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시끄러운 고독
보후밀 흐라발 지음, 이창실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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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게 뭔 쓸모가 있어?" 딱 그렇게 말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이런 식의 말이었다. 가까운 사람에게 듣는 이 말은 살짝 충격이긴 했지만 내가 기분 나빠할까 봐 주저하는 어조가 느껴져서 뭐라 할 수가 없었다. 반박할 타이밍도 없었고, 반박할만한 것도 아니었다. 이미 언제든 예상했던 말이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나에 대해서 한 말이었다. 나는 온전히 자신의 것이 아닌, 남의 책을 읽고 수없이 끄적인다. 그렇다고 어떤 상을 받는 것도 아니고 좋아하는 것을 하는 취미에 불과하다. 이런 쓸모없어 (보이는) 일을 왜 하는지 나도 가끔은 답하기 힘들다. 어느 날 갑자기 강렬한 충동으로 찾아온 어떤 목적을 위해 읽게 될지도 모르고, 별것 아닌 이 행위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지만, 일단은 자연스럽게 내 생활의 일부가 돼버려 시간에 쫓길지언정 절대로 끊을 수는 없게 되었다.

 


 나는 근사한 문장을 통째로 쪼아 사탕처럼 빨아먹고, 작은 잔에 든 리큐어처럼 홀짝대며 음미한다. 사상이 내 안에 알코올처럼 녹아들 때까지. 문장은 천천히 스며들어 나의 뇌와 심장을 적실 뿐 아니라 혈관 깊숙이 모세혈관까지 비집고 들어온다. 그런 식으로 나는 단 한 달 만에 2톤의 책을 압축한다. (10쪽)

 


 고작 몇 년 되지 않은 이 행위를 『너무 시끄러운 고독』 속의 '한탸'와 비교하면 나는 너무나 초라해진다. 삼십오 년 동안 폐지압축공으로 일해온 한탸는 어둡고 답답한 지하실에서 다양한 형태의 폐지를 압축한다. 그러나 매일 트럭에 실려 들어오는 꾸러미 속에는 빛나는 것들이 있다. "꾸러미마다 한복판에 『파우스트』나 『돈 카를로스』 같은 책이 활짝 펼쳐진 채 들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세상에 나뿐이다. (15쪽)" 그는 놀랍게 현존하는 '쓰레기 더미 속의 문학작품'을 정리하느라 쌓여버린 폐지 더미들에 소장에게 핀잔을 들으면서도 멈출 수 없다. 전쟁과 나치 시대, 비밀스럽게 들어온 책을 읽을 수 있는 것도 오직 그뿐이다. 그 아름다운 세계를. 압축기에 눌려 존재를 잃게 될 문학들을 만나는 그의 행위는 너무나 숭고하다.

 


 조용하고 구석진 지하실의 고독을 선택한 한탸에게, 우연히 만난 책의 세상은 시끌벅적하다. 세상이 고독하다는 것을 알게 해준 압축기, 세상이 시끌벅적하지만 달콤하다는 것을 알게 해준 책은 그의 삶 그 자체다. 이 삶이 무너졌을 때의 순간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내용이 짧은 만큼 다른 시각으로 해석할 여지도 충분히 있는 책이지만, 나는 한탸의 삶(어쩌면 작가의 삶이었을)에 진한 연민을 보내며 그의 '러브스토리'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체코라는 나라와 전쟁 등 끝없는 억압 속에서, 꿋꿋이 체코어로 책을 써온 작가의 삶이 소설로 현현된 것이었을지도.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주인공의 삶에 매료될 것이다.

 "프로그레수스 아드 오리기넴 (근원으로의 전진)과 '레그레수스 아드 푸투룸 (미래로의 후퇴)", 행복이라는 불행, 너무 시끄러운 고독! 온갖 모순된 것들을 따져보기에 인생은 무지 짧다. 사라질 것들에 슬퍼하고, 비록 일상은 힘들지라도 소중한 것들에 기뻐하는 순간들이기를.

