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빙 더 월드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공경희 옮김 / 밝은세상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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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일단, 그냥 살아보는 거야 <리빙 더 월드 - 더글라스 케네디> 

 

 

 


  

 

 

  이전의 어떤 책에서 만난 하워드가 인생의 전환점에서 지혜를 얻고 긍정적인 자세로 살아왔다면, 이 책의 주인공인 '미스 하워드'는 태어날 때부터 거듭되는 불행으로, 인생을 삐딱하게 터덜터덜 살아간다. 그녀가 어릴 때, 무심코 부모앞에서 했던 선언은 부모와 자식간의 응어리가 되고 하워드에게는 공허와 죄책감을 안겨주게 된다. 대학교수의 제자로서, 또는 비밀연애의 대상으로서 학업과 경력, 사랑과 부모와의 관계 속에서 아슬아슬 줄타기하는 듯 살아가는 제인 하워드. 그녀에게 삶은 그리 호락호락하게 쭉 행복한 순간만 주지 않는다. 불행, 절망, 충격, 좌절.. 죽음과 포기까지.. 세상을 사는 것에 대해 두려움과 허무함을 느낄만한 그런 일들이 계속 찾아오게 된다.

 

   도대체 실패와 역경, 좌절 속에서도 우리가 왜 삶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할 것인가. 왜 살아야 하는가. 세상은 나에게 손을 내밀어주지 않는데 내가 왜 항상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할까. 하지만 불행 속 그녀의 선택은 일단, 그냥 살아보는 것이었다. 그래서 제인 하워드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불행한 상황 속에서 안간힘을 쓰며 세상을 넘나 들게 된다. 마음 밑바닥 속에서 끌어올린 그 힘은 처음엔 조금 약했지만 결국 그녀는 자신 스스로 치유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비로소 자신의 어떤 작은 마음가짐과 행동이 인생의 큰 변화를 이끌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리빙 더 월드>는 절망 속에 빠져있는 많은 사람들을 위로할 책임에는 분명하지만, 사실 가끔 등장한 억지스러운 설정은 눈살을 찌푸리게 했고 읽기 힘들게 만들었다. '꼭 이렇게까지 했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이렇게 까지 나락으로 떨어뜨려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런 불행한 설정을 대신 경험하면서 어쨌든 내가 살고 있는 순간에 감사할 그런 느낌은 충분히 들었던 것 같다. 실패에 무게가 있는 건 아니지만 그보다 덜한 힘듦에는 퍽 적응할 수 있겠다는 힘을 얻은 것 같다. 제인 하워드, 그녀도 어쨌든 일어날 수 있었으니까.

 

 

  - 갑자기 그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들 -대중에게 보이는 모습 뒤의 개인적인 슬픔-을 이해할 수 있을 듯했다. 그의 암울한 현실이 인생을 얼마나 바꾸어놓았는지 알 수 있을 듯했다. 그의 분노와 답답한 처지에 대한 하소연을 들으면서 '인생에서 가벼운 짐을 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목적지에 다 와간다고 생각한 순간부터 모든 일이 엇나가기 시작하는 게 바로 인생이라는 생각....... (39p)

 

  - 매서운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해변을 걷다보니 갑자기 엔도르핀이 저절로 솟아나는 것 같았다. 마치 만물에 신성이 깃드는 순간을 경험하는 듯했다. 대자연에 압도적이고 위대한 힘에 저절로 경외심이 느껴졌다. 갑자기 삶의 시름도 저만큼 물러섰다. 어두운 빛깔의 성난 바다가 빚어내는 웅장한 풍경에 잡다한 생각들이 모두 녹아내렸고, 나는 비로소 환희를 느꼈다. 살아 있다는 느낌이 온몸을 관통했다. (145p)

 

  - "옳은 일을 해놓고도 피해를 당해야 한다니 너무 불공평해. 그렇다고 신념을 버리자니 양심이 허락하지 않을 테고. 결국 어떤 선택을 하든 고통스럽기는 마찬가지라는 결론이네. 대단한 모순이지만 분명한 현실이기도 해."

