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읽는 밤
장샤오헝 지음, 이성희 옮김 / 리오북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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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샤오헝 (지은이) | 이성희 (옮긴이) | 리오북스 | 2015-12-24

 

 

 남겨진 생각들  

 

 

 제목이 예쁘다. '밤'과 '철학'이라는 단어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속지를 들춰보게 할 멋진 조합이 아닌가. 하루 24시간을 조각조각 내어 빠르게 스쳐 가는 지금의 시대, 얼마 남지 않은 자유시간에 오로지 자신만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있다면, '철학'할 시간이 있다면 얼마나 행복한 일일까. 이 책을 읽음으로써 '밤에 철학을 한다'는 부푼 기대감과 함께, 어렵겠지만 깊이 배우겠다는 마음가짐을 안고 책을 열었다. 그러나 부담감은 금세 사그라졌다. 철학적 개념을 속속들이 설명하며 머리를 쥐어짜게 하는 깊이 있는 철학서는 아니었다. 오히려 '인생학'에 가까웠다.

 

 

 '인생학', 흔히들 자기계발서라고 부르는 이런 책들에 대해서 말들이 많지만, 나는 책에서 좋은 것은 뽑아들이려 노력하는 편이다. (좋게 보고 있다는 뜻이다) 성향 자체가 현실에 안주하고 그다지 큰 도전은 하려 들지 않으며, 목표지향적이거나 큰 의지가 없는 편이어서, 정기적으로 자연스럽게 이런 부류의 책들을 집어 드는 습관이 있다. 단지 내가 싫어하는 것은 뜬구름잡기식의 교훈이거나, 비슷한 말을 반복해서 계속 전한다거나 하는 식의 자기계발서인데, 『철학 읽는 밤』은 그런 책들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인생학'이지만 '동양철학'에 뿌리를 두고 있어 나름의 분위기가 있달까.

 

 

 저자 '장샤오헝'은 중국인들의 정신적 스승인 원로학자 '지셴린', 대문호 '루쉰' 등 '북경대학교'를 스쳐 간 인사들의 발언이나 명언들을 중심으로, 구전된 이야기들까지 이 책에서 다양하게 전한다. "당연한 것 아냐?"라고 되물을 수 있는 교훈도 있지만, 동양철학에 기반을 둔 자유롭고 강인한 인생학을 담은 교훈들은 흔들리는 마음을 단단히 잡아주는 것들이 많다. 소박함과 초연함, 평정한 마음, 포부를 향한 꾸준함, 인생의 진리를 설명하는 주옥같은 문장들이 기억에 박혔다. 특히, "태양을 잃었다고 울지 마라, 눈물이 앞을 가려 별을 볼 수 없다"라는 9장의 소제목은 교훈의 의미는 어디서 많이 듣던 것이지만, 표현이 다르니 역시나 오래 담고 싶은 인생의 교훈이 된다.

 반면 아쉬운 점이 있다면, 뜬금없이 서양의 작가, 이야기들이 등장한다거나, "어디에 살던 아무개"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부분이었다. 그 또한 가르침을 주는 교훈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북경대와 중국을 대표한 '지혜의 보고'를 담고 있는 만큼, 분량이 줄어들더라도 이 중심적인 분위기를 전체적으로 유지하고 있었다면 더 좋았겠다 하는 생각이 든다.

 

 12개의 테마로 나뉜, 400장의 꽤 많은 분량을 자랑하고 있는 『철학 읽는 밤』을 매일 몇 장씩 잠이 들기 전에 읽었다. 명사들의 가르침을 전하고, 명언을 설명하는 식의 책으로는 꽤 두꺼운 책이지만 하루를 정리하는 '밤'에 읽으면 무척 좋을 것이다. 특히, 매일이 바빠 자신을 돌아볼 시간도 부족한 사람들에게는 감동적인 글로 다가올 것이다.

 

 

생각해보면, 돈과 권력에 휘둘리는 세태가 새삼 놀라운 것도 아니다. 권력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사회 시스템 안에서 권력자에게 빌붙어 아부하는 것은 어찌 보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 아닌가. 세상 모든 사람은 자신에게 이익을 주는 사람과 교제하기를 원한다. 만약 내가 부귀영화를 누린다면 내 집 앞은 내게 조금이라도 연줄을 대보려는 사람들로 언제나 문전성시를 이룰테지만, 반대로 내가 곤궁하고 초라해지면 사람들은 자연히 나를 멀리하려 할테다. 내 존재 자체가 그들에게 부담이요, 짐이 되기 때문이다. 이 모든 원리를 이해한다면 이 세상의 세태를 담담하게 대할 수 있을 것이다. 타인의 잘못된 모습 때문에 내 인생의 아름다운 색채를 잃어버릴 필요 없다. 야박한 세상사와 인간의 본성에 너무 집착하지 말길. 인생은 훨씬 더 간단하고 홀가분한 것이니 말이다. (52쪽)