 

 

 

69쪽,
내가 보는 세상만사는 동시성을 띤 왕복운동으로 활기를 띤다. 일제히 전진하는가 싶다가도 느닷없이 후퇴한다. 대장간 풀무가 그렇고, 붉은색과 녹색 버튼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내 압축기가 그렇다. 만사는 절룩거리며 반대 방향으로 기울어지는데, 그 덕분에 세상은 절름발이 신세를 면하게 된다.

80쪽,
그녀가 치맛자락에 빵 부스러기를 모아 담아 경건한 몸짓으로 불속에 던져 넣었다. 그러고 나면 우리는 불이 모두 꺼진 방안에 누워 천장에 눈길을 고정한 채 빛과 그림자가 춤추듯 일렁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탁자 위에 놓인 맥주 단지를 집어들라치면 해초와 수중식물로 가득한 수족관에 와 있는 기분이었다. 아니면 보름달 밤에 깊은 숲속에서 흔들리는 그림자들과 함께 있는 듯한 느낌이랄까. 나는 맥주를 마시며 알몸의 집시 여자를 바라보았고, 그녀는 흰자위가 반짝이는 눈으로 내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88쪽,
폐지 더미 속에서 희귀한 서적의 책등과 표지를 발견하는 그 놀라운 순간이 내게는 언제나 축제나 다름없었는데 말이다. 그 즉시 책을 집어들지는 않았다. 플란넬 헝겊을 집어들고 우선 내 압축기의 굴대를 닦은 뒤 내 힘을 다스리며 종이 더미를 흘끗 바라보았다. 그러고 나서야 그 멋진 책을 펼쳐 들면, 제대 앞에 선 신부新婦의 부케처럼 책이 내 손가락 사이에서 떨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127쪽,
나는 이러고 있는 게 좋다. 저녁 시간에 레트나 대로를 걸어다니는 게 좋다. 공원 냄새, 싱그러운 풀과 나뭇잎 냄새가 강물에 실려와 이제 도로 위에 떠돈다. 나는 ‘부베니체크‘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맥주 한 잔을 시킨 뒤 멍하니 앉아 있다…… 2톤의 책이 잠든 내 머리를 위협하며 호시탐탐 나를 덮치려고 한다. 스스로 걸어놓은 다모클레스의 검이다. 나는 형편없는 성적표를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아이다. 술잔 안의 거품이 도깨비불처럼 표면 위로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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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개를 베다
윤성희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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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도 변함없이 어제와 같았던 것들을 생각한다. 그리고 어제와 달라진 것들을 생각한다. 시큰한 눈에 안경 대신 렌즈를 끼면서 시야가 맑아질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 하는 것. 키보드 커버 속에 먼지가 어떻게 앉았는지 의아해하면서 어떻게 닦을지를 고민하는 것. 책장에 채워진 책을 눈대중으로 세면서 내가 이 책을 다 읽을 수 있는 날을 상상하는 것. 부드럽고 푹신한 베개를 접어서 목 뒤에 넣어 눕고 오늘 있었던 일과, 먹었던 반찬들과 나눴던 대화들과 감정들을 회상하는 것.

 이런 사소한 것들을 소재로 소설을 만들기란 어떨까. 공교롭게도 나는 최근에 평범한 소재로 평범한 일상을 이야기하는 소설을 두 권 읽었었는데, 윤성희의 『베개를 베다』를 읽고 나서 - 단순 취향일지도 모르지만 - 이야기와 작가의 역량으로 만들어진 한 끗 차이를 경험할 수 있었다.


