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백한 잠 밀리언셀러 클럽 145
가노 료이치 지음, 엄정윤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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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추리 혹은 스릴러 소설이라면, 비밀을 찾아가는 과정의 쫄깃한 기분과 두근거림이 일품입니다. 그것을 좋아하는 독자들은 일부러라도 이런 책들을 찾아 나서서 그 기분을 오래도록 느끼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저는 그 정도는 아니지만, 아주 가끔 숨막히는 속도감을 즐겨보려 하는 편인데요. 간혹, "이 작품 또 쫄깃하겠구나"하는 와중에, 독특한 기분을 느낄 때가 있어요. 바로, 스릴러 속의 '감성'이죠. 이런 작품들은 작가의 관점에서 특히나 더 풀어내기 어렵다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합니다. 스릴러나 추리 쪽에서는 자칫하면 좀 지루해질 수도 있거든요.

 

통곡하던 남자의 모습이 머릿속 어딘가에서 떠나지 않았다. 탐정 일을 하던 시절에 가장 싫었던 일이 피해자의 가족과 만나 그들의 슬픔을 직접 봐야 하는 것이었다. (24쪽)

 

이 작품이 작가와의 첫 인연은 아니고, 전에 『환상의 여자』라는 작품을 만나본 적이 있습니다. 『창백한 잠』만큼 분량이 많았고, 그때도 묵직한 이야기 속에 세세한 감정선이 드러나 있어 미묘한 기분으로 읽었었죠. 이번 작품 또한 감성적인 부분이 크게 도드라진 느낌입니다. 끔찍한 살인사건에 너무 자세히 집중하지 않고, 그것과 관계된 사람들의 심리적 관계와 사회적 분위기에 집중하는 편이지요. 흡인력은 좋지만, 속도감은 '추리소설'치고는 약간 잔잔하게 느껴집니다. (이 느낌이 나쁘진 않고 좋았어요. 독자에 따라 다를 것 같습니다) 주인공의 독백과 상황 묘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소설은 폐허가 된 작은 어촌 마을을 묘사하면서, 그곳을 둘러싼 공항 건설계획에 대한 두 입장을 초반부터 드러냅니다. 공공개발과 자연파괴. 각각의 입장에 선 마을 사람들의 논쟁을 살인사건 이면에 다루고 있지요. 하지만 그것의 옳고 그름을 가리진 않으면서, 관련된 다른 사건으로 중심을 옮겨갑니다. 일종의 함정이자 반전인데, 저는 사회 비판 쪽으로 더 흘러갔으면 해서 살짝 아쉬운 마음은 있었습니다. 이야기 구성 면에서 뭔가 뚝뚝 끊기는 느낌이 들기도 했고요.

 

우리는 부두 끝에 나란히 섰다. 항구의 콘크리트 슬로프에 양륙되어 늘어선 어선 중 몇 척은 선체가 녹슬고 낡아서 마치 난파선 같았다. 그 뒤편에는 키가 작은 집들이 납죽 엎드린 것처럼 띄엄띄엄 서 있었다. "뭘까요, 다쓰미 씨. 소중한 것들이 매일 조금씩 사라지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요." (267쪽)

 

하지만 폐허가 된 마을의 을씨년스러운 잿빛 풍경과, 그것에 몰입한 주인공의 모습이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전직 탐정답게 살인사건을 만나자 (마음은 밀어내지만 머리로는) 홀린 듯 빠져들어 가는 모습이 흥미롭기도 했고요. 왠지 작가가 이 작품에서는 살인사건보다 전체적인 분위기와 주인공의 심리에 많은 공을 들인 느낌이었습니다.