현대인들이 생각하는 소박한 생활이란 물질적으로 빈궁한 생활, 즉 근근이 끼니나 때우고 잘 먹지도, 잘 입지 못하는 생활일 것이다. 그러나 사실 소박한 삶과 빈궁한 삶은 완전히 다른 뜻이다. 빈궁한 생활이 열악한 생존 환경에서 물질적으로 가난한 삶을 사는 것을 뜻한다면, 소박한 삶은 양호한 생존 환경에서 삶의 본질을 부단히 지켜나가는 삶을 뜻한다. `박朴`이란 꾸밈없음을 말하고, `소素`는 간단하다는 뜻이다. 꾸밈이 없고 간단한 것이야말로 인간 본연의 모습이 아닐까. (76쪽)

초연함이란 영예와 모욕에 크게 반응하지 않는 태연함과 대변함이며, 온갖 고난을 겪은 후 얻게 되는 성숙함과 침착함이고, 또한 인생의 진리를 깨달은 평정한 마음이다. 담담하다는 것은 명리를 추구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오히려 명리를 여유롭고 유연한 태도로 관망하며 그 가운데서 자연스럽게 이를 얻고, 또 필요할 경우 집착하지 않고 이를 내려놓을 수 있는 모습이다. 오직 이런 마음을 가질 때만 명리에 끌려다니는 법 없이, 자유로이 세상을 유영할 수 있다. (117쪽)

포부는 낯선 지역을 항해하는 항선을 비추는 밝은 등이고, 칠흙같은 깊은 밤을 밝히는 별빛이며, 아름다운 인생을 그려내는 섬세한 붓이다. 이상과 목표와 진취적인 기상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분투해야 할 명확한 목표가 있다. 자신이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알기 때문이다. 그러니 앞으로 나아갈 용기와 신념을 얻으려면 먼저 인생의 목표와 포부를 가져야 한다. (2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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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과 유진 푸른도서관 9
이금이 지음 / 푸른책들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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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금이 (지은이) | 푸른책들 | 2004-06-21

 

 

 

남겨진 생각들  

 

 

 작은 유진은 그때의 일을 모두 잊었다.

 큰 유진은 그때의 일을 똑똑히 기억한다.

 작은 유진의 부모는, 아이의 몸을 벅벅 문지르며 기억을 씻겼다.

 큰 유진의 부모는 "사랑해,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번번이 다독였다.

 

 

 유치원에서 일어난 큰 사건을 함께 겪었던 '유진'과 '유진'. 그들이 중학생이 되어 같은 교실에서 만났을 때, 그들의 부모가 각각의 방식대로 묻어둔 기억은 괘씸하게도 다시 떠오르기 시작한다. 둘에게 그때의 기억은 결코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을 '소름 끼치는 기억'이지만, 떠오른 기억에 대한 대처는 그 둘이 확연히 다르다. 기억을 온전히 보전하고 있던 '큰 유진'은 담담히 이야기한다. '작은 유진'은 '큰 유진'의 이야기를 듣고, 조각조각 나뉜 기억에 괴로워한다.

 

 나무의 옹이가 뭐더냐? 몸뚱이에 난 생채기가 아문 흉터여. 그런 옹이를 가슴에 안구 사는 한이 있어두 다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했단다. (162쪽)

 날카로운 것에 베여 상처가 나면 딱지가 생긴다. 흉한 딱지가 보기 싫어 자꾸 긁고 떼다 보면 더 선명한 흉터가 생긴다. 『유진과 유진』은 (나쁜) '기억'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상처의 정도가 달라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유진과 유진, 그들의 부모는 자식의 상처를 어떻게든 잊게 해주려 안간힘을 썼고, 그 방법은 확연히 달랐다. 아마도 부모들은 서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결과는 너무나 달랐다. 한쪽은 미숙했고, 한쪽은 성숙했다. 무조건 잊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었음을, 알고 있는 탓이었다.