 사실 내게 있던 편견은 소설이란 무엇인가 특별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건 독자의 입장이지만). 이야기든 컨셉이든 문장이든 무엇인가 독특한 연출이 필요한 것이라 여겼다. 그래야 재미가 있고 공감을 사며 독자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윤성희의 소설을 처음 만나는 느낌은 살짝 쇼크였다. 그것은 이 소설이 아주 특이한 것을 지니고 있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평범하고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쉴 새 없이 내뱉는 이 이야기가 오히려 독특함을 자아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저 그렇게 흘러가는 평범한 일상들을 세밀하고 빽빽하게, 이를테면 엄마와 백숙을 먹으며 했던 말들 ('못생겼다고 말해줘')과 낮술을 먹고 잠에서 깨 창밖에 있는 아이들을 세는 모습들과 ('베개를 베다') 놀러 온 친구와 무엇을 먹고 무엇을 인터넷으로 검색하는 ('모서리') 것들 같은, 도무지 특별하다고 볼 수 없는 아주 평범한 일상들을 소설은 그린다. 그것이 지루하지 않고 너무도 편안하고 아름답게 읽히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지만, 소설의 백미는 또 있다. 담담한 일상 속에 잔금처럼 그어져 있는 상처들이 감춰져 있다가 드러나는 순간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쓸데없는 짓을 하면서 행복해하는지 알면 깜짝 놀랄 거예요." (87쪽, 휴가)

"난 김민수가 괴롭힐 때마다 스머프 엉덩이를 상상했어." (139쪽, 팔 길이만큼의 세계)

"새벽은 어제와 오늘이 겹쳐지는 시간. 그래서 그 시간에 술이 가장 맛있는 거야." (201쪽, 모서리)


 어떤 고통스러운 순간이 있어도 시간이 지나 잊어가며 살아가듯이, 그 순간들이 떠올라도 꾹꾹 참고 견디며 살아가듯이. 그저 남에게는 별일 없이 사는 사람처럼, 살아가는 모습들이 따뜻하게 다가왔다. 언니가 쓴 편지보다 형부가 쓴 편지가 더 많아진다든가 (50쪽, 못생겼다고 말해줘) 아빠가 처음부터 도망갈 생각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고 말한다거나 (166쪽, 낮술), 그것들이 죽음이나 상실, 그 어떤 부정적인 것들을 의미하더라도 소설은 아주 소소한 장면들로 살아갈 힘을 선물한다. 그리고 멋 부리지 않은 문장들 속에서 돋보이는 예쁜 말들이 위로가 된다.


 끝으로 너무나 공감이 되었던 해설 속 한 문장을 덧붙인다. 그의 소설을 앞으로도 계속 읽을 것을 약속하면서.

 "윤성희의 이야기는 여전히, '소설' '문학' 대신에 '소설적인 것' '문학적인 것'등을 상대할 필요는 없다고 여기는 듯하다. 그가 추구하는 것은 소설이지 소설적인 것이 아니고 문학이지 문학적인 것이 아니다." (271쪽, 해설 - 최대 소설의 기도)

 

 

43쪽, 못생겼다고 말해줘
니가 못생겨서 그래. 언니는 말했다. 니가 더 못생겼어. 내가 말했다. 쌍둥이 자매들이 서로의 얼굴을 보면서 못생겼다고 싸우는 걸 형부는 재미있어했다. 그때마다 형부는 늙으면 더 못생겨질 텐데, 하고 놀렸다. 그건 세상의 곱지 않은 시선을 견디는 우리만의 주문이었다. 넌 너무 못생겼어. 넌 너무 못됐어. 넌 너무 뚱뚱해. 그렇게 둘이 서로에게 욕을 하면서 우리들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62쪽, 날씨 이야기
남편은 늘 늦었고, 나는 밥을 물에 말아 김치랑 먹었다. 대부분 음식들은 먹기도 전에 유통기한이 지나버렸고 나는 미련없이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러곤 다시 장을 봐서 냉장고를 채웠다. 네번째로 자동차 키를 잃어버린 날, 나는 자동차 바퀴를 걷어차며 화풀이를 했다.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았는데 실패한 기분이 들었다. 실패를 한 적이 없어서 실패한 기분이 들었다.

