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미코의 발
다니자키 준이치로 지음 / 스토리하우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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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책을 읽고 나서

 

 일본소설과 친하지 않은 제가 이 작품에 대해 알게 된 건 '조경란' 작가의 『백화점』에서였습니다. 백화점 구두 매장 안에서, 여성 손님의 발에 구두를 신겨주고 있는 남성 판매원의 모습을 보고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후미코의 발』을 생각했다는 작가. 한쪽 무릎을 꿇은 자세로 손님의 발의 극적인 굴곡의 하이힐을 신겨주는 판매원의 모습을 보고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발을 만지는 게 좋은가요? 물어보고 싶다. 싫어도 어쩔 수 없죠. 뭐. 이런 대답이 돌아올 것 같다. 그러나 만약 네, 난 여성의 발을 만지는 것을 좋아합니다, 라고 대답하면 뭐라고 말할까?" (84쪽)

 

 

 책 속에는 두 편의 단편소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탐미주의(耽美主義 : 유미주의라고도 부릅니다)의 거장이라 알려진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후미코의 발』, 그리고 일본의 자연주의 문학을 대표한다는 '다야마 가타이'의 『소녀병』입니다. 먼저, 『후미코의 발』은 젊은 화가 지망생 '우노'가, 노인 '인쿄'와 그의 첩 '후미코'를 관찰하며 고백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그 서술 속에서, 제가 처음으로 만나보는 낯선 시선이 등장하지요. 화자인 '우노'가 '인쿄'의 집을 방문하게 되면서, '후미코'를 발견하는 순간 주체할 수 없이 그 여자 자체에 매료되고 맙니다. 그리고 그 여자의 모든 것들을 지나치게 집요한 시선으로 바라보지요. '후미코'의 실루엣, 정취, 눈, 코, 입, 속눈썹, 자세에서 나오는 그녀의 기분까지 샅샅이 훑어갑니다. 그렇게 그녀를 관찰하다 보니 재미있는 점을 발견하지요. 노인이자 남편인 '인쿄'의 시선 또한 자신과 비슷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한 남자로 태어나 살기보다는, 이렇듯 아름다운 뒤꿈치가 되어 후미코의 발 뒤에 붙을 수 있다면 그쪽이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후미코의 발뒤꿈치에 밟히는 다다미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저의 생명과 후미코의 발뒤꿈치 중 이 세상에서 어느 쪽이 더 존귀하냐고 묻는다면 저는 일언지하에 후자 쪽이 존귀하다고 대답할 겁니다. 후미코의 뒤꿈치를 위해서라면 저는 기꺼이 죽을 수 있습니다. (45쪽, 후미코의 발)

 

 

 그들의 '후미코'를 바라보는 감정은, 사랑보다는 끈질긴 숭배입니다. 정신학적 용어로 '페티쉬'(성적 페티시즘)이죠. 그녀의 발에 밟히며 죽고 싶다는 두 남자의 병폐를, '뿌리깊은 성정性情'을, 그 에로틱한 바라봄을 작가는 강한 인상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여자의 몸 한 부분에, 성적으로 지배당하며 고백하며 서술하는 글이, 누군가를 발가벗기는 듯한 불쾌함까지 느끼게 할 정도인데, 왜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작품이 '악마주의'라고까지 불리는지 짐작할 만합니다. 무서운 점은 이 작품이 1919년에 쓰였다는 사실이지요.

 

 

 그다음에 등장하는 『소녀병 少女病』은 전의 이야기와 비슷한 듯 다릅니다. 전차 안에서 아름다운 소녀들을 감상하고 아름다운 신체시를 쓰는 '스기다'. 그의 탐미 대상은 '소녀'이며 『후미코의 발』과 마찬가지로 숭배의 시선을 보내지만, 속까지 훑어내는 그 시선과는 조금 다릅니다. 시각적으로 존재하는 아름다운 욕망의 대상인 '소녀'를 단지, 감상적으로만 그려내기 때문이지요. "어떻게 속되고 너저분한 세상에 저렇게 고운 처녀가 있을까"하는 그의 독백에서도 드러나듯이, 작가는 혹독하고 쓸쓸한 분위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내 그의 시선을 미화합니다. 그 시선 속에는 청춘에 대한 갈망, 나이듦에 대한 호젓함이 있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있죠. 이런 주제와 관련해서, 자연스럽게 『은교』도 떠오르더군요.

 

 

 작가가 다른 이 작품을 2편만 묶은 것이 처음에는 의아했습니다. 두 작품에 비슷한 면모가 있긴 하더라도, 연관되는 다른 작품들과 묶어 조금 더 묵직한 울림을 주는 한 권의 책으로 만들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하지만 읽어보니 두 작품만으로 시간을 보내기에 충분하다고 생각이 드는 것이, 여성의 아름다움을 탐하는 묘사와 여운은 무척이나 커서 두 작품 다 큰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아름다움에 대한 탐닉, 비슷한 시선을 다루면서도 서로 다른 선상에서 충돌하지 않는 주제의식을 드러내고 있어 좋은 조합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Written by. 리니

일본 소설/ 단편 소설집/ 탐미주의, 자연주의 소설

소장하고 있는 책을 읽고 쓴 서평입니다.

