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지음, 김욱동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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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은 읽을 때마다, 읽는 사람마다 다르게 읽힌다는 게 가장 큰 매력이다. 오랫동안 필독도서였던 이 책을 읽고 느낌을 남기고 난 후에 다른 사람들의 감상을 구경했는데, 제각각의 의견을 내는 걸 보고 올해 참 즐겁고 신기했던 기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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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강아지 스트레스 없이 행복한 75가지 놀이 방법 - 동물행동학 전문가가 전하는 두뇌 활성 놀이
클레어 애로스미스 지음, 강현정 옮김 / 작은책방(해든아침)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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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어 애로스미스 (지은이) | 강현정 (옮긴이) | 작은책방(해든아침) | 2015-11-23 | 원제 Brain Games for Dogs (2010년) 

 

 

  남겨진 생각들  

 

 날씨가 유독 추워진 요즘, 강아지와 산책을 하다 보면 길거리에 다른 강아지 친구들이 현저하게 줄어든 느낌이에요. 추운 날씨 탓인지, 낮에도 많이 보이지가 않죠. 제 반려견은 털도 북실하고 몸집도 커서 눈밭에서도 뛰어다니지만, 단모종이나 소형견 친구들은 엄청나게 두꺼운 외투 없이는 겨울에 산책하기가 힘들 것 같더라고요. (옷을 입고도 떨고 있는 단모종 강아지를 보고 최근 안쓰러웠던 경험이;;;)

 그렇다면 집에서 머무를 수밖에 없는데, 작은 공간에서 강아지와 할 수 있는 놀이는 어떤 게 있을까 하고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이 있을 거예요. 좋아하는 장난감이 있더라도, 강아지들의 특성상 계속 새로운 놀이와 장난감을 찾게 되니, 집에 있는 시간을 어떻게 활용해줄까도 참 중요한 문제니까요. 에너지를 발산하지 못한 강아지는 종일 우울하고 심심해하며, 게다가 외부 소리에 대한 경계나 짖음도 심해질 수 있어서 주의해야 해요.

 

​ 제 반려견 둥이와 집에서 고정적으로 제일 많이 하는 놀이는 물어오기, 밀고 당기기 놀이에요. 산책을 다녀와도 워낙 에너지가 넘치는 애라 집에서도 놀아달라고 애교를 부리는데요. 장난감을 한번 가져와서 놀아달라고 하면 백번 이백 번 다시 물어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똑같이 저도 던져주죠.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똑같은 걸 계속하고 있으니 지루해지더라고요. 둥이도 괜히 에너지만 발산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요. 그럴 때마다 새로운 놀이방법은 없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특별한 도구 없이, 집에서 쉽게 할 수 있는 놀이였으면 더욱 좋겠죠.

 『내 강아지 스트레스 없이 행복한 75가지 놀이방법』에는 훈련과 연계된 기본적인 놀이부터 시작해서, 평범한 도구를 가지고 집에서 쉽게 할 수 있는 놀이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재밌는 점은 '반려견 혼자 하는 놀이'도 소개되어 있다는 점. 너무 오랜 시간 '혼자 놀기'는 지루할 수 있겠지마는, 어느 정도의 혼자 놀기 방법도 반려견의 스트레스에 도움이 될 수 있어요. 참고로 둥이는 라텍스나 고무로 된 장난감은 씹는 질감이 좋은지 그냥 온종일 물고 놀 때도 있어요. ^^

 

 이 책은 '브레인 게임',반려견에게 정신적인 자극을 주는 활동을 중심으로 놀이방법을 소개하고 있어요. 1장에서는 놀이의 중요성과 기본 기술, 원칙 등을 소개하고 있고 2장부터 본격적으로 자세한 놀이 설명이 들어갑니다. 반려견을 처음 키우는 사람들을 위한 아주 기초적인 놀이방법부터 시작되는데, 동작 하나하나 그림으로 설명되어 있어요. 초보적인 방법이라 신경 쓰지 않고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이 기초 훈련들이 점점 더 난이도가 높아지는 놀이들을 완벽하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니, 오래 걸리더라도 익히고 넘어가는 게 좋겠지요. (그러나 중요한 건, 반려견이 지칠 만한 강도로 하는 건 놀이가 아니라는 것! 뭐든지 적당히!)