122쪽, 베개를 베다
나는 장롱을 뒤져 베개를 찾았다.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굳이 말을 하자면 세제 냄새가 났다. 베갯잇을 벗겨보니 침으로 얼룩진 자국들이 보였다.그제야 내 베개라는 생각이 들었다. 베개를 베다. 내가 좋아하는 말이었다. 받아쓰기를 할 때 나는 아들에게 종종 그 문제를 내곤 했다. 아들은 꼭 베게를 베다, 라고 썼다. 나는 거실에 누워 베개를 베다, 라고 중얼거렸다. 그러면 잠이 왔다. 마법의 주문처럼.

200쪽, 모서리
내가 찍은 사진과 사촌형의 사진을 번갈아 보던 조가 물었다. 그런데 누구야? 나는 우리 집안에서 가장 똑똑했던 사람이라고 말해주었다. 몇 살인데? 스물일곱. 그러자 조가 우리랑 동갑이야? 하고 물었다. 바보. 흑백사진을 보고도 동갑이란 말이 나오다니. 아니. 스물일곱이었어. 이 사진을 찍었을 때. 그러자 조가 사진을 들고는 가로등 아래로 갔다. 가로등 아래에 서서 조는 사진을 오랫동안 들여다보았다. 그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다 나도 모르게 울컥 눈물이 났다. 그리고 이유 없이 눈물이 나는 내가 창피해서 눈사람을 발로 걷어찼다. 얼었다 녹았다 다시 언 눈사람은 부서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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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어루만지다
김사인 엮음, 김정욱 사진 / 비(도서출판b)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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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아직 모르고 읽는다. 하나의 시에 머무르다가 어떤 감흥이 오지 않으면 다음 시로 넘어가고, 그것을 계속 반복한다. 그러다가 좋은 시를 만난다. 좋은 시라는 느낌은 때로 한 단어에서, 한 문장에서, 문장을 나열한 행간에서 올 때도 있다. 그런 느낌을 받으면 시인이 단어 하나하나 어떤 마음을 가지고 배치했는지 상상해보기도 한다 (줄곧 이 상상은 아주 짧은 순간에 멈춰버리곤 하지만). 이때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시를 어떻게 읽는지 궁금해진다. 나처럼 읽을까. 아니면 좀 더 구체적인 방법으로, 더 세밀하게 따져보며 읽을까.


 그럴 때마다 시에 관한 해석을 엿볼 수 있는 책을 들춰본다. 좋은 시에 좋은 해석까지 볼 수 있는 금상첨화지만, 이런 책들은 글쓴이의 해석에 갇혀 그 너머를 볼 수 없다는 함정도 있다. 김사인 시인의 시 해설집 『시를 어루만지다』는 이 함정이 비교적 큰 편이었다. 페이지 양면에, 왼쪽엔 시, 오른쪽엔 시인의 해설이 정직하게도 딱딱 붙어있다. 시인의 해석이 궁금하지만, 생각을 열어두기 위해서 오른쪽으로 눈을 돌리는 것을 꾹 참아야 한다. 이런 함정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끝까지 즐겁게 읽었던 것은, 첫째로 시인의 해석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었고, 둘째로, 그가 뽑은 시들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었다.

 

풀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 <묵화墨畵> 김종삼


 책에는 대개 현대시보다는 그 이전의 시를 담았으며, 이름만 들어도 알 듯한 시인의 시도 어느 정도 배제했음을 밝히고 있다. 시인의 입맛대로 뽑은 시라 모든 이들에게 좋을 리는 만무하지만, 이제 막 시를 알기 시작한 내게는 여태껏 이름을 들어보지도 못한 생소한 시인과 시의 향연이 너무도 즐겁게 여겨졌다. 언젠가 꼭 읽어보리라 다짐했던 김종삼 시인의 시가 유독 눈에 띄었던 것도 행운이었다. 그런 시에 붙은 해설은 역시나 주옥같았다. '시를 어루만지다'라는 제목은 시에 대한 김사인 시인의 생각을 어느 정도 내보이고 있는데, 그는 책의 전반부에 '시에게 가는 길'이라는 이름으로 시를 읽는 준비를 함께 다한다.