 

여러 추리소설이 그러하듯이, 결말은 '인간'의 욕망과 이기심으로 귀결됩니다. 그러기에 마지막까지 씁쓸함과 여운이 길게 남습니다. "군청색의 세계 속에 오도카니 홀로 실루엣을 드러내고 있는 폐허"를 다룬 남다른 분위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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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리처드 포드 지음, 곽영미 옮김 / 학고재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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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포드 (지은이) | 곽영미 (옮긴이) | 학고재 | 2016-01-20

 

 

남겨진 생각들

 

 "나는 우선 우리 부모가 저지른 강도 사건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다음에는 나중에 일어난 살인 사건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라는, 이 책의 첫 문장을 보고 놀랐고, 『이방인』의 "오늘 엄마가 죽었다." 라는 문장 만큼이나 강렬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곤, 다음에 오는 문장에 난감해하고 말았다. "이 세상에 절대로 은행을 털지 않을 사람이 딱 둘 있다면 우리 부모님이었을 것이다."

그러던 부모님이 왜 은행을 털었을까. 금전적인 어려움 때문이었다고는 하지만, 거기에는 어떤 필연과 우연이 뒤섞여있었던 것일까?

 '만약에'와 '나였다면'이라는 가정을 해보지 않고는 지나칠 수가 없다. 만약에, 나였다면 어떤 행동을 할 수 있었을까? 내가 주인공이었다면 한순간에 엎질러진 모든 상황에 어떻게 대응할 수 있었을까? 소설 『캐나다』는 한 가족을 뒤엎은 '나쁜' 상황에 관한 이야기를 그린다. 공군 대위였던 아버지와 교사였던 어머니가 은행강도가 되고, 가족은 뿔뿔이 흩어진다. 그리고 '델'이라는 한 소년은 그 모든 상황을 바라본다. 여느 때와 다른 부모님의 아주 작은 변화의 행동들, 불안한 예감들, 미스터리하기까지한 상황들, 묘한 긴장 속에 있는 것 같은 순간들을 소설 속에서 아주 차분하게 살펴낸다.

 모든 것을 곧게 바로잡아주고 있던 '가족'이라는 기둥이 무너진 그에게 인생은 막다른 길에 불과하다. 하지만 낙담하지 않고 나름대로, 거침없는 항해를 시작한다. 엄마가 들려주었던 시인 예이츠의 명언 "찢겨 보지 않은 것은 완전해질 수 없다"라는 말이 '델'의 인생 속에서 절대로 잊히지 않고 남아있는 것처럼 '델'은 계속해서 걸어간다. 그리고 마침내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땅을 발견한다. 부모님을 잃은 소년 혹은 미국인, 그 어떤 것으로도 대변될 수 없는 '진정한 나'의 모습을 찾아낼 수 있는 곳, '캐나다 (Canada)'.

 소년의 길고 긴 항해는 최근에 감명 깊게 읽었던 책, 『황금 물고기』속 소녀의 모습과 비슷해서, 코끝 찡한 감동이 일었다. "그런 상황에 부닥쳐 보기 전에는 어떻게 행동할지 아무도 모른다(213쪽)"는 말처럼, 우리 누구도 인생을 확신할 수 없지만, 그저 나아가고 노력하는 것이 답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미스터리 인생에서, '내 삶의 증거'와 '내가 누구라고 믿는 것(411쪽)'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조용히 전해주고 있었다.

 인생의 교훈을 차분하고 유려한 문장으로 전해주었던 소설 『캐나다』. 이야기적인 부분에서는 지루함 없이 읽었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각각 맞닿은 사건들과 문장에서 삶에 관한 차분한 시선이 느껴져서 여운이 깊게 남았다. 소설의 긴 호흡을 따라가다 보면 삶의 잔잔한 물결을 만나볼 수 있으리라.

Written By. 리니

 

내게는 이것이 매혹적이지만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절벽 끝처럼 느껴진다. 표면적으로는 삶이 변한 게 없었던 만큼 두 사람은 여행하는 내내 이야기하고 비밀을 나누고 애정 섞인 말을 주고받았다. 그들은 그때 흉악범이 아니었다. 정상(正常)이라는 것이 얼마나 멀리까지 연장될 수 있는지 놀랍지 않은가. 뗏목을 타고 바다로 나가면 육지가 점점 작아지듯, 아니면 기구를 타고 대초원의 바람기둥에 휩쓸려 올라갈 때 땅이 넓어지고 평평해지면서 아래 세상이 점점 흐릿해지듯, 정상으로부터 멀어지면서도 어찌 하여 여전히 그것이 시야 안에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인가. (127쪽)

"학교는 걱정하지 마."