 

여자는 그 빈집에 올라가려고 툇마루에 앉아 진흙으로 더러워진 오른발을 손수건으로 닦아내고 있었습니다. 상반신을 획 왼쪽으로 기울여 거의 쓰러질 듯 비스듬히 된 몸체를 가느다란 한 팔로 겨우 지탱하며, 왼발의 발톱 끝으로 살포시 땅을 밟으면서 오른쪽 다리를 `<자` 형태로 구부려 오른 손으로 그 발바닥을 닦고 있는 자세, 그 자세는 옛날 유명한 우키요에 화가가 여자의 매끄러운 몸매 변화에 얼마나 예민한 관찰을 했으며, 얼마만큼 깊은 흥미를 갖고 있었는가를 증명하기에 충분할 만큼 놀라울 정도로 교묘하게 그려져 있었습니다. 제가 특히 감탄한 것은 여자의 유연하고 나긋나긋한 손발이 여러 가지 모양으로 구부러져 있는데, 그저 쓸데없이 구부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예민한 힘의 균형이 전신에 가늘게 퍼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30쪽, 후미코의 발)

이렇게 말씀드리면 제가 설명하려고 애쓰는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 선생님께서는 대강 아셨겠지요? 아름다운 모습을 한 여인이 수양버들처럼 팔다리를 느슨히 풀고 멍청히 멈춰 서 있거나 흐트러져 잠든 모습도 정취가 있습니다만, 이 그림처럼 전신을 굽이굽이 완만하게 구부리며 채찍처럼 탄력성을 표현해야 할 곳을 그 특유의 아름다움을 손상시키지 않고 그린다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거기에는 `유연함`과 동시에 `강직함`이 있으며, `긴장감` 속에 `섬세함`이 있으며, `움직임`의 이면에 `우약함`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소리를 쥐어짜며 목구멍이 찢어져라 쉴새없이 지저귀는 꾀꼬리의 필사적인 귀여움이 나타나 있습니다. (33쪽, 후미코의 발)

어쨌든 재미있지 않나? 스스로도 건전하다고 자처하고, 남들에게도 그렇게 인정받던 사람이 지금 와서는 불건전도 이만저만이 아니니 말이야. 퇴폐의 표본으로 전락한 것은 본능을 업신여겼기 때문이야. 너희들은 내가 항시 본능 만능설에 사로잡혀 있다고 공격하지만, 인간의 본능은 무시할 수 없는 거라구. 본능에 순응하지 않는 사람은 생존할 수 없어. (79쪽, 소녀병)

`서풍에 휘날리는 누런 먼지…… 외롭다. 외롭다. 왠지 오늘은 더욱 외롭고 괴롭다. 아무리 아름다운 소녀의 머리 향기가 그립다지만, 이제 나는 더 이상 사랑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다. 또 사랑 할 수 있다 한들 아름다운 새를 유혹할 수 있는 날개를 잃어버린 지 오래다.` (87쪽, 소녀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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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드 노아이유 시선 : 사랑 사랑 뱅뱅 아티초크 빈티지 시선 2
안나 드 노아이유 지음, 공진호 옮김 / 아티초크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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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사랑 뱅뱅』 안나 드 노아이유 / 아티초크

한낮에 작렬하는 태양 같은 '사랑의 시'​

 

 

 

 

  책을 읽고 나서

 

 '안나 드 노아이유'라는 이름을 책에선가 어디선가 한 번쯤은 본 것 같은데 (아니면 아이유라는 이름의 착각일 수도), 현재 인터넷 서점을 기준으로 출간된 책은 '아티초크'의 시선 『사랑 사랑 뱅뱅』이 전부다. 그러나 내가 만약 이 빈티지 시선을 번호별로 모으지 않았더라면, 이 책은 사지 않았을 것이다. 왠지 모를 여성적인 향기를 폴폴 풍기고 있는 표지와 '사랑의 시'라는 카피, 그리고 첫 느낌 때문이었다. 하지만 시리즈를 모으고 있던 덕분에 '다행히' 읽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내가 했던 큰 착각을 바꿔놓을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사랑의 시'가 단순히 여성적이거나 꽃처럼 아름답고 눈물을 뚝뚝 흘리는 신파적인 느낌일 거로 생각했던 나의 착각은, 아마도 작가인 '노아이유' 백작 부인에 대한 편견이었을 것이다. 여성이라면 이런 시를 썼겠더라는 은연중의 암시, 더군다나 나는 여자인데도 불구하고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이러한 편견은 작가인 '노아이유'가 가장 싫어했던 것이겠지. 그는 수많은 사랑의 시를 남기면서 베스트셀러가 된 <무수한 가슴>으로 수상자로 지명이 되었으나, 전원 남성으로 이루어진 심사위원으로 인해 수상 탈락을 하게 된 아픈 기억이 있다. 그리고 그는 '페미나 상'을 창설했다. 12인의 여성작가로 구성된 프랑스의 문학상, 이름은 Femina 여성적인 이름을 달았으나 남성에게도 수상 되는 문학상이다. 진지한 문학을 주류로 했던 당시 문단에서, 여성의 본질에 주목한 노아이유의 시는 하찮은 것으로 취급받았지만, 꿋꿋이 자신만의 사랑 노래를 만들어나간 그의 배짱이 대단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허무다, 우주는 허무다 / 마음과 감각으로 그 허무를 감지한 사람에게 / 그것은 수수께끼가 아니다 / 파란 많은 위험한 인생 / 음산하고 게걸스러운 땅속의 영원한 잠// 허무다, 어디를 보아도 허무하고 우스꽝스럽다 / 사방에 가슴을 모독하는 것들뿐이다 / 운명의 신은 인간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 방패가 없는 인간의 고결함에 창을 던진다 // 그 모든 끔찍한 고통 속 / 도취적 사랑의 원천은 너밖에 없다 / 벨벳 가면을 쓴 작은 신 / 닳고 닳았으면서 순수한 너, 달고도 쓴 너 / 잔인하면서 온화한 위로자 / 그 이름 사랑이여. (64쪽, CLXXV) 