 이것을 제대로 신기해하는 일, 그 힘의 정체를 진심으로 궁금해하는 일이 시를 만나러 가는 첫 걸음이다. 수천 년에 걸쳐 축적된 시에 대한 많은 지식들 - 시는 이런 것이다, 또는 저런 것이다 하는 온갖 정의들이며, 정형시, 자유시, 운율, 이미지 등을 동원한 시에 대한 갖가지 분류, 설명, 분석 등 - 이 실은 모두 이 불가사의한 힘에 대한 궁금증의 결과들이다. 그러니 시라는 현상에 닿고자 한다면 선무당 사람 잡는 어설픈 외국이론이나 '유식'에 기대기 전에 이 소박한 물음을 제대로 간직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16쪽)


 그는 또한 '매직 아이'를 언급하면서 시 읽기는 "언어들을 2차원의 평면에서 일으켜 세워야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로써 새로운 세계를 마주하게 된다는 것이다. 온갖 자유로운 시들이 쏟아져 나오고 시라는 장르의 경계가 불분명해지는 시대에, '시에게 가는 길'이라는 이 책의 도입부가 다소 거창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담은 시와 해설들을 끝까지 읽고 나면 알게 된다. 이 책은 시를 평하거나 어떻게 읽느냐를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제목 그대로 시를 어루만지고 사랑하는 시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걸.


 무엇인가 놓치거나 지나쳤다고 두려워하지 말 것. 그대로 즐기되, 2차원의 평면에서만 머무르지 말 것. 책을 읽고 드는 생각이지만 이것은 단연 시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모든 문학에 해당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도 든다.

 

 

7쪽,
지난 20년 동안 대체로 나는, 시 쓰기는 제 할 말을 위해 말을 잘 ‘사용하는‘ 또는 ‘부리는‘ 데 있지 않다고 말해왔다. 시공부는 말과 마음을 잘 ‘섬기는‘ 데에 있고, 이 삶과 세계를 잘 받들어 치르는 데 있다고 말해왔다. 그러므로 종교와 과학과 시의 뿌리가 다르지 않으며, 시의 기술은 곧 사랑의 기술이요 삶의 기술이라고 말해왔다.
생각건대 쓰기뿐 아니라 읽기 역시 다르지 않아, 사랑이 투입되지 않으면 시는 읽힐 수 없다. 마치 전기를 투입하지 않으면 음반을 들을 수 없는 것처럼. 그러므로 단언하자면 시 쓰기와 똑같은 무게로 시 읽기 역시 진검승부인 것이며, 시를 읽으려는 이라면 앞에 놓인 시의 겉이 ‘진부한 서정시‘ 이건 ‘생경한 전위시‘ 이건 다만 사랑의 절실성과 삶의 생생함이란 더 깊은 준거 위에서 일이관지하고자 애쓰는 것이 마땅하다.

37쪽, <墨畵> 김종삼
‘이 하루도‘는, ‘오늘 하루도‘나 ‘오늘도‘와 같지 않다. 모래를 씹듯 꾸역꾸역 나날을 넘기는 이의 쓰디씀과 고독함이 어려 있는 발화, 그 쓰디씀에 대비되어 이어지는 ‘함께 지남‘이 더 눈물겨운 것이다.