"계획을 얼마나 많이 세워 놨는데." 내가 말했다.

"나도 알아. 누구에게나 계획은 있어." 어머니는 이런 어리석은 대화를 그만하고 싶은지 고개를 저었다. 어머니가 나를 보고 안경 너머로 눈을 깜박였다. 지쳐 보였다. "유연해져야 한다." 어머니가 말했다. "유연하지 않으면 큰 사람이 될 수 없어. 엄마도 유연해지려고 노력해."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안다고 생각했지만 다른 의미가 있는 것도 같았다. "이치에 닿다"라는 말처럼. 나는 어떤 유연함을 뜻하든 내가 그렇지 않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188쪽)

나는 지금 동화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동화되거나 그들을 위해 동화되는 것이 아니라 혼자 동화되었다. 동화되는 건 그렇게 어렵지도 위험하지도 영구적일 필요도 없을지 모른다. 이런 생각이 들자 또다른 해방감을 들면서 인생이 다시 시작되는 것 같고, 앞서 말했듯이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가는 듯했다. 정체되어 있지 않고 계속 움직이는 사람 말이다. 움직임은 세상 만물의 섭리였다. 좋든 싫든 나를 둘러싼 세상은 내가 어떻게 느끼든 계속 변할 것이다. (330쪽)

플로렌스는 뻣뻣하게 일어섰다. 그녀는 키가 크지 않았고 어머니처럼 날씬하지도 않았다. 갈색 코르덴바지를 솔로 털어 낸 뒤 몸이 추워졌는지 온몸을 흔들고 양어깨와 펄럭이는 모자를 툭툭 쳤다. 나는 격자무늬 재킷을 입고 있었다. 확실히 추웠다. "여기가 캐나다여서 그럴 걸." 그녀는 히죽 웃었다. "우리가 늘 정해 놓고 다니는 건 아니잖니." 그녀가 말했다. "때로는 그냥 그곳에 닿는 거지. 아서가 그랬어. 그렇게 된 거야. `난 미국에 가는 게 아냐, 파리를 떠나는 거지.` 이건 위대한 예술가 뒤샹이 한 말이야. 그가 내 그림을 보았다면 정말 웃기다고 생각했을걸." 그녀는 우체국과 텅 빈 거리 - 우리 앞 광경 - 를 그린 그림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난 맘에 들어. 전부는 아니지만." 그녀가 말했다. (3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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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에서 하늘 보기 - 황현산의 시 이야기
황현산 지음 / 삼인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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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산 (지은이) | 삼인 | 2015-11-16

 

 

 

 남겨진 생각들

 

  시집에 있는 공백이 두려울 때가 있었다. 동화책, 예쁜 에세이 같은 것들에도 더 큰 공백이 존재하지만, 시집은 달랐다. 비어있는 공간을 생각과 사색으로 채우고 문장은 어떤 것인지 해석해내야만 하는 부담이 막막함을 불러왔다. 그럴 땐 시인이 쓴 에세이, 시에 관한 이야기들을 읽고서 마음을 채우곤 했는데, 『우물에서 하늘 보기』도 그런 의도에서 고른 것이다. 이런 책을 읽으면 마음속에 있는 어떤 부담이 조금 덜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어찌 됐든 소설도, 에세이도, 시집도, 독서에 대한 즐거움을 얻기 위함이니 부담을 벗어던지고 좋은 것들을 걸러내 읽으면 그만인데, 언제나 이런 반복이다.