 "왜 내 인생은 상호 모순되는 불운의 연속일까?" "우리는 해야 할 일은 하지 않는다/ 우리는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한다/ 그리고 그 일이 우리를 살아가게 해준다는 생각에 기댄다." (182p)

 

  - 사람들은 흔히 잘못된 관계와 상황을 바로잡고 싶어 한다. 많은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다고 믿는다.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온갖 수수께끼에 반드시 해답이 있다고 믿는다. 개뿔! 현실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상처가 깊으면 치유가 불가능할 수도 있다. (216p)

 

  - 천국은 두려움과 외로움이 존재하지 않는 곳이니까 혼자 있는 걸 겁내지 않을 거라 믿고 싶었다. 천국은 시간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곳이니까 눈 한 번 감았다 뜨고 나면 60년의 세월이 흐르고, 상실감을 극복하지 못한 엄마가 암에 걸려 딸과 재회하게 된다고....... 그렇게 만난 엄마와 딸은 하느님의 자애로운 보살핌 속에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아갈 거라 믿고 싶었다. 하지만 천국의 생은 생이 아니지 않은가? 말 그대로 천국이니까. 실제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곳이니까. 사람들은 어떻게 그 공허한 말을 믿을 수 있을까? 어떻게 그런 개념이 실제로도 존재한다고 설득할 수 있을까? 고통을 덜어주려는 의도는 가상하지만 결국 비참한 희망에 불과한 것을...... 천상이라는 개념을 발견하고 싶다면 브루크너나 바흐의 칸타타를 들으면 된다. 산길에서 하이킹하면 된다. 비행기에 올라 하늘을 누비면 된다. 그 대신 내가 극복하지 못할 상실감에 빠져 있는 동안 사후 세계에서 내 예쁜 딸을 잘 보살펴준다고 설득하려 들지는 말기를....... (404p)

 

 

 

 이 위의 404p 발췌부분은, 좌절감에 휩싸인 사람에게 어떠한 행동이 가장 큰 위로인지 제대로 보여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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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날들
메리 올리버 지음, 민승남 옮김 / 마음산책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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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사소한 전환이 모여 아름다움을 방출하는 <완벽한 날들 - 메리 올리버> 

 

 

 

 

 

  

  자연에 살고 싶은 꿈을 꾼다. 아니 어쩌면 자연에 이미 가깝게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엄마의 헌신으로(전에는 지나친 몰두로만 보였지만) 우리의 집, 아파트 1층의 정원이란 공간은 화초로 가득차 축복을 받은 채 피어나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자연에 대한 애정을 언제쯤 느낄 수 있을까? 자연의 아름다운 것들을 느끼고 그것들을 낙원이라 말할 수 있는 그 때는 언제 올까? 사람들은 아마도 누구나 이런 꿈들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귀농을 권장하는 공익광고, 그리고 쏟아져나오는 힐링이란 주제와 자연주의적 삶. 그러나 이미 너무나 편리하고 기계적인 삶에 익숙해져버린 우리가 쉽게 그 환경을 버리고 반대의 생활로 돌아서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모든 것을 버리고 자연으로 돌아갈 나를 상상해보면 역시 만만치 않은 함정들이 그려진다.

 

  그렇지만 또다시 이러한 모든 함정을 팽개치고 자연에의 삶을 꿈꾸게 하는 책이 있다. 바로 메리 올리버의 <완벽한 날들>. 김연수의 소설에서 <기러기>라는 시가 인용된 적이 있는데, 이 시를 쓴 여류작가가 바로 메리 올리버라는 사람이고 이 책은 한국에서 출판된 그녀의 첫번째 책이다. (그녀는 이미 자국에서는 수십개의 작품을 펴냈고, 퓰리처상도 수상했다.)