117쪽, <참 좋은 저녁이야> 김남호
멀리서 가까이서 죽음의 소식들은 쉼 없이 들려온다. 그 소식들 앞에서의 무력감과 허망함 곁에 이 시를 놓아본다. 정색의 비장과 진지함, 또는 익숙한 탈속의 포즈와 선미가 아니라, 위악과 자조가 섞일망정 비애와 허무를 쉬 내색하지 않으려는 이런 장난기 쪽에 차라리 희망이 좀 더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149쪽, <장마통> 박구경
아마도 말들은, 결코 요란하지 않으면서 저를 세심하게, 중하게 대하는 이런 시인을 좋아할 것 같다. 제 할 말이 바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래도 말들이 지닌 표정과 빛깔과 한숨 같은 것을 우선 보고 듣고자 애쓰는, 그런 이를 말들은 더 따르지 않을까. 그런 시인들은 소박해 보이지만 예민하고 적확해서, 무엇에도 양보할 리 없는 언어에 대한 확신과 긍지로 차 있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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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창비시선 394
송경동 지음 / 창비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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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선이다. 어떤 방향 전환도 없이 곧게 뻗는다. 이 시집을 읽고 이런 생각을 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곧게 뻗어 밀고 들어오는 시집은 처음인지, 오랜만인건지 모르겠다. 숨이 막히고 힘이 빠지는, 이 직설적인 시들을 겨우겨우 읽어나갔다.


 그동안 아름다운 시의 문장들을 극찬하던 날들이 떠올랐다. 내 현실은 그리 고통스럽지 않아서 아름다운 것에 자연스럽게 취해 지냈는데, 그 뒤에 이런 시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철거촌, 공장, 망루, 철 구조물에서 쓴 시들이다. 말 그대로 노동과 저항의 시들이다. 부서지고 밟히고 눈물지으면서도, 그것에 짓눌리지 않으려고 쓴 시들이다. 아마도 이것은 현실이다. 내 일상에 가려져 보지 못했던, 만약 발견하더라도 금세 내 일이 아니라고,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외면해버릴.


이제라도

바람에 휙 날려갈 수 있는 가벼운 모자를 하나

찡긋 윙크하며 깔깔깔 웃을 수 있는 즐거운 모자를 하나

한없이 건방져 보이거나 시크해 보이는 모자를 하나

언제라도 표표히 떠날 수 있는 유목민의 모자를 하나 (65쪽, 모자를 쓰고 싶었다)


 이윤과 권력으로 법외에 내몰린 사람들을 위해 이십여 년 동안 거리에서 싸워온 시인은, 올곧은 마음이 속절없이 흔들릴 때가 있다. 파도처럼 끝없이 철썩이고 몰아치는 밤샘 취조실에서 시인은 가장 아프고 서글프다. 사적인 삶이 없다고 말하는 주변인의 말에 뭐라고 답할 기운도 없다. 그런데도 그는 다시 현실로, 거리로 돌아간다. 지금 이 삶이, 짭짤하니 좋다고 한다. '한여름 뙤약볕에서 지하층 바라실'에서 나와 죽지 않기 위해 먹었던 굵고 짭짤한 소금의 맛 ('소금과 나트륨의 차이')을 생각한다. 어린 시절에 읽던 '마지막 잎새' ('마지막 잎새')를 생각한다. 그는 아직 희망을 놓지 않으려 한다.


나는 한국인이다 / 아니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 나는 송경동이다 / 아니 나는 송경동이 아니다 / 나는 피룬이며 파비며 폭이며 세론이며 / 파르빈 악타르다 / 수없이 많은 이름이며 / 수없이 많은 무지이며 아픔이며 고통이며 절망이며 / 치욕이며 구경이며 기다림이며 월담이며 / 다시 쓰러짐이며 다시 일어섬이며 / 국경을 넘어선 폭동이며 연대이며 / 투쟁이며 항쟁이다 (102쪽,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그러나 이 희망은 그가 한국인임을 자각할 때, 이따금 무너져내리곤 한다. 캄보디아와 방글라데시, 중국, 베트남 등에서 비겁한 권력을 휘두르는 한국의 거대 자본 앞에서, 그가 했던 투쟁과 항쟁, 그리고 그의 이름과 정체성에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한국인으로서 한국 땅에서 싸웠던 그는 누구인가. 그리고 또 다른 땅에서 또 다른 이들에게 모멸감을 주는 이들은 누구인가. 책의 중간쯤에 배치된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라는 시에선 참아왔던 모든 감정이 절정으로 치닫는다. 그렇게 치닫기까지의 과정은 지금껏 내가 느껴보지 못한 것이기에 가슴이 뜨거워진다.