 

 사랑은 어쩌면 대단히 아름다운 것이 아닐 수도, 대단히 아름다운 것일 수도 있다. 정열적이며 격렬한 광란의 그 감정을, 노아이유는 끈질기게 자신의 시에서 형상화해내고 있다. 그의 사랑에의 도취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하면서도, 허무감을 반복하는 그의 입을 통해 그 강렬함은 더욱더 커 보이게 만든다. 노아이유의 '사랑의 시'는 속삭임이 아니라 울부짖는 절규의 느낌이다. 그의 감정에 공감하며 읽어나가다가 터져 오르는 그의 감정에 북받친다. 사랑, 나와 너, 존재에의 자각, 허무, 죽음으로 이어지는 그의 시는 상상했던 『사랑 사랑 뱅뱅』의 이미지와 달라서 뜻밖의 큰 충격을 준다. 한낮에 작렬하는 뜨거운 태양과도 같은 '안나 드 노아이유'의 시선 『사랑 사랑 뱅뱅』에서처럼, '세상이 우리 없이는 안 돌아갈'것 같은 크나큰 도취의 사랑은 언젠가 만날 수는 있을까?

 

 

 아티초크 빈티지 시선을 이제 두 권째 보고 있는데, 또다시 비슷한 느낌의 리뷰를 남기고 있다. 첫 이미지와 너무나 달라서, 착각을 뒤집어 놓았다는 반성의 리뷰랄까. 이게 시든, 소설이든, 무엇이든 새로운 것을 알아간다는 것은 참 즐거운 일이다. 그리고 그것이 문학이라는 점은 나에게 더없이 반가운 일이고.

 

  

 

 

 

Written by. 리니

프랑스 시/사랑의 시/ 국내 초역/ 아티초크 빈티지 시선 2

소장하고 있는 책을 읽고 쓴 서평입니다.

 

 

새들은 훨훨 완벽한 자태로 날아오르고 / 푸르른 하늘에 만물이 / 빨려 들어가는 듯하던 그 시절 / 우리는 상상의 날개를 펴 떨리는 손으로 / 향기를, 공기를, 수평선을, 파도를 잡아보았지 // 우리는 그때 고독한 승리자였는데 / 가슴속 깊은 곳에 흐르는 강물을 느끼고 / 정상에서 새벽을 마시고 숭고한 기분을 주는 / 말할 수 없이 성스러운 느낌을 맛보았는데 / 욕망은 담대한 독수리처럼 / 은빛 둥근 선을 그리며 태양을 향했지! / 우리는 사색에 잠겼지 / 세상이 우리 없이는 안 돌아갈 줄 알았는데 (19쪽, 눈부심)

행복과 권태는 / 밤을 여행하는 두 줄기 강물처럼 / 꿈꾸며 무모하게 흘러가 / 쓰라린 인생의 바다에서 길을 잃는다 //

마음이 아플 때나 / 사랑을 할 때는 왜 / 언제나 그 어느 쪽도 / 일시적이 아닌 것처럼 보일까 (59쪽, CXIX)


신중하고 견고하게 지어진 벽이 / 세상 모든 사람들로부터 우리를 / 갈라 놓는다. 인간의 행과 불행은 / 우리의 은신처에 이르지 못한다. / 아! 죽음이 빨리 왔으면, / 너의 무릎에 머리를 비비대면서 / 나는 극단적이고 신속한 운명을 애타게 기다린다. / 나의 사랑은 네가 모두 담을 수 없을 만큼 큰데! / 나의 도취는 무덤처럼 / 우리 둘을 한데 넣고 밀봉한다. / 그 무시무시한 순간은 / 너무나 정염에 불타고 아름다워 / 창문이 새벽빛으로 서서히 물들며 잠을 깨는 순간 / 나는 존재하기를 멈추는 듯하다. (69쪽, 나는 깨어 있을 때 너를 금한다.)