 

  

 초반에 등장하는 쉬운 난이도의 놀이는 이미 알고 있는 것들도 있지만,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신기하고 "이것도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드는 놀이도 많더라고요. 중간쯤에는 홈메이드 장난감 만드는 법도 소개되어 있는데, 간식과 함께 꼰 헝겊 장난감은 정말 꼭 한번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실타래 장난감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둥이가, 간식까지 끼어 있으면 아주 즐거워할 것 같아요. 그리고 여러 번 인터넷에서 본 '상자 놀이'는 개들의 필수 활동인 '노즈워크'를 활발하게 할 수 있게 만드는 방법이네요. 상자 속에 간식이나 사료를 넣어 구긴 종이들을 넣고, 냄새를 맡아 보물찾기하는 '노즈 워크' 놀이는 워낙 좋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서, 빠른 시일 내에 만들어볼까 생각 중이에요.

 

 이렇듯 생활 속에서 쉽게 할 수 있는 놀이로 구성된 『내 강아지 스트레스 없이 행복한 75가지 놀이방법』은 초보 견주들에게도, 집에서 노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견주와 반려견에게도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줄 것 같아요. 매일 매일 산책을 하더라도, 남는 우리 개의 에너지. 즐거운 놀이로 행복하게 발산시켜 보아요.

 

 

Written by. 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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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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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 (지은이) | 예담 | 2015-11-16 | 초판출간 1995년

 

 

 

 남겨진 생각들  

 

 

 악의 주체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 소설은 자칫 위험하게 보일 수 있다. 일기로 채워진 글은 마치 강력한 독처럼 스며들어 온다. 주인공 '임순관', 대필작가인 그는 삶을 써내는 사람이었다.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쓸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글은 자신이 주체가 아닌, 다른 이의 삶을 기록하는 글이었다. 한평생 자신의 삶에서 벗어나 다른 이의 삶에 배어들 수밖에 없었던 그는 결국 '토해내듯이' 일기를 썼다. 일기 속에는 우울과 냉소, 자기 허무에 가득 찬 문장들이 주체할 수 없이 실려 있다. 그는 왜 썼을까. "우리는 누구나 남다른 채로 남과 같지 않은가?"라는 소설 속의 말처럼, 자신은 세상 사람들과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이해받고 싶어하는 마음을 주르륵 펼쳐놓았던 것일까?

 

 

Q : 조금도 후회가 없는가?

A : 내가 묻겠다. 당신이 당신의 집을 더럽히고 당신과 당신의 가족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쥐새끼들을 다섯 마리쯤 죽였다면 후회하겠는가? 당신이 후회하지 않는다면 나도 후회하지 않는다. 후회가 있다면, 더 많은 쥐새끼들을 처치하지 못한 것이다. (238쪽)  

 연쇄살인범이자 사형수인 '손철희'의 기억을 회상하고, 그의 삶 언저리에 들어가 대필을 준비하는 과정이 처음으로 펼쳐진다. 포동포동 살찐 광란의 쥐떼들, 그들을 바라보는 '손철희'의 기억은 의뭉스럽다. 주인공의 고객, '손철희'. 세상의 모든 쥐새끼를 벌했다는 착각에 빠져버린 반영웅의 싸이코는 그렇게 '임순관'의 내면으로 들어온다.