 소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시간은 기억의 정착제가 아니라 용해제다". 기억과 시간이 만나면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큰 작용이 일어난다. 기억은 시간에 의해 잊히기도 왜곡되기도 한다. 스스로 자각하지 못할 정도로. 하지만 두 소설은, 꼭꼭 묻어둔 판도라의 상자는 언젠가 틈이 벌어지게 마련이라는 공통점을 가진다. 그 틈으로 들어가 스스로 왜곡해 묻어둔 기억을 마주하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의 주인공 '토니', 그리고 어떻게든 묻어둔 기억을 '큰 유진'에게서 발견하는 『유진과 유진』 속 '작은 유진'의 배신감은 무척이나 컸을 것이다. 그러나 『유진과 유진』에서 중요한 점은 '배신감'이 어느 쪽으로 향하느냐는 것이다. 사건 당시, '유진이'들은 사리분별이 부족한 어린아이였고, 기억을 묻은 주체는 '부모'였다. 이 소설이, 단지 '청소년 소설'에만 머무르지 않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사랑해, 네 잘못이 아니야.". 이 시대의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해야하는 말은 이것이 아닐까?

 소설의 후반부, 같은 기억을 공유한 '유진과 유진'은 '건우 엄마'를 이야기하면서 따뜻한 손을 맞잡는다. 표리부동한 인간들에게 분노하고, 아픔을 승화시키며 이 둘이 함께 걸어갈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아이들의 입장, 그리고 부모들의 입장, 기억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청소년 소설'이라는 장르에 맞게 담담히 풀어낸 『유진과 유진』. 내가 읽어본 최고의 청소년 소설이다.


 

다음날, 난 그 일을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다. 자존심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누군가 날 도와줄 거란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말해 보았자, `네 잘못이야`라는 대답을 듣게 될 것 같았다.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전부터 그랬다. 초등 학교, 아니 더 전인 것 같다. 그때부터 내 편은 어디에도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를 지키는 방법은, 엘리베이터의 괴물처럼 더 강력한 것을 상상하거나, 공부 잘하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이제 보니 전교 1등도 나를 지켜주는 완벽한 방패나, 갑옷은 되지 못하는 것 같다. (53쪽)

나는 그 날 밤, 엄마와 아빠에게 그 이야기를 다시 해야 했다. 엄마가 울음을 터뜨리며 나를 안았고, 아빠는 주먹으로 벽을 쳤다. 그때 내 기분은 …… 슬프고 무서우면서도 달콤했던 것 같다. 세 살짜리 동생한테 엄마 아빠의 사랑과 관심을 빼앗긴 채 외로움에 떨던 때였으므로, 엄마 품에 안긴 채 울음 섞인 사랑 고백을 듣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었다.

"사랑해, 사랑해. 엄마가 우리 유진이 이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거 알지?" (73쪽)

"니가 그 일을 기억 못 해서, 느이 식구들은 영영 그러길 바랬지만 나는 내내 걱정이었다. 늙어서 노망난 것도 아닌데 파릇파릇하니 자라는 것이 지가 겪은 일을 기억 못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단다. 다 알구, 그러구선 이겨내야지. 나무의 옹이가 뭐더냐? 몸뚱이에 난 생채기가 아문 흉터여. 그런 옹이를 가슴에 안구 사는 한이 있어두 다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했단다."

외할머니가 내 등판을 쓸었다. 갑자기 내 몸 군데군데 상처가 난 것처럼 여겨졌다. 엄마가 살갗이 벗겨지도록 내 몸을 닦았던 건 그 상처를 없애기 위해서였을까? (162쪽)


건우엄마가 했다는 말을 할 때 작은유진이는 내 손을 꽉 잡았었다. 그 손이 바르르 떨리고 있었다. 엄마의 분노보다도 소라가 껴안아 줬을 때보다도 진정으로 위로 받는 느낌이 들었다. 이 아이는 또 다른 나인 것만 같다. 나는 작은 유진이의 손을 찾아 잡았다. 조그맣고 말랑말랑한 손의 느낌이 좋았다. 나는 그 애의 머리 위에 뺨을 기대었다. 우리가 서로에게 기대어 잠을 잘 수 있는 것, 이것만은 잘못된 일 같지도 후회스럽지도 않았다. 나는 아슴푸레한 새벽잠 속으로 빠져 들었다. (241쪽)