 

 

 

 

 김연수 작가가 마음 속 깊은 곳에 혼자만 소유하고 싶었던 메리 올리버의 글. 그녀는 '프로빈스 타운'에서 날마다 자연을 느끼며 찬양한 글들을 묶어 완벽한 날들을 펴냈다. 그녀는 빗소리를 듣고, 바다를 거닐고, 꽃들을 관찰하며, 열쇠구멍 속 거미에게 행운을 빌고, 흰 깃털을 달고 넘쳐흐르는 파도를 감상한다. 그녀에게 그러한 것들은 '경박함, 무관심, 정신과 마음의 부재 같은 못난 기분 상태를 지적해주는 '귀중한 동반자'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차마 말로는 다 표현하지 못할 귀중하고 아름다운 것들, 즉 자연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더불어 자신이 추구하는 미의 가치를 알고 있는 워즈워스, 에머슨, 호손 같은 예술가들의 이야기들을 함께 다루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 그녀가 보고 있는, 그녀가 속해있는 그 풍경, 매일 똑같지만 똑같지 않은 그 풍경을 내가 보는 것처럼 찬란하고 마음 벅찬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사소한 전환과 일상적인 변화로 달라지는 마음의 방랑, 큰 것과 작은 것을 번갈아 좁았다 넓어지는 시야, 경외스러운 느낌을 가지고 쳐다볼 수 있는 눈, 그런 것들을 글로만 가지기에는 아직 아쉽지만, 그녀의 감정이 오롯이 들어간 글에 '완벽한 날들'이란 제목만 보고서도 마음이 충만해지는 것을 느낀다. 내가 살고 있는 세상 속에 이러한 아름다운 공간이 있었을까. 벌레처럼 자그마한 것을 보는 것에 그러한 기쁨이 숨겨져있었을까. 한 줄, 한 줄 읽어나갈 수록 놀라움이 깊어지는 책이다.

 

 

 

   - 낙원에도 규칙은 있어야 한다. 나는 그 규칙들이 신의 솜씨인지 아니면 우연의 산물인지 알지 못한다. 우연조차도 신의 뜻일지도 모르지만 내 생각으론 그 규칙들이 우연의 산물일 것 같다. 훌륭하지도 깔끔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그저 현실적인 정도이며 비생명보다 생명을 추구하기에, 숭고하다. 모든 생명력은 그것의 존재를 장려하는 메커니즘을 지닌다. 장식이나 환영처럼 보이는 것도 순수히 실용적이다. 생명력은 안개나 전기의 엔진에서 나오며 장난스러울 수도 있지만 확신에 차 있다. 그리고 거대한 어깨를 지닌 바닷속 시련에 대비해 다산한다. (20p)

 

  - 그는 늘 자연계의 빛과 고요를 사랑했지만 이제 세상의 괴력과 불가사의에까지, 우리의 이해력을 넘어선 곳에 있는, 뭐라고 이름 붙일 수조차 없는 그 음모들에까지 경의를 표하게 되었다. 그 후로 워즈워스는 분명하고 균형잡힌 풍경을 이룬 응결체들과 기체들의 배열뿐만 아니라 회오리바람도 찬양하게 되었다. 세상의 미와 기묘함은 기운을 돋우는 상쾌함으로 우리의 눈을 채우는 한편 우리 가슴에 공포를 안겨주기도 한다. 세상의 한쪽에는 광휘가, 그 반대쪽에는 심연이 존재한다. (48p)

 

  - 문제는, 삶에서든 글쓰기에 있어서든 이야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혹독한 날씨는 이야기의 완벽한 원천이다. 폭풍우 때 우리는 무언가 해야만 한다. 어디론가 가야만 하고, 거기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 속에서 우리의 마음은 기쁨을 느낀다. 역경, 심지어 비극도 우리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하고 스승이 된다. 우리 모두 도전과 용맹을 찬양한다. 바람 없는 날 단풍나무들이 천개를 길게 드리우고 푸른 하늘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을 때, 어느 향기로운 들판에서 불기 시작한 지 한 시간도 안된 바람이 살그머니 우리를 스치고 지나갈 때, 우리가 하는 건 무엇인가? 너그러운 땅에 누워 편안히 쉬는 것이다. 그리고 잠이 들기 쉽상이다. (62p)

 

  - 여리디여린 아침이여, 안녕./ 오늘 넌 내 가슴에/ 무얼 해줄까?/ 그리고 내 가슴은 얼마나 많은 꿀을 견디고/ 무너질까?