그것은 있었지만 영원 속으로 사라졌고 /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다 / 그것을 알기에 / 상실과 갈망의 우주인 나는 / 나에게 지친다 //

너의 부재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 나는 헛되이 / 망각, 희망, 무의식을 추구한다. (79쪽, X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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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틴 씨
다비드 넬로 지음, 최이슬기 옮김 / 김영사on / 2015년 4월
평점 :
절판


 

 

 

   책을 읽고 나서

 

 어느 날 '네, 아니오'를 사용하지 않는 언어적 금기를 정해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허먼 멜빌의 소설 『필경사 바틀비』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기계적인 업무 속에서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라고 외치는 바틀비의 모습도 어쩌면 자신만의 (의지에 따른 게 아닐지라도) 법칙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루틴 씨'는 달랐다. '바틀비'가 '안 하는 편을 택하겠다고' 선언할 때 그의 옆에는 아무도 없었고 절망과 우울함이 가득했다면, '루틴 씨'의 일상이 아무리 지루하다 하더라도 행복을 찾을만한 소지가 있었다. 그에게는 자신을 걱정하는 아내와 자식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야말로 사랑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왜 그가 갑자기 이상한 법칙을 정했느냐 하면, 단순히 '일상을 탈출하고 싶은 욕망'이었다. 그의 직업은 호텔리어, 한순간 몰아쳤다가 계절이 바뀌면 떠나는 여행객들의 뒷모습을 바라보기가 부지기수였다. 반복되는 일상과 추워진 날씨는 그에게 "이유도 모른 채 갑자기 무언가가 삶을 슬프게 만들고 있다"고 느끼게 했다. 우리에게 어느 순간 우울함과 무기력증이 찾아오는 것처럼, '루틴 씨'의 마음도 그러했다. 어쨌든 이러한 복합적인 이유로 그는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만의 지침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지금 이 순간부터 절대로 '응'이나 '네'라는 단어를 말하지 않겠다. '맞다', '그래', '오케이' 같은 '긍정'에 해당하는 대체어도 절대로 쓰지 않겠다.

맞는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지도 않겠다. (25쪽) 

 

 그리고 이 법칙을 수행하지 못한다면 발틱 해에 1천 크로나(한화 15만 원 가량) 세 장을 던져버리겠다고 다짐했다. 이 우스꽝 스러운 언어적 금기는 어느 순간 하나씩 하나씩 늘어나기 시작했고, '루틴 씨'는 '아니오'와 '나'라는 일인칭을 전혀 말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버린다.

 

 

 어딘지 모르게 장난스럽지만 제법 진지한 그의 도전은 주체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지만, 결국엔 '행복'에 대해 시사하고 있다. 누구나 한 번쯤 자신만의 남다른 철학 또는 규칙을 정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어린 날 걷던 보도블록의 한 색깔을 정해서 밟지 않는 우스꽝스러운 장난부터, 오늘부터 다이어트를 위해 작은 접시에 먹겠다는 작심삼일의 포부와 책장 속의 책을 진열하는 자신만의 방식까지……. 그 모든 것들은 사소해 보였지만, 어쩌면 우리에게 정해진 기로를 비트는 작은 표지판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장난이 너무 심해서는 안 되겠지!) 그 기로는 직진으로 갈 수도 있고, 좌회전, 우회전할 수도 있으며, 어쩌면 뜻밖의 상황으로 유턴해서 자신의 일상을 돌아보게 할지도 모른다.

 

 

 반복되는 일상에 허덕이는 현대인들은 바쁜 시간 속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으려 애쓰며 살아간다. 주말을 이용해 데이트하고, 친구와 정기적으로 만나 스트레스를 풀고, 이전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자신만의 취미를 생성하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이 일상탈출을 위한 시도지만, 어디에서도 행복을 찾을 수 없다면 조금 더 비틀어보는 것은 어떨까? '매주 월요일에는 빨간 구두를 신는다', '매일 11시 55분에 향초를 켠다'와 같은 엉뚱한 법칙으로 일상의 반전을 시도해보자. 중요한 건 두려워하지 말 것, 그리고 진지하게 수행할 것. '루틴 씨'처럼 말이다.

 

 

 

 

 

Written by. 리니

스페인 소설/ 중남미 문학/ 청소년 소설/ 언어적 금기/ 독특한 소설 

소장하고 있는 책을 읽고 쓴 서평입니다.

 

 

루틴 씨는 시간 날 때마다 단어를 가지고 놀거나 말장난을 하거나 쌍둥이에게 농담하는 것을 좋아했다. 젊었을 때에는 `말을 먹어버린 남자`라는 제목의 연극 대본을 한 편 쓴 적도 있었다. 어쩌면 바로 그 대본에 대한 추억이 그의 삶에 새로운 변화의 바람을 불어 넣은 것인지도 모른다. 루틴 씨는 지침서를 꺼내어 아래에 추가로 적어 내려갔다.

지금 이 순간부터 절대로 `응`이나 `네`라는 단어를 말하지 않겠다. `맞아`, `그래`, `오케이` 같은 `긍정`에 해당하는 대체어도 절대로 쓰지 않겠다. 맞는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지도 않겠다.