나는 못을 두드리는 것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아 엄마에게 달려들어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엄마는 허깨비처럼 내가 흔드는 대로 흐느적거렸다. 어하면 그대로 사라져 버릴 것 같았다. 엄마에게 떨어진 나는, 이겼으면서도 눈두덩이가 찢어져 바닥에 누운 상대편을 볼 수 없고, 입이 부어 터져 승리의 기쁨을 말할 수 없는 권투선수 같은 기분이 돼 간신히 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곤 침대 속으로 들어가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썼다. 그제서야 울음이 터져 나왔다. 아주 오래 묵은 것 같은 슬픔이 실 꾸러미 풀리듯 끝도 없이 울음 속에 섞여 들었다. 그리고 나는 잠이 들었다. (2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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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0
이반 투르게네프 지음, 이항재 옮김 / 민음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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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세르게예비치 뚜르게녜프 (지은이) | 이항재 (옮긴이) | 민음사 | 2003-07-05 | 원제 Первая любовь (1860년)

 

 

 

남겨진 생각들  

 

 고통을 수반하는 황홀함, 첫사랑

 첫, 이라는 수식어는 풋풋함과 황홀함을 동시에 선물한다. 그리고 고통 또한 수반한다. 그런데도 '첫'이 아름답고 아련한 것은, 지나온 시간 속에서 어떤 기억보다도 강렬한 추억과 잔상으로 남기 때문이다. <첫사랑>이라는 작품이 주인공 '블라지미르'의 회상으로 시작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의 나이 열여섯, '청춘의 용솟음치는 삶의 기쁨이 싹트기 시작할 때 (13쪽)' 한 여자를 만났다. 운명이었던 것 같았다. 연상의 여인인 '지나이다'는 자신의 모든 것을 좌지우지했고, 그의 불 끓는 열정을 장난으로 되받아칠 만큼 당돌한 여자였다. 그의 사랑은 마치 복종이었다. 사랑에 빠지면 온 우주가 나를 위해 돌아가는 것 같다고 했던가. 마치 그 꼴이었다. 그녀를 사랑할수록 그는 어린애처럼 작아졌다. 하지만 그 고통에도, 연모하는 감정은 점점 뜨거워져만 갔다.

 어린 사랑은 고통과 실패로 얼룩진다. 첫사랑이 사라지는 것은 청춘의 증표가 사라지는 것이기에, 그녀의 부재는 모든 것이 바스러져 버린 고통이다. 하지만 청춘이라는 시기는 되려 그 사랑을 배움의 기회로 바꿀, 당돌함을 선물하기도 한다. 어쩌면 뻔하디뻔한 사랑 이야기라 치부할 수 있는 이 이야기가 감동을 주는 건 서정적인 작가의 문체와 우수 어린 청춘의 고백이 가슴 깊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사랑은 언제나 고통이다, 귀족의 보금자리

 

 인물의 역사를 설명하는 장대한 서술이 주를 이루면서, <첫사랑>에서 좋았던 서정적인 문장들은 가끔 톡 쏘는 양념처럼 튀어나온다. 그리고 소설 속 등장하는 '사랑'도 앞의 작품에서 등장한 '사랑'의 강렬함과 쌍벽을 이룰 만큼의 인상을 남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사랑'이 자랐고, '작품'도 자랐다. <귀족의 보금자리>에서는 작가가 더 깊은 내면을 끌어낸 느낌이랄까. 당대 러시아의 귀족사회를 대변하는 한 가정을 등장시키며, (당시에는 가능했던) 친척 간의 사랑을 그리고 있는 이 작품은 진지한 대화 속 인간의 속성을 파악하게 하는 무거운 작품이다. 당대 러시아의 귀족사회를 통해 슬라브주의자와 서구주의자의 대립, 러시아라는 작가의 모국에 대한 애정과 이상을 진하게 풀어내며, '사랑' 또한 그 역사와 맞물려 성숙한 전개로 드러내고 있다. 현실과 현재의 감정 사이에서 고민하고 갈등하는 '라브레츠키', 몸에 배어버린 관습과 윤리를 벗어던지지 못하는 순수하고 올곧은 인물 '리자'. 그들의 비극적 사랑 이야기는 다소 지겹게까지 여겨지는 러시아 특유의 장황한 서술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읽어내리게 하는 힘이 되었다.“젊어서 사랑을 하든 나이 들어서 사랑을 하든 고통은 수반되기 마련이다.” <첫사랑>의 풋풋하고도 강렬한 사랑 이야기를 반전시키는 듯한 작품의 배치가 묘하게 느껴진다.