 

 이 책은 황현산 평론가가 2014년 한 해 동안, <한국일보>에 연재한 '시화(詩話)'들을 담은 것이다. '시론(時論)'이라 하면 분명 따분한 뭔가를 생각할 것을, '시화'라고 하니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편안한 마음이 생긴다. 하지만 가볍게 읽을 수만은 없다. '시'라는 것의 어떤 꼭짓점에서 이어진 선들은 우리가 잊고 산 (시간이 흐르면서 지워질 수밖에 없는) 어떤 현실에 가 닿기 때문이다. "시에는 한 편 한 편마다 무언지 모를 극단적인 것이 있다"라는 프랑스의 시인 '레몽 크노'의 말을 인용하며 시작하는 이 책은, 독자들이 시를 통해 느낄 수 있는 '극단'을 보다 풍성하게 느끼게 하기 위함이다. 그가 말하기를, '극단'은 이런 것이다. 시적인 무엇, 시적 상태로 이르기까지의 모든 것들, 각성, 자유……. 그 모든 것들을 느끼게 하기 위하여, 작가는 나름대로 풍성한 이야기를 덧대어 시를 '해석해내고' 있다.

 

 그리고 그 해석은 명쾌하다. 정답이 없는 문학에 적절한 표현인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명쾌하다'고 말하는 것은 작가가 하나의 시에 꺼내놓은 풍성한 지식과 이야기, 문장들이 내게 온전히 받아들여졌다는 의미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그저 스쳐 보냈던 이육사의 「광야」를 몇 번을 돌려가며 읽어보고, 김종삼의 「민간인」에 어린 처절한 슬픔을 느꼈다. 진이정의 시 「지금 이 시간의 이름은 무엇입니까」를 보고 이 시를 절대 잊지 못할 거로 생각했고, 훑어내린 최승자의 시집을 다시 읽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기억해두어야 할 수많은 시가 내게로 흘러들어왔다.

 그뿐만 아니라, 현실에 부딪힌 시 이야기는 우물에서 하늘을 바라보는 것만큼 막막하고 아득한 세상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데, 연재될 당시 크나큰 슬픔이었던 세월호 사건을 비롯하여 누군가의 치열한 삶과 죽음을 전한다. 애달프고 먹먹한 감정이 읽는 내내 사라지질 않았다. 우리는 언젠가 그 우물에서 건져질 수 있을까.

 

​ 이 책이 좋았던 것은 설득하려 애쓰지 않는데도, 누군가를 설득시키고야 마는 글의 매력 때문이었다. 그는 그가 바라본 시인의 마음을, 사랑해마지않는 시의 세계를, 규정하고 있는 시에 대한 것들을 온전히 독자에게 전해주면서도, 하나하나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는 것 같았다. 현실을 품고 꾹꾹 눌러, 아주 작은 구멍만 남겨둔 시들을 어서 읽어주고 느껴주기를 바라면서.

 

 

Written By. 리니

 

 

그는 눈앞에 다가온 자신의 죽음을 내다보며, 저 눈먼 무사만큼 절박한 처지에서 "지금 이 시간의 이름은 무엇입니까"라고 묻는 시를 썼다. 시간이 흘러가며 잠시 만들어 놓았던 것에 그는 끊임없이 이름을 붙인다. 그게 무슨 소용이겠는가. 이름 붙일 수 없는 시간이 이 모든 이름을 휩쓸어갈 것이다. 그러나 어찌 이름을 붙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름은 벌써 시인 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시간 속에 명멸하는 모든 것들을 그 이름으로 한 순간이라도 붙잡아 두려는 모든 열정을 위한 것이다. (69쪽)


시인들은 속절없이 시를 썼다. 아들딸을 잃고 시를 썼고, 때로는 불행한 부모들을 대신해서도 시를 썼다. 그 절망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비애의 극한이 잊힐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정지용은 「유리창」을 썼고, 김광균은 「은수저」를 썼고, 김현승은 「눈물」을 썼다. 김종삼은 더 많은 시를 썼다. 「음악」과 「배음」이, 「무슨 요일일까」가 모두 죽은 아이를 위한 시이며, 두 편의 「아우스뷔츠」에도 그 중심에는 어린 생명의 죽음이 있다. 가장 처절한 시 「민간인」은 그의 사후 광릉 근처에 세운 그의 시비에 새겨졌다. (93쪽)