11쪽, 고귀한 유산
우리가 스스로 선택해 내릴 수 있는
생의 정거장은 의외로 많지 않다

21쪽, 시인과 죄수
부디 내가 더 많은 소환장과
체포영장과 구속영장의 주인이 되기를
어떤 위대한 시보다
더 넓고 큰 죄 짓기를 마다하지 않기를

60쪽, 국가, 결격사유서
그런데도 낡지 않는 것은 약속이다 / 검은 머리 파뿌리가 되도록 살겠다는 약속 / 거기, 우리 모두 부조를 놓고 / 갈비탕 한그릇씩 비우고 왔다는 약속 / 언제 오느냐는 전화 어디냐는 전화 / 아이는 찾았느냐는 전화 그랬다는 전화 / 들어온다 한 지가 언제냐는 전화 / 말없이 종료 버튼을 누르는 전화

82쪽, 법외 인간들을 찬양함
희한한 세상, 모두 기를 쓰고
법 내로 들어가겠다는데
국가가 나서서 모두를 법외에서 살라 한다

150쪽, 아직은 말을 할 수 있는 나에게
말 없는 당신에게가 아니라 / 아직은 말을 할 수 있는 나에게 / 모든 생을 우리에게 주고 가버린 당신에게가 아니라 / 아직은 살날이 많은 저 아이들에게 / 우리는 무어라고 얘기해야 하나 / 샌들과 지갑을 머리맡에 놓고 / 무슨 좋은 꿈을 꾸는지 / 잊을 만하면 키득키득 웃으며 잠꼬대를 하는 / 아이 방을 몇번이나 드나들며 / 세월이 흘러도 양철북처럼 키가 자라지 않는 당신께 / 참 쓸 수 없는 시 한편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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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여성 시인선 : 슬픔에게 언어를 주자 아티초크 빈티지 시선 13
나혜석.에밀리 디킨슨 외 지음, 공진호 엮고옮김 / 아티초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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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제목은 셰익스피어 『맥베스』에서 인용한 구절에서 비롯되었다. 이는 첫 장부터 큰 활자로 쓰여있다. "슬픔에게 언어를 주오. 말하지 않는 큰 슬픔은 무거운 가슴에게 무너지라고 속삭인다오." 세계 여성 시인들의 시를 모아놓은 이 책 속의 누구도 "슬픔에게 언어를 주오"라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잘 맞아떨어지는 제목이 있을까. 슬픔에겐 언어가 특효약인 것을, 슬픔을 부르짖지 못하면 더 지독한 슬픔으로 침잠해져 가는 것을. 이들은 그렇게 슬픔을 언어로 외쳤다. 고통과 괴로움, 자유와 긍지, 때로는 사랑과 배신을 시詩로 적었다.


 또한, 그동안 '한국 시' 뒤켠에 있었던 국내 여성 시인들의 시가 많이 실려 있다는 것이 특히 눈여겨본 점이었다. 내가 한국의 시와 소설을 끊임없이 읽는 이유, 그리고 한국의 근현대 여성 시인들의 시를 보고 쉽사리 책장을 넘기지 못했던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한恨 때문이다. 슬픔이 담긴 언어가 건드리는 특별한 지점이 있다. 이 책에 등장한 시인 '김명순'의 시는 유독 그러하다.