 

 

 '악'은 어디서 오는가? 부정한 세상과 사람들의 호들갑이 '악'을 만드는 것이라 단언하면, 그보다 위험한 말이 없을 것이다. 한 범죄자가 있다. 그의 마음속 악의가 어떻게 자라났느냐는 질문에 "세상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어요"와 같은 대답은 황당하리만큼 비겁한 말이며, 그렇다고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가 순화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악'은 어디서 오는가? 어떤 이유도 없이 무심코 찾아오는가? 인간이란 모두 순수하고 일부 사람들만이 악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나는가? 작가 이승우는 이야기를 통해 말한다. 인간에겐 누구에게나 '악'이라는 본성이 있지만 모든 사람의 마음속 '악'이 활개를 치지는 않는다고. 대신에, 세월과 시간으로도 채울 수 없던 균열은 이러한 '악'을 더욱 쉽게 부풀어 올라 악마의 얼굴을 하고 변해버리게 한다고. 『독』은 이러한 추상적인 과정을 그리면서, '악'을 부풀게 만드는 환경을, 누군가의 균열을 더욱 넓히게 하는 잔인한 도구들을 그리고 있다. 작가는 '악마를 키우고 악마에게 손과 발을 주는 것은 이 세상의 공기라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었다'고 덧붙이는데, 자신의 삶에조차 고유성이 없던 주인공 '임순관'의 삶이 딱 그런 모양새다.

 ​

 ​일기장이자 고백록인 이 글이 환상적인 분위기를 띠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정체불명의 여자 '민초희'와의 시간들, 자신과 동일시하는 연쇄살인범 '신철희', 우연처럼 배달되온 '연쇄살인범의 화살'과 같은 존재들은 그의 머릿속에서 다듬어져 만들어진 형상인지, 실제 일어나고 있는 일인지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환상적이며 망상인듯한 주인공의 일기는, 섬뜩하리만치 무섭게 꺼내놓은 그의 마음속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게 하는 장치가 된다. 자신의 욕망과 행동에 관해 모순과 합리화로 일관하고 있는 그의 모습들을 되려 비판하면서, 잔뜩 차오른 소설의 위험수위를 살살 달래고 있는 것이다.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소재를 들인 『독』은 95년 『내 안에 또 누가 있나』로 초판 출간된 후, 인제야 연재할 때의 제 이름을 찾았다. 묵직한 관념들과 신화, 종교와 같은 이승우만의 문학 세계를 완전히 맛보기에는 아쉬운 마음이 있지만, 힘 있고 강렬한 이승우의 서사와 문장이 살아있다. 그의 작품들은 그 무게가 육중할지라도 도전하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함께 출간된 『에리직톤의 초상』도 곧 읽어볼 예정이다.

 

 

 

 담아둔 문장

 

 

 내가 타고 있는 것은 세월이다. 세월은 나의 의지를 묻는 일없이 정해진 길을 간다. 세월은 흐른다. 흐르는 것이 세월의 본질이다. 모든 것이 잠들어도 시간은 잠들지 않는다. 모든 것이 멈춰도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 흐름이 시간의 본질이라는 말은 그런 뜻이다. 오늘의 시간은 어제로부터 흘러왔고, 내일의 시간은 오늘을 거쳐 흘러간다. 어제는 오늘 속으로 들어와 살고, 오늘은 내일 속으로 들어가 섞인다. 그 세월 안에서 아무리 발악을 해도 나의 의지는 세월 밖으로 전달되지 않는다. 세월에 제동을 거는 일 따위는 아예 불가능하다. 세월의 승객에게 필요하고 가능한 한 가지는 단지 버티는 것이다. 갈 때까지 가는 것이다. 그리고 세월이 멈추면 같이 멈춰 서는 것이다. 그것이 최선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렇게밖에 할 수 없기 때문에. (25쪽)

 

 

 맹인이 본 것이 맹인에게 진실인 것처럼, 색맹이 본 것 또한 색맹에게는 진실이다. 개개인이 이 세계에 대해 느끼고 수용하고 응답하는 양식의 주관적인 요소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들 때문에 세상이 종종 시끄러워지고 헝클어진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이 세계 내의 본질, 또는 이 세계로부터 읽어낼 수 있는 진실이 하나밖에 없다는 주장이야말로 전체적인 발상의 소산이다. 자기네들이 진리를 사유(私有)하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행세하는 그런 종류의 위인들은 다른 쪽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너무 당연하고 너무 쉽게 파시스트가 된다. (…) 나는 이곳에 잘못 던져졌다. 이곳의 시간과 공기와 사물들과 사람들은 내 편이 아니다. 나는 나를 둘러싸고 있는 일체의 것들에 대해 단 한 번도 신뢰를 보내본 적이 없다. 그것은 물론 그 일체의 것들이 나에게 한 번도 신뢰를 표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2쪽)

 

 

 "진실은 은밀한 거지요. 봐요, 저것이 인간의 본색이에요."