나태와 무책임에 형식이 없듯 악의 심연에도 형식이 없다. 미뤄둔 숙제가 우리를 무력하게 만들었고, 쌓아준 죄악이 우리를 마비시켜, 우리는 제가 할 일을 내내 누군가 해주기만 기다리며 살았다. 누군가 해줄 일은 아무도 하지 않는 일이다. 아니 기다리지도 않았다. 책 한 줄 읽지 않고도 모든 것을 다 아는 우리들은 "산다는 게 이런 것이지"같은 말을 가장 지혜로운 말로 여기며 살았다. 죄악을 다른 죄악으로 덮으며 산 셈이다. 숨쉴 때마다 들여다보는 핸드폰이 우리를 연결해주지 않으며 힐링이 우리의 골병까지 치료해줄 수 없으며, 품팔이 인문학도 막장드라마도 우리의 죄를 씻어주지 않는다. 실천은 지금 이 자리의 실천일 때만 실천이다. 진정한 삶이 이곳에 없다는 말은 이 삶을 포기하자는 말이 아니라, 이 삶을 지금 이 모양으로 놓아둘 수 없다는 말이다. (98쪽)

시 쓰기는 끊임없이 희망하는 방식의 글쓰기다. 다른 말로 하자면 시가 말하려는 희망은 달성되기 위한 희망이 아니라 희망 그 자체로 남기 위한 희망이다. 희망이 거기 있으니 희망하는 대상이 또한 어딘가에 있다고 믿는 희망이다.

꽃을 희망한다는 것은 꽃을 거기 피게 한 어떤 아름다운 명령에 대한 희망이며, 맑은 물을 희망한다는 것은 물을 그렇게 맑게 한 어떤 순결한 명령에 대한 희망이다. 시를 읽고 쓰는 일은 희망을 단단히 간직하는 일이다. (2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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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그래피 매거진 7 엄홍길 - 엄홍길 편 - 나는 살아서 돌아왔다, Biograghy Magazine
스리체어스 편집부 엮음 / 스리체어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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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체어스 편집부 (엮은이) | 스리체어스 | 2015-12-22

 

 

 남겨진 생각들

 

 당연한 얘기지만, 세상엔 제각기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속된 말로 '무언가에 미쳐 사는' 사람들도 무척이나 많다. 그 무언가를 개인적인 기준으로 '이해할 수 있음'과 '이해할 수 없음'의 범주로 나눌 수 있다면, 산악인의 경우 '등산'은 전자에 '고산 등정(登頂)'은 후자에 해당한다. 산, 그 자체에 매료되어 취미로 산행하고, 맑은 공기를 마시며, 정상을 오르는 짜릿함을 느끼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혹은 경험하기도 싫은 '고산 등정(登頂)'은 내 기준으로선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우리나라에 있는 산들보다 몇 배는 더 높은, 세계의 고산들을 온갖 고통과 재해에 맞서 오르는 것은 분명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물론 산을 맨 걸음으로 올라본 적도 없고, 그저 케이블카에 타서 정상으로 곧장 올라가 사진만 찍을 줄 아는 나이니 뭘 알겠는가. '산'이라는 것은 내 일상에서 동떨어진, 가까이할 수 없고 그저 경치로만 존재하는 것일 뿐이었다. 그러니 산악인들에 대해서도 평소에 관심이 없을 수밖에 없었고, 어떤 프로그램에 누군가가 등장하면 반짝 관심을 보이다가 금세 사그라지기 일쑤였다. 그러나 『바이오그래피 매거진』 7호, 엄홍길 편을 읽고 나선 꽤 길게 여운이 남아 있다.