그는 이거면 그의 일상에 새롭고 흥미로운 상황이 생길 거라고 스스로를 격려했다. (25쪽)

이런 모든 도전에도 루틴 씨는 여전히 조금은 슬프고 조금은 실망스러웠다. 아니, 자신의 삶이 그렇게 많이 바뀌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해서 같은 일을 하고, 같은 얼굴을 보고, 같은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있었다. 루틴 씨에게는 새로운 삶을 위한 지침서에 넣을, 더 대담하고 새로운 방안이 필요했다. 루틴 씨는 침대에서 살그머니 일어나 다시 책상에 앉아 글을 쓰기 시작했다. (...)

자신의 새로운 삶을 위한 계획을 하나 더 추가한 후, 루틴 씨는 침대에 들어와 곧 단잠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그날 밤 그는 꿈에서 `응`이라고 세 번이나 말하고 무려 구천 크로나를 잃어버렸다. 그건 악몽에 가까웠다. (32쪽)


"아빠, 잘 하세요, 네? 우리가 지켜보고 있을게요." 토르가 말했다.

"무엇보다 이상한 말은 하지 마세요, 안 그러면 아빠를 정신병원에 가둘지도 몰라요." 마그나르가 충고했다.

"페트루스는 최선을 다할 거야." 루틴 씨는 쌍둥이에게 대답하며 어쩌면 마그나르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일이 이렇게까지 되고 보니, 그는 빈 맥주병에 삼천 크로나를 넣어서 발틱 해에 던져야 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걸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는 인생 전부를 걸고 있었다. 하지만 루틴 씨는 약속은 꼭 지키는 사람이었기에, 그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나가겠다고 약속한 이상 그는 꼭 그렇게 해야만 했다. (87쪽)

"누가 저 병을 발견할까요?" 마그나르가 말을 꺼냈다.

"누가 되었든 얼마나 놀랄지 상상이 가요?" 토르가 말했다.

"어쩌면 돈이 든 병을 주운 사람에게는 새로운 삶이 시작될 수도 있겠지." 루틴 씨가 말했다.

"그게 좋은 일일까요, 나쁜 일일까요?" 사스키아가 남편에게 물었다.

"모르겠어요, 사스키아.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요. 누구에게든 약간의 운은 언제나 필요한 거니까……." (1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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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물고기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5
J.M.G. 르 클레지오 지음, 최수철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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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고 나서

 

 바다는 아름다우며 혹독하다. 하지만 채 자라지도 않은 티끌만 한 물고기에게 바다는 아름다움보다 혹독함이 훨씬 더 앞서는 곳이다.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 포식자와 어두컴컴한 심해 속 장애물들, 홀로 그 세상을 이겨내야만 하는 나약한 물고기의 표류는 외롭고 처량하다. 하지만 그 어린 물고기는 단순하기에 용감하다.

 

 

 라일라, 한쪽 귀가 들리지 않는 작은 흑인 소녀가 등장한다. "예닐곱 살 무렵에 나는 유괴당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이 글은 첫판부터 그녀에게 우려 섞인 시선을 보내도록 한다. 그녀는 널따란 세상의 티끌 같은 손재지만, 그 작은 존재에게도 세상의 풍파는 빗겨가지 않는다. 아니, 빗겨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더욱 세차게 분다. 자신에 대해 아는 것은 밤에 팔려왔기 때문에 지어진 '라일라(밤)'라는 이름밖에 없다. 처음으로 팔려간 '랄라 아스마'의 집에서는 사랑과 고통을 동시에 배운다. 버팀목이 되었던 엄마이자 보호자, '랄라 아스마'가 죽고 난 뒤, 그녀는 다시 거리로 나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난다. 화려한 거리의 여자들이 사는 여인숙에 들어간 라일라, 그녀에게 몸을 파는 여자들은 수치스럽거나 부끄럽지 않다. 오히려 자신을 다른 의미로 봐준 '공주님'들로 여겨진다. 그리고 그 시기의 삶은 라일라에게 절제나 규율 따위는 없는 '욕망만을 따르는' 성향을 선물한다.

 

 

 어떤 고난도 겪을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하는 어린 그녀는 주체적이진 못하다. 상황들이, 또다른 공격이, 그녀가 선택할 새도 없이 몰아치기 때문이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오로지 장애물을 피하기 위해서다. 치이고 또 치이면서, 걸어가고 헤엄치는 다른 사람들에게 밀리면서 그 작은 소녀는 여러 세상을 돈다. 감금과 폭력, 욕망 어린 남자들의 추파, 지금까지 만나지 못한 거대한 문명들은 이해할 수 없는 공격의 대상이 되고, 이따금 그에게 손을 내밀어 도와주는 행운을 발견하기도 한다. 인생의 굴곡이 있다면 출발점과 정상을 가로지를 '라일라'의 생은 한마디로 지옥이다. 지옥에서 달아나려고 하는 그녀의 몸부림은 안쓰럽다. 어떤 것에도 그녀의 선택은 없다. 다른 사람이 손길과 상황이 만들어낸 그녀의 삶은 완전하지 못하다. 그렇기에 그녀가 꿈꾸는 행복은 자유, 구속되지 않는 삶이다.