 누군가 내 귀에 입을 대고 속삭인다. 나는 깜짝 놀라 몸을 돌린다. 바로 뒤에 민초희가 서 있다. 유리 벽 너머에 있던 그녀가 어느새 이쪽 방으로 건너와 있다. 그녀의 존재가 나에게 현실을 상기시킨다. 그녀는 내 뒤에 서서 야릇한 미소를 머금은 채 유리 벽 너머의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

 "나는 저 사람들에게 본색을 드러낼 공간을 제공했어요. 이곳이 아주 은밀하고 세상의 눈으로부터 단절된 안전한 공간이라는 믿음이 저들로 하여금 가면을 벗게 한 거죠. 가면을 벗으면 민얼굴이 나오지요. 여러 개의 가면을 벗어야 민얼굴이 나오는 사람도 있긴 해요. 너나 할 것 없이 민얼굴은 혐오스럽지요. 누구도 민얼굴을 해가지고 세상에 나다닐 수 없어요. 그러니까 가면을 쓰지요. (…) 그런데 이곳은 세상이 아니거든요. 세상으로부터 완전하게 단절되어 있거든요. (…) 저것이 본색이에요. 본색은 혐오스럽고 치욕이고, 슬픈 거예요." (265쪽)

 

 

 차가 떠난다. 길은 꼬불꼬불하고 어둡다. 더 검고 어두운 물속으로 빠져 몸을 담그기 위해 자동차는 어둡고 꼬불꼬불한 길을 달려가는 것 같다. 우주에 가득한 어둠이 이 깊은 산속에서 딱정벌레만 한 택시를 포위하고 있다. 딱정벌레 한 마리가 필사적으로 몸을 내돌리며 어둠의 포위망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다. 길은 있으나 어둠을 향해 열려 있다 ……. 그러나 우리가 누군데 감히 하나님께 항의할 수 있겠습니까? 만들어진 물건이 그것을 만든 자에게 "왜 나를 이렇게 만들었습니까?" 하고 말할 수 있습니까? 토기장이가 같은 흙으로 귀하게 쓰일 그릇과 천하게 쓰일 그릇을 만들 권리가 없습니까……? 계속해서 그 테이프가 틀어져 있었던가. 차 안의 굵고 낭랑한 남자 성우의 목소리가 차 밖의 어둠과 한판 싸움을 벌이고 있다. 어느 쪽이 이길지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 내가 어느 쪽이 이기기를 바라는지도 잘 모르겠다. (294쪽)

 

 

 

 

Written by. 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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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그래피 매거진 6 고은 - 고은 편 - 우주의 사투리, Biograghy Magazine
스리체어스 편집부 엮음 / 스리체어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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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체어스 편집부 (엮은이) | 스리체어스 | 2015-10-06 

 

 

 남겨진 생각들  

 

  독서 리뷰를 쓸 때 보통 부제는 내가 생각하는 것으로 느낌 그대로 새로 정하곤 하지만,『바이오그래피 매거진』 리뷰를 쓸 땐 책에 딸린 부제를 그대로 쓴다. 그보다 절묘한 문장이 없기 때문이다. 이번 호 '고은'의 부제는 '우주의 사투리'다. 우주의 사투리라니! 생전 듣도보도못한 조합의 단어임에도 불구하고, '고은'이라는 이름에 붙인다면 이보다 절묘할 수가 없다. 단지 책 속에서는 이 부제를 잘 찾을 수 없음에 아쉽다. 인터넷에 검색하면 바로 뜨는데…… 군더더기 없는 표지에 부제까지 붙는다면 조금은 욕심일까 싶지만, 이 멋진 부제들은 숨어있기에 꽤 아까운 생각이 든다.