 지배와 억압에 바스라져버린 사랑, 무무

 <무무>는 세 작품 중에 가장 담백하고 침착한 듯 보이나, 가장 슬픈 절규를 담고 있어 마지막까지 두근대는 가슴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벙어리이자 귀머거리 농노 '게라심'과 그가 애정을 주었던 강아지 '무무'. 한 번 사랑에 실패한 그에게, 위로와 의지와 더 큰 사랑을 주었던 '무무'는 그의 모든 것이었다. 하지만 '농노제도'라는 비참한 현실,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여지주의 횡포로 인해, 그 사랑은 바스러져 버린다. 현실에 굴복하여 이루어질 수 없었던 사랑 이야기 중에서 <무무>는 가장 조용하지만 가장 큰 감정을 내보이고 있었던 작품이다. 지배와 억압에 대한 울분과 증오를 이렇듯 조용하고 담백하게 다룰 수 있을까. 가슴 아픈 사랑에 대처하는 가장 성숙한 모습이라고까지 여겨져, 오래도록 그 잔향이 깊게 남을 것만 같다.

 

나는 줄곧 겁에 질려 무엇인가를 기다렸다. 그리고 모든 것에 놀라움을 느끼면서 무엇인가에 대해 계속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마치 아침놀이 물들었을 때 종루 주위를 나는 제비 떼처럼, 공상은 언제나 같은 환상의 주위를 빠르게 맴돌면서 장난치는 것이었다. 나는 깊은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슬픔에 젖기도 하고, 어떤 때는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 그렇지만 노래처럼 경쾌한 시나 황혼의 아름다움이 자아낸 눈물과 우수를 통해, 청춘의 용솟음치는 삶의 기쁨이 마치 봄풀처럼 파릇차릇 싹트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13쪽, 첫사랑)

오, 청춘이여! 청춘이여! 그대는 아무것도 걸릴 것이 없다. 그대는 마치 우주의 온갖 보물을 차지하고 있는 듯하다. 심지어 우수도 그대에게는 위로가 되고, 슬픔조차도 그대에게는 잘 어울린다. 그대는 자신감이 넘쳐흐르며 대담무쌍하다. 그대는 "보아라, 사람들아! 나는 혼자서 살아간다."라고 말하지만, 그대의 좋은 시절도 흘러가고, 흔적도 없이 무수히 사라져 버린다. 그러면 그대의 모든 것은 태양 아래 밀랍처럼, 눈처럼 녹아 없어져 버린다……. 어쩌면 그대가 지닌 매력의 모든 비밀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가능성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대의 힘을 다른 무엇을 위해 사용해보지도 못하고 바람에 흩날려 보내는, 바로 그런 점에 있는지도 모른다. (120쪽, 첫사랑)

사방에서 정적이 그를 감싸고 있고, 태양은 잔잔한 푸른 하늘에서 조용히 떠가고, 구름도 조용히 흘러간다. 구름은 자기가 어디로, 왜 흘러가는지 알고 있는 듯싶다. 바로 이 시각에 지상의 다른 장소에서는 생활이 들끓고 사람들은 서두르며 시끄러운 소리를 내고 있는데, 여기서는 똑같은 생활이 늪의 풀 위를 흐르는 물처럼 소리 없이 흐르고 있었다. 라브레츠키는 저녁때까지도 이 지나가는, 흘러가는 생활에 대한 관조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지나간 날에 대한 애수는 그의 마음 속에서 봄날의 눈처럼 녹아내리고 있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는 이처럼 깊고 강렬하게 고향을 느껴본 적이 한번도 없었다. (229쪽, 귀족의 보금자리)

내가 숭배하곤 했던 모든 것을 불태워버렸고, 불태우곤 했던 모든 것을 숭배했노라…….

그러고 나서 그는 말에 채찍질을 가하여 집까지 내달렸다. 말에서 내리면서 자신도 모르게 감사의 미소를 짓고 마지막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조용한 밤, 부드러운 밤이 언덕과 골짜기에 깃들어 있었다. 멀리 밤의 향기로운 심연에서, 하늘인지 땅인지 모를 그 어딘가에서 평온하고 부드러운 온기가 흘러나왔다. (267쪽, 귀족의 보금자리)

그는 사람들이 자기를 모스크바에 데려올 때부터 길을 눈여겨보아 두었다. 여지주가 그를 데려온 시골에서 큰길까지는 약 25킬로미터 정도의 거리였다. 그는 큰 길을 따라 굳건하고 용감하게, 절망적이면서도 기쁜 단호한 마음으로 걸어갔다. 그는 가슴을 활짝 펴고, 두 눈으로 열심히 똑바로 앞을 응시하며 계속 걸었다. 그는 늙은 어머니가 고향에서 자기를 기다리기라도 하듯이, 타향의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방황한 자기를 어머니가 고향 집으로 부르기라도 하듯이 서둘러 걸어갔다……. 이제 막 시작된 여름밤은 고요하고 따스했다. 태양이 지는 쪽에서는 아직도 하얀 하늘 언저리가 사라져 가는 하루의 마지막 반사광으로 엷은 홍조를 띠고 있었고, 그 반대쪽에서는 푸른 잿빛 어스름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쪽에서 밤이 다가오고 있었다. 수백 마리의 메추리들이 커다란 소리를 내며 빙빙 날고 있었고, 흰눈썹뜸부기들이 앞 다투어 서로를 부르고 있었다……. (440쪽, 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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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의 그림자 - 2010년 제43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민음 경장편 4
황정은 지음 / 민음사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황정은 (지은이) | 민음사 | 2010-06-25 | 2010년 제43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남겨진 생각들  