 

 

 정체성과 자유를 향한 갈망은 라일라에게 자칫하면 좌절할 수 있는 어두운 상황에도 한 걸음을 떼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고난과 역경들이 어디에서 왔든, 누군가에게는 넘을 수 없는 언덕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뛰어넘을 수 있는 무릎만치 자그마한 돌덩이가 되는데 라일라의 경우, 언덕이다. 하지만 넘을 수는 있었다. 그녀는 그 언덕에 깊은 구멍을 내가며 올라가고 내려온다. 그 과정은 생의 바깥에 서 있는 나도 참을 수 없게 고되지만, 그녀는 계속해서 언덕을 넘어간다.

 

 

세상은 조용했다. 이제 두 귀가 모두 먼 것 같았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복도 끝에 있던 화장실에서 토했던 것 같다. 그리고 소리를 질러댔던 것 같다. 철문을 열고 터널 같은 통로 안에서 건물 꼭대기까지 울리도록 울부짖었다. 그러나 아무도 듣지 않았다. 환풍기의 모터가 하나씩 가동되면서 비행기의 진동음을 일으켰던 것이다. 그 소리가 모든 소음을 덮어버렸다. 나는 시몬을 생각했다. 그녀를 보고 싶었고, 그녀가 음악의 한 소절을 반복하여 들려주는 동안 그 곁에 있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바로 그날 밤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194쪽) 

 

 

 역경이 있으면 행운도 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역경이 있으면 얻는 것은 있다고 말할 순 있을 것 같다. 라일라의 숙원이자, 행복한 삶에 대한 물음이었던 것을 스스로 찾는 순간, 그리고 삶의 근원인 고향으로 돌아가는 순간, 그녀는 빛나는 물고기가 된다. 여전히 작디작은 물고기지만 어른이 되었다. 그녀에겐 또다시 역경이 징검다리처럼 나타날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겨낼 것이다.

 

 

 작은 존재라도 강하게 빛날 수 있는 특권은 그가 가진 '운'에만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어두운 심해를 불빛 없이 나아갈 수 있는 끈질긴 용기, 그리고 그 불빛을 스스로 만들어나갈 수 있는 선택. 나는 이 소설의 끝을 믿고 싶다.

 

 

 

Written by. 리니

프랑스 소설/ 성장 소설/ 노벨 문학상/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5 

소장하고 있는 책을 읽고 쓴 서평입니다.

 

나는 후리야에게 부탁했다. "내게도 일자리를 찾아줘."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건 네게 어울리지 않아. 너는 다른 걸 해야 해. 학교에 가야지." 그녀는 내게 프랑스어와 에스파냐어, 영어로 된 책과 공책을 사주었다. 타가디르도 그녀와 같은 생각이었다. "너는 우리처럼 돼서는 안 돼. 변호사나 의사 같은 뭔가 중요한 사람이 되어야지. 우리 같은 허드렛일이나 해서는 안 된단 말이야." 나는 그녀들이 왜 그런 말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여하튼 내가 누군가와 결혼하기를 원치 않는 사람들은 그들이 처음이었다. 내게서 남편을 위해 부엌일이나 하는, 그저 하찮은 하녀와도 같은 존재가 아닌 다른 면을 보아준 사람은 그들이 처음이었다. 나는 눈물이 날 정도로 가슴이 벅찼다. 그녀들은 진실로 나의 착한 공주님들이었다. 나는 그들을 껴안았다. (72쪽)


"아무래도 미성년자인 것 같아. 집에 데려다주는 편이 낫겠어." 그가 여기저기에 전화를 거는 것 같더니 마침내 하킴과 연결이 되었다. 그렇게 하여 그는 자블로 거리에 있는 차고의 주소를 알아냈다. 그때 나는 세상이란 참으로 좁아서 실만 제대로 끌어당기면 모든 것이 끌려 온다는 것, 이를테면 누구든 어떤 일에 관련되면 서로 한 동아리를 이루게 되고, 그들이 다른 사람들을 끌어들이게 되며, 노노와 나같이 그들과 무관한 사람들도 예외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시몬의 남자 친구가 전화를 하는 동안 나는 내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내 머릿속은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나는 몹시 걱정스러워하는 기색이 담긴 시몬의 얼굴과 암소처럼 커다란 그녀의 눈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때 문득 나는 왜 그녀가 우리 둘이 서로 닮았으며 둘 다 자신의 육체를 가지지 못한 존재라고 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것은 우리가 뭔가 진정으로 원한 적이 없고 항상 타인이 우리의 운명을 결정했기 때문이었다. (160쪽)

하킴은 나의 오빠였다. 나는 마리마였다. 나는 할아버지의 닳아서 반들반들한 손가락이 내 얼굴에 머물며 내 눈과 뺨과 입술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것을 느꼈다.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무엇인가가 내 속에서, 내 가슴속에서 부풀어올라 목구멍을 막았던 것이다. "그분은 내 할아버지였어. 정말이야. 그럼 나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나는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더듬거렸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 나는 숨이 막혔다. 하킴은 내가 울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눈물이 아니라 분노였다. 나는 건물 안의 모든 것을 파괴해버리고 싶었고, 할아버지의 시야를 가로막았던 불투명한 하늘에 구멍을 뚫어버리고 싶었고, 유리창과 블라인드를 깨버리고 싶었고, 열차의 차량과 버스의 차창과 철로, 그리고 세네갈의 강줄기와 팔레메 강변의 얌바 마을에 닿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배를 부숴버리고 싶었다. (184쪽)