  이건 사소하거나 아무것도 아닌 일 : 달팽이 한 마리가/ 격자 모양 잎들을/ 푸른 나팔 모양 꽃들을 기어오른다.

  분명 온 세상 시계들은/ 요란하게 똑딱거리고 있을 거다./ 나는 그 소리를 듣지 못한다. 달팽이는/ 창백한 뿔을 뻗어 이리저리 흔들며/

  손가락만 한 몸으로 느릿느릿 나아간다/ 점액의 은빛 길을 남기며.

  오, 여리디여린 아침이여, 내 어찌 이걸 깰까?

  내 어찌 달팽이를, 꽃들을 떠날까?/ 내 어찌 내성적이고 야심 찬 삶을 이어갈까? (119p : 여리디여린 아침)

 

 

여러개의 글을 묶은 산문집이라 다소 어렵고 난해한 글이 있기도 하다. 그런데 어려워도, 왠지 계속 읽고 싶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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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의 책읽기]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젊은 날의 책 읽기 - 그 시절 만난 책 한 권이 내 인생의 시계를 바꿔놓았다
김경민 지음 / 쌤앤파커스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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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하고 진심어린, 가벼운 책 길잡이 <젊은 날의 책읽기 - 김경민>

 

 

 

 

 

 

  요즘 들어 '책 목록이 가득 들어있는 책'들을 여러 권 읽게 된다. 이런 책들은 좋은 책 목록과 더불어 그 사람의 책에 대한 생각마저 엿볼 수 있으니 유익하기도 하고 얻을 것이 많다. 대충 그러한 책들에는 어려운 고전들의 목록들이 페이지마다 한 켠에 자리하고 있고 교훈을 주는 이야기들을 인용하여 삶의 대한 자세와 같은 것들을 일깨워준다.  

 

 

    처음에, 내게는 그닥 특별할 것 같지도 않고, 내가 봐왔던 책을 소개하는 책들에게서 특별히 벗어나지도 않을 것 같았던 이 책의 목록을 보고 나니 '왠지 다를 것 같다'는 생각이 스물스물 피어올라오기 시작했다. 일단 책들의 종류가 굉장히 다양했다는 사실이 좋았다. 어려운 고전부터 교양서, 에세이, 영화, 소설, 글쓰기, 연애 소설.. 이런 장르들을 갖고 있는 책들은 나에게 익숙한 제목도 많았지만 평소엔 매력을 느끼지 못했던, 아니면 몰라봤던 책들이어서 놀라움을 더했다. 뭐, 여기까지는 그닥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두번째, 저자의 솔직하고 당당한 성격이 드러나는 '글'은 왠지 묘하게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뭔가가 있었다. 그녀는 책 목록을 통해 뭔가를 가르치거나 교훈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자신이 좋았던 책들을 소개하며 이야기를 이끄는 듯한 느낌이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에서 어려운 책이 나와도, '정말 좋은가?'하고 확신을 가지지 못했던 책에도 위화감을 느낄 새 없이 가볍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이러한 점에서 <젊은 날의 책 읽기>는 정말로 '젊은이'들이 읽는다면 좋을 책이다. 물론 나이에 대한 표현뿐만이 아니다. 청춘을 걷고 있는, 삶의 가르침을 얻을 젊은이 뿐만 아니라, 책에 대한 연륜이 깊지 않은, 말 그대로 독서초보들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이다. 책 목록또한 그리 부담되거나 어려운 것들이 많지 않으니 (단순히 많지 않다는 것. 있기는 있다. 예를 들어 명상록, 오이디푸스 왕 등....) 이 책을 독서 길잡이로 잡아 시작해나간다면 언젠가 독서향기에 물씬 빠져있는 길목에 서있지 않을까. 