 

 

 

 그동안 정치, 문화, 과학 등 다방면의 인물들을 조명했던 『바이오그래피 매거진』이 이번 호에서는 산악인 '엄홍길'을 주인공으로 삼았다. 영화 『히말라야』의 개봉으로 산악인들의 관심이 살짝 힘을 얻고 있는 찰나였다. 히말라야 14좌를 세계 8번째로 등정한 우리나라 산악인 '엄홍길'을 대표하여, 산악인들의 인생과 다양한 것들을 담았다.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히말라야 14좌, 그리고 위성봉이라 불리는 2좌를 설명하기도 하고, 고산 등반의 상세한 방법들을 소개하기도 한다. 모르는 부분이 많았던 일인만큼, 새롭게 알게 된 사실들도 많았다. 산을 오르는 것도 다양한 방법이 있다는 것, 등정주의와 등로주의로 나뉜다는 것, 비용도 만만찮게 들어간다는 것, 업체로부터 후원을 받는다는 것. 그저 개인적인 도전이라고만 여겼던 등정이 이렇듯 많은 요건을 끼고 있을 줄은 상상을 못 했다.

 

 

 생각했던 것만큼 고난이 가득했던 그의 완등 기록을 살펴보며 상상 속에서 오들오들 떨리는 발을 부여잡고 쉽지 않은 독서를 계속해야 했다. 죽음과 고독, 공포, 그리고 환희, 글로 보는 것보다 더 혹독하고 광포한 산에 '미쳐 사는' 그의 마음이 이해가 될 것 같기도 하고, 알면 알수록 더욱 이해가 가지 않기도 한다. 『바이오그래피 매거진』은 역시 특유의 서술과 구성으로, '엄홍길'이라는 인물에 대한 평가를 독자에게 넘기고 있다.

 내가 느낀 그는, 정신력이 무척 강한 사람인 것 같다. 실제로는 순하디순한 사람이지만, 산에 올라가면 다른 사람으로 돌변한다는 동료의 인터뷰를 보고는 그의 성격이 또 다르게 느껴지기도 했다. 산에 올라가면, 오로지 신성한 산만 보고 거침없이 오르는 저돌적이고 냉정한 사람인 것 같기도 하고, 목표에 대한 의지가 무척이나 강한 사람 같기도 하다. 그와 함께한 동료와 셰르파들의 죽음이 여럿 있었다는 사실에 관하여 사람들은 그의 저돌적인 스타일을 비판하기도 하지만, 고산의 상황이란 개인의 안위를 살피기에도 어려운 것이니 절대 다른 이들의 죽음에 그를 탓할 수는 없을 것이다.

​ 영화 <히말라야>의 소재로도 쓰였던 故 박무택 대원의 시신 수습 과정도 상세하게 나와 있다. 개인의 목숨을 부지하기도 힘든, 눈 덮인 고산에서 누군가의 시신을 수습해온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라는데, 그는 해냈다. 대단한 사람이다. 산에서의 그의 모습이 어떠했든, 진심이 담긴 이 숭고한 등반에 고개가 숙여진다.

 

 

​ 이 책을 읽다 보니 뜬금없이 '셰르파'라는 존재에 대해 더욱 마음이 갔다. 기록은 다른 이들에게 넘겨주고, 죽음의 위험 속에서도 무거운 짐을 인 채, 길잡이 역할을 하는 그들. 이름을 남길 수 없는 그들의 족적이 궁금해진다. 셰르파를 소재로 한 책이 어디 없을까, 찾아봐야겠다.

​ 끝으로, 등반을 인생에 비유한 『바이오그래피 매거진』의 서문을 발췌한다. 책의 처음을 장식하고 있는 이 책의 서문은 언제나 가슴을 울린다.