 거두절미하고 이번 호의 주인공 '고은'에 대해서는 역시나 '잘' 알지는 못한다. 시집 한 두권을 읽어본 게 전부고, 노벨상 수상자를 가리기 위해 일년마다 돌아오는 그 기간 불쑥 그 이름이 들어오곤 하는 정도였다. 그의 시집 ​『허공』은 문학, 특히 시에 익숙하지 않을 때 단순히 그가 궁금해서 낯선 기분으로 읽어보았고, 생각보다 거친 시어들의 반복에 "시는 어떻게 읽어야 할까"라는 의문에 휩싸였다. 『순간의 꽃』은 이전에 읽었던 그의 시집과는 다르게 제목처럼 소박하고 따뜻한 시들이 가득차 있었다. 하지만 그 두권만으로 '고은'의 시 세계를 만끽하기란 부족했다.

 

 

 

나는 어제보다 더 어리고 어제보다 더 독야청청하다. 나는 살아 있다. 그러므로 시를 쓴다. 내 유골도 시를 쓸 것이다. (103쪽, IN-DEPTH STORY)​

 

 '고은'을 알기 위해 이 책을 읽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문학 보다도 단순히 '사람' 차원에서 파악할 수 있는 것들이 더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첫판부터 편집자님의 서문에 푹 빠지고, 그가 가장 애송하는 시라는 <최근의 일기>는 가슴을 쿵쿵 울리고 있었다. "서서 / 소리칠 수 없으면 / 누워서 / 소리칠 것 // 죽어서 소리칠 것". 아, 아마도 이 때부터 감동의 시작이었다.

 

 

 ​승려가 되어 불교 신문을 창간하고, 환속하여 문단에서 수많은 시를 남기며 역사적으로도, 문학적으로도 큰 획을 그어나간 '고은' 시인. 그는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유명하며, 많은 이들이 알지 못하는 해외 문학상을 두루 수상했다. 그 중 '황금화관상'의 역대수상자들은 노벨 문학상을 받은 사례가 많다고 한다. 대중들의 의견을 정리한 페이지에서도 '노벨 문학상'은 빠짐없이 거론된다. 한국어의 번역 문제, 문학상의 가치 문제, 다양한 얘기들이 있지만 대부분은 문학이 꼭 상으로 평가되는 건 아니라는 시선을 가지고 있는듯하다. 나또한 마찬가지다.

 이어지는 그의 일대기는 참 파란만장하다. 일제강점기, 전쟁, 피난으로 죽음과 허무로 가득찬 삶이었다. 승려가 되고 난 후 세상의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 귀에 청산가리를 들이부어 왼쪽 고막이 녹았다. 여러번 포기하고 싶은 삶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그를 놓지 않았다. 자살 시도는 계속해서 실패하고, 어느 순간 전태일의 죽음을 생각했을 때, 다시 살기로 결심했다. 그 이후도 질곡의 역사였지만, '고은'은 시에 시대를 담기 시작했다.

​돌아눕기도 어려운 좁아터진 방에서 고은은 죽음을 체험했다. 깜깜한 방 안에선 현재가 없었다. 오늘과 내일이 없고 남은 건 어제뿐이었다. 시골 머슴부터 동네 아낙까지 이제까지 만난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둘 떠올랐다. 그리고 생각했다. 살아 나갈 수만 있다면 일평생 만난 모든 사람들의 얼굴을 시로 그리겠다. 이런 다짐만이 시련을 견디는 힘이 되어 주었다. (59쪽, BIOGRAPHY 중에서)

 

  실제 1933년의 출생기록 이전의 먼 옛날부터 1847년까지에 쓰여있는 이력이 돋보인다. 윤회사상을 바탕으로 한 고은의 전생을 상상한 부분이 재미있고 독특하다. 아마도 먼 옛날에도, 그는 시인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우주의 언어를 제멋대로 굴려, 사투리로 만들어.