 

 나는 이 소설에 어떤 말을 보태야 할까? 작가마저 그 무거운 뭉치들을 간결하게 풀어놓은 이 소설에, "소설이 나온 것이 그냥 고맙다"고 말하는 평론가님의 말에 뒤이어, 수많은 독자의 감탄 어린 글 다음으로, 어떤 말을 주절주절 달아야 할까? 황정은의 소설은 독특한 느낌, 모호한 느낌, 좋다는 느낌이 차례대로, 쉽사리 정리할 수 없는 이상한 기분까지 느끼게 한다. 하지만 이 모든 느낌을 제대로 표현하긴 버겁다. '나는 절대로 이런 문장들을, 생각 끄트머리조차 따라 할 수 없겠다'는 경외감이 섞인 자괴감과 더불어.

 

 

 곧 공원으로 바뀌기 위해 철거될 전자상가에 사는 그들에겐 그림자가 뻗어있다. 따라가면 안 돼, 조심해야 해, 되뇌곤 한다. 그림자는 때론 자라면서 일어설 기미를 보이기까지 한다. 아마도 그건 아슬아슬한 삶에 비틀거릴 때 나타날 듯한, 조금 따라가면 끌려갈 수밖에 없는 그런 무시무시한 것.

 두렵지만, 무서운 꿈을 꾸지만, 그들은 딸린 그림자를 뒤로 한 채,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이' 애써 여기며 살아간다. 무정한 현실을 닮은 그림자, 그림자에 묻히지 않기 위해 다른 곳을 보려고 시도하며 담담하게 삶을 살아낸다.

 

 

 같은 상가에서 일하는 '무재'와 '은교', 그들에게 그림자를 없애버릴 시원한 그늘은 '사랑'이다. (단순히 '아름다운 연애소설'이라고 칭할 수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리고 그림자의 세계를 파괴할 희망으로 존재하는 것이 이 소설의 '사랑'이기도 하다. '사랑'이라고 딱 잘라, 한 번도 얘기하지는 않지만 짧디짧은 대화의 흐름 속에서 분명히 느껴지는 '선량함'과 '진심'이 은연중에 '사랑'을 가리키고 있다. '무재'와 '은교', 그들은 서로를 의지한다. 일반적인 언어의 통념을 부숴버리는 이상한 말장난 - 이를테면 "가마" (38쪽) 같은 -, "네"라는 무심하고도 짧은 대답 뒤에 숨은 위로의 무게에 그림자의 두려움을 잠시 잊혀둔다. 무거운 어둠과 같은 삶 속, 그들의 대화는 작가의 말 속의 "여전히 난폭한 이 세계에 / 좋아할 수 있는 (것)들"에 공감할 수 있을 만큼의 따뜻함이다.

 '무재'와 '은교' 곁에 존재하는, 또 다른 사람들 - 여 씨 아저씨, 유곤 씨, 오무사 할아버지 - 의 이야기 또한 허투루 지나칠 수 없다. 작가는 세심하게, 또는 소설의 주인공들처럼 무척이나 '선량하게' 그들의 삶을 살포시 드러낸다. 말하자면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감각적인 건물이나 예쁜 골목에서, 수년 전 무너졌을 누군가의 슬픔을, 떠나지 못하고 땅속에 묻혀버린 그들의 마음을 작가는 '볼 수 있게' 만든다. 그리고 그 손길은 거칠지 않고 조심스럽다. 조심스럽고 따뜻해서, '씨발'이 난무하던 『야만적인 앨리스씨』보다도 더욱 처연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이상한 것은, 어두운 잿빛의 그림자로 어두워진 삭막한 세계인데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위로가 된다는 것이다.

 문장 속의 품은 무게 만큼은 무겁지 않은 문장들로 채워진 탓일지도 모르지만,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함께 '걷고 있는' 그들의 모습 탓이다.