 


조선아 내가 너를 영결(永訣)할 때

개천가에 고꾸라졌던지 들에 피 뽑았던지

죽은 시체에게라도 더 학대해다오.

그래도 부족하거든

이다음에 나 같은 사람이 나더라도

할 수만 있는 대로 또 학대해 보아라.

그러면 서로 미워하는 우리는 영영 작별된다.

이 사나운 곳아 사나운 곳아.

- <유언> 김명순


 '탄실'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근대 최초의 여성 작가 '김명순'의 시를 읊으면 깊은 슬픔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의 삶을 알고 나면 더욱 애처롭다. 기생의 딸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나쁜 피'라는 이름이 따라다녔고, 성폭력을 당해도 그가 방종한 탓이라고 했다. 당시 놀라운 수준이었던 그의 문학보다는 사생활에 시선이 집중되었다. 함께 글을 쓰던 당대 문인들 또한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한국 문학계에서 떠밀린 그는 죽음조차도 외로웠다. 오죽하면 이렇게 외쳤을까.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원치 않으며 자유로운 인간이 되기를 원한다."

 김명순의 시를 포함한, 『슬픔에게 언어를 주자』 속의 모든 시는 각기 다른 측면으로 가슴을 울렸고, 오래된 역사와 통념에 가려 남성들과 동등하게 주목받지 못했던 여성 시인들의 글이라 왠지 모르게 가슴이 벅차올랐다. 사회와 통념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뒤로 밀려나 있었던 이들의 시를 모아 여성들의 연대를 희망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깊다고 느껴졌다. 라틴 아메리카의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미스트랄'이 했던, "저 여자의 내면에 있는 불은 어떤 것이기에 그녀는 그슬리지도, 연소되지도 않는 걸까?" ('예술' 130쪽) 라는 말처럼, 여성 시인들의 마음속에서 조용히 타오르고 있는 불빛은 뜨겁고 무엇보다 환하게 (언어로) 피어오른 것 같았다. 이들 각자의 시를 더욱 찾아볼 예정이다. 누구보다도 강하게 빛났던 내면의 불씨들이, 누군가가 읽어줌으로써 다시 활활 피어오르기를 고대한다.


 

 

 

73쪽 <녹음> 백국희
소녀의 부끄러움은 오직 붉고 / 그 시절의 꿈만이 가물거린다 //
뻗어가는 찰나는 / 한 점으로 과거와 미래를 이어 . . . //
연홍의 로맨티시즘을 / 초록빛의 현실이 앗았고나


79쪽 <사포의 노래> 크리스티나 로제티
새벽에 한숨짓고, 또 한숨짓네,
찌푸린 하루가 지나갈 때.
저녁에 한숨짓고, 또
한숨짓네, 밤이 잠을 부를 때.
아, 이렇게 슬퍼하고 한숨짓느니, 나 죽어
꿈 없는 죽음의 잠을 자며 날 위해
우는 사람이 없음을 모르는 편이 훨씬 나으리.

110쪽, <‘강이 붉다‘ 곡에 맞춰> 치우 찐
우리는 버릴 것이다,
보석으로 장식된 옷과 기형의 발을.
그리고 언젠가, 하늘 아래 모든 이는
꽃밭의 꽃처럼 피어나는,
훌륭하고 고귀한 아이를 낳는,
아름답고 자유로운 여성을 볼 것이다.

147쪽, <이혼 고백장 - 청구 씨에게> 나혜석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 운명이 어찌될지 모릅니다. 속 마디를 지은 운명이 있습니다. 끊을 수 없는 운명의 철쇄이외다. 그러나 너무 비참한 운명은 왕왕 약한 사람으로 하여금 반역케 합니다. 나는 거의 재기할 기분이 없을 만치 때리고 욕하고 저주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필경은 같은 운명의 줄에 얽히어 없어질지라도 필사의 쟁투에 끌리고 애태우고 괴로워하면서 재기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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