 

 

 문학인을 다루는 만큼, 중반부에는 여러 편의 시를 수록해놓았다. 흑백의 페이지에 나열된 '고은'의 시는 'Poetry'라는 글씨를 채운 세찬 파도처럼 고요함 속에 우렁차게 메아리 친다. 그리고 그의 인터뷰는 한 편의 문학을 보는 것 같았다. 왕성한 창작력에 대한 물음에 그는 "신명이 나를 내달리게 하고, 내 마음 속엔 춤이 차 있어 몸밖으로 나온다"고 한다. 그 '신명'에 대해 "나는 울음도 길었고 글도 길어요"라고 말한다. 숨쉬듯 시를 쓰는 것이고, 백지는 종교이고, 식욕이고, 성욕이라 한다. 그대로 배껴 여기에 데려오지 않으면 설명하기 힘든 말들을, 우주의 사투리를 제멋대로 펼치는 '고은 시인'이다.

 ​나는 시가 나에게 오고 내가 오는 시를 마중 나가서 함께 날 저문 귀로로 돌아옵니다. 임신한 아낙처럼, 부상당한 전사처럼, 목마른 혼백처럼. 그것이 내 시의 밤이 되는 거예요. 나는 천체물리학과 입자물리학에 사로잡혀요. 그 첨단 과학이야말로 나의 샤머니즘이니까. (128쪽, IN-DEPTH STORY)

 ​ 더이상 시를 읽지 않는 시대, 시가 읽히지 않은 시대에 대하여 그는 이렇게 말한다.

 ​선사 조상들의 언어 이전의 언어인 '아!라던가 '오!'라던가 하는 그 경이와 공포 속의 발신 행위 자체가 이미 인간의 시입니다. 인류사는 시의 역사이기도 해요. (...) 그동안 시는 너무 많이 세상의 감성과 지성을 감당해 왔어요. 이제 좀 쉬게 해도 됩니다.' (128쪽,  IN-DEPTH STORY)

 하지만 나는 뒤늦은 지금, 그의 시를 읽으려고 한다. 『바이오그래피 매거진』을 만나고선 그의 시집을 꺼내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전집 38권, 역대 가장 과감하고 놀라운 기획 '만인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조각난 파편들을, 그 속에 품은 벅차오르는 감정과 순간들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은 한국인들밖에 없기에, 그의 시를 더 읽어봐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수상의 아쉬움을 말하는 건 그 다음이다.

 

 
 
Written by. 리니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았지만, 리뷰는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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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팽창 스토리 살롱 Story Salon 3
구보 미스미 지음, 권남희 옮김 / 레드박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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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남겨진 생각들 

 

 

 이건 분명 언급하기도 쉽지 않고, 받아들이기도 쉽지 않은 어른들의 사랑 이야기. 사랑이 향하는 곳으로 화살표를 그릴 수 있다면 분명 겹치고 겹쳐 어긋나 있을 것 같은 그런 이야기.


 스물아홉의 '미히로'는 사랑을 한다. 어릴 적 같은 동네에서 자라온 '게이스케'와 결혼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불안하다. 섹스가 없기 때문이다. 밤마다 '미히로'는 생각한다. "저기, 나, 지금 욕정을 느낍니다만." 배란기만 되면 갑작스럽게 반복되는 상황과 몸의 변화에 '미히로'는 당혹스럽다.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머릿속에 맴도는 단어는 오래전 남자 때문에 집을 나가버린 엄마에게 붙은 '음란한 여자'라는 낯부끄러운 칭호다. 트라우마로 남은 그 단어는 이제 자신에게도 옮아있는 듯 아프다.


 그가 그냥 안아주기만 하면, 사랑받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모순이라 생각한다. 치밀어오른 감정과 몸의 변화를 추스를 수 없던 어느 날, 그는 '게이스케'의 동생이자 어릴 적 친구였던 '유타'의 집으로 달려간다. 순식간에 벌어진 격렬한 밤, 올라오는 감정들. 내 몸은 왜 그렇게 때가 될 때마다 날뛰는 것일까. 나는 그를 사랑하는 것일까, 그는 나를 사랑하고 있을까. 우리의 사랑은 잘 되고 있는 것일까.