이곳 사람들, 아사카, 나킬라, 알루굼, 울레드 아이사, 울레드 힐랄의 사람들, 그들이 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들은 서로 싸워 부상을 입고 사상자도 생긴다. 여인네들은 운다. 아이들은 사라진다. 그것이 현실이다. 그러니 우리가 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곳이다. 이제 나는 확신한다. 하늘의 정점에서 쏟아져내리는 햇살에 세상이 온통 하얗게 보이고, 거리는 텅 비어 있다. 햇살에 눈이 부셔 눈물이 고인다. 뜨거운 바람이 벽을 타고 먼지를 날린다. 바람과 햇살을 견뎌내기 위해 나는 네모난 커다란 천을 사서 이곳 여인들처럼 온몸을 감싸고 틈을 만들어 눈만 내놓았다. (2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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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합
한창훈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읽고 나서

 

 여행이 주는 맛은 방방곡곡 아름다운 절경과 생소한 체험에 있다. 도시에서 태어나고 도시에서 자란 나에게 그 맛은 땅의 끝, 비릿하고 시원한 냄새가 나는 바다로 갈 때 더욱 진해진다. 산과 언덕에 다닥다닥 자리 잡은 작은 집들, 혹은 밤에도 빛나는 높은 건물과 바다의 오묘한 조화, 항구에 묶여 있는 어선들의 풍경이 생소하지만, 매혹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시적으로 보는 그런 풍경들 말고, 조금 더 깊이, 좁게 들어가면 강한 생명력을 가진 사람들이 보인다. 한적한 해변에 쭈그려 앉아 바닷물에 떠내려온 미역을 건지는 꼬마와 그의 엄마로 보이는 정다운 모습, 마치 너무나 익숙한 자동차를 몰듯 흔들리는 배의 키를 잡고 있는 햇볕에 탄 아저씨의 모습들. 여행할 틈이 생길 때마다 가능한 한 다시 그곳으로 향하고자 하는 마음은 바로 이 모습을 그리워함에서다.

 

 

 그리고 그곳의 냄새에 취해, 그곳에 매력에 빠져 허우적대는 나는 한창훈 작가의 책을 읽으며 대리만족을 한다. 뼛속까지 '바닷사람'인 그의 책들에는 바닷냄새가 물씬 풍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장편소설 『홍합』은 아름답고 혹독한 바다의 모습을 그리는 데 중점을 두진 않는다. 오히려 바다는 배경으로 존재한 채, 그보다 더 좁은, 구석구석의 '사람'들을 관찰한다. 좁은 장소로 선택한 곳은 '홍합 공장'이다. 차에서 실어온 수많은 홍합을 까고, 삶고, 깨끗이 씻어 얼려 포장하는 '삶의 현장' 속에서 작가는 땀 흘리는 그들의 노동을 본다.

 

 

새벽에 일어나 아이들을 먹여 학교 보내고 저는 도시락 하나 싸들고 공장에 나와 일을 하고 점심 땐 식은 밥을 두고 망연자실 먼 산이나 한동안 바라보다가 꾸역꾸역 뱃속에 집어넣고, 퇴근해서는 자꾸 가라앉으려는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워 또 아이들 밥 먹여 재우고 천장이나 쳐다보다가 엉엉 우는 날들이었다. 그렇게 사는 것도 하는 것이라면 산다는 게 그런 것이었다. (274쪽) 

 

 세심한 수작업을 필요로 하는 일의 특성상, 홍합 공장에는 많은 아낙네가 모여든다. 자신의 이름 대신, 'ㅇㅇ네'와 같은 자식의 이름으로 불리는 그들의 삶은 사투리를 그대로 살려 적나라하게 표현된 수다와 우스갯소리 속에 녹아든다. 그 속을 보면 어느 하나 순탄한 인생들이 없다. 남편에게 손찌검을 당하고, 버림받고, 술과 노름 때문에 골머리를 썩고, 시어머니의 잔소리는 예삿일이다. 하지만 그들은 이 서럽고 서러운 인생사를 수다로 풀어낸다. 제각기 사연들을 가진 사람들 속에서 그 인생사를 구구절절 풀어내고, 분노하여 서로 욕을 뱉어주고, 복수 해주겠다며 소매 걷어붙인다는 이들의 수다는 '어찌 됐든 살아갈 힘'을 주는 것이겠다. 삶의 동력, 웃음 그리고 해학. 작가는 그들의 녹록지 않은 인생을 그저 구슬프게 읊지 않고, 마치 판소리처럼 신명 나고 능청스럽게 전해준다.

 

 

 홍합 공장 속 사람들의 인생 속에서 약간은 다른 분위기로 이야기되는 주인공의 사랑도, 그들을 보는 작가의 시선만큼이나 담백하다. "산다는 게 그런 것이었다."라는 철학은 사랑에도 어쩔 수 없이 적용되는 것일까. 자그맣게 피어나 설레고 두근거리기만 한 사랑도 삶의 무게와 저울질 되어 아스러지지만, 그들은 한탄하지 않는다. 그렇게 사는 것도 사는 것이라면 산다는 게 그런 것인 것처럼, 사랑도 그럴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렇게 지나가는 것이었으니까.

