왼발로 움직이게 할 정도로 새빨간 카디건 차림을 나타났을 때, 오베는 시간 약속을 못 지키는 그녀의 무능함이 그렇게 중요한 문제는 아닐지도 모른다는 결론을 내렸다. (184쪽)

때로 어떤 남자들이 갑자기 어떤 일을 했을 때 그 이유를 설명하기란 어렵다. 물론 그들 자신이 언젠가 그 일을 하게 되리라는 걸 알기 때문에 그냥 지금 하는 게 나아서일 수도 있다. 때로는 정반대의 이유이기도 했다. 즉 자기들이 진작 그 일을 했어야 했다는 걸 깨닫는 것이다. 아마 오베도 자기가 뭘 해야 하는지 내내 알고 있었겠지만, 사람이란 근본적으로 시간에 대해 낙관적인 태도를 갖고 있다. 우리는 언제나 다른 사람들과 무언가 할 시간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말할 시간이 넘쳐난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무슨일인가가 일어나고 나면, 우리는 그 자리에 서서 `만약`과 같은 말들을 곱씹는다. (3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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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 : 모리어티의 죽음 앤터니 호로비츠 셜록 홈즈
앤터니 호로비츠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6월
평점 :
절판


『셜록홈즈, 모리어티의 죽음』 앤터니 호로비츠 / 황금가지

심장 쿵 내려앉는 반전의 재미

 

 

 

 

  책을 읽고 나서

 

 아, 정말 대박이네요. 오랜만에 심장이 쿵! 하는 반전을 만났어요. 사실 전 '셜로키언'이라고 하는 셜록홈즈 매니아도 아니고, 추리소설 매니아까지도 아니지만, 가끔가다 한번 씩 읽는 장르소설을 좋아하긴 하는데요. 셜록홈즈 시리즈를 완독한 게 아니면서도, '앤터니 호로비츠'의 『셜록홈즈』 시리즈에 살짝궁 의문을 가지고 있기는 했어요. 뭐, 아서 코난 도일 재단에서 처음 출간하는 공식 셜록 홈즈의 작가라고는 하지만, '라이헨바흐 폭포'에서 홈즈가 모리어티와 결투를 하고 자취를 감춘 <마지막 사건> 직후의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정말 궁금했거든요.

 

 작가는 새로운 인물의 조합을 등장시키는데요. 홈즈와 왓슨박사 대신에, 런던 경시청의 '애설니 존스' 경감과 뉴욕 탐정 사무소 직원인 '프레더릭 체이스'의 조합입니다. 그들은 <마지막 사건>에 등장하는 '라이헨바흐 폭포'에서 모리어티의 시신을 수습할 당시 처음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시신에서 나온 단서를 중심으로 사건의 진상을 함께 파악해나가죠. '체이스'가 화자가 되어 모든 상황을 전해주고, 홈즈와 비슷한 방식으로 사건을 추리해나가는 '존스' 경감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이후 잔혹하고 무자비한 살인사건이 벌어지고, 자그마한 단서들을 통해 비밀을 추적해나가는 과정이 긴장감 있게 펼쳐지죠. 긴장감, 두려움, 비밀이 뭘까 하는 간질거리는 궁금증이 폭발하면서도, 간결하고 군더더기 없는 구성 속에서 침착하게 페이지를 넘기게 합니다. (간혹, "너무 갔다." 싶을 정도로 복잡하고 서술도 불편한 추리 소설들을 만나곤 하는데, 개인적으로 이 작품은 딱, 적당하다 싶었어요.)

 

 '셜록홈즈' 팬들에게 아쉬울 점은 아마도 '셜록홈즈'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주인공 '홈즈'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일거예요. 저도, 왠지 모르게 주인공들의 모습에 '홈즈'를 투영해보고, 혹여 정체를 숨기고 다른 인물인 척하지 않을지 궁금해했으니까요. 하지만 아쉽게도 '홈즈'는 끝끝내 등장하지 않습니다. 대신, 이 책의 주인공인 '존스'는 셜록홈즈에 관한 한 광적일 정도로 기록을 모으고 집착하고, 존경하며 닮으려 애쓰는 모습으로 새로운 캐릭터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홈즈'와 닮은 듯하면서도 다른 모습이 인상 깊어 그에게도 만만치 않은 호감을 느꼈던 것 같아요. 또한, 수많은 '셜로키언'들을 위하여, 작품 속에서 이전 '아서 코난 도일'이 그린 사건들을 언급하는 부분이 꽤나 많이 들어 있어서 매니아 분들은 더욱 꼼꼼하게 읽을 수 있을 듯합니다.

 

 작가가 꼼꼼히, 그리고 치밀하게 구성한 이 소설은 (전 절대!) 예상치 못한 반전을 갖추고 있는, 오랜만에 심장 쿵 내려앉게 하는 재미를 갖추고 있어요. 셜록홈즈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에게 원작과 비슷한 분위기를 조성하여 충분한 재미를 줄 수 있는 소설이지만, 다른 주인공으로 홈즈를 떠올리게 하는 일종의 '패스티쉬' 작품처럼 읽는다면 더욱 만족할만한 독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대신, 마지막에 홈즈와 존스가 등장하는 단편이 하나 수록되어 있어 그것으로 아쉬운 마음을 달래보아요.) 후속편은 나올지, 어떤 내용으로 나올지 벌써 궁금하기도 하네요.

 

 

 

Written by. 리니

영미 소설/ 장르, 추리소설/ 셜록홈즈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가제본 도서를 읽고 쓴 서평입니다.

 

나는 그 순간을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이다. 대여섯 명 정도 되는 경찰들에게 둘러싸인 채 존스가 모트레이크와 마주 보고 서 있었다. 상대는 폭력배였다. 금방이라도 전쟁이 터질 듯한 분위기였다. 그리고 부지불식간에 이 모든 사태의 원인을 제공해 놓고 거의 잊히다시피 한 스코치 라벨이 그 한복판에 말없이 앉아 있었다. (136쪽)

어디에선가 나타난 대형 승합마차가 나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처음에 나는 그 마차를 보지 못했다. 몸집이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말 두 마리가 나를 빤히 쳐다보며 내 시야를 완전히 가리고 있었다. 두 마리가 아니라 한 마리이고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동물인가 싶었다. 그러다 그 뒤에서 끌려오는 대형 승합마차, 고삐를 당기는 마부, 지붕 칸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앞으로 펼쳐지려는 비극을 꼼짝없이 목격하게 된 승객들의 겁에 질린 얼굴이 내 눈에 들어왔다. (180쪽)

"아주 마음에 듭니다. 낯선 이방인인 저를 환영해 주었고 남들 같으면 훼방을 놓았을 텐데 저에게 줄곧 잘해 주었으니까요. 그리고 이렇게 얘기해도 괜찮을지 모르겠습니다만, 똑똑하기도 하고요. 솔직히 존스 경감님 같은 형사는 지금까지 본 적 없습니다. 방법이 특이해요."

"보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나요?"

나는 잠깐 생각해 보았다.

"셜록 홈즈요."

"그렇죠." 갑자기 그녀의 목소리가 싸늘해졌다. "셜록 홈즈가 생각나죠." (199쪽)

그는 한 걸음 앞으로 다가와서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의 손을 잡았다. 바로 그 순간에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가까워지지 않았나 싶다. 나는 그의 제안에 여전히 어안이 벙벙했지만 내 친구 존스는 평생의 숙원 사업을 달성하는 순간을 목전에 둔 사람마냥 열의로 이글거렸다. (2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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