 


 

   - 다소 엉뚱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나는 신경숙의 소설을 읽고 있으면 간혹 심수봉의 노래를 듣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심수봉 특유의 목소리가 그러하듯 나에게 신경숙 특유의 문장은 살짝 '퇴행'의 느낌을 준다. 그런데 그것이 적당한 선에서 알맞게 표현되어 감미롭고 따뜻하다. 또한 심수봉 노래가 트로트라기보다는 그냥 '심수봉'노래로 느껴지는 것처럼 신경숙 소설 또한 하나의 독립된 장르 같다. 그냥 '신경숙 소설'이라는 장르로 말이다. (59p)

 

  - 간혹 글깨나 읽고 쓴다고 자부하는 사람들 가운데 그녀 (한비야) 특유의 문체에 반감을 가진 이들이 있지만 난 그녀의 글에서 숨 쉬고 있는 건강함이 좋다. 일단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면 무리 없이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술술 읽힌다. 그녀의 글을 읽노라면 '읽기에 쉬운 글이 쓰기엔 어렵다'는 헤밍웨이의 말이 떠오른다. 글을 쉽게 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써본 사람은 안다. 안타깝게도 자신이 쓴 글이 객관적으로 어느 정도의 가독성이 있는지도 판단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문제지만. (85p)

 

  - 살다보면 '어떤' 사람을 만났느냐 못지않게 그 사람을 '언제' 만났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과거엔 별 느낌이 없었던 것 같은데 지금 보니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사람이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책도 마찬가지다. 언제 읽었느냐가 그 책이 어떤 책이냐 못지 않게 독서의 질을 결정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145p)

 

  - 당시 대학 2학년이었던 나는 학교 도서관 서고를 어슬렁거리다가 우연히 눈에 띈 <풍경과 상처>라는 책을 다른 책 몇 권과 함께 대출해 집에 가져왔고, 늘 하던 대로 자기 전에 누워서 읽을 요량으로 첫 장을 열었다. 그런데 몇 페이지 읽다 말고 나도 모르게 벌떡 몸을 일으켜 똑바로 앉을 수밖에 없었다. 낱낱의 문장들에는 온통 고압 전류가 흐르는 것 같았고, 난 그 자리에서 감전된 느낌이 들었으니까. 그(김훈)의 문체는 그만의 개성과 자의식으로 가득 차 있었고, 그래서 독자들에게는 절대 친절하지 않아보였지만 난 그때 예감했다. 바로 그 순간부터 난 그의 충성스러운 독자가 되리라는 것을. (249p)  

 

 

 

책을 소개하는 에피소드마다 이렇게 책 소개와 함께하고 있어서 세심한 배려가 돋보였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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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 한국사를 조작하고 은폐한 주류 역사학자를 고발한다
이주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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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사실적인, 고쳐묻는 역사해석을 위하여 <한국사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 이주한> 

 

 

 

 

   '이 책은 발칙하다.' 아마도 국사학계를 주름잡고 있는 사람들에는 그렇게 느껴질 것이다. 제목부터 그렇듯이 아예 '대놓고 까는'식으로 논지를 편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인물들의 이름들도 대놓고 이야기한다. 가려져있는 것들에 속 알맹이를 보지 못했던 독자들은 새로운 사실들이 드러남에 통쾌하다. <한국사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역사서이기는 하지만 얘기하려는 것은 '한국 주류 역사학자들 = 식민사학'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렇다면 왜 작가는 '한국사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고 표지부터 엄포를 놓은 것일까. 사실과 역사적 맥락에서 정확한 인식을 추구하는 역사 비평가인 작가는 오늘날의 한국사를 '죽어있다'고 본다. 일본과 중국에 의해서 조작되어지고 은폐된 역사, 그 식민사관이 교묘하게 이어져오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의 스승들을 극진히 따르던 이병도와 그의 수많은 제자들에 의해서, 그리고 사실적인 역사를 탐구하고 그대로 발표할 수도 없는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라는 장소에서. 잘못된 역사는 답습되고, 답습되면서 서서히 죽어간다. 그리고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식민사관에 기초한 한국사가 주류 한국사로 자리잡히기 시작했다. 그들은 아주 성실하게 우리의 역사가 신화에 의거한 매우 길고 위대한 역사라는 것을 가리고 또 가려버린다. 역사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막고 폭력을 휘두르니 결국 '역사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해를 돕고자 책 속의 식민사관의 전제와 핵심 명제를 열거하자면