 겹치고 겹친 그림자를, 밟지 않으려 조심하면서, 손을 잡고, 노래하면서…….

​은교 씨.

하고 무재 씨가 말했다.

노래할까요. 

 

 

 

Written by. 리니

 

 

나는 냉면을 좋아합니다.

그런가요.

또 무엇을 좋아하나요.

이것저것 좋아하는데요. (…)

나는 쇄골이 반듯한 사람이 좋습니다.

그렇군요.

좋아합니다.

쇄골을요?

은교 씨를요.

……나는 쇄골이 하나도 반듯하지 않은데요.

반듯하지 않아도 좋으니까 좋은 거지요.

그렇게 되나요. (39쪽)

요즘도 이따금 일어서곤 하는데, 나는 그림자 같은 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야. 저런 건 아무것도 아니다, 라고 생각하니까 견딜 만해서 말이야. 그게 실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은 아니지만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가끔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고, 시간이 좀 지나고 보니 그게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이 맞는 것 같고 말이지. 그림자라는 건 일어서기도 하고 드러눕기도 하고, 그렇잖아? 물론 조금 아슬아슬하기는 하지. 아무것도 아니지만 어느 순간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닌 게 되어 버리면 그때는 끝장이랄까. 끝 간 데 없이 끌려가고 말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하여간에 말이지, 라면서 여 씨 아저씨는 서랍 속에서 드라이버를 꺼내 앰프 껍질에 꽂힌 나사를 돌리기 시작했다. (46쪽)

입이랄지, 검은 것 가운데 오목하게 들어간 조그만 구멍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가져와, 가져와, 라고 말하다가 이내 다른 말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 말은 더는 말이 아니고, 이상한 방식으로 발성되며 발성 자체가 목적인 듯한 미미, 라거나 가가, 하는 소리일 뿐이었습니다. 며칠 전에 버려진 상자 같은 건 벌써 며칠 전에 어딘가로 사라졌으므로 도무지 가져올 수는 없다고 이모가 빌고 내가 빌고 마침내 둘이 엎드려서 빌어도 용서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나는 마루에서 어머니와 그녀의 그림자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림자는 이때쯤 검디검게 휘어져서 어머니의 몸을 빈틈없이 덮고 있었는데 어머니는 그걸 모르거나 상관없다는 듯 그림자를 내버려 둔 채로 이따금 입을 벌려 미미, 하고 가가, 하며 그림자의 말을 따라갑니다. (70쪽)

가동에서 길을 잃고 헤맨 적이 있는 나는 그 자리에 공원이 조성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매우 넓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앉아서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작았다. 작네요, 라고 멍하게 말하자 무재 씨가 빈 우유갑을 반으로 접으며 생각했던 것보다 좁아서, 놀랐다고 말했다.

여기에 그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는 이야기잖아요.

다 어디로 갔을까요.

하며 잔디밭 너머를 바라보았다. (111쪽)

은교 씨, 나는 특별히 사후에 또 다른 세계가 이어진다고는 생각하지 않고요, 사람이란 어느 조건을 가지고 어느 상황에서 살아가건, 어느 정도로 공허한 것은 불가피한 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인생에도 성질이라는 것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본래 허망하니, 허망하다며 유난해질 것도 없지 않은가, 하면서요. 그런데 요즘은 조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어요.

어떤 생각을 하느냐고 나는 물었다.

이를테면 뒷집에 홀로 사는 할머니가 종이 박스를 줍는 일로 먹고 산다는 것은 애초부터 자연스러운 일일까, 하고.

무재 씨가 말했다.

살다가 그러한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은 오로지 개인의 사정인 걸까, 하고 말이에요. 너무 숱한 것일 뿐, 그게 그다지 자연스럽지는 않은 일이었다고 하면, 본래 허망하다고 하는 것보다 더욱 허망한 일이 아니었을까, 하고요. (1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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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틸라 요제프 시선 : 일곱 번째 사람 아티초크 빈티지 시선 3
아틸라 요제프 지음, 공진호 옮김, 심보선 서문 / 아티초크 / 2014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읽고 나서

 

 책을 덮고 그 여운이 한동안 잊히지 않았다. 지금까지 만나보지 못한 언어들의 나열, 그 속에 품은 고되지만 아름다운 감정들.