 

 

 소설 『홍합』은 분명 아름답게 빛나는 서정적인 언어들로 가득 찬 소설은 아니다. 작가가 소설 속 말한 바에 의하면 '촉촉하게 달궈진 닳은 굳은살' 같은 소설에 가깝다. 감정을 다독이기보다는, 퍽퍽 두드리거나 긁어 없애버리는 식이다. 하지만 이 거친 '굳은살' 같은 소설은 우리네 삶을 품고 있어 거칠고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다. 그래서 때로는 더욱 아름답게 느껴진다. 더군다나 그 모든 것을 표현한 작가의 글에 어찌 빠지지 않을 수 있으랴.

 

  

 

 

Written by. 리니

한국소설/ 제3회 한계레문학상 수상작 

소장하고 있는 책을 읽고 쓴 서평입니다.

 

하루에 네댓 번씩 저 사는 마을로 홍합을 실러 온 차라는 걸 뻔히 아는 터라 여자는 스스럼없이 안면을 붙여 왔다. 하긴 그게 한 세월 묵은 여인네들의 장기이기는 했다. 그네들에게 세월이란, 수줍음이 무늬가 되던 몸에서 독기가 새록새록 피어나오다가 끝내 몰염치의 아성으로 굳어지는, 그 독한 시간대를 말하는 것이다. 사람의 몸에는 부드러운 맨살도 있고 일에 혹독하게 달궈진 끝에 반들반들 닳은 굳은살이 있듯이 사람들 중에도 교양으로 제정신의 꽃을 피우는 부류와 이렇게 딱딱한 살로 차가운 바닥을 버텨내주는 부류가 있었다. (10쪽)

"입고(入庫) 다 됐소."

"이, 알았어."

냉동공장 황기사가 단추들을 눌러 냉동기를 돌리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시끄럽던 기계가 더 요란해졌다. 이제 냉동실은 영하 삼십오 도까지 온도가 떨어져 홍합을 얼릴 것이다. 어미 몸에서 뿔뿔이 뿜어져 나와 바닷물을 타고 흐르다가 아무 데고 저 몸 닿는 곳에 뿌리를 내리고 몸을 피웠다가 양식줄에 촘촘이 묶여 살을 키운 홍합은 현장에서 솥에 푹 삶겨 뜨거운 맛을 보고는 벌러덩 벌어져 흐물흐물 고물고물하다가 껍질과 떨어져 이렇듯 차가운 맛을 보게 된 것이다. 하루 종일 삶기고 씻긴 저것들은 밤새 꽁꽁 얼었다가 다음날 낱개로 떨어져 박스 포장이 된 다음 다시 냉장실로 옮겨지고는 훗날 컨테이너에 실려 멀리 유럽으로 갈 터였다. 이름만 들어본 먼 외국으로 가는 것도 그렇지만 새끼 두셋 낳아 반평생 뒷바라지로 허덕이는 인간들에 비하면 어쩌면 저 알아서 흘러가고 저 알아서 크는 이것은 훨씬 더 고급스러운 생물일지도 몰랐다. (19쪽)

풀과 나무에 물이 오르고 겨우내 겨울잠 자던 물이 몸 풀고 흘러내리는 봄이나 풀과 나무가 기운을 뿜어내다가 도가 지나쳐 얼굴이 붉어지고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가죽에 윤기가 도는 가을이면 시간은 아무리 붙잡으려 해도 손아귀로 움켜진 한줌 물처럼 절로 흘러가버리는 거였다. 그것은 인생에서 청춘과 같아 지금이 좋을 때구나 싶어지면 이미 화려한 시간대의 끝물이어서 사람의 생이란 게 언제나 시간보다는 한 호흡 뒤지는 물건일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란 무서운 것이었고 살아 있는 생물 같았다. (210쪽)

커피와 비스킷은 다과(茶菓)의 대명사이면서 한담(閑談)보다는 권태를 표현하는 것으로 위치가 격하되었다. 저 권태의 여대생들이 그렇게 한 사 년 살아보니 남는 것은 결혼하기에 적당한 나이가 되었다는 것말고는 없다고, 차라리 돈이나 벌고 사회 경험이나 하는 게 낫다고 노련하게 말할지라도 그 속에는 아무런 삶의 근력이 없게 마련이었다. 하여 저 솔로몬이 떠들었던, 모든 영화(榮華)가 다 부질없고 헛되도다,는 말처럼 부질없고 헛된 게 없었다. 넘치는 잔과 배부름의 여가(餘假)와 권태를 한번도 맛보지 못한 이들의 마음을 바늘 끝만큼도 짐작하지 못한 소리였다. 그 뇌까림은, 영화가 부질없음을 깨닫기 위해서는, 풍요가 넘실대는 그 강물에 빠져 허우적대 보기 전에는 수천 수만의 말씀이 다 걸레 조각이었다. 아프리카 원주민에게 어떻게 얼음의 맛을 설명할 수 있을까. 손을 담가 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것들투성인데, 그 말 외에 어떤 것이 삶을 설명할 수 있을까. (2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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