1. 한국 역사는 짧았고, 영역은 좁았다. 2. 한국은 고대부터 중국과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았다. 3. 한국 민족은 주체성이 없어 타민족의 영향과 지배를 받아야 발전했다. 4. 한국은 천여 년간 사회적, 경제적으로 정체된 사회였다. 5. 한국 민족은 열등하고, 사대성과 당파성이 심하다. 6. 일본의 한국 지배는 필연이고 당연하다. 7. 한국은 일본 통치에 감사해야 한다.

  진보적인 관점에서 서술하고 있는 작가의 비평이 다소 자극적인 감은 있지만, 한국사람이라면 누구나 열이 오르는 비밀들이 가득한 책이다. 자신들은 아니라고 하지만 철저히 식민사관의 행태를 보이고 있는 주류 역사학자는 은밀히 숨어있다가 특히 반복되는 독재와 군사정권에서야 다시 살아나는 모습을 보였다. 역시나 권력에 의해 모든 것이 장악된다는 것이 안타깝고 슬프다. 언제나 그래왔듯, 작가는 다시한번 민중에게 말한다. 또다시 '희망을 사실로 만들고, 우리가 바꿔나가보자고. 민중이 주역인 역사로 변화시켜보자고'. 가능할까? 일단 중요한 건 사실을 제대로 아는 것이라 믿는다.  

 

 

   자신을 향한 일본 학자들의 사랑이 이병도는 너무 자랑스럽다. 그들이 왜 식민지 청년을 그렇게 사랑했을지 의문을 갖지도 않았다. 자신같은 인물을 사랑해줘서 그저 감격해 눈물이 날 지경이었을 것이다. 이병도는 자신의 말대로 당시 일본 학계의 최첨단을 걷는 두 사람의 사랑을 받으며, 그들에게서 역사를 배웠다. "당시 일본 학계의 최첨단"은 무엇을 의미할까? 현재에도 일본의 비판적 지식인은 일왕을 학문적으로 다루거나 거론하는 것을 피한다. 목숨의 위협을 받기 때문이다... 천황제국주의에 입각해 침략 전쟁을 벌이던 시기에 활국사관에 충성하지 않는 이가 일본 학계의 최첨단을 걸을 수는 없다. (37p)

 

  우리는 어떤 텍스트도 글자 그대로 읽어서는 안 된다. 각자 나름대로 문장의 맥락을 해석해야 한다. 위에서 보듯 한국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편찬한 사전에서도 김원룡을 극찬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식민사학이 사학사 무대로 넘어가기는커녕 아직도 한국 사학계를 장악하고 있다는 데 있다. (61p)

 

  "요컨대, 조선 교육은 이치를 캐는 자를 되도록 줄여야 한다." 이것이 조선총독부의 교육방침이었다. 한마디로 천황에 대한 노예 의식을 가슴 깊이 새기는 교육이었다. (63p)

 

  상상력이야말로 신화를 푸는 핵심적인 열쇠다. 신화가 형성된 당시의 역사적 상황과 조건, 고대인의 관념과 정서, 그들의 논리에서 무한한 상상력을 발동해야만, 거기에 응축된 고도의 상징들을 이해할 수 있다. 단군조선의 역사는 신화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역사적 사실의 반영이자 사화 史話다. 신화와 역사는 상반된 개념이 아니다. 신화를 허구로 보는 폐쇄적 사고와 단정적인 태도를 우리는 경계해야 한다. 일제가 의도한 것도 이런 역사 인식이었고, 이런 가치체계를 주류 식민사학계는 한 번도 부정한 적이 없다. (120p)

 

 하나의 정설만 있어야 하는 한국사는 이미 역사도 아니고 학문도 아니다. 이미 답이 정해져 있으니 연구할 필요가 없다. 아니, 연구해서는 절대 안 되는 역사가 한국사다. 역사는 늘 "왜"라는 질문에서 시작한다. 또한 학문은 "물어서 배운다"는 뜻인데, 어쩌다보니 한국사는 따지지 말고 외워야하는 비학문이 되었다. (258p) 

 

 

역사는 인내심이 깊다. 진실이 가려져도 역사는 자신을 지킨다. 누군가 진실한 역사를 발견하길 끈질기게 기다린다.