​입학과 졸업, 취업과 승진, 결혼과 출산, 인생의 고비마다 우리는 크고 작은 목표를 세운다. 대체로 일의 형편이나 과정보다는 출발점을 겨냥한다. 우리는 기껏해야 출발하는 장소에 도착하기 위해 애면글면한다. 그리고 정상에 오르면 만사를 작파한다. 언젠가 내려가야 한다는 생각은 좀처럼 하지 않는다. 여기에 비극이 있다. 정상은 오래 머물 곳이 못 된다. 폭양이 내리쬐고, 바람이 휘몰아치고, 몇 사람이 서 있기도 힘들 만큼 비좁다. 대저 정상은 머물기 위한 곳이 아니라 거쳐 가는 곳이며, 내려가기 위해 올라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입생과 신입사원과 배우자와 부모가 되기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정작 어려운 건 성실한 학생과 뛰어난 사원과 훌륭한 배우자와 인자한 부모가 되는 일이다. 다시 산에 빗대자면 정상에서 자격을 득하고 하산길에서 책임을 완수하는 것이다. 정상 정복이 아니라 오르고 내려가는 과정이 인생길의 목적이 되어야 하는 이유다. - Word by Lee Yeondae, Publisher.

 

 

Written By. 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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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앤드루 포터 지음, 김이선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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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루 포터 (지은이), 김이선 (옮긴이) | 21세기북스 | 2011년 3월 | 원제 The Theory of Light and Matter

 

 

 남겨진 생각들  

 

 

 제목을 보면 과학책인 것 같지만, 과학책은 아니다. 그렇다고 과학과 관련이 없는 것도 아니다. 옮긴이에 의하면, '리처드 파인만'의 과학 이론 중 하나인 <양자 전기 역학 : 빛과 물질에 관한 이상한 이론>이란 게 존재했다고 한다. 그 내용은 이렇다. "어느 누구도 빛 입자가 자신의 경로를 선택하는 과정을 알지 못하며, 특정 입자의 경로를 예측할 수 없다." 나는 이 글을 볼 때까지 과학에 해당하는 어떤 지식의 문장이, 인생에 대입할 수 있다는 것을 상상도 하지 못했다.

 

 

 예측할 수 없는 인생을 다루는 소설들은 많다. 살면서 벌어지는 불가피한 우연들, 그것에 대처하는 다양한 방식들을 많은 소설이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그 묘사의 방식은 작가마다 문체마다 현저히 다른데, 작가 '앤드류 포터'의 방식은 무척 특이하다. 어두운듯하면서도 온전히 까만색은 아니고, 밝게 빛나고 있지는 않다. 시간이 흘러 지나갔지만, 지워지지 않는 기억들을 회상하는 방식이 그렇다. 길을 걸어가다 숨겨져 있던 구렁 속으로 빠지듯 아무렇지 않은 일상에서 떠오르는 서늘한 기억들을 (「구멍」), 그와 같이 어떤 사물 혹은 글자로 순간의 선택에 대한 당위성을 찾아갔던 기억 (「코요테」) 을, 작가는 부드러운 손길로 건져낸다.

 후회는 필연적으로 우리 곁에 다가온다. 후회 없는 인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소설들은 흘러간 것을 그리워하거나 되돌리고 싶다는 것보다는 그저 응시하고 있다. 누군가의 삶에서 빠질 수 없는 '또 다른 누군가'와의 관계 속에서도, 얼마만큼의 개입이 필요한 것인지 (「아술」) , 그것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알면서도 행하게 되었던 미련한 모든 일과 자기방어에 대하여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느꼈던 것을 응시하며, 아주 건조한 말투로 그려낸다. 후회가 남은 기억들은 현재에 와서야 아주 큰 타격으로 우리의 일상을 내리친다. "그럴 때마다 발을 디디는 곳을 보지 않았던, 아래쪽에 무엇이 있는지 염두에조차 두지 않았던 우리의 대책 없음에, 우리의 눈먼 행동에 아직도 몸이 떨려온다." (「외출」) 그때는 대단치 않다고 생각했던 모든 순간의 말과 행동들이, 삶에 이면 속에서 툭 하고 발견되는 것이다. 그러한 움직임을 느껴보지 않은 이들은 아마 없을 것이기에, 이 소설들은 마음 속으로 깊이 다가온다.