 

 '아틸라 요제프' 시선은 이전에 아티초크에서 출간되었던 '안나 드 노아이유' 시선과 마찬가지로 국내 최초로 우리 곁에 등장하게 되었는데, 그의 이력에서도 그가 내놓은 글에서도 참 고맙고도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틸라 요제프'는 한마디로 말해, 비운의 헝가리 시인이다. 32년이라는 짧은 생애, 가난한 노동자의 집안에서 비참한 현실과 싸우며 지낸 그는 9살 때 처음으로 자살 시도를 했다. 아버지가 떠나가고, 어머니는 병으로 사망했다. 그의 시는 신성모독이나 정치 선동이라는 이유로 비판을 받기도 했다. 교사와 일용직 노동자까지, 수많은 직업을 가지며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그러나 그에게는 '시'가 있었다. 그에게 '시'는 살아있음을 스스로 증명하는 수단이었을까.

 

 

찢어졌나보다 / 이 내 그물이 / 고치려 펼쳐 놓고 / 자세히 살펴보니

언 그물은 / 빛나는 하늘 (34쪽, 그물)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 은도끼가 물푸레나무의 / 잎들을 농락하더라도 / 객관적이고 낙천적으로

나의 심장이 허무의 나뭇가지에 앉아 있다 / 그 작은 것이 소리 없이 떨고 있는데 / 별들이 서서히 주변으로 몰려들어 / 가만히 구경한다 (69쪽, 희망이 없이)

 

 노동, 땀 흘림, 외로움과 괴로움, '일어나라'는 외침, 자본과 국가에 대한 반항으로 가득 찬 시들. 그 속의 황폐한 감정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시 속에는 그를 이겨내려는 안간힘이 느껴지는 듯하다. 그물은 찢어졌지만 빛나는 하늘 같다며 위안하는 시선, 반짝이는 것들을 보고 "나는 행복하다 (46쪽, 여름의 오후)"라고 말하는 그에게 '시'는 그 속의 것들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유토피아였을 것이다. "죽여! 짓밟아! 갈겨!" 뒤에 오는 "요즘 세상 참 -" (48쪽, 서리)이라는 문장의 배치 또한 이상하게 마음을 간지럽힌다. 열차에 몸을 던져 자신의 삶을 스스로 끊어버렸던 그에게 삶은 고통으로 가득 차 있었을 것이지만, 또 다른 세상 (시) 속에서는 "요즘 세상 참-" 하며 웃어넘길 수 있는 사람이었다. 음울하고도 서글픈 장면들의 반복, 그러나 그 뒤에 오는 문장들이 있어 전해져오는 고통은 환기된다. 그리고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이 올라온다.

 

 

 이 모든 것이 그대로 이루어지면 / 당신은 일곱 사람으로 묻히리니 - / 젖가슴에 기대어 젖을 물린 사람, / 빈 접시들을 내던지는 사람, / 가난한 사람들이 이기도록 도와주는 사람, / 몸이 부서지도록 일하는 사람, / 밤새도록 달을 바라보는 사람, 그러면 / 세상이 당신의 비석이 될 거예요 - / 당신 자신이 일곱 번째라면. (21쪽, 일곱 번째 사람)

 

그 계층 사람들은 / 친절하지 않았다 / 나는 하루걸러 한 끼 먹는데 / 위궤양은 매일 나를 좀먹는다. / 세상이 돌아가듯 / 나의 위는 휘돌고 / 내 안의 사랑은 연소한다. / 세상은 역겹고 / 전쟁은 토사물. / 우리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 음식이 아닌 비겁한 침묵. / 변화를 주기 위해 스스로를 걷어찬 나는 / 분노하기에 충분한 / 혼란으로 가득한 시대의 시인. (102쪽, 마지막 전투)

 

 어려운 시대다. 어떤 것도 만족스럽지 못한, 답답한 시대다. '아틸라 요제프'의 시대와 지금 우리의 시대가 완벽히 일치될 리는 만무하지만, 페이지를 넘기는 중간중간 강렬하게 치고 들어오는 시어들에 가슴이 턱턱 막히는 것을 보면 그리 좋지만은 않은 지금이다. 그러나 그 강렬한 시어들 속에서도 희망과 인간애가 빛난다는 것, 이 시집을 소중히 남길 수 있는 이유이다. 고통이 넘치지만, 아름다운 문장을 읽으면 어느새 잔잔히 흐르는 노동가처럼 마음이 울리는 데에 그 이유가 있다. "이 모든 것이 (언젠가는) 그대로 이루어질까"하는 의문을, 혹은 다짐을, 시인은 우리에게 돌린다. '일곱 번째 사람', 당신에게.

 

 

 

 

 

Written by. 리니

동유럽 문학/ 헝가리 시/ 노동, 민중 시/ 아티초크 빈티지 시선 3 

소장하고 있는 책을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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