소설 <큰바위 얼굴>에서 주인공 어니스트는 결국 마지막에 자신이 큰 바위 얼굴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처럼 우리는 모두 큰바위 얼굴이다. 우리는 진실을 왜곡할 이유가 없는 어니스트Honest들이다. 우리는 남을 지배하기 위해 거짓을 만들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고, 정직한 역사를 갈망한다. 러시아 속담처럼 "우리가 기다린 것은 우리였다." (354 저자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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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34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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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밀란 쿤데라> 삶에 대한 총정리, 그리고 비체험의 위성

 

 

 

  

  가벼움 속의 무거움, 이 책을 알게 되고서 계속 했던 생각이었다. 도대체 이것의 구분을 통해 작가는 뭘 말하려는 것일까. 무작정 읽고 싶은 책으로 분류해놓긴 했지만 언제쯤 읽어야할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지금, 첫번째 독서 후 감상을 남기려 했지만 또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이 책을 다룬 이동진의 빨간책방 13회를 듣고 어느정도 생각이 자리잡힌 것 같다. 그리고 두번째 독서를 하게 된다면 아마도 그때쯤에야 조금 더 보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어쨌든 이 다음은 '한번' 읽고 들은 뒤의 정리다.

 

  닳고 닳도록 읽혀지는 고전이자, 쿤데라라는 이름하나로 대표되는 이 책은 언뜻 보면 네명의 사랑이야기로만 보일지도 모른다. 대단한 여성편력의 소유자인 토마시와 그를 운명이라고 믿는 테레자, 그리고 토마시의 연인인 사비나, 그리고 그녀에게 매력을 느끼는 프란츠. 그들의 관계, 그리고 가벼움과 무거움을 아슬아슬하게 오가는 줄타기 속에서 삶과 사랑의 변화, 역사 (프라하의 봄이라는 배경), 존재, 권태와 허무, 욕망 등 소설이 표현할 수 있는 모든 소재를 이야기 속에 품어두고 있다. 그리고 중요한 건 이 책에서의 가벼움과 무거움을 계산하는 단위는 '질량이 아닌 무게'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것에 작용하는 관계와 함께 소설 속 주제들을 생각하게 된다. 그 생각에 대한 해답은 아마도 그 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수많은 우연들을 필연으로 바꾸기 위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그렇기 위해서는 쿤데라가 소설 속에서 직접 언급하기도 했던 '키치'라는 표현을 통해 세상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에 대해 처음에는 유머와 가벼운 시선등으로 생각했지만, 빨간책방의 임자 둘의 해석에 의하면 '키치'는 세상에 대한 풍부한 다의성을 배제하고 '이것은 이것이다'하고 굳게 믿는 통념이나 편견을 말한다.

 

  쿤데라 전집 중 <소설의 기술>에 의하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첫 제목은 '비체험의 위성' 이었다고 나와있다. 비체험의 위성. 우연을 반복하는 이 비체험의 위성은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인 지구를 가리킨다. einmal ist keinmal, 한 번이면 영원히 끝인 우리의 삶, 그것은 어쩔 수 없는 비체험의 위성에 우리가 살고 있는 까닭이다.