 

 

 그러나 어딘가 싸한 이야기들이 어둠 속에서 빠져나와 빛나는 어떤 것으로 환기되는 것은 이런 부분들이다. "그 불빛, 자동차,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집으로 돌아오고 있음을 안다는 그것은." (「폭풍」), 혹은 "돌아왔네", "돌아왔어" (「코요테」)의 대화들 속에서, 툭툭 털어내는 손짓을 우리는 본다.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회상 속에서도, 그때의 기억을 품을지라도 그것에 끔찍해 하며 살아가기에는 이미 많은 시간이 지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흘러가는 시간을 어쩔 수 없음을, 지나간 기억을 바꿀 수는 없음을 인지하고.

 

 

 끊어 읽어도 좋은 '단편'들이지만,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은 처음부터 끝까지 쭉 읽어내도 좋을 것이다. 단편과 단편이 비슷한 부분으로 연결되고, 마지막 문장들은 그저 책을 덮어버릴 순 없게 만드는 진한 여운들이 있다. 이제는 책장에 쏘옥 박혀 있는 그의 신작 장편 『어떤 날들』을 읽어봐도 좋을 듯하다.

 

 

괜찮을 거야.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지만 나는 내 품에 안긴 그녀의 몸이 떨리는 것을 느낀다. 나는 그녀가 아술에 대해, 이제 그 아이에게 벌어질 일에 대해, 그 아이의 부모에 대해 해야할 말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나는 자기 집 부엌에 서 있는 그 아이의 아버지, 전화기 너머로 멀게 들려올 그의 목소리를 상상한다. 괜찮을 거야, 나는 다시 말한다. 그냥 찰과상이야. 그러나 나는 뻣뻣하게 굳어버린 그녀의 척추를, 등의 긴장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렇게 몇 분여를 보낸 후에야 우리는 마침내 뒤돌아 우리의 지나간 행동을 직면한다. (89쪽, 아술)


나는 그 순간, 그제야 우리 사이에 지금껏 말을 넘어선 교감이 존재했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존재하리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나는 그때 그가 너무나 쉽게 나를 이해해버리는 것 같아 화가 났지만, 그가 훗날 내게 그랬다. 만약 내가 정말로 모든 일을 끝내고 싶었다면 자기에게 전화를 하거나 편지를 쓰는 것으로 끝을 보았을 것이라고, 자신의 아파트로 직접 찾아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그러나 그날 밤 그의 아파트 밖 거리에 서 있을 때 나는 내가 그와의 모든 것을 끝내고 싶어 한다고 믿었다. 그렇게 믿은 것은 그래야 옳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진정 내가 원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그가 내게 그런 물음을 던지고 나를 바라봤을 때 내가 대답하지 않은 것은 고집이거나 고의적인 거부가 아니었다. 그가 그 순간, 내가 나 자신을 이해하는 것보다 나를 더 잘 이해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122쪽,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태너와 내게는 좋은 여름이었다. 최고의 여름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금요일 밤이 오기 전까진 거의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었다. 푹푹 찌는 날씨 탓에 낮에는 집 안에 틀어박혀 공포 영화를 보고 아이스티를 들이부었으며, 밤이면 태너가 모는 트럭을 타고 다니면서 돌아오는 금요일에 할 일을 계획했다. 우리가 시간을, 인생을 허비하고 있다고 부모님들은 말했는데, 그것은 기분 좋은 일이지 싶었다. 내년이면 고등학교 졸업반이 될 터였기 때문에 벌써 우리는, 우리가 별 볼일 없는 정점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자각하고 있었다. 그 여름은, 우리가 아직 용돈을 받고 일자리를 얻지 않아도 될 만큼 어릴 수 있는 마지막 여름이었다. (174쪽, 외출)

잠시 나는, 어린 시절 그곳에 앉아 아버지가 일터에서 돌아오기를 디라디너 지난날의 늦여름 오후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언덕 아래로 아버지의 자동차 전조등 불빛이 보일 때 누나가 미소짓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소박한 기쁨처럼 보였다. 그 불빛, 자동차,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집으로 돌아오고 있음을 안다는 그것은. (251쪽, 폭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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