  '미히로'의 고민을 시작으로 하여, 그와 엮인 사람들의 조심스러운 사랑들이 연작 소설 형식으로 등장한다. 사고방식이 달라 주저하는 사랑, 잔잔한 호감에서 시작되는 사랑, 의지하듯 무언가를 잊어버리듯 빠져드는 사랑……. 어린 시절을 함께 한 세 사람의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면서 드러나는 그들의 성질과 과거는, 지금 매달리고 있는 사랑이 어디서부터 왔는지 왜 그들이 서로 만나게 되었는지 파악하게 한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속 얕게 깔린 감정의 방해물들이 드러난다.


 성과 욕망, 불륜 (결혼하지 않았지만, 불륜은 불륜이니까) 등의 자극적인 소재가 중심인데도, 일본 소설의 잔잔한 감성을 끝까지 잡아내고 있는 소설 『밤의 팽창』은 분명 특별하다. 엇갈린 사랑을 그려내는 방식은 사랑의 모습만큼이나 다양하지만, 이 소설은 분명 다른 느낌이 든다. 사랑을 바라보는 각각의 생각들을 촘촘히, 어쩌면 무미건조할 정도로 담담하게 고백하는 모습은 먹먹하고 안쓰럽고, 그 모습을 표현하는 문장은 아름답다. 그들의 마음엔 공감할 수 없어도, 불쾌하게 바라볼 수 없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몸을, 멀어져 가는 마음을 어쩌지 못하는 '어른 아이'들의 애달픈 사랑 "이야기. 찝찝하고 답답한 작품이 될 가능성을 품고 있음에도, 살짝살짝 가슴을 건드리며 녹이는 소설이다.


 

"…… 솔직히 말하면 좀처럼 그럴 마음이 들지 않아. …… 어릴 때부터 줄곧 함께 지내서 가족 같아."
게이스케가 띄엄띄엄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가족 같아. 닌자 만화에 나오는 표창처럼 뾰족한 말이 내 가슴을 찔렀다. 그 말을 뱉으면 나는 여기서 한 걸음도 게이스케에게 다가갈 수 없다. 가족같이 느낀다는 사람과 섹스하길 바라는 내가 엄청나게 징그러운 인간이라는 말을 들은 것 같았다. (48쪽)

전단지를 든 오가사와라 씨의 목소리가 좁은 현관에 울렸다. 구두끈을 묶으면서 올려다보니 오가사와라 씨가 입고 있는 니트에서 나온 보슬보슬한 실 같은 것이 복도 조명에 부드럽게 흔들렸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하고 문을 닫았을 때 퍼뜩 떠올렸다. 포동포동 살찐 오가사와라 씨의 질감은 뭔가를 닮았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뭔지 몰라 답답했는데, 드디어 알았다. 오가사와라 씨는 담배 가게 마사코를 닮았다. (86쪽)

나는 언젠가, 아이 같은 얼굴로 잠든 이 사람과도 아픈 일이 있을 것 같은, 골치 아픈 일에 휘말릴 것 같은 그런 예감이 들었다. 그래도 그 소용돌이 속에 뛰어들어 보고 싶어졌다. 내 머리에 뿌려진 씨앗은 퇴적층처럼 미히로와의 추억이 켜켜이 쌓인 내 마음속에서 딱딱한 껍데기를 깨고 작은 싹을 틔우기 시작했으니. 커튼을 걷자, 어린 시절, 설날에 보았던 것 같은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이 보였다. (102쪽)

"그럼 왜 유산한 뒤에 후련한 얼굴이었던 거야, 너?"
엉겁결에 유타의 팔을 꼬집고 있던 손가락을 떼었다.
언덕길 커브를 천천히 올라오는 버스를 보았다. 차 안에는 불이 켜져 있지만, 어째서인지 아무도 태우지 않았다. 유타가 한 말이 긴 화살처럼 머리에서 발끝까지를 관통하고, 내 속에서 투두둑 하고 정체 모를 무언가가 튀어나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게이스케에게조차 보인 적 없는 거친 욕망과 감정이 유타 앞에서는 노골적으로 드러나 버린다. 작년 여름과 마찬가지다. 그 사실이 참을 수 없이 무서웠다. 말도 안 되는 유타의 말을 기쁘게 생각하는 자신에게 공포를 느꼈다. (1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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