 

 

  

   - 우리 모두는 사랑이란 뭔가 가벼운 것, 전혀 무게가 나가지 않는 무엇이라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다고 믿는다. 우리는 우리의 사랑이 반드시 이런 것이여야만 한다고 상상한다. 또한 사랑이 없으면 우리의 삶도 더 이상 삶이 아닐 거라고 믿는다. 덥수룩한 머리가 끔찍한, 침울한 베토벤도 몸소 그의 'Es muss sein! (그래야만 한다)'을 우리의 위대한 사랑을 위해 연주했다고 확신한다. (58p)

 

  - 우연만이 우리에게 어떤 계시로 나타날 수 있다. 필연에 의해 발생하는 것, 기다려 왔던 것, 매일 반복되는 것은 그저 침묵하는 그 무엇일 따름이다. 오로지 우연만이 웅변적이다. 집시들이 커피 잔 바닥에서 커피 가루 형상을 통해 의미를 읽듯이, 우리는 우연의 의미를 해독하려고 애쓴다. (80p)

 

  - 사비나의 삶이 음악이었다면, 중산모자는 그 악보의 모티프였다. 이 모티프는 영원히 되풀이되었으며 매번 다른 의미를 띠었다. 그 모든 의미는 마치 물이 강바닥을 스치고 지나가듯 중산모자를 거쳤다. 그리고 내 생각에 그것은 헤라크레이토스의 강바닥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같은 물에서 두 번 목욕하지 않는다!" 중산모자는 강바닥이었고, 사비나는 매번 다른 강물, 다른 의미론적 강물을 보았던 것이다. 같은 대상이 매번 다른 의미를 야기했지만 그 의미는 이전의 다른 모든 의미와 공명을 일으켰다. (마치 하나의 메아리, 꼬리를 무는 메아리들처럼) 새로운 체험은 보다 풍부한 화음으로 공명을 일으켰다. (143p)

 

  - 한 인생의 드라마는 항상 무거움의 은유로 표현될 수 있다. 사람들은 우리 어깨에 짐이 얹혔다고 말한다. 이 짐을 지고 견디거나, 또는 견디지 못하고 이것과 더불어 싸우다가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한다. (191p)

 

  - Einmal ist keinmal. 한 번은 중요하지 않다. 한 번이면 그것으로 영원히 끝이다. 유럽 역사와 마찬가지로 보헤미아 역사도 두 번 다시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보헤미아 역사와 유럽 역사는 인류의 치명적 체험 부재가 그려 낸 두 밑그림이다. 역사란 개인의 삶만큼이나 가벼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가벼운, 깃털처럼 가벼운, 바람에 날리는 먼지처럼 가벼운, 내일이면 사라질 그 무엇처럼 가벼운 것이다. (344p)

 

  - 키치는 인간들의 기억 속에 깊이 뿌리내린 핵심 이미지에 호소한다. 배은망덕한 딸, 버림받은 아버지, 잔디밭 위를 뛰어가는 어린아이, 배신당한 조국, 첫사랑의 추억. 키치는 백발백중 감동의 눈물 두 방울을 흐르게 한다... 모든 인간 사이의 유대감은 오로지 이 키치 위에 근거할 수밖에 없다. (388p)

 

  '짐이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우리 삶이 지상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우리 삶은 보다 생생하고 진실해진다. 반면에 짐이 완전히 없다면 인간 존재는 공기보다 가벼워지고 어디론가 날아가 버려, 지상의 존재로부터 멀어진 인간은 겨우 반쯤만 현실적이고 그 움직임은 자유롭다 못해 무의미해지고 만다. 그렇다면 무엇을 택할까? 묵직함, 아니면 가벼움?...

파르메니데스는 이렇게 답했다. 가벼운 것이 긍정적이고 무거운 것이 부정적이라고. 그의 말이 맞을까? 이것이 문제다. 오직 한가지만은 분명하다. 모든 모순 중에서 무거운 것-가벼운 것의 모순이 가장 신비롭고 가장 미묘하다.'

 

위대한 고전이라 불리는 책들은 인간 존재를 탐구하는 소설들이 많은 것 같다. 그것들에 여러 해석들이 있지만 결국 하나로 모이는 건 한번의 인생 속 의미를 파악해서 살아가는 것인듯... 그나저나 쿤데라는 정말 노벨문학상을 언제 받을 